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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별자리와 꿈의 기원

2013.01.15 17:4201.15

하늘을 다스리는 신에게는 밤이라고 하는 딸이 있었다. 밤은 매일 해가 질 때 집을 나와 동쪽 지평선에서 서쪽 지평선까지 하늘을 산책했으며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집에서 자신의 옷 소매에 수를 놓았다. 밤이 놓은 수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던지라 신은 이를 혼자서만 보고 즐기려 했다. 하여 신은 산책할 때마다 딸에게 하늘을 모두 덮을 만큼 길고 검은 치마를 입게 했다. 밤이 산책하는 동안 아무도 그녀의 옷소매를 보지 못하도록. 그러자 하늘 아래에 살던 인간들이 해가 지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며 불평했다. 밤은 인간들을 위해 치마에 반짝이는 은실로 여든여덟 별자리와 달을 수놓아 주었다.

밤은 매일 낮 수놓기를 멈추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소맷자락이 자수로 가득 차 더 이상 수놓을 자리가 없게 되었다. 그러자 밤은 옷소매를 잘라 아버지에게 바쳤다. 밤의 옷소매는 실로 신비하고 장엄하였다. 오른쪽 소매에는 모든 동물과 식물을 비롯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이, 왼쪽 소매에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기이한 형상들이 수놓여 있었다. 밤의 옷소매가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들은 인간들은 누구나 그것을 보기를 소망하였다. 그러나 신은 결코 그 옷소매를 자신 말고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신은 내기 바둑을 무척 좋아하였는데, 그 사실을 안 어느 바둑의 고수가 꾀를 내었다. 고수는 신을 찾아가 바둑을 두면서 일부러 실력을 숨겼다. 둘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한두 집 차이로 승패가 갈리니 신은 고수와 바둑 두는 것을 무척 즐기게 되었다. 하루는 고수가 교묘하게 솜씨를 부려 신이 거의 이겨 가던 판을 뒤집고 자신이 이기기를 거듭했다. 고수는 오늘은 이기기만 하여 재미가 없으니 그만두겠다고 짐짓 물러나는 시늉을 하였다. 그러자 약이 오른 신은 뭐든 걸겠으니 한 번만 더 하자고 매달렸다. 고수는 걸렸다 싶어 이번에도 자신이 이기면 따님의 옷소매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신이 몇 번이나 번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서야 대국을 시작했다.

고수는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한두 집 차이로 이기려 했으나 그만 마음이 들떠 본래 실력을 드러내고 말았다. 고수가 자신을 속였음을 깨닫고 크게 노한 신은 딸의 옷소매를 갈기갈기 찢어 마구 뒤섞었다. 그리고 오른쪽 소매에서 나온 조각은 고수의 왼쪽 눈꺼풀 안쪽에, 왼쪽 소매에서 나온 조각은 오른쪽 눈꺼풀 안쪽에 붙여 버렸다. 이때부터 인간은 잘 때 꿈을 꾸게 되었다. 꿈에서 현실과 상상이 뒤섞여 보이는 것은 오른쪽 소매와 왼쪽 소매에 있던 조각들을 동시에 보기 때문이며, 앞뒤의 장면이 맞지 않는 것은 신이 마구 뒤섞인 조각들을 손에 집히는 대로 붙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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