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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사 싼초밥이 스빠닐라 델 라구나 마을에서 저지른 <싼따말레나 은십자가 파괴 사건>은, 용사라는 족속들의 역사·문화·예술에 대한 무관심을 넘은 무지몽매함과 그 결과로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반달리즘의 대명사로서 온 대륙에 널리 퍼졌다. 마법왕국 맘데로이아 법정은 이 사건에 대해 엄중한 판결을 내렸고, 재판 결과는 대륙의 모든 용사 및 용사 낭인과 지망생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사건의 자세한 내용은 이러하다. 용사 싼초밥은 스빠닐라 지역을 돌며 몬스터 퇴치 및 해결사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스빠닐라 델 라구나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을 사람들이 의뢰를 했다. 내용인즉 마을에서 세 시간쯤 떨어진 곳에 있는 산 속 동굴에 이상한 박쥐가 나타났으니 처치해 달라는 것이었다. 용사 싼초밥은 스빠닐라 델 라구나 마을이 외딴 곳에 있고 마을 주민들이 퀘스트 의뢰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이용하여 일반 시세보다 두 배나 비싼 값을 받고 승낙했다. 그리하여 용사 싼초밥은 문제의 동굴로 갔고, 그 <이상한 박쥐>를 본 싼초밥은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그것이 흡혈귀가 변신한 모습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훗날 맘데로이아 법정에서 조사한 결과 그 동굴에 나타난 <이상한 박쥐>는, 익수목(翼手目) 중 대익수아목(大翼手亞目)에 속하면서도 시각과 함께 소리로 방위를 결정하는 능력을 갖춘 루셋큰박쥐속(Rousettus)의 아종으로 오래 전에 멸종된 것으로 추정되어 왔던 팔레오키롭테릭스 투파이오돈-프테릅테라 기간테우스-마크로투스(Paleochiropteryx tupaiodon-Pterptera giganteus-Macrotus)였다. 덧붙이자면 이 팔레오키롭테릭스 투파이오돈-프테릅테라 기간테우스-마크로투스는 인간이나 동물을 습격하지 않고 모기와 이슬을 주식으로 한다. 천만다행으로 이 사건에서 팔리오키롭테릭스 투파이오돈-프테릅테라 기간테우스-마크로투스는 무사했고, 대륙의 동물학자들은 이 발견에 환호했다. 현재 팔리오키롭테릭스 투파이오돈-프테릅테라 기간테우스-마크로투스가 서식하는 스빠닐라 델 라구나 마을의 동굴은 멸종위기동물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개체수는 100여 마리로 늘어났다.

  본줄기로 되돌려서, 팔리오키롭테릭스 투파이오돈-프테릅테라 기간테우스-마크로투스를 알아보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그것을 흡혈귀의 변신이라 생각한 용사 싼초밥은 일단 마을로 돌아왔다. 싼초밥은 그때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무기로는 흡혈귀를 대적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고, 스빠닐라 델 라구나 마을의 싼따말레나 델 씨찔로 성당에 봉헌되어 있던 은십자가 ― 일명 <싼따말레나 은십자가> ― 를 약탈했다. 싼따말레나 델 시찔로 성당은 성녀 말레나의 성유물을 모시는 성당으로 35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곳이고, 봉헌되어 있던 은십자가 또한 200년 전의 예술가로 스빠닐라가 낳은 희대의 천재라 불리는 레나또 델 스빠닐라노의 작품으로 대륙의 미술사와 금속공예사에 한 획을 그은 예술품이라 평가받는 귀중한 물건이다. 물론 그 귀중함을 잘 알고 있었던 ― 스빠닐라 델 라구나 마을이 비록 벽촌이라 하나, 마을 주민들의 명예를 위해 밝히자면 싼따말레나 델 시찔로 성당과 그 곳에 봉헌된 싼따말레나 은십자가에 대해서는 스빠닐라 지역에서는 초등교육용 교과서에도 빠짐없이 실려 있다 ― 주민들이 말렸으나, 용사 싼초밥은 막무가내였고 위협적인 폭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결국 싼초밥은 싼따말레나 은십자가를 뜯어냈고 ― 그 과정에서 제단 일부도 부서졌다. 그 제단 또한 레나또 델 스빠닐라노가 제작한 난간이 붙은 걸작품이었다 ― 200년 된 걸작 예술품을 망치로 두들겨 완전히 찌그러뜨려서 단검으로 만들고 말았다.

  용사 싼초밥이 그런 천인공노할 반달리즘적 행위를 저지른 것은 그가 용사 수행 과정에서 주워들은, <흡혈귀는 보통 무기로 죽일 수 없으며 은으로 된 무기로만 죽일 수 있다>는 낭설 때문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싼초밥이 그 무기를 써서 팔레오키롭테릭스 투파이오돈-프테릅테라 기간테우스-마크로투스의 귀중한 표본을 죽이기 전에, 마을 주민의 신고를 받은 스빠닐라 자경 용기병대가 출동하여 싼초밥을 체포하고 단검으로 개조된 싼따말레나 은십자가를 압수했다.

  슬프게도 싼따말레나 은십자가에 대해서는, 마법왕국 맘데로이아에서 파견된 미술품 전문 복원가조차도 끝내 고개를 저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멸종한 줄만 알았던 팔레오키롭테릭스 투파이오돈-프테릅테라 기간테우스-마크로투스를 발견한 것과, 싼따말레나 델 시찔로 성당의 부서진 제단 난간은 감쪽같이는 아니라도 그럭저럭 수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팔레오키롭테릭스 투파이오돈-프테릅테라 기간테우스-마크로투스는 둘째치더라도 싼따말레나 델 시찔로 성당의 싼따말레나 은십자가(와 제단 난간)가 갖는 역사적·예술적 중요성을 어쩌면 그렇게도 깡그리 무시할 수 있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용사 싼초밥이 한 대답은, 앞서 말했듯이 용사라는 족속들의 역사·문화·예술에 대한 무관심을 넘은 무지몽매함과 그 결과로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반달리즘의 대명사가 되었다. 싼초밥의 유명한 대답은 이러하다.

  "난 하나도 몰랐어요! 모르고 한 것도 죄가 되나요?"

  맘데로이아 법정에서 용사 싼초밥은 그 야만적 반달리즘의 대가로, 영구히 <용사>라는 칭호를 박탈당하는 것과 함께 스빠닐라 지역에서 치르는 15년의 노역형을 선고받았다. 덧붙여 그 15년 동안 대륙의 문화사·예술사에 대해 맘데로이아 정부가 인정하는 방송통신학교에서 통신교육을 받을 것 ― 과목별로 학점을 제대로 따지 못하면 딸 때까지 재이수하는 것은 물론이며 수업태도가 불량할 경우 노역형기의 연장도 가능함 ― 을 명령받았다.

황당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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