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1.

나의 이름은 진명. 20대 중반의 건장한 청년으로 전국을 방랑하는
중이다. 이 창창한 나이에 방랑을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솔직히
나 자신도 싫다. 좋은 사람 만나서 정착하는 것이 꿈이긴 하다.
그렇지만 부모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어릴 때 버려진
나에게 세상은 너무나 가혹했다. 결국 난 인간에 대한 믿음을 모두
상실한채 기다리고있던 신분증명서가 나오자 마자 머무르고 있었던
보호소를 떠나 방랑여행을 시작했고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이것 저것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고, 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역마살이 꼈는지, 아니면 인간에 대한 불신이
너무나 지독히 박혀버렸는지 나는 모든 일들을 두 달을 채 못채우고 다시
여행을 떠나기 일수였다. 그렇게 떠돌던 중 우연히 들린 산속에서 길을
잃어 버린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때는 매서운 북풍이 몰아치던 때,
보름달이 뜨기 하루 전날이었다.

2.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닦은 실력이면 날씨가 흐리더라도 충분히 산을
넘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산행을 우습게 본 나에게  
화가난 듯, 산은 폭설을 자신의 품안으로 받아들였고 결국 나는 조난을
당하고 말았다. 길을 잃어버린 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여행용 나이프
몇 자루와 맛 없는 비상식량, 침낭, 버너, 소량의 물, 로프 그리고 '바람'
이라고 부르는 자동식 핸드건 뿐이었다. 핸드건이 있어봐야 이런 상황에
도움이 될리가 없다. 오히려 무겁기만 해 몇번이나 홀스터째 던져 버리고
싶은 유혹에 사로 잡혔지만 산짐승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얼어죽기전에
먹혀 죽어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렇게 추위에 감겨오는 눈을
한담으로 달래며 앞으로 나갔다.

"빌어먹을!! 더럽게 춥네!!"

엄청난 추위에 벌려진 입을 통해 목안으로 칼날같은 냉기가 나의 성대와
폐부를 찔러댔다. 나는 더 이상 입을 벌려 투덜거릴 생각도 하지 못한채
가능한 움추리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나의 발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왼발, 오른발 그리고 다시 왼발. 푹푹 눈 속에 빠져드는 발. 미쳐버리기
일보직전의 상황. 조금씩 주위가 어두워져 간다. 이 상태로 밤을 맞이 했다
가 죽는 것은 시간 문제리라. 나는 이를 악물고 앞으로 걸어간다. 그리고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의 정신이 몽롱해진다. 그리고 왠일인지 눈으로
덮힌 지면이 나의 눈 앞으로 다가왔다. 분명 방금 빛을 본 것 같은데.

'저승문이면 좀 이쁜 여자사신이 찾아왔으며...'

쓸데없는 망상을 끝으로 깊은 어둠이 나를 덮쳐왔다.


3.

나의 이름은 케이. 이 산에서 살은지 어언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적은 처음이다. 환갑을 지난 나이가 무색치 않은 듯
이렇게 눈이나 비가 내리는 날이면 허리가 쑤셔온다. 허리를 천천히
두드리던 나는 창 밖의 눈을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흔들 의자에 앉아
주목나무로 된 파이프를 물고 불을 당겼다. 파이프에서 은은히 피어오르는
담배연기의 향이 나의 오감을 자극해 온다. 벽난로에 걸어 놓은 주전자가
휘파람을 불자 난로 위로 올려놓은 뒤, 나는 다시 창 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천천히 떨어지는 눈을 바라보며 나의 눈도 슬며시 감긴다.
그렇게 잠을 청하려던 나의 실낱 같이 떠진 눈에 누군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위태롭게 걸어오던 그 사람은 순간 크게 비틀거리더니 이내
쓰러져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큰일이군!!"

나는 황급히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쓰러져있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의 청년이 나의 시야에 들어온다. 청년의 맥을 짚자 상당히
가늘은 심박이 나의 검지를 타고 전해져 온다. 마치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듯 점점 약해져만 가는 심장의 울림. 그것은 이미 울림이
아니라 떨림의 상태로 청년의 상태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 나는 급히 청년을 업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청년의 옷은
이미 모두 눈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벗겨냈다.

"우웃... 심한걸?"

나의 눈에 동상에 걸려 푸르게 변한 청년의 신체가 드러났다. 나는
재빨리 찬물로 그의 몸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동상에 걸렸을 때
무턱대고 뜨거운 물로 몸을 녹였다가는 동상 걸린 부위가 괴사해서
썩어버린다.

"후우..."

잠시 후 고비를 넘겼는지 푸르게 변한 부위에 다시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잠시 한숨을 쉬며 안도하려 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얼었던 몸이 풀리자 몸에서 뒤늦게 열을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엄청난 고열이 청년의 몸을 제압해갔다. 나는 재빨리 청년에게
적당한 속옷을 입힌 뒤 청년을 모포에 말아서 벽난로 옆에 뉘였다.
그런 뒤 손수건에 벽난로위에 놓아 두었던 주전자의 물을 적셨다.
따뜻한 물수건이 청년의 머리 위에 올려지자 비로소 나의 일은 끝난
듯 싶었다.

"휴... 일단 이걸로 끝인가? 나머지는 자네의 의지 문제일세..."

나는 늙은 몸에 무리를 했다고 생각하며 흔들 의자에 앉아 잠이 들었다.

4.

끝도 없이 펼쳐진 어둠 속에 한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영이시여, 영이시여, 영엄한 영이시여. 염치없는 쇤네가 소원합니다.
당신의 힘으로 그 아이에게... 저주를 내려주세요. 얼어죽을 저주를!"

그녀의 말은 반복되어 마치 고장난 녹음기를 듣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난 목소리가 난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도중에도
싸늘하게 식은 여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가며 나의 마음을 죄어갔다.
나직히 욕을 뱉으며 난 뛰기 시작했다. 가능하면 빨리 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내서 중지시키리라. 한 식경 정도 뛰었을 무렵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빛에 나는 잠시 눈을 찡그렸다. 그러나 그 빛은 절대로
우호적인 빛이 아니었다. 푸르스름한 냉기가 서려있는 빛이 나의 몸을
쬐자 등골이 서늘해지며 마음속에 또아리를 튼 공포라는 이름의 뱀을
성장시켰다. 덜덜 떨려오는 몸을 가누며 빛의 근원에 해당하는 곳에
도달하자 그곳에는 목소리의 주인공인 듯한 여인이 무릎을 꿇은채 계속해서
저주를 걸고 있었다.

"영이시여... 영이시여..."

이미 그녀의 목소리는 나의 고막을 찢을 듯 커진 상태였기에 나는 귀를
막은채 소리질렀다.

"크윽... 이봐요!!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멈춰보십시오!!"

그녀는 내가 그렇게 세번 정도를 외치자 겨우 말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휴우- 이제 겨우 조용... 흐업!!"

그녀가 뒤돌아 본 순간 나는 내 심장이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을 해봤다.
다행히 심박이 빨라진 것을 제외하면 아직 살아있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심장이 멈출 듯 놀란 이유를 해명하기 위해 마음을 진정시키려하자 여인은
작심한듯 내 정신을 긁어버렸다.

"이 목소리는... 설마... 설마... 아니야!! 아아악!!"

엄청난 하이톤의 목소리. 거기에 응당 눈알이 있어야 할 자리는 비어있고,
대신 피눈물이 흘러 나오고 있는 그녀의 모습. 게다가 코와 귀는 심하게
뭉그러져 마치 문둥병을 앓고 있는 환자 같은 이미 인간이라 말하기
심히 꺼려지는 모습.

"설마 아직까지도 살아있는 게냐!! 그럴리가 없다... 그럴리가 없어!!
영험한 영이시여 오랜 세월 이 컴컴한 암흑 속에서 그대에게 빌었나이다.
어찌하여 그대는 나를 버리시나이까!! 영이시여!!!"

그녀의 목소리는 하이 소프라노로 공허한 공간에 퍼져나갔고 바로 앞에
있었던 난 그 충격으로 벌떡 일어났다.

5.

"커헉 안돼...!!"
"오오 제발...!!"

오두막의 두 사람은 자던 도중 갑자기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벌떡!'
일어났다. 뭔가 좋지 않은 꿈을 꾼 듯, 두사람의 등에는 식은 땀을 줄줄
흘러 내리고 있었다. 늙은 쪽은 심장에 무리가 올 정도로 무서웠는지
심장을 움켜쥐고 있었고, 청년 쪽은 그래도 무서운 것이 덜한 듯 노인
보다는 침착하게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청년은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몸을 더듬거리며 중얼거렸다.

"살아난 건가... 휴우 그나저나 그 꿈 정말 오랜만에 꾸는 것 같군."

청년의 중얼거림이 끝나자 노인 쪽에서 대답하듯이 말했다.

"후우... 일어났나 보군. 그러나 저러나 자네도 않좋은 꿈을 꿨나보이?"

청년은 악몽을 꿨을 때 보다도 더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노인을 쳐다보았다.

"노,노인장께서 저를 살려주신 겁니까?"
"음... 일단 그렇다고 볼 수있지."

노인의 말에 청년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아!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죽을뻔 했지 뭡니까."
"허허... 고맙긴...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을... 아 나는 케이라고
하네. 이곳에 살은지는 10년이 되었지."
"아... 전 진명이라고 합니다."

케이의 순간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어렸다. 진명은 그의 변화를 눈치채고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어... 저기 왜 그러십니까? 혹시 저를 아시는 분이신가요?"

진명의 말에 케이는 황급히 고개를 져으면서 말했다.

"아,아닐세... 내가 아는 아이 중에도 그런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어서..."
"아... 그렇군요. 그나저나 제가 쓰러진지 얼마나 흐른거죠?"
"글쎄... 미안하지만 이곳에있는 시계는 배터리가 모두 제로 상태여서
알 수가 없네. 사실 혼자서 사는 사람에게는 시계가 그다지 쓸모가 없지."
"흐음... 그렇군요..."

케이는 흔들의자에서 일어나 진명의 옷이 걸려있는 벽난로 가로 다가갔다.
그는 진명의 옷이 말랐는지 확인한 뒤 말했다.

"음... 옷이 다 마른 것을 보니까 어쩌면 벌써 아침일 수도 있겠군.
장작도 거의다 탔으니까... 자 여기 자네 옷과 짐일세."

케이는 진명에게 옷가지와 짐을 건넸다. 진명은 그가 건넨 옷이 완전히
마른것을 확인한 뒤 옷을 입었다. 그는 짐꾸러미에 '바람'이 섞여 있는
것을 보고 나지막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케이와의 길고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6.

나의 머리는 지금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이곳에 살기 시작한 10년 전부터
나타나지 않았던 그 여자가 다시 내 꿈에 나타난 것이다. 진명이라는 그
아이와 같은 이름의 청년도 내 머리를 아프게하는 원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보다는 역시 그 여자의 일이 나의 머리를 더 아프게하는 원인이
었다. 진명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나의 머리는 계속해서 그 여자가 내뱉은
말을 떠올리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한것 같다.

'그 아이에게 저주를...'

빌어먹을 여편네. 그 자신에게 내려진 시련을 모두 자신의 아이 때문이라
여겨 저주하면서 죽은 못된년 같으니. 게다가 죽어서까지 그 아이에게
저주를 걸고 있는 것을 보니 그 심성은 죽어서까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7.

자신을 케이라고 소개한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난 꿈속에 다시
등장한 그 여자에 대해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얼어죽을 저주를!!'

마지막 말만 따로 떼어놓으니 왠지 모르게 코믹하다. 말하던 중 갑자기
'피식'하고 웃자 노인은 웬지 기분이 상한듯 순간 순간 인상을 찡그렸다.
나는 미안해져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아... 예전에 징하게 꿨던 꿈을 또 꿨는데 그게 좀 웃겨서 그런 것이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세요."

나의 말에 노인은 얼굴에 의문부호를 수 놓으며 말했다.

"꿈? 어떤 꿈인데 그러나?"
"아... 별거 아닌 귀신 꿈입니다. 그러니까..."

난 귀신같은 것을 믿지 않기에 노인에게 대수롭지 않은 듯이 꿈에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이렇게 된거죠. '얼어죽을 저주'라니 거 왠지 어감이 재미있...
어라 영감님 괜찮으세요?"

노인은 얼굴이 파리해진채 나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무서운 기세로 나에 대한 여러가지를 묻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누구시냐, 혈액형은 무엇이고 나이는 몇살이냐 등등...
갑자기 스토커라도 된 듯이 나의 신상정보를 끊임 없이 물어왔다.
난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노인이 너무 필사적이었기에 순순히 난
고아 출신이고 혈액형은 뭐고 정확히 몇 살입니다라고 말해줬다.
노인의 질문과 나의 대답이 모두 끝났을 무렵 나는 아까 그 노인이
그랬듯 얼굴에 잔뜩 의문 부호를 수 놓고 있었고 노인은 거의 죽을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뒤에 그가 시작한 이야기에
난 노인과 똑같이 죽을 듯한 표정을 지었다.

8.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그래 일단 너의 출생에 관해 말해야 겠구나.
갑작스러울지 모르겠지만 난 너의 애비다. 그런 표정짓지 말거라. 꼭
내가 노망이나 웬 영화에서 시커먼 가면쓰고 '아임 유어 빠더'하는
놈팽이하고 똑같아 보이잖냐. 흠흠! 어쨌든 너의 출생에대해 말해보자.
그 당시 난 잘나가는 부잣집 도련님이었고 너의 어머니... 아니 어머니
라고 하고 싶지도 않은 그 여자는 몰락한 귀족의 여식이었지. 그녀는
과거의 부를 다시 누리고 싶어 나를 유혹했고, 물론 당시 나는 그녀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느꼈다지만... 아무튼 그렇게 나를 유혹한 그
여자는 결국 나의 아이를 가지게 되지. 내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소리에
난 기뻐하면서 그 여자에게 청혼을 했지 물론 그녀도 자신의 계획대로
됐다고 생각했는지 흔쾌히 승낙을 했고... 그렇게 나와 그 여자는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부터야. 나의 아버지가 자신의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 시켜버리자 그녀는 한 겨울에 갓난아기는 너를
데리고서 나가버렸지. 나는 망연자실하며 주저 앉았고 너를 찾기위해 별의
별짓을 다했다. 그러나 3년이 흘러 그 여자를 겨우 찾았을 때 넌 이미
고아원에 입양 수속이 끝난 상태더구나. 난 울부짖으며 그 여자에게 찾아가
서 따지려고 했지만 차마 그 여자 앞에 서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여자는
죄값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문둥병이 걸려서 전신이 썩어들어가고 있었거든.
전신이 썩어들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그 빌어먹을 여편네는 반성을 몰랐어.
그 여자는 끝까지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남의 탓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아이인 너에게까지 그 책임을 전가했지. 그리고 죽을 무렵에는
자신이 아이를 낳느라 고생해서 그렇게 됐다는 착각에 빠져서 너에게
얼어죽어버릴는 저주를 하면서 죽어 갔단다. 그 망할 여편네는 죽은 후에도
그렇게 억울했는지 너와 나의 꿈에 나타나 괴롭힌듯 싶다. 그렇게
그 여자의 꿈에 시달리던 나는 10년전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데 그 까닭은
나도 이제서야 기억이 나는 구나. 그래 나는...

9.

어느새 눈이 그쳤다. 하늘에는 커다란 보름달이 선명하게 비추고 있다.
난 꺼져있는 벽난로에 썩어버린 흔들 의자나 가구들을 부숴서 넣고
휴대용 버너로 불을 지폈다.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던 나는 뒤를
돌아봤다. 한때는 걸어 움직였을 사람의 뼈들이 나의 눈에 들어온다.

"후우... 아버지..."

'나는 이곳에 죽기위해 온 것이다. 그녀의 저주에 대항하기 위해서.
그녀의 저주가 너를 덮쳐서 죽이기 전에!! 나는 10년전 이곳에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난 그 여자가 말하는 영험한 영을 어떻게 어떻게 찾아내어
만났고 그에게 내기를 걸었다. 널 나에게 얼어죽기 직전으로 보내면
내가 살려보이겠다고. 살리는데 실패하면 내 영혼을 주겠다고...
이곳에 살면서 나는 너가 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기억이
희미해지기 시작했고 너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 모든 내용을 잊어
버리고 말았지... 그러나 그 꿈을... 귀신인 내가 꿈을 꾼다는 것도
참 이상하지만 어쨌든 그 꿈을 다시 꾸게 되고 너의 이름을 듣는 순간
기억의 일부가 돌아왔다. 그리고 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자 모든
기억이 돌아온 것이고. 진명아 이 못난 애비를 용서해라. 난 당시 사업에
실패해서 수중에 돈이 없다는 핑계로 널 버리고 말았구나... 미안하다
아들아... 미안하다... 이 애비를 용서하려무나...'

아버지는 그렇게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채 투명해지더니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그가 사라지자 거짓말 처럼 눈이 그쳤고 난 하늘에
떠있는 보름달을 보고 나서야 어느새 하루가 지나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난 문 밖으로 나가 달을 향해 '바람'의 총신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의미 없이 울려퍼지는 총성. 나는 김이 피어오르는 '바람'을 다시 홀스터에
넣고 오두막으로 들어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눈이 그쳤으니 방랑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이 산을 넘어갈 생각이었다.

Fin.

다쓰러져가는 오두막에서 한명의 청년이 나왔다. 오두막은 마치 그가
나가기를 기다렸다는 듯, 스르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청년은
고개를 돌려 무너져 내리는 오두막을 바라보며 한숨짓는다. 그리고
이내 발걸음을 돌려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밤 하늘의 보름달은 마치
그를 환송하는 듯이 크고 밝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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