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The Story

2004.12.07 23:3712.07

이곳은 한국의 어느 산골마을의 조용한 집. 집밖에서 보기에는 그저 작은 초가집인
이곳에는 작지만 나름대로 큰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이렇게 써두도록 한다.

'묻지마 다쳐.'

자! 그럼 대체 별 이상한 것에서만 최강인 나라 한국의 자그마한 초가집으로 초대받지는
않았지만 살짝 들여다보고 가자.  집의 문이 열리고 안쪽으로는 노인 한 분이 개다리소반
위에 책을 한 권 두고 옆에는 마치 영계의 불빛처럼 이질적이 호롱불이 켜있었다.
노인의 모습을 슬며시 쳐다봤다. 노인은 선인의 풍모를 하고있었다. 길게 늘어뜨린 수염.
눈썹 또한 마치 머리카락의 연장선인 듯 하얗게 내려가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하얀 머리띠
로 잘 정돈 되어있었고 옷 또한 백의민족 아니랄까 새하얗다.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바지를
붙잡아매는 허리띠의 검은 색을 제외한다면 피부색까지도 창백한 노인은 부엉이가 스산한
바람을 몰고 오는 이 밤중에 호롱불에 의지한 채 책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노인이 읽고
있는 책을 보려고 하자 노인은 책을 덮어 버리고 방 한쪽 구석을 지긋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노인의 시선을 따라서 움직이자 그 끝에는 여자아이 하나가 아까 노인처럼 책을 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소녀의 모습은 한마디로 말하면 귀여웠다! 짧은 단발머리에
하얀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동그란 눈은 책을 지긋이 쳐다보고 있었다. 단정히 무릎을
꿇고 책을 보고있던 백의여아는 시선을 알아챈 듯이 백발 성성한 할아버지 쪽에 의문의
시선을 조용히 던졌다. 신선용모의 할아버지도 백의여아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어서 그 백의여아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명옥아 그만 읽고 이쪽으로 와서 앉거라."
"아이참 할아버지 그냥 옥이로 부르라고 했잖아요."
옥은 내심 삐친 듯이 토라져서 말했다. 신선 할아버지는 그런 옥이가 귀엽기만 한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허허 그래 옥아 어서 오너라 오늘은 내가 이야기를 하나 해주마."
"네 알겠어요 할아버지."

옥이는 보고있던 책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와서 신선 할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신선 할아버지는 그런 옥이의 모습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면서 이야기했다.

"허허허. 옥아 편히 앉거라."
"아니에요. 이제는 이게 더 편한걸요."
옥이 살포시 웃으면서 대답했다.
"쯔쯔……. 어린것이 고생이 많구나."
신선 할아버지의 눈에 순간이지만 슬픔이 지나갔다. 그런 눈빛을 옥은 어느새 알아
챘는지 울먹이는 목소리마저 내면서 말을 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그런 말씀 마세요. 전 할아버지가 없으면……."
"아니야. 아니야. 5년 전 부모와 함께 살던 너를 기어코 이곳으로 끌고 온 내가 노망난 늙은이지."
"자꾸 그런 말씀하시면 내일 밥은 다 드신 줄 아세요!"
"허허 그래그래. 이거 우리 옥이가 삐쳤구나. 으음 어찌하면 좋을까."

노인은 미소를 지으면서 눈을 지긋이 감고 생각하는 척하더니 이윽고 장난끼 가득 뭍은
목소리로 옥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그래 자 오늘은 내 옛날이야기 하나를 해주마. 그러면 내일 밥은 주겠지?"
"와아! 그럼요! 어서 해주세요~!"
"허허 그래 이야기를 해주마. 자 이것은 정말 실제로 있었던 일이란다."

어느새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는지 밖은 벌써 눈이 소복이 쌓여가고 있었다. 호롱불에
의지해서 2020년 마지막날이 한 할아버지의 사랑과 우정 모험과 환상 이야기를 한줄기
바람이 세상에 그리고  꿈 많은 아이에게 전하려 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신선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시작 될 무렵이었다. 먼 곳에서 은은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은은한 소리의 정체는 보신각에서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였다.

"뎅….뎅…."

제야의 종소리가 이곳까지 들리는 것이 옥이에게는 상당히 의문이었지만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차츰 그런 의문을 지워 나갈 수가 있었다. 옥이에게 있어서 이곳에
대한 궁금증은 이미 할아버지와의 정 때문에 지워져 버린지 오래이기 때문이었다. 옥이는
종소리를 듣더니 천천히 일어선 다음에 공손히 손을 모아 말했다.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세요."

신선 할아버지는 흐뭇한 눈초리로 옥이가 절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옥이가 절을
마치고 다시 자리를 잡고 앉자 흐뭇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오냐. 옥이도 올해에 복 많이 받거라."
"헤헷. 네 할아버지."

방글방글 웃는 옥이의 모습을 보던 신선 할아버지는 아까 보던 책을 잠시 쳐다봤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잠시 무언가를 골몰히 생각하는 듯 했다. 2~3분여 정도가 지나자
신선 할아버지는 무언가 결심했다는 듯이 옥이에게 시선을 돌려서 입을 떼었다.

"그래. 이제 너에게도 너가 왜 이곳에 왔는지. 그리고 여기가 어딘지는 알아야겠지."
"예?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다 보인단다. 너의 생각은 이 할애비에게 다 보인단다."

신선 할아버지가 왠지 쓸쓸함이 뭍어나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자 옥이도 자세를 고치고
시선을 할아버지의 눈에 똑바로 맞추었다.

"허허허. 그래 너의 맑고 투명한 눈앞에서 더 이상의 삐뚤어짐이 보이지 않으니 말하마."
"대체 무슨……."
"이 할애비의 말을 들어보렴. 옛날 이야기는 내일 해주마. 자…. 어디서부터 하면 좋을까."

옥이의 눈에는 점점 무지의 공포가 드리워졌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된다.
그것은 분명히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지는 모르지만 모르는 것을 앎으로 자신에게
슬픔이나 상처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명옥이기에 공포를 느끼는
것이었다. 이윽고 할아버지의 입이 열렸다.

"그래……. 우선 하나 묻자꾸나. 옥아 너는 내가 몇 살로 보이느냐?"
"음……. 못돼도 대충 백살은 넘은 것 같은걸요."
"허허허. 그래 그렇지 외모 상으로는 그렇지. 하지만 이 할애비는 아직 27세란다."
"엑? 그럴 리가 없어요. 제가 15살이니까……. 겨우 12살 차이란 말이에요?"
"그렇단다. 못 믿겠지?"
"네. 게다가 그 할아버지 같은 말투는 할아버지 맞다고 증명을 하고 있잖아요."
"허허허……. 그래 그러니까 내가 이런 모습이 된 이유와 너를 데리고온 이유를 말해주마."
"음……. 알겠어요."
"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딱 너가 태어난 6월 초여름의 이야기란다."

*                                          *                                               *

2008년 6월의 초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온실효과로 인해 한국이 아열대 지방권으로
들어서서 불과 6년 전 월드컵을 열었을 때의 날씨가 아니었다. 그런 기상 이변 속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자기의 위치를 확보하고 발전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러한 한국의
한 동네의 K중학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K중학교는 보기 드문 학교였다. 뒤에는
북한산의 시원한 산바람이 불어 내려오고 있었고, 앞쪽으로는 북악산이 보이는 자연 속의
학교였다. 그렇지만 이미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서 주변환경은 초토화 된지 오래였다.
북한산의 심장은 터널공사로 인하여 도봉산 불암산의 심장까지 꿰뚫어 버렸다.
북악산은 이미 북악터널로 자신의 심장이 터져 버린지 오래였다.

그러한 환경 속의 K중학교였지만 과거의 모습을 잃지 않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남학생들은
그나마 맑은 공기 속에서 축구와 농구 등을 하면서 운동장을 뛰놀고 있었고, 여학생들은
치마를 펄럭이면서 고무줄을 뛰어넘고 있었다. 서울 속의 낙원이라 불릴만한 광경이었다.
그러한 K중학교의 한 교실에 한 남학생이 열심히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쓰고 있는 것을
슬쩍 훔쳐보니 판타지 소설인 듯 했다. 이때의 판타지 소설은 이미 중세와 마법을 주로 하던
옛날의 한국 판타지 소설이 아닌 과거, 현재, 미래를 통트는 방대한 범위의 하나의
문학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있는 남학생의 꿈은 글 쓰는 것과는
전혀 무관했다. 그저 전국일주를 하면서 과거 김삿갓이라는 시인처럼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하는 것이 남학생의 꿈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꿈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루어질
수가 없는 판타지 세계로의 여행이었다. 이제 남학생을 지나서 한 여학생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여학생은 학교 규정에 따라 매끈한 생머리를 단발로 예쁘게 자르고 동그랗고
맑은 눈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리고 여학생의 가슴 쪽으로 시선을 내려서 쳐다보니
이름표에 '김명옥'이라고 적혀져 있었다.

*                                          *                                               *

"어! 할아버……."
"허허 그냥 할아버지로 부르렴 그게 더 편하니까."
"네. 할아버지. 그런데 '김명옥'이라는 이름은 저랑 똑같잖아요!"
"그래 그렇단다. 그게다 운명의 장난이지 허허허……."
"설마 이름이 같다고 데려온 것은?"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자자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렴."
신선 할아버지는 명옥에게 인자한 웃음을 지으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                                          *                                               *

명옥이라는 여학생은 무언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보고있는 책을
내려다보니 영어문법 책이었다. 남들이 밖에 나가 노는 점심시간에 이 둘만이 2-5반의
교실에 앉아서 열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있었다. 물론 한쪽은 놀고 한쪽은 공부
하는 상태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평화로운 시간이 흐를 때였다. 서로 몸이 찌부둥했는지
동시에 기지개를 폈다.

"으자자!"
"우우!"

그렇게 몸을 풀고 난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봤다. 서로에게 약간의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그들은 뭔가 갑자기 유쾌했는지 서로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푸훗……. 옥아 피곤한가봐?"
"어엉 약간. 강선민 너도 글 쓰는 게 꽤 힘든가봐? 후훗"
"음 쉬는 시간 아직 20분이나 남았는데 같이 커피 마시러 가지 않을래?"
"아니 됐어 너나 갔다와."
"체엣. 오랜만에 내가 살려고 했더니. 알았어 그럼 쉬면서 공부해라."
"으응~ 공부말고 뭣좀 해야겠다. 빨리 와!"
"알았어."

선민은 천천히 일어나서 교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커피를 마시려면 밖의 매점으로
가야할 터였다. 밖으로 빠져나온 선민은 매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아저씨 한사람이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달려오던 아저씨의 눈빛에는 생기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달려오던 그 아저씨는 선민을 밀치고는 학교 내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선도부였던 선민은 그 아저씨를 붙잡고 멈추게 할 충분한 권한과 명분이 있었지만
신경 끄고 천천히 다른 애들이 하고있는 축구경기를 쳐다보면서 매점으로 걸어갔다.

그때였다. 갑자기 학교 내로 경찰차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아이들의 목소리를 지워 내버리고 운동장에 들어섰다. 운동장은 구경하는 아이들과
경찰들로 이미 만원이었다. 그러던중 가장 높은 직위를 가진 사람인 듯한 경찰이
확성기를 들고 모두에게 긴급 메시지를 날렸다.

"모두들 학교에서 나오십시오! 지금 학교 내부로 테러리스트가 침입했습니다!
반복합니다. 지금 학교 내부로 테러리스트가 침입했습니다. 실제상황임을 알려드리며
재빨리 대피해주시길 바랍니다! "

순식간에 평화롭던 K중학교는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밖에서
뛰어 놀고 있었던 터라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아서 모든 사람이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
선민은 이런 광경을 지켜보면서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멀리서 같은 반
여자애인 재영이가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재영이는 울면서 선민에게 말했다.

"선민아! 큰일났어 아직 옥이가 나오지……."
[슈우욱……. 까강…….]

선민이 들고있던 캔 커피가 떨어져서 흐르기 시작했지만 선민은 상관하지 않았다. 곧바로
교실 쪽으로 뛰어가면서 외쳤다.

"바보야! 그럼 빨리 경찰에 알려! 난 구하러간다!"
"아……알았어!"

선민은 뛰었다. 젖먹던 힘까지 뛰었다. 매점에서 교실까지는 뛰면 1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옥이는 분명 괜찮을 것이다. 그 일념하나로 선민은 뛰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2-5반 교실에 도착했다. 선민은 조심스럽게 안쪽을 살폈다. 안쪽에는 한쪽에서
옥이가 부들부들 떨고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런 옥이를 잡으려고 총을 겨누고 손짓을
하고 있는 테러리스트가 있었다. 다행이었다. 아직까지는 별일이 없었다. 하지만 저대로
옥이를 인질로 잡히게 한다면 생사는 보장할 수가 없게 되어 버린다. 선민은 무언가
결심을 한 듯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테러리스트는 시선을 선민 쪽으로 돌렸다. 역시
아까 매점에서 스치고 지나갔던 그 아저씨다. 선민은 잡생각을 떨치고 말했다.

"아저씨. 그 아이는 보내주세요. 제가 인질이 되겠습니다."
"뭐? 선민아!!"
"뭐야? 너가 이년의 애인이라도 되는 거냐?"

선민은 순간적으로 발끈하는 느낌이 들었으나 참고 말했다.

"어서……그 아이를 보내시죠."
"훗 인질은 둘이면 더 좋지 너도 저년 옆으로가!"
"쳇……. 후회 할 텐데?"
"후회? 그런 말하고 총알 먹으면, 총알이 튕겨 나가는 줄 아냐?"

테러리스트는 선민의 말을 비웃으면서 둘을 한쪽으로 몰아 넣었다. 그리고 그때에
밖에서는 경찰들의 다급한 목소리와 학생들의 불안감이 느껴지는 아우성으로 K중학교의
운동장은 급기야 한 폭의 지옥도를 연상케하기에 충분한 분위기로 변해 있었다.

“테러리스트에게 경고한다 인질들을 당장 풀어줘라. 반복한다. 인질들을 바로 해방시켜라”

경찰의 목소리에 테러리스트는 비웃음을 날리면서 선민과 명옥을 끌고 학교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총을 겨눈 채로 아래 있는 경찰들에게 크게 웃으면서 외쳤다.

“크하하하!! 정부의 돼지들은 아직도 미국의 오만 방자한 태도를 6년 전의 그 사건
이후에도 그저 살살거리면서 아첨만 떨고있어!! 그런 그들의 회의장을 부셔버린 것이
그렇게도 죄가 되는가!! 나 비록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들으면서 욕을 먹고 있고
후에 난 악독한 범죄자로 기록 될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대로
정부의 돼지새끼들의 재수 없는 태도를 보고 있기에는 한민족의 피가!! 활활 타오르는
정열의 산물인 우리 민족의 피가 가만히 있지 못한다!! 물론 이렇게 인질을 잡은 것은
잘못이겠지 그러나 이미 미쳐버린 나로서는 저승길 동무는 필요하겠지? 여기 꼬마
둘은 내 저승길 동무로 데려가마!!”

테러리스트는 말을 마치고는 천천히 뒤로 돌았다. 아니 분명 빠르게 돌아서 선민을 향해
총을 쏘았지만 선민의 눈에는 그것이 매우 느리게만 보였다. 총알이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총알의 길에는 자신이 아닌 명옥이가 있었다. 순간 웃음 짓는 명옥이를 보았다.

“탕!”
“우웃!”
“명옥아!! 안돼!!”
“선민아……. 난 널…”
[다다닥…….]

명옥은 총상을 입은 채로 테러리스트의 품안으로 달려들었다. 테러리스트는 재차 총을
쏘았지만 2발 정도가 어깨에 스쳤을 뿐 결국 명옥은 옥상 끝에 서있는 테러리스트를
껴안고 뛰어내렸다.

"난 널… 좋아해."

2008년 6월 19일의 일이었다.

*                                            *                                             *

“그…그거 할아버지 이야기인가요?”

옥이의 질문에 신선 할아버지는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지긋이 옥이의 눈을 쳐다 볼 뿐
이었다. 그의 눈빛에서는 한없는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또 다른 무엇인가가 가득 담겨져
옥이의 마음 속에 와 닿고 있었다. 천천히 신선 할아버지는 보고 있던 책을 들어서
옥이에게 건네줬다. 옥이는 책을 받아들고 겉 표지의 제목을 보았다.

[소혼술록(召魂術錄)]

“이…이게 뭐죠?”

옥이는 무언가 느끼면서도 확인하는 듯이 신선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신선 할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고이면서 스르륵- 흘러내렸다. 잠시 후 진정이 된 듯이 그는 입을 열었다.

“사실 너는 내가 사랑했던 김명옥이라는 아이의 혼이란다. 나는 이야기 속의 강선민이고.”
“그…그럼 저는…….저는 대체 뭐죠!!”

옥이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진 듯했다. 자신이 혼이라니. 그렇다면 자신은 죽었단 말인가?

“너 또한 김명옥이란다. 이승의 기억이 없긴 하지만 김명옥이야.”
“말해주세요. 모든 것을!!”
“그래 숨길 것도 없으니 빠르게 말하마. 나는 명옥이가 죽은 후에 내 소원대로 집을 나와
전국을 돌면서 5년 간 방랑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저 책을 찾을 수가 있었지.
저 책은 책제목 그대로 소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신비한 책이란다. 그렇지만 소혼을
하려면은 자신의 수명과 젊음을 깎아야만 했지. 2년 간의 준비 끝에 나는 명옥이를
소혼 하기로 결심하고 소혼술록에 나와있는 그대로 너를 명계에서 데리고 왔단다.
그렇지만 너는 이미 명계에 익숙해져서 나를 기억하지 못하더구나. 그래 솔직히 내 모습이
이렇게 늙어 버렸는데 알아 볼 리가 만무하지. 아무튼 나는 명계에 너의 부모에게 나의
수명과 젊음을 넘기고 5년 동안 너를 데리고 있기로 했단다. 아 이곳이 어디냐는 것도
말을 해줘야겠지 이곳은 명계와 이승의 중간인 황천 근처란다. 이곳은 죽은 자와 산 자가
교차하는 곳이기 때문에 너를 데리고 있을 수가 있었지. 게다가 이곳은 이승의 한국과
가까운 곳이기도 하여 제야의 종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지. 아아…….5년 전 바로
오늘 초하루에 너를 데려온 것은 기억하고 있겠지? 허허허……. 부질없는 짓이었어 너는
이미 옥이가 아닌 것을 나는 사랑이라는 저주에 걸려서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하고
말았어……. 허허허…….”

신선 할아버지. 아니 사랑의 저주에 걸려서 결국 할아버지가 되어 버리면서 까지 사랑했던
이를 만나려했던 한 남자의 허망한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물은
무언가 아직까지 모르는 듯한 옥이의 눈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옥이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천천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의 볼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닦아내고
살며시 껴안으며 그에게 키스를 했다. 어느새 그녀의 눈가에도 맑은 이슬이 맺혀있었다.

“선민아……. 이 바보……. 이 바보……. 조금 더 있자 응? 이제야 다 기억났어.
그러니까 조금만…조금만 더 있자.”
“허허허……. 명옥아 이제 늦었어. 왜 5년인 줄 알고 있니? 나의 남은 수명은 55년이었어.
10년 당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는데. 50년을 그들에게 주고 5년 간을 있기로
한 거야. 이제……알겠지?”
“그…그럼!!”
“잠시 동안 또 헤어지는 거야. 꼭……다시 만날 수 있어. 믿지?”

선민의 말에 명옥은 쉽사리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였다. 천천히 하지만 명옥에게는 갑작스럽게 선민의 숨소리가 가늘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명옥은 선민을 부여잡고 울기 시작했다.

“안 돼!! 이런 법이……. 이런 법이 어디 있어……. 이 바보야!!”
“헤헤……. 명옥아 이승에서 기다……려. 내가……. 빨리 명계의 어른이 되어서
너와……. 만…날 수있…도록 준비…….사랑해.”

선민의 목이 순간 뒤로 젖혀지며 숨이 멎어 버렸다. 그리고 슬픈 이야기가 감춰져 있던
오두막은 그 이야기를 모두 끝마치고 천천히 사라져갔다. 잠시 뒤에 그곳에는 무덤하나와
그 앞에 서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두 사람이 울고있는 한 명의 여인을 이끌고
끝이 없을 것 같은 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그로부터 50년 후…

<응아아!! 응아아!!>
<그래그래 우리 공주님~!! 여보 수고했소 이쁜 여자아이에요.>
<하아……. 당신을 닮아서 이쁘네요. 아이 이름은요?>
<음! 사내인 줄 알고 사내아이 이름으로 지어놨는데…….>
<어머! 당신 아버지도 당신이 여자아이인 줄 알고 그렇게 지었잖아요?>
<그렇지. 목명옥이라는 이름이지.>
<그럼 지어놓은 이름이 뭔데요?>
<선민! 목선민! 어때? 여자아이한테도 잘 어울려?>
<후훗 그럼요. 누가 지은 이름인데요.>

이렇게 이야기가 끝났다. 아니 이 이야기는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한……. 누가 아는가? 당신도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지 말이다. 당신에게 영원한 사랑의 저주를…….

-------------------2003.12. 25. 크리스 마스에 By 바람(셰이)------

작년 크리스마스에 끄적끄적 적어봤던 글입니다. 당시에 좋아했던
분의 이름을 여주인공의 이름으로 정말 지멋대로 적어봤습니다-_-;
아 곧 크리스 마스군요. 모두 즐거운 성탄 맞이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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