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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마법이란 무엇인가 2

2003.10.18 11:3710.18

마술 Magic

물리적 세계의 공인된 인과관계의 과정들을 거치지 않고 어떤 결과를 얻어
내려는 의례적 행위. 마술은 모든 문화속에 존재하며, 간단한 규칙들에 의
한 민간마술에서 부터 복잡한 형이상학에 근거한 고도의 마술체계에 이르기
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질서체계가 다른 질서체계와
일치하기 때문에, 하나의 영역에서 상징적으로 행해진 작용이 다른 영역에
서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세계관에 의거하고 있다. 꺾었을 때 그
잎사귀들이 금새 떨어져 버리는 나뭇가지들을 이융해서 인기 있는 사람으로
부터 친구들을 떼어낸 아잔데 족의 주술사나 베누스의 부적을 이용해서 숙
녀의 사랑을 얻으려고 했던 르네상스 시기의 궁정마술사는 모두 자신들이
투사하려는 능력의 모델을 창조하고자 했다.
(하략)

"'세계종교사전'에 나오는 일반적인 매직(magic)의 뜻풀이의 일부야.
저기서 마술을 '마법'이라고 바꿔도 이해하는데 별 지장 없겠지?"

마술 (고대이집트) Magic

일상생활속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던 이집트 인들의 마술은 살아 있는 존재
나 물체의 이름이나 이미지를 말하면 그 원래의 존재가 나타나게 된다는
'공감'의 원리를 토대로 한 것이었다.
(하략)

"마찬가지로 세계종교사전에 나온 거지. 내가 특히 주의깊었던 부분
중 하나야."


마술 (서양전통) Magic

유럽의 마술전통은 이전의 마술전통이 헤르메스주의와 카발라, 신 플라톤
주의와 통합된 르네상스 시기에 시작되었다. 이러한 통합으로 인해서, 마술
사들이 의식을 통하여 소우주로서의 자신을 대우주인 거대한 우주와 조화
시켜서 천상의 신적인 힘과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상징적인 교통체계가
생겼다.
(하략)

  "가장 일반적으로 우리가 마법 하면 떠올리는 건 중세유럽풍의
세계지. 하지만 여기 보면 '르네상스' 시대에 전통이 확립되었다고
나오는군. 우리 상식(?)과는 조금 다르지? 하긴 이 책이 꼭 진실이
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 그 부분은 넘어가자구."

오랜만에 열리는 '자환모-자유로운 환상가의 모임'의 모임이었다.
그동안 자환모에 속한 우리 여섯은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구축
하기 위해서 각자의 시간을 가져왔었다. 오늘은 그 결과물을 발표
하는 자리인 것이다. 지금 발표하는 사람은 언제나 가장 열성적으
로 활동하는 회원인 은래였다. 은래는 이미 우리 중 누구보다 먼저
'서울'이라 불리는 놀라운 세계를 창조해 내어 우리의 부러움을
산 바 있었다. 그런데 오늘 새삼스럽게 그는 또 한 번 마법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고 있었다. '서울'을 창조함으로써 그의 마법
에 대한 견해는 정리된 것이 아니었던가?

"모두 좀 의아스럽게 생각할지도 몰라. 내가 왜 또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지 말이야. 나도 사실 그렇게 생각했어. 이제
'마법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거라고 말이야. 하지만 지금 쓰고 있는 '서울' 에 대한 소설
을 쓰다 보니 알게 되었어. 나는 아직 마법에 대해 말하기엔 일렀
다는 사실을 말이야. 왜냐고? 그건 이런 이유때문이었지"

은래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해 보이며 몇 바퀴 우리 주위를 맴
돌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 바로 '놀라움'과 '경이로움' 이란 항상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때문이야. 나는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가져다 주는 것,
'일상을 벗어난 뜻밖의 일어남'을 가져오는 것이면 무엇이든 마법
이라고 할 수 있을 거라고 했어. 하지만 그렇게 치면 한 사람에겐
마법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마법이 아닌 것이 되어버릴 수 있지.
우리에겐 '서울'이 경이로움으로 가득찬 곳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전혀 안 그런 곳일 수 있는거야. 이런 식으로 따져 봤을 때, 나의
정의는 불명확하기 그지없어. 물론, 이런 식으로 말할 수도 있어.
원래 '마법'이란 것은 그렇게 상대적인 속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라고 말이야. 하지만 미리 충분한 탐구도 거치지 않은 채
그렇게 덥썩 말해 버리는 건 무책임하기 그지 없는 일인 것이지.
그래서 나는 좀 더 '마법' 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봤어.
위에 말한 '세계종교사전'도 그런 맥락에서 본 책 중에 하나였고
말이야. 그리고 그럼으로써 나는 좀 더 원리적인 설명에 대해 접
근할 기회를 얻게 되었어. 원리적인 설명이 뭐냐고? 그건 이런 거
야. '마법이란 어떠한 것이다.' 라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마법이
란 어떠한 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는 식의 접근을 해보는 거지.
그 결과 나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어. 그것은 마법은 항상
'두 가지'가 있다는 '전제'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거야. 그 두가지는
'일상'과 '비일상' 일 수도 있고 '하나의 세계'와 '그에 대응되는
또 하나의 세계' 일 수도 있고 '현상' 과 '본질' 일 수도 있고
'소우주'와 '대우주' 일 수도 있고 하다 못해 '그것을 마법이라고
느껴줄 존재' 와 '그 존재가 마법이라고 느낄 무엇' 일 수도 있어.
그러나 항상 '두 가지가 존재한다' 는 전제는 변하지 않는다는 거
지. 모든 마법은 그 전제를 통해서 위력을 발휘하게 되고 그 모습
을 드러내게 되어 있어. 물론 거기엔 '세 가지'가 있을 수도 있고
'네 가지'가 있는 것도 가능해. 다만, 중요한 건 '한 가지'만 있어
서는 마법이 가능하지 않다는 거야. 항상 '두 가지' 이상은 있어야
하는 거지... 여기까지 내가 한 말 이해가 되겠어?"

우리 다섯 중 누군가는 이해가 잘 안된다는 표정을 지었고 누군
가는 알겠다는 표정을 보였지만 은래는 애초에 우리의 답엔 별
관심이 없었는지 곧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알아낸 이런 사실을 근거로 해서 새로운 세
계를 창조해 봤어. 이번에 내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바로 '마법이
가능하지 않게 하는 것' 이었지. 절대로 마법이 가능하지 않은 세계,
이번에 내가 만들어 본 세계는 그런 세계야. 그리고 그 세계가 바로
이것이지.."

은래는 다소 시무룩한 표정으로 우리가 있는 방 한쪽의 커튼을
제껴버렸고, 거기에서  무엇인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우리 다섯은 모두 말문을 잃었다. 예전에 보았던 '서울' 처럼 너무나
생소했기에 놀라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대체 저게 무
슨 세계인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거기엔 오직 '단 하나의 사람처럼 보이는 무언가' 가 서 있었
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은래는 의아해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씁쓸한 듯이 입을 열었다.  

"오직 한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 오직 하나의 단독자만이 존재하는
것-저 앞에 있는 것은 그 단독자에 대한 상징이지-그리고 그 단독자
가 곧 세계 그 자체인 것. 그것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였어.
왜 한계였다고 말하냐면, 저 상황에서도 두 개의 전제는 가능하기
때문이야. 그것은 '비존재'이지. 그 '비존재'란 여기선 곧 '세계없음'
을 뜻해.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 역시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순 없어. 하지만, 다만 이 세계에선 그 마법이 일어난 즉시
'세계없음' 만이 남게 되는 것이지. 그러므로 마법이 가능하지 않은
세계라고도 할 수 있다는 거야. 완벽하진 않지만 말이야. 난 이 세계
를 만들고 나서, 예전에 '서울'을 만들었을 때완 달리 참 착잡했어.
왠지 알아? 그건 '마법이 가능하지 않은 세계를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야. 내가 '서울'을 만들어 놓고
잘난 체 하며 으쓱했던 것은 한마디로 우스운 일일 뿐이라는 거지.
결국 나는 앞으로는 마법이라는 개념과 '적당히' 타협할 수 밖에 없
겠다는 사실을 알았어. 안 그러면 글 자체를 쓸 수가 없을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 적당한 타협이란 여기 이 세계와 서울의 사이
어디쯤이 되겠지... 나는 스스로 이런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는
데 대해서 참 씁쓸해..."

우리는 시무룩한 채 고개를 숙인 은래를 위로해 주기 위해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고, 은래는 괜찮다며 말했지만 표정은 전혀 괜찮
지 않아 보였다. 우리는 지난 번 호탕하게 웃던 은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참 은래가 안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번의 이런 결론도 자환모와 은래 자신이 발전해 가
는 하나의 과정일 거라고 생각했다. 은래는 분명 더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고, 우리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에게도
저런 시련이 닥쳐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 은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밖에는 어느새 저녁놀이 지고 있는 아름답
고도 평화로운 하루였다.
  
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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