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11시

2011.07.23 23:3407.23

11시

역의 직원으로 3년 째 근무하며 나는 어느 정도 역한 냄새에 익숙해졌다. 그들의 웅크린 자세나 5일은 지났을 음식들, 쥐들도 피해 달아날 발 냄새는 이제 옷까지 스며들 정도였다. 난 알게 모르게 바지 사이에 조그만 플라스틱 봉을 끼고 다녔다. 언제 어디서든 무슨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선배의 말에 휴대하고 다니던 것이었는데 사실 그런 일은 어디서든 일어난 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밤만 되면 난폭해졌다. 무덤 속에서 뛰쳐나온 좀비라는 허무맹랑한 소리는 하지 않겠다. 그들은 그 이상이었다. 그들은 총으로 쏴 죽일 수도 없고 주먹을 휘두를 수도 없었다. 그러면 폭행죄가 성립되니까. 우린 그저 사랑의 마음으로 그들을 힘껏 안으며 그들을 제지해야했다. 그들이 침을 튀기며 욕을 해대도 우린 멍청하게 그들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대리석 바닥에 다시 자빠질 때까지.
요즘은 대리석 바닥도 불을 땐다는 것을 알고 있나?
노숙인들의 포근한 밤을 위하여 우리 윗대가리 분들이 또 한 건 해내신 것이다. 그 덕분에 그들은 차라리 그들보다 더 가치 있는, 80대 독거노인이 가져가 팔아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상자 하나만 깔고 자도 된다. 난 쭈그리고 앉아 그 ‘온돌’바닥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이런, 우리 집보다 따뜻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인생의 실패자들을 위해서 우리 윗대가리분들은 이렇게 애를 쓰신다.
나도 뭐 처음부터 그들에게 악감정이 있던 건 아니었다. 의사가 처음 레지던트가 될 때 환자를 사랑으로 돌보겠다고 다짐하듯이 나 또한 역에 처음으로 근무를 할 때 노숙자들을 사랑으로 다루겠다고 다짐했었다. 실제로 한 3분은 그랬다. 그들이 던진 소주병을 맞아 이마에 3센티미터의 상처를 입을 때까지.
그래서 난 처음에 노숙자들을 밤만 되면 내쫓으라는 법이 개정 되었을 때 뛸 듯이 기뻤다. 이젠 새벽까지 근무시간초과를 하면서 노숙자들을 지켜보는 ‘수위 선생’노릇을 하지 않아도 됐을 뿐더러 만약 나가지 않을 경우, [무력]을 행사해도 됐기 때문이다. 이제 엉덩이 부분에 셔츠로 가려만 두던 곤봉을 실질적으로 사용할 때가 된 것이다. 근 3년만에.
그 법은 당연히 지방에서 먼저 시행되었다. 그리고 난 지방 지하철에서 근무를 했고 그때 처음으로 법이 시행되었다. 2014년 2월 17일이었다.

밤 11시만 되면 모두들 나가야 했다. 우리에겐 각각 호루라기가 쥐어졌다. 11시가 되면 우린 호루라기를 불며 합법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곤봉을 앞뒤로 흔들며 차 단속 하듯이 노숙자들을 몰아냈다. 일찍 잠 든 ‘모범생’들만 힘들 뿐이었다. 그들은 빛과 소리 때문에 눈을 찡그리며 이것이 무슨 일인가 우리를 쳐다보았다. 선배 민철이 소리쳤다.
“모두 나가세요! 지하철에서 주무시면 안 됩니다. 밖에 가셔서 주무세요! 나가요! 나가!”
일순간 소란이 일었다. 이미 피딱지가 앉은 욕설이 들려왔다. 난 괜히 벽을 곤봉으로 퉁퉁 쳤다.
“명령을 불이행하실 경우 무력도 사용 가능합니다!”
“이 씹할놈이!”
누군가가 소리쳤다.
“써 봐, 이 호로새꺄!”
난 그 노숙자와 눈이 마주쳤다. 노숙자의 초췌하고 까칠한 표정이 짜증이 최고조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막 잠이 든 뒤라 짜증이 최고조에 달한 것이다. 나는 곤봉으로 연신 벽을 두드렸다.
“나가세요! 나가!”
일부 노숙자들은 실제로 일어섰다. 종현이 말했듯 오늘 밤은 폭행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순순히 따르는 사람도 있다니. 아직 이성을 잃지 않은 노숙자가 물었다.
“그럼 우린 어디서 자요?”
“모릅니다.”
철민이 말했다. 내가 듣기에도 무정한 말투였다.
“일단 나가요. 법이에요, 법. 나가시지 않으면 무력도 불가피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떻게 한다는 거요?”
머리를 긁으며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노숙자가 물었다. 난 곤봉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걸로 우릴 때린다고? 깡패요?”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게 다 나라에서 준 거에요. 정말 어쩔 수 없어요.”
내가 매정하게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조절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모두 나가주십시오.”
“안 나가면?”
역시 노숙자는 몇 번 반복해야한다. 그들은 갑작스런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무력이 사용 될 수도 있습니다.”
“나도 가만히 안 있을 거요.”
연신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노숙자가 말했다. 철민은 곤봉을 바지춤에 꽂더니 허리춤에 찬 총을 꺼냈다.
“마음대로.”
사실 총은 무력에 해당되지 않았다. 게다가 저건 진짜 총도 아닌 공기총이었다. 역무원은 진짜 총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총기 훈련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을 대비한 공기총을 가지고 다녔다. 그걸 아는 사람은 드물지만.
주위가 조용해졌다. 이상한 공기가 흘렀다. 난 벽을 탕탕 쳤다.
“알았으면 나가요!”
그제야 몇몇 사람들은 박스를 챙겨 일어서기 시작했다. 물론 안 일어나는 사람도 있었지만 우린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그들을 억지로 일으켰다. 그들은 엄마의 손길을 기다리던 삐진 척 하던 아이들처럼 벌떡 일어났다. 그들은 역을 나가라는 매정한 우리의 불호령에 역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들의 뒷모습은 처량해 보였다.

내가 맡은 구역 외에 몇 군데에 더 소란이 일었다. 순순히 가지 않고 버티는 노숙자들은 많았다. 우린 상황을 연락 받고 바쁘게 그들을 도왔다. 정신이 없었다. 저 쪽에서는 또 술로 곤드레만드레 취한 노숙자들 사이에서 싸움이 일었고 이미 차가운 대리석 벽면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늦게 까지 지하철을 타던 사람들은 우리의 혼란을 지켜보았다. 질질 끌려 나가고 박스를 휘두르고 욕설을 하는 아비규환. 지하철 밖에서는 쫓겨난 노숙자들이 벌벌 떨며 벤치에 앉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좀비들처럼 그렇게 지하철을 노려만 보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샜던 것이다.
아침이 되자(7시였다.) 노숙자들은 다시 지하철 안으로 들어왔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들은 조조할인을 하는 마트를 물 밑 듯이 들어오는 아줌마 떼보다 훨씬, 더 사납게 치고 들어왔다. 지하철은 아침부터 자리를 점거하려는 노숙자들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난 다행히 그 엿 같은 상황을 보지 않았다. 나는 6시에 이미 근무교대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내 동료들의 증언이었다.
“벌떼 같았다고.”
문수가 말했다.
“무슨 신장개업한 식당에 들어오는 것 마냥 앞 다투어 들어왔다니까. 손님들은 뒷전에 밀려났어.”
“문제네요.”
난로에 손을 쬐며 내가 말했다.
“문제도 이런 문제가 없지.”
난 시계를 힐끔 보았다. 5시. 지옥 같은 일과가 시작되었다. 그는 내 어깨를 살짝 툭 치며 말했다.
“수고하더라고.”
“들어가세요.”
난 잠바를 벗어 역무원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무원실에서 나왔을 때는 다른 동료들이 서둘러 오고 있었다.
“또 지옥이 시작되었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소란이 있는 곳은 항상 내가 있었다. 그들이 소란을 피우는 곳이 어디든지, 우리는 무전기로 다급하게 호출을 받았다. 노숙자들만 없다면 일은 30%로 줄어들 것이다. 역무원은 노숙자들을 위해 존재했다. 계단에서 잠을 자는 기인 노숙자들을 끌어올리고, 또 술을 한바탕 걸치고 욕설을 내뿜는 노숙자들을 진정시키고, 화장실을 점거한 노숙자들을 내쫓고…
밤 11시가 되었을 때 우리는 다시 그들을 내쫓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짜증 섞인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난 비로소야 숨겨두던 곤봉을 꺼내 벽을 탕탕 쳤다.
“나가요, 나가.”
“아, 자려는데.”
“여긴 자는 곳이 아니에요. 저기! 뭐하세요. 나가요. 화장실에 숨지 말아요. 화장실도 검사합니다. 나가세요. 나가요.”
“여기 조금만 있으면 안 되겠소? 밖은 너무 추워서 그래.”
지하철을 지탱하는 기둥의 벤치에 앉아 오들오들 떨고 있는 늙은 노숙자 한 명이 물었다. 난 측은한 마음도 들었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런 노인일수록 더욱 고약했다. 술만 마시면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개처럼 날뛰었다. 가장 순진한 노숙자는, 이제 막 사업이 쫄딱 망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에 잠긴 노숙자일 뿐이었다. 그것 외에는 아무도 믿어서는 안됐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최대한 정중하게, 고객의 소리에 적히지 않을 정도로 말했다.
“안 됩니다. 어르신. 밖으로 나가주세요. 여기서는 주무실 수 없습니다.”
“저번 주만 해도 잘 잤잖어. 왜 이제 와서 그랴….”
“법이에요.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죄송합니다. 나가주셔야 해요.”
“어디서 자라고.”
난 그 말을 무시하며 노숙자의 허름한 아디다스 패딩을 잡아당겼다. 노숙자는 멀뚱히 내 손을 바라보다가 곧 고개를 들며 나를 쏘아보았다.
“어딜 만져. 이 더러운 새끼가.”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역에 기차가 멈추어 선 것처럼 숨이 딱 멈췄다.
“이 개새끼가 어따대고 어른의 옷을 함부로 만져! 이 싸가지 없는 호로 놈의 새끼가!”
그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지하철의 천장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실랑이를 벌이던 역무원들도 노숙자들도 우리를 주시했다. 그의 활짝 벌린, 아랫니 하나 밖에 없는 입에서는 시체 썩는 냄새가 풍겨져 왔다. 물론 온 몸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이거 놔, 이 썩을 놈의 새끼야!”
그가 심하게 몸을 요동쳤다. 난 차라리 잘됐다는 식으로 손을 놓으며 사납게 말했다.
“나가주셔야 합니다.” “니가 뭔데 나가라 마라야! 이 씝펄놈이!”
“나가시지 않으면…”
엉덩이가 꿈틀거렸다. 플라스틱 곤봉은 항상 그 곳에 꽂혀져 있었다. 난 침착하게 행동하려 무던히도 애썼다.
“이 어른도 몰라보는 조그마한 애새끼가.”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민철이 내게로 다급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여긴 내가 맡을게. 다른 곳에 가.”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그냥 가라고.”
그가 손짓했다. 난 노숙자가 내게 괜히 싸움을 거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가끔 역무원과 장난을 치는 노숙자도 있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떴다. 노인이 소리쳤다.
“어디 가! 이 애미 없는…”
“어르신.”
민철이 소리쳤다.

난 무작정 북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마나 아직도 상자를 덮은 채 자고 있는 노숙자들을 힐끔 보며 도대체 이딴 법이 왜 필요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어차피 그들은 지 멋대로 행동할 것이었다. 그들을 내쫓는데 동이 틀 것이다. 그런데 왜? 난 밖으로 나가는 계단이 양 옆으로 있는 입구 가운데서 자판기 옆에 잠에 빠져 있는 노숙자 한 명을 보았다. 노숙자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죽은 것만 같았다. 난 뚜벅 뚜벅 그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50대는 돼 보이는 깡마른 중년으로 지저분하게 생겨 먹었다. 만약 이 곳이 부산이고, 지하철이 아니었다면 누구라도 이외수가 자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었다. 난 이외수를 흔들어 깨웠다.
“어르신.”
세 번 정도 흔들 때 그가 눈을 떴다. 그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게는 진한 소주 냄새가 풍겼다. 그의 손에는 이미 소주병이 들려 있었다.
“나가셔야 합니다. 어르신.”
“그냥 잘게요. 쥐 죽은 듯이….”
그가 손을 내저으며 잠꼬대하듯 중얼거렸다.
“안 됩니다. 나가셔야 해요. 죄송합니다.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어디로 나가시겠습니까?”
“그냥 잘게요.”
“안된다니까요.”
노숙자는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그러다 다시 눈을 감았다. 무력을 사용해도 된다. 규현이 말했다. 명령을 불이행하거나 부득이하게 폭력을 사용할 경우 그에 맞게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 나는 손을 들었다. 무력은 어디까지 한정이 됩니까?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올해로 경력이 10년이 규현은 나를 응시했다. 그러다 그가 말했다. 말을 들을 때까지.
그 순간이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몰랐다. 아무도 내가 무력을 사용할 줄 몰랐다. 나는 소심했고 언쟁을 피했다. 맡은 바 임무만 도베르만처럼 충실히 수행해냈고 노숙자들의 ‘인권’도 존중했다. 그러나 그때 난 망신창이가 됐고 인간으로써 기분이 나빴다. 잠도 왔고 여러 가지 일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았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여기도 무시. 저기도 무시. 무늬만 역무원인 나에게 화가 났을 수도 있었다. 그들의 봉인 내가.
난 바지춤에서 곤봉을 꺼냈다. 숨이 나도 모르게 거칠어졌다. 노숙자는 잠에 빠져 들고 있었다.
교생을 무시했던 적이 있다. 어깨도 좁고 얼굴도 작은 게 어리버리하게 까지 생겨서 수업시간마다 잠자기 일쑤였다. 물론 내가 주동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사실 누구도 주동한 적은 없었다. 그저 사람이 약해보이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수업시간에 장난으로 던졌던 지우개가 교생의 몸에 맞았는데… 분필이 딱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교생은 분필을 집어 던졌다. 그러더니 새로 산 뻣뻣한 양복 자락을 휘날리며 거칠게 포효했다. 우린 모두 책상 위로 올라가야 했고 교생은 빗자루 함에서 빗자루를 꺼내 나무막대로 우리를 사정없이 때렸다. 발바닥뿐만 아니라 허리도 맞고 허벅지도 부르틀 때까지 맞았다. 교생은 누가 지우개를 던졌느냐고 묻지 않았다. 사실 중요할 건 없었다. 그가 화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깐. 지우개는 초등학교 때부터 던졌었고, 맞았었고, 맞혔었다. 중요한 건 도화선이다. 사소한 무언가에 우린 뺨을 맞을 수 있다. 난 맞으며 그걸 깨달았다.
난 곤봉을 쳐들었다. 선생을 무시하면 맞아야지. 난 곤봉을 거칠게 휘둘렀다. 딱히 어디를 맞추려고 그런 건 아니었다. 사실 안 맞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강렬했다. 그러나 그것은 노숙자의 어깨를 강타했고, 노숙자는 거칠게 눈을 떴다. 몽롱한 꿈의 세계에서 현실로 급격하게 내리막을 탄 것이다. 노숙자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를 알까? 내가 이런 놈이 아니라는 것을 알까?
모를 것이다.
속으로 내가 얼마나 노숙자를 증오하는지. 곤봉의 끝에서 끝으로 떨림이 전해졌다. 끝이었다. 난 계속 곤봉을 휘둘렀다. 플라스틱 곤봉은 설계가 아주 잘 되어 있었다. 세 번을 더 거칠게 휘둘자 곤봉은 빠개졌다. 노숙자는 말없이 손으로 그것을 막고 있었다. 그것이 나를 더욱 화나게 했다. 무시했으면 반항이라도 해봐. 난 부러진 곤봉을 바닥에 버리고 냅다 발로 까기 시작했다. 노숙자는 팔로 얼굴을 막으며 끅끅 소리를 냈다.
“나가라고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난 이를 악물었다. 그때만큼 정열적으로 땀을 뺀 적이 없었다. 침대에서도 이렇게 정열적이지 않았다. 불과 몇 초 밖에 밟지 않았지만 나에게도, 어쩌면 노숙자에게도 영원 같은 시간이 흐른 후 강렬하게 돌던 모터는 서서히 그 힘을 잃어가 완전히 멈춰 섰다. 난 모터에 열기가 남아있듯이 숨을 거칠게 내뿜으며 곤죽이 된 노숙자를 바라보았다. 사람을 때려본 적이 없는지라 노숙자는 그다지 큰 타격을 입지 않은 것 같았다. 정신을 잃은 것 같지도 않았고 피도 흘리지 않았다. 그것이 다행이면서도 안타까웠다. 노숙자는 힘겹게 끅끅거리다 무력감인지 이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난 어쩌지하고 그것을 바라보다가 곧 노숙자의 낡은 잠바를 끌어당겼다. 노숙자는 힘없이 내게 몸을 맡겼다. 난 그를 질질 끌고 계단으로 데려갔다. 내가 손으로 계단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앞으로 이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아요. 한번만 더 보이면 그땐 정말 죽여 버릴 거야.”
노숙자는 계단에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당장 꺼져.”
그리고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지옥과도 같은 밤이 지나고 새벽이 왔을 때 나를 비롯해 동료 역무원들은 완전히 지쳐 있었다. 물론 나는 그 사건 이후로 완전히 지쳐있었지만. 6시가 되어서도 노숙자들 몇몇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마치 길가에 누군가 싸놓은 똥덩어리들 같았다. 우린 완전히 포기하고 우리들의 쉼터, 역무원실로 향했다.
“할 만큼 했어. 제기랄.”
나와 같은 입사 동기인 민기가 말했다.
“지랄 같았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이해한다.”
내가 말했다. 그러나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해해. 그럴 수밖에 없었잖아. 그가 계속 소리쳤다.
“저것들은 완전히 벌레들이야! 쫓아도 쫓아도 끝이 없어.”
“말조심해라. 민기.”
민철이 말했다.
“노숙자도 사람이야.”
“이 법은 사실 쓸 만하지 못해요.”
내가 말했고 커피를 탄 종이컵을 들고 있는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이 말에 깊이 동감하는 것처럼 보였다. 노숙자를 내쫓으려면 지하철 자체를 폐쇄 시킬 수밖에 없었다.

11시까지는 차라리 괜찮았다. 노숙자들의 이유 없는 경멸에 찬 듯한 눈빛도, 그들의 소란도, 해코지도 모두 다 평범한 것들이었다. 그저 참아내고 감내해야 할 당연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11시가 넘었을 때는…
11시가 되었을 때 우린 잠깐의 휴식시간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리모컨 버튼을 눌러 TV를 껐다. 코를 킁킁 거리며 가장 고참인 규현이 말했다.
“가보자고.”
난 제일 뒤에 따라갔다. 사람들은 줄을 맞춰 역무원실을 빠져나갔다. 난 역무원실을 빠져나가지 않고 멀뚱히 서있었다. 나랑 같이 가려던 민기가 내가 없자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뭐해? 안 오고?”
난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다.
“먼저 가. 나 신발 끈 좀 다시 묶고 갈게.”
그가 가는 걸 보고 난 후 난 왼쪽 구석에 있는 책상으로 향했다. 책상에 먹다 남은 커피와 서류들이 즐비했다. 난 책상 밑으로 손을 뻗었다. 단단하고 길쭉한 나무 봉이 손에 잡혔다. 휴대하기가 간편하게 끝에는 끈이 묶여 있고 몸체에는 [효원 안마봉]이라고 적혀 있었다. 난 주걱 모양의 나무 봉으로 어깨를 토닥이며 밖으로 나갔다.
다시 소란이 일었다. 승객들은 그 소란에 고개를 돌리며 우리를 지켜보다가 곧 제 갈 길로 향했다.
난 평소랑 똑같이 행동했다. 그들에게 무시당하고, 설득하고 욕설을 들었다. 거칠게 내 몸을 밀치는 자들도 있었다. 그때마다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꾹 참았다.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난 한가로이 구석을 돌아다녔다. 잠에 취하던가 술에 취하던가 원래 미쳐있는 것들이 다분했다. 난 그들을 구태여 깨우려 들지 않았다. 난 구석으로 가고 있었다.
난 한쪽 구석에서 술에 취해 곯아 있는 노숙자를 발견했다. 노숙자의 옆에는 소주 세 병이 세워져 있었다. 저 소주병은 승객들의 피 같은 돈이었다. 그것을 보자 난 피가 다시 역류하는 것만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난 발로 노숙자를 툭툭 건드리다 대범하게 옆구리를 건드렸다. 노숙자는 모기가 건든 것처럼 이상한 신음을 내며 몸을 뒤척이더니 이내가 좀 더 세게 치자 눈을 떴다. 노숙자는 턱에 난 때인지 털인지 하는 것을 긁으며 무슨 일이냐는 식으로 내게 묻는 표정을 던졌다.
난 미소 지었다.
“나가셔야 합니다.”
“11시요?”
이것 봐라? 그는 11시에 나가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똑똑한 노숙자였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주셔야 합니다.”
“아, 이따 오슈. 나 조금만 더 자다가 이따 사람들 나가면 그때 나갈랑께.”
“먼저 나가시지요.”
“아. 귀찮게 하지 마요. 진짜.”
난 봉을 꽉 쥐었다. 그러다 화산을 분출하려는 땅을 두드리듯이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다시 발로 그의 옆구리를 툭툭 건드렸다.
“아, 이 씨발놈이.”
노숙자가 눈을 치켜떴다.
“안 꺼져? 이 시팔 놈의 새끼야?”
난 고개를 저었다.
“일단 일어나세요. 일단 여기서는 주무실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잖아요.”
“놔둬. 나 알아서 할 거야.”
노숙자는 다시 눈을 감았다. 구제 불능이었다. 난 주머니를 더듬거려 만 원 짜리 한 장을 꺼내 그를 깨워 눈앞에 들이댔다.
“일어나요. 이거 받고.”
노숙자는 놀란 눈으로 만원을 바라보다 원숭이처럼 그것을 낚아챘다. 내가 말했다.
“저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입니다. 말씀 안 들으시면 제가 근무 태반으로 잘려요. 무슨 말씀인지 잘 아시죠? 따라오세요. 제가 잠 잘 곳 안내해 드릴게. 몇 명은 사실 그 곳에서 자고 있어요.”
노숙자는 내 말을 이해나 했는지 만원을 보며 헤헤 거렸다. 그는 나중에 딴 말하기 없기다 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곧 점잔을 빼며 말했다.
“아, 나도 알지. 미안해, 형씨. 어린 사람이 살아가는 법아네. 어디야? 기꺼이 가지.”
난 손을 뻗으며 “일어나요.”라고 말했다. 그는 기꺼이 내 손을 잡으며 일어났다. 손에서 미끌미끌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 후 내 주머니에는 조금 냄새가 나는 만 원짜리가 있었고 봉에는 약간의 피가 묻어 있었다. 그가 쓰러져 있을 화장실에서 아무리 봉을 닦아도 피는 지워지지 않았다. 난 부셔져도 플라스틱이 더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일은 플라스틱만 한 다섯 개 갖고 와야지. 내가 생각했다.
음, 아마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몰라도 11시의 삶에 꽤나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굴러다니는 노숙자들의 앞에서 나는 플라스틱 봉을 흔들며 꽤나 재치 있게 걸어 다녔고 그런 나의 자신감에 놀랐는지 노숙자들은 더 이상 나를 경멸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것 같지 않았다. 노숙자들 대부분은 그 다음 날이면 사라졌다. 무슨 영문인지 나도 알 수 없었다. 핏자국도 말끔히 사라져 있었고 신고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로써 기쁜 일이었다.
그 법은 정확히 3월 15일까지 계속 되었다. 민주당의 반발과 인권 위원회의 콤비로 그 법은 우리를 끝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나야 잘 됐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것이 전국적으로 시행되었으면 아마 노숙자들은 씨가 말랐겠지.
나는 정확히 1시간 전까지 노숙자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손녀와 놀다 심심해져 텔레비전을 틀었을 때 난 그 비밀을 알 수 있었다. 부산 지하철은 오늘 잠정 공사에 들어갔다. 너무 오래되고 낡은 지하철이라(그도 그럴 것이 내가 첫 출근한 게 50년은 됐으니) 싹 다 갈아엎어야 했다. 그러다가 아주 큰 사건이 연일 보도됐다. 승무원실 콘크리트 바닥에 해골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첨단 과학 기술로 그것들을 확인해보았을 때 적어도 50년은 된 유골들이었다. 아무도 그것이 왜 승무원 실에 있는지 몰랐다.
어쩌면 몇몇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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