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에일리언 에일리언.

2021.06.30 23:2006.30

1.

 

 

2021년 1월 1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펼쳐진 사회. 네 이방인은 줌으로 신년을 맞이했다.

 

“해피 뉴 이어.”

 

넷은 새해에 맞춰 인사했다.

 

“한국은 새해에 종을 친다고 해서 보고 싶었는데, 아쉽네.”

"나, 그거 유튜브로 봤어. 펭귄이랑 같이 치던데?”

“앤, 아쉽겠지만 그건 작년에만 있던 일이야.”

 

이방인 사이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 오래 산 나는 앤에게 사실을 일러주었다.

 

“엑, 나는 매번 그러는 줄 알았는데. 췟.”

“백신도 나오는데 내년에는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때 넷이서 같이 보러가면 어때?.”

“요한. 한국에 1년 더 있을 생각이야?”

 

유나는 요한에게 질문했다. 요한은 화면 너머에서 안경을 쓱 올리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유럽에 가면 죽을지도 모를 걸. 나는 마스크 쓰고 오래오래 살거야. 너는?”

“나? 난 다시 일본 가기 싫어. 내가 계속 말했잖아. 일본은...”

“그래. 긍까, 일본은 귀찮다는 거지? 우리 짜증나는 이야기 말고 술이나 마시자. 치얼스!”

 

앤은 그저 술을 마시고 싶어서 저러는 것 같았지만 어찌됐든 모두 술을 들이켰다. 앤은 한 잔을 단 번에 비웠고, 나와 요한은 반절 정도 마셨으며 유나는 반모금 정도만 마셨다. 우리는 술을 마시며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맥락없이 나눴다. 술을 다 마신 앤이 술을 사러 나갔다가, 술 없이 줌을 켜기 전까지.

 

“아, 나 지갑 잃어버렸어. 어딨는지 모르겠네.”

 

앤은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실실 웃고 있었다.

 

“앤. 어디에 마지막으로 뒀는지 기억해?”

 

유나는 술을 그리 즐기지 않았기에 넷 중에서 정신이 그나마 멀쩡했다. 물론 나와 요한은 이미 너무 취해서 놀리기에 바빴지만. 요한은 가볍게 한 마디를 던졌다.

 

“앤. 지갑 하나 새로 사. 어차피 바꾸려고 했잖아.”

 

그 말에 앤은 화면 너머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유나는 담담하게 하나를 지적했다.

 

“그럼 외국인 등록증도 새로 발급받겠네? 축하해. 외계인을 탈출해서.”

“그래. 이제 외계인이 아니지? 그거 볼 때마다 웃기긴 했어.”

“맞아. 내가 외계인이야? 외국인 등록증에 외계인이라고 적혀있다니. 이 나라는 묘한데서 이상해.”

 

기존 외국인 등록증은 (Alien Registration Card)라고 적혀있었고, 새해인 오늘부터 발급 시에 영주증(permanent resident card)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기회에 요한과 유나, 그리고 앤까지 모두 영주증으로 재발급하기로 했다.

 

나를 제외하고.

 

 

2.

 

 

2021년 1월 2일.

 

나는 눈물을 참느라 눈이 새빨개진 유나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이윽고, 유나는 나를 등지며 밖으로 나갔지만 테이블에는 유나의 지갑이 놓여있었다. 나는 지갑을 들어 외국인 등록증을 꺼냈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고 끝난다 해도, 이젠 어쩔 수 없다.

 

 

3.

 

 

유나가 나머지 셋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도 외국인 등록증 잃어버렸어. 정말 발급해야겠네.]

 

그 문자를 본 요한은 유나를 놀리기 위해 외국인 등록증을 찾았지만 요한도 외국인 등록증을 찾을 수 없었다. 카노는 외국인 등록증을 사진으로 찍어 셋에게 메시지로 보냈다.

 

[난 안 잃어버렸어.]

 

그리고. 그게 카노의 마지막 문자였다.

 

 

4.

 

 

유나의 이야기.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챈 건, 그 날 저녁이었어. 너희가 알다시피, 나는 그 날 점심시간에 출입국사무소에 가서 재발급 신청을 했어. 그리고 카노한테 전화를 걸었지. 카노랑 점심시간에 자주 통화했냐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어쨌든, 카노는 그 때 전화를 안 받았어. 나는 다시 일하느라 그 때는 대충 넘어갔지만 퇴근하고 너희가 무슨 헛소리를 했는지 살펴보려 채팅을 쭉 읽어봤는데. 그제서야 알게 됐지. 카노는 일요일부터 한 마디도 하잖고 심지어 읽지도 않았어. 그래서 난 다시 카노한테 전화를 걸었거든.

 

그래. 역시 전화를 안 받았어. 그래도 그 때는 통화음은 전해졌지. 정작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나는 곧바로 너희 둘 한테 바로 채팅을 남겼어. 카노가 며칠 전부터 연락이 안 되는데 너희는 연락 받은 게 있냐고. 우리는 그제서야 알게 된 거야. 카노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카노는 채팅이나 메시지를 자주 남기지는 않지만 채팅을 계속 주시하는 편이잖아. 모니터에 채팅창을 꾸준히 켜놓는 스타일.

 

나는 그러니까, 그래. 그러니까... 겨우 당황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리고 카노가 사는 집에 갈 수 있었어. 현관에 도착해서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비밀번호를 누르고, 저기. 지금 이 상황에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고 있냐는 질문을 하고 싶어? 내가 저번에 카노한테 직설적으로 물어봤어.

 

앞으로는 그만 물어보면 좋겠어. 어차피 다 끝나가니까. 카노는 집에 없었어. 집을 샅샅이 살펴본 건 아니지만, 특별히 이상한 점도 없었어. 옷가지는 흐트러짐 없이 다들 제자리에 있었고 누가 강제로 드나든 흔적은 없던 거 같아. 게다가 랩탑이랑 헤드폰도 책상위에 그대로 있었어. 그러니까 이 말은, 강도나 도둑이 들어서 카노가 도망친 건 아닌 거 같다는 이야기야. 집을 대충 둘러본 걸로는 휴대폰을 찾을 수 없어서, 나는 혹여나 휴대폰이 집안에 있을까 하고 전화를 걸었어.

 

내가 아까 분명히 통화음은 들을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지? 그런데 이번엔 통화음도 듣지 못 하고, 바로 전화가 끊어졌어.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라는 짧은 문장 하나만 들려왔어.

 

카노가 전화를 끊을걸까?

 

 

5.

 

 

요한의 이야기.

 

 

우리는 일단 대사관과 경찰에 신고하기로 했지. 내가 나서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될 줄 몰랐어. 경찰은 그냥 단순 가출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참나, 아무리 외국인이라지만, 이렇게 처리하다니. 아무래도 유나가 대사관에게 문의해서 수사협조 받는 게 더 빠를 거 같아.

 

조금 뜬금없겠지만, 나는 카노와 게임에서 처음 알게됐어. 알료샤라고 나랑 게임을 같이하는 친구인데, 이 친구랑 카노는 같은 직장을 다녔거든. 어쩌다보니 같은 게임을 하게 됐다는 걸 알게 됐고, 알료샤가 나도 불러서 셋이 같이 게임을 하게 되면서 서로 알게 된거지. 그런 와중에 카노랑 나는 코드가 맞아서 좀 더 친해졌고. 경찰이 단순 가출로 종결하니까. 나는 나대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알료샤한테 물어봤지.

 

료샤는 카노가 저번 주에 퇴사했대. 이거 알고 있었어? 반응을 보니까, 너희도 몰랐구나. 아무튼 료샤가 말하길 퇴사하면서 자기한테는 다른 회사로 이직하고, 그 바람에 너무 바빠서 정리되면 다시 연락한다고 했대. 료샤는 이직하면 정신없을테니까, 그 때까지 같이 게임하기는 어렵겠구나 정도로 듣고 흘러넘겼대. 외려 료샤는 카노가 사라졌다니까 나한테 카노가 이직한 회사에 한 번 물어보라고 하는데, 근래에 그렇게 당황스러운 상황은 처음이었어. 아니, 우리는 카노가 회사를 때려친지도 몰랐단 말이지...

 

여기까지 오니까, 나도 뭔가 많이 이상하다는 걸 알게됐어. 이건 절대로 단순 가출이 아니잖아. 카노가 정말 회사를 옮긴걸까? 어쩌면 회사를 옮기며 우리 곁은 떠난 걸까. 아니. 나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 카노는 우리한테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거겠지. 그게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6.

 

 

유나의 이야기. 

 

 

난 이제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우리가 카노랑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건에 한 발 한 발 다가갈 때마다 정작 카노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나는 대사관에 연락했어. 그렇만 대사관에서도 바로 무언가를 해줄 수는 없다고 했어. 사실 대사관에 어디까지 이야기 해야하는 지 감도 잘 안 잡혔고.

 

그래서 일단 나도 나대로 무언가를 행동하기로 했어. 너희한테 이야기했는 지 모르겠지만, 나랑 카노는 같은 대학을 다녔어. 한국학 수업을 같이 들으면서 서로 알게됐지. 그 때, 카노는 자기가 꼭 한국에 갈 거라고 말하기도 했어. 어쨌든 나는 대학에 전화했어. 뭐라고 말했냐면, 음. 대충 카노가 실종됐는데,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서 실종됐다. 그래서 경찰이 바로 가족에게 연락을 할 수가 없으니, 내가 대신하려하니 연락처를 알려줬으면 한다. 이런 뉘앙스로 말하니까 알려주려고 하더라고.

 

문제는 학교에도 보호자 연락처가 없었어. 여기서 포기해야하나 싶었지만, 졸업한 고등학교를 알려달라고 했지. 혹시 고등학교에는 보호자 연락처가 있지 않을까해서. 카노가 졸업한 고등학교를 알아낸 나는 당장 그 학교에 전화했어. 하루에 국제전화를 몇 통이나 하는지... 고등학교에 건 전화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행히 가족 연락처를 받았어. 카노의 어머니네 연락처였지. 그런데 이번엔 없는 번호라고 뜨는 거 있지? 이게 말이 돼?

 

 

7.

 

 

앤의 이야기.

 

 

긍까, 너희 둘은 직장인이니까. 아무래도 바쁘고 나는 지금 놀고 있으니까. 너희는 너희대로 할 거하고, 나는 바쁘게 쏘다니기로 했지. 어제는 유나한테 카노네 집 비밀번호를 물어보고 카노네 집으로 갔어. 카노가 집에 누워있으면 좋을텐데. 그런 허울좋은 상황은 아무래도 일어나지 않았네? 아쉽다. 그래도 내가 카노네 집에 가서 엄청난 걸 발견했으니까! 사실 너희한테 고백할 것도 있고. 천천히 들어봐. 술 한 잔하면서 들어도 좋고.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1월 1일에 카노랑 잠깐 만났거든. 아니, 잠깐만 그렇게 화내지 말고 들어봐. 만났을 때 술이 덜 깨서 잊어먹고 있었을 뿐이야.

 

아침에 술도 깨고, 산책도 하면서 대사관에 가려고 아침 일찍 밖에 나갔단 말이지.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지갑이 없어. 그래서 집이 제일 가까운 카노한테 전화를 하니까. 카노가 금방 와줬어. 카노는 ATM에서 돈을 꺼내주는데, 나한테 가방에 지갑 있는지 확인하라는 거야. 그래... 맞아! 사실 가방에 지갑이 있었어. 너희도 어이가 없겠지만, 카노도 어이가 없는지, 한참을 웃더니 외국인 등록증 바꿀 거냐고 물어보더라. 나는 아무래도 외계인은 좀 찝찝하니까, 바꾸는 게 낫지 않냐고 말했어. 카노는 바꿀거라면 기념으로 외국인 등록증이나 달라고 했어. 근데 내가 카노를 쓸데없이 고생시킨 상황에서 안 주기는 좀 그렇잖아? 그래서 줬지. 카노가 신분도용을 할 사람은 아니잖아? 생긴 것도 완전히 다르고.

 

게다가 나는 유나랑 다르게 남의 집 서랍장도 벌컥벌컥 열 수 있거든. 그러다가 이걸 찾았고, 1월 1일에 카노와 만난 걸 떠올릴 수 있었어. 그러니까 왜 이 집에 나와 카노가 아닌, 너희 외국인 등록증이 있어?

 

 

8. 

 

 

요한의 이야기. 

 

 

카노 집에 내 외국인 등록증이 있다는 말을 듣고 천천히 카노가 사라지기 전을 돌이켜봤어.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까, 카노가 내 외국인 등록증을 갖고 있는 게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어.

 

카노가 마지막으로 채팅을 남긴 날, 나는 쭉 집에 있었어. 전날에 술 먹으면서 잠깐 이야기가 나왔지만 내가 카노한테 빌린 게임을 다 끝내고 잠깐 씻으러 갔을 때를 제외하면 지갑도 내가 눈에 보이는 곳에 있었단 말이지.

 

난 씻기 전에, 카노한테 게임 다했으니까 갖다줄까? 라는 뉘앙스로 문자를 보냈어. 카노는 나한테 월요일에 찾으러 가겠다고 했거든. 나는 혹시 늦게 퇴근해서 집에 없을 수도 있으니 집 비밀번호를 카노한테 알려줬고, 나는 그 후에 씻으러 욕실에 들어갔어.

 

그러니까 만약, 카노가 내 외국인 등록증을 가져갔다면 내가 욕실에 있는 20분에서 30분 사이에 우리 집에 들어와서 게임팩은 가져가지 않고 내 지갑에서 외국인 등록증만 가져갔다는 거야. 왜 나 몰래 가져간걸까? 그리고, 난 카노한테 씻는다고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걸 알고 가져간걸까? 도대체 외국인 등록증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

 

 

9.

 

 

앤의 이야기.

 

 

긍까, 이야기를 조합하자면 카노는 내 외국인 등록증을 받아내고, 요한의 외국인 등록증은 가져가고... 유나의 외국인 등록증은 어떻게든 훔쳤겠지. 뭐. 경찰은 단순실종으로 여기며, 대사관은 급하게 무언가를 해줄 순 없으며. 가족이나 보호자와는 연락이 안 된다는 거지. 이거 참, 거지같네.

 

떠올려보자면, 난 카노랑 처음에 한국어학당에서 알게됐어. 너희 둘도 카노랑 친해지면서 알게됐지. 우리의 연결점은 카노였고, 카노가 정말로 사라졌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술 마시며 같이 놀 수 있을까? 하물며 카노를 찾는 데 어떤 진척도 없는 이런 상황에서?  

 

어쨌든 우리가 알아낸 단서 중에 제대로 된 건 없고, 결국 우리에게 남은 건 카노가 우리에게 적선하듯 준 이 외국인등록증이야. 여기에 매달려야겠지. 우리가 포기하기 전까지는.

 

 

10.

 

 

유나의 생각.

 

 

나는 줌이 켜진 모니터를 잠시 쳐다보고 모니터를 끄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오늘 받은 영주증과 앤이 건네준 외국인 등록증을 테이블 위에 나란히 놓았다. 

 

 

외국인 등록증(Alien Registration Card)

영주증(Permanent Resident Card)

 

 

둘에게는 말할 수 없었지만, 나는 외국인 등록증을 잃어버린 날.

카노를 만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카노를 많이 좋아한다. 카노한테 매일 점심에 은근히 전화하는 것부터, 집 비밀번호를 먼저 물어볼 정도로. 나는 그 날 카노에게 고백하기 위해 그 집으로 향했고, 너무 긴장해서 차이고 나서는 지갑도 챙기지 않고 새빨간 눈으로 밖을 나섰다. 어처구니 없는 우연으로 인해 카노는 결국 네 장의 외국인 등록증을 모으게 됐고, 그리고 사라졌다.

 

처음 카노가 사라졌을 때 내가 느낀 감상은 설마 내가 그렇게 싫어서 사라진 건 아니겠지 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카노는 그와는 별개로 사라진 거 같다. 아니... 별개로 사라졌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왜냐면, 이유를 알아냈으니까.

 

카노가 남겨준 이 외국인 등록증만 단서삼아 다른 가능성을 모조리 배제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카노는 외계인(Alien)이다. 

 

 

미친 소리처럼 들린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앤과 요한은 취해서 기억 못 할테지만, 나는 카노가 우리 셋이 영주증으로 바꾼다고 이야기 할 때, 유일하게 바꾸지 않겠다고 한 걸 기억한다. 게다가 우리 외국인 등록증을 가져와 집안에 간단히 숨겨놓았다. 이걸 꼭 보라는 것처럼.

 

물론 그럼에도 증거가 턱없이 빈약했다. 그래서 외려 나는 다른 증거를 더 찾기보다는 이 카드를 남긴 이유를 알아내려 머리를 굴렸다.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숨기며 살아가야 할 카노가 기댈만한 무언가는 아마 이 작은 카드밖에 없을테니까. 그래서 이 작은 카드를 위해 바다를 건넜겠구나. 나는 이런 상황에 도달해야 겨우 인정했다.

 

사람은 고작 글자 몇 개 때문에 사라질 수 있구나.

고작 숫자 몇 개 때문에 사라질 수 있구나.

글자 몇 개, 숫자 몇 개 때문에 세상에 나타나기도, 사라지기도 하는구나.

 

혼자 진상에 도달한 나는 고민했다. 이 허무맹랑한 사실을 알려야할까?  둘이 이 사실을 믿어준다 하더라도, 한 사람의 진실을 다른 사람에게 무턱대고 알리는 게 바른 일은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이 사실을 나 혼자 묻어두기로 했다. 카노가 우리에게 다시 찾아올 때까지.

 

그러면서도 나는 어설프게 카노를 생각했고, 이윽고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카노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권을 벗어나 신호음조차 가지 않았지만, 나는 카노에게 다시금 고백했다.

 

“나는 네가 어떤 존재여도 너를 좋아하고 있어. 물론 너를 평생 기다리지는 못 하겠지만. 나는 가끔 너를 떠올릴게. 아무도 너를 떠올리지 않는 건, 너무 슬픈 일이잖아. 그리고 너는 분명히 우리에게 다시 올테니까. 그리고 다시 우리를 찾아온다면 처음엔 화를 내겠지만, 반갑게 맞이할거야. 왜냐면 너는......

 

 

나를 사랑으로 끌어들인.

 

 

에일리언 에일리언.

댓글 1
  • No Profile
    글쓴이 논바논바 21.06.30 23:30 댓글

    참고로 외국인 등록증에서 영주증으로 이름이 바뀐 건 올해 실제로 벌어진 일입니다. 제목을 에일리언, 에일리언으로 할지 잉글리시 맨 인 뉴욕으로 할지 고민하다 그냥 원래 제목으로 했습니다.

     

    다른 사이트에서 게재했지만, 사정으로 인해 비공개한 작품을 게재했습니다. 사실 올 2월에 거울에도 올리려고 했으나,,, 잊어먹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6월 끝물에 1월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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