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여자가 눈을 떴다.
반쯤 열려진 커튼 사이로 세어 들어오는 햇빛이 어두운 방안을 은은히 비추고 있었다. 여자는 숨을 내쉬어보았다. 따뜻한 숨결이 몸속애서 빠져나와 새하얀 김이 되어 흩어졌다. 여자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살아있다. 난방이 되지 않는 차가운 방바닥에서 한기가 느껴졌고 곰팡이가 핀 벽지에서 퀴퀴한 냄새가 났다. 몸으로 느껴지는 모든 감각들이 아직 여자가 살아있음을 가르쳐 주었다.
여자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몸을 한껏 움츠려 잤던 터라 온몸이 뻐근했다. 뭉친 근육을 풀기 위해 기지개를 폈다. 갑자기 머리로 피가 쏠려 현기증이 났지만 왠지 붕 뜬 것 같은 그 기분이 싫지만은 않았다. 반쯤 닫혀있던 커튼을 걷자 밝은 빛이 방안으로 쏟아졌다. 여자는 광합성을 하는 식물처럼 햇빛을 마음껏 만끽했다. 하지만 여자는 식물이 아니었다. 밤새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한 뱃속에 미칠 듯한 허기가 밀려들었다. 여자는 방문을 열고 부엌으로 향했다.
아직 설거지가 되지 않은 식기들이 널브러져 있는 싱크대를 대충 정리한 뒤 선반을 열었다. 오래된 향신료 향이 풍기는 선반 속에는 곰팡이가 핀 바게트 하나와 한 스푼도 남지 않은 인스턴트 카레가루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벌써 먹을 게 다 떨어진 것이다. 여자는 곰팡이가 핀 바게트를 꺼내 한입을 베어 물었다. 쓰디 쓴 곰팡이 향이 입안에 퍼졌다. 힘들게 씹은 바게트를 억지로 삼키고 빗물을 받아둔 물통을 꺼내 목을 축였다. 그렇게 여자는 바게트의 절반을 꾸역꾸역 집어삼켰다. 그리고 창가로 다가가 건전지로 작동하는 작은 라디오를 켰다. 전원이 켜진 라디오가 기분 나쁜 전자 노이즈를 뱉어냈다. 여자는 시끄러운 노이즈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라디오의 전원을 껐다. 마지막 방송마저도 중단된 것 같았다. 이제는 더 이상 라디오가 필요 없을 거란 판단이 들었다. 여자는 창문을 열어 라디오를 집어던졌다. 라디오가 박살나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렸다. 여자는 그 소리에 조금 후련한 기분을 느끼며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거실 소파위에서 웅크린 채 아직 일어나지 않는 남자아이를 조심스레 불러보았다.
“일어나. 아침이야. 밥 먹어야지.”
여자가 반쪽만 남은 곰팡이 핀 바게트를 흔들어 보였다. 하지만 남자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여자는 바게트를 식탁 위에 내려놓고 조심스레 남자아이의 몸을 만져보았다. 남자아이의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다.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가 덮고 있던 담요로 남자아이를 동여 묶었다. 여자는 혹시나 담요가 풀리지 않는지 매듭을 확인한 뒤 남자아이를 들쳐 멨다. 남자아이의 몸은 속이 텅 빈 깡통마냥 가벼웠다. 여자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신발을 구겨 신고 반쯤 열린 현관문을 열어 밖으로 나왔다.
해가 중천에 뜬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여자는 그 모습이 익숙한 듯 부서진 건물의 잔해들이 어지럽게 펼쳐진 도보 위로 발을 내딛었다. 여자의 발소리가 죽은 도시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종말은 대수롭지 않게 시작되었다. 정체불명의 신종 바이러스로 인해 누군가 목숨을 잃었다. 학자들은 얼마 전 변이를 일으켰던 슈퍼바이러스가 또 한 번 변이를 한 것 같다며 치료제 개발에 힘쓰고 있다. TV속의 무표정한 아나운서는 딴 나라 이야기를 전하듯 딱딱한 목소리로 대본을 읽어 내렸다. 약국에서 일하고 있던 여자의 언니는 그 뉴스를 보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변이된 바이러스의 변이라니, 그건 변이가 아니라 진화잖아.”
여자는 그 흥미도 없는 이야기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며 TV채널을 돌렸다. 그렇게 여자의 관심도 끌지 못했던 시시껄렁한 바이러스 이야기가 나온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여자는 자신의 언니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것은 변이가 아니라 진화였다. 이제껏 겪어왔던 바이러스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전염성과 99%이상의 치사율. 게다가 슈퍼바이러스라는 말에 걸맞게 면역 체계마저 형성되지 않아 재발까지 가능한 사상 최악의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는 단 일주일 만에 40만 년 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잃었다. 국가라는 개념은 사라졌고 사회마저도 무너졌다. 서로가 자기 한 몸 챙기기에 바빴고 그 틈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자들로 넘쳐났다. 법과 도덕은 바이러스와 함께 죽어버렸고 오직 힘만이 모든 것을 대신해 주었다. 매일 밤마다 비명과 신음소리가 도시를 숨 막히게 만들었다.
여자는 허리까지 흘러내린 남자아이를 다시 어깨위로 들쳐 메고 텅 비어버린 유령 도시를 걸었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고 도로 위를 쉴 새 없이 달리던 자동차들도 보이지 않았다. 인류의 흔적이 사라져버린 곳. 이곳이 자신이 알고 있던 곳이 맞는지조차 의문스러웠다. 여자는 아마 비명과 신음으로 숨이 막힌 도시마저도 죽어버린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등 위에 축 늘어져있는 이 남자아이처럼 말이다.
4일 전, 여자는 이 남자아이는 처음 만났다. 5~6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는 쓰레기 더미 위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그 이름도 모르는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됐지만 그래도 못 본 척 지나갈 수가 없었다. 결국 여자는 남자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언니의 어깨 너머로 배워왔던 지식으로 감기약을 처방해주자 남자아이는 그것을 걸신들린 듯 집어 삼켰다. 자신의 손마저도 먹어버릴 것 같았다. 약 기운에 몽롱한 잠을 자고 일어난 남자아이는 말이 별로 없었다.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절대로 입을 열지 않았고 말을 걸어도 어딘가 고장 난 기계처럼 이야기를 재대로 이어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밤에는 상황이 달랐다. 남자아이는 매일 해가 지는 밤만 되면 엄마를 찾아 방안을 헤집고 다녔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측은하고 안쓰러워 보였지만 밤새도록 울어 되는 바람에 여자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 있었다. 어젯밤도 역시 남자아이는 시끄럽게 울어 됐고 여자는 남자아이를 방에서 쫒아내며 외쳤다.
“너희 엄마는 벌써 죽었어!”
여자의 외침에 남자아이는 울음을 그치더니 멍한 표정으로 여자에게 되물었다.
“우리, 엄마, 죽었어?”
여자는 그렇다고 답해주었다. 남자아이는 불안한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럼, 아빠는?”
여자는 모두 다 죽었다고 말했다. 한 달 동안 도시를 샅샅이 뒤졌지만 이 남자아이외의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이 도시에 있던 사람 들은 모두 다 죽었다. 여자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여자의 대답을 들은 남자아이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그리곤 천천히 몸을 돌려 거실의 소파에 몸을 뉘었다. 여자는 모처럼만에 조용해진 방안에서 태아처럼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남자아이마저 죽어버렸다. 이제 정말 모두가 죽어버렸다. 언젠간 자신도 이렇게 죽을 것이다. 그게 두렵지는 않았다. 다만 그때까지 혼자서만 살아야 한다는 게 조금 두려울 뿐이었다.
여자는 태양의 직사광선을 받아 아지랑이가 피어 올라오는 아스팔트를 터벅터벅 걸어갔다. 전신이 몽롱했다. 익숙하지만 낮선 세계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마치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엘리스 같았다. 여자는 고개를 들어 언덕을 바라보았다. 반쯤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언덕 위에 자리한 큰 병원이 보였다. 처음으로 도시에 바이러스가 돌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러자 처리할 시체가 많아진 병원 측은 병원 옆에 임시 구덩이를 만들고 그곳에 시체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비인도적인 행위라고 항의하던 사람들도 며칠이 지나자 길거리에 널브러진 시체를 병원으로 가져와 구덩이 속으로 던져 넣었다. 그렇게 시작된 임시 구덩이는 사람들의 무언의 약속이 되어 임시 무덤 역을 하고 있었다. 여자도 이 남자아이의 시체를 그곳에 버리기 위해 힘든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어쩌면 이 남자아이가 찾던 부모님도 그곳에 버려져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창이 모두 깨진 편의점의 모퉁이를 돌았을 때, 여자는 순간 자신의 몸이 뒤집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여자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이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깨질 것 같이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겨우 몸을 일으킨 여자는 충격에 날아간 신발을 주워 들며 편의점 모퉁이를 바라보았다. 다 파헤쳐진 보도블록 사이로 수도관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딱 발목이 걸리기 좋은 높이인데다가 모퉁이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았던 게 문제였다. 여자는 콘크리트 바닥에 긁혀 피가 흐르는 팔꿈치를 입고 있던 옷으로 대충 닦고 흙먼지를 털어냈다. 그리고 여자보다 더 멀리 날아가 버린 남자아이를 바라보았다. 남자아이는 기묘한 모습으로 뒤틀린 채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죽어버린 시체라고는 하지만 팔과 다리 그리고 목까지 제멋대로 돌아가 버린 그 모습이 보기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여자는 그 모습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마치 폐허 속에 피어난 연약한 꽃 같았다. 드디어 자신도 미쳐버린 게로구나. 라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남자아이의 시체를 다시 동여맸다. 팔다리가 꺾인 남자아이의 몸은 조금 전보다 더 무거워져 있었다. 여자는 마치 그 무게가 남자아이의 아픔을 대신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때문에 여자는 조금 더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언덕을 올랐다.
도시가 폐허가 된 뒤 처음으로 마주한 병원은 음산하기 그지없었다. 창문마다 뾰족하게 깨어진 유리창들은 거대한 괴수의 이빨 같았고 그 너머로 보이는 끝없는 어둠은 당장이라도 여자를 빨아들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자는 그러한 환상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병원의 풍경을 잠시 응시하던 여자는 금세 발걸음을 옮겼다. 구덩이는 병원의 후문 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병원을 곧장 가로질러 가는 게 빨랐다. 여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병원의 정문을 통과했다. 병원 내부 역시 외부와 다를 게 없었다. 모든 게 부서지고 깨지고 금이 간 세상. 지구의 축소판과도 같았다. 여자는 병원 안의 어떠한 곳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후문으로 향했다. 밝은 빛이 세어 들어오는 병원의 후문을 통과하는 순간 여자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수 백, 아니 수 천 송이의 꽃이 있었다. 모든 것이 파괴되어버린 세상의 한 가운데. 사람의 꽃이 피어있었다. 여자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움직여 꽃 더미 속에 자신이 가져온 또 다른 꽃 한 송이를 던져 넣었다. 꽃다발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뭔가가 부족했다. 이 꽃다발에는 화려함이 없었다. 안개꽃만이 가득한 그런 느낌이었다. 뭔가 강렬한 장미 같은 꽃이 필요했다. 여자는 주머니 속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평소 비상시에 유용하게 사용하는 흔하디흔한 일회용 라이터였다. 여자는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서서히 타기 시작하는 장미꽃 같은 그 불꽃을 안개꽃다발 속으로 집어 던졌다. 불꽃은 옷에서 옷으로 천천히 번져나갔고 어느덧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메케한 연기 때문인지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갑작스럽게 불어온 바람이 타다 남은 검은 재들이 하늘 높게 흩날렸다. 여자는 천국이 있다면 그들이 이대로 날아가 그곳에 닿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렇게 여자는 붉게 타는 불꽃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

배가 고팠다.
여자는 습관적으로 부엌으로 걸어가 선반을 열었다. 선반은 텅 비어있었다. 그제야 먹을게 떨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고개를 돌려 식탁을 바라보았다. 어제 먹다 남은 바게트 반 토막이 곰팡이를 잔뜩 끌어안은 채 자리하고 있었다. 남자아이의 얼굴이 생각났다. 하지만 이내 쓸 때 없는 감상일 뿐이란 걸 깨닫고 남은 바게트를 집어 들었다. 어차피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여자는 들고 있던 바게트를 크게 한입 베어 물고 꾸역꾸역 씹어 삼켰다. 입맛이 썼다. 베어 물고 씹는 운동을 반복했다. 생존을 위한 발악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생존하기 위해선 더 많은 식량이 필요했다. 여자는 마지막 바게트 조각을 씹어 삼키고 창문을 열었다. 날은 다행히도 화창했다. 여자는 어제 태워버린 외투를 대신할 옷을 꺼내어 걸쳐 입었다. 이것으로 나갈 준비는 끝났다. 여자는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오늘도 도시는 여전히 망가져있었다. 다 깨지고 부서진 건물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으스스하고 괴기했다. 여자는 그런 건물들을 보며 차라리 유령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적어도 외롭지는 않을 테니깐. 하지만 도시는 고요한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여자는 대형 쇼핑마트를 지나쳐 민가가 밀집한 주택단지로 들어섰다. 식료품을 팔던 대형마트나 마켓 등은 폭도들로 인해 모든 것을 강탈당했다. 때문에 오히려 비어버린 민가의 부엌이나 창고를 뒤지는 게 더 현명한 판단이었다. 여자는 딱히 크지도 작지도 않은 한 민가를 선택했다. 경험상 이런 곳이 건질게 많았다. 여자가 손잡이를 잡았다. 기분 나쁜 금속음이 울려 퍼지고 손잡이는 쉽게 돌아갔다. 유리창을 깨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살짝 안도감을 느끼며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은 의외로 깨끗했다. 여자는 옅게 쌓인 먼지를 걷어내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거실이었다. 약간 작지만 아늑해 보이는 소파와 작은 원탁이 놓인 평범한 가정의 거실이었다. 아마 한 달 전 만해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주인 없이 버려진 쓸쓸한 공간일 뿐이었다. 여자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부엌으로 향했다. 평범한 디자인의 냉장고가 눈에 띄었다. 습관적으로 냉장고로 손을 뻗다가 멈추었다. 도시에 전기가 끊어진지도 벌써 2주가 지났을 것이다. 냉장고 안의 음식들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는 상상하기도 하기 싫었다. 여자는 시선을 돌려 식량이 있을 만 한 곳을 찾았다. 다행이 성과는 있었다. 싱크대 위의 선반에서 참치 통조림과 후추가 담긴 조미료 통을 찾은 것이다. 여자는 참치 통조림과 후추를 주머니 속에 넣었다. 주머니가 묵직해지니 왠지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들만으론 부족했다. 좀 더 많은 식량이 필요했다. 굶주린 짐승처럼 부엌을 방황하던 여자의 눈에 평범한 문 하나가 눈에 띄었다. 창고라는 노란색 글자가 인상적인 문이었다. 여자는 조심스럽게 문으로 다가갔다. 문 틈새로 코를 가져가 보았다. 역한 냄새가 풍겼다. 무언가가 썩어가는 냄새였다. 이 문 너머가 정말 창고가 맞다면 식량이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물론 부패가 진행된 식량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보존식품들이 있다면 말이 다를 것이다. 여자는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돌아가지 않는 걸 보니 잠겨 있는 듯 했다. 이 집 어딘가에 열쇠가 있을 테지만 찾을 필요는 없었다. 여자는 손잡이를 있는 힘껏 발로 찼다. 손잡이는 기묘한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여자는 닫혀있던 문을 가볍게 밀어 제치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여자의 생각대로 방안은 식량으로 가득 차 있었다. 라면 같은 보존 식품뿐만 아니라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생수와 기타 생필품도 있었다. 아마 바이러스가 번지기 시작할 때 잔뜩 사거나 훔친 물건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한 게 있었다. 창고안의 식량들은 모두 보존 식품이었다. 부패가 진행된 식량은 하나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이 역한 냄새는 어디서 나는 것일까. 해답은 금방 나왔다. 여자는 자신의 눈높이보다 조금 높게 매달려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부패 상태를 보아하니 목을 멘지는 2주 정도 된 것 같았다.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고 바닥에 구르고 있는 의자로 봐서는 자살이라는 답 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이 끝난 여자의 머릿속에 의문이 밀려들었다.
대체 왜? 바이러스가 인류를 습격한 이래로 인류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는 식량 문제였다. 특히나 식량을 생산해 낼 수 없는 도시에서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하지만 창고에 쌓여있는 보존 식품은 적어도 반년은 넘게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즉, 이 남자는 반 년 간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무엇이 이 남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것일까. 생각에 잠겨있던 여자는 남자의 발밑에 무엇인가가 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고 바닥에 마구 잡이로 흩어져 있는 그것은 사진이었다. 여자는 가장 가까운 곳에 떨어져 있는 사진을 집어 들어다. 부부로 보이는 젊은 남녀와 한 여자아이가 행복한 듯 미소를 짓고 있는 그런 사진이었다. 이게 이유구나.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진 속 여자아이의 모습이 어제 죽은 남자아이의 모습과 겹쳐보였다. 여자는 사진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식량을 바라보았다. 아직 여자는 죽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기 위해선 식량이 필요했다. 이 남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많은 식량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을 하자 마음이 든든했다. 여자는 들 수 있을 만큼의 라면과 생수를 박스 안에 담았다. 박스를 들고 밖을 나가기 전에 여자는 목을 맨 남자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 뒤 문을 닫았다. 왠지 문 뒤에서 여자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오늘은 수확이 좋았다. 식량이 가득 든 박스가 조금 무겁긴 했지만 오랜만에 배불리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 여자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햇빛에 과열된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텅 빈 도로 위를 걷고 있자니 배가 약간 출출해졌다. 여자는 문득 선반 안에서 찾은 참치 통조림이 생각났다. 아직 주머니 속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통조림을 생각하자니 배가 더 고파지는 것 같았다. 여자는 근처 폐건물이 만들어준 그늘 아래 박스를 내려놓고 주머니 속에서 통조림을 꺼냈다. 함께 있던 후추 통은 반대편 주머니 속에 넣었다. 날카로운 통조림 뚜껑에 손가락을 베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통조림을 개봉했다. 깡통 속에 밀봉되어 있던 특유의 참치 기름 냄새가 사방에 퍼졌다.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키게 만드는 냄새였다. 여자는 손가락을 이용해 참치를 모두 먹어 치웠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기의 맛에 마지막 건더기와 기름까지 핥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부족한 것 같았다. 여자는 비어버린 통조림 캔을 아무데나 집어던지고 그늘에 몸을 뉘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였다. 여자는 매일 하루가 이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족감과 약간의 포만감에 빠져있건 그녀가 기분 나쁜 금속음을 들은 것은 그때였다. 여자는 뉘었던 몸을 일으켜 소리의 정체를 확인했다.
들개였다. 여자가 아무렇게나 집어던진 빈 참치 통조림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찾아온 것 같았다. 통조림을 미친 듯이 핥고 있는 걸 보면 굶주린 개가 틀림없었다. 왠지 예감이 안 좋았다. 여자는 자리를 피하기 위해 조심스레 움직였다. 하지만 여자의 움직임을 눈치 챈 것인지 들개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여자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여자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위험하다는 걸 깨달았다. 통조림을 손으로 먹느라 조금씩 흘린 건더기나 기름들이 여자의 옷과 손에 묻어있었다. 굶주린 개의 후각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들개는 여자가 미처 대처할 여유도 주지 않고 달려들었다. 여자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기에 여자는 눈을 감는 시간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그 덕분에 그 순간 일어난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볼 수 있었다. 들개가 여자에게 달려드는 순간 무엇인가가 날아왔다. 공사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부서진 건물의 철근이었다. 철근은 큰 반원을 그리더니 들개의 몸통 측면 부분을 강타했다. 갑작스런 공격을 받은 들개는 꼬리를 내리고 폐건물들 사이로 도망가 버렸다. 여자는 고개를 돌려 철근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죽어버린 시체도 꿈속의 환상도 아닌 진짜 살아있는 남자가 있었다. 여자는 아직 좀 허기지다고 생각했다.

***

물이 끓었다.
여자는 냄비 속에 라면 3개를 넣고 스프를 뿌렸다. 라면스프가 촉매제 역할을 하는 바람에 물이 심한 거품을 일으키며 끓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맛있는 냄새도 방안 가득히 풍겼다. 여자는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음식이었다. 여자는 식탁에 앉아있는 남자를 힐끔 쳐다보았다.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식탁 앞에 앉아있었다. 남자는 어제 죽은 남자 아이 만큼이나 말이 없었다. 들개의 위협으로부터 여자를 구해줬을 때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고갯짓 한번으로 받아주었다. 종말이 찾아온 뒤 사람들의 대화도 종말이 찾아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자는 부자연스러운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어디서 생활하셨어요?”
여자가 살고 있는 이곳은 생각보다 작은 도시였다. 여자는 지난 한 달 간 이 도시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하지만 여자가 찾아낸 생존자는 어제 죽은 남자아이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자는 이 도시의 생존자는 자기 혼자 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늘 이 남자가 나타났다. 어쩌면 또 다른 생존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밀려왔다.
“다른 지역에서 왔어. 그곳에 사람들이 모두 죽어버렸거든.”
남자가 갈라진 목소리로 답을 해주었다. 남자의 답에 여자는 조금 실망했지만 남자가 대답을 해주었다는 사실에 더 신이 났다. 여자는 지금껏 마음속에 쌓아 두었던 질문들을 뱉어냈다.
“진짜요? 어디서 오셨어요? 거긴 어떤 곳이었어요?”
여자의 질문 공세에 남자는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꽤 먼 곳에서 왔어. 바다가 있던 곳이거든.”
여자가 있는 이 도시는 내륙지방에 위치하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곳까지 나가려면 자동차를 이용해도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이었다. 여자는 놀란 듯 손뼉을 쳤다.
“그럼 대개 먼 곳에서 왔네요! 어떻게 오셨어요? 혹시 걸어서?”
여자는 싱크대 위에 놓여있는 수저통에서 젓가락을 꺼내어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남자는 젓가락을 받아 들었다.
“버려진 차를 타고 왔어. 기름이 다 떨어지면 다른 차로 갈아타고 하면서. 가끔 걷기도 했지만.”
남자가 그렇게 말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지쳐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매력적인 미소라고 생각했다. 여자는 젓가락으로 라면을 휘저어 면이 익었는지를 확인했다. 적당히 잘 익은 것 같았다. 여자는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불을 끄고 냄비를 식탁으로 옮겼다.
“일단 먹으면서 이야기 할까요?”
여자의 제안에 남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먹을게.”
여자가 젓가락을 드는 것을 본 뒤 남자도 젓가락을 들었다. 라면 한 젓가락을 입속에 밀어 넣은 여자는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에 끊인 라면은 물의 양이 많아 싱거웠다. 혼자만 끓여 먹었다면 별로 상관이 없을 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여자는 힐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별 문제 없다는 듯 묵묵히 라면을 먹고 있었다. 여자는 그런 남자의 배려가 고맙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묵묵히 냄비의 내용물을 비우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또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남자는 자기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여자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조금 싱거웠죠?”
여자의 멋쩍은 미소에 남자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음식이었는걸. 잘 먹었어. 그런데 식량들은 어디서 구한거야?”
남자가 부엌 한 구석에 놓여있는 박스를 가리켰다. 목을 맨 남자의 집에서 가져온 식량이 든 박스였다. 여자는 남자에게 목을 맨 남자이야기를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간단히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민가에서 식량이 비축된 창고를 찾았거든요. 운이 좀 좋았던 것 같네요.”
여자의 말에 남자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운이 좋았다. 라.”
남자의 분위기가 변했음을 눈치 챈 여자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세요?”
“아니, 그냥.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 계속 살아남은 우리가 운이 좋은 걸까. 편안하게 눈을 감은 사람들이 운이 좋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남자의 말에 여자는 말문이 막혔다. 지옥 같은 삶과 천국 같은 죽음. 무척이나 난해한 문제였다. 하지만 여자는 단호하게 답을 내렸다.
“당연히 살아있는 우리들이죠.”
“어째서지?”
여자의 단호한 태도에 남자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마치 시험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빠졌지만 드러내놓고 표현하진 않았다.
“죽으면 끝이잖아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 말이에요. 하지만 살아있으면 뭐든 할 수 있잖아요. 뭔가를 할 수 있다면 뭔가가 변하겠죠. 그럼 지옥 같은 세상도 언젠간 천국으로 변할지 모르잖아요.”
공상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인류는 문명을 잃었다. 그것은 인류가 쌓아올린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잃은 인류가 다시 행복해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까. 어쩌면 여자가 죽는 날까지 그런 날이 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믿고 싶었다. 이 세계 어딘가에 아직 문명이 살아있는 곳이 있고 또 그들이 생존자들을 찾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인류는 다시 무사히 종을 보존해 나갈 거라고 말이다. 그 믿음이야 말로 여자가 지금껏 살아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남자는 여자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적이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왠지 모르게 공허한 목소리였다. 남자는 느릿한 움직임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손때가 잔뜩 묻은 식기들과 먼지와 기름이 뒤엉켜 미관을 해치는 가스레인지가 눈에 들어왔다. 모든 게 절박해보였다. 여자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계속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보이지도 않는 희망만을 믿으면서.
“그래서 이렇게 필사적으로 살고 있었구나.”
남자는 왠지 웃음이 나왔다. 여자는 진실을 모르고 있다. 하지만 남자는 알고 있다. 그 작은 차이가 사람을 이렇게 다르게 만드는구나. 남자는 터져 나올 것 같은 웃음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는 없어.”
남자의 뜬금없는 말에 여자는 무슨 소리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숨을 삼키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전에도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다. 굶주린 들개와 마주쳤을 때의 기분이었다. 여자는 본능적으로 남자를 경계했다.
“혹시 너는 심장 뛰는 소리를 들어 본적이 있니?”
남자의 뜬금없는 질문에 여자는 조금 당황하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숨소리는 들어보았지만 심장이 뛰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그저 온몸을 순환하는 혈액의 움직임이 만든 맥박소리만을 들었을 뿐이다. 여자의 답에 남자는 만족한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여자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지금도 들을 수 있어. 너의 심장 소리를.”
여자는 남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남자의 말을 들었다고 해도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듣는 이를 배려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아. 그냥 당연한 것처럼 그 소리가 들렸어.”
남자는 싱크대 위에 걸터앉았다. 손 때 묻은 식기가 덜그럭거렸다. 여자는 그 소리가 왠지 남자의 심장에서 들리는 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동안 그 소리가 무엇인지 몰라서 한참을 헤맸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소리가 가끔은 빠르게, 가끔은 느리게, 또는 멈추거나 다시 들리거나 하면서 나의 귀를 괴롭혔지.”
남자는 자신의 손을 권총 모양으로 만든 뒤 관자놀이에 갖다 댔다. 얼핏 보면 미친 사람 같았지만 남자의 목소리는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도 그 소리의 정체를 알게 됐어. 그건 심장소리였지. 전 세계의 모든 인간의 빠르게 혹은 느리게, 때로는 멈추거나 새로 뛰거나 하는 삶의 소리가 내 귀를 통해서 들렸어.”
예전이었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여자는 쉽게 부정하지 못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자체가 지금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과거의 세계가 비현실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부터 심장소리들이 하나 둘씩 멈추기 시작했어. 처음엔 하나, 다음엔 둘, 그 다음엔 넷. 세계를 가득 채우던 심장의 소리는 단 한 달 만에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줄어들었지. 덕분에 난 지금 이 세계에 몇 명의 인간이 살아있는지 알 수 있어.”
남자의 말에 여자는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세계에 남은 인류의 수를 이 남자는 알 수 있다고 했다. 생존자의 수를 알 수 있다는 소리였다. 과연 인류에게 몇이나 되는 희망이 남아 있을까. 여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 세계엔 몇 명의 인류가 남았나요?”
여자의 질문에 남자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손가락의 수는.
두 개였다.
여자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인류는 단 둘만 남았다. 결국 지금 이곳에 있는 두 명의 인류를 제외한 모든 인류가 죽었다는 말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 남자는 미친 남자이고 따라서 이 남자가 한 말은 모두 헛소리라고 생각해도 됐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남자의 말은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자신도 마음 속 한 구석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깐. 모두가 죽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깐. 덕분에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반박할 힘 따위는 없었다. 보이는 대로 믿는 게 편했다. 그게 허무할 뿐이었다.
“생각보단 놀라지 않은 눈친데?”
남자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그제야 자신이 느끼던 불안감이 어디서부터 생겨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남자의 태도 때문이었다. 여자를 관찰하는 것 같은 남자의 태도가 여자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는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렴풋이 그렇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거든요. 오히려 둘이나 남았다는 게 더 놀랍지 않나요?”
여자는 남자가 말한 진실에 대한 감상을 솔직하게 말했다. 둘이나 남았다. 그것도 젊은 남녀가 같은 장소에 같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아직 인류에게 희망이 있다는 뜻이 아닌가. 서로에 대한 감정이 어떠하든 인류라는 종을 보존한다는 면에선 아주 긍정적인 상황이었다.
“그래. 둘이나 남았지. 그게 문제라는 거야.”
남자가 걸터 앉아있던 싱크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여자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자는 남자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경계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남자도 여자를 향한 걸음을 멈췄다. 여자와 남자의 미묘한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방금 전에도 말했잖아. 너의 그 질기디 질긴 삶의 소리가 나의 뇌를 괴롭힌다고.”
남자는 또 다시 손을 권총모양으로 만든 뒤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그 손에는 중간 크기의 부엌칼이 들려있었다. 여자는 그제야 남자가 한 말의 의도를 깨달았다. 여자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남자는 아마 이 가슴 속에서 요동치는 심장의 소리를 멈추려고 하는 것이다.
“안돼요.”
여자는 이런 상황에도 자신의 목소리가 침착하다는 사실에 약간 놀랐다. 여자의 반응에 남자도 조금 놀란 눈치였다.
“뭐라고?”
“안된다고요. 나와 당신은 이제 단 두 명 만 남은 인류에요. 저나 당신이 죽으면 인류란 종은 멸종하고 만다고요. 그깟 심장소리가 뭐라고 자신의 종을 멸하려고 하나요! 이해할 수가 없어요!”
여자의 외침에 남자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당연히 이해할 수 없겠지. 네 귀에는 안 들리니깐 그깟 심장소리라고 할 수 있는 거야! 인간이란 동물을 살리기 위해 쉴 새 없이 혈액을 순환시키는 심장의 박동소리를 들어 본적이나 있어? 난 그 소리 때문에 단 한 순간도 편히 잠들어 본적도 없어! 뜬 눈으로 밤을 세며 자신의 귀를 쥐어뜯고 싶어 미치도록 발광해 본 적이 있냐고! 난 이제 좀 편해지고 싶어. 그러기 위해선 뭐든 할 거야. 네 심장에 이 칼을 꽂아 넣는 일까지도.”
여자는 묵묵히 남자가 들고 있는 부엌칼을 바라보았다. 칼을 뒤고 있는 손은 과도한 힘이 들어갔는지 검붉은 핏줄이 서있었다.
“이기적인 사람이네요.”
여자가 다시 침착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덕분에 남자도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래. 난 이기적인 사람이야. 아니, 인간은 다 이기적인 동물이야. 종의 보존? 웃기는 소리하지 마!”
남자의 외침을 조용히 듣고 있던 여자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에 입을 열었다.
“살고 싶어요.”
여자의 대답에 남자는 조금 놀란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죽고 싶지 않아요.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왜 이렇게 악착같이 살아왔는데요. 모든 생명이 느끼는 본능이잖아요. 살고 싶단 말이에요.”
여자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 내렸다. 남자는 여자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어려운 문제네.”
남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여자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 보폭에 맞춰 여자도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둘 중 한 명은 원하는 바를 포기해야 하잖아.”
남자가 또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여자도 같이 한걸음을 물러서다 자신의 주머니에 무언가가 걸리는 것을 느꼈다. 여자는 조심스레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다행히 남자는 그런 여자의 행동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난 이기적인 사람이거든.
남자가 당장이라도 여자를 찌를 것처럼 부엌칼을 치켜들었다. 여자는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후추가 들어있는 조미료 통이었다.
“당신 말이 맞네요. 인간은 이기적이예요.”
여자는 남자를 향해 후추 통을 집어 던졌다. 갑작스런 여자의 행동에 남자는 후추 통을 받아쳐 버렸고 뚜껑이 열린 후추 통은 남자의 얼굴에 후추를 흩뿌렸다. 눈과 코에 후추가 들어간 남자는 괴로운 듯 콜록거렸고 그 틈을 노려 여자는 현관문을 통해 집밖으로 나왔다. 도시는 늦은 오후가 되어 서서히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여자는 도시를 무작정 달렸다. 목적지 따위는 없었다. 오직 남자에게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더 이상 숨이 차서 달리지 못할 정도로 달린 여자는 근처 빈 건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온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어째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걸까. 여자는 그냥 살고 싶었다. 다들 바이러스로 죽어가도, 굶주림으로 죽어가도 여자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살고 싶었기 때문에. 살아서 웃고 싶었기 때문에 여자는 오늘날까지 악착같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손으로 틀어막은 입에선 신음 같은 오열이 계속해서 새어나왔다. 그때 여자의 뒤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여자는 급히 몸을 돌렸다. 볼이 뜨거웠다. 순간적인 상황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여자는 멍한 눈으로 자신의 뺨을 스친 부엌칼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여자는 남자를 따돌렸다고 생각했었다. 후추로 인해 정신없는 틈을 타 집을 빠져 나왔다. 이곳 지리 역시 남자보다 여자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려운 골목만을 노려 도망쳐왔다. 그런데 어떻게 남자는 전속력으로 도망친 여자의 뒤에 숨 하나 흩트리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여자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건물 밖으로 뛰어 나갔다. 남자는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여자를 따라 건물을 나왔다.
“말했잖아. 난 너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설마 세계에 단 둘만 남은 너와 내가 우연히 만나게 됐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남자의 말에 여자는 경악에 찬 숨을 삼켰다. 남자는 여자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말을 즉 남자는 여자가 어디에 있건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여자가 살기 위해선 남자의 마음을 돌려놓거나 먼저 남자를 죽여야만 한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먼저 남자를 제압해야했다. 여자는 갑자기 그곳이 생각났다. 그곳이라면 남자를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자는 몸을 돌려 골목으로 들어섰다. 남자는 여자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뒤를 쫒아왔다. 아마 여자를 놀리고 있는 것 같았다. 사냥감이 된 기분이라 무서웠지만 상관없었다. 조금만 더 가면 그곳이었다. 여자는 눈앞에 보이는 편의점의 모퉁이에서 뛰어올랐다.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

여자는 재빨리 칼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아직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 남자의 목에 칼을 가져다댔다. 단지 그 행동만으로도 남자의 움직임을 멈추게 할 수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는 날카로운 날붙이를 한번 힐긋 바라보았다. 칼을 쥔 여자의 손이 조금씩 떨리긴 했지만 정확히 목의 중앙을 노리고 있었다. 어떻게 반응하든 여자의 손이 더 빠를 것이다. 남자는 냉정하게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미련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죽음으로써 찾아올 안식에 대하여 기대감이 차올랐다. 하지만 여자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답답한 마음에 먼저 입을 열었다.
“뭐하는 거야. 그대로 찔러. 더 이상 너의 그 요동치는 심장소리로 날 괴롭게 하지 말고.”
남자의 재촉에도 여자는 미동도 없이 조용히 남자를 응시했다.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는 그러라는 듯이 눈을 깜빡이며 여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여자의 눈에는 어떤 결의가 담겨있는 것 같았다.
“당신은 살고 싶지 않나요?”
여자의 질문에 남자는 크게 웃고 싶었다. 하지만 목에 겨누어진 부엌칼에 실수로 찔려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꾹 참았다. 어차피 어떻게 죽든 상관은 없었지만 여자의 질문에는 대답을 해주고 싶었다. 남자는 웃음이 만연한 얼굴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살고 싶지 않냐고? 아니, 살고 싶어.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하지만 어쩌겠어. 난 너의 심장소리를 멈추고 싶고 넌 살기 위해서 날 죽여야 하는 걸.”
“그 정도로 제 심장 소리가 듣기 싫나요? 자신의 목숨을 포기할 정도로?”
남자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때문에 부엌칼이 목에 살짝 닿아 상처가 생겼다. 그 상처에 놀란 것인지 여자가 칼을 뒤로 살짝 뺐다. 덕분에 남자와 여자의 사이에 작은 틈이 생겼다. 미묘한 거리였지만 남자에게는 큰 기회가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정도 틈이라면 먼저 움직이는 쪽이 유리했다. 남자는 조심스레 기회를 엿보았다. 하지만 남자에게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여자가 남자를 겨누고 있던 칼을 내려버렸기 때문이다. 여자는 슬픈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하는 짓이지?”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여자를 바라보았다.
“전 당신을 죽일 수 없어요.”
남자는 여자가 자신을 동정하고 있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남자는 여자의 양쪽 어깨를 부여잡고 소리쳤다.
“혼자 착한 척 하지 마! 날 위해서 네가 죽겠다고? 그럼 내가 고맙습니다. 하고 널 살려줄까 봐? 지랄하지 마. 말했잖아. 난 네 심장 소리를 멈출 수 있다면 죽을 수도 있다고!”
남자의 외침에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려놓은 부엌칼을 다시 들어 남자의 목에 가져다 댔다. 남자는 아차 싶었지만 여자에게 비웃음을 날리며 양팔을 펼쳤다.
“그래. 자, 찔러. 그래야 네가 살 수 있으니깐.”
하지만 여자는 칼을 쥔 채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혹시 여행 비둘기를 아시나요?”
“뭐?”
여자의 입에서 나온 뜻밖에 말에 남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한때 5억 마리가 넘을 정도로 많았던 흔해 빠진 새였죠.”
남자는 뜬금없는 여자의 말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남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흔해 빠진 새가 아니었다. 영원한 안식이었다. 여자를 죽이든 남자가 죽든 남자에게는 영원한 안식이 올 것이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순간에 여자는 난데없이 새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남자는 언짢은 기분을 표정으로 내보이며 답을 했다.
“그런데, 그게 뭐 어쨌는데?”
“멸종했어요.”
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1914년 9월 1일 1시 마지막으로 남았던 여행 비둘기가 갑자기 돌연사 하면서 멸종해버렸죠. 5억 마리가 넘던 그 흔한 새가 단 한 마리도 남지 않고요.”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많은 종을 보유하고 있던 동물이 멸종해 버렸다. 여자는 그 새들이 오늘날의 인류 같다고 생각했다. 한때 지구상에 가장 많은 종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단 둘만 남은 자신들 같다고…….
“또 멸종이니 뭐니 하는 소리야? 난 그런데 관심따윈 없다고.”
남자는 지겹다는 듯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팠다. 여자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남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럼, 마지막으로 남았던 여행 비둘기 한 마리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생각해 보셨나요?”
남자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해졌다. 그런 남자를 바라보던 여자는 자신이 들고 있던 칼을 남자에게 건네듯 내밀었다.
“전 당신을 죽이지 않은 게 아니에요. 죽이지 못하는 거죠. 그러니깐."
여자는 칼을 남자의 손에 쥐어주었다.
“당신이 절 죽여주세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건 무서워서 못하겠거든요.”
여자가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남자는 자신의 손에 들린 칼과 여자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정말로 죽으려고? 살고 싶다면서. 죽는 게 무섭지 않아?”
여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죽는 것 보다 저 싫은 게 제 심장 소리라고 하셨죠? 저도 그런 게 있어요. 저에게 죽음보다 더한 공포는 외로움이에요.”
여자의 답에 남자는 결심한 듯 칼을 단단히 고쳐 쥐었다.
“네가 심장이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
남자의 말에 여자는 자신의 가슴을 한번 내려다보고 다시 힘겹게 웃음을 지었다.
“세상에 심장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고요.”
여자의 답에 남자는 놀란 눈으로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가슴에도 심장이 뛰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아마 너무 가까운 곳에 있어서 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는 그것도 인정하기 싫었다. 남자는 칼을 치켜들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남자는 여자의 심장에 칼을 꽂아 넣었다. 여자는 힘없이 쓰러졌다. 여자의 심장소리가 점차 줄어들다 이윽고 멈췄다. 세계에 정적이 찾아왔다. 남자가 그토록 바라던 조용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기쁘지가 않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남자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심장이 뛰는 감각만은 분명히 느껴졌다. 세차게 뛰는 심장의 박동소리를 가만히 느끼던 남자는 여자의 가슴에 박힌 칼을 뽑아 들었다.
“심장이 없는 사람은 없다. 라고 했지?”
남자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하늘과 땅의 경계선에 걸려있는 태양이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남자는 조용해진 세상 속에서 처음으로 편안한 잠을 자고 싶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 여자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네가 옳았어.”
남자가 눈을 감았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1317 단편 시메트리(symmetry) 술펀하루 2011.10.24 0
1316 단편 채취선 천공의도너츠 2011.10.26 0
1315 단편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김진영 2011.11.02 0
단편 한때 그곳에 심장이 뛰었다. 쿼츠군 2011.11.07 0
1313 단편 [엽편]해를 지키는 별1 먼지비 2011.11.10 0
1312 단편 Knights of Cydonia 빈군 2011.11.11 0
1311 단편 [엽편] 인어공주 황당무계 2011.11.13 0
1310 단편 [엽편]밤을 태우는 별 먼지비 2011.11.13 0
1309 단편 아내1 강민수 2011.11.14 0
1308 단편 열꽃 김진영 2011.11.15 0
1307 단편 회한의 궁정 먼지비 2011.11.15 0
1306 단편 아이러니 쿼츠군 2011.11.17 0
1305 단편 배달의 기수, 강필중 빈군 2011.11.17 0
1304 단편 가치의 기준 이정도 2011.11.20 0
1303 중편 하마드리아스 -상-1 권담 2011.11.20 0
1302 중편 하마드리아스 -중- 권담 2011.11.20 0
1301 중편 하마드리아스 -하- 권담 2011.11.21 0
1300 단편 [해외단편] 미아 구자언 2011.11.22 0
1299 단편 게이트에 이르는 이치 윤소아 2011.11.24 0
1298 단편 안녕, 하루1 너구리맛우동 2011.12.01 0
Prev 1 ... 77 78 79 80 81 82 83 84 85 86 ... 14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