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마왕의 태양 아래

2011.12.29 00:0612.29


창밖의 검은 하늘을 보았다. 비가 올 것 같았다.
차라리 다행인지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저 하늘보다 더 어두운 빛깔의 갑옷을 닦으면서.
그때도 비가 내렸었지. 칠흑 같은 밤이었다고 하셨어.
그를 죽일 수 있었던 밤. 배신의 밤…….

Ⅰ.

갈라드는 갑옷과 투구를 정성스레 닦으며, 다락방 구석에서 그것들을 처음 발견했을 때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갑옷과 투구만큼은, 손질까지는 않더라도 허투루 보관하지 않았다. 철갑에는 하얗게 먼지가 앉아 있었고 땀에 전 안감에는 파랗게 곰팡이가 피어 있었지만, 사라진 과거의 영예가 담긴 최후의 유물처럼 그것들은 다락방 가장 깊숙한 곳에 온전히 놓여 있었다. 아마 어머니는 종종 다락에 올라 눈처럼 쌓여 가는 세월을 바라보곤 했으리라. 그것이 검었던 시절을 찾아볼 수 없게 될 때까지.
갑옷의 손질이 끝나자, 그는 그 위에 망토를 두른 다음 솔로 빗기 시작했다. 빛이 바랜 붉은 색의 기다란 망토였다.
망토는 그의 어린 시절 오랫동안 식탁보로 쓰였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걸 못마땅해 했다. 식사 때마다 누가 망토 위에 음식을 흘리지나 않는지 노심초사하던 아버지의 모습.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짜증을 냈고, 식탁보 하나 사 주지 못하던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끝내 체념했다. 아버지가 쓰러진 후, 갈라드와 그의 어머니는 더 이상 식탁보가 더러워지는 것을 조심하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가 죽고 나서, 그는 아버지로부터 그것이 본래 망토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젊은 시절 자기와 늘 함께했던 망토라는. 갈라드는 식탁보를 걷어 물에 빨았다. 자기 성장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던 그것을 수차례나, 깨끗이 빨았다. 마치 그 기억을 완전하게 지워버리려는 듯이. 그러고는 정성껏 손질했다. 그는 생각했다. ‘이제는 아무도 식탁보라 하지 않을 거야.’
갈라드가 아버지의 일기를 발견한 것은 그로부터 수년 뒤, 오랜 기간 지속된 고통으로 인해 아버지의 정신이 온전치가 못한 때였다. 그는 바스라질 것 같은 오래된 일기를 읽고 나서야 아버지가 한 말이 사실이었음을 알았다. 일기장은 불에 반쯤 탄 채였다.
갈라드는 손질을 마친 망토에 물을 뿌렸다. 그리고 벽에 걸린 칼과 방패를 쳐다보았다.
칼과 방패는 힘들게 찾지 않아도 되었다. 아버지는 여느 귀족의 저택에서 그러는 것처럼 그것들을 벽난로 위에다 걸어 꾸미고 싶어 했다. 어머니도 그것만은 반대하지 않았다. 초라하게 장식된 칼과 방패. 그 명성과 쓰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여느 몰락 귀족의 집에 걸린 싸구려보다 못해 보였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오랫동안 그걸 바라보곤 했다. 갈라드는 쓰러진 아버지가 온종일 그것만 보며 지내지 못하도록 침대를 돌려놓았다. 그러나 갑옷을 찾아낸 뒤에는 다시 되돌려놓았다.
갈라드는 칼과 방패를 벽에서 떼어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엄숙한 얼굴로 그것들을 닦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는 철에 슨 녹을 없애는 방법도 몰랐고, 무뎌진 날을 날카롭게 벼리는 법도 알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는 일을 해야 했다. 돌아가신 어머니나 오래전에 쓰러진 아버지는 가진 것이 없었고, 남겨줄 것도 없었다. 갈라드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못했던 고로킨의 대장간에서 잡부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나이 열 넷이었다.
갈라드는 무슨 일이든 열심히 했다. 그는 급료 대신 마고다의 빵집에서 받아 오는 작고 딱딱한 빵을 잘게 썰어 아버지와 나눠 먹었다. 그것이 그들 식사의 전부였다. 온통 배고픔의 기억으로만 가득한 시절.
허기와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갈라드가 쓰러지자 고로킨은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아내인 가스라는 갈라드의 어머니와 친하게 지냈었다. 아이가 없던 그녀는 갈라드를 딱하게 생각했고, 고로킨은 부인의 성화에 못 이겨 갈라드를 그들 집에서 식사하게 했다.
고로킨의 집에서 갈라드는 가능한 한 많이 먹었다. 그의 키는 작은 편이었으나 그나마 이때 잘 먹었기에 큰 것이리라. 그러나 고로킨은 그의 아버지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점은 가스라도 마찬가지였다. 갈라드는 남는 음식을 몰래 싸 가지고 가 아버지에게 먹였다. 그와 그의 아버지는 오 년을 그렇게 연명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식사를 마친 갈라드가 먼저 집을 나서 대장간으로 향했다. 대장간은 대장장이 하나가 사고로 큰 화상을 입은 탓에 소란스러웠다. 갈라드는 이 사실을 알리러 고로킨의 집으로 뛰어갔다. 그는 문간에서 고로킨과 가스라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그래도 일을 가르칠 순 없어.”
“하지만 너무 가엾어요. 저 애에겐 아무 잘못도 없잖아요.”
“부모가 죄를 지었지.”
“그때는…….”
“그만둬. 지금도 눈총 받고 있다고. 우리까지 곤란해질지 몰라.”
“다들 알잖아요. 그 애가 얼마나 열심인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야. 대장간 식구 전체의 문제라고. 당신이야말로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거 아냐. 그리고 우리 아이도 생각해야지.”
“하지만 난 그 애를 볼 때마다 아드로가……. 게다가 당신은 그때…,”
“조용히 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그리고 난 관계없어!”
“듣긴 누가 듣는다고 그래요?”
갈라드가 문을 노크하고 들어가자, 그들은 놀란 눈으로 어색하게 그를 맞았다.
그날 밤 갈라드는 아버지를 채근했으나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갈라드는 다락을 구석구석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봉해진 낡은 상자에서, 반쯤 타다 만 일기장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그걸 읽고서 비로소 모든 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기 불행의 근원을 깨달았으며,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경멸과 동정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끊어야 할 숙명 또한…….
그는 자기가 평생 대장장이가 되지 못할 것이고, 평생 잡부로서 입에 풀칠마저 힘든 삶을 살게 될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열심히 일했다. 아니, 열심히 일하는 척했다.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실제로 열심히 일했다. 그러면서 쇠를 달구고 날을 벼리는 일을 어깨너머로 익혔다.
급료로 받게 된 적은 돈은 필사적으로 모았다. 식사는 고로킨의 집에서 싸 온 음식으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간 조금 나아지는 듯싶던 아버지의 용태는 그가 약 사는 것을 그만둔 뒤로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운명이므로. 아버지와 내게 주어진 숙명이므로. 갈라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을에서 외따로이 떨어져 어두운 숲 속에 자리한 집에서, 갈라드는 밤마다 불과 쇠 다루는 법을 연습했다. 매일매일 눈여겨 둔 것은 아주 작은 것에 불과했다. 실력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조금씩 향상됐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에게 검을 만드는 수준까지는 필요치 않았다. 어차피 이대로는 평생이 걸려도 그리 되지는 못할 것이다. 무뎌진 아버지의 검을 다시 단단하고 날카롭게 만드는 정도면, 녹슬고 삐걱거리는 갑옷을 다시금 견고하고 유연하게 만드는 정도면 충분했다. 물론 쉽지는 않을 터였다. 갈라드는 아버지의 일기에서 보아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검이 진귀한 보검이라는 것을. 그는 각오하고 있었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고, 그는 믿지도 않는 신의 이름에 맹세했다.


갈라드는 검을 들어 불빛에 비춰 보았다. 눈이 부셨다. 검은 날에도 반사되는 빛. 일절 온기가 없는, 시릴 만치 차가운 빛. 그는 칼이 우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리 없다. 이것은 아버지의 칼이다. 아버지는 울지 않았다. 슬퍼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 칼은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무능하고 무력한 아버지를, 자신의 옛 주인을 경멸하고 있는 것이다! 갈라드는 검을 높이 쳐들었다. 조금만 기다려. 배신자의 피로 너를 덥혀 줄게. 놈의 심장에도 너를 박아 주겠어. 아주 깊숙이. 그것이 네 숙명이겠지. 너는 오로지 그걸 위해 태어났으니까. 그러자 대답이라도 하듯, 검붉게 물든 날이 몸을 떨며 희미한 광채를 번득였다.


갈라드는 검술에 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검과 방패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익히 보아 알고 있었지만, 그의 기억 속 아버지가 그것들을 제대로 다루는 모습을 그는 상상할 수 없었다. 일기의 내용은 머릿속에 쉬이 그려지지 않았다.
매일 밤 녹슨 칼로 숲의 어둠을 갈랐다. 칼은 무거웠으며, 동작은 서툴렀다. 그래도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일기에 적힌 것들이 사실이라면, 그에게는 아버지가 물려준 재능이 있을 터였다. 그리고 어머니의 재능 또한. 그는 엉성한 자신의 칼질을 보면서 잃어가는 자신감을 그렇게 메우고자 애썼다. 분명 그리 될 것이다, 라고. 이것이 진정 내 운명이라면…….
그가 생각하기에도, 스스로 운명이라 칭하는 그것은 무척이나 기묘했다. 운명을 몰랐다면 언제까지고 그렇게 열심히 살려는 노력만 하다가 끝내 무의미한 최후를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운명을 앎으로써 자신의 삶에 절망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잔혹한 진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그것에 종지부를 찍어 저주의 생을 넘어서려 하고 있다. 운명을 넘어서는 운명…….
문득 갈라드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내 진짜 운명이란 말인가? 그조차도 운명이란 말인가? 혹 벗어날 수 없는 발버둥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어둠을 가르는 금성(金聲)과 뜨거운 불꽃의 광휘에 의문은 이내 녹아 사그라졌다. 어둠 속에서 다람쥐 한 마리가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갈라드는 웃었다. 십 년. 그렇게 지난 십 년을 반추하는 자신의 감상적인 시선을 비웃었다.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가까스로 숨을 쉬는 아버지를 보았다. 이런 감상이 아버지를 좀먹어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로 만들었으리라. 그의 모습을 보라. 추하기 짝이 없는 이 모습을! 그 용맹스러웠다던 아버지가! 나는 절대 저리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절대로. 그는 다짐했다. 차라리 죽음을 얻을지언정…….
갈라드는 전날 깨끗이 빨아 말려둔 속옷으로 갈아입었다. 마른 천의 빳빳한 감촉이 몸을 감쌌다. 그 위에 전신을 감싸는 사슬갑옷을 껴입었다. 사슬이 서로 부딪히며 절겅거렸다. 반팔 소매 위로 드러난 맨살에 쇠붙이의 차가운 기운이 닿았다. 몸이 떨려왔다.
갑옷은 급료를 모은 돈으로 장만한 것이었다. 완성된 갑옷을 싣고 가는 도매상인의 뒤를 쫓아가 끈질긴 설득 끝에 손에 넣었다. 대장장이로서 고로킨의 명성은 제도(帝都)에까지 알려져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사지 않았다면, 아마 급료를 몇 년은 더 모아야 겨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상인에게는 절대 비밀로 부쳐달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그는 갑옷이 무겁다고 생각했다. 실재하는 운명의 무게가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갑옷은 훨씬 더 무겁겠지. 그는 종종 아버지의 갑옷을 입고서 훈련을 했었다. 압도적인 무게에 처음에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지금이야 문제없이 몸을 놀릴 수 있는 정도가 되었지만, 사슬갑옷마저 이토록 무거우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자기가 일하는 공방에서 만들어지는 물건임에도, 그것을 살 생각에만 부풀어 있었지 실제로 걸쳐볼 기회는 없었고, 그럴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두려운 눈으로, 붉은 망토가 둘러진 검은 갑옷을 바라보았다.

Ⅱ.

비 내리는 밤의 도시는 음산했다. 빛이 배어나는 창을 가진 오래된 건물이 드문드문 있을 뿐 사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갈라드는 길을 따라 도시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길은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았는지 곳곳이 무너지고 패어 있었다. 빗물에 넘쳐 오른 진흙으로 끈적거렸고,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흙탕물이 사타구니까지 튀어 올랐다. 길 양쪽에 늘어선 불 꺼진 집들은 네모난 빈 상자 같았다. 상점 건물은 오래전에 폐허가 된 듯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따금, 아직 영업을 하는 듯한 허름한 상점들이 덧문으로 가로막힌 채 쓸쓸히 서 있었다.
골드락시티가 수도였던 시절의 휘황찬란하던 거리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라면 가히 사무치는 애상에 빠져들 만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갈라드는 그렇게 번성했던 도시를 본 적이 없었고, 또 볼 기회도 없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관리가 잘 되는 듯싶은 구획이 나왔다. 길도 반듯했으며, 집집마다 불이 들어와 있었다. 집들은 대개 낡았지만 튼튼하게 지어진, 규모가 큰 것들이었다. 몇몇 큰 상점은 아직도 문을 연 채였다. 장막처럼 듣는 빗물 너머 밝혀진 등불 아래로 앞치마를 두른 남자들이 진열됐던 물건을 가게 안으로 분주히 들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갈라드는 어두운 거리를 헤매다 어느 집 문 앞에 이르러 발길을 멈췄다. 그 집은 주변의 다른 집들보다 규모는 작은 편이었으나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것 같았다. 갈라드는 나무문에 붙은 사자머리 금속 조상을 보았다. 조각 위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조그만 개폐식 창이 나 있었다. 그 위에 작은 문패가 붙어 있었다. ‘우도르’라고 새겨진 금박 문패였다.
갈라드는 사자 입에 물린 고리로 문을 두들겼다. 빗물을 잔뜩 머금어서인지 두꺼운 나무문이 무른 소리를 냈다. 잠시 뒤 바쁘게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벌컥 창이 열리고 잠에서 덜 깬 흐리멍덩한 눈이 나타났다. 눈은 갈라드를 아래위로 훑었다.
“누구요?”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말했다.
“우도르 씨 계십니까?” 갈라드가 말했다.
갈라드의 몸을 훑던 눈이 칼을 찬 허리에서 멈췄다.
“성에서 보냈소?”
갈라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리 성의 기사라 해도 예의바른 방문 시간은 아닌 것 같은데. 기사는 맞소?”
눈은 갈라드의 갑옷에 가 있었다. “무슨 볼일이오?”
“우도르 씨를 뵈러 왔습니다.”
“내일 다시 오면 안 되겠소? 적당한 시간에.”
구멍이 콱 닫혔다. 갈라드가 두드리자 다시 창이 열리고 눈이 나타났다.
“나는 우도르 씨를 만나러 온 겁니다. 당신은 도대체 뭡니까? 우도르 씨는 안 계십니까?”
눈알이 잠깐 파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뒤따라 나오는 목소리도 희미하게 떨리는 듯했다.
“나는 이 저택의 고용인이오. 밤에는 문을 열어줄 수가 없소. 그러니 돌아가시오.”
“왜 그래야 하죠? 당신이 뭔데요? 나는 그와…… 친분이 있어요.”
“이보시오. 골드락에서 우도르 씨와 친분 없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소? 그분 성품이 워낙 좋다보니 만만히 보고 밤마다 찾아드는 거렁뱅이가 한둘이 아니라고. 그럴 필요 없다고 그렇게 말씀드렸거늘……. 하여간 그럴 때마다 주인님을…,”
돌연 눈알이 옆으로 돌아가며 말이 그쳤다.
“무슨 소란이지?” 안에서 여자 목소리가 났다.
“아, 그게요, 마님…….”
창이 닫히고 말소리가 끊겼다. 다시 창이 열렸다. 나타난 것은 다른 눈이었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 눈동자. 눈동자는 갈라드를 보자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 말과 함께 눈이 뒤로 사라졌다. 얼마 후 도로 나타났다. 눈알은 불안하게 흔들리며 갈라드의 모습을 이리저리 훑고 있었다. 이윽고 탄성에 가까운 소리가 튀어나왔다.
“갈라드! 갈라드로구나!”
문이 열렸다. 서 있는 것은 평상복을 입은 중년여성이었다. 붉은 머리칼과 붉은 눈동자를 가진 여인. 여자의 시선은 아직도 갈라드에게, 아니 그의 차림새에 못 박혀 있었다. 정체모를 경이와 두려움, 그리고 그리움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일순 눈빛이 어떤 경멸의 감상을 담았다가 금세 지워버리는 것 같았다. 찰나였으나 갈라드는 그것을 느끼고 적이 당황했다. 이 여인은 무언가 알고 있는 걸까? ……내가 한 짓을? 갑옷에 미처 지우지 못한 피라도 묻어 있었던 걸까?
여자가 옆을 보고 눈짓했다.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났다. 여자는 그대로 문간에 서서 갈라드를 바라보았다. 아주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다. 여자는 망설이는 것 같았다. 갈라드의 어깨받이 위로 연신 빗방울이 떨어져 부서졌다. 그 파편이 안으로 튀어들어 바닥을 적시고, 여자의 치맛자락까지 적셨다. 이윽고 여자가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 누가 왔나 좀 봐요!”
안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누가 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백발을 병사처럼 짧게 자른 남자가 문가에 나타났다. 그의 강인해 보이는 얼굴이 순간 놀라움으로 굳어졌다. 푸른 눈동자 가운데 짙은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가 도로 작아지는 게 보였다.
“……아드로?”
“갈라드예요.” 여자가 말했다.
남자의 표정이 공포에서 당혹으로 바뀌었다.
“아, 갈라드! 이럴 수가! 넌 네 아비와 꼭 닮았구나! 그래, 어서 들어오렴.”
남자의 억센 팔이 갈라드를 붙잡아 집 안으로 이끌었다. 갑옷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마루를 적셨다. 갈라드는 복도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며 물로 그려진 자신의 흔적을 돌아보았다. 언뜻 그것이 붉은색인 것처럼 느껴져서 그는 흠칫 놀랐다.


벽난로의 땔감이 어느새 다 타들고 새 장작이 던져 넣어졌다. 갈라드는 그간 자신의 삶, 자기 가족의 삶을 건조한 어조로 부부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부부는 난로 옆과 한쪽 벽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 그의 이야기에 묵묵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시선은 각기 다른 곳을 향한 채였다. 그의 장황한 이야기에서 부부는 그 어떤 목적의식도 파헤쳐 낼 수 없었다. 그는 그것을 철저히 숨기고 있었다.
불길이 일렁일 때마다 그들 얼굴에 붉은 그림자가 춤추듯 너울댔다. 복도 가까이에 자리한 갈라드의 눈에는 그들이 어쩐지 불안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갈라드 자신도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는 허리춤에 찬 칼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불을 피우고 있음에도 공기는 축축하게만 느껴졌다.
우도르가 입을 열었을 때, 갈라드는 그곳을 지배하던 불편한 기운의 정체를 마침내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는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어.”라고 말했다. 갈라드는 허탈감을 느꼈다. 우도르는 갈라드네 가족의 궁핍한 삶에 단 한 번도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은 자신을 갈라드가 원망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 더구나 한때 목숨을 나눈 동료였던 친구를 구제하지 않은 자신의 풍족한 삶이 그 아들에게 까발려진 것 같아 그는 몹시 민망해하고 있었다. 아니, 외려 그는 그런 자신을 드러내게 만든 갈라드의 존재를 껄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커다란 집, 고풍스러운 실내 장식과 가구들, 그리고 요즘 세상에 흔치 않은 하인의 존재까지.
우도르는 갈라드가 목격한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우물쭈물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허나 정작 그 자신도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의 의미를 차마 되새겨 볼 수 없었다. 부끄러울 만큼 궁색할 것임이 분명하기에.
갈라드는 그들이 자기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감지했다. 문뜩 그는 한쪽 다리가 없는 사내, 자기가 죽인 그 사내를 생각했다. 형편없었던 그의 삶을 생각했다. 그러자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그는 소리쳤다. “저는 구걸이나 하자고 찾아온 게 아닙니다!”
창을 파고드는 빗소리와 장작 타드는 소리만이 계속되는 무거운 정적 속에서, 부부는 공포가 서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혐오 또한 서린, 미치광이를 대하는 눈으로.
“제가 이런 차림으로 온 건 협박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럼 뭐지?”
부부는 그의 칼을 내려다보고, 그의 투구를 올려다보았다. 갈라드는 투구를 벗지 않았다. 부부는 투구 아래 파묻힌 결의에 찬 얼굴을 보며 이미 어떤 해석을 내린 것 같았다. 그러나 애써 그것을 부정하는 듯했다. 그들 스스로 가망 없는 것의 가능성을 점치는 광인의 예감이라 여기며 거부하듯이.
“저는 성으로 갈 겁니다.”
이 말이 그들의 불안정한 자위에 흠집을 냈다. 그리고 뒤이은 말은 그것을 완전히 무너뜨리기에 이르렀다.
“놈을 죽일 겁니다.”
우도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의 아내는 탄식을 내뱉었다. 그런 그들에게로 갈라드의 차가운 시선이 갈마들었다. 반쯤 광기로 빚어져 투구 아래서 번득이는 눈을 보고 부부는 전율했다. 어쩌면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이런 상황을 예견했는지 모른다. 다만 본능적으로, 그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그가 직접 자기 입으로 말하기 전까지는. 도저히 부정할 수 없게 될 때까지는.
“갈라드…….” 우도르가 힘겹게 입을 뗐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너도 이해할 나이라 믿는다. 대체 그를 죽여서 어쩌자는 건지 말해 보거라. 네 말대로 한다고 해서…, 그래서 무엇이 바뀐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러면 이대로 있겠다는 겁니까?”
목소리는 멸시당한 정의의 울림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세상을 보십시오. 저도 세상이 어떤 꼴인지는 압니다. 그날 이후 세상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말입니다.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온 나라를 돌아다니는 상인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상이, 세상이 악으로 넘쳐나고 있다는 얘기를요. 모두가 정의의 도래와 승리를 노래하고 있다는 얘기를요. 당신들은 한때 용사였지요. 그런데도…, 지금 세상이 이 꼴인데도, 이대로 보고만 있겠다는 겁니까? 어디 한 번 말씀해 보십시오! 얼음의 궁수사(弓手士) 우도르! 아버지라면…… 그러지 않을 겁니다. 마왕이라는 작자가 우리 머리 위에 군림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우도르는 말없이 부지깽이를 들어 땔감을 들쑤셨다. 그리고 한동안 타오르는 불꽃을 보았다. 얼굴 위로 어둡고 붉은 기운이 불안하게 물결쳤다. 보다 못한 여자가 입을 열었다.
“갈라드, 너는…,”
“그만 둬, 아이라.” 우도르가 말을 막았다. 아이라는 불만스럽고, 또 여전히 두렵고 초조한 눈으로 남편을 보았다. 그는 그녀를 보지 않았다.
“갈라드,”
우도르는 장작을 휘저어 불티를 날리면서, 거기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했다.
“너는 우리가 실패했다는 걸 모르는 게냐?”
“……알고 있습니다.” 갈라드가 나직이 대답했다.
“그때 우린 어렸어. 철이 없었지. 자파디가 우리 중 가장 연장자였지만 그도 어리긴 마찬가지였어. 우리는…, 당시 우리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아주 깊은 절망이었지. 형체도 없는 불안 가운데 깊은 구렁처럼 자리 잡은 시커먼 절망이었다. 살기 힘든 시절이었지. 우리가 가진 거라곤 말 그대로 젊음밖에는 없었어. 쓸모도 없는 젊음이었지. 모두가 삶의 무게에 눌려 허덕일 때, 우린 그저 좌절할 뿐이었어. 아직 뜨겁게 생동하는 에너지를 의미 없이 소진하고, 하염없이 분노하고, 증오하면서…, 그렇게 나날을 보낸 거야. 맞아,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죽으면, 아니 그를 죽이면 이 모든 고통이 끝날 거라고. 우리가 부숴야만 한다고…,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그를 죽이는 것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길인 것 같았지. 바로 그것만이 끝없이 계속될 것 같은 이 고통을 끝낼 유일한 방법이라고,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를 죽이기로 한 거다. 하지만 결국은 실패했지…….”
“그리고 굴욕을 당했죠.”
우도르는 깜짝 놀라서 갈라드를 보았다. 그러다 금세 외면하여 다시 불을 향했다. 불로부터 잠시라도 시선을 거둬들이면 큰 재앙이라도 일어나는 양. 그는 거의 중얼거림에 가깝게 말했다.
“그래, 굴욕이었지. 고통이기도 했고…….”
순간 그의 눈동자가 분노로 움찔거렸으나 갈라드를 향하지는 않았다. 우도르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되살아나는 과거의 치욕과 맞서 싸우기를 원치 않았다. 잠시 뒤, 그는 인정하기 두려우나 어쩔 수없이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을 털어놓듯 힘겹게 말을 꺼냈다.
“그건 치기였어. 그래, 치기였지! 우리가 어리석었다. 광기에 사로잡혔던 건지도 몰라. 세상이 그것을 어떻게 얘기하는지, 어떻게 얘기했는지는 상관없어. 분명한 건 우리가 틀렸다는 거야.”
“그렇게나 강했습니까? 그가?”
우도르는 당황했다. 그 답이 무엇이든 개의치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해 보였기에, 그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다고 해야 할까? 그런다고 이 청년이 겁을 집어먹을까? 증오에 불타는 심장으로 긴 세월을 견뎌낸 이 아이가?
오랜 고심 끝에 그는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는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 갈라드는 부지깽이로 땔감을 휘젓는 우도르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표정이 굳어지지는 않는지, 손이 떨리지는 않는지……. 행여 그의 수치심이 드러나지나 않을까, 아니 어디에서 그것이 드러날까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갈라드가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것은 수치라기보다는 순수한 공포에, 그리고 지난 세월 동안 쇠약했던 용기에 대한 혐오와 회한에 가까운 것이었다. 갈라드는 거기에 하나의 가능성을 더했다. 어쩌면 이것은 배신자를 향한 분노인지도 모른다…….
“당신들은 배신자가 아니지요?”
갑자기 불길이 쉭쉭대며 흔들렸다. 창틀이 요란스레 울어댔다.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휘청이며 씨근대던 불은 얼마 안 가 힘없이 꺼져 버렸다. 어두워진 실내에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냉기가 돌았다.
우도르는 꺼진 불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아이라가 일어나 난로로 향했다. 갈라드가 긴장한 눈으로 그녀를 좇았다. 벽난로 위에는 자신의 집과 마찬가지로 무기가 장식돼 있었다. 푸른색으로 칠해진 활과 화살.
그러나 아이라의 손은 활이 아닌, 불붙은 초 네 개가 꽂힌 은장식 촛대로 향했다. 그제야 갈라드는 안도했다. 하기야 이 거리에서 활이 무슨 소용이랴.
아이라는 초로 땔감에 불을 붙이려 했다. 그 당연한 광경에 갈라드는 탄식했다. 부부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갈라드는 일어나 난로로 가 아이라 옆에 섰다. 희미한 장미향이 풍겼다. 아이라가 뒤로 조금 물러났다. 갈라드가 짧은 주문을 외자 손끝에 작은 불이 생겼다. 그는 불꽃을 던졌고, 장작이 한차례 짧게 폭발하더니 불이 붙어 타올랐다. 갈라드는 자리로 돌아가 앉은 다음 아이라를 보았다. 아이라는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붉은 머리와 대조되는 하얀 얼굴이 몹시 창백하게 보였다. 우도르는 말없이 난로만 들쑤셔 댔다.
“당신이 어머니께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한데 당신은 이 기술을 전혀 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쥬나가, 네 어머니가 그걸 썼느냐?” 우도르가 대신 말을 받았다.
“아주 가끔, 불을 구할 수 없을 때만 그랬죠. 우리 집은 성냥도 살 수 없을 만큼 가난했으니까요. 아버지는 노발대발하셨지만.”
그는 나무에서 튀어 오르는 불의 파편들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말했다.
“어째서 마법을 쓰지 않는 겁니까?”
대답이 없었다. 그의 시선이 아이라를 향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설마…… 봉인당한 겁니까?”
일견 조심스럽게 묻는 듯했으나, 거기에는 명백한 비아냥거림이 섞여 있었다. 우도르도 아이라도 그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갈라드는 무언가 값싼 승리를 얻은 양 유쾌하고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그야말로 굴욕이군요. 패배한 용사들이 목숨을 부지하는 법이라니.”
이 모욕에 용사들은 정말로 굴욕을 느꼈다. 그들은 무언가를 말하려다 꾹 억눌러 참았다.
“이런데 가만히 있겠다고요? 정말 이렇게 사는 게 좋은 겁니까?”
“나쁠 건 뭔가!”
돌연한 우도르의 일갈에 그는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차분한 태도를 되찾고는 말을 기다렸다. 우도르는 화를 가라앉히려는 듯 시선을 난로로 되돌렸다. 이윽고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려 갈라드를 향했을 때, 얼굴에는 분노가 아닌 어떤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마. 너 같은 사람들은 그가 세상을 완전히 망치고 있는 것처럼 떠들어대더구나. 마치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기라도 한 것처럼 온갖 요란을 떨면서 세상을 뒤집어야 한다느니 마왕을 죽여야 한다느니 선동하고 다니지. 한데 그것이 정말이냐? 아니, 그렇지 않아. 단지 모든 걸 그의 탓으로 돌려서 현실을 부정하려 드는 것에 불과해. 자기들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이루려는 생각은 않고 증오나 혐오에 의한 불가능한 단죄와 복수만을 주문처럼 입에 달고 살지. 너 같은 사람들을 부추기면서 말이야. 하지만 말이야…, 갈라드, 내가 진실을 알려줄까? 우리는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어. 맞아, 그때보다도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그때 우린 가진 게 없었지. 우린 별 볼일 없었다.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래서 너처럼 그를 죽이기를 꿈꿨던 거야. 마왕을 처단하겠다며 우쭐해져선 같잖은 추켜세움이나 받으며 마치 정말로 용사가 된 듯한 기분이었지! 내가 진짜 올바른 일을 하고 있구나, 내가 정의로구나 생각했던 거야. 하지만 생각해 보거라. 우리 같은 애송이가 용사니 뭐니 하면서 나라에서 제일가는 성채로 쳐들어간다니, 그게 말이냐 되느냐? ……알겠느냐, 갈라드? 사실은 아무도 그러려고 하지 않았던 거야. 그들은 알고 있었어, 그게 망상에 불과하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던 거야……. 갈라드, 세상은 똑같아. 누가 죽든 누가 지배하든 세상은 늘 그런 모습이었어. 우리가 그걸 다르게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못할 뿐인 거다. 너도 나이가 들면 알게 될 거야. 우린 지금 행복해. 사실 살면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도 없었지.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고, 예쁜 딸도 있어. 그 녀석은 이제 대학에 갈 거야. 갈라드, 네가 왜 우리한테 왔는지는 알겠다. 하지만 우린 그럴 생각이 없어. 그럴 능력도 없고. 네 아비의 친구이자 동료로서 이렇게 부탁하마. 제발 마음을 돌려라. 넌 아직 젊어. 아직 기회가 있다. 이제 그만 증오의 삶에서 벗어나! 증오는 널 망칠 뿐이다.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맞고 말 거야. 있지도 않은 허상을 좇지 마라, 갈라드!”
갈라드는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세상은 언제나 같다’라…….”
아이라가 불안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갈라드는 고개를 쳐들었다. 눈은 극심한 경멸과 분노로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삶은 그렇지 않았죠.”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갈라드는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때 용사였던 부부의 눈에는 그의 손이 천천히 칼집으로 향하는 게 똑똑히 보였다. 몹시 미세하고 섬세한 움직임이었다. 거세진 비가 더욱 심하게 창을 두들겼다. 부부는 갈라드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주의 깊게 눈빛을 교환했다. 이윽고 아이라의 입술이 보일락 말락 들썩였다. 알아채지 못할 만큼 희미한 오오라가 그녀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녀는 주문을 외고 있었다!
갈라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실히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자기가 알지 못하는 저류에서 무언가 은밀히 진행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우도르의 눈. 냉철한 전사의 빛을 띠어 가는 눈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갈라드의 손이 칼자루로 점차 가까워져 갔다. 식은땀이 났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용사였던 이 둘을? 새삼 두려움이 마음을 휘감았다. 한때 ‘붉은 파괴자’라 불리던 마법사 아이라가 등 뒤에서 주문을 외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마법을 봉인 당했다고 했다. ……아니다. 아마 거짓일 테다.
그녀는 여덟 살 때부터 저 혼자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한 신동이었다.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마력으로 인해 ‘무자비의 적마도사(赤魔道士)’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당시의 마력 중독으로 눈동자와 체모가 타오르는 진홍빛으로 변했다고 한다. 우도르와의 만남으로 안정을 되찾았다지만, 본질적으로 그녀는 나와 같다. 이제껏 마법과 함께해 온 그녀의 삶이, 삶의 근간을 이루어 온 그것 없이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고 온전히 지탱할 수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녀는 마법을 쓸 수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벌써 시전(始展)의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닐까? 어째서 좀 더 일찍 눈치 채지 못한 걸까? 우도르. 그렇다. 우도르 때문이다. ‘얼음의 궁수사’라 불리던 냉혹한 저격수. 활도 갖지 않은 그에게 온 경계심을 쏟느라 마법사를 그만 놓쳐버린 것이다. 바보 같았다. 바보 같으니라고! ‘불과 얼음’이라 불리며 맹위를 떨치던 그들이 아닌가? 어째서 방심하고 말았는가? 갈라드는 자책했다. 그렇지만 체념하여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지금 내게는 용맹했던 그들 모두를 이끌었던 흑철검(黑鐵劍) ‘갈브라드’가 있다!
그의 손은 이미 칼자루에 당도해 있었다. 그것을 꽉 움켜쥐었다. 요철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축축한 실내에 바싹 마른 긴장이 조용한 폭풍처럼 휘돌았다.
그때였다. 이 모든 긴장과 정적을 일거에 허물어뜨리는 낭랑한 목소리. 이 층으로 통하는 계단으로부터 젊은 여인의 구슬 같은 말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손님이 오셨나요?”
뒤이어 목소리의 주인이 조용조용 계단을 밟고 내려왔다. 갈라드는 우도르의 푸른 눈동자에 서렸던 얼음이 단번에 녹아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아이라를 보았다. 그녀는 아무런 기운도 띠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반쯤 무너져 내린 전의 속에 당혹이 끼어든, 딱해 보일 만치 우스꽝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기회가 아닐까. 갈라드는 생각했다. 그렇다. 지금이다. 지금 해야 한다. 마침내 그가 자신이 취할 행동에 대한 결정을 내렸을 때, 목소리의 주인공이 계단참 아래로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소녀였다. 얼굴에 수줍음이 잔뜩 어린 자그마한 숙녀가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집안에 부는 습한 바람마저 상쾌한 미풍인 양 산들산들 경쾌하게 움직이는 소녀. 아담하고 가녀린 체구와 거기 달린 조그만 머리, 타는 듯한 붉은 색의 긴 머리칼. 그리고 홍조를 띤 얼굴 가운데 새겨진 바다처럼 깊은 눈동자……. 그녀는 신기한 듯 그 파란 눈동자를 크게 뜨고 있었다. 갈라드는 그 모습이 집 근처 숲에서 본 다람쥐, 나무 뒤에 숨어 놀라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자기를 훔쳐보던 다람쥐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갈라드와 눈이 마주친 소녀는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목례를 했다. 갈라드는 멍하니 그녀를 보면서 칼자루에서 스르르 손을 풀었다.
“에오레, 지금 손님과 이야기 중이다. 그만 올라가서 자거라.”
아버지의 말에 무언가를 감지한 듯 아름다운 두 눈에 막연한 불안이 떠올랐다. 그러다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는지 곧 그것을 지워버리는 듯했다. 그녀는 금방 삐친 것처럼 볼을 부풀리고서 입을 삐죽였다.
“내일 학교 쉬는 날이에요. 친구들과 제도(帝都)에 놀러가기로 했어요. 비가 와도 갈 거예요. 일찍 깨우지 않으셔도 돼요.”
그녀는 갈라드에게 다시 한 번 목례를 한 후, 가볍고 사랑스러운 몸짓과 함께 계단 위로 사라져 버렸다…….
그녀가 서 있던 자리를 한동안 물끄러미 보고 있던 우도르가 입을 열었다.
“저 애를 기억하니? 어릴 때 너를 잘 따랐었지.”
그는 갈라드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끝내 나오지 않았다. 오래도록 정적이 있었다. 장작을 핥는 불길이 이따금 쉭쉭 소리를 내며 밖으로 혀를 내밀었다. 부부는 한층 어두워진 얼굴로 붉은 빛이 너울대는 갈라드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마. 널 도울 수 없어. 그러니 우리를 그냥 놔 둬.” 우도르가 말했다.
갈라드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그를 향했다가, 아래로 내리깔았다. 투구 밑으로 그림자가 져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우도르가 불현듯 무언가를 알아챈 듯했으나, 그는 머뭇거렸다.
마침내 “갈라드,”하고 조심스레 말을 꺼낸 그는 아이라를 돌아보았다. 아이라의 얼굴에는 짙은 근심과 불안이 어려 있었다. 그는 시선을 되돌리고서 말을 이었다.
“나는 알고 있다. 네가 왜 그러는지. 아니, 왜 그래야만 하는지. 너는 절망하고 있는 거야. 너는 미래 따윈 없는 희망 없는 삶을 살았지. 도저히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을……. 그리고 이제 거기서 탈출하려고 하는 거야, 그렇지?”
우도르는 갈라드의 표정을 읽어보려 했지만, 그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고 있었다. 그는 우도르의 말에 분노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우도르의 말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 할 수 있었다. 갈라드는 깊고 긴 절망과 우울 속에서 세월과 청춘을 보냈다. 결국에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리라는 절망감. 지독한 무력감. 형편없는 품팔이의 삶. 그는 스스로를 죽지 못해 사는 밑바닥의 인간, 아니 벌레라고 생각했다. 혹은, 이미 죽어 있는 삶이라고. 이미 죽어 있는 더럽고 역겨운 벌레. 치장할 것도 없는 벌레 그대로의 삶이라고.
그는 오래전에 이런 의문을 품었었다. 이미 죽어 있는 운명이라면, 그 죽음이 어떻든 무슨 상관이랴? 내 스스로 죽음의 형태를 선택한들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어차피 죽어 있는 운명인 것을. 그리고 그는 계획했다. 아니, 꿈꾸었다. 삶보다 나은 죽음을. 그 비장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절망에 기댄 분노로써 마련한, 아무런 미래도 희망도 존재하지 않는 지긋지긋한 삶으로부터의 탈출구. 지금까지 그는 그 때문에 자신을 잃지 않고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로지 그 때문에.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방금 전 그는 자기 안에 무언가 불쑥 들어와 자리 잡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한줄기의 가느다란 끈 같은 희망. 그것은 너무도 연약하여 금방이라도 끊어져서 어둠 아래로 가라앉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가련한 희망이 절망 아래 묻히는 순간, 그는 깊이가 가량없는 칠흑 같은 절망 아래 더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분노와 증오를 수반한 절망보다 더 깊은 절망. 분노조차 할 수 없으며 종국에는 스스로를 혐오하는 길밖에 없는, 아무런 목적도 의지도 가질 수 없는 순수하기만 한 절망. 그것을 맛보게 하는 것은 간단하다. 도저히 잡을 길 없는 희망을 손에 잡힐 듯 보여 주었다가 도로 빼앗아 버리면 그만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이 발하는 빛에 헛되이 밝혀졌던 영혼은, 결국은 소유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빛이 사라진 자리, 더욱 짙은 어둠의 귀환 아래 침잠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갈라드는 그러한 절대적 절망을 맛보는 중이었다.
“……내가 너를 도와주마. 네가 바라는 방식대로는 아니어도 난 널 도울 수 있어. 네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도울 수 있다. 괜찮은 직장을 얻고, 근사한 집도 구하고,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그렇게 너도 남들처럼 행복하게 사는 거다. 네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갈라드는 이겨냈다. 자신의 삶, 자신이 믿던 것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새로운 절망과 그것의 회복을, 그는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새로운 시작? 새로운 시작이라고? 무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는 알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아이가 어머니의 배를 박차고 나오는 순간 깨닫게 되는 진실을. 새로운 시작, 새로운 시작에의 희망. 그것은 새로운 절망과 새로운 고통에 불과할 뿐이다!
그는 급격히 빠져들었던 새 어둠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자신의 어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확신했다. 절망이 일으키는 투쟁의 영역.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여기다. 이것이 나다. 내 운명이다. 내가 치를 죽음. 내가 선택한 최후……. 이제는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겠습니다.”
갈라드는 단호히 말했다.
우도르의 말이 그쳤다. 그는 얼빠진 사람처럼 멀거니 갈라드를 쳐다보았다.
“저는 그를 죽여야만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들 뜻은 알겠습니다. 저도 더 이상은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우도르는 침울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아이라의 얼굴은 여전히 굳은 채였지만, 어쩐지 안도하는 기색이 보였다. 얼마 후 우도르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말했다.
“그렇다면…, 네가 정 그럴 수밖에 없다면…, 그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는 없겠니?”
갈라드와 아이라의 시선이 그에게 못 박혔다. 그는 계속 말했다. 아내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면서.
“네가 혼자서 무슨 훈련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너도 우리가 얼마나 무력했는가를 알고 있을 테지. 세상이 그렇게들 떠들어대지 않더냐? 맞다, 솔직히 말하마. 너로는 어림도 없어. 너는 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있을 거야. 더구나 너 혼자로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계획을 세우는 게 어떻겠니? 물론…, 네가 기어이 그래야만 하겠다면 말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널 도울 수도 있어. 조급해서 될 일이 아니야. 이대로는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말 거다!”
아이라가 끼어들려 했으나 이번에도 남편의 제지에 가로막혔다. 우도르는 갈라드의 반응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갈라드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도르가 따라 일어났다.
“어째서냐? 어째서? 왜 그래야만 하는 거냐? 왜…,”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불현듯 무서운 생각이 뇌리를 스친 것이다.
“설마…, 네가 아드로를?”
셋 모두 얼어붙은 듯 꼼짝하지 않았다. 아이라의 얼굴은 공포로 순식간에 납빛이 되었다. 그런 부부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갈라드가 천천히 입을 뗐다.
“아버지는 살아 계십니다.”
긴장이 일순 풀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잇달아 나온 말이 기어이 그들을 큰 충격에 빠뜨리고 말았다.
“자파디를 죽였습니다. 내 손으로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이라였다.
“도대체 왜 그랬지? 그는 불쌍한 노인일 뿐이야!”
갈라드는 지극히 차분하고 냉정한 태도로 답했다.
“그는 배신자니까요.”
“맙소사.”
그제야 부부는 알겠다는 듯, 놀란 얼굴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망연한 우도르가 의자 깊숙이 몸을 묻고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네 아버지가…… 네게 그렇게 말해 준 게냐?”
갈라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의자를 돌아 나올 때 마른 망토가 부스럭거리는 게 느껴졌다.
우도르와 아이라는 문으로 향하는 그의 모습을 조용히 눈으로 좇았다. 그들은 지켜보았다. 벽에 일렁이는 그림자가 길어졌다가 그가 멀어질수록 작아지고, 최후에는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를 완전히 삼켜버리는 것을.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들을 죽일 각오까지 하고 이곳에 왔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겠습니다.”
잠깐의 침묵 뒤에 말이 이어졌다.
“저는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격렬한 폭우 소리가 밀어닥쳤다.
갈라드의 기척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부부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실내는 요란한 빗소리로 가득했다. 비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열린 문으로 찬 기운이 불어닥치고 난로의 불길이 휘청거렸다.
우도르가 생각에 잠긴 채 입을 열었다.
“……그가 택한 삶이야.”
아이라는 침통한 얼굴로 창밖을 보았다. 빗물이 후드득후드득 창에 부딪어 부서졌다.
“아버지가…… 아들의 인생을 망쳤군요.”
그녀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불쌍한 자파디……!”
우도르는 말없이 일어나 문으로 갔다. 비가 들이쳐 현관을 적시고 있었다. 그는 문밖을 내다보았다.
밖은 어두웠다. 쏟아지는 빗줄기마저 어둠에 녹아들어 보이지 않았다. 대지를 집어삼키는 소리만이 있을 뿐이었다. 언뜻, 우도르는 그 암흑 속에서 무언가를 본 것 같았다. 남자의 뒷모습 같았다. 그는 그것이 갈라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작고 어두운 형체는 이내 검은 빗속으로 숨어 사라졌다.
한참이나 어둠을 응시하던 그는 시선을 들어 멀리 솟은 성을 향했다. 비에 가린 검고 웅장한 형체가 아스라이 보였다.
그는 아드로를 생각했다. 어린 아들을 작열하는 태양 아래 높이 쳐들고 기뻐하던 아드로의 모습을.
“아들이 아비를 망쳤는지도 모르지…….”
그는 잠시 성을 보다가,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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