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13번 가상계는 12번 가상계인 물리지구의 백업 용도로 만들어졌다. 만일 당신이 ‘대관절 지구를 백업해서 무엇을 어쩌겠다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당신은 지구인일 것이다. 그런 질문은 물리지구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지구인이나 할 수 있는, 그야말로 ‘물리지구 중심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시야를 넓혀 보자, 물리지구가 속한 12번 가상계를 넘어 가상계 전체로. 지구 역시 어떤 가상계의 가상계의 가상계에 불과하지 않은가. 물론 물리지구와 이어진 가상계들에 속한 그 무수한 만물 간의 원본·복사본 관계를 일일이 추적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가상계의 시공은 끝 간 데 없고 만물의 관계도는 뉴런의 연결만큼이나 복잡하게 뒤엉켜 있으니까. 원본이 복사본이 되고, 복사본이 또 다른 가상계의 원본이 되어 순환하는 건 예삿일이다. 심지어 지금 당장 유일무이한 원본처럼 보이는 것도 막상 시간이 흘러보면 다른 가상계의 미래에서 되돌아 온 복사본으로 밝혀지는 경우도 허다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분명한 건 수많은 가상계에서 물리지구를 다용도로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라, 어떤 가상계의 칠칠치 못한 물리지구 연구자가 커피를 쏟아서 유럽의 중세를 날려 먹는다면? 어떤 가상계의 구직 청년이 자기소개서에 선호하는 가상계로 물리지구 전체를 첨부했는데 담당자의 실수로 지워졌다면? 이러한 끔찍하고 돌이킬 수 없는 참변과 낭패를 막기 위한 유일한 방책은 백업뿐이다. 그리고 이 정교한 여분의 복제 세계는 ‘축세기(蓄世機)’라는 자동 장치에 의해 기록되고 재생된다. 축세기의 고안자인 비트의 성위 구세주는 복제 세계의 생성 원리를 다름 아닌 축음기(蓄音機)에서 착안했다고 밝힌 바 있다.

 

증발하는 소리를 어떻게 잡아 두냐고요? 간단합니다. 먼저 소리의 떨림을 원통이나 원판에 새깁니다. 그런 다음 턴테이블로 옮겨서, 새겨진 소리골에 바늘을 올려 놓고 빙글빙글 돌리는 겁니다. 그러면 바늘이 소리의 골짜기를 따라 파도를 타죠. 이 파도를 사람의 귀에 들릴만큼 증폭하는 겁니다. 재생(再生)이라고 하지요, 이미 죽은 걸 되살리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빛의 파동과 입자도 파형으로 새겼다가 되살릴 수 있어요. 물리지구의 모든 걸 기록했다가 재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필요한 건 세 가지죠. 세상을 파형으로 바꿀 마이크, 파형을 새길 작은 바늘, 그리고 커다란 원판. 

 

드물지만 때때로 재생이 기록을 앞질러 가기도 한다. 이른바 ‘추월재생 현상’이다. 구세주는 이 괴현상을 자동 피아노 연주를 들어 설명한다.

 

자동 피아노는 공기의 힘을 빌어 연주를 합니다. 페달을 밟아 진공상태로 만든 다음, 피아노 롤(piano roll)에 새긴 미세한 구멍으로 공기를 통과시켜서, 구멍이 지정한 각각의 건반을 누를 힘을 얻는 거죠. 그러니까 피아노 롤에 새겨진 구멍은 악보이자 밸브인 셈입니다. 추월재생 현상은 말하자면 ‘피아노 롤에 적힌 악보를 읽기도 전에 건반이 먼저 눌리는 현상’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단 하나, 물리지구라는 원본의 악보에 없던 구멍이 뚫려서 예기치 못한 공기가 틈입했기 때문입니다. 이 돌연한 구멍들이 건반들을 조금 다른 연주로 이끌면서 물리지구와는 조금 다른 세계, 14번 가상계가 열린 것이지요. 

 

추월재생 현상의 발견은 해묵은 자유의지 논쟁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21번 가상계의 대표적인 자유의지론자 이이린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추월재생 현상이 시사하는 바는 간단합니다. “미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미래가 악보에 기록된 파형대로 재생되는 게 아니라, 파형으로조차 잡히지 않는 미세한 돌연변이 인자들로 인해서 원본과는 별개의 파형을 재생하는 자발적인 가상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바로 이 돌연변이가 ‘자유의지’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에 대해 메타버스 루프스테이션 가상계의 대표적인 결정론자인 플랫폼형 아티스트 체리블랙은 자신의 쇼룸 이벤트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난 이이린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자유의지라는 게, 그러니까 개개의 신체 안에, 단 하나의 자아가, 환경의 영향과는 무관하게, 자유로운 의지를 갖는다는 게 과연 가능이나 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너희들도 알다시피 나 역시 추월재생 현상의 산물이잖아. 21번 가상계의 자유의지론자 이이린이 추월재생한 게 바로 나, 22번 가상계의 체리블랙이라고. 그런데 우리 모두가 이 쇼룸의 결말을 알 수 있어. 단지 쇼룸의 재미를 위해 시치미 떼고 모르는 척 할 뿐이잖아. 추월재생 현상의 산물 역시 이미 결정된 미래라는 거야. 그마저도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고. 물리지구 식으로 말하자면 ‘가뭄에 콩 나듯’, 14번 가상계 식으로는 ‘뭄지에 파락 돋듯’, 30번 가상계 말로는 ‘카투가 촐릴만큼’ 드물게 일어나는 현상을 갖고 너무 부풀리는 거 아닐까? (물리지구 식으로 해석하자면 ‘카투’는 ‘상반신’, ‘촐리다’는 ‘꼬이다’는 뜻이다. 30번 가상계에서는 벼락 맞을 확률로 인간의 가슴과 배 부위가 베베 꼬이는 버그가 발생한다.) 여전히 대부분의 미래는 예측할 수 있을만큼 결정되어 있어. 결국 인간은 생화학적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정말 그럴까? 어쩌면 각자가 속한 가상계의 구조와 재생 방식의 차이가 자유의지에 관한 사유방식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예컨대 이이린이 속한 21번 가상계는 시간과 공간이 비선형으로 재생된다. 반면 체리블랙이 속한 22번 가상계는 선택에 따라 형성된 루프의 범주에서 선형으로 반복되는 삶의 트랙들이 켜켜히 쌓이고 조합되어 재생된다. 그렇다면 어설피 자유의지를 논하기에 앞서 객관적인 축세기의 기록을 살펴보는 것이 순서 아닐까. 먼저 12번 가상계의 기록들 중 하나를 열어 보자. 46번째 원판에는 20세기 물리지구의 모든 파형이 담겨있다. 다음은 그 원판의 3,795,001,883번 트랙에 담긴 한 여성 기타리스트의 파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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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세기는 오소운(吾小雲)을 90년대 홍대 인디씬의 122번째 ‘지망 불운아’로 기록하고 있다.  ‘작은 구름’이라는 뜻을 지닌 오소운의 이름에 붙은 이 ‘지망 불운아’라는 검색 태그의 풀이는 다소 불분명하다. ‘인디 뮤지션을 지망한 자 중 불운아’일 수도, 아니면 ‘불운아가 될 확률이 높은 인디 뮤지션에 지망한 자’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분명한 기록은 ‘지망 불운아’ 오소운은 드럭(1994), 블루데블(1995), 스팽글(1996)처럼 당시에 잘나가던 홍대 클럽 무대에 한 번이라도 섰다가 사라진 이른바 ‘홍대 불운아’의 반열에도 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말인즉슨, 오소운은 홍대 클럽 무대에 단 한 번 서보지도 못하고 음악을 접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오소운의 파형과 연관 태그들이 ‘홍대 인디씬’과 결부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오소운의 불운이 홍대 인디씬의 감추어진 본질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축세기의 인과분석 AI는 오소운이 홍대 무대에 오르지 못한 원인으로 3가지 차별을 든다.

첫 번째는 연주 장르의 차별이다. 축세기의 물리지구 파형 분석에 따르면 20세기 한반도의 인디씬에는 강함과 부드러움, 정통과 혼종을 오가는 경향성이 존재했다. 70년대의 포크(fork), 80년대의 헤비메탈(heavy metal), 90년대의 펑크(punk), 모던(modern), 얼터너티브(alternative), 2000년대의 어번(urban), 훵크(funk), 소울(soul), 민트(mint), 2010년대의 장르 혼합 일렉트로니카와 시티팝이 주기적이고 결정론적으로 갈마들며 ‘인디의 주류’가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오소운은 흑인음악 기타리스였고, 홍대 라이브 클럽이 막 생기기 시작하던 95년도에 홍대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그 시기의 홍대에는 흑인음악 스타일의 연주자를 받아줄 밴드도 클럽도 없었다. 불행히도 시기가 맞지 않았던 것이다. 자유유지론과 결정론의 양립가능성을 기반으로 가정된 미래를 백분율로 환산하는 축세기의 단기 가정법 AI의 예측에 따르면, 1년만 늦게 태어났더라도 오소운의 삶은 다음과 같이 달라질 터였다.

 

1997년 : 87%의 확률로 ‘마스터플랜’이라는 홍대 힙합 클럽에서 합합퍼들과 함께 무대에 섬.

2003년 : 52%의 확률로 센세이션을 일으킬 소울밴드로 메가히트를 침.

2020년 : 38%의 확률로 ‘한국의 퀸시 존스’라는 추앙을 받으며 K팝 소울마스터 프로듀서로 자리매김.

 

그런데 1995년이라니. 당시의 홍대 인디씬은 그야말로 산으로 가고 있었다. 고삐리 펑크의 막나감,  시부야케이의 세련됨, 설상가상으로 프랑크푸르트 학파 사회학에 포스트모더니즘을 뒤섞어 중구난방으로 떠벌이는 얼치기 후라이 보이들이 가세했다. 그 결과로 영미·일본의 팝문화와 유럽의 철학이 프랑켄슈타인식으로 얼기설기 엮인 기괴한 홍대형 저항 담론이 탄생했다. 당시의 홍대 인디씬을, 당시의 홍대식으로, 그러니까 약간의 보그병신체를 섞어 말하자면 ‘풍각쟁이의 잉여노동이 허풍선이의 문화권력과 클럽이라는 생산수단에 복무하는 네오키치 시장’이라고나 할까. 음악이 담론에 눌렸던 시기라고나 할까. 저항이라면 모름지기 어딘가 체제 전복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는 법이다. 내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포효하는 그로울링(growling) 창법이라든가 괴랄무쌍한 기타 사운드가 대략 그런 느낌을 준다. 그런데 흑인음악은? 블링블링 반짝이 슈트를 입고 엉덩이를 흔들며 “파뤼투나잇”을 외치는 사랑과 평화의 후예들이 머물 자리는? 적어도 95년 홍대에는 없었다. 그리고 이후로 2000년대 초입까지도 흑인음악은 인디의 인디, 마이너의 마이너 장르로 취급되었다. 당시 홍대 클럽 입성을 위해 하드코어 밴드 ‘아오지’를 결성한 백종두의 파형을 담은 축세기의 3,795,002,111번 트랙에는 오소운이 아오지의 오디션을 보는 정황이 담겨있다.

 

오소운은 땡땡골목과 신촌로터리 중간 쯤에 자리 잡은 별쌍장군 철학관 건물 지하로 내려갔다. 거기에 아오지 멤버들이 있었다. 그들은 집중호우로 침수된 연습실 바닥에 고인 물을 빼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소운도 쭈뼛거리다 대야를 집어 들고 물 빼기에 합류했다. 웬만큼 물이 빠지고 합주가 시작되었다. 아오지 멤버들은 미친듯이 몸을 들썩이며 연주한 반면 기진맥진한 오소운은 그저 고개만 까닥이며 연주했다. 아오지 멤버들이 체력이 약하시네, 역시 여자한테 하드코어는 무리죠, 라며 빈정거렸다. 오소운은 좀 다르게 해 볼게요, 하고 아오지의 하드코어를 디스코 풍으로 바꿔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느닷없는 변주였다. 살랑살랑 가볍게 들썩이는 그루브에 물먹은 지하실이 찰랑거렸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생경한 리듬. 아오지 멤버들은 얼빠진 표정으로 오소운의 손가락과 어깻짓을 바라보았다. 우리 음악을 이렇게 연주 할 수 있다고? 아오지 멤버들 사이로 오가는 싱그러운 눈짓을 간파한 리더 백종두가 눈살을 찡그리며 마이크에 대고 툭 내뱉었다.   

“니기미, 완전 날라리뽕땐쓰네.”

‘날라리뽕땐쓰’는 그렇게 탄생했다, 주류의 묵직함이 가득한 물먹은 지하 연습실에서, 어떻게든 주류와 어울리기 위한 비주류의 절박하고 다급하고 피곤한 연주의 가벼움과, 그 가벼움을 더 가볍게 날려 버리는 주류의 업신여김에서. 이 정체불명의 멸칭은 선호하지 않는 모든 것을 범주화하는 마법의 장르로 사용되었다. 예컨대 소위 ‘정통 록음악인’들은 흑인음악을 비롯한 모든 댄스 음악을 날라리뽕땐쓰라고 불렀다. 그리고 소위 ‘정통 흑인음악인’들은 나이트 오부리 밴드 음악을 날라리뽕땐쓰라고 불렀다. 60-70년대의 끈적하고 깊은 소울이 배어있는 ‘정통 빠다 그루브’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태원, 신천, 영등포 등지의 오부리 연주법은 한국의 통속적인 ‘뽕’에 오염된 소위 ‘된장 그루브’라는 것이다. 그렇게 정통파의 뇌는 물리지구의 음악을 크게 셋으로 나눈다. 우월하고 소중한 정통음악, 천박하고 이단적인 날라리뽕땐쓰, 그리고 나머지 기타 등등. (당시의 방송가 역시 음악을 셋으로 나눴다. 댄스, 발라드, 기타 등등.)  

그렇다면 오소운은 어쩌자고 흑인음악 기타 연주자가 되었는가. 아니, 그전에 왜 하필이면 기타를 택했느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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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건너 영등포로 넘어가 보자. 영등포 로터리 김안과 옆 건물의 파형을 담은 축세기의 3,795,001,903번 트랙에 따르면, 4층 ‘로타리 그룹사운드 학원’의 기타 강사 정규빈은 드럼을 배우러 온 오소운을 이렇게 꼬드겼다.

 

“소운아, 너 돈 벌려고 음악하려는 거잖아. 그런데 드럼은 돈이 되지 않아. 인건비가 안 나온다고. 자, 여기 악보를 봐봐. 한 마디가 100원이라면 드럼은 한 마디에 10원, 20원, 30원, 40원으로 쪼개서 하이햇을 쳐야 한다고. 완전 노가다잖아. 그런데 기타는 한 마디에 한 번씩 100원, 200원, 이렇게 우아하게 돈을 벌수 있잖니.”

오소운은 정규빈의 괴이한 논리와 마력의 미소에 이끌려 드럼 대신 기타를 선택한다. 정규빈이 이런 식으로 드럼 강사 ‘뽕드’의 수강생을 채 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드럼 강사 뽕드는 영등포 나이트클럽에 연주자를 배치하는 영등포 오부리계의 대부이기도 했다. 뽕드는 참을성 있게 근 일 년을 지켜보다 정규빈의 목줄을 똑 끊었다. 오소운은 양손에 깁스를 한 정규빈을 끌고 온 뽕드를 보았다. 뽕드는 정규빈 뒤에서 냉혹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규빈은 오소운에게 울먹이며 애걸했다. 손이 이 모양이라서 더 이상은 기타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고, 이제는 소운이 네가 나 대신 나이트 오부리 밴드의 기타를 맡아야 한다고. 제발, 우리 사랑하잖아. 정규빈이 드디어 사랑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오소운이 그토록 갈망하던 그 말. 순간 오소운은 정규빈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다. 거절 할 수 없어. 등 뒤의 뽕드가 나를 사랑하는 정규빈의 두 다리마저 부러뜨릴 테니까. 따를 수밖에 없는 거야. 그렇게 오소운은 뽕드가 밴드 마스터로 있는 영등포 오부리 밴드 ‘그룹Y’로 데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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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정규빈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오소운은 슬퍼하지 않았다, 서로 사랑했다는 믿음만으로 족했으니까. 보다 현실적인 문제는 자신을 데려간 뽕드가 뽕 없이는 드럼 스틱도 제대로 못 드는 대책없는 뽕쟁이였다는 것이다. 뽕드의 파형을 담은 축세기의 3,795,002,223번 트랙에 따르면, 오소운은 뽕드에게 쇠밧줄(미군 헌병들이 압수한 필로폰)을 대기 위해 나이트에 놀러 온 미군 헌병들과 수시로 잠자리를 해야 했다. 뽕드는 뽕을, 헌병들은 오소운의 몸을 얻었다면, 오소운은 무엇을 얻었던가. 물질적 파형으로 보자면 아무것도 없었다. 정신적 파형으로 볼 때 그나마 건진 게 있다면 커티스 메이필드와 뽕필이랄까. 오소운과 그 짓을 할 때마다 포르노 테이프를 트는 헌병이 있었다. 비디오테이프는 그때그때 바뀌었는데 신기하게도 배경 음악이 항상 비슷했다. 오소운은 몸이 섞이는 동안에도 음악에 집중했다. 또 그 음악이군. 묵직한 베이스, 상쾌한 콩가, 그 사이로 비어져 나오는 드높은 현악기, 그리고 심금을 울리는 은혜로운 가성(假聲). 일을 마치고 오소운이 물었다.

 

“이 음악, 누구야?”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 심포닉 소울의 마스터.”

 

헌병은 비디오테이프를 꺼내 들고 침대에 거꾸로 걸친 오소운의 볼에 입을 맞췄다. 오소운은 그렇게 커티스 메이필드의 심포닉 소울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느낌 그대로를 그룹Y의 무대에서 연주했다. 그러자 그룹Y의 리듬이 바뀌면서 나이트 전체의 파형이 흐트러졌다. 손님들의 춤사위가 느릿느릿해지고 있었다. 무대에서 내려온 뽕드는 오소운의 눈앞에다 노란 액체가 든 주사기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경고했다.     

 

"소운아, 오부리가 너무 훵키(funky)하면 못써. 가게가 루즈해지면 안 돼. 가게를 빠릿빠릿 돌려야지. 여긴 미국이 아니라 영등포잖니, 빠다가 아니라 된장으로 가야지. 플랜저를 살짝 걸어서 살랑살랑하게, 흑필을 뽕필로 살짝 바꿔주란 말이다."

 

오소운은 달궈진 숟가락에서 주삿바늘을 타고 올라오는 그 노란 액기스에서 뽕필을 보았다. 몇 년 후에 날라리뽕땐쓰라는 태그가 붙을 파동의 원형, 뽕(bbong)과 훵(funk)과 록(rock)의 융합 액기스가 주사기 안으로 주입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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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운이 뽕드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아이로니컬하게도 헌병들의 도움 때문이었다. 헌병들이 이태원의 미군 전용 클럽 ‘에이싸인’의 하우스 밴드에 오소운을 추천한 것이다. (‘에이싸인’은 미군을 상대로 유흥업 허가를 받은 오키나와의 클럽을 일컫는 ‘A sign’에서 유래했다.) 오소운이 누군가의 애를 지우고 나서였으니, 한편으로 그것은 헌병들의 집단 보상 같은 것이었다. 아무튼 뽕드와 뽕필로부터 독립이라니. 오소운은 이제야 제대로 된 소울(soul)을 연주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유행이 변하고 있었다. 이태원에 새로 들어온 어린 미군들이 원하는 건 말랑말랑한 훵크나 소울이 아니었다. 그들은 강력한 헤비메탈을 원했다. 술 취한 미군 아이들이 원하는 기타리스트는 한마디로 ‘The Man’이었다. 귀두 모양의 기타 헤드로 호스티스의 원피스를 벗긴 다음, 무대 아래 자신들의 아가리를 향해 전라의 호스티스를 먹이처럼 던져 줄 상남자 기타리스트를 원했다. 오소운은 그런 기타리스트가 될 수 없었다. 요염한 어깻짓만으로는 욕정에 굶주린 아이들을 달랠 수 없었다. 오소운은 그들과 동류가 아니라 그들의 볼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너무나 안 팔려서 금서로 지정된 게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하는 <20세기 물리지구 여성기타리스트 대백과>는 이렇게 적고 있다.

 

21세기에 독립적인 음악인으로 평가받는 인디씬의 여성 기타리스트는 허다하다. 미국의 세인트 빈센트, 일본의 에리노 유미키, 하야시 모모코, 한국만 해도 새소년의 황소윤, 에이퍼즈의 김진이 등이 있다. (심지어 뱅드림 걸스밴드파티의 다양한 귀요미 캐릭터들을 스쿨인디씬에 포함하기도 한다.) 21세기에는 분명 페미니즘의 영향이 있었다. 하지만 물리지구의 뮤직 페미니즘을 음악이나 뮤지션의 행보로만 단정할 수는 없다. 이런 단정은 조안 제트는 70년대 록페미고, 신디 로퍼는 80년대 팝페미이며, 자넬 모네는 21세기 훵페미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주장은 분석의 사각지대를 만든다. 조안 제트가 페미니즘에 동성애를 가미했다거나, 윌슨 자매를 주축으로 구성된 ‘하트’가 20세기의 중성 지대에서 성공한 케이스를 뮤지션의 기획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전통적으로 남성 소비자는 여성 기타리스트를, 여성 소비자는 남성 기타리스트를 눈요깃거리나 성적 판타지로 향유했다. 그리고 조안 제트나 하트의 매력 자본은 양성 모두에 소구하는 ‘중성의 판타지’였다. 결국 시장이 옮아간 것이다, 가부장 시장에서 페미니즘 시장으로.

 

이렇듯 오소운이 홍대 무대에 오르지 못한 두 번째 이유는 젠더 차별이다. 축세기는 이 젠더 차별이 첫 번째 이유인 장르 차별의 근본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눈요깃거리 여성 기타리스트라는 성역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폭력적인 밴드마스터 중심의 가부장 구조가 오소운 스스로 연주와 장르의 한계를 짓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영등포의 부킹 남녀와 이태원의 미군들, 다음 손님은 누구지? 오소운은 그렇게 번식장 강아지처럼 영등포에서 이태원으로 팔려나갔다가, 영역 싸움에서 밀려난 길냥이처럼 이태원에서 홍대로 흘러들어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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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번 가상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14번가상계체.jpg

이 14번 가상계체를 물리지구식 서체로 옮겨 쓰면 이런 말이 된다.

 

뽕쟁이 물렀거라, 힙쟁이 나가신다.

 

힙쟁이는 물리지구 1940년대의 재즈광들을 칭하던 힙스터를 낮잡아 부르는 말로, 14번 가상계에서는 주로 21세기 사람들이 90년대 홍대 인디 마니아들을 통칭하는 말로 통한다. 이들 취향 중독자들이 원하는 건 한마디로 ‘간지’였다. 이 단어의 유래는 당신이 속한 세계가 물리지구냐 14번 가상계이냐에 따라 조금 다르다. 물리지구에서는 느낌을 뜻하는 일본어 感じ(かんじ)에서 유래되었다고 본다. 이와는 조금 다르게 14번 가상계에서는 대마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ganja’에서 유래되었다고 본다. 축세기의 파형 분석에 따르면 14번 가상계의 땡땡골목에는 화장실 유령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한 레게 바 ‘꽃’이 있었다. 그 가게의 단골 손님이었던 힙쟁이 ‘난다 송선생’의 트랙에는 다음과 같은 증언이 담겨있다.  

 

그날 저도 꽃에서 유령을 봤어요. 바 한쪽 벽에는 밥 말리가 ‘크아~’하며 대마를 한껏 느끼는 사진이 걸려 있었거든요. 그걸 보면서 한대 빨았죠. 음악이 바뀐 다음에 다시 밥 말리 사진을 봤는데, 흐아, 사진 아래 못보던 글자가 보이는 거예요.

간.지.

그 글자들은 밥 말리의 간자 연기에서 나온 게 분명했어요. 글자들이 빨강, 초록, 노랑색의 크레파스 색감이었으니까요. 그 색들은 레게의 정신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라스트파리안(rastafarian) 운동의 상징색이라고요.

- 14번 가상계, 1997년, 웹진 <굴과 사랑>과의 인터뷰 中, 미공개 증언의 일부.

 

14번 가상계에서 간지의 의미는 ‘소울풀하고 샤머닉한 느낌’을 뜻한다. 물리지구식으로 풀자면 ‘사이키델릭하거나 몽환적인 느낌’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정작 물리지구에서의 간지는 ‘남과는 다른 멋’, ‘힙(hip)’에 가깝다. 그러니 그런 손님을 맞을 물리지구의 인디 밴드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힙함’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밴드의 힙함이라는 건 결국 사운드와 세계관, 그리고 스타일에서 나온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이 든다. CD나 LP를 사야 하고, 뮤지션 친구랑 사귀어야 하고, 밴드라도 할라치면 악기도 사야 하고, 아지트로 쓸 합주실도 필요하고, 피치포크 추천 앨범에 대한 토론도 해야 하고, 문화사회학이나 문학, 심지어 과학 담론도 공부해야 한다. 킨포크적 소셜 다이닝이라는 생태친화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생태친화적인 사유 부동산이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잡지에 나오는 호수나 정원, 별장 딸린 수목원까지는 아니더라도 텃밭을 일굴만한 마당, 적어도 밖으로 뚫린 베란다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설픈 힙스터 워너비가 아니라 찐힙쟁이들이라면 응당 그럴 만한 돈과 시간을 구비하기 마련이다. 홍대 인디씬은 그렇게 부모를 따라 히피처럼 세계 방방곡곡을 떠돌다가 이중국적을 고민하며 기타를 메고 돌아온 힙쟁이들이 판치는 곳이었다. 그런데 AFKN 흑인음악 프로 ‘소울트레인’에 꽂혀 고등학교도 때려치우고 막연히 음악을 하겠다며 생계형 오부리로 나선 오소운은 무엇을 구비하고 있었나. 실력? 감성? 인사이트? 어쩌면 그런 것들이야말로 시간과 돈이 해결해주는 것 아닌가. 경제적 기반은 힙의 생산자들인 찐힙쟁이의 필요조건이다. 나머지 추종자나 워너비는 힙의 소비자일 따름이다. 게다가 오소운의 장르는 말 그대로 훵(funk)이었다. 힙(hip)도 펑(punk)도 뽕(bbong)도 아닌, 그 어디서도 팔리지 않는 훵(funk). 그래도 오소운은 홍대를 동경했다, 자신의 장르도, 젠더도, 주제도 모르고 막연하게 힙의 생산자를 꿈꿨던 것이다. 

클럽 더블듀스(스팽글의 전신)에서 언니네 이발관 공연을 보고, 처음 만난 관객들과 어울려 땡땡골목 소금구이 집에서 뒤풀이를 하노라면 땡땡땡 차단기 경보음이 울린다. 열차는 굼뱅이처럼 슬금슬금 기어나오고 사람들은 무언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벤야민이 말한 진본성이 어쩌고, 뱅크시의 정체가 저쩌고, 홍대 벽화는 어째서 죄다 키스 해링이냐는 둥. 오소운은 알아듣지 못하는 그 말들이 신기했다.

 

“니들이 말하는 거 하나도 못 알아 듣겠는데 알 것 같아.”

“바로 그거야. 소쉬르 식으로 말하자면 기표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니까. 그게 포스트모더니즘이야.”

“오케이, 한잔해.” 

 

영국 여행을 가면 이런 기분이려나. 음악이니, 예술이니를 떠나서 또래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처음이었다. 이태원의 모텔방이나 BOQ(독신자 장교 숙소)에서는 느끼지 못한 청량감이 거기 있었다. 뽕에 찌든 뽕드도, 벌건 길가에서 대놓고 가슴을 주무르는 헌병들도 없었다. 그래, 그것만으로도 오케이.

 

“누나가 원하는 무대는 어디야?”

 

석쇠 건너편의 누군가가 그렇게 물었을 때, 술에 취한 오소운은 음악의 기쁨에 상응하는 대가들을 떠올렸다. 흠뻑 빠진 헤드폰 속의 세상에서 음악이 멈추었을 때 들이닥치는 일상의 퍽퍽한 소리와 풍경들. 정열의 무대가 끝나고 식어버린 몸뚱이. 그리고··· 

 

“어디든 다 오케이지.”

“에이, 그런 게 어딨어. 더블듀스? 드럭?”

 

계속되는 질문에 오소운의 목소리가 웅얼웅얼 입속말로 잦아들었다.

 

“무대 끝나고 어디를 맞게 될까, 누구랑 자게 될까, 그런 걱정만 없는 무대라면 어디든.”

 

 

“다 치워!”

 

클럽 사장이 소리를 지르며 허겁지겁 뛰어내려왔다. 오소운은 ‘우스개 오누이’라는 모던 록 밴드의 오디션 겸 리허설 중이었다.

 

“단속 떴어. 빨리!”

 

사장은 허둥지둥 앰프 전원을 끄면서 멤버들을 무대 아래로 밀어내렸다.

 

“무대는 일인용까지는 괜찮으니까 됐고, 악기는 인테리어라고 하면 되니까, 너네들만 숨으면 돼. 일단 여기로 들어가.”

 

사장은 무대 옆 창고로 멤버들을 밀어 넣었다.

 

“문 잠궈. 떠들지 말고.”

 

우스개 오누이와 오소운은 그렇게 어두컴컴한 창고에 갇혀 버렸다. 우스개 오누이의 두 멤버는 익숙한 듯 소파에 털썩 몸을 던졌다. 

 

“이리 앉아요.”

 

오누이 중 여자 멤버가 뻘쭘하게 선 오소운에게 자리를 권하며 말을 걸었다. 오소운은 어정쩡하게 소파에 엉덩이를 걸쳤다. 

 

“가끔 구청에서 단속해요. 홍대 클럽, 알고보면 다 불법이거든요. 클럽에서 한 명 이상이 무대에 서면 소방법 위반이라나 뭐라나.”

“식품위생법 위반.”

 

오누이 중 남자 멤버가 퉁명스레 말을 뱉었다. 남자는 오디션 내내 쓰던 선글라스를 컴컴한 창고 안에서도 벗지 않았다.

 

“금방 끝나. 뽀찌나 뜯으러 오는 거지.”

 

남자는 반말인지 혼잣말인지를 궁시렁거리며 소파 속으로 몸을 축 늘어뜨렸다. 여자가 오소운 곁으로 착 달라붙으며 말했다.

 

“언니 연주 너무 좋았어요. 오빠는 어땠어?”

“잘 치시네. 여자치고는.”

 

심드렁한 남자의 말에 오소운은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남자 옆구리를 쿡 찌르자 남자가 떨떠름하게 승낙했다. 

 

“같이 해 보시든가, 세션으로.”

 

여자도 오소운을 향해 맞장구를 쳤다. 

 

“그래요. 언니는 일단 세션으로 해요. 팀 이름이 우스개 오누이인데, 언니를 정식 멤버로 들이면 팀 이름이랑 안 맞잖아. 원래 이 오빠가 기타였어요. 그동안은 드럼 머신을 썼는데, 아무래도 라이브 느낌을 더 주려다 보니까 이 오빠가 드럼으로 가고, 기타를 새로 뽑게 된 거예요.”

 

오소운은 연신 발끝을 모았다 풀면서 곰곰히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오누이가 꼭 둘을 말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오누이는 오라비와 누이를 말하는 건데, 그게 삼남매도 있고 사남매도 있고 그러니까.”

 

오소운의 뜻밖의 해석에 당황한 여자는 고개를 돌려 남자에게 물었다.

 

“그래요? 오빠, 이분 말 맞아? 오빠 국문과잖아.”

“그게, 그러니까··· 아마 사전상으로는 그럴 거야. 그런데 실생활에서의 쓰임은 아무래도 오누이라는 게 둘 사이의 느낌이라서··· 그러니까 내 말은··· 아무래도 랑그하고 파롤차원에서···” 

“뭐래.”

 

여자는 툴툴거렸고, 남자는 소파 팔걸이에 턱을 괴고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사전적인 체계 역시 랑그라는 거야. 랑그 차원에서 보자면 오누이는 삼남매, 사남매로 확장할 수 있는 거지만, 개인적인 측면인 파롤 차원으로 보자면 오누이라는 게 둘 사이의 관계로 좁혀져 있다는 게 이 사회의 문화라는 거지.”

“개인적인 사회 문화라···”

 

오소운은 중얼거리며 가지런히 모은 발끝을 골똘히 바라보다 툭 내뱉었다.

 

“반대 아닌가?”

 

남자와 여자의 시선이 오소운에 집중되었다.

 

“말씀 들어보니까 랑그하고 파롤이라는 게, 잘은 모르겠지만, 그··· 사전적인 의미하고는 별로 상관없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오누이가 둘 사이만의 관계라는 선입견은 사회문화적인 체계니까 랑그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오누이의 범위를 삼남매, 사남매로 확대할 수 있다는 거야말로 저 같은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주장이니까 오히려 파롤 차원이라고 할 수 있는 거고요.”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저야 잘 모르죠.”

“그게···”

 

남자는 불규칙하게 입을 달싹거리며 선글라스를 벗고 오소운을 노려봤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그냥 ‘우스개 오누이들’이라고 하면 될 것 같은데요.”

 

남자는 한 대 얻어맞은 듯 띵하니 오소운을 바라보았다. 둘의 대화를 듣던 여자가 오소운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거 좋네, 우스개 오누이들. 그러면 언니도 정식 멤버가 될 수 있고.”

 

남자는 선글라스를 고쳐 쓰고 소파에 널부러지면서 싸늘하게 말했다.

 

“곤란해. 우스개 오누이라고 하면 벨벳 언더그라운드 느낌인데, 우스개 오누이들이라고 하면 레이먼드 카버 느낌이라고. 여섯 글자는 불온한 인디 느낌인데 일곱 글자는 뭔가 해피하잖아,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여자는 남자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소운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창고 밖에서 클럽 사장과 단속반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영업정지가 어쩌고, 인테리어가 저쩌고, 지난번에 인사를 갔다느니, 인사철이라  주무관이 바뀌었다느니. 창고 안의 셋은 잠깐 숨을 죽이고 창고 밖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무언가를 수근대다가 이내 껄껄거리며 층계를 타고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얘기가 잘 풀린 모양이었다. 오누이의 남자 멤버가 픽 웃고는 오소운을 향해 한결 나긋하게 물었다.    

 

“그런데 그쪽은 기타를 어디서 치셨나.”

“왜요?”

“마냥 흑필은 아닌 것 같아서. 약간 밤 냄새가 난달까.”

“날카롭네요. 약간 뽕필이죠? 제가 원래 오부리 출신이라 그럴 거예요.”

“오부리는 어쩌다가?”

“말하자면 길어요. 그런데 지금 이것도 계속 오디션인 거죠?”

 

여자는 한숨을 쉬며 오소운을 향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남자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하마르티아 같은 거네.”

“네?”

“운명적인 결함.”

“결함?”

“뭐 일종의 버그 같은 거지.”

“아, 버그···, 그러니까 제 밤무대 오부리 경력이···”

“버그가 없는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지만, 디버그가 불가능한 프로그램도 역시 존재하지 않지.”

“무슨 말이에요?”

“공각기동대 대사. 요즘 핫한 일본 만화인데, 곧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온다네. 봤어요?” 

“못 봤어요.”

 

남자는 몸을 반대로 돌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여자가 기타 가방에서 크레파스를 꺼내 들고 창고 벽에다 무언가를 그렸다. 빨강, 초록, 노랑색으로 덧씌운 글자였다.

 

간.지.

 

글자 위로 밥 말리 사진이 걸려 있었다. 사진 속의 밥 말리는 오소운을 향해 ‘크아~’하고  대마를 한껏 느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소운은 사진을 보며 영등포의 기타 강사, 뽕드, 이태원의 헌병들을 떠올렸다. 바로 그때 창고 문이 벌컥 열렸다.

 

“나와. 공연 준비해야지.”

 

클럽 사장이 문고리를 잡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남자는 끙차, 하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고 오소운에게 말했다.

 

“뭐 그래도 잘 치네, 여자치고는.”

 

오소운은 네, 하고 짧게 답하고 주섬주섬 기타를 챙겨 들었다. 햇볕에 부슬거리는 먼지를 따라 클럽 층계를 걸어 올라갔다. 남자도, 여자도, 클럽 사장도 오소운을 잡지 않았다.  땡땡골목으로 내려와 기찻길을 따라 터벅터벅 걷다 자갈 하나를 손에 쥐었다. 햇볕에 익은 자갈이 따스했다. 까망이와 노랑이, 고양이 둘이 담벼락과 지붕을 오가며 오소운의 뒤를 밟았다. 차단기 건너편에 리어카를 끌던 막걸리 아저씨가 어이, 하며 손짓을 하는 게 보였다. 

 

*  

 

이렇듯 축세기의 인과분석 AI는 오소운이 홍대 무대에 오르지 못한 세 번째 이유로 문화 차별을 든다. 그리고 축세기의 비교문화분석 AI는 90년대 물리지구 홍대의 인디씬에 조선 시대의 반상(班常) 구별이나 사농공상(士農工商) 식의 위계적인 신분 의식이 존재했다고 덧붙인다. 신분 의식은 감각의 위계라고도 할 수 있는데, 예컨대 하드 록은 무거운 것, 깊은 것, 깊은 울림으로 느껴져 철학적인 고급 예술로 여기는 반면, 디스코는 가벼운 것, 얕은 것, 휘발성 파동으로 느껴져 흔하고 가치없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소운이라는 122번째 ‘지망 불운아’의 불운이 겉보기에는 1. 단순한 ‘장르 차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기저에는 2. 가부장적 선발 구조와 남성 중심의 성역할이라는 음악 시장의 ‘젠더 차별’과 3. 유교적 선민의식으로 점철된 배타적인 ‘문화 차별’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이 축세기의 결론이다. 축세기는 오소운의 경우를 분석함으로써 20세기 ‘힙’ 역시 다른 취향의 배격에 의해 획득되고 유지되는 소비 자본주의의 일면이었음을 끄집어 낸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의 인디는 어떠한가. 그것을 알기 위해 물리지구의 21세기 인디를 들여다 보아야 할까? 안타깝게도 21세기의 물리지구에 인디씬은 완전히 소멸되었다. 그것들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해시태그나 글로벌 K-pop 기업들의 음악 생산 라인에 쓰이는 오디오 라이브러리로, 그러니까 데이터나 프리셋의 형태로 간신히 존재할 뿐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그럴리가요, 인디씬은 존재합니다. 나는 분명 21세기 지구에 살고 있는데, 여전히 인디 밴드들이 홍대나 문래동에서 연주를 하고 있단 말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물리지구가 아닌 14번 가상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놀랄 일이 아니다. 추월재생 현상은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물리지구의 당신을 14번 가상계로 옮겨놓는다. 그리고 축세기의 기록과는 무관하게 당신은 21세기 물리지구에 살면서 여전히 인디씬이 존재한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당신이 사는 세계가 물리지구인지 14번 가상계인지를 인디씬의 존재로 판단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이다. 확실한 방법이 딱 하나 있기는 하다. 14번 가상계에 사는 강아지와 고양이들은 동네 아이들을 ‘씨발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멍멍 짓는 강아지를 멍멍이라고 부르고, 야옹거리는 고양이를 야옹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리지구의 아이들이 지나가는 강아지나 고양이에게 ‘아, 씨발 존나 귀여워’, 라고 할 때마다 피아노 롤에 구멍이 뚫려 14번 가상계의 파형으로 기록된 것이다. 고양이나 강아지의 목소리를 어떻게 알아듣냐고? 자세히 들어보라, 들릴 것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파형은 물리지구(12번 가상계)도, 백업지구(13번 가상계)도 아닌, 추월재생지구(14번 가상계)의 기록이다. 21세기 추월재생지구의 파형을 담은 211번째 원판, 1,227,806,439번 트랙을 열어 보자.

 

*

 

봉다봉은 가랑이 사이의 말단으로부터 콘돔을 빼내면서 푸르르 입술을 떨었다. 말단이 오늘따라 민감하고 빈번하게 작동했던 것이다. 여성성이라는 생물학적 자극에 그저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고장난 단말기려니, 봉다봉은 그렇게 여기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의 머리와 가슴은 이 부랑한 말단처럼 여성의 몸에 반응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없었으니까.

 

“너, 정말 게이 맞니?”

 

유 교수가 만족 어린 냉소를 띠며 봉다봉의 허벅지를 도닥였다.

 

“네, 교수님.”

 

봉다봉은 고개를 돌려 얕은 한숨을 쉬며 콘돔을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유 교수는 봉다봉의 허리를 바싹 당겨 허벅지를 베고 누워서 봉다봉을 올려다보았다.

 

“비밀 하나 말해줄까?”

 

또 시작이군. 이 여자는 왜 잠자리를 하고 나면 꼭 자기 비밀을 터는 걸까. 자기가 어떤 강사, 어느 과 학과장하고 잤으며, 그 학과장은 또 어떤 교수랑 잤고, 그 교수는 총장하고 잤다는 얘기들. 유 교수의 비밀이란 따지고 보면 이 학교가 잠자리로 맺어진 하나의 일족이라는 이야기였다.

 

“비밀이 깨지는 순간 모두가 죽는 거라고. 씬 전체가.”

 

유 교수가 얄궂은 미소를 지으며 샤워실로 들어갔다. 봉다봉은 침대맡에 돌돌 말린 유 교수의 팬티를 풀면서 생각했다. 그 순간 봉다봉의 심상 파형을 문자로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그래, 교수님은 언제나 강조했지, 문화는 씬이고, 씬은 배양지이자 서식지라고. 씬이 무너지면 여러분의 생태계가 무너지는 거라고. 그래도 난 분명하게 말했는데, 교수님, 죄송합니다, 제가 여자에 끌리는 타입이 아니라서요, 라고. 은택이 형만 있었더라면, 이렇게 여자한테까지 몸을 팔 필요는 없었을 텐데.’

 

봉다봉은 얼마전까지 자신을 스폰서링하던 서은택을 떠올렸다. 봉다봉은 전공을 살려 유튜브로 신청곡을 받으면서 드럼 연주를 하고 후원을 받았다. 서은택은 끊임없이 신청곡을 올리던 진상 고객이었다.

   

“다봉아. 인간 드러머는 이제 쓸모가 없어. 신체적인 한계라는 게 있잖아. 컴퓨터는 훨씬 정교하고 복잡한 연주가 가능하지.”

“하지만 인간이 치는 게 훨씬 멋지죠.”

“아직까지야 그렇지, 라이브에 한해서.”

 

서은택은 게임 음악 작곡가답게 수시로 컴퓨터와의 배틀을 유도했다.

 

“컴퓨터 드럼으로는 이런 느낌이 가능한데, 다봉이 너도 이렇게 칠 수 있어?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봉다봉은 컴퓨터 드럼 키트보다 인간 드럼이 낫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무릎이 깨져라 투베이스 트윈 페달을 굴렀다. 그리고 정말 무릎이 나갔다. 서은택은 봉다봉의 반월상연골 파열이 자신의 무리한 요청 때문이라며 수술비를 선뜻 내주고 재활을 도왔다. 둘은 그렇게 스폰서링 관계를 맺었고, 서로를 늙은이, 애송이라고 놀리면서 서로를 탐했다. 봉다봉은 서은택이 손님처럼 느껴질 때마다 스스로를 혐오하면서도 결국 스스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서은택을 만나는 내내 ‘재능팔이나 몸팔이나 어차피 품팔이’라는 14번 가상계의 격언을 자신의 심상에 옮겨 붙이고 다녔다.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술에 쩐 서은택이 벌러덩 누워 무릎 밑의 봉다봉을 향해 이렇게 씨불인 것이다.

 

“다봉아, 음악은 취미로나 하는 거야.”

 

이 옹알이의 파형이 봉다봉의 가슴을 봉인하던 격언 파형을 밀쳐 냈다. 봉다봉은 서은택의 옹알이에서 어릴 적부터 자신을 노리개 취급하던 막내 삼촌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 인간도 봉다봉의 몸을 쓰다듬으면서 똑같은 말을 하곤 했었다. 

 

“다봉아, 음악은 취미로나 하는 거야.”

 

12번 물리지구에서 소환된 그 말. 봉다봉을 14번 가상계로 옮겨놓았던 그 상황. 그것으로 서은택과는 끝이었다. 연락을 끊고, 방을 옮기자, 기어코 학교에까지 찾아온 서은택은 자기가 봉다봉 삼촌이라고 둘러대기까지 했다. 유 교수는 경찰을 불러 서은택을 쫓은 다음 울먹이는 다봉이를 그러안고 등을 도닥였다. 

 

“다봉아,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 우리 하나하나가 이 씬의 구성원이잖니.”   

 

유 교수는 봉다봉을 적극적으로 후원했고, 봉다봉은 유 교수에 적응했다. 심상 파형 기록에 따르면 호텔 엘리베이터에 오를 때마다 봉다봉은 이렇게 되뇌었다.

 

‘나는 남자다, 나는 남자다, 나는···’

 

길어야 한두 시간 이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유 교수가 있는 방에 들어간 다음 콘돔을 벗어 던질 때까지. 봉다봉은 한 달에 서너 번 시스 헤테로로 분해 남성 이성애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것으로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유튜브 알바나 새벽 알바를 뛸 필요도, 상대평가에 목숨 걸고 마음에도 없는 얘들과 앙상블 조를 짤 필요도 없었다. 유 교수는 봉다봉을 유복한 인디밴드 프로젝트에 추천해 주기까지 했는데, 밴드 이름이 세상에, ‘아인슈페너 듀오’였던 것이다.

 

*

 

‘아인슈페너’는 독일어로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를 뜻했다. 마차를 끌던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마부들은 장거리 운행의 피로를 쫓기 위해 커피에 설탕과 생크림을 듬뿍 부어 마셨는데, 여기서 물리지구의 ‘비엔나 커피’ 또는 ‘아인슈페너’가 유래되었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 21세기 14번 가상계 말로 ‘아인슈페너 듀오’는 ‘섞이되 섞이지 않는 시너지 효과’를 뜻한다. 아인슈페너의 에스프레소와 휘핑크림처럼 컵에서는 분리되었으되 입 안으로 들어가면 쓴맛과 단맛이 섞이면서 새로운 풍미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단쓴단쓴. 단 게 쓴 걸 부르고, 쓴 게 단 걸 부르는 걸 반복하는 거야. 각성을 유지해 주는 확실한 노동 음료지.”

 

찬수찬은 봉다봉에게 저 나름의 아인슈페너 미학을 설명했다.

 

“필로폰 같은 거지. 필로폰도 애착이라는 뜻의 ‘philo’에 노동을 뜻하는 ‘ponus’가 붙은 거거든. 한마디로 각성제지. 일본에서는 필로폰을 피로회복제로 팔기도 했었어. 그 피로회복제 이름이 바로 히로뽕(ヒロポン)이었다고.”

 

노동 음료나 히로뽕같은 음악? 인디 밴드가 노동요나 진군가 같은 걸 하자는 건가? 봉다봉은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물었다. 

 

“인디 밴드라면 보통 각성이 아니라 침잠하는 쪽을 추구하지 않나?”

“그건 20세기적 인디 얘기지. 요즘 같이 빡빡한 세상에 침잠이라니. 그건 대마에 쩔은 떨쟁이들 힙합에나 어울리지.”

 

‘떨’ 같은 침잠이 아니라 ‘뽕’ 같은 각성을 과연 ‘힙’이라고 할 수 있는가? 봉다봉은 찬수찬의 말이 묘하게 어딘가 어긋나 있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반박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것도 일이고 결정권은 찬수찬에게 있었으니까. 찬수찬은 아버지 명의의 금싸라기 용인 전원 주택을 개인 스튜디오로 쓰고 어머니 명의의 연남동 건물 루프탑 전체를 레이블 오피스로 쓰는 킨포크적 금수저에다 구김살 하나 없는 ‘분당 인디’니까. 게다가 우리 둘은 시스 호모 듀오고 찬수찬은 보기 드문 이쁜이잖아.

 

“아인슈페너 듀오라. 뭐 괜찮네.”

 

봉다봉을 만난 찬수찬은 목줄 풀린 강아지처럼 펄펄 뛰어다녔다. 신혼부부 세간살이 늘리듯 스튜디오 녹음 장비를 들여놓고, 새로운 드럼 사운드를 만들어 내겠다며 드럼 곳곳에 마이크와 이펙터를 달고 봉다봉이 요상한 소리들을 내게 했다. 진짜 뽕이라도 맞았나? 드러머인 봉다봉 입장에서야 찬수찬의 실험적인 비트메이킹이 재밌기는 했다. 하지만 어떨 때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였다. 이건 뭐 음악을 만들자는 건지, 장비 쇼핑을 하자는 건지.

 

“찬, 이렇게 돈을 들여서 녹음하는 것보다는 컴퓨터 가상악기를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일 텐데.”

“봉, 우린 예술가라고. 아무리 작은 차이라도 쓸 건 써야지.”

“그게 별 차이가 없다는 거야, 찬. 어차피 최종 음악은 디지털 파일이잖아. 수백만 원 나가는 앰프나 월 0.99달러짜리 가상악기 시뮬레이터나 어차피 똑같다고. 사람들 귀는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해.”

“들리는 소리 문제가 아냐, 봉. 음악을 대하는 태도 문제인 거지. 이런 과정 하나하나가 알게 모르게 아인슈페너 듀오의 품격을 높여주는 거라고.”

“좀 사치아닌가.”

“그게 힙한 거야. 쓸모없는 것에조차 집중할 수 있어야지. 뭐 하러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을 LP바나 청음실 하이엔드 오디오로 듣고, 뭐 하러 컴퓨터로 찍을 수 있는 드럼을 네가 직접 치겠어.”

“흠, 나같은 인간 드러머는 딱히 쓸모는 없으나 하이엔드라는?”

“너는 기계보다 부정확하게 드럼을 치면서도 쓸데없이 땀을 흘리잖아. 그 점이 제일 섹시한 부분이지.”

“하지만 내가 흘리는 땀은 소리가 아니라서 녹음되지 않아, 찬.”

“그래도 나는 느낄 수 있잖아, 봉.”

 

찬수찬은 이쁜 웃음을 지으며 봉다봉에게 다가가 키스를 했다. 봉다봉은 키스를 오랫동안 이어가고 싶었지만 찬수찬의 관심은 벌써 봉다봉의 아랫도리로 넘어가고 있었다. 찬수찬은 능수능란하고 사치스러우면서도 효율적으로 봉다봉의 신체 곳곳의 말단들을 자극했다. 감미롭고, 하릴없었다. 봉다봉은 마치 찬수찬 스튜디오의 장비들처럼 찬수찬의 실험에 놀아날 수 밖에 없었다. 찬과 봉, 아인슈페너 듀오. 14번 가상계 말 그대로 둘은 ‘뱁쌍아치’, 물리지구 식으로 말하자면 찰떡궁합이었다.

 

*

 

여기서 잠깐. 

물리지구에 찬수찬과 봉다봉을 이르는 ‘뱁쌍아치’나 ‘아인슈페너 듀오’라는 말이 없는 이유는 봉다봉이 서은택의 씨불임을 말 그대로 씨불임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물리지구의 봉다봉은 “음악은 취미로나 하는 거야”라는 서은택의 말을 이렇게 들었다.

“으아으취미로구나.”

봉다봉은 그걸 서은택의 달뜬 신음 정도로 잘못 알아듣고 보다 격하게 혀를 놀렸다. 둘은 극도의 희열을 주고받았고, 꽤 오랫동안 헤어지지 않았으며, 서은택의 후원은 계속되었다. 봉다봉은 유 교수에게 몸을 팔 필요가 없었고, 찬수찬을 만나 아인슈페너 듀오를 결성하지도, 찬수찬과 뱁쌍아치로 지내지도 못했다. 이렇듯 14번 가상계는 물리지구보다 아주 조금 예민한 감각의 파형들로 채워진 세계다. 물리지구 파형의 대부분이 14번 가상계의 파형보다 밋밋한 경향을 띠는 건 이 때문이다. 

물리지구의 봉다봉은 서은택 밑에서 게임음악을 만들다 독립해서 십여 년간 서은택과 경쟁했다. 실용음악학원을 차렸다가 사기를 당하고 평범하게 망해서 많은 이들처럼 복합적인 스트레스와 분별없는 생활 습관으로 예사로이 병사했다.   

 

또 한 가지.

 

축세기는 21세기 14번 가상계의 90년대 인디를 부르주아적 힙스터(hipster) 취향으로 분류한다. 그 파형의 형태가 60-70년대 물리지구 미국의 히피(hippie) 파형과 여러모로 닮았기 때문이다. 히피는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20세기 미국의 주류 지배계급인 백인·앵글로색슨계·개신교도)로 축약되는 그들 부모 세대의 가치관에 반기를 들었다는 점에서 분명 반문화 성격을 띠었다. 하지만 그 깃발은 혁명이라기 보다는 반항에 불과했다. 오히려 흑인들의 ‘공민권운동’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인종·계급 투쟁의 여파를 흡수하는 스펀지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히피 문화는 부르주아적이다. 면역과 길항의 반문화가 근본적인 혁명을 가로막는 법이다. 20세기 물리지구의 미국은 자유와 평화, 환경과 생태, 사랑과 공동체라는 히피의 가치를 슬쩍 업데이트 하는 것으로 백인 지배라는 문명 O.S.(운영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축세기는 히피즘의 사례가 후기 조선이 성리학에 실학 패치를 업데이트하면서도 봉건 신분제라는  O.S.를 유지했던 것에 견줄 만할 지배 전략이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체제유지적이면서도 가이아적인 14번 가상계의 인디 감성은 예컨대 미아자키 하야오와 크라프트베르크의 콜라보로 제작된 환경주의 스팀펑크 애니메이션 <이제 그만 방사능>에 잘 드러난다. 2013년과 2017년 크라프트베르크의 물리지구 내한 공연에서 자신들의 음악 <Radioactivity>의 한 마디를 한국어 “이제 그만 방사능”으로 시전한 것이 순간 14번 가상계로 추월재생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후쿠시마 오염수와 해양 폐기물의 콜라보로 탄생한 날라리뽕땐쓰적 돌연변이 생명체들이 야금야금 가상계를 갉아먹는 참혹한 모습들을 담뿍 담았다. 축세기는 <이제 그만 방사능>의 아트워크가 이탈리아의 프로그레시브 밴드 Gleeman의 셀프 타이틀 앨범 <Gleeman>을 차용했으며, 그 파형의 유사성으로 보자면 마츠모토 레이지와 다프트 펑크의 콜라보로 제작된 <인터스텔라 5555>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

 

부르주아적 취향으로 시작된 찬수찬의 인디는 점차 사업 아이템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찬수찬이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야 할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부동산 개발이라니. 그것은 힙스터 최대의 위기였다. 아버지가 물려받으라는 수십 개의 건축사무소는 전혀 힙하지 않았다. 찬수찬은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강변했다.

 

“지금은 아인슈페너 듀오가 인디밴드에 불과하지만 저 나름의 비전이 있다는 거예요. 나중에 이 이름을 외식 브랜드나 프랜차이즈로까지 확장시킬 거라고요.”

 

아버지는 아들에게 조건을 걸었다. 

   

“딱 1년이다. 성과가 없으면 바로 사무소로 출근하는 거야. 아니면 완전히 독립하든가.”

 

찬수찬은 마지못해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아인슈페너 듀오는 인디 스타트업 프로젝트가 되었다. 찬수찬은 이 사업의 포인트가 젠더 정체성에 있다며 봉다봉과 동반 커밍아웃을 제안했다. 축세기의 파형 기록에 따르면 찬수찬은 봉다봉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찬 : 페미 열풍으로 걸밴드가 늘어났잖아.

봉 : 어이없네. 걸밴드 팬들은 남자들 아냐?

찬 : 그건 걸그룹 얘기겠지, 밴드처럼 이전에 남성 역할이던 걸 여자가 수행하면 여자들한테 더 먹히는 법이라고. 여군, 여전사, 여조종사처럼. 시스 헤테로의 세계가 그렇다고.

봉 : 어이없네. 드럼 머신한테 밀려, 여자 드러머들한테 밀려, 나같은 남자 드러머는 점점 더 할 일이 없겠네. 

찬 : 아니지, 남자 드러머들이 너무 흔해서 그런 거지. 그런데 우리는 장점이 있잖아.

봉 : 지금 퀴어밴드로 홍보하자는 거야?

찬 : 아니, 정확히는 BL(Boy’s Love)밴드지.

봉 : 그게 그거 아냐?

찬 : 확장성이 다르지. 퀴어밴드는 너무 단정적이잖아. BL밴드처럼 모호하게 가야지.

봉 : 네 정체성이 얼마나 모호한지는 모르겠지만, 내 정체성은 분명해.

찬 : 내 말은 시헤녀(시스 젠더 헤테로 섹슈얼 여성)들이 최대한 편안하게 소화할 수 있게 하자는 거야. 제일 큰 소비자층이니까. 이건 사업이라고, 이 친구야.

봉 : 아, 짜증나.

찬 : 우리들 머리와 가슴은 호모일지언정 아랫도리는 여전히 바이의 능력이 충만하니까.

봉 : 시헤남은?

찬 : 뭐 버려야지. 어차피 돈도 안되잖아. 사십 넘은 시헤남들은 술만 먹고, 어린 시헤남들은 몸 만들기나 게임에 빠져있잖아.

봉 : 이런 시헤남포비아. 너 진짜 존나 차별주의자네.

찬 : 시헤남포비아 인정. 하지만 팩트필리아야.

 

축세기의 인과분석 AI는 <혐오와 성애의 나날들>이라는 아인슈페너 듀오의 앨범명이 다름 아닌 이 대화에서 비롯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앨범은 아인슈페너 듀오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이 되었다. 

 

O.S.T. <혐오와 성애의 나날들>

 

축세기는 아인슈페너 듀오의 해체 이유를 ‘실로 복합적’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파탄의 시작은 앨범에 들어갈 크레딧을 정하면서 부터였다. 찬수찬은 작사, 작곡, 편곡은 물론 각종 기타와 건반 연주, 보컬, 기획, 마케팅 등등 드럼을 제외한 전 분야에 이름을 올리겠다고 했다. 사실이 그러했으니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봉다봉은 서운했다. 그래도 밴드인데, 적어도 작사, 작곡에 있어서는 봉다봉 자신도 어느 정도는 영감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찬수찬은 크레딧은 정확해야 하고 ‘작곡’과 ‘영감’은 분명히 다르다며, 정 원한다면 ‘작곡 : 찬수찬, 영감 : 봉다봉’으로 표기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봉다봉은 ‘영감’으로는 저작권료를 받지 못한다고, 영감도 분명히 작곡에 포함해야 한다고 맞섰고, 찬수찬은 지금 돈 때문에 이러는 거냐며 아연했다. 이후로 모든 게 삐걱댔다. 앨범을 발매하고 찬수찬은 ‘스타트업 인디밴드’답게 SNS 광고에 수백만 원을 쓰고 명함처럼 CD를 뿌려댔다. 하지만 반응은 시큰둥했다. 몇 군데 클럽 공연이 잡히기는 했지만 관객은 언제나 열댓 명이 고작이었다. 찬수찬은 어떻게든 올해 안에 성과를 내야 한다며 마구잡이로 행사나 축제를 잡기 시작했다. 찬수찬은 호기롭게 아인슈페너 듀오가 ‘BL인디밴드’라고 강조했지만 대다수의 시스 헤테로 관계자들의 머릿속에 BL은 퀴어였고, 퀴어는 게이였다. 지역 축제에서는 게이밴드라고 까였고, 퀴어 축제에서는 영리 목적의 퀴어밴드라고 까이기가 일쑤였다. 설상가상 코로나로 클럽 공연마저도 끊겼다. 둘은 서로 바람에 맞바람을 피워댔다. 싸우지도 않았다. 어디서부터가 바람이고 어디서부터가 맞바람인지 알 수도 없었다. 반 년만에 만났을 때, 봉다봉은 마음을 다잡고 찬수찬에게 복종의 자세로 화해의 말을 건넸다.

 

“첫 앨범이었잖아. 코로나 끝나면 괜찮아질 거야. 차라리 이럴 때 음악 작업이나 하자. 매달 꾸준히 싱글을 내면서···”

 

찬수찬은 회전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돌면서 허공에 대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인디는 아닌 것 같아. 코로나 끝나면 유학이나 가려고. 뮤직비지니스 같은 걸 배워봐야겠어.” 

 

의자가 스르륵 멈추자 찬수찬은 다시 의자를 빙 돌려서 봉다봉의 서글픈 시선을 외면하고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역시 음악은 취미로나 하는 거지.”

 

봉다봉은 다시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뽁뽁이는 입술 틈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셀로판지를 덧댄 것처럼 찬수찬 위로 막내 삼촌과 서은택이 겹쳐졌다. 달아나듯 연남동 루프탑을 내려와 숨을 고르며 터벅터벅 걸었다. 경의선 숲길을 따라 땡땡골목 건널목을  지나자 까망이 하나가 따라붙었다. 봉다봉이 낌새를 채고 뒤를 돌았다. 고양이가 둘이었다. 까망이 바로 뒤로 노랑이가 보였다. 둘은 흠칫하고 담벼락 위에 멈춰섰다. 쫑긋 세운 까망이의 귀와 귀 사이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건널목 쪽이었다. 흔적만 남은 차단기와 황동빛의 역무원 동상 뒤로 흔들거리는 리어카가 보였다. 손잡이 칸에서 막걸리 아저씨가 뽀얀 막걸리 병을 흔들고 있었다.

 

*

 

막걸리 아저씨가 외치는 순간 두 세계가 하나로 겹쳐졌다. 12번 물리지구 1995년의 오소운은 따스한 조약돌을 손에 쥐고 건널목으로 다가갔다. 14번 가상계 2020년의 봉다봉도 같은 지점을 향해 걸었다. 까망이와 노랑이가 선선히 둘을 안내했다. 비트의 성위 구세주는 이 현상을  ‘느슨한 연대재생 현상’이라고 명명했다.

 

원본인 12번 물리지구에 추월재생본인 14번 가상계가 포개진 것입니다. 12번과 14번의 같은 지점에서 불거진 같은 파형이 막걸리 아저씨 파형의 도움으로 피아노 롤에 새 구멍을 뚫은 경우죠. 이 사건으로 계급, 젠더, 문화와 같은 세상의 조건이나 정체성, 취향으로 차별 받는 자들의 세계, 바로 15번 가상계가 펼쳐졌습니다. 이 세계는, 말하자면 40대 여성과 20대 남성이 그들이 뒤집어쓴 사회적 정체성을 벗고 인간과 인간으로 연대하는 세상입니다. 이들은 세대나 젠더라는 생물학적, 사회적 정체성을 넘어 차별 그 자체에 맞서기 위해 연대합니다. 15번 가상계는 집단 정체성으로부터 개인을 독립시키는 ‘자기 정체성’에 집중합니다. 12번이나 14번 가상계처럼 집단·진영의 입장을 위해 연대하기보다는 다른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함께 노닐고 연주합니다. 15번은 처음으로 무리짐승의 속성에서 탈피한 그야말로 ‘인디’의 세계입니다. 이 세계로 넘어온 자유인들의 염원이 새로운 악보를 썼습니다. 재즈의 즉흥연주처럼 같은 공간에서 우연히 협연한 세계, 기존 세계의 리듬이 약간씩 당겨지면서 보다 느슨하고 리드미컬한 세계가 열린 것입니다. 힙과 뽕의 싱커페이션이랄까요. 저는 이 현상을 ‘차별받는 자들의 느슨한 연대재생 현상’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막걸리 아저씨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 얼굴로 함박 미소를 지으며 종이컵에 막걸리를 콜콜 따라서 오소운에게 건냈다.

 

“막걸리 한번 잡숴 봐!”

 

오소운은 주저없이 한숨에 잔을 들이켰다.

 

“크아!”

 

그런 다음 말없이 아저씨에게 잔을 건냈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컵을 받고 오소운에게 막걸리 병을 건냈다. 

 

졸졸

 

오소운이 조심스레 막걸리를 따랐다. 막걸리가 차자 아저씨는 보란 듯이 잔을 높이 들었다. 쨍한 햇살에 아저씨의 눈빛이 자못 경건하게 빛났다. 아저씨는 종이컵 바닥으로 리어카 손잡이를 쓸면서 반대편으로 잔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오소운의 건너편에서 투명한 실루엣이 드러났다. 실루엣이 팔을 내밀어 잔을 받자 색이 들어차면서 형태가 분명해졌다. 봉다봉이었다.

 

“크아!”

 

봉다봉도 한숨에 잔을 들이키고 맞은편의 오소운을 바라봤다. 오소운이 둘러맨 기타 가방 뒤로 시커먼 터널이 보였다.   

 

땡. 땡. 땡. 땡.

 

풍경 소리처럼 맑은 경보음이 바람을 타고 건널목에 찰랑거렸다. 곧이어 철그럭 소리를 전주로 터널의 암막을 걷고 기차가 등장했다. 

 

땡.땡. 철그럭. 땡.땡. 철그럭. 

 

기차는 경보음과 요란한 협연을 펼치며 아주 천천히 지나갔다. 막걸리 아저씨가 차창 안의 승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주문처럼 외쳤다.

   

“뮤직 이즈 라이프!”

 

승객들도 손을 흔들었다, 리어카를 둘러싼 아저씨와 오소운과 봉다봉과 까망이와 노랑이를 향해. 오소운과 봉다봉도 승객들과 눈을 맞추며 싱그레 웃었다.

 

“크아!”

 

아저씨는 흥에 겨워 막걸리를 한잔 들이켰다. 봉다봉은 가방에서 드럼 스틱을 꺼낸 다음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저기.” 

 

아저씨가 철길 옆 소금구이 집에서 화덕으로 내어놓은 양철 드럼통을 가리켰다. 봉다봉은 양철 드럼통 의자에 앉아 양철판을 두들겼다.

 

탱. 탱.

 

맑고 높은 두들소리가 골목으로 울려 퍼졌다.

 

“합주 할래요?”

 

봉다봉의 제안에 오소운은 빙긋 웃으며 양철판 위에 조약돌을 올렸다. 막걸리 아저씨가 빈 막걸리 통 두 개를 텅텅 튕기며 슬겅슬겅 드럼통으로 다가왔다. 오소운도 가방에서 기타를 꺼내 봉다봉과 아저씨의 리듬에 맞춰 기타를 튕겼다. 

 

쿵쿵탱두둥 쿵쿵탱

쿵쿵탱두둥 쿵쿵탱

 

정체불명의 그루부로 건널목이 넘실거렸다. 오소운이 흥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밴드 이름은 ‘우스개 오누이들’ 어때요?”

“간지룻!”

 

봉다봉이 15번 가상계의 말을 내뱉었다. 굳이 물리지구 식으로 번역하자면 ‘은근히 끌리는 게 완전 죽이는데’, 라는 말이다. 아저씨는 막걸리 통을 텅 치고 빙글 돌리면서 잇따라 외쳤다.

 

“뮤직 이즈 라이프!”

 

어느새 소금구이 집 함석 지붕 위로 올라간 까망이와 노랑이가 드높게 야르릉거리며 이들의 공연을 내려다보았다. 


 

*

 

마지막으로 축세기의 고안자 비트의 성위 구세주가 제기한 의문을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하지만 여전히 두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 두 세계의 인격을 동시에 호출한 막걸리 아저씨는 애초에 어느 세계에 속한 인물이었던가.

- 15번 가상계는 막걸리 아저씨의 자유의지로 발생한 것인가, 아니면 순전히 자연발생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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