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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시공의 초월지점에서

2003.09.26 13:1009.26

준희는 대마법사 수진에게 물었다.

"새로운 마법을 터득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듣자 하니 그 마법은 시공
을 완전히 초월하는 마법이라던데,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으시겠습니
까?"

"물론 알려줄 순 있지. 하지만 그것은 자네에게 나와 같은 불행을
가져다 줄지도 모르기에 나는 신중해 질 수 밖에 없다네. 지금 나는
이 마법을 터득한 것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가 없고
이 마법을 터득하기 전으로 돌아 가고 싶어지기도 하고 이 마법을 폐
기하고 싶어지기도 한다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마법을 연구 할 수
없게 되었다네."

"더 이상 마법을 연구할 수 없어졌다니요?"

"이 마법은 나에게 필연적인 과제를 부과했기 때문이지. 그 과제를
해결하기 전까진 나는 어떤 마법도 연구할 수가 없다네."

"그 과제란 무엇입니까?"

"내가 시공을 초월하는 마법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자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네. 나는 항상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고 싶어 했고
그 노력이 인정을 받아 대마법사라는 영예로운 칭호도 얻게 되었지.
칭호를 얻은 뒤, 나는 더욱 맹렬히 연구에만 전념했네. 좀 더 제약
없는 상태에 이르는 마법, 좀 더 시공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마법을 찾기 위해 모든 세계의 고대의 마법과 현대의 마법과 미래의
마법을 연구했지. 그리고 결국 얼마 전 완벽하게 시공을 초월하는
마법을 터득하게 되었네. 이제 나에게 시간이란 '지금' 외엔 존재
하지 않고 공간이란 '여기' 외엔 존재하지 않는다네. 어느 곳, 어느
때에도 나는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지. 그렇게 나는 모든
시대 모든 곳에 편재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네... 그것은 실로 놀라
운 경험이었고 나는 '이제 드디어 우리가 시공의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나 완벽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고 생각하며 기쁨
으로 가득찼지. 그런데.. 나는 한가지 중요한 걸 잊고 만 거야.
시간이란 오직 '지금'밖에 남지 않고 공간이란 오직 '여기' 밖에
남지 않은 때가 왔을 때, 내가 할 것은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다
는 사실을 말이야. 시공을 초월한 그 경험이 처음에 놀라움으로
다가왔지만 그 마법을 쓰면 쓸 수록 나는 '내가 과연 살아 있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그 누구와도 언제나 만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나 혼자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듯한
기분에 더 할 수 없는 고독을 느껴야 했다네.  그런 나날들을 보내며,
나는 내가 애초에 가졌던 '시공을 초월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자
체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느낄 수 밖에 없었네. 그러나 나는 이미 다
시 되돌아 갈 순 없는 상황에 와 있었지. 다른 대마법사에게 부탁해
서 일루젼(illusion)마법에 걸리는 방법도 있기야 하겠지만 그 방법까
지 쓰고 싶진 않았네.  결국 이리도 저리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나에게 부과된 과제인 셈이지... 나는 이제 그 과제를 해결해야만 한
다네. 모든 시공이 초월되고 오직 '지금'과 '여기'만이 남았을 때
나는 대체 어떻게 존재해야 할 것인가? 라는 과제를. 그리고 그것을
해결했을 때만이 이 마법을 다른 이들에게도 알려 줄 수 있을 것
같네. 그때까진 지금처럼 은둔생활을 계속할 것이네."

대마법사 수진은 그렇게 말을 마치고 준희를 배웅했고 준희는
'시공을 초월함' 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준 수진에게 감사
하며 대마법사의 거처를 나왔다. 아직 하늘 가운데서 번개만이
내려치는 어두운 밤이었다.

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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