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방해꾼들

2015.06.07 09:4506.07

  나라에서는 그걸 유언비어라고 했다. 함부로 떠들지 말란다. 사회를 불안케 할 의도로 소문을 지어내는 사람을 색출하여 책임을 묻겠다고 발표했다. 참으로 무서웠다.
  나는 그들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다. 정부 놈들은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자기들이 배포한 보도 자료의 내용을 같은 날에 유언비어라고 번복하는 꼴을 본 후 기대가 사라졌다. 일찌감치 모든 기대를 접었다.
  덕분에 남들보다 이른 시기에 여러 개의 보건용 마스크를 확보할 수 있었다. 대부분이 KF80 마스크라서 아쉽기는 했지만, 유언비어라는 말을 믿고 있다가 뒤늦게 편의점과 약국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태반이니 아쉬워만 할 일은 아니었다. 그거라도 구한 게 어딘가.
  물론 모두가 마스크를 구하려고 애를 쓰는 건 아니었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오히려 그쪽이 더 많았다. 황 과장도 그중 하나다.
  “잠깐, 잠깐!”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렸다. 황 과장이 담배 냄새를 확 풍기며 엘리베이터에 뛰어들었다. 내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나자 그는 담배 냄새 때문인 줄 알고 너스레를 떨었다.
  “일찍 출근하네? 나는 사무실 들렀다가 모닝 담배 하러 내려왔다. 참내, 사옥 내 금연 정책인지 때문에 이거 매번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다. 귀찮아서 담배 끊어야겠네. 근데 니는, 니는 담배 끊었다고 했제? 아직 안 피나? 한 대도? 근데 와 끊었는데? 여자 친구가 끊으라 하드나?”
  왜 나이 40대가 되면 질문을 한 번에 하나씩 던지는 방법을 잊는 것일까. 나는 아직 30대라서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일까?
  “예, 안 피웠어요. 여자 친구한테 예쁨 받아야죠.”
  대충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답하며 엘리베이터 구석까지 물러났다. 담배 냄새 때문이 아니었다. 벌써 금연한 지 한 달이 됐다. 담배 냄새 좀 맡았다고 흡연 욕구가 치솟는 시기는 지났다. 내가 그를 피한 이유는 유언비어 때문이었다. 나라 말씀이, 유언비어.
  “근데 니는 어떻게 마스크 잘 구했네. 나는 우리 동네 싸악 돌아다녀 봐도 마스크가 하나도 없더라고. 사실 필요도 없는 건데 마누라가 하도 보채 가지고, 보통 피곤한 게 아니다. 공기 전염도 안 된다면서. 병원에 누워서 오늘내일하는 노인네들이나 위험하지 평소에 건강하면 걸려도 그냥 감기나 다름이 없어.”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는 척 웃어 주다가 내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리를 내어 다시 웃었다.
  “흐흐흐.”
  궁금한 게 생겼다. 글리벡을 장기 복용하느라 면역 능력이 저하된 가족이 있어도 황 과장은 저렇게 말할까? 글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 짐작해 볼 수 있을 만한 일이 벌어지긴 했다. 아침 회의 시간이었다.
  “팀장님. 오늘 쟤 마스크 쓰고 온 거 보셨습니까?”
  회의가 끝날 무렵 황 과장이 꺼낸 질문에서 이상한 익숙함을 느꼈다. 자동차 뒷좌석에서 안전띠를 착용하면 뭐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하이고, 오래 사시겠어?” 코웃음 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그 말투와 닮았다. 잠깐의 웃음을 위해 누구 하나 바보 만들 때의 말투. 
  나는 팀장을 쳐다보았다. 팀장의 선택이 궁금했다. 바보 만들기에 동참할까?
  “야야, 차라리 담배를 끊어라. 거 뭐 인터넷에 있는 유언비어 같은 거 믿고 호들갑 떨고 그럴 필요가 없어. 마스크 끼는 것보다 담배 끊는 게 훨씬 건강에 도움이 될 거다.”
  새해 첫날에 금연을 결심하셨다가 3일 만에 흡연자로 부활하사 “4,500원은 인간적으로 너무 비싸잖아.”라며 협력사 직원의 담배를 얻어 피우길 즐기셨던 팀장께서 건강에 대해 말씀하셨다.
  일개 협력사 직원인 내가 잠자코 주억거리며 웃고 있으니 옆에서 김 차장이 끼어들었다. 그녀는 내게 먼저 묻고,
  “너 담배 끊지 않았었어?”
  팀장에게 말했다.
  “얘 담배 끊었어요.”
  금연 목적으로 전자담배를 마련했지만 결국 전자담배와 그냥 담배 둘 다 물고 빨게 된 윤 대리도 끼어들었다.
  “너 전에 담배 피웠잖아?”
  보건소 금연 클리닉에서 니코틴 패치를 얻어 왔지만 결국 패치를 붙인 채 담배를 피우고 있다고 자조적으로 말했던 노 차장까지 끼었다.
  “그다음에 다시 금연했잖아. 너도 보건소 갔다 왔지? 한 달쯤 됐나?”
  나는 노 차장을 쳐다봤다가 팀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오늘이 딱 한 달째네요.”
  그러자 윤 대리가 다시 나섰다. 그는 내게 흠집을 내고 싶은 것 같았다.
  “진짜 안 피웠어? 한 대도? 설마. 한 대씩 피워 가며 금연했겠지.”
  회의실에 들어와 있는 모두가 날 쳐다보았다. 열네 명 스물여덟 개의 눈이 날 향했다. 그들의 시선을 마주 쳐다보고 있으려니 며칠 전 아침 뉴스가 떠올라 웃음이 날 뻔했다. 그걸 흉내 내 버릴까 하는 충동이 치솟았다. 다 유언비어입니다, 하고. 하지만 웃음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왜들 이러지? 짜증이 났다. 몸에서 열이 나는 기분이었다.
  “그게…….”
  입을 열자 목구멍에서 열기가 올라왔다.
  “그냥 생각을 바꾸니까 안 피워지더라고요. 담배를 입으로만 끊었다가 이내 다시 피우고 하다 보니, 내가 저기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마약 중독자 같이 느껴졌어요. 말로는 자기가 중독자 아니라고 하는데 손 벌벌 떨고 침 질질 흘리면서 벌건 눈으로 마약 찾아 돌아다니는 꼴이랑 다를 게 뭔가 싶고요. 갑자기 나 자신이 추하게 보였어요. 내가 추한 중독자라는 걸 인정하게 됐죠. 그렇게 생각이 바뀌니까 더는 담배를 못 피우겠더라고요.”
  회의실이 침몰하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김 차장은 당황한 듯 팀장의 눈치를 살폈다. 가만히 있어라. 구조의 손길이 올 때까지 가만히들 있어라. 
  천만다행으로 구조의 손길이 금세 찾아왔다. 화상회의 호출이 있었다.
  “운용본부입니다. 강서팀, 강서팀 나오세요.”
  회의실의 보이지 않는 벽에 금이 갔다. 그리고는 박살이 났다. 모두 그 깨진 틈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회의실을 빠져나간 김 차장이 화상회의 마이크를 잡았다.
  “예, 강서입니다.”
  그 뒤로 다른 직원들이 불편한 침묵 위를 쩔뚝이며 걸어나갔다. 나는 모두가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지막으로 회의실에서 나갔다. 후회됐다. 그냥 참을 걸 그랬다.
  화상회의는 김 차장의 애교 섞인 경고로 끝이 났다.
  “구 팀장님. 다음부터는 이런 거 그냥 전화로 물어보세요. 뭐 화상회의 호출까지 하고 그러세요.”
  화상회의 시스템 너머의 존재가 껄껄 웃으며 뭐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윤 대리가 갑자기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말을 거는 통에 그 내용을 듣지는 못했다. 그는 사무실 바깥을 향해 눈짓했다.
  “한 대 피우러 가자.”
  선택의 순간이 왔다는 걸 깨달았다. 동화책이나 소설책 속 이야기의 해적선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는 했다. 윤 대리는 내 앞에 널빤지를 걸어 놓고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한패가 되지 않으면 널빤지 위를 걸어야 한다. 널빤지 끝에서 바다로 밀려 떨어져야 한다. 윤 대리는 날 널빤지 위에 올려놓고 내 등에 칼을 겨누었다.
  나는 노트북 키보드 위에 양손을 얹고 그를 향해 웃어주었다.
  “다녀와. 전화는 내가 받을게.”
  윤 대리의 손가락이 파티션 모서리를 느릿느릿 세 번 두드렸다. 내 손가락은 키보드의 스페이스바를 세 번 두드렸다. 윤 대리가 피식 웃었다.
  “그래. 부탁 좀 하자.”
  윤 대리는 팀장, 노 차장, 황 과장을 비롯한 흡연자들과 함께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끽연의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담배 냄새를 잔뜩 몰고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에 돌아올 것이다.
  갑자기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그 담배 참 잘 끊었다.” 어머니는 지난 이 년 동안 매일 아침 챙겨 먹던 항암제를 오늘 아침에는 드시지 않았다. 간밤에는 열이 펄펄 끓었다. 내일 병원에 꼭 가시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시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열이 너무 내려 버린 어머니를 두고 출근했다. 그 유언비어. 나도 잡아먹혔을 것이다. 나는 사람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를 상황에 빠지면 익숙한 것을 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윤 대리와 흡연자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6층에 가 있던 엘리베이터를 불러 올라탔다. 문이 닫힌 후 나는 마스크를 벗어 거기에 침을 뱉었다. 그것으로 엘리베이터의 버튼들을 문질러 닦았다. 효과가 있을까? 몰라. 유언비어대로라면 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는 1층에서 멈췄다. 때마침 사옥 북문으로 흡연자들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야, 어디가?”
  노 차장의 목소리다. 대답하지 않았다. 일단은 집에 가야겠지. 자택격리 하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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