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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저번에 올린 '월세가 저렴한 방'이 분량 미달로 심사 제외
되었었네요. A4 5장 정도면 되는 줄 알고 업로드 했었거든요...심사평을 받고
싶어 내용 보강해서 다시 올려 봅니다. 많은 분들로 부터 평을 받고 다음 작품에도 반영하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월세가 저렴한 방

“이 방은 어떤가요?”
부동산 아저씨가 소개해 준 방을 본 첫 소감은 역시 좁다는 것이었다. 뭐 어차피 넓고 전망 좋은 방 따위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니 별로 상관없는 일이긴 했다. 요즘 서울에서 이 정도 돈으로 이만한 방 한 칸이라도 구할 수 있는 게 어디 인가. 거기다 이 방은 좁긴 해도 깔끔해 보이지 않는가.
“좋네요.”
나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그렇지요? 자 그럼 이 방으로 결정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네.”
별 불만은 없었길래 난 그렇게 대답했다.
“아 참. 이 방에 들어오신다면 알고 계셔야 할 게 하나 있는데요.”
부동산 아저씨가 그 커다란 얼굴에 웃음을 한 가득 지으며 말했다. 무언가 숨기는 것을 커버하려는 듯한 웃음. 나는 그냥 난방이 좀 안 된다던가 변기가 고장 났다거나 하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방이 월세가 싼 이유를 설명 드리지요. 이 방에서는 지낸 사람들은 석 달을 버티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귀신이라도 나온 답니까?”
“아니지요. 귀신은커녕 좋은 것만 나오는 집이지요.”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이 방에서는 입주자가 원하는 음식은 뭐든지 나오지요. 물론 모두 공짜입니다.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도 TV에서 얼마든지 나오고요. 수돗물, 전기 모두 공짜입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이런 말을 나한테 믿으라는 건가? 하지만 이 부동산 아저씨의 표정은 진지했다.
“아저씨 혹시 어디 안 좋은 데라도?”
“물론 믿지 못하실 겁니다. 이런 말을 믿어 달라는 것이 무리이겠지요. 하지만 하루만 살아 보시면 제 말이 전부 사실임을 알게 되실 겁니다.”
나는 그 아저씨를 다시 쳐다 보았다. 여전히 진지했다.
“그럼 아저씨 말대로 이 집이 그렇게 좋은 집이라고 칩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석 달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나요?”
“이 집의 규칙 때문이지요.”
“규칙?”
“그렇습니다. 이 집에서는 외부와의 접촉 시도가 허용 되지 않습니다. 전화기, 휴대전화, 인터넷 등 모든 것이 차단됩니다. 그리고 학생도 이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어요.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죽어버리지요.”
“그럼 석 달을 버티지 못한다는 건? 단순히 이사를 간다던가 하는 게 아니라…”
“이 방에서 나가려다 죽는 거지요”
“…멀쩡한 아저씨가 사람 바보 취급하시네.”
“정말입니다.”
나는 다시 한번 진지하게 부동산 아저씨를 위아래로 훑어 보았다. 아무리 봐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아저씨 말 믿진 못하겠지만 어쨌든 제 주머니 사정에 들어올 수 있는 집이 여기 밖에 없네요.”
“그럼 여기 계약서에 서명해 주세요.”
나는 부동산 아저씨가 내미는 펜으로 계약서에 서명을 하려고 할 때였다. 계약서가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 그런데 계약서에는 월세가 0원 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네. 사실은 월세도 공짜입니다. 애초에 공짜라고 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주변 시세 보다 약간 저렴한 가격을 공시해 놓았을 뿐이지요.”
“진짠가요?”
“그럼요.”
나는 부동산 아저씨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 보았으나 부동산 아저씨의 표정은 어디까지나
진지 그 자체였다.
“저 그럼 월세 0원으로 알고 서명 합니다.”
“물론이지요. 아 참, 이사는 언제 하실 건가요?”
“글쎄요…다음 주 금요일날 할까 생각 중이에요.”
“그럼 그 전에 가족들하고 친구분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걸 잊지 마시길.”
“계속 그러시면 저 화냅니다.”
부동산 아저씨는 한번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돌아서서 가버렸다. 난 혼자 방을 둘러보았다. 방은 좁았다. 창은 하나 밖에 없었고 딸려 있는 화장실에는 물론 욕조는 없이 변기만 있었다. 방에는 1인용 침대 하나와 TV 하나가 보였다. 낡긴 했어도 나름대로 괜찮아 보이는 침대였다. TV는 상당히 새로운 모델인 것 같았다. 검은색 몸체가 광채를 내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보았다.  편안해서 잠이 올 것 같았다.
일주일 후 나는 이사를 했다. 여전히 좁은 방이었다. 대충 이삿짐을 풀어 놓고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천장을 가만히 응시했다. 문득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좋은 일이라고는 없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겨우 대학을 졸업했더니 기다리던 것은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봉급 밖에 주지 않는 계약직이 전부였다. 일단 계약직으로라도 취직하여 경력을 쌓은 후 정규직으로 이직을 할 생각이었으나 취직했던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경력도 쌓지 못하고 다시 계약직으로 취직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일용직으로 일하시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
가셨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나니 남는 것이 없었다. 물론 결혼은 꿈도 꾸지 못했다. 사귀
던 여자 친구는 지방에 취직하여 그 쪽으로 내려가면서 자연히 헤어지게 되었다. 그전에 살던 원룸도 월세를 올려달라고 주인이 난리 치는 통에 새로운 방을 구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이 방에 누워 멍하니 천장이나 올려다보는 신세가 된 것이었다. 새삼 이 방을 소개해 준 부동산 아저씨는 머리가 좀 이상한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저씨 말이 맞는다면 내일부터는 이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겠네. 하하하. 그 아
저씨는 미리 작별 인사를 해 놓으라고 했지만 나야 뭐 어차피 연락할 사람도 없고’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하다가 그대로 침대 위에 곯아떨어져 버렸다.
깊고 어두운 길을 헤매고 있었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발 밑에 무엇이 닿는 감촉도 없었지만 걷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헤매다가 눈을 뜨니 아직 한밤중이었다. 창에서는 초승달의 눈물 같은 푸른 빛이 흘러 들었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들이켰다. 잠이 조금 깨는 듯 했다.
‘지금 잠이 깨면 안 되지. 얼른 다시 자자.’
이번에는 맥주 캔으로 손이 간다. 탁 하고 맥주 캔을 따서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빈 속에 마셔서 그런지 금방 취기가 올라왔다. 예전에는 맥주는 술도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정말 나이를 먹었나 보다.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이번에는 꿈도 꾸지 않고 잘 잤다.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뭘 할지 가만히 누워서 생각해 보았다. 딱히 할 일이 없다. 토요일이어서 출근은 안 해 도 되지만 그렇다고 누굴 만나거나 어디에 놀러 갈 예정 따윈 전혀 없었다.
‘아침이나 먹을까’
냉장고를 열어보니 어젯밤 편의점에서 산 김치와 햇반 그리고 참치 캔이 전부였다. 한숨을 한번 쉬고는 햇반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려고 하는데 문득 부동산 아저씨의 말이 생각났다.
‘이 방에서는 입주자가 원하는 음식은 뭐든지 나오지요’
나는 재미 삼아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해 보았다.
‘뜨끈한 김칫국 좀 먹었으면 좋겠다.’
어젯밤 빈 속에 맥주를 마셔서 그런지 칼칼한 김칫국 생각이 났다. 혹시나 부동산 아저씨 말대로 김칫국이 ‘뿅’ 하고 나타나는 기다려 보았으나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고 아무 냄새
도 풍기지 않았다.
‘역시…그 아저씨는 머리가 이상한 아저씨였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뒤를 돌아 보는데…식탁 위에 못 보던 냄비가 놓여 있었다. 의아하게 생각하며 뚜껑을 열어보니 시큼하면서도 구수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
‘이건?’
김칫국이었다. 김치와 두부, 콩나물이 듬뿍 들어 있어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나는 숟가락으
로 조심스럽게 김칫국을 한 숟가락 떠 먹어 보았다. 시원하면서 매콤한 국물 맛이 입안을
가득 메웠다.
‘맛있다.’
엄마가 해 준 김칫국을 먹은 게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았다. 아마 초등학교 4학년 때일 것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엄마가 집을 나간 게 그 무렵이었으니 아마 틀림없을 것이었다.
‘따뜻한 쌀밥도 있었으면’
그렇게 생각한 순간 눈 앞에 흰 쌀 밥이 김을 모락모락 내며 나타났다. 숟가락으로 떠서 먹
어 보니 햇반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맛있었다. 신선한 쌀들이 입안에서 톡톡 튀는 듯했
다. 나는 허겁지겁 김칫국과 밥을 먹어 치웠다. 배가 불러오자 퍼뜩 부동산 아저씨의 말이
생각났다.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죽어버리지요.’
먹고 싶다고 생각한 음식들이 순식간에 나타나는 것을 보니 아마 그 말도 사실일 것이었다.
‘이제 나는 이 방에서 나갈 수 없다.’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나가는 순간 죽는 거야.’
배는 더 심하게 아파왔다. 김칫국 하고 밥이 맛있어서 너무 많이 먹은 듯 했다. 나는 화장
실로 달려갔다. 변기에 앉은 나는 나 자신을 타일렀다.
‘어차피 밖에 나가도 만날 사람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잖아. 회사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계약직이고…차라리 잘 된 거야…밖에서 고생하면서 사느니..이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살자.’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니 뱃속이 한결 편해지는 듯 했다. 변기의 물을 내리고 화장실에서 나
와 TV를 켰다.
‘며칠 전 개봉한 최근 영화가 보고 싶다. 돈 없어서 극장에 못 갔었는데.’
그렇게 생각하자 마자 TV에서는 그 영화의 제목이 떴다.
‘진짜 대단하구나 이 집. 이제 맥주만 한 캔 있으면 되겠네’
다음 순간 내 오른손에는 맥주가 들려있었다. 그것도 평소에 마셔보지 못한 유럽산 고급 맥
주가.
영화는 기대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고 유명 감독이 감독을 한다고
해서 기대했었는데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기일 뿐이었다.
‘역시 바깥 세상에는 재미있는 일이라고는 없구나.’
영화를 볼 동안 맥주를 세 캔 비웠다. 슬슬 취기가 올라오는 듯 해서 그대로 자리에 누워
기분 좋은 잠을 청했다. 이토록 완벽히 보호 받는 느낌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 느껴
보았다.
‘나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어. 바깥 세상의 풍파도 남의 일일 뿐이지. 나는 여기서 완벽히
보호 받으며 살아가는 거야. 혼자서.’
잠이 몰려왔다. 스르르 잠에 빠지며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 가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눈을 떠 보니 저녁이었다. 저녁에는 스테이크가 먹고 싶었고 스테이크는 어김 없이 식탁
위에 준비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방은 설거지까지 자동이라는 점이었다. 먹고 나면
어느 순간 깨끗이 그릇들이 설거지를 마치고 가지런히 꽂혀 있고는 했다. 먼지 따위는 애초
에 방에 들어오지도 않는 다는 듯 방이 항상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는 점도 놀라웠다. 그야
말로 환상적인 주거 환경이라고 다시 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지구상의 온갖 산해 진미를 맛볼 수 있었다. 인터넷을 뒤져 안 먹어 본
맛있는 요리가 없는 지 조사한 끝에 달팽이 요리, 캐비어 등 내가 알지도 못했던 요리까지
먹을 수 있었다. 맛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역시 비싼 음식들이라고 다 맛있는 것
은 아니었다. 나에게는 탕수육하고 스테이크가 제일 맛있었다. 배를 채우고 난 후에는 TV
를 보거나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았다. 신문에는 전셋값이 사상 최고라던가 물가가 올랐다
거나 하는 암울한 뉴스로 가득했지만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런 뉴스들을 보면 내 목이 졸리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이 방에 있는 한 나는 집이나 음식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옛날 어느 철학자가  ‘군대가 전쟁을 하는 장면을 산 위에서 구경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라고 이야기 했다는데 사디스트 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전쟁터를 내려다 보며 자신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만큼 기쁜 일이 없다는 뜻이다. 지금의 내가 꼭 그런 기분이었다. 누군가는 오를 대로 오르고도 계속 오르는 물가와 전셋값에 한숨 쉬고 있겠지만 나는 이 방안에 있기만 하면 편안히 먹고 싶은 데로 먹고 자고 싶은 데로 잘 수가
있는 것이다. 아침마다 출근해서 상사의 잔소리를 들어가며 일하다가 그 날이 가기 전에 집
에 돌아올 수만 있다면 다행으로 여기는 그런 삶은 이제 영원히 안녕이다.
월요일이 왔다. 하지만 나는 출근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방 밖으로 나가는 순
간 죽을 텐데 어떻게 출근을 한단 말인가. 전화도 쓸 수 없었으므로 나는 그냥 무단 결근을
하기로 했다. 회사에서는 내가 며칠 동안 보이지 않으면 아마 그냥 해고해 버릴 것이다. 계
약직에 불과한 나를 찾으려는 노력 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조금 서글펐지만
곧 ‘그게 어때서? 나에겐 이 방이 있는데’ 라고 생각하며 넘어갔다. 그 날도 하루 종일 맛있
는 음식을 먹고 방에서 뒹굴면서 TV를 보았다. TV에서는 내가 원하기만 하면 야동도 마음
대로 볼 수 있었다. 조그만 PC화면이 아니라 대형 TV 스크린으로 보니 느낌이 확실히 달
랐다.
방 안에서 지낸 지 한 달 정도 지나자 이제 슬슬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진미란 진미는 다
먹은 듯 했다. 영화도 클래식한 옛 명작부터 3D 최신 영화까지 전부 섭렵해서 더 이상은
볼 것이 없었다. 이 방은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뭐든 보여주지만 아직 이 세상에 나오지
않은 영화는 보여 줄 수 없는 듯 했다. 방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순간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궁하면 통한다고 나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소일거리가 생각났다. 그것은
바로 만화책이었다. 고등학교 이후 거의 읽지 않았던 만화책들. 만화책의 세계도 무궁 무진
하니 그 동안 나온 만화책을 섭렵하는 동안 새로운 영화들이 나올 것이었다. 인터넷을 검색
해서 인기 있는 만화책들이 무엇인지 알아 낸 후 읽고 싶다고 생각만 하면 어느 순간 내 손
에 만화책이 쥐어져 있었다.나는 기쁘게 만화책의 책장을 넘겼다.
며칠 째 만화책과 영화만 보는 나날이 이어졌다. 재미있었지만 문득 다시 한번 전에 느꼈
던 답답함이 엄습해 왔다. 창 밖으로 눈길이 갔다. 밝은 햇살이 비추는 길에 아이들이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 가는 듯 표정들이 하나 같이 밝았다.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도 보였다. 저 바람을 맞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
에 나가 가슴 깊이 시원한 바람을 들이켜고 싶었다.
방 안에 갇힌 것이 며칠 째인지 세는 것도 잊어버렸다. 나는 하루 종일 독한 술을 마셨다.
그것도 아주 독한 술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정신이 버티지 못할 듯 했다. 방안의 공기는
항상 상쾌했으나 나는 서울의 매연 냄새가 그리웠다. 이런 생각이 들면 다시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해 몽롱한 정신으로 포르노를 틀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제는 술
에 취하지 않으면, 포르노의 장면들로 머리를 채우지 않으면 잠도 잘 수 없었다.
정신이 몽롱하다. 술 잔으로 손이 갔다. 술 잔은 항상 찰랑찰랑 채워져 있다. 내가 술을 원
하면 이 방은 그냥 술을 준다. 나는 혼자서 술을 마실 수 밖에 없었다. 계속 혼자서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토하고 또 마시고 토하고 또 마셨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는다. 정신은 몽롱한 중에 이상하게도 멀쩡히 깨어나는 것이었다. 아니다.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신경이 곤두선 것이었다. 온갖 생각이 명멸하는 것은 신경이 곤두서서 쓸데없는 잡생각이 온
머릿속을 휘젓기 때문이다. 또 포르노를 틀었다. 포르노를 보며 머릿속에는 포르노의 장면
들만을 남겨두려고 애썼다. 하지만 나의 머리는 그것을 거부하듯 요동친다. 혼란스럽다.
이대로 숨이 멎을 듯 했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구 입 속에 쏟아 넣는다. 소주를 들이킨다. 그리고 방을
나간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다.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그러더니 미친 듯이 웃는다. 그
리고 방을 나간다. 어디로 가는 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저 방에 남겨져 있을 뿐이다. 그랬
다 언제나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를 떠나간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여자친구도 모두 떠나
가 버린다. 그리고 나에게는 방 만이 남는 것이다.
잠이 깨니 한낮이었다. 지금이 며칠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문득 이대로 가다가는 미쳐 버
리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어떻게든 외부와 연락을 취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휴대폰을 집어 들고 저장되어 있던 번호 중 아무 거나 눌러보았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른 번호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휴대폰을 던져버리고 컴퓨터로 달려가서
인터넷에 접속했다. 이메일을 보내려고 하였으나 이메일 프로그램들은 구동 되는 것이 없었
다. 인터넷 카페나 클럽의 게시판에 조차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나는 컴퓨터를 들어 바닥에
팽개쳐 버렸다. 컴퓨터의 모니터가 깨지고 본체에 금이 갔다. 그러나 곧 컴퓨터는 언제 그
랬냐는 듯이 멀쩡한 상태가 되어 원래 있던 자리에 놓여 있었다. 바닥도 말끔히 청소가 되
었다. 나는 허탈감에 빠져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 부동산 아저씨의 말이 맞았다. 외부와의
접촉은 철저히 차단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한 발짝 이라도 벗어나는 날에는 나는 죽음
을 면치 못할 것이다.
다시 술에 빠져 지내는 나날의 반복이었다. 매일매일이 같았다. 술에 취해 잠들었고 술이
깨면 깨어났다. 아직 죽을 수는 없었다. 아직 죽기는 싫다. 포르노를 튼다. 이제 아무 느낌
도 없었다. 그냥 멍하니 화면을 응시하며 술잔을 들이켰다.
‘석 달도 못 버티고 모두 죽었지요.’ 오늘이 며칠 째 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석 달이나
버틴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더 버텼을 지도 모르지…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도 모르니…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었다. 여기 앉아서 죽거나 나가서 죽던가 어
차피 죽을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머지 않아서. 이 방이 암이나 심장 마비도 고쳐준다는 말
은 없었다. 아니, 그 전에 미쳐버리고 말 것이 분명했다. 그럴 거면 차라리 나가 보자. 잠시
만이라도 외부의 땅을 밟고 외부의 공기를 호흡하고 싶었다. 두 다리도 부드러운 방바닥이
아니라 거친 콘크리트를 밟고 싶었다. 그것이 죽음의 길에 나서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안 돼! 정신을 차려야 해…이 방에 있던 사람들 처럼 그냥 무력하게 죽음을 맞을 수는 없
어. 나는…나는 죽기 싫어.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야. 죽지 않고 나가는 방법이…아니면 적
어도 외부의 누군가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갑자기 술이 확 깨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메일도 전화도 휴
대 전화도 모든 것이 차단된 상황. 하지만 분명히 무언가 빠트린 것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 메모! 메모를 써서 창 밖으로 던지면…’
이 방은 언제나 환기가 잘 된 쾌적한 상태였고 청소도 자동이었기에 나는 몇 달 동안 한번
도 창문을 열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재빨리 근처에 굴러다니는 티슈를 집어 들었다.
제대로 된 메모장이나 노트는 전혀 없었다.
‘어떤 내용을 써야 하지? 내가 있는 방은 원하기만 하면 온갖 먹을 게 다 나오는 대신 밖에
나가는 순간 죽는 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을 거야. 당연하지 나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는데’
나는 메모의 내용을 생각하며 고민에 빠졌다. 내 상태를 알리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을
어떻게 하면 남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쓸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나는 볼펜을 들고
메모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갑자기 이런 메모를 보시게 되어 당황하시겠지요. 저는 X 원룸 XX호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가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제발 사회복지사든 정신과 의사든 아무나 불러주세요. 누군가 현관을 두드려
말을 걸어 준다면…저도 밖에 나갈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적으면 분명히 은둔형 외톨이가 쓴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인터넷에도 이렇게 자신
이 은둔형 외톨이인데 그만두고 싶다고, 도와 달라는 내용의 상담글들이 올라온 것을 본 적
이 있었다. 나는 메모를 적은 티슈를 숟가락에 셀로판 테이프로 붙였다. 티슈만 던지면 바
람에 날려 나무에 걸리거나 다른 건물의 옥상에 떨어질 위험이 있었다.
‘됐어! 설령 바깥에 못 나가더라도 누군가 와서 말을 걸어주면 이렇게 까지 답답하지는 않
을 거야’
나는 의기양양 하게 티슈를 붙인 숟가락을 들고 창문으로 다가가 창문을 밀었다. 그러나 창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잠겨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당황한 나는
두 손으로 창문을 밀어 보았지만 소용 없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되면 창문을 깰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재빨리 거실에 있는 의자를 들고 와서 창문에
던졌다. 그러나 요란한 소리만 날 뿐 창문은 멀쩡했다. 나는 온 몸의 피가 빠져 나가는 듯한 느낌에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숨을 쉬기가 괴로웠다. 정말 이 방은 외부와의 모든 연락 수단을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다.
‘아냐…아직 내가 생각 못한 방법이 있을거야…’
나는 현관으로 달려가 현관문을 마구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살려주세요! 제발 누가 좀 와 주세요! 제발! 제발 저에게 말을 걸어 주세요!”
한 시간 동안 계속 소리를 질렀으나 결국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을 수 밖에 없었다. 힘이 빠져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 후로 며칠 동안 나는 온 집안의 벽과 바닥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러 보았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혹시 주중이라 옆집에 사는 사람이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오밤
중에도 벽을 두드리고 바닥을 쿵쿵 소리 나게 밟으며 소리를 질렀으나 역시 소용 없었다. 이 집은 완벽한 감옥이었다. 나에게는 외부와 소통할 그 어떤 수단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며칠 동안 소란을 피웠더니 속은 좀 후련해 지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이 방에서 지내볼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중에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이 방은 원하는 건 다 나오는 방이니까…혹시 사람도 데려다 주지 않을까?’
나는 머릿속으로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렸을 때 집을 나가 버린 어머니….하지만 이 방은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나오는 방이다. 어머니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나의 어머니를 데려와 줘!’
나는 마음 속으로 간절히 소원을 외쳤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외쳤다. 그러나 방은 내게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포기 하지 않았다.
‘그럼…강아지라도 한 마리 데려다 줘!’
이 소원도 소용 없었다. 혹시 특정 강아지를 짚어서 소원을 빈 게 아니 어서 그런 건가 하
는 생각에 인터넷의 동물보호협회 사이트를 검색해 보았다. 여러 강아지와 고양이 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에 약간 멍청하게 생긴 시추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갈색과
흰 색이 섞인 큰 눈망울의 그 시추를 보자마자 나는 마음에 들었다. 이 친구라면 이 방에서
같이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방은 청소도 자동이니 녀석이 대변을 보던 소변을 보던
금방 청소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사료는 내가 먹는 밥을 나눠먹으면 문제 없을 터였다.
‘이 시추를 데려와 줘!”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서 소원을 빌었다. 그러나 십 분이 지나고 이십 분이 지나도 강아
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기진맥진 했다. 정말 부동산 아저씨 말 대로 원하는 먹을 것,
영화 등은 다 나오지만 그 이외의 것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 전에 이 방에 있던 사람들도 시도했다 실패했겠지…결국 나도 이 방이 보기에는 그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인간일 뿐이겠고…’
한숨을 내쉬었다. 맥주 생각이 나자 내 손에 맥주가 들렸다. 나는 벌컥벌컥 맥주 세 캔을
순식간에 비워버렸다.
‘혹시…창문에 커다랗게 SOS를 쓰면 어떨까?’
정신이 몽롱해지던 차에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역시 사람은 가끔은 정신을 놓아야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법이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머릿속으로 고추장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곧 식탁 위에 고추장이 한 통 나타났다. 네임펜 따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봐야 나오지 않으니 고추장으로 창문에 메모를 쓰는 것이 좋을 것이었다. 나는 고추장 통
을 들고 창문으로 다가가 오른손 둘째손가락으로 고추장을 듬뿍 떠내어 글씨를 쓰려고 했
다. 그러나 고추장은 창문에 닿자 마자 사라져 버렸다. 몇 번이고 시도했으나 그 때 마다
고추장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짜증이 울컥 치민 나는 고추장 통을 창문에 던져 버렸다. 고
추장 통은 창문에 부딪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제 정말로 시도할 수 있는 건 전부 시
도해 본 상태였고 남은 것은 완벽한 절망뿐 이었다.
자유란 것은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스스로 선택해
서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으면 모를까 나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기를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
었다. 그것도 목숨의 위협이었다. 은둔형 외톨이는 어느 날 아침 일어나서 ‘이제 밖에 한번
나가 볼까’ 하고 생각하면 언제라도 방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밖으로 나가는
순간 죽게 될 것이었다. 숨이 막혔다.
이미 며칠 째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이제는 방 안의 공기마저 호흡하고 싶지 않
았다. 나의 머리는 외부의 공기만을 갈망하고 있었다. 바깥의 더러운 공기를. 술도 입에 전
혀 대지 않았다. 술을 대면 바로 토해 버렸기에 마실 수가 없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
서 일어났다. 머리가 몽롱했다. 오직 이 방에서 벗어나고 싶은 바램뿐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내가 죽은 후에 다른 사람이 이 방에 들어오게 된다면 그 역시 나와
같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평생 이 방에서만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메시지를 남겨야 했다. 다른 사람이 이 방에 들어오지 않도록. 하지만 창문에 메시지
를 쓰려던 나의 시도가 실패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벽이나 그 어디에도 메시지는 남길
수 없을 것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나의 가방에 생각이 미쳤다. 분명히
그 안에는 내가 직장에서 쓰던 다이어리가 있었다. 나는 미친 듯이 가방을 뒤져 다이어리를
꺼냈다. 그리고 다이어리에서 한 페이지를 찢어내어 볼펜으로 ‘이 방에 한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습니다. 나가면 죽어요. 절대 이 방에 들어오지 마세요’ 라고 썼다. 그러나 이런 메모
를 누가 믿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방금 쓴 메모를 찢어버리고 다시 썼다.
‘이 방은 비가 새고 쥐도 나와요. 절대 들어오지 마세요.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는 옛 말이 정말로 딱 들어 맞네요.’ 이 정도면 메모를 본 사람은 이 방에 들어
오지 않을 것이었다. 메모는 작성했지만 이 메모를 어디에 둘 것이냐가 문제였다. 눈에 잘
띄는 곳에 놔두면 좋겠지만 그러면 부동산 아저씨가 치워버릴 지도 몰랐다. 부동산 아저씨
의 눈을 피하면서도 세입자가 꼭 살펴볼 만한 곳에 이 메모를 두어야 했다. 한참 동안 아무
리 머리를 굴려도 마땅한 장소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맥주를 한 캔 들이켜고 집안을 샅
샅이 둘러 보기 시작했다. 방, 화장실, 거실…어디에 두어야 할까…그러다가 적당한 곳이
생각났다. 냉장고였다. 가구가 딸린 방이니 냉장고 안을 한 번쯤 들여다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재빨리 메모를 냉장고 안에 넣어놨다.
이제 내가 이 방에서 할 일은 다 끝났다. 속은 시원했다. 짧은 인생이었고 좋은 일도 별로
없는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 것이었다. 나란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이 세상이
어떻게 될 리도 없다. 세계는 계속 돌아갈 것이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계속 일어 날 것이
다. 나를 기억해 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마음이 가뿐해 졌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 걸음 또 한 걸음 현관문을 향해 걸었다.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이제 내 머리
는 죽게 된다는 사실 조차 망각한 채 그저 걸음을 옮기라는 명령만을 내리고 있었다. 그것
은 자유를 향한 발걸음이었다. 현관문이 마치 몇 백 미터는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두 다
리가 너무나 무거워 쇳덩이를 끄는 것 같았다. 마침내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약간 차
가운 금속성의 느낌이 살을 파고 들었다. 문득 구역질이 나려고 했다. 머리는 거부해도 본
능은 나의 죽음을 예감 하고 있었다. 구역질을 간신히 참고 문을 열었다. 시원한 공기가 폐
속을 채웠다. 깊이 깊이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의 공기. 눈 앞이 새하얗
게 변했다. 어지러움이 밀려와서 그냥 눈을 감아버리고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 다리에 힘
이 들어가지 않았다. 몸이 무너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 형사는 복도에 사람이 죽어 있다는 신고를 받고 x원룸 xx호에 도착했다. 시체는 20대
후반의 남성으로 엎어진 자세로 죽어 있었다. 주변에 탐문 수사를 해 보니 처음 이사 와서
지금까지 9개월 동안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방 안에 들어 선 이 형사는
남자 혼자 사는 방이 너무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에 놀랐다. 마치 아무도 그 방에
살지 않았던 것 같았다. 집 안에 침입한 흔적이나 시체에 상처나 저항한 흔적이 없는 것으
로 미루어 보아 갑작스런 심장 마비 라던가 그런 걸로 죽은 것이 틀림 없어 보였다. 이 형
사는 한숨을 한 번 푹 쉬었다. 요즘 PC방에서 몇 십 시간 동안 계속 게임만 하다가 사망
한 이야기가 신문에 오르내리는 판에 이제는 집 안에서 몇 개월 동안 게임만 하던 젋은이
가 사망을 한 것이었다. 이 형사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내쉬며 ‘도대체 이놈의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 건지’하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사건은 집에서 게임에만 몰두하던
젊은이가 몇 개월 만에 집 밖으로 나오려다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건으로 보고하면
깔끔하게 마무리가 될 터였다. 이 형사는 다시 한번 집안을 둘러 본 후 경찰서로 걸음을
옮겼다.
x원룸에서 200여km 떨어진 지방 한 도시. 시내에서 약간 벗어난 외곽에 위치한 한 원룸
의 문을 열고 부동산 아저씨가 들어왔다. 낮은 소리로 휘파람을 불며 느긋하게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본 그는 동행한 손님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손님은 20대 초반의 여대생으로 학교
근처의 원룸을 알아보는 중이었다.
“이 방은 어떤가요?”
여대생은 역시 여대생답게 집안을 꼼꼼히 둘러 본 후 대답했다.
“좋네요.”
“그렇지요? 자 그럼 이 방으로 결정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네.”
여대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 보았다. 이제 2학년인 만큼 적
어도 3년은 살아야 하는 집이므로 확실히 체크를 해 두고 싶었다.
“아 참. 이 방에 들어오신다면 알고 계셔야 할 게 하나 있는데요.”
부동산 아저씨가 그 커다란 얼굴에 웃음을 한 가득 지으며 말했다. 무언가 숨기는 것을 커버하려는 듯한 웃음. 여대생은 그냥 난방이 좀 안 된다던가 변기가 고장 났다거나 하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방이 월세가 싼 이유를 설명 드리지요. 이 방에서는 지낸 사람들은 석 달을 버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월세가 저렴한 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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