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 Magic
물리적 세계의 공인된 인과관계의 과정들을 거치지 않고 어떤 결과를 얻어
내려는 의례적 행위. 마술은 모든 문화속에 존재하며, 간단한 규칙들에 의
한 민간마술에서 부터 복잡한 형이상학에 근거한 고도의 마술체계에 이르기
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질서체계가 다른 질서체계와
일치하기 때문에, 하나의 영역에서 상징적으로 행해진 작용이 다른 영역에
서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세계관에 의거하고 있다. 꺾었을 때 그
잎사귀들이 금새 떨어져 버리는 나뭇가지들을 이융해서 인기 있는 사람으로
부터 친구들을 떼어낸 아잔데 족의 주술사나 베누스의 부적을 이용해서 숙
녀의 사랑을 얻으려고 했던 르네상스 시기의 궁정마술사는 모두 자신들이
투사하려는 능력의 모델을 창조하고자 했다.
(하략)
"'세계종교사전'에 나오는 일반적인 매직(magic)의 뜻풀이의 일부야.
저기서 마술을 '마법'이라고 바꿔도 이해하는데 별 지장 없겠지?"
마술 (고대이집트) Magic
일상생활속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던 이집트 인들의 마술은 살아 있는 존재
나 물체의 이름이나 이미지를 말하면 그 원래의 존재가 나타나게 된다는
'공감'의 원리를 토대로 한 것이었다.
(하략)
"마찬가지로 세계종교사전에 나온 거지. 내가 특히 주의깊었던 부분
중 하나야."
마술 (서양전통) Magic
유럽의 마술전통은 이전의 마술전통이 헤르메스주의와 카발라, 신 플라톤
주의와 통합된 르네상스 시기에 시작되었다. 이러한 통합으로 인해서, 마술
사들이 의식을 통하여 소우주로서의 자신을 대우주인 거대한 우주와 조화
시켜서 천상의 신적인 힘과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상징적인 교통체계가
생겼다.
(하략)
"가장 일반적으로 우리가 마법 하면 떠올리는 건 중세유럽풍의
세계지. 하지만 여기 보면 '르네상스' 시대에 전통이 확립되었다고
나오는군. 우리 상식(?)과는 조금 다르지? 하긴 이 책이 꼭 진실이
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 그 부분은 넘어가자구."
오랜만에 열리는 '자환모-자유로운 환상가의 모임'의 모임이었다.
그동안 자환모에 속한 우리 여섯은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구축
하기 위해서 각자의 시간을 가져왔었다. 오늘은 그 결과물을 발표
하는 자리인 것이다. 지금 발표하는 사람은 언제나 가장 열성적으
로 활동하는 회원인 은래였다. 은래는 이미 우리 중 누구보다 먼저
'서울'이라 불리는 놀라운 세계를 창조해 내어 우리의 부러움을
산 바 있었다. 그런데 오늘 새삼스럽게 그는 또 한 번 마법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고 있었다. '서울'을 창조함으로써 그의 마법
에 대한 견해는 정리된 것이 아니었던가?
"모두 좀 의아스럽게 생각할지도 몰라. 내가 왜 또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지 말이야. 나도 사실 그렇게 생각했어. 이제
'마법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거라고 말이야. 하지만 지금 쓰고 있는 '서울' 에 대한 소설
을 쓰다 보니 알게 되었어. 나는 아직 마법에 대해 말하기엔 일렀
다는 사실을 말이야. 왜냐고? 그건 이런 이유때문이었지"
은래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해 보이며 몇 바퀴 우리 주위를 맴
돌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 바로 '놀라움'과 '경이로움' 이란 항상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때문이야. 나는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가져다 주는 것,
'일상을 벗어난 뜻밖의 일어남'을 가져오는 것이면 무엇이든 마법
이라고 할 수 있을 거라고 했어. 하지만 그렇게 치면 한 사람에겐
마법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마법이 아닌 것이 되어버릴 수 있지.
우리에겐 '서울'이 경이로움으로 가득찬 곳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전혀 안 그런 곳일 수 있는거야. 이런 식으로 따져 봤을 때, 나의
정의는 불명확하기 그지없어. 물론, 이런 식으로 말할 수도 있어.
원래 '마법'이란 것은 그렇게 상대적인 속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라고 말이야. 하지만 미리 충분한 탐구도 거치지 않은 채
그렇게 덥썩 말해 버리는 건 무책임하기 그지 없는 일인 것이지.
그래서 나는 좀 더 '마법' 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봤어.
위에 말한 '세계종교사전'도 그런 맥락에서 본 책 중에 하나였고
말이야. 그리고 그럼으로써 나는 좀 더 원리적인 설명에 대해 접
근할 기회를 얻게 되었어. 원리적인 설명이 뭐냐고? 그건 이런 거
야. '마법이란 어떠한 것이다.' 라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마법이
란 어떠한 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는 식의 접근을 해보는 거지.
그 결과 나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어. 그것은 마법은 항상
'두 가지'가 있다는 '전제'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거야. 그 두가지는
'일상'과 '비일상' 일 수도 있고 '하나의 세계'와 '그에 대응되는
또 하나의 세계' 일 수도 있고 '현상' 과 '본질' 일 수도 있고
'소우주'와 '대우주' 일 수도 있고 하다 못해 '그것을 마법이라고
느껴줄 존재' 와 '그 존재가 마법이라고 느낄 무엇' 일 수도 있어.
그러나 항상 '두 가지가 존재한다' 는 전제는 변하지 않는다는 거
지. 모든 마법은 그 전제를 통해서 위력을 발휘하게 되고 그 모습
을 드러내게 되어 있어. 물론 거기엔 '세 가지'가 있을 수도 있고
'네 가지'가 있는 것도 가능해. 다만, 중요한 건 '한 가지'만 있어
서는 마법이 가능하지 않다는 거야. 항상 '두 가지' 이상은 있어야
하는 거지... 여기까지 내가 한 말 이해가 되겠어?"
우리 다섯 중 누군가는 이해가 잘 안된다는 표정을 지었고 누군
가는 알겠다는 표정을 보였지만 은래는 애초에 우리의 답엔 별
관심이 없었는지 곧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알아낸 이런 사실을 근거로 해서 새로운 세
계를 창조해 봤어. 이번에 내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바로 '마법이
가능하지 않게 하는 것' 이었지. 절대로 마법이 가능하지 않은 세계,
이번에 내가 만들어 본 세계는 그런 세계야. 그리고 그 세계가 바로
이것이지.."
은래는 다소 시무룩한 표정으로 우리가 있는 방 한쪽의 커튼을
제껴버렸고, 거기에서 무엇인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우리 다섯은 모두 말문을 잃었다. 예전에 보았던 '서울' 처럼 너무나
생소했기에 놀라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대체 저게 무
슨 세계인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거기엔 오직 '단 하나의 사람처럼 보이는 무언가' 가 서 있었
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은래는 의아해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씁쓸한 듯이 입을 열었다.
"오직 한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 오직 하나의 단독자만이 존재하는
것-저 앞에 있는 것은 그 단독자에 대한 상징이지-그리고 그 단독자
가 곧 세계 그 자체인 것. 그것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였어.
왜 한계였다고 말하냐면, 저 상황에서도 두 개의 전제는 가능하기
때문이야. 그것은 '비존재'이지. 그 '비존재'란 여기선 곧 '세계없음'
을 뜻해.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 역시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순 없어. 하지만, 다만 이 세계에선 그 마법이 일어난 즉시
'세계없음' 만이 남게 되는 것이지. 그러므로 마법이 가능하지 않은
세계라고도 할 수 있다는 거야. 완벽하진 않지만 말이야. 난 이 세계
를 만들고 나서, 예전에 '서울'을 만들었을 때완 달리 참 착잡했어.
왠지 알아? 그건 '마법이 가능하지 않은 세계를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야. 내가 '서울'을 만들어 놓고
잘난 체 하며 으쓱했던 것은 한마디로 우스운 일일 뿐이라는 거지.
결국 나는 앞으로는 마법이라는 개념과 '적당히' 타협할 수 밖에 없
겠다는 사실을 알았어. 안 그러면 글 자체를 쓸 수가 없을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 적당한 타협이란 여기 이 세계와 서울의 사이
어디쯤이 되겠지... 나는 스스로 이런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는
데 대해서 참 씁쓸해..."
우리는 시무룩한 채 고개를 숙인 은래를 위로해 주기 위해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고, 은래는 괜찮다며 말했지만 표정은 전혀 괜찮
지 않아 보였다. 우리는 지난 번 호탕하게 웃던 은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참 은래가 안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번의 이런 결론도 자환모와 은래 자신이 발전해 가
는 하나의 과정일 거라고 생각했다. 은래는 분명 더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고, 우리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에게도
저런 시련이 닥쳐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 은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밖에는 어느새 저녁놀이 지고 있는 아름답
고도 평화로운 하루였다.
물리적 세계의 공인된 인과관계의 과정들을 거치지 않고 어떤 결과를 얻어
내려는 의례적 행위. 마술은 모든 문화속에 존재하며, 간단한 규칙들에 의
한 민간마술에서 부터 복잡한 형이상학에 근거한 고도의 마술체계에 이르기
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질서체계가 다른 질서체계와
일치하기 때문에, 하나의 영역에서 상징적으로 행해진 작용이 다른 영역에
서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세계관에 의거하고 있다. 꺾었을 때 그
잎사귀들이 금새 떨어져 버리는 나뭇가지들을 이융해서 인기 있는 사람으로
부터 친구들을 떼어낸 아잔데 족의 주술사나 베누스의 부적을 이용해서 숙
녀의 사랑을 얻으려고 했던 르네상스 시기의 궁정마술사는 모두 자신들이
투사하려는 능력의 모델을 창조하고자 했다.
(하략)
"'세계종교사전'에 나오는 일반적인 매직(magic)의 뜻풀이의 일부야.
저기서 마술을 '마법'이라고 바꿔도 이해하는데 별 지장 없겠지?"
마술 (고대이집트) Magic
일상생활속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던 이집트 인들의 마술은 살아 있는 존재
나 물체의 이름이나 이미지를 말하면 그 원래의 존재가 나타나게 된다는
'공감'의 원리를 토대로 한 것이었다.
(하략)
"마찬가지로 세계종교사전에 나온 거지. 내가 특히 주의깊었던 부분
중 하나야."
마술 (서양전통) Magic
유럽의 마술전통은 이전의 마술전통이 헤르메스주의와 카발라, 신 플라톤
주의와 통합된 르네상스 시기에 시작되었다. 이러한 통합으로 인해서, 마술
사들이 의식을 통하여 소우주로서의 자신을 대우주인 거대한 우주와 조화
시켜서 천상의 신적인 힘과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상징적인 교통체계가
생겼다.
(하략)
"가장 일반적으로 우리가 마법 하면 떠올리는 건 중세유럽풍의
세계지. 하지만 여기 보면 '르네상스' 시대에 전통이 확립되었다고
나오는군. 우리 상식(?)과는 조금 다르지? 하긴 이 책이 꼭 진실이
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 그 부분은 넘어가자구."
오랜만에 열리는 '자환모-자유로운 환상가의 모임'의 모임이었다.
그동안 자환모에 속한 우리 여섯은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구축
하기 위해서 각자의 시간을 가져왔었다. 오늘은 그 결과물을 발표
하는 자리인 것이다. 지금 발표하는 사람은 언제나 가장 열성적으
로 활동하는 회원인 은래였다. 은래는 이미 우리 중 누구보다 먼저
'서울'이라 불리는 놀라운 세계를 창조해 내어 우리의 부러움을
산 바 있었다. 그런데 오늘 새삼스럽게 그는 또 한 번 마법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고 있었다. '서울'을 창조함으로써 그의 마법
에 대한 견해는 정리된 것이 아니었던가?
"모두 좀 의아스럽게 생각할지도 몰라. 내가 왜 또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지 말이야. 나도 사실 그렇게 생각했어. 이제
'마법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거라고 말이야. 하지만 지금 쓰고 있는 '서울' 에 대한 소설
을 쓰다 보니 알게 되었어. 나는 아직 마법에 대해 말하기엔 일렀
다는 사실을 말이야. 왜냐고? 그건 이런 이유때문이었지"
은래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해 보이며 몇 바퀴 우리 주위를 맴
돌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 바로 '놀라움'과 '경이로움' 이란 항상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때문이야. 나는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가져다 주는 것,
'일상을 벗어난 뜻밖의 일어남'을 가져오는 것이면 무엇이든 마법
이라고 할 수 있을 거라고 했어. 하지만 그렇게 치면 한 사람에겐
마법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마법이 아닌 것이 되어버릴 수 있지.
우리에겐 '서울'이 경이로움으로 가득찬 곳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전혀 안 그런 곳일 수 있는거야. 이런 식으로 따져 봤을 때, 나의
정의는 불명확하기 그지없어. 물론, 이런 식으로 말할 수도 있어.
원래 '마법'이란 것은 그렇게 상대적인 속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라고 말이야. 하지만 미리 충분한 탐구도 거치지 않은 채
그렇게 덥썩 말해 버리는 건 무책임하기 그지 없는 일인 것이지.
그래서 나는 좀 더 '마법' 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봤어.
위에 말한 '세계종교사전'도 그런 맥락에서 본 책 중에 하나였고
말이야. 그리고 그럼으로써 나는 좀 더 원리적인 설명에 대해 접
근할 기회를 얻게 되었어. 원리적인 설명이 뭐냐고? 그건 이런 거
야. '마법이란 어떠한 것이다.' 라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마법이
란 어떠한 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는 식의 접근을 해보는 거지.
그 결과 나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어. 그것은 마법은 항상
'두 가지'가 있다는 '전제'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거야. 그 두가지는
'일상'과 '비일상' 일 수도 있고 '하나의 세계'와 '그에 대응되는
또 하나의 세계' 일 수도 있고 '현상' 과 '본질' 일 수도 있고
'소우주'와 '대우주' 일 수도 있고 하다 못해 '그것을 마법이라고
느껴줄 존재' 와 '그 존재가 마법이라고 느낄 무엇' 일 수도 있어.
그러나 항상 '두 가지가 존재한다' 는 전제는 변하지 않는다는 거
지. 모든 마법은 그 전제를 통해서 위력을 발휘하게 되고 그 모습
을 드러내게 되어 있어. 물론 거기엔 '세 가지'가 있을 수도 있고
'네 가지'가 있는 것도 가능해. 다만, 중요한 건 '한 가지'만 있어
서는 마법이 가능하지 않다는 거야. 항상 '두 가지' 이상은 있어야
하는 거지... 여기까지 내가 한 말 이해가 되겠어?"
우리 다섯 중 누군가는 이해가 잘 안된다는 표정을 지었고 누군
가는 알겠다는 표정을 보였지만 은래는 애초에 우리의 답엔 별
관심이 없었는지 곧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알아낸 이런 사실을 근거로 해서 새로운 세
계를 창조해 봤어. 이번에 내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바로 '마법이
가능하지 않게 하는 것' 이었지. 절대로 마법이 가능하지 않은 세계,
이번에 내가 만들어 본 세계는 그런 세계야. 그리고 그 세계가 바로
이것이지.."
은래는 다소 시무룩한 표정으로 우리가 있는 방 한쪽의 커튼을
제껴버렸고, 거기에서 무엇인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우리 다섯은 모두 말문을 잃었다. 예전에 보았던 '서울' 처럼 너무나
생소했기에 놀라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대체 저게 무
슨 세계인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거기엔 오직 '단 하나의 사람처럼 보이는 무언가' 가 서 있었
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은래는 의아해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씁쓸한 듯이 입을 열었다.
"오직 한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 오직 하나의 단독자만이 존재하는
것-저 앞에 있는 것은 그 단독자에 대한 상징이지-그리고 그 단독자
가 곧 세계 그 자체인 것. 그것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였어.
왜 한계였다고 말하냐면, 저 상황에서도 두 개의 전제는 가능하기
때문이야. 그것은 '비존재'이지. 그 '비존재'란 여기선 곧 '세계없음'
을 뜻해.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 역시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순 없어. 하지만, 다만 이 세계에선 그 마법이 일어난 즉시
'세계없음' 만이 남게 되는 것이지. 그러므로 마법이 가능하지 않은
세계라고도 할 수 있다는 거야. 완벽하진 않지만 말이야. 난 이 세계
를 만들고 나서, 예전에 '서울'을 만들었을 때완 달리 참 착잡했어.
왠지 알아? 그건 '마법이 가능하지 않은 세계를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야. 내가 '서울'을 만들어 놓고
잘난 체 하며 으쓱했던 것은 한마디로 우스운 일일 뿐이라는 거지.
결국 나는 앞으로는 마법이라는 개념과 '적당히' 타협할 수 밖에 없
겠다는 사실을 알았어. 안 그러면 글 자체를 쓸 수가 없을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 적당한 타협이란 여기 이 세계와 서울의 사이
어디쯤이 되겠지... 나는 스스로 이런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는
데 대해서 참 씁쓸해..."
우리는 시무룩한 채 고개를 숙인 은래를 위로해 주기 위해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고, 은래는 괜찮다며 말했지만 표정은 전혀 괜찮
지 않아 보였다. 우리는 지난 번 호탕하게 웃던 은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참 은래가 안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번의 이런 결론도 자환모와 은래 자신이 발전해 가
는 하나의 과정일 거라고 생각했다. 은래는 분명 더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고, 우리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에게도
저런 시련이 닥쳐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 은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밖에는 어느새 저녁놀이 지고 있는 아름답
고도 평화로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