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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꽃향기

2004.06.06 21:3706.06

가엾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 그 꽃은 가장 좋은 향기를 가졌는데도, 겉보기엔 조금도 화려하지 않아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측은한 눈으로 그걸 자주 돌아봤는데, 어느 순간 그것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당황했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은 계속 향기를 풍기고 있어,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홀린 듯, 향기를 찾는다, 꽃들을 헤치며 향기를 찾는다.

화려하게 꾸며지진 않았지만, 그것은 청순하다. 머리가 어지러운 향수도, 눈부신 보석이 없이도 아름답다.

화려한 꽃들의 인사를 넘기며 찾아간 그곳은 음악소리가 멀리 들리는 발코니였다. 그것은 난간에 기대어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것에서 풍기는 향기가 충만해서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달과 별과 그리고 나무들, 흐르는 강이 멀리 보이고 잘 꾸며진 정원이 아래 조명으로 반짝인다.

그 모습은 내게 깊이 각인되어 나는, 나도 모르게 다가가 그 꽃에게 말을 걸고 말았다. 그것은 편안한 미소로 날 맞이했다. 즐거운 대화였다. 그 꽃은 가식이 없었다. 그러나 예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마치, 동화 속의 왕자와 공주가 되어서, 꿈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아니, 이건 꿈  보다도 달콤하다. 나는 무례하게도 그 꽃의 손을 잡았다. 앞으로도 인연을 계속할 수 있겠느냐고, 친구가 되어줄 수 있겠느냐고.

그 꽃, 그녀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래서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만한 무언가가 내 몸에서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 뒤 우리는 훗날을 기약하며 헤어졌고,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그림을 그렸다. 각인된, 생생히 떠오르는 그 모습을 그림으로 담아 보려했다.

그럴 수 없었다. 몇 번이고, 수십 년이고 그려도 그것은 그녀일 수 없었다. 그 청초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렇기에 미소가 아름다운 그녀는 그림으로 담기에는 너무나도 벅찼다. 표현할 수 없었다.

다만, 최대한 비슷하게나마 그 꽃의 이미지를 실을 수 있었지만, 나는 곧 실소하고 말았다.

그것은 향기가 없었다.
어처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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