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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서울역에서의 하룻밤

2004.11.08 11:5911.08

나는 아직도 그날밤 서울역에서 있었던 일을 잊지 못하고있다.
벌써 세월이 흘러 IMF가  끝났지만 나에게는 그때의 일이 뇌리에 각인되어
그런 긴 시간이 무색하게 선명히 기억되고있다. 그때 서울역에서 있었던
꿈과 현실을 구별할 수가없는 그 상황을 한번 남겨보고자 한다. 조금 극적으로
하기위해 3인칭으로 써봐야겠다. 아 내이름은 L 이다. 그럼 IMF시절 서울역에서
있었던 그 일을 한번 늘어 놓아볼까.

L은  K학원의 사회선생으로 근무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부드러운 말투로 꽤많은
인기를 가지고있는 그는 오늘 갑자기 일이 밀려들어 그만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마침 연휴를 맞아서 자신의 집이 있는 부산으로 가려고 서울역을 갔지만 학원의
수험생들을 가르치다가 그만 막차를 놓치고 만것이다.
'이런, 하는 수없이 내일 첫차를 타야겠군. 아무래도 노숙을 해야겠어.'
L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그가 멈춘 곳은 음료수 자판기
두대가 나란히 서있는 곳이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신문이 들려있었고 곧바로
음료수 자판기 사이에 웅크린채 신문지를 덮은뒤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알지 모르겠지만 다른 좋은 자리들은 이미 서울역 노숙자들에게 모두 뺏긴 상태였다.
L은 천천히 상념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은 여러가지 생각으로 금새
혼란스러워 졌다.

'이런 빨리들어가야 할 텐데. 후우 아 그러고보니 이번에 나온 월급으로 낚시대나
좋은걸로 하나 사야겠군. 그리고 미끼도 좋은걸로 사고, 음 컴퓨터도 한대 사볼까?
후후 역시 돈이란건 있을때 잘 써야지.'
L은 유능한 강사로 IMF의 영향을 받지 않는 몇몇 특권 직업인들중 하나였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는 돈에대한 감각이 상당히 무뎌져 있었다. 그렇게 상념에 빠진지
한시간 쯤 흘렀을까? L이 시계를 물끄러미 쳐다보니 새벽1시였다. 그때였다.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시선이 닿는 광장쪽으로
모이는 것이 아닌가? 이를 의아스럽게 여긴 L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눈과 귀를
예민하게 세워서 신경을 집중시켰다. 자세히 보니 멀리서 왜 할아버지 거지가 허름한
죽장을 들고 그 사람들 중심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다른 사람들도
남녀노소 구분 할것 없이 모두 거지들이었다.

'아니, 서울역 근처의 거지들은 다 모이고있는건가?'
L이 이런 생각을 하고있을때 할아버지 거지가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은
하얀 수염이 성성나있고 옷은 그 원래의 형체가 없어지고 모두 기운자국으로만 덮여
있었다. 왼쪽발은 어째서인지 절고 있었고 지팡이를 쥔 오른손에는 왠지모르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자 오늘의 수확을 꺼내보아라!"
'음, 아무래도 저 사람이 거지들의 대장인가 보군. 무협지에서 개방의 방주정도
되는가 보지? 후후'

대장의 말이 떨어지자 거지들은 각자의 품에서 무언가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놀랍게도 통장이었다. 모두들 꼬질꼬질은 통장을 하나씩 꺼내더니 자리에 앉아서
대장에게 검사를 맡기시작했다. L에게는 정말로 생소한 모습이었다. L은 저 대장거지가
다른 거지가 구걸한 것을 갈취하려고만 하는 줄알았는데 갑자기 통장이 나오자
의아스러워 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을 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믿는다. 어쨌든
대장거지는 한 꼬마거지의 앞으로 가서 통장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호오 5천원이나 저금했구나! 그래 잘했다."
"헤헤 감사합니다!"
대장거지의 입가에는 빙그레 웃음이 지어졌다. 천진한 꼬마거지의 웃음을 보니까
L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자신의 아이가 생각났다. 그렇지만 그때은 핸드폰이란 것이
그다지 활성화 되지 않은 물건인지라 바로 연락할 수가없었다. 게다가 때마침 동전까지
바닥이 나서 공중전화기또한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던 L의 시선에
드디어 사건이 터지는 모습이 들어왔다. 대장거지가 불같이 화를 내면서 한 청년거지를
자신의 지팡이를 후리고 있는것이 아닌가? L은 당황했으나 다른 거지들은 그래도
싸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대장거지는 그 청년거지를 패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 녀석!! 겨우 한끼를 잘먹겠다고 구걸을 하는게냐! 너는 나처럼 몸이 불편하지도
않으면서 네자신의 미래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냐!! 너에게는 나에게 없는 청춘과
미래가 있다!! 너가 막일을하고 구걸을해 돈을 모아 작은 가게라도 차린다면
그것으로 열심히 먹고살고 부인도 얻고 그러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거지생활이 그렇게 좋은가!! 거지생활이 그렇게 좋다면 내 그손을 잘라주마!
그 손을 잘라서 아주 병신으로 구걸을해라! 이 갈아먹을 자식아! 정신을 차리란 말이다!
너가 저금한 그돈은 너의 미래다! 너가 한끼먹겠다고 쓴 그 행동은 우리가 가장 경멸
하는 돼지들이나 하는 짓이라걸 잊은게냐! 그 돼지들은 미래를 생각않하고 지금 당장
있는 돈으로 잘먹고 잘살고 있다! 그렇지만 나처럼 늙고나면 그들도 남는것이 없어지고
결국 나처럼 이런곳에서 노후를 썩어갈 수밖에 없는것이다!! 그런 돼지들고 똑같은
행동을 하겠다는 것이냐!!"
그순간 L의 머리에 망치로 한대 맞은 듯한 충격이 전해져 왔다. 마치 대장거지의 말은
자신에게 하는 것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L의 나이 40세. 분명 아직까지는 돈을 잘벌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있지만 앞으로 20년을 내다보면 분명 자신은 저기저 대장거지처럼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아니 지금의 그는 대장거지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대장거지는 아직도 숨을 헐떡거리면서 중앙에 서있었다. 10분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그가 천천히 주위의 거지들에게 말을하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너희들도 잘 알아들었겠지? 너희들에게는 아직 미래가있다. 부디 그 미래를
포기하지 말아라! 저녀석은 가서 치료해주고 오늘은 그만 해산하도록한다. 자 해산!"
대장거지의 말이 떨어지자 몇명이 아까 두들겨 맞은 거지를 돌보기 시작했고 나머지
거지들은 각자의 자리로가서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대장거지는 천천히 서울역 밖으로
나가더니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아침이되었다.

L은 전날밤있었던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를 구별 못하고 그저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러던중 뭔가 결심한 듯이 천천히 일어나 서울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곳은…….
"어서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 적금통장이요? 도장과 신분증을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내고자 한다. 이것은 분명 내가 경험한 일이며 실존한
일이다. 물론 그 이후에 서울역에서 대장거지와 거지들을 볼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꿈이라기에는 너무나 생생한  그때의 일은 나에게 많은 것을 돌려주었다. 잊혀져간
어린 시절의 꿈들과 젊은 날의 혈기를 나에게 돌려 주었다. IMF가 끝날 무렵 태양은
유난히도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나에게 돌아온 어린 시절의 꿈들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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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ID 바람 입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군요.
이 글에 대해 사족을 달자면 실제 이야기를 약간 수정해서 만든
이야기입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학원에 다니게 되었는데
어느날 사회담당 선생님께서 저 이야기를 들려 주시며 제또래의
아이들에게 미래를 대비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시더군요.
키 160cm도 될까 말까한 작은 선생님의 경험담은 어쩌면 그
자체가 허구일지는 모르지만 가슴에 와닿는면이 있어 이렇게
글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미흡한 글 실력이 그 이야기가 전하는
바를 얼마나 전할지는 모르겠네요. 그럼 즐거운 하루 되세요.^^
댓글 1
  • No Profile
    ㅡㅡ;; 04.11.13 04:32 댓글 수정 삭제
    실화라는 강점을 살릴만한 요소가 부족하다 보여져 안타깝네요. 그리고 미래를 대비하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기에 거기에 대한 성찰이 더 있었어야 하지 않았나 봅니다. 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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