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바람.”
학교에 가려고 길을 나서는데 살갗을 파고드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다. 아, 이제 정말 가을이구나. 10월 5일이니 이제 여름은 지났을 법 하지.
한여름에 지독한 더위 속에서 은근히 가을을 기다렸던 나였다. 가을보다 겨울이 나을 법도 하지만, 겨울이 되면 뼛속까지 파고드는 이른바 혹한에 시달리면 거꾸로 여름이 기다려질 것 같다. 때문에 내게 가장 편안한 계절은 봄과 여름이 아닌가 싶다.
아직 낙엽 따위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하늘이 꽤 높아 보인다. 아침 공기도 갑갑하고 눅눅한 그것이 아닌, 꽤 상쾌하고도 시원하다. 이른 아침이 아닌데도 새벽 6시에 조깅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덕분에 오늘 등굣길은 지루하지만은 않다.
옛날 누군가가 가을을 두고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 했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이 찐다― 라는 뜻이다. 글쎄, 하늘이 높아 보이는 건 확실히 알겠다만 내가 살면서 말을 실제로 본 건 동물원에서 뿐이니, 정말 살이 찌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학교에 도착했다. 아! 운동장에 누구 하나 보이지 않는다. 단지 낙엽이라기엔 덜 마른 나뭇잎 몇 조각이 바람에 휩쓸려 데굴데굴 굴러다닐 뿐…, 왜 아무도 없는 걸까?
내게로 굴러오는 나뭇잎 하나를 툭 차준 다음 운동장을 가로질러갔다. 내가 조회대 앞까지 가는 동안 내 주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보이는 건 운동장, 들리는 건 바람소리, 냄새라면…, 음, 정적의 냄새라고나 할까.
그 정적의 냄새가 내 몸을 단단히 휘감는 순간,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그래, 애초에 가을의 힘을 빌려보겠다고 설쳤던 내 잘못이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교복을 입고 학교에 오는 이 꼴이 대체 얼마나 흉한지 모르겠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계절이 바뀌는 그 조용한 움직임을 누구의 방해도 없이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면 왠지 내 기분의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독서의 계절, 식욕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 하면 따라 붙는 수식어들이다. 하지만 내겐 느긋하게 책을 읽을 여유도, 이것저것 먹을 만한 입맛도 없다. 말이 살이 찌는지는 알 길이 없고, 그 높다는 하늘은 사실 내게 아무런 감흥도 없다. 그냥 높을 뿐.
내가 지나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래, 내가 왔던 곳으로 다시 가는 거다. 허나 이번엔 방향이은 좀 다르게 말이지. 분명 출발지와 같은 방향이지만 목적지는 다른 곳으로. 그곳에서는 새롭게 출발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곳에 가면, 아직까지 내 몸에 붙어있는 그것들을 모두 떨쳐낼 수 있을까. 차가운 가을바람도 이겨낸 그것들을 나 혼자 잊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냥 이 자리에서 매서운 겨울바람을 기다리는 게 낫지 않을까?
11월의 어느 날.
난 아직까지 갈등하며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변한 거라곤 바람이 조금 차가워진 것과, 내 발등위의 낙엽 몇 개. 그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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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제 기분에 따라 쓰던 글이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학교에 가려고 길을 나서는데 살갗을 파고드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다. 아, 이제 정말 가을이구나. 10월 5일이니 이제 여름은 지났을 법 하지.
한여름에 지독한 더위 속에서 은근히 가을을 기다렸던 나였다. 가을보다 겨울이 나을 법도 하지만, 겨울이 되면 뼛속까지 파고드는 이른바 혹한에 시달리면 거꾸로 여름이 기다려질 것 같다. 때문에 내게 가장 편안한 계절은 봄과 여름이 아닌가 싶다.
아직 낙엽 따위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하늘이 꽤 높아 보인다. 아침 공기도 갑갑하고 눅눅한 그것이 아닌, 꽤 상쾌하고도 시원하다. 이른 아침이 아닌데도 새벽 6시에 조깅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덕분에 오늘 등굣길은 지루하지만은 않다.
옛날 누군가가 가을을 두고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 했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이 찐다― 라는 뜻이다. 글쎄, 하늘이 높아 보이는 건 확실히 알겠다만 내가 살면서 말을 실제로 본 건 동물원에서 뿐이니, 정말 살이 찌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학교에 도착했다. 아! 운동장에 누구 하나 보이지 않는다. 단지 낙엽이라기엔 덜 마른 나뭇잎 몇 조각이 바람에 휩쓸려 데굴데굴 굴러다닐 뿐…, 왜 아무도 없는 걸까?
내게로 굴러오는 나뭇잎 하나를 툭 차준 다음 운동장을 가로질러갔다. 내가 조회대 앞까지 가는 동안 내 주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보이는 건 운동장, 들리는 건 바람소리, 냄새라면…, 음, 정적의 냄새라고나 할까.
그 정적의 냄새가 내 몸을 단단히 휘감는 순간,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그래, 애초에 가을의 힘을 빌려보겠다고 설쳤던 내 잘못이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교복을 입고 학교에 오는 이 꼴이 대체 얼마나 흉한지 모르겠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계절이 바뀌는 그 조용한 움직임을 누구의 방해도 없이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면 왠지 내 기분의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독서의 계절, 식욕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 하면 따라 붙는 수식어들이다. 하지만 내겐 느긋하게 책을 읽을 여유도, 이것저것 먹을 만한 입맛도 없다. 말이 살이 찌는지는 알 길이 없고, 그 높다는 하늘은 사실 내게 아무런 감흥도 없다. 그냥 높을 뿐.
내가 지나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래, 내가 왔던 곳으로 다시 가는 거다. 허나 이번엔 방향이은 좀 다르게 말이지. 분명 출발지와 같은 방향이지만 목적지는 다른 곳으로. 그곳에서는 새롭게 출발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곳에 가면, 아직까지 내 몸에 붙어있는 그것들을 모두 떨쳐낼 수 있을까. 차가운 가을바람도 이겨낸 그것들을 나 혼자 잊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냥 이 자리에서 매서운 겨울바람을 기다리는 게 낫지 않을까?
11월의 어느 날.
난 아직까지 갈등하며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변한 거라곤 바람이 조금 차가워진 것과, 내 발등위의 낙엽 몇 개. 그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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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제 기분에 따라 쓰던 글이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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