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밤꽃나비-변태

2010.03.15 02:2003.15

밤꽃나비-변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봄날이었다. 날은 포근했고 꽃바람은 하늘하늘 불었다. 미적지근한 봄비가 몸에 맞지 않는 내 정장을 적셨다. 내 시선은 다른 어른들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낮았다. 나는 어렸고 작았다. 새카만 옷을 입은 사람들 틈에서 나는 낯선 노파를 보았다. 그 노파는 치주질환은 10가지 넘게 앓고 있는지 이가 새카맸다. 새카만 이를 드러내 보이며 노파는 웃었다. 학교 화장실에서나 풍길 듯한 눅눅한 악취가 풍겼다. 노파는 내 손을 붙잡았다. 노파의 손은 달팽이처럼 축축했다. 나는 불쾌한 나머지 손을 뺐다. 노파는 3cm는 넘어 보이는 손톱을 들어 나에게 삿대질했다.

“네 등 뒤에서 저주의 그림자가 보이는구나.”

나는 으스스한 노파의 미소에 겁을 지레 먹었다. 나는 노파를 피해 도망갔다. 노파의 목소리는 머릿속에 계속 울렸다. 위이잉- 하는 이명耳鳴이 불쾌하게 귀를 후벼 팠다. 나는 넋을 잃고 쓰러졌다. 주위 어른들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깨어나지 못했다. 나는 응급실에 입원했고, 어른들은 안쓰럽게 나를 바라봤다. 부모를 잃은 쇼크로 기절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링거를 꽂은 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저주라는 글자가 망막 위에 맴돈다. 시간이 지나고 이때의 기억은 흐릿해져갔다. 한 때의 공황과 망상이라 생각했다. 나는 중학교 때에 부모를 잃은 불쌍한 아이지만 그 외에는 정상적이었다. 삼촌 부부 밑에서 중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때에는 내 스스로 자취를 결정했다. 집안 어른들은 일찍 철이 들었다며 나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고교 1년이 시작되었다. 적어도 처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나는 평범하고도 평범한 고교생활을 보냈다. 내 주위의 이상과 변덕과 흠칫함과 사이함을 깨달은 것은- 여름방학이 시작된 후였다. 절대로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나타나고, 불쾌한 불행과 사나운 죽음이 목소리를 가지기 시작했다. 섬세한 세계가 조각조각 박살나고 이면이 모습을 드러낸다. 망가진 톱니바퀴가 기이한 방향으로 맞물려 돌아간다. 이 이야기를 어디부터 시작해야 될까. 분명 사람들은 믿지 않을 이야기. 오랜 옛날 전설이나 민담, 도시괴담 같은 헛소리. 보지 않고 듣는다면 시시한 이야기들. 진정성 없는 환상. 귀납적 사고로는 추론할 수 없는 진실. 노이즈 섞인 싸구려 호러 영화…….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근처 남녀공학사립이었다. 입시성적은 중간 정도의 고교.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으며, 널널하게 놀지도 않는 어중간한 애들이 모이는 곳이다. 최상위 대학보다는 약간 낮은- 그러나 이름 있는 틈새 대학을 노리는 기회주의자들이랄까. 나는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고 근처 대학가에 자취방을 마련했다.

나는 1학년 4반이었다. 담임은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남자선생이었다. 그렇기에 아이들 지도에 그다지 관심도 없었고 방치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는 그런 선생이 더 좋은 편이었다. 쓸데없는 관심도 없고 체벌도 없었다. 나는 그런 우리 반이 썩 마음에 들었다. 우리 반에는 학기 초부터 경망스럽기로 유명한 녀석이 있었다. 김봉구라는 녀석이다. 우리는 그 녀석을 경멸과 경외를 담아 김본좌라 불렀다. 봉구는 컴퓨터에 테라 단위의 야동과 망가를 쌓아두는 녀석이었다. 물론 그런 이유가 있었는데 봉구는 인터넷 유료 웹디스크에 음란물을 올려서 용돈벌이를 하는 녀석이었다. 한 달 수입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자칩 정도로 짭짤한 것은 틀림없었다. 녀석의 시계와 스니커즈는 언제나 메이커였으니까 말이다.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안 좋은 소문이 퍼졌다. 정작 봉구 본인은 그런 평에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녀석에겐 밋밋한 고교생들과 비교도 안 되는 쭉쭉빵빵 S라인들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여자애들 사이에서는 평이 안 좋지만, 봉구는 남학생들 사이에서 은연 중 인기가 있었다. 봉구가 날라주는 엄선된 야구동영상은 매력적이었으니까. 나 역시 자취방에서 외롭게 기생하는 남정네였기에 봉구의 도움을 몇 번 받았다.

본인은 돈벌이로 음란물을 모은다고 떠벌이지만 사실 처음부터 돈벌이가 목적이었을 리가 만무하다. 우리는 봉구를 일찍 성에 눈을 뜬 선구자-라고 쓰고 변태라고 읽는다. 김변태, 김본좌라는 말이 본명보다 입에 더 익을 무렵, 고교 첫 번째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물론 말이 방학이지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하러 꼬박꼬박 학교에 나와야 된다. 나는 우연찮게도 열람실 자리를 봉구 옆에 배정받았다. 싫든 좋든 여름방학 내내 얼굴을 맞대고 있어야하는 셈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남자애들은 봉구 옆에 우르르 몰려다녔다. 봉구는 최신 야구동영상을 맛깔나게 요약해서 떠벌이는데 소질이 있었다. 듣기만 해도 아랫도리가 불끈불끈 솟을 정도였으니까. 오히려 앵간한 야동보다 봉구 이야기가 훨씬 꼴렸다. 봉구의 19금 스터디 시간에 항상 빠지지 않는 녀석이 있었는데, 그 녀석의 이름은 박일태. 키가 약간 작지만 자존심 강하고 센 척하는 녀석이었다. 물론 아이들은 그 센 척이 허세란 걸 잘 알고 있기에 겁내지 않는다. 오히려 박일태가 놀림을 당하는 처지였다. 일태는 쉬는 시간이면 봉구 옆에 달싹 붙어 다녔다.

여름방학이 시작된 지 2주일 무렵이었다. 점심시간에 모인 아이들 중심에는 봉구가 있었다. 봉구는 넘치는 입담으로 팔뚝만한 거시기를 지닌 흑인과 176cm의 쭉쭉빵빵 백마 이야기를 펼쳤다. 이야기가 끝나갈 쯤에 일태는 은근슬쩍 무리에서 빠져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오줌이 마려웠나? 나는 일태를 힐끗 보다가 신경을 끄고 MP3를 들었다.

사건은 5분 후에 터졌다. 어느 학교든 항상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무리가 있다. 그 무리들은 대게 좀 논다는 양아치들이다. 무리지어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녀석들. 그런 양아치 무리들이 복도에 우르르 몰려나와 소리 높여 웃었다. 나와 아이들은 창문을 열고 복도를 바라봤다. 양아치들은 일태를 둘러싸고 킬킬 웃어댔다.

“씨발, 이 새끼 봐라? 존나 웃기네. 화장실에서 딸딸이 치고 자빠졌어. 씨발, 똑바로 들어. 니가 싼거잖아.”

일태는 새하얗게 얼룩진 휴지를 들고 있었다. 나는 일태가 왜 걸렸는지 과정은 모른다. 하지만 일태는 학교 화장실에서 딸딸이를 치다가 질 나쁜 양아치에게 걸렸다. 최악의 경우였다. 일태가 소리나지 않게 조용히 작업을 했다면- 목격자가 소리가 나더라도 그걸 무시할 정도로 무신경함을 지닌 남학생이었다면- 이런 사태까지 치닫지 않았을 것이다. 일태는 전교생 앞에서 쪽을 당했다. 학교에서 딸딸이를 친 병신이라고 손가락질 받았다. 일태는 그날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안면 뻔뻔한 봉구조차 일태와 상대하지 않았다. 자존심 강한 일태가 이런 학교생활을 어떻게 보냈을까? 난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어느 날부턴가 일태는 자켓을 입고 등교했다. 반팔 교복 위에 옷을 하나 더 입은 것이다. 일태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자켓을 벗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도 그 이유를 묻기는커녕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 날이 갈수록 일태는 더욱 두텁고 빵빵한 옷을 입었다. 나중에는 겨울용 패딩점퍼를 입고 왔다. 일태 근처에는 불쾌한 냄새가 났다. 땀 냄새라고 생각했으나 조금 달랐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눅눅한 악취였다. 짠내 나는 땀 냄새는 아니었다. 일태 근처에 앉은 아이들은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다고 투덜거렸다. 선생도 일태의 옷차림이 주의를 줬지만 일태는 발작적으로 발악하며 난동을 부렸다. 일태는 학교에 와서 하루 종일 앉아 있다가 집에 갔다. 점심도 먹지 않았고 매점도 가지 않았다. 화장실도 물론이다. 말 그대로 와서 앉아 있다가 종이 치면 집에 갔다. 나는 그런 일태가 안쓰럽다기보다는 호기심이 발동해서 빵과 우유를 가져다주며 말을 걸었다. 일태는 게 눈 감추듯 빵을 우걱우걱 씹어 먹고는 ‘고마워.’ 라고 짧게 말했다. 일태는 학교에서 아무 것도 먹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배가 고픈 게 분명했다.

일태가 앉은 자리는 지저분한 액체로 젖어있었는데, 교실청소하는 아이들의 말에 따르면 땀도 아닌 질척하고 끈적하게 달라붙는 액체라고 한다. 무엇보다 날이 갈수록 그 액체의 냄새가 명확해졌다. 마치- 그건 정액냄새 같았다.

그 무렵 우리학교에 실종자가 생겨났다. 실종자들은 노는 부류의 양아치들이었다. 그 녀석들이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문제아였기에 선생들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종자가 3명, 4명이 되면서 사건은 커져갔다. 경찰들도 교문 앞에 얼쩡거렸다. 경찰은 학생들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뉴스와 신문에 뜰 정도로 사건이 커졌고, 학교보충수업은 중단되었다. 덕택에 나는 방학다운 방학을 보냈다. 밤새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다가 새벽쯤에 잠들기도 했다. 방탕한 자유는 불량식품처럼 달콤했다.

그날도 나는 방안을 뒹굴뒹굴 구르며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내 책상에는 빌려온 만화책이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절반 쯤 읽었을까? 나는 배가 고파졌다. 냉장고는 텅텅 비어있었다. 시계를 바라보니 새벽1시였다. 나는 요기꺼리를 사러 편의점으로 갔다. 낮이었다면 건너편 편의점 알바생 누나가 예쁘기에 그쪽으로 갔겠지만, 밤에는 남자가 아르바이트하기에 가까운 곳으로 갔다. 나는 김밥과 라면을 집어 들었다. 계산하는 동안 나는 바깥을 바라봤다. 조용한 거리는 을씨년스러웠다.

“4600원입니다. 현금영수증 필요하십니까?”
“아, 아니요.”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하며 시선은 창밖으로 고정했다. 나는 분명 보았다. 점퍼를 뒤집어쓴 무언가가 어두침침한 골목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뻘뻘 흐르는 한여름에 점퍼라니? 나는 그 점퍼의 정체가 일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계산을 끝마친 나는 집으로 가지 않았다. 점퍼가 사라진 골목으로 천천히 따라 들어갔다. 고장 난 가로등은 불이 들어오지 않아 골목은 더욱 어두웠다. 구름에 가려져 희미해진 달빛을 따라 지저분한 거리가 보였다. 인적이 거의 없는 골목이었다. 이 골목을 따라 나가면 공터가 하나 나온다. 골조에 콘크리트만 엉성하게 바른 4층 빌라가 세워진 공터인데, 공사가 중단되어 건물은 그 상태 그대로 방치되었다. 나는 일태로 추정되는 점퍼를 입은 무언가가 도색 안 된 콘크리트 빌라 안으로 들어가는 걸 바라봤다. 나는 따라 들어가려다가 포기했다. 대신에 그 근처에서 점퍼가 나오길 기다렸다. 단지 변덕스러운 호기심이었을 뿐이다. 20여분이 지났다. 나는 기다리는 것을 포기할까? 고민했다. 그쯤에 점퍼가 건물 밖으로 나왔다. 눈의 착각일까? 점퍼가 더 커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등 부분이 낙타 혹처럼 살짝 둥글게 튀어나왔다. 노트르담의 꼽추의 위너 버전이랄까? 점퍼는 야구모자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점퍼는 엉거주춤한 걸음걸이로 어디론가 걸어갔다. 나는 한참이나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잡으며 점퍼가 다시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점퍼가 다시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빌라로 올라갔다. 버려진 건물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위로 더 올라가자, 습한 정액냄새가 났다. 나는 이쯤에서 다시 돌아갈까 고민하다가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갑자기 다리가 무거워졌다. 진득한 액체가 신발바닥에 묻었다. 나는 휴대폰 액정을 비추며 주위를 둘러봤다. 바닥은 물론이고 벽을 따라 정액냄새 풍기는 점액질이 흥건했다. 천장에서도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나는 불쾌함에 몸서리치며 건물을 빠져나오려했다.

“으, 으으.”

신음소리. 나는 찰나동안 갈등하다가 소리가 난 곳으로 다가갔다. 내 발은 무언가에 걸렸다. 나는 휴대폰 액정을 아래로 향했다. 사람의 손이 보였다. 나는 액정을 비춰서 얼굴을 바라봤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낯익은 녀석이었다. 얼마 전에 실종된 우리 학교 학생이었다. 그는 눈을 뜨기는커녕 제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끙끙 앓기만 했다. 나는 일단 그를 일으키려고 했다. 그는 허리까지 섰다가 철퍼덕 넘어졌다.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나는 그의 하반신을 살펴봤다. 허벅지 아래쪽이 잘려나가 없었다. 마치 무언가에 뜯어 먹힌 듯이 절단면이 거칠었다. 그러나 이상한 액체가 들러붙어서 출혈은 없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막았다. 나는 부들부들 팔다리를 떨었다.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머릿속이 텅빈듯하다. 나는 가까스로 의식을 붙잡고 휴대폰 버튼을 눌렀다. 손이 떨려서 자꾸 번호가 이상하게 찍혔다. 114, 212, 223, 1…1…2.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계단 밑에서 소리가 들렸다. 점퍼가 돌아온 걸까? 나는 딱딱하게 얼어붙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는 숨을 곳이 없나 살폈다. 구석진 곳에 원래 화장실로 만들어진 공간이 보였다. 나는 그곳이 쭈그려 앉아서 박스와 신문지 따위를 끌어 모아 몸을 가렸다.

내 심장소리만 크게 울린다. 나는 조그맣게 확보된 시야로 방안으로 살폈다. 구름에 가려진 달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컴컴하던 방안이 미약하나마 밝아졌다. 아까 어디론가 사라졌던 점퍼가 다시 돌아왔다. 그는 사람 하나를 질질 끌고 있었다. 그는 쇼핑을 갔다 온 듯이 사람 하나를 방안에 던졌다.

그는 천천히 점퍼와 모자를 벗었다. 무척이나 기이한 광경이었다. 점퍼를 스르륵 벗으며 다른 손으로는 모자를 집어던졌다. 마치 손이 여러 개인 사람처럼 말이다. 그는 몸을 잠시 털었다. 그의 겨드랑이와 옆구리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파핫! 하고 튀어나온 그것은 기괴한 팔이었다. 원래 달린 팔에 절반 정도의 길이였는데, 어림잡아도 5쌍은 넘어보였다. 겨드랑이부터 허리까지 줄줄이 달린 팔은 팔뚝부터 손가락까지 꼬물꼬물 움직였다.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일련의 규칙이 있는지 웨이브가 느껴졌다. 화장실 벽에 기어 다니던 지네의 다리 움직임이 저러할까? 나는 숨을 죽이고 그 기괴한 사내를 쳐다봤다. 그는 점점 밝은 창가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필사적으로 입을 막았다. 왜냐하면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올 뻔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태였다. 화장실에서 자위하다가 들켜서 애들에게 놀림 받은 바로 그 녀석……. 그의 입과 코에서는 진득해 보이는 액체가 떨어졌다. 그의 땀샘과 배꼽- 어디라 할 것도 없이 그 불쾌한 액체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는 다리가 없는 녀석의 몸을 들어올렸다. 일태의 여러 쌍의 손이 전혀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일태를 머리를 허벅지 다리 절단면에 입을 파묻었다. 게걸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우득- 우득- 콰직- 콰직- 으적- 으적- 사나운 맹수가 먹잇감을 씹어 먹듯이 일태는 인간을 먹었다. 나는 일태의 허리에서 기묘하게 돋아나는 무언가를 바라봤다. 처음에는 뿔처럼 돋아난 살덩어리가 점점 윤곽이 잡히더니 손이 되었다. 그런 식으로 일태의 팔이 늘어났다. 그 팔은 점점 아래쪽으로 내려가며 돋아난다. 꼬물꼬물 움찔움찔 움직이는 팔은 워낙 아담해서 아기손 같았다. 여러 쌍의 아기손이 바둥바둥 발작하는 인간을 꼼짝 못하게 붙잡는다. 잡아먹히는 인간은 소리도 지르지 못한다. 산채로 으적으적 씹혀 먹힌다. 나는 눈물콧물 짜내면서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손에 들러붙은 정액냄새의 액체가 입안으로 들어와도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빨리 잡아먹고 놈이 다른 곳으로 갔으면…. 제발…. 날 발견하지 못하길…. 나는 안간힘을 내서 버텼다. 그렇게 새벽이 찾아온다. 일태는 돋아난 팔을 숨기기 위해 점퍼를 입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는 벌벌 떨다가 몸을 일으켰다. 아직 어둡지만 서서히 해가 밝아온다. 나는 땅바닥에 몇 번이고 구역질하며 뱃속에 있는 걸 게워냈다. 속이 텅텅 비고도 헛구역질을 3번이나 더 했다. 나는 비실비실 방을 나갔다. 문을 지나서 복도로- 그리고 밑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가면 바깥이다. 현기증으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나는 계단난간을 붙잡고 천천히 내려갔다. 다리가 풀려서 자칫하면 넘어질 것만 같았다.

뚝.

액체가 내 손등으로 떨어졌다. 나는 다른 손으로 그 액체를 털어버리려고 했다. 그 액체에 닿는 반대편 손이 닿을 때, 나는 생각했다.

액체가 뜨뜻해?

막 배출된 듯이 온기가 있는 액체. 나는 달각달각 이를 떨며 위를 쳐다봤다.

“안녕?”

달팽이처럼 천장에 거꾸로 들러붙은 일태가 그렇게 말했다.

뚜욱, 뚝, 뚜욱, 뚝.

냄새 풍기는 액체가 쭉 늘어지면서 내 머리로 떨어졌다. 나는 움직이려고 악을 썼다. 발이 꼬여서 계단을 헛딛었다. 나는 꼴사납게 넘어졌다. 계단에 깔린 액체 덕에 큰 상처는 없었으니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일태가 입에서 액체를 떨어뜨리며 웃었다. 녀석의 이는 톱니처럼 뾰족하게 맞물려있었다. 그는 팔을 뻗어 내 어깨를 잡았다. 내 어깨가 으스러질 듯이 아팠다. 내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이상한 액체가 내 얼굴을 뒤덮었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숨이 막혀온다. 의식이 몽롱해진다. 나는 하반신을 부르르 떨며 똥오줌을 찍 쌌다. 살려줘….

나는 쿨럭쿨럭 기침을 하며 깨어났다. 눈이 잘 안 떠졌다. 나는 손을 들어 올려서 눈꺼풀에 쌓인 액체를 털어냈다. 흐린 시야가 돌아왔다. 나는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허리에 감각이 없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밑을 살폈다. 다행히도 팔다리가 멀쩡했다. 다만 마취된 것처럼 무기력했고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내 바지는 점액질과 똥오줌이 얽혀서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 안까지 점액질이 들어가서 먹통이었다. 밖을 바라보니 늦은 오후 같았다. 반나절이나 기절해 있었던 건가? 나는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걸음마를 떼는 아기처럼 관절 움직임 하나하나에 주의하며 가까스로 일어섰다. 나는 벽이 기대며 미끄러지듯이 걸었다. 어제만 해도 땅바닥에 쓰러져있던 애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방안에 넘쳐흐르던 점액들도 상당히 말라있었다. 내 예상이 맞다면 일태는 다른 곳으로 거처를 바꾼 것 같다. 왜 나를 살려뒀을까? 그러고 보면 실종자들도 건물 안에 있던 애들도 모두 일태를 괴롭히던 애들이다. 일태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아무 목적의식 없이 행동하진 않았다.

“후우-.”

나는 날이 저물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둠을 틈타 내 자취방으로 들어갔다. 온몸이 엉망진창이었다. 몸 구석구석 샤워를 하고 입었던 옷과 속옷은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렸다. 경찰에 신고할까?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했다가는 믿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다. 나는 몇 번이고 씻었는데 몸에서 정액냄새가 지워지지 않았기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뉴스에 용의자 박일태라는 이름이 떴다. 꼬리가 잡힌 모양이다. 일태는 수배되었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잡히지 않았다. 반 아이들의 인터뷰도 종종 TV에 나왔다. 나에게도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지만 나는 거절했다. ‘괴롭힘 받던 소년! 차례대로 복수?‘ ’왕따 문제, 이제 다른 아이의 일이 아니다!‘ 라는 등의 삼류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왔다.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에는 실종자도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개학 2주를 남기고 보충수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에 나갔지만 종종 그 날의 일이 생각났다. 그러나 점점 잊혀간다. 놀랍게도 나는 담담하게 모든 걸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나만의 특이성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보충학습이 끝나고 나는 자주 가는 분식점에서 라면을 먹으러 갔다. 오늘은 집에서 밥을 챙겨먹는 게 귀찮았다. 라면을 먹고 나왔을 무렵에는 하늘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괜스레 감성적인 기분에 젖어서 일부러 집까지 먼 길로 돌아서 갔다. 텅 빈 공원 놀이터가 어쩐지 인상적이었다. 공원 뒤에는 우거진 숲이 있었다. 도심내의 자연친화적인 어쩌고 하면서 만들어진 곳인데, 지금은 거의 관리되지 않아 잡초와 쓰레기로 가득했다. 나는 이 근처에 낯익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쓰레기통에 걸쳐진 낡은 패딩점퍼였다. 구멍이 쑹쑹 뚫려있고 색이 완전히 바래있었다. 무엇보다 은은하게 남아있는 밤꽃냄새…. 노숙자가 버리고 간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점퍼의 주인을 알고 있다. 박일태의 패딩점퍼였다. 나는 숲으로 들어갔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다행히도 여름이라 해가 그렇게 빨리 넘어가지는 않는다.

푸슥, 푸슥.

잡초가 내 발아래에 엉켰다. 나는 엉거주춤 다리를 들어 올리며 주위를 살폈다. 여기저기 찢겨진 옷가지가 길을 안내했다. 20여분을 헤맸을까? 나는 일태를 찾아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일태로 추정되는 것을 찾아냈다.

다큐멘터리에나 나올 법한 유충번데기였다. 단지 내 앞에 있는 이건 너무나 컸다. 사람 하나가 충분히 들어갈 정도로 큰 번데기였다. 새하얀 번데기 안쪽은 어렴풋한 실루엣만이 보였다. 나는 살짝 망설이면서도 번데기에 손을 뻗었다. 표면은 매끈했다. 안에서 흐린 미동이 느껴졌다. 임산부의 배를 만지는 것처럼 내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쩍!          

번데기가 찢어지면서 갈라졌다. 나는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제일 처음 나온 것은 머리였다. 머리카락은 하나도 없었으나 분명 이목구비는 일태였다. 그러나 눈알이 없었고, 눈이 있어야할 자리에 길게 튀어나온 더듬이가 있었다. 달팽이처럼 더듬이는 안으로 쏙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눈알이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더듬이 끝은 뭉툭했는데 그곳에 안구가 있었다. 안구는 360도로 빙글빙글 돌다가 나를 바라봤다.

머리 다음으로는 가슴과 배가 나왔다. 양팔이 있어야할 자리에는 뼈와 살로 이루어진 한 쌍의 날개가 있었다. 뼈가 곧게 뻗어있고 살로 된 투명한 피막이 넓게 펼쳐져있었다. 유두와 옆구리쪽에는 돋아난 수십개가 넘는 손가락들이 꿈틀꿈틀 움직이며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손가락들은 섬세하게 움직이며 번데기를 찢으며 펼쳤다.

마지막으로 나온 것은 다리였다. 다리는 양팔처럼 날개가 되어있었다. 팔과 다리로 만들어진 두 쌍의 날개가 점액질을 털며 퍼덕였다. 마치 나비날개 같았다. 하반신 끝에는 비대해진 고환과 성기가 잠자리꼬리처럼 대롱대롱 흔들렸다. 성기 끝에서는 쉴 새 없이 분비불이 쏟아졌다. 밤꽃냄새가 짙게 풍겼다.

나는 멍하니 변태한 일태를 바라봤다. 일태는 몸을 말리며 손질했다.

“나는 날아갈 거야.”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대답했다.

“어디로?”

일태의 더듬이가 하늘로 뻗었다.

“여기가 아닌 곳으로.”

일태가 마른 날개를 퍼덕였다. 일태의 몸이 공중에 뜬다. 날개짓은 점점 빨라진다.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사람들은 하늘을 나는 일태를 보지 못할 것이다. 보더라도 박쥐나 새 따위로 착각하겠지. 나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말했다. 나는 내 다리가 떨고 있다는 것을 안다.

“왜 나를 살려뒀지?”

일태의 더듬이눈동자가 구불구불 움직인다.

“넌 친절했으니까.”
“빵과 우유?”

내 반문에 일태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일태의 모습이 점점 작아진다. 어둠 섞여 구분조차 가지 않을 때까지 나는 일태를 쳐다봤다. 멀어진 일태는 작은 나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건 선의가 아니었어….”

긴장이 풀리자, 몸이 축 늘어졌다. 나는 한참이나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겨우 일어섰다. 나는 숲을 빠져나가다가 땅에 떨어진 일태의 패딩점퍼를 주웠다. 나는 패딩점퍼를 집으로 가져가서 상자 안에 구겨 넣었다. 그리곤 테이프로 꽁꽁 봉한 뒤에 베란다 구석에 박아뒀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고 일태와 실종사건도 잊혀져간다. 아무도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아주 가끔 잡담 속에 섞여 수면 위로 떠오를 뿐이다. 나는 아직도 수업 중 빈자리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일태는 어디로 간 걸까?


-----
kitsch Horror Freak.
연작1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1657 단편 십일금무(十一錦舞) sylvir 2010.02.17 0
1656 중편 [뱀파이어는 완벽하지 않다] 1.삼차신경통(4) 하늘깊은곳 2010.02.19 0
1655 단편 태평요술서1 먼지비 2010.02.20 0
1654 단편 나이팅게일 니그라토 2010.02.21 0
1653 단편 망각의 숲 sFan 2010.02.21 0
1652 단편 상처입고 상처를 잊어버린 남자는 고통을 이겨내 상처를 치료한다. 김진영 2010.02.22 0
1651 단편 군대갈래? 애낳을래?4 볼트 2010.02.24 0
1650 중편 [뱀파이어는 완벽하지 않다] 2.외출(1) 하늘깊은곳 2010.02.24 0
1649 단편 공원여행: 공원 옆 아파트 꼬마. (수정) 김진영 2010.02.26 0
1648 중편 [뱀파이어는 완벽하지 않다] 2.외출(2) 하늘깊은곳 2010.03.01 0
1647 단편 성형외과가 사라졌다. 하늘깊은곳 2010.03.02 0
1646 중편 [뱀파이어는 완벽하지 않다] 2.외출(3) 하늘깊은곳 2010.03.06 0
1645 중편 LAST SCENE <상> 소풍 2010.03.09 0
1644 단편 Antifreeze1 빈군 2010.03.12 0
1643 중편 [뱀파이어는 완벽하지 않다] 2. 외출(4) 하늘깊은곳 2010.03.12 0
1642 단편 어떤 결핍. 하엘 2010.03.13 0
1641 단편 기계씨앗 살인두부 2010.03.14 0
1640 단편 내 아내의 남편은 누구인가?1 미노구이 2010.03.15 0
단편 밤꽃나비-변태 orion 2010.03.15 0
1638 단편 [엽편]거래 먼지비 2010.03.15 0
Prev 1 ...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 ... 14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