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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진정한 왕

2017.12.14 05:2912.14

진정한 왕

 

 

 

 

*아직도 군주제에 미련 가진 사람들이 있는 건 아주 가끔씩 진정한 왕이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옷을 잘 차려 입은 유대인의 대표가 의자 위에 높이 앉은 왕에게 무릎을 꿇었다. 유대인 대표는 발가벗은 채 가혹한 노동을 하던 자신과 동포들을 자유롭게 해준 왕에게 그렇게 경의를 표했다.

 

, 키루스 2세는 대표의 말을 경청한 뒤 말했다.

 

짐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군주를 세우는 것까지 용납하지는 않겠다. 짐은 페르시아의 초대 왕 중 왕이기 때문이다.”

 

대표는 조용히 물러났다. 대표의 마음속엔 키루스에 대한 존경이 피어올랐다. 키루스는 바빌론을 무혈점령한 뒤 유대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으며 그들의 재산도 찾아주었다. 유대인들은 고향 가나안에서 성전을 재건하게까지 한 키루스를 메시아 고레스로 기리게 되지만 이는 나중 일이다.

 

키루스는 각 민족들에게 자치권과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고, 전쟁 때의 약탈과 파괴를 금했으며, 노예제를 폐지하고, 궁궐을 짓는 모든 인부에게 임금을 지불하며, 국가의 기반 시설들을 공사했다.

 

적국이었다가 지금은 멸망시킨 메디아와 바빌로니아부터도 존경을 받게 된 키루스는 어느 날 밤 침대에 누워 세상의 지평에 관해 생각했다.

 

키루스가 믿었던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에서 최고신 아후라 마즈다는 사후세계에 나쁜 일을 한 자를 벌한다고 했다. 사후세계가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는 불가지론이 이성적인 태도인 이상 양쪽 모두를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었으나 그 가르침만으로 키루스는 만족할 수 없었다.

 

설령 저승과 아후라 마즈다가 있다한들 지옥에서 불행과 고통을 감내하는 걸 작정한다면 무엇으로도 뜻을 꺾을 수 없고 오직 자신의 마음대로 악을 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키루스의 성정은 본디 담대하고 선량했으되 이 생각은 오직 키루스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에게만 통할 것이다. 키루스는 자신이 진정한 왕이란 걸 알고 있었다.

 

키루스는 이불을 만졌다.

 

세상 삼라만상이 모두 있음들 이었다. 없음은 창조할 수 없고 없앨 수 없다. 세상에 오직 하나의 의지만이 있고 그가 결심하면 범우주적 자살이 가능할 터였으며 이는 없음으로 가는 길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아후라 마즈다는 없음에 대적하기 위해 피조물들을 이토록 많이 만드신 것은 아닐까 하고 키루스는 생각했다. 그렇기에 신이 있는데 그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세상과 신은 자살하여 사라질 수 있기에 신이 있다면 사랑일 것이라 볼 수 있었다.

 

키루스는 신이 없을 경우에도 서로 도울 수 있음을 생각했다.

 

키루스는 뒤척였다. 키루스는 수만에 이르는 자신의 군단의 일개 병사 이름까지 모조리 외우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했고 사랑 받아 마땅했다. 그들 한 명 한 명은 키루스에게 있어 인간이라는 위대한 종족의 한 총아인 있음이었고 서로가 서로를 도와 보태면서 나아가는 이들이었다. 키루스는 자신의 목숨도 걸면서 대제국을 건설했다.

 

사람은 되도록 많이 나타나 서로 돕고 살아야 험난한 세상에서 버틸 수 있다고 키루스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키루스는 이미 페르시아인들에게 아버지라 불렸고 생물학적 의미에서도 아버지였으며 수많은 사랑, 배려, 관용을 베풀었기에 그리 되었다. 키루스는 먼 훗날 유대인들이 경전에 남길 말을 생각했다.

 

신은 인간에게 명령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차라.’

 

 

[2017.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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