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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살아난 대리들의 밤

2012.07.18 18:0207.18


어두운 밤, 텅빈 사무실에서 노대리는 홀로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회사와 관련한 업계동향 뉴스를 매일매일 정리해서 발송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업무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 이것도 마지막이 되겠지. 작성하던 뉴스클리핑을 멈추고 뻐근해진 목을 풀어주려고 고개를 들었다. 창밖으로 다른 빌딩들이 보였다. 어둠속에서 빌딩들의 창 곳곳에 불이 붙어 타오르고 있는 모습이 꼭 야구 전광판처럼 보였다. 간혹 사람이 떨어져내리는 것도 보이고. 아니 이미 저건 사람이 아닐거야. 고개를 저으며 노대리는 뉴스클리핑 작업을 서둘렀다.

처음에는 자그마한 헬스케어 프로젝트였다. 심어놓은 나노봇들이 생체정보를 전송하면 실시간으로 건강정보를 모니터링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색인' 과정에서 변이가 일어났다. 나노봇은 멈추지 않았다. 크롤링은 탐욕스러웠다. 프로젝트가 파기되었음에도 데이터수집은 계속되었고, 검색서버는 혈액을 통해 다른 개체로 나노봇들을 침투시킬 수있음을 알아냈다. 곧 나노봇들이 생물체의 공격중추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이성을 유지시킨 상태로 혈액감염을 시도하는 '신체강탈자의 침입' 스타일 보다는 이 방법이 더 효율적이라고 프로젝트 AI가 판단한 것이다. 어차피 색인시 발생한 열은 뇌를 망가뜨린다는 이유도 있었고. 그렇게 사람들은 괴성을 지르고 침을 흘리며 서로를 닥치는대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갑자기 창밖이 밝아졌다. 그리고 굉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렸다. 옆 빌딩이 공군이 발사한 미사일에 의해 파괴되어 무너지기 시작했다. 중앙서버가 있는 곳을 노렸군. 하지만 이미 프로젝트 머신은 분산화 되어 있는 상태였다. 본체라는 개념은 의미가 없어. 노대리는 생각했다. 자신이 방금 읽은 보고서에 따르면 (코난 비상대책위원회의 마지막 보고서였다) 이 프로젝트는 자기방어플랜을 가지고 있었다. 정부의 파괴시도에 플랜이 발동하였고, 현재는 개인컴퓨터에 가상화층을 만들어 침투하는 2단계를 거쳐서 좀비화된 개체들의 나노봇들로 그리드 컴퓨팅을 구성하는 3단계로 진화하는 중이었다. 몇일 뒤면 시스템 구축이 완성된다. 좀비들이 컴퓨터 역할도 하는거지. 어떤 자식이 이런 프로젝트를 생각해낸거야.

노대리는 눈이 침침했다. 벌써 감염이 시작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까 배순학을 엘리베이터 통로로 떨어뜨리면서 손을 물렸지. 가지가지하는군. 떨어지는 배순학과 눈이 마주쳤었다. 그 공허한 눈동자가 자꾸 떠올랐다. 미사일을 탑재한 공군 헬기들이 미림타워를 에워쌌다. 아까부터 온몸에 열이 나고, 머리가 어지러워 더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뉴스클리핑은 보내야했다. 키보드에 상처에서 나온 피가 배여들고 있어서 몇몇 키가 잘 보이지 않았다. 이미 좀비들이 너무 많아졌고, 일주일만에 서울은 초토화되었다. 정부는 지방으로 빠져나가는 교통수단과 다리 등을 다 파괴시켰지만 이 속도대로라면 이 확산은 결국 전국적 규모가 될 것이다. 그리고 프로젝트 3단계가 완료되면 좀비들은 걸어다니는 컴퓨터가 된다. 좀비들 하나하나가 계산 노드가 될 것이고, 메인 루틴은 계속해서 분산과 백업을 반복하며 이 집합체들을 흘러다니겠지. 규모가 커질 수록 강력한 슈퍼컴퓨터가 된다. 단 한마리만 있어도 이 현상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지금이 이것들을 끝장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뉴스클리핑은 뇌에 이식된 수신칩을 통해 받게 되어 있다. 무의식 영역에 메시지 간섭을 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지만, 의식영역에서 주고 받는 것은 합법적이었기에 공지사항 등은 이를 통해 전달했던 것이다. 이 뉴스클리핑 메시지에 자신이 작성한 정지코드를 삽입하면 된다고 김무성이 말했지. 녀석이 살아있길 빈다. 최초로 변이가 일어난 회사 직원들에게 일단 정지코드가 전달되면 이들을 통해서 역으로 다른 좀비들에게 이 코드들을 감염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누구도 원래대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잠깐. 엔터를 치기 전에, 헬기에서 일제히 발사된 미사일이 창 바로 앞에서 멈췄고, 노대리는 pixie의  where is my mind를 뉴스클리핑에 삽입하는 중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야. 이 좀비 자식들아 한번 들어보라구.  

빌딩이 무너졌다.





(2012.7/10)



http://youtu.be/o2vzglp_R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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