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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엽편]밤을 태우는 별

2011.11.13 19:4111.13

  이것은 밤을 태우는 별에 관한 이야기.

  먼 옛날, 처음으로 하늘과 땅이 갈리고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의 분별이 생겼을 무렵, 세상은 캄캄하고 어두웠습니다. 사람들은 끝나지 않는 밤 속에서 자그마한 불을 피워든 다음, 불을 피울 만한 것들을 찾아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어쩌다 그 전에 불이 꺼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볼 수 없는 밤 속에는 분명히, 이빨로 아득 아득 소리 내고 발톱을 갈면서 남을 해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 사는 것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내려다 본 어린 별은 가슴이 너무도 아팠습니다. 그의 가슴 속에서는 이글거리는 불씨가 슬픔과 고통, 그리고 분노처럼 피어올랐습니다. 어린 별은 다른 별들 앞에서 말했습니다.
"나는 온 하늘과 땅을 비추는 빛이 되고 싶어. 끝나지 않은 밤을 걷어내서 밤 속에서 제 세상처럼 살아가던 것들에게는 두려움이, 밤 속에서 움츠리고 살아가던 것들에게는 기쁨이 되겠어."
  그 말을 듣고 다른 별들은 웃어 넘겼습니다. 밤은 아득히 멀고도 멀어서 어둠은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볼 방법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어떤 별은 이렇게 말할 정도였습니다.
  "밤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작은 빛도 아름다워 보이는 거야. 만일 온통 빛 뿐이라면, 누가 우리에게 눈길이나 주겠어? 우리는 도리어 밤에게 고마워해야 할 지경이야."

  하지만 어린 별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 눈을 감은 채 불의에 괴로워하는 이들의 아픔에 관해서, 아무도 걷어내려 나서지 않는 밤의 어둠에 관해서 집중했습니다. 이윽고 어린 별의 가슴 깊은 곳에서 점화된 불씨는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불길은 어린 별을 휘감아 올랐고, 다른 별들은 깜짝 놀라서 빛이 약해졌습니다. 어린 별은 고통 속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고 어둠이 그의 빛에 쫓겨 달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밤의 밑에 숨은 채 아무 두려움 없이 활보하던 자들이 겁에 질려 허둥거리고 눈이 부셔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린 별은 불타오르며 외쳤습니다.
"물러서라, 밤이여! 이는 내 빛이다!"
  그러나 그도 잠시, 거센 불길은 어린 별의 몸을 통째로 삼켜 버렸고, 빛은 주춤하더니 어둠 속으로 꺼져갔습니다. 팔랑거리면서 꽃잎처럼 가늘게 떨고 사라져, 어둠 속으로 꺼져갔습니다.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못하고 숨소리만 들썩였습니다. 더 이상 빛이 비추지 않고 멀고 먼 별빛만 깜빡이는 게 분명해지자, 어둠 속에서는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방에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사람들은 두려워서 몸을 떨고 눈물 흘렸습니다. 별들은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더러는 돌아서고, 또 더러는 이렇게 종알거렸습니다.
"흥, 뭐야. 자기가 언제까지 타오를 것처럼 나서더니."

  그러나 이게 무슨 일 입니까? 다 타서 사라져 버린 어린 별의 재 너머로 일렁거리는 불기운이 다시 일더니, 불꽃이 살아나며 그리로 밤이 빨려들어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웃음소리는 뚝 멈추고 새로운 빛이 하늘을 가로질러 날았습니다. 어린 별을 다 태운 불꽃은 이제 밤을 태우기 시작했고, 이미 말했다시피 밤이란 끝이 없는 법이기 때문에, 새로운 빛 또한 끝나는 법이 없었습니다. 어둠을 몰아내며 다시 태어난 별이 외쳤습니다.
"이것이 나의 빛이다! 보아라, 밤이여! 너가 그치지 않는다면 나 또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꺼지는 것은 오로지 너를 다 태워버린 후의 일이다!"
  온 세상에 빛이 가득해지자, 밤 속을 제 세상처럼 살아가던 것들은 도망칠 곳을 찾아 허둥거리다 물 속으로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밤 속에서 움츠리고 살아가던 사람들은 몸을 숨기던 곳에서 나와 눈부시게 밝은 빛과 이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비록 밤을 태우는 별이 홀로 모든 곳에 닿지는 못해도, 그는 하늘을 가로지르면서 모든 곳에 고루 빛을 비춥니다. 어떤 사람은 그가 비추는 시간을 낮이라 하고 그 별을 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에게는 그가 밤을 태우는 별, 어둠이 있는 한은 언제까지고 꺼지지 않을 별이라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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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밤을 태우는 별이 자신을 태운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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