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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종이학 접는 여자

2024.02.26 02:3902.26

종이학 천 마리를 접으면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그게 요즘 들어 유행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번 유행은 오래 갔고 광풍처럼 세었다. 종이학에 대한 소식과 이야기는 양도 많고 전파 속도도 빨랐다. 인터넷에 종이학 천 마리가 가진 힘과 효험, 종이학 천 마리를 접은 사람들의 체험담이 쌓여 갔다. 주요 포털 사이트에 검색어가 슬금슬금 올라오다가 마침내 꼭대기를 찍었다.  

​빌어야 할 소원은 많지만 사람들은 먹고 살기에도 바쁘다. 종이학은 백 퍼센트 수공예여야 했지만 마음을 정성스레 가다듬고 종이학을 한 마리 한 마리 접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더군다나 수십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껌종이를 재활용한다거나 집에서 오려 만든 종이를 쓴다거나 그러지 않는다. 반드시 전용 학종이를 써야 한다. 안 그러면 효험이 없으니까. 잘못 접히거나 모양이 미운 종이학도 안된다. 종이학은 손 위에서 막 날아갈 듯 완벽해야 한다.   

까다로운 소재 선정과 제작 과정, 예상보다 길게 가는 유행, 바쁘고 시간 없는 사회적 조건이 맞물려 돌아갔다. 종이학만 전문적으로 접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프로가 만든 종이학을 돈 주고 사서 소원을 빌었다. 오랜만에 대기업의 손길이 먹히지 않는 시장이 생겨났다. 종이학의 특성상 대량 공장제 생산은 불가능했다. 공산품에는 소원을 이루어 주는 특별한 힘 따위가 없으니까. 

작고 예쁜 가게들이 문을 열었다. 통유리 너머 진열장에는 접어 놓은 색색의 종이학들이 유리 그릇에 담겨 손님들을 기다렸다. 어떤 가게들은 진열장 한쪽을 비워 자리를 만들어 놓고, 종이학을 접는 기술자가 앉아서 학 접는 광경을 보여 주었다. 길 가던 사람들이 그 광경을 구경하거나,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었다. 어떤 가게들은 그런 사진이나 영상을 홍보용으로 적극 썼다. 어떤 가게들은 사진이나 동영상 찍으면 종이학의 효험이 날아간다고 일체의 촬영을 허락하지 않았다. 

​종이학의 유행이 마침내 아홉 시 뉴스를 탈 무렵 인터넷에서 그냥 종이학보다 축복이나 주술을 입힌 종이학이 더 효험이 좋다는 소문이 나돌다가, 나중에는 누구나 다 아는 얘기가 되었다. 종이학 가게들은 가게 주인이 축복을 직접 빌거나, 아니면 주술사를 고용했다. 

그래서 종이학 시장은 한층 견고해졌다. 홈메이드 종이학이 아직 있긴 하지만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약발 없는 거 알면서 있는 척하고 주고받는다. 최상급의 품질 좋은 종이학 전용지와 흠 없는 접기 기술이 종이학이 상품 구실을 할 수 있는 기본이고, 값이 가장 싸다. 이 단계에서는 주술이나 축복이 걸리지 않는다.  이런 물건들은 예산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면서, 한편으로는 입학식, 졸업식, 가정의 달 5월, 발렌타인 데이와 크리스마스 때 잘 팔린다 (추석과 설날 선물로는 인기가 없었다). 

이 기본 종이학에 가게 주인이 아마추어로서 축복을 내리면 종이학의 효험과 가격이 더 올라간다.  당첨 잘 되는 복권 파는 가게 주인이 뭔가를 해 주는 것과 비슷한 논리였다. 축복이나 주술이 전문 주술사의 손에서 내려지면 종이학은 한층 고급이 되고 가격이 뛴다. 가장 비싼 종이학은 개인용 맞춤 소원 종이학이다. 컨셉부터 맞춰 들어간 수제 학종이, 천 마리가 모두 한 사람 손에서 나오도록 전속 종이학 접기 기능사와 계약, 엄격한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여 흠 없이 완벽한 천 마리의 종이학, 최종적으로 주술사의 축복이 들어간다.  

그녀는 종이학을 접는 일을 한다. 아침에 출근하면 손을 씻고 가게 지침에 따라 손을 정화하는 의식을 치른 후 곧장 종이학을 접는다. 손놀림이 기계 같다. 마치 새들이 그녀의 손끝에서 부화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접혀 나온다. 그녀의 작업대는 가게 진열장 바로 앞이어서 밖에서 그녀가 종이학을 접는 것이 다 보인다. 그녀의 손놀림에 행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누군가는 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종이학 접기의 달인이라던가 그 비슷한 제목으로 인터넷에 올린다 (이 가게는 촬영을 허락하는 가게였지만 그걸 적극적으로 홍보에 이용하지는 않았다.  가게 사장은 좀 유유자적한 편이다). 

그녀의 작업 속도는 빠른 편이지만 사실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한 마리 한 마리 정확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많이 만들어 봤자, 종이학이 가게 내의 검사 스캐너를 통과 못 하면 불량이니까. 잘못 접힌 미세한 주름 하나까지 잡아 내는 기계니까. 

그녀에게도 초보였던 시절이 있었다. 기본급이 적고 종이학의 양과 질로 성과급이 결정되므로 그녀의 손놀림 또한 성과급에 맞춰서 향상되었다.  이 업계에서는 단순 작업을 오래 버티고 눈썰미와 손이 좋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잘 얻고 오래 일한다. 그녀도 오래 버텨서 현재 위치까지 왔다. 이 바닥에서는 경력직이었다. 학 접기로 생활비를 벌었고 집에 송금도 했고 저축도 했다. 종이학 접기 기능사 민간 자격증도 하나 있다. 

한 마리에 2분 걸린다. 접는 것에서부터 그녀의 눈으로 자체 품질 검사를 하는 것에서까지. 한 시간이면 30마리. 여덟 시간 꼬박 근무하면 이론상 240마리이지만 실제로는 점심 시간 커피 타임까지 합쳐서 200마리 정도로 끊는다. 사장이 원하는 건 양보다는 질이어서 그녀의 작업 속도를 존중해 준다. 실제로 그녀 손에서 검증을 거쳐 나간 종이학을 가게 주인이 기계로 재검할 때는 거의 백 퍼센트 통과가 된다. 완전 백 퍼센트를 찍어 본 적은 없긴 했다.

​사장은 유유자적 속도가 느리지만 동시에 완벽주의자다. 진심으로 소원을 비는 종이학의 가치를 믿는다. 학종이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마지막 축복까지 한 자락의 흠도 없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장은 종이학 품질 검사용 스캐너를 직접 디자인해서 공장에 따로 주문해 받아 왔다. 완벽한 모델이 될 수 있는 종이학 백여 마리를 스캔해서 컴퓨터에 기억을 시키고, 그녀가 접은 종이학을 한 마리 한 마리 체크한다. 이런 고용주에게 고용되고 오래 일한 걸 보면 그녀의 솜씨는 사실상 일류로 보증된 것이다. 가게는 오프라인에서도 온라인에서도 평이 좋다. 그 집 종이학은 소원빨이 잘받아요. 홈페이지에 후기도 많다. 

악덕 가게들도 많다. 개인 맞춤형 세트를 납기일을 타이트하게 잡아 놓고 종이학 기능사들을 쥐어짜는 곳도 많고, 가게 자체에서 품질 검사 같은 거 안 하는 곳도 많다. 질보다 양인 곳은 셀 수도 없다. 그런 가게에 가면 종이학 접는 파트는 공장 같다. 하지만 뭐 그녀 역시 작은 공장처럼 돌아가니까 공평하긴 하다. 웃기는 것은 그렇게 저질인 가게나 우리 가게나 후기 분위기는 비슷하다는 것.  

하루 종일 남의 소원 들어 주는 종이학을 접고 퇴근한다.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서 운동량이 부족하고 피곤하다. 몸이 둔하고 정신이 멍해져서 커피만 늘어 간다. 

그녀는 가끔 생각했다. 내가 바라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종이학을 내 손으로 접고 싶다. 옛날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종이학과 소원에 대한 얘기를 엄숙한 비밀인 것처럼 속삭이며 서툰 손놀림으로 몇 마리씩 하루에 접던 것처럼. 

어느 날 그녀는 실행에 옮겼다. 봉급 받은 것 중에서 떼어, 가게에서 파는 것만큼 품질 좋은 최상급 학종이를 샀다. 천 장짜리 한 세트. 아직도 손으로 직접 접으시는 분들을 위한 제품입니다. 

집에서만 순수하게 접는 나만의 소원을 위한 것.  

시작은 창대했지만 진전은 미약했다. 마음 다잡고 하루 30분만 매일 시간을 내면 100일만에 천 마리가 나오겠지 계산을 하고서 시작했다. 작심삼일은 커녕 이틀이 못 되어 속도가 느려졌다. 

우선 몸이 피곤했다. 가게 나가서 하루 종일 앉아서 종이학을 접는 것이 별로 힘이 안 드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직장 나가서 돈 버는 일은 노동 강도에 상관없이 일이 끝나면 지쳤다. 하루 꼬박 종이학을 접고 집에 와서, 꿀 같은 저녁 시간에서 30분씩이나 시간을 내서 뭔가를 정기적으로 한다는 것은 보통의 의지로 될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녀가 세운 목표가 업무와는 완전히 다른 여가나 취미 활동도 아니어서,  근무의 연장은 아니었지만 근무의 연장처럼 되었다. 집에서 종이학 접는다고 맘 편하게 접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저도 모르게 그녀는 가게에서 하는 품질 관리를 집에서도 하고 있었고, 그럴수록 자기가 접는 종이학이 마음에 안 들었고, 그래서 속도가 느려졌고 초조해졌으며 아까운 학종이를 망쳐서 버렸다. 학은 한 방에 제대로 나와야지 잘못 접은 학을 펴서 다시 접으면 이미 종이가 구겨져서 못 쓰는 것이다. 

그녀는 2주 후 포기했다. 남은 것은 접다 만 학종이, 구겨진 학종이, 몇십 마리의 갈 곳 모르는 종이학이었다.  

다시 도전했다. 이번에는 전략을 바꾸었다. 천천히 가자. 한 마리라도 완벽하게 하자. 만일 컨디션이 안좋으면 하루쯤 건너뛰어도 돼. 천 장짜리 학종이 묶음을 새로 사는 거야. 한 장이라도 망치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해보자. 

더 비싼 학종이를 샀다. 

만드는 순간에는 욕심을 버렸다. 속도가 느렸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 이 순간, 한 단계 한 단계에 집중하는 거야. 그녀는 초조한 마음을 달래 가며 최초의 한 마리를 만들었다. 

목표를 멀리 잡지 않았다. 한 마리만 더 만드는 거야. 한 마리만. 피곤하면 쉬어도 돼. 두 마리째, 세 마리째 접어 가면서 그녀의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천 마리라는 먼 숫자는 잊었다. 당장의 한 번 접기, 한 번 뒤집기에 온 신경을 썼다.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가게에서 쌓았던 노하우가 서서히 그녀의 손끝에 올라왔다. 진전이 느리지만 확실했다. 

어느 날 저녁 그녀는 가게에서와 같은 팽팽한 마음가짐 없이, 완전한 평온 속에서, 종이학 한 마리를 접어 냈다. 종이학의 주둥이가 마지막 단계에서 접혔을 때 그녀는 각성과도 같은 환희를 느꼈다. 어떤 경지에 자기가 일순간 발을 디딘 것 같았다. 종이학은 완벽했다. 이전에 접은 종이학들 역시 완벽했지만 이번 것은 정말로 완벽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정말로 흠결 없는 자신만의 종이학 컬렉션을 천천히 쌓아 가고 있었다.  

비싸고 예쁜 유리 그릇을 샀다. 가게에서 종이학을 담는 유리 용기와 같은 수준이었고 제법 큰 돈을 지불했다. 이미 접은 종이학이 둥근 그릇 안 삼분의 일을 채웠다. 남아 있는 빈 공간이 그녀를 부드럽게 재촉했다. 어서 날 채워 줘요. 예쁜 종이학 친구들로. 

그녀는 계속했다. 그녀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종이학을 만들어 냈다. 접을 때의 종이의 감촉과 저항, 미세한 주름과 선이 손끝에 감돌았다. 종이학은 그녀의 손에서 꽃처럼 피어나 막 날아갈 듯한 자태로 유리 그릇에 담겼다.  

11월의 어느 날 그녀는 마지막 종이학을 접었다.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 

그녀는 행복과 노곤함을 같이 느끼며 잠들었다. 

이제 한 가지 소원을 빌기만 하면 된다.   

몇 주가 지나도록 그녀는 소원을 빌지 않았다. 아니 못 빌었다. 

소원은 애매모호했다가도 어떤 때는 여러 개가 한꺼번에 떠올려졌다.  많은 돈, 안정되고 여유 있는 삶, 평생을 같이 할 파트너, 건강, 가치 있는 새로운 체험 같은, 내 소원 같기도 하고 남의 소원 같기도 한 여러 가지 것들이 물고기 떼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그녀가 종이학을 접었던 긴 시간 동안 헤엄치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 중에서 단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고르지를 못하는 것이다. 

복권 당첨은 어떨까. 뉴스에 한 번 났다. 종이학 천 마리가 복권 1등에 당첨되게 해 달라는 소원을 이루어 주었어요. 가난하고 고생스런 삶을 산 것처럼 보이는 초로의 남자가 얼굴 주름살을 한 가득 지으며 함박 웃는 영상이 정지 화면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정지된 화면은 남의 일처럼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교외의 전원주택? 그러나 그림 같은 집의 이미지를 떠올린 후에는 한 발짝도 더 상상할 수 없었다. 예쁜 그런 집에서 내가 뭘 하고 싶지? 어떻게 살지? 생활비는 어디서 벌어? 

좋은 남편, 좋은 남친, 하다못해 좋은 남사친, 하지만 이쪽 방향은 그림 같은 교외의 전원주택보다도 더 상상하기 어려웠다. 

마음의 평온과 좀더 나은 내일의 나? 영적 성숙? 세계 평화? 내가 그런 소원 빌자고 다 쓴 치약 또 짜내듯이 시간 내서 종이학을 천 마리씩이나 꼬박꼬박 접었다고?

시간은 계속 지나가는데 그녀가 빌고 싶은 소원은 마음 속에 올라오지 않았다. 대신에 스멀스멀 찾아온 것은 두려움이었다. 종이학은 소원을 이루어 주지 않을지도 몰라. 내가 접은 종이학에 무슨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 뭔가 내가 알아채지 못한 흠이 있어서. 차라리 가게에서 초과 근무를 하고 내 돈 주고 종이학을 사야 했던 걸까. 하지만 그러자니 차라리 내가 접고 말지 그런 마음도 있었잖아. 

아니면. 

아무리 종이학을 비싼 종이로 접고, 최고의 테크닉을 동원하고, 갖가지 주술과 축복으로 범벅을 한들, 

그런 거 다 아무 소용 없는 거 아닐까.  

소원을 하나 빌어 볼 용기를 그녀는 끝내 얻지 못했다. 집에서 종이학 천 마리를 접는 건 한 번쯤 빌어 보고 안되면 새로 또 천 마리 접지 뭐, 라고 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일정 부분을 자기 종이학을 접으면서 소진해 버렸다. 그렇게 해서 손에 넣은 단 한 번의 가능성을 그녀는 함부로 쓰지 못했다. 

고민만 하다가 12월 중반까지 시간이 지나고 말았다. 

그녀는 소원 비는 것을 포기했다. 

 사장은 그녀가 유리 용기에 담아서 가져온 종이학 천 마리를 내려다보았다.

“우리 작업장 품질 관리에서 벗어나는 물건인 건 알지? 물론 주임 손에서 나온 물건이니 품질이야 떨어지지 않겠지만, 가게에서 파는 물건은 가게 내에서 만드는 게 원칙이야. “

“네. “

사장이 틀린 말 한 것은 아니었다. 사장은 외부 프리랜서가 만드는 물건은 들이지 않았다. 그녀를 고용하고 주임으로 승진시키고 급여와 수당을 적절히 올려 주는 걸로도 충분하니까. 그런데 지금 그녀는 프리랜서 입장이었다. 가게 밖에서 만든 물건을 들고 와서 주인에게 살 생각이 혹시 있느냐고, 생애 최초의 흥정을 하는. 

사장은 뒷방으로 들어갔다. 홀로 남은 그녀가 내려다보는 종이학들에서는 그녀가 느꼈던 마술 같은 느낌이 더 들지 않았다. 저걸 한 마리 한 마리씩 접어 갔을 때 느꼈던 온갖 감정들 중 하나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사장이 검사 기계와 빈 상자 하나를 들고 왔다. 그녀가 접은 종이학의 품질 검사를 해 보려는 것이었다. 두 사람 다 말이 없는 가운데, 종이학은 한 마리씩 시험에 들었다. 삡 하는 기계음과 함께 초록 불이 들어왔다. 

그녀는 잠시 거기 있다가 자기 작업 테이블로 가서 일을 시작했다. 손 정화 의식을 하고, 가게에서 팔 종이학을 하나씩 접는데, 등 뒤에서 삡 삡 하는 검사음이 시계 초침 소리처럼 들려왔다.  

천 마리를 다 검사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 종이학들은 다시 원래의 유리 그릇으로 되돌아갔다. 

“천 마리 전부 합격 나왔어.”

사장이 말했다. 그녀는 끄덕였다. 기계음을 들었을 때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다. 

“기계로는 합격 불합격 두 가지 대답 뿐이지만, 정말 잘 만들어 줬어. 작업장에서 주임이 작업하는 종이학과는 달라. 뭔가가 더 있는 것처럼. “

“……예.”

“구매 계약하도록 하지. “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구매 계약서를 쓰고, 서명을 하고, 종이학은 유리 그릇째로 사장이 샀다. 사장은 즉석에서 그녀의 계좌로 지불을 끝냈다. 

사장이 지불한 금액은 그녀의 예상 이상이었다. 프리랜서들이 가게에 넘기는 가격 정도가 아니라, 일반 소매점에서 매기는 가격조차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숨이 멎을 듯한 감각을 가슴 속에 느꼈다. 

“이건 되팔지 않고 내가 소장할 생각이야. “

사장이 말했다. 

“이건 예술 작품이야. 좀 전에 말했지만 단순 종이학이 아니라 어떤 무형의 무언가가 깃들어 있어. 불타는 예술혼 같은 건 아닌데, 뭔가 무념 (無念)하면서도 생기가 감도는 그런 거? “

“감사합니다. “

“이런 식으로 내 쪽에서 구매하는 건 이게 마지막이야. “

사장은 일말의 여운 없이 목소리 톤도 바꾸지 않고 선을 그었다. 

“주임이 만든 건 예술품으로서는 자격이 있을지 몰라도 상품성은 없어. 종이학은 텅 비어 있어야 거기 주술이든 축복이든 실리는데, 주임이 만든 종이학은 이미 그 공간이 차 있어서. 좋은 물건인 건 맞지만 이건 누구의 소원도 들어 주지 못해. “

“……” 

“아 그리고, 미리 얘기하는 게 좋겠는데, 가게 문은 닫게 될 거야.”

“예?”

“아니 당장 그러겠다는 건 아니고.  6개월에서 8개월 정도 지나서 폐업할 거야. 그 동안 일도 줄이고 점포도 정리하고, 새로 뭐 할 건지도 구상하고. 커피전문점이나 뭐 그런 걸로 말이지. 

종이학으로 벌 만큼 벌기도 했고, 종이학 유행이 사그라들 조짐도 있어. 늦게까지 남아서 지저분하게 문 닫는 것보다 이 정도 타이밍에 정리 시작하는 게 깔끔해.”

사장이 처음부터 종이학 팔아서 돈 버는 것에만 신경 쓰는 인간이었다면 차라리 충격을 덜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뼛속까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사장이 어떻게 이 작고 아름다운 가게에 정성을 들여 왔는지 여기 취직한 이래로 줄곧 보아 왔던 그녀였다. 사장은 진심으로 종이학을 다루고, 정성으로 소원을 빌고, 모든 정화 의식과 주술을 신실한 종교 의식을 치르듯 한 치의 흠 없이 해 냈다. 사장이 손님들에게 종이학을 팔 때의 표정은 장사치의 얼굴이었던 적이 없었다. 누군가의 소망을 진정으로 들어 주기를 원하는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사람이 사장이었다. 사장이 자기 가게를 비즈니스로서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고, 그건 얼음 칼날처럼 차고 날카롭게 뱉어져 나왔다. 

말문을 잊고 멍하니 입술을 벌린 그녀에게 사장이 말을 이었다. 

“주임도 커리어를 바꿀 생각을 해 두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종이학 같은 아이템은 유행이 한 번 지나면 다시 돌아오는 텀이 길어. 다른 자격증이나 뭐 그런 걸 알아 봐. 뭣하면 이 가게 접고 새 가게 낼 때 자리를 한 번 내 보든가 하지. “

사장은 그녀에게 새로 낼 가게에 반드시 취직시켜 주겠다는 소리는 안 하고 있었다. 

“우리 가게에서 성실하게 오래 일해 준 건 고맙게 생각해. “

사장과의 대화 이후로 종이학 불량률이 높아졌다. 사장은 별 말이 없었다. 

몸에 밴 습관이 무서웠다. 종이학 불량률은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종이학 접는 속도가 예전보다 느려졌다. 더 이상 하루에 200마리까지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180마리 정도까지가 한계였다. 몸에서 스피드가 더 올라오지 않았다. 사장은 그것도 별 말이 없었다. 

첫눈 오는 날 그녀는 새해까지 이어지는 긴 휴가를 냈다. 오전까지만 근무하고 점심 전에 가게를 나왔다. 대낮에 퇴근하는 게 오랜만이었고 기분이 낯설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만들어서 사장에게 팔았던 천 마리 종이학이 가게 진열장 가장 좋은 자리에 올려져, 내리기 시작한 눈 너머로 그녀를 마주 보고 있었다. 예전에 가게 안에서 내려다보았을 때보다도 더 멀게만 느껴졌다. 생판 모르는 남이 만든 물건 같았다.  

사장의 목소리가 다시 돌아왔다. 

-이건 누구의 소원도 들어 주지 못해. 

-가게는 문을 닫을 거야. 다른 뭔가를 알아 봐. 

그 순간, 그녀는 자기 몸과 마음이, 아무 희망도 미래도 없는 듯, 세상으로부터 유리되어 껍질만 남은 것 같았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우아하게 잘 살고 있어 보이고, 오직 그녀만이 수렁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종이학을 접었을 때 느꼈던 무념의 환희를 기억해 보려 했다. 그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느낌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날 뿐이었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집에 송금을 더 못 하게 되면 어떡하지? 월세는? 생활비는? 커피를 배워야 하나? 

앞으로는 뭘 해야 하지?

눈발은 점점 거세지는데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모르고 걸어갔다.  

이연L

느리고 조용한 글들, 마침내 태어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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