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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디스커넥트

2021.05.06 08:2905.06

디스커넥트

 

 

 

 

 

‘언젠가는 엄마를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어머니의 기일이다.

 

역노화제가 서민이 무리 없이 살 수 있는 가격으로 풀리기 바로 전날에 내 어머니는 노화로 돌아가셨다. 음의 소득세만을 복지로 제공받던, 업무능력 없는 모자 가구였던 내가 어머니의 역노화제를 비싸서 살 수 없었던 것은 내게 천추의 한으로 남아 있다. 어머니 수발이라도 했던 무능한 아들의 삶이었지만, 업무능력을 타고 나지는 못 했어도 의무를 하려고 하기는 했던 삶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할아버지가 살아 있을 적엔 그렇게도 한심하게 보였던 제사 의식이었다. 어머니의 납골함과 영정 사진을 상 위에 놓고, 어머니가 살아생전 좋아하시던 연어 스테이크와 김치를 제사상에 올리고, 커피를 놓았다. 그리고 절 두 번. 넋두리를 중얼거리며 어머니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쏟아졌다.

 

더 이상 사람들은 함께 살지 않았다. 지구에 사는 이들은 거의 다들 1인 가구들이었고 집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았다. 이런 생활은 내가 오래 꿈꾸던 것, 꿈꾸던 시대, 어머니가 살아계셨더라도 함께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1980년대에 태어난 어머니께도 혼자 사는 삶이 필요했을 것이다.

 

난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꽤 인기 있는 경험 판매자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기에 형성되었던 정서, 그러면서도 학창 시절에 따돌림 당한 경험이 잠시 있었기에 아로새겨진 상처가 함께 있어 인격이 독특한 느낌을 준다고 주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이들이 내 뇌 속에 들어와 감정을 느끼고는 포인트를 바치고 떠나곤 했던 것이다. 한때 인공자궁에서 태어나 집단 양육된 이들이 많던 세대가 있었고 이들이 내 다수 고객이었다.

 

게임 포인트는 이들의 음의 소득세에서나 지급되었다. 음의 소득세를 받는 이들이 인류의 상당수인 상황이어서 내가 가끔 사치재를 사기도 할 수입은 되었다.

 

내 고객 중엔 우주선이나 다른 행성에 있으면서 양자 통신으로 접속하는 이들도 꽤 있었고 이들은 큰손이었다. 인간에겐 누구에게나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본성이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담 스미스는 말했고 그것이 존중된다면 인류의 미래에 걱정할 것은 없었다.

 

가상현실 게임은 내게 있어 삶의 거의 전부였다. 모든 감각이 실제로 느껴지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고 세계관은 함께 만들어갔다. 어떤 게임이든 NPC들 중에 강인공지능은 없었는데, 강인공지능은 인간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예전에 밝혀져 인공지능의 주류는 여전히 약인공지능이었다.

 

내가 게임 이외에 직업으로서 하는 일은 집 근처에서 오류가 나는 기계가 생기면 호출을 받고 가서 고치는 일이었다. 신청해서 TO가 나야 되는 일로 수입은 높았지만 기회를 잡기가 어려워서 정말 가끔씩만 하게 되는 일이었다.

 

이제 내게 어머니를 다시 뵐 수 있는 길은, 19세기에 예수회 사제가 주장하고 20세기말에 가톨릭 믿는 물리학자 티플러가 다시 이야기한,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존재와 사건들이 강력한 컴퓨터에 의해 부활하는 순간을 뜻하는 오메가 포인트가 가능해서 이 우주에 실제로 나타나는 것 밖에는 없었다. 오메가 포인트가 있다면 우주를 지능이 지배해야할 것이다.

 

그런 이상 그 목표를 위해 살아내야만 했다. 오메가 포인트를 위해서 내 삶이 아주 작은 이바지라도 하기를 바라면서 무료하고 불안한 삶을 이어간다. 권태와 무지는 인간의 숙명이다.

 

‘다시 엄마를 뵙고 싶다.’

 

 

[2021.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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