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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칼과 십자가

2010.02.02 12:3602.02


  옛날에 안드레아란 이름의 용감한 기사님이 살았습니다. 기사님은 가진 것은 없었지만 말과 창 하나면 자비로운 하느님의 정의와 기사도를 지키는데 부족할 것이 없었습니다. 기사님은 널리널리 떠돌아다니면서,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못된 기사들을 물리치고 귀부인들을 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기사님은 악마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죽이고 땅을 불태우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기사님은 3일 밤낮을 달려서 악마를 찾아갔습니다. 용감한 기사님은 악마에게 외쳤습니다.
"성스러운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당장 그 흉악한 짓을 멈춰라!"
   악마는 킬킬 웃었습니다.
"나에게 도전하다니 용감하구나. 좋다, 만일 네가 나와 싸워서 이긴다면 물러나겠다."
  용감한 기사님은 악마의 결투신청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악마가 날개를 펼치자 온 하늘이 캄캄해졌지만, 기사님은 두려움에 굽히지 않고 달려들었습니다. 3일 밤낮으로 싸운 끝에, 그만 악마의 손톱에 기사님의 창이 뚝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악마가 외쳤습니다.
"이제 나의 승리다!"
  그 때 하늘에서 나팔소리가 울려퍼지더니, 자비로운 하느님의 천사장인 가브리엘이 나타나 기사님의 귀에 속삭여 용기를 불어넣어주었습니다.
"염려 말거라 너 안드레아야, 항상 주님께서 네 곁에 계시다."
기사님은 부러진 창을 버리고 칼을 뽑아들었습니다. 다시 3일 밤낮으로 싸운 끝에, 그만 악마의 손톱에 기사님의 칼이 뚝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악마가 외쳤습니다.
"이번이야말로 나의 승리다! 항복해라, 인간!"
  그 때 하늘에서 나팔소리가 울려퍼지더니, 자비로운 하느님의 천사장인 가브리엘이 나타나 악마를 내리쳤습니다. 악마의 뿔은 뚝 부러져서 떨어졌고, 기사님은 악마의 뿔을 집어들었습니다. 악마가 빛에 눈이 부셔 어쩔 줄 몰라할 때, 기사님은 악마의 뿔을 들고 달려들어서 단숨에 악마를 쓰러뜨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용감한 기사님은 7일만에 악마를 쓰러뜨리고 사람들을 구해내었습니다. 기사님의 이름은 멀리 멀리 퍼져 오래도록 칭송받았습니다.

- 아이들을 위한 성인 이야기 중, 성 안드레아



  더러운 꼬마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부모가 누구인지, 아이가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아이는 하루하루를 구걸이나 좀도둑질로 연명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는 좀도둑질을 하다가 평소에 아이를 못마땅하게 보고 있던 빵집 주인에게 들켜서 심하게 맞았다. 지나가던 사람좋은 수도사가 그 광경을 보고 가엾다고 생각했다. 수도사는 빵집 주인에게 대신 돈을 치르고 아이를 성당으로 데려왔다. 아이는 굶주린 개처럼 주는 빵은 먹으면서도 언제나 마음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사람좋은 수도사는 아이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수도사는 아이를 구제하는 것도 기도하는 것만큼이나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도사는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냈다. 수도사가 해준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성 안드레아의 이야기는 처음으로 아이의 관심을 끌었다. 언제나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상냥하게 대해주는 수도사의 보살핌에 차차 아이는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다. 마침내 아이는 수도사를 대부 삼아 세례를 받고,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헌신적인 수도사의 노력으로 안드레아는 글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고, 점차 자신도 수도사가 되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실한 농부의 밭에도 피가 싹트는 법이다. 안드레아를 거두어준 성당의 인근에는 한 마법사가 살고 있었다. 마법사는 몰래 사악한 실험을 하고 금지된 흑마술을 사용했다. 악취가 나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이웃의 신고로 종교재판소에서 이단 심문관이 파견되었다. 이단 심문관은 간단히 마법사를 사로잡았고, 그날밤은 성당에서 머물렀다. 마법사는 비밀히 탈출시도를 했지만 발각되었다. 이단심문관에게 대항하던 마법사가 제어하지 못한 주문은 큰 폭발을 일으켰다. 성당은 크게 무너졌고 불행히도 안드레아를 키워준 수도사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 때 어린 안드레아의 마음에는 큰 상처가 남았다. 수도사가 교회 묘지에 매장될 때에도 안드레아는 울지 않았다. 다만 속으로 마법사들을 증오하겠다고 결심했고, 신의 뜻을 거스르고 악마와 결탁한 모든 자들을 쓸어버리겠다고 맹세했다. 그래서 안드레아의 진로는 한적한 촌동네의 수도사에서 이단 심문관, 종교 재판관, 마녀 사냥꾼으로 바뀌게 되었다. 안드레아는 여태껏 자라왔던 마을을 떠났고, 그 누구도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

  안드레아에게는 운이 따라, 파견되었던 이단 심문관은 자신의 과실에 대해 큰 죄책감을 지고 있었다. 혼자 종교재판소가 있는 교황령까지 찾아온 안드레아를 보고 이단 심문관은 감명받았다. 마법사의 감시를 소홀히한 자신의 실수를 보속하기 위하여, 이단 심문관은 안드레아를 훌륭한 이단심문관으로 키워내겠다고 마음먹었다. 약간 늦은 나이였지만 이단심문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안드레아는 수도원에 들어가서 그의 영혼의 정화를 위한 시간을 거쳤다. 3년간의 수행을 마치고 안드레아가 처음 이단 심문관으로 세상에 발을 내딛었을 때, 안드레아는 그를 이끌어준 이단 심문관이 사악한 무신론자, 자연과학자들과 싸우다가 폭사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에도 안드레아는 눈물 흘리지 않았다. 다만 다시 한번 그의 결심을 새로이 했을 뿐이었다.

  차갑게 불타오르는 복수의 마음과 교회의 적에 대한 증오는 안드레아를 순식간에 주목받는 인물로 만들었다. 교황청의 늙은 주교들도 보고서에 자주 나타나는 안드레아의 이름을 보고 안경을 다시 끌어올리곤 했다. 비단 교회의 인물들 뿐 아니라, 모든 교회의 적들- 마법사, 주문사용자, 흑마술파, 연금술사, 악마학자, 밀교 신봉자, 이단 신봉자, 무신론자, 자연과학자, 인본주의자, 자유주의자, 그 모두들-도 그의 이름을 알게되었다. 처음에는 소규모 임무만 명령받았지만, 종교재판소 내에서 안드레아의 위치는 쑥쑥 올라갔다. 언제나 안드레아의 검에는 자비가 없었고, 최소의 성당기사단을 이끌고 단호히 적들의 심장부로 짓쳐들어가는 것으로 유명했다. 성당으로써 안드레아를 파견하는 것은 돌아올 임무 완수의 보고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안드레아의 이름 앞에 교회의 적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저주하고 증오했다. 그러나 성당의 찬사도 적들의 저주도 안드레아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의 칼날처럼 차가운 심장은 무뎌질 줄 몰랐다.

  그러나 안드레아의 급속한 성장은 시기와 질투를 가져왔다. 아무리 신실한 교회의 검과 방패들이라도 그들의 귓가에 악마가 둥지를 틀고 있어서 자기 전마다 속삭이는 모양이다. 거침없고 초연한 안드레아의 태도는 어느샌가부터 다른 동료 이단 심문관들과 상부인 종교 재판관들에게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되었다. 어느새인가 안드레아는 종교재판소 내에 상당히 많은 적을 만들게 되었다. 처음에 안드레아는 자신의 동료들이 왜 자신을 그렇게 대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두세번의 혼자로는 무리인 임무를 간신히 수행하고 난 뒤 돌아온 안드레아에게 그의 가장 친했던 동료가 살짝 조언을 했을 때에야, 비로소 어렴풋이 안드레아는 윤곽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안드레아는 아직 완전히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료들의 냉담어린 시선과 시기는 여전했고, 안드레아는 힘겹게 어려운 임무들을 맡아야했다. 종교재판소 안에서 안드레아는 혼자였다. 안드레아는 이 모든 사실에 불평하지 않았지만, 잠들기 전 기도하고 나서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안드레아가 힘겹게 수행하는 임무들의 성공은 안드레아의 주가를 한껏 끌어올렸고 동시에 그에 대한 질투의 시선을 배가시켰다. 높아진 안드레아에 대한 신뢰와 약간의 공작은, 안드레아에게 근래 들어 가장 복잡하고 또 손대기 어려운 임무가 돌아가게 만들었다. 물론 안드레아는 일의 내막을 전혀 모른 채 약간씩 흔들리기 시작한 마음을 다잡고 목적지로 향했을 뿐이다. 안드레아가 향한 곳은 신세계와의 무역 독점으로 이 한세기 동안에 단숨에 대륙 최고의 강대국으로 떠오른 델시냐 왕국이었다. 새로이 쏟아져들어오는 부가 많은 만큼 타락의 그림자가 얼씬거렸고, 사치와 방종의 향락은 궁정 뿐 아니라 왕국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안드레아는 도처에서 악마의 냄새를 맡았지만 오직 임무를 향해 정신을 집중시켰다. 그 임무는 바로 악마에게 사로잡혀 의식을 집전하고 어린아이들을 제물로 바친 혐의로 종교재판소에 기소된 왕녀의 영혼을 정화하여 구원하는 것이었다.

  왕국의 문란은 극에 달해, 무역에 앞다투어 끼어든 공작들의 세력은 이미 왕가의 것을 넘어서고 있었다. 왕가에 남은 것은 허울뿐인 권위였지만 귀족들끼리의 경쟁은 장기간의 소강상태를 불렀다. 왕가는 몇몇 유력한 귀족가와 혼인을 거듭하며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국왕 테오르도 2세의 하나뿐인 딸인 마리나는 국왕으로써는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한 수였다. 아직은 채 16살이 안된 어린 나이였건만 국왕의 정략적인 조종에 따라 왕녀는 매일밤마다 이 무도회장 저 연회장을 오가며 유력한 귀족가문의 자제들 심지어는 가주들과 얼굴을 맞대어야했다. 델시냐 왕가의 희망은 왕녀 한사람에게만 달려있었다. 이 와중에서 현 왕비 조세피나의 먼 친척으로 가장 강력한 무역상사를 장악하고 있는 알베르 공작은 왕권을 유지하기 위한 국왕의 필사적인 노력을 완전히 무산시킬만한 음모를 짜고 있었다. 알베르 공작은 국정을 움직이는 가장 유력한 실권자였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공작은 왕국의 이름을 자신의 가문의 것으로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먼저 공작은 왕비에게 접근했다. 왕국에 넘쳐나는 부는 향락의 극을 넘어서 귀족층들이 기묘하고 이상스러운 이국적인 것들을 즐기게 만들었다. 그에 따라 신세계의 문물과 심지어는 종교재판소의 사냥감들마저 공공연하게 귀부인들의 사교모임에서 등장하는 판국이었다. 병약하기만 하고 전혀 자기 의견을 내세울 줄 모르는 왕비는 이 먼 친척의 도움을 고맙게 여겼다. 항상 왕궁에만 갇혀살다시피하던 왕비에게 모든 것은 새롭고 신기하게만 보였다. 왕비는 금새 흑마술에 푹 빠져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왕궁 내전에는 한 발은 목발이라 절뚝거리고 한 눈은 데루룩거리는 의안인 기묘한 늙은이가 드나들게되었다. 물론 이 만남은 공작이 주선한 것으로,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는 왕가를 완전히 쓰러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새로 발견되어 교역이 시작되고 있는 동방의 제국에서 추방되었다는 이 늙은 마법사는 확실히 진짜였다. 시녀들과 시종들은 늙은 마법사를 꺼렸지만 왕비는 한시라도 손꼽아 마법사가 오기를 기다리고 하루라도 오지 않으면 무료해 견디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쯤에 이르자 늙은 마법사는 공작의 지령대로 확실히 왕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왕비는 자신이 다른 마법사의 저주에 걸려 이렇게 흉한 모습이 되었다는 늙은 마법사의 거짓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왕비는 어차피 마찬가지로 정략결혼이었고 권력다툼에 정신이 쏠려 신경도 쓰지 않는 남편보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척 하고 있는- 늙은 마법사에게 열렬히 매달렸다. 늙은 마법사는 자신이 특별한 제물을 악마에게 바치면 저주가 풀려 본래의 젊고 잘생긴 모습으로 돌아갈 거라고 속였다. 그 제물로 마리나가 지목되었을 때 왕비는 잠시 주저했지만 곧 자신의 딸을 악마에게 바치는데 찬성했다. 비밀히 의식들이 이루어졌다. 수도에서 난데없이 어린 아기들이 행방불명되는 일이 발생했다. 왕녀가 하루종일 시달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와 잠들면, 왕비와 늙은 마법사가 어둠속에서 정해진 의식을 행했다. 왕녀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날이 갈수록 수척해졌고 몸이 약해졌다. 어린 왕녀는 아버지와 가문을 위한다는 일념으로 온갖 구속들을 담담히 받아들였기에 이것도 그저 무리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회장에서도 신경전에 바쁜 국왕은 알아차리지 못했고, 왕비는 무관심한 척 했다. 왕녀는 홀로 점차 쇠약해져갔다.

  마침내 왕녀가 무도회장에서 쓰러지고 나서야 왕녀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왕실 주치의는 진찰하고 나서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왕녀가 아기를 배었다는 소식에 국왕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수 밖에 없었다. 가문이 유지되기 위해서 최후로 남은 수가 사라졌다. 국왕은 모종의 조치를 취하기로 결심했다. 충직했던 주치의는 도성의 성벽 밖 해자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왕녀의 시중을 들던 시종과 시녀들이 상당히 많은 수가 비밀히 사라졌다. 왕녀의 방은 근위병들과 귀머거리 유모들이 지키게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왕녀가 불치의 병에 걸렸다고 공포되었으며 날마다 성당에서는 왕녀의 쾌유를 기원하며 종을 울렸다. 국왕은 일단 왕녀가 아기를 낳고 나면 아기를 없애버리고 병이 나았다고 발표하면 될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황은 국왕이 생각한 것보다 더욱 악한 것이었다.

  산달이 차고도 예정된 출산일보다 3개월이 지나 13개월만에 아기가 태어났다. 또다시 한차례의 폭풍이 몰아쳤다. 아기는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박쥐 피막같은 날개가 달리고 뿔이 돋고 쭉 째진 노란 눈과 바늘같은 이빨이 가득한 입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다시 대규모로 교체가 이루어졌다. 근위병들과 유모들이 비밀스럽게 사라졌다. 아기는 국왕이 몸소 목을 찌르고 정원에 파묻었다. 비밀은 유지되어야만 했다. 왕가의 마지막 남은 희망이 이토록 무참히 깨어져서는 안 되었다. 왕녀가 흑마술에 손을 대었다는 것, 악마의 아기를 잉태했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되었다. 국왕은 이보다 끔찍한 악몽이 다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물론 아니었다. 여기까지도 교활한 알베르 공작이 손을 써 둔 뒤였다.

  그 해, 여느때보다 무더운 8월 한 달은 델시냐 국민들로써는 어안이 벙벙할만큼 많은 일이 일어난 달이었다. 늙은 마법사는 사라졌고 왕비는 상실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다. 국왕의 명에 따른 철통같은 비밀 유지에도 불구하고 왕국 전역에 왕녀가 악마와 관계를 맺어 아기를 배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교황청은 최근 들어 지나치게 강대해져 교황권 하에 이루어지던 대륙 왕권들의 균형에 위협이 되는 델시냐 왕국의 입지를 약화시킬 필요가 잇다고 판단했다. 종교재판소에서 이단 심문관들이 파견되었다. 이단 심문관들의 사악한 것을 탐지하는 감각은 너무도 쉽게 정원에 파묻힌 아기의 유해를 찾아냈다. 국왕은 심문을 위해 왕녀를 보일 것을 요구받았다. 이단 심문관들은 왕녀의 방에서 흑마술의 흔적을 찾아냈다. 이 모든 것들이 폭풍처럼 전 왕국을 휩쓰는 소문이 되었다. 왕녀는 흑마술에 심취해 있었다, 대부분의 마녀들이 그러하듯이 악마와 관계를 맺었다, 악마의 아기를 배었으나 숨겼다, 왕비는 이 사실을 알고 혼자서 말리려 했으나 그러지 못하자 자살해 버렸다, 국왕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왕권 때문에 숨기려한다. 물론 이 모든 소문의 근원은 알베르 공작의 발빠른 준비였다. 자신의 존재는 쏙 빼놓은 채, 마치 왕실 내의 타락이 극에 달한 것처럼만 묘사했다. 국민들은 소문을 믿을 수 밖에 없었고 귀족들은 기회가 오기를 바랐고 교황청은 왕국을 약화시키기를 원했다.

  왕녀는 영락없는 화형감이었다. 그러나 왕녀라는 신분과 또 복잡한 권력간의 힘겨루기 속에서 왕녀의 처형은 지체되었다. 왕녀는 대성당의 아래에 지어진 지하 감옥의 가장 깊은 층에 수감되었다. 왕국을 노리는 귀족원, 알베르 공작, 그리고 교황청은 여론을 위해 충분히 오래 왕녀를 살려둘 필요가 있었다. 그 때문에 이단 심문관들이 철수하고 난 뒤 용감하게도 왕녀에게 고해성사를 행하고 그 영혼을 구원하려 했던 델시냐의 주교가 지원을 요청했을 때, 종교재판소는 뜻밖에도 쉽게 왕녀의 영혼을 구원할 이단심문관을 파견했다. 그는 다름아닌 안드레아였다.

  안드레아는 여전히 칼날과도 같이 날카롭게 임무에 임했다. 물론 그에게 악마와 계약한 저주받은 자는 베어버리는 것이 마땅했지만, 현재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타락하여 악마에게 매여버린 영혼의 구원이었다. 어려운 일이나 안드레아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를 행할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었다. 안드레아는 먼저 사람을 풀어 민심을 흉흉하게 하고 있는 온갖 소문들을 수집했다. 자유주의자나 인본주의자들과의 싸움을 통해 우민들이 얼마나 선동가에게 쉽게 휘둘리는가를 알고 있기에 안드레아는 소문을 믿지 않았다. 도리어 지나치게 일관된 소문은 안드레아가 조작의 냄새를 맡게 했다. 이미 임무에 착수하기 전에 델피냐 왕국의 상황은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속세의 권력 다툼이라면 악마가 흥미를 가질 일이었다. 대강 무언가 실마리가 잡힌 것 같았으나 명확한 사실이 끌려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안드레아는 역시 당사자인 마리나 왕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사건의 진실을 명확히 파헤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왕녀가 갇힌 지하감옥은 어둡고 음습한 곳이었다. 과거 이단 심문관들이 사로잡은 자들이 고문을 위해 갇혀 있었고, 현재에도 그들이 사용하던 흑마술과 관련된 물품이 연구를 위해 전부 폐기되지 않고 보관되고 있었다. 왕녀는 이런 곳에 몇 달이고 홀로 갇혀 있었다. 왕녀는 어렸으나 뜻밖에 약한 내부에 강한 심지가 있고 마음씀이 깊었다. 그 뿐 아니라 비록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왕가의 사람으로 늙은 마법사와 왕비의 관계를 어렴풋하게 눈치채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직 어렸으나 정략 다툼에 휘둘리다보니 일찌감치 주위의 상황을 감지하는데 눈이 밝아진 탓이다. 그러나 그 밖의 다른 자세한 사정은 역시 아는 바 없었고, 죽은 어머니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고 가문의 명예를 지켜 조금이라도 아버지에게 도움이 되자는 생각을 할 따름이었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과 그 후 아버지의 반응에 충격을 받은 것도 합쳐져, 왕녀는 입을 꾹 다물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고해성사를 베풀려던 주교는 아직도 악마가 깃들어 왕녀의 마음을 걍팍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단 심문관을 부른 것이었다.

  세력다툼이 팽팽했기에 안드레아가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도 되었다. 안드레아는 매일같이 지하 감옥에 드나들며 왕녀를 타일렀다. 대강 가닥을 잡은대로, 이 모든 일이 네가 혼자서 악마의 사주를 받아서 행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암시를 분명히 했다. 시종과 시녀들의 배치 변경이라든가 국왕의 지시 등을 보면 거의 그려지는 그림이 있었다. 안드레아는 아침이면 왕녀를 찾아가 기도하고 타이르고 낮에는 이단심문관의 권한을 이용해서 다른 정보들을 더 수집하는 일과를 반복했다. 왕녀는 자신을 믿어준다는 말에 점차 흔들리게 되었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왕녀가 이야기하는 것들을 안드레아는 놓치지 않았다. 사건의 세부 사항은 명확해져갔다. 그에 따라서 안드레아의 마음 속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의혹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 동안 상황은 대강 정리되고 있었다. 알베르 공작은 해적을 고용하여 귀족원의 큰 세력들이 투자한 무역상사를 본보기로 공중분해시켜버렸다. 귀족원 세력은 일단 알베르 공작 앞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한편 교황청과 알베르 공작의 관계는 대단히 우호적이었기에, 교황청으로써는 델시냐 왕국의 이름이 바뀌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사건의 내막에 대해 교황청의 정보원들이 파악한 사실들이 있어 알베르 공작을 조종하는 것이 쉬운데다가, 왕가가 바뀌는 것은 오랜 시간의 혼란을 불러와 왕국의 힘을 약화시킬 것이었다. 무력하게 기다리고만 있던 국왕은 이제 재기의 기회는 하나만 남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하면 되는 것이다.

  한편, 종교재판소에서는 안드레아가 파견된지 몇달이 지났는데도 별다른 결과가 없다는 것을 들어 그를 철수시키고 다른 이단 심문관들을 파견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종교재판소 상부나 교황청은 이제까지의 안드레아의 활약을 들어 좀더 시간을 주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끊임없는 안드레아의 반대세력의 음해공작으로 마침내 종교재판소는 안드레아에게 귀국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고 있던 안드레아는 철수 명령에 대해 이단 심문관이 특수한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을 들어 거부했다. 안드레아의 반대세력은 이를 기회 삼아 안드레아의 권한 남용을 소리높여 비난하고 고통 받는 영혼을 위해 좀더 빠른 행동을 촉구했다. 마침 마리나 왕녀가 어릴 때 공식 행사에서 만나 왕녀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종교 재판관이 있었기에, 하루라도 빨리 고통 받는 영혼에 구원을 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안드레아의 반대세력들로 구성된 가시적인 성과를 위한 파견단이 재빨리 델시냐 왕국으로 향했다.

  이 무렵 안드레아의 고뇌는 종교재판소와의 갈등으로 인해 더 무섭게 끓어올랐다. 이제껏 오직 한 방향, 검처럼 곧은 길을 향해왔던 이단심문관의 의혹은 안드레아를 크게 뒤흔들어놓았다. 도처에 권력과 욕망과 배반과 거짓말이 있었다. 어떻게 이런 타락이 지상에 허용될 수 있는가? 타락의 근원은 악마가 아니라 마치 인간 그 자체인 것처럼 보였다. 인간 스스로의 내면에 잠재된 악마적인 본성이 모든 죄악을 뿌리고 그 결과인 파멸을 추수하는 것 같았다. 안드레아는 한번도 자신의 신앙에 대해 회의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서야 회의를 가지게 되자 여지껏 그가 걸어왔던 그 모든 길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마음의 일각에서는 이것 또한 악마의 역사라고 애써 부정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이전처럼 확고한 믿음이 아니었다. 안드레아는 자신의 곧은 칼이 악마의 뿔처럼 휘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왔다. 왕궁에서 지하 감옥으로 통하는 비밀통로를 따라, 왕명을 받은 암살자들이 비밀리에 움직였다. 한편 지하감옥의 정문으로 이단심문관의 권한을 내세우며 안드레아의 반대파들이 성당기사단을 이끌고 들이닥쳤다. 안드레아는 그 전날 마지막의 것을 고백한 왕녀를 위하여 아침 일찍 나와 고해의 기도를 드리고 있던 참이었다. 소란스러워지자 안드레아는 나와서 새로이 파견된 이단 심문관들을 마주쳤다. 세사람 모두 한 때 그의 동료였으나 이제는 돌아선 자들이었다. 한시라도 빠른 영혼의 구제를 촉구하며 가시적인 성과로 왕녀의 죽음을 요구하는 상대에 대응하면서 안드레아는 속에서 그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신념들이 빠르게 삭아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교회의 가장 신실한 검들도, 결국에는 영혼의 구제에 관심이 없이 이처럼 질투에 차 눈이 멀어있단 말인가? 세 이단 심문관과 안드레아가 실갱이하고 있을 때, 지하감옥에 왕녀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놀라 돌아간 안드레아는 국왕이 보낸 자객들에게 살해된 왕녀의 시신을 발견한다. 비밀통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뒤는 신경쓰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자객들은 자신들이 왕명으로 왔다는 것을 밝히고 이단 심문관들에게 교섭을 요청한다. 국왕은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의 딸을 제거하고 다시 교황권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안드레아는 더이상 자신의 내부에 그 어떤 신념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남아있는 것은 오직 순수한 분노 뿐이었다. 안드레아는 과거 지하감옥에 수감되어있던 죄수들의 물건을 보관하는 함으로 달려갔다. 잠겨져있던 함의 자물쇠가 저절로 열리고 안드레아의 손으로 천 명의 피를 마신 단도가 날아들어왔다. 그 단도를 쥐는 순간, 마법적인 힘이 폭발하면서 국왕의 자객들과 이단심문관들, 그리고 성당기사단원들이 모두 칠공으로 피를 내쏟으며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피비린내와 정적이 가득한 가운데 안드레아가 비틀거리며 왕녀의 시체 앞으로로 나아가자, 악마가 왕녀의 시체를 빌려 말을 걸었다. 안드레아는 자신을 조롱하는 악마를 저주하고, 썩어빠진 교회와 속세의 모든 세력에 맞서 자신이 신의 정의를 이 땅에 세우기로 맹세했다. 곧이어 추적이 들이닥칠 수 있으므로, 금지된 물품들을 회수하고 난 안드레아는 서둘러 지하감옥을 빠져나왔다.

  그 후로 오랜 세월 동안, 안드레아는 마녀 사냥꾼이자 이단 심판관으로 살아갔다. 피바다의 한 가운데에서 깨달은 신의 정의를 따라, 안드레아는 가차없이 행했다. 이제껏 교회의 적들이던 자들은 마찬가지로 그의 칼 앞에 죽음을 면하지 못했다. 이전과 같은 것이라면 그것 뿐이었다. 안드레아는 파문 당했고 이단 심문관의 직위는 박탈당했다. 성당기사단과 이단 심문관들이 언제나 안드레아를 추적했다. 안드레아는 가급적이면 추적을 따돌리고, 여의치 않을 경우는 상대를 모조리 죽이면서, 아직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악마의 힘을 남김없이 파괴하기 위해 그에게 남은 생을 서둘렀다.

  이미 안드레아는 여러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고, 원래대로라면 죽어있어야 할 몸이었다. 그러나 안드레아는 그의 수호성인인 성 안드레아가 하던 바를 행하기로 결심했었다. 악마의 뿔로 악마를 찔러 죽인 성인의 일화는 어렸을 때 안드레아가 처음으로 신에게 귀의하게 만들었다. 이제 안드레아가 행하는 것은 다름아닌 그가 상대하는 자들의 힘으로 그의 적들을 파멸시키는 일이었다. 한 쪽 눈을 잃고 난 뒤, 상대의 똑바로 쳐다보면 죽는 흉안을 파내어 그 자리에 박아넣었다. 그가 살해한 신비술사들이 했던 대로 악마로부터 보호하는 문신을 새겼다. 혈관에는 인간의 것이 아닌 피가 섞여 함께 흘렀다. 상처에서는 붉은 피와 검은 피가 섞여서 배어나오고, 검은 피는 금방 응고되어 상처를 덮었다. 이제 안드레아는 제법 익숙하게 연금술사들이 했던 대로 시약을 배합할 수 있었다. 자연과학자들이 했던 대로 제조한 화약이 담긴 권총은 이미 여러차례 상대의 가슴이나 이마에 구멍을 내었다. 안드레아는 이제 주문학과 흑마술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중독되지 않고 단검에 독을 바르는 법이나 단검을 던져 상대를 꿰뚫는 수법 쯤은 어렵잖았다. 안드레아는 언제든 기꺼이 효과적인 독을 합성해냈고 그리고 전부 다 써버렸다. 금단의 지식과 기술들, 원래대로라면 그 원주인들을 토벌하고 난 뒤 태워져야 할 것들. 그러나 안드레아는 악마의 심장에 그의 뿔을 꽂아 넣기 위해, 악마가 맨 처음 세상에 내놓앗던 지식들을 하나 하나 모아들였다. 그 가운데는 순수한 분노가 자리잡고 있었다. 안드레아가 아직까지 사용하는 것은 그가 교회의 충실한 이단 심문관이던 시절 부터 사용해온, 은빛으로 빛나는 날렵한 장검 한 자루 뿐이었다. 그 빛은 결코 바래지 않고 변함없는 신의 정의와 같이 곧았다.

  안드레아의 순례는 계속되었다. 한적한 시골로 도망친 한 무리의 자유주의자들을 살육하고 나서 안드레아는 여전히 악마의 냄새를 따라 여행했다. 몇개인가의 봉우리을 넘어서 계곡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에 이르자 안드레아는 그 풍경에서 약간의 평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양떼로 다가갔을 때 양떼를 몰고 있던 소녀의 얼굴은 안드레아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과거 델시냐 왕국의 왕녀, 마리나의 것과 완전히 빼어닮은 것을 알았다. 안드레아는 이곳에서 악마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안드레아는 양치기 소녀에게 이곳에서 묵어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안드레아는 하룻밤을 양치기 소녀의 집에서 묵었다. 소녀는 건너편 골짜기에 살고 있는 약초에 대해 박학다식하다는 은둔자 이야기를 꺼냈다. 다음날 일찍 날이 밝은 뒤 안드레아는 그 은둔자의 오두막을 찾아갔다. 은둔자는 안드레아를 경계했으나, 안드레아가 살짝 살짝 연금술의 은어를 섞어서 이야기하자 안심했다. 안드레아는 은둔자와 비약의 제조에 대해 논했다. 은둔자는 새로운 지식에 감사하면서 안드레아의 이름을 물었다. 안드레아는 길게 말하지 않고 단칼에 상대의 머리를 칼로 베어 떠내었다. 그러나 머리가 반토막나고도 은둔자는 일어서서 안드레아에게 독액을 뿜어내었다. 안드레아는 은둔자의 몸에 은으로 된 탄환을 박아넣었다. 한 탄창을 다 비우고서야 죽었으나, 여전히 은둔자의 시체는 꿈틀거렸다. 안드레아는 재생을 막기위해서 물어뜯는 불꽃을 불러내 은둔자의 시체를 먹였다. 그 때 양치기 소녀가 다리가 삔 양을 치료할 약초를 얻기 위해 은둔자의 오두막에 와서 문을 열었다. 불꽃은 단숨에 뛰어올라 살아있는 살을 덮쳤다. 안드레아는 물어뜯는 불에 물린 소녀의 손을 단칼에 잘라내고 성수를 부어 불꽃을 껐다. 소녀가 충격으로 기절해있었으므로 안드레아는 손목에 재생의 룬을 새겨주고 자리를 떴다.

  며칠 후 안드레아는 소녀가 어떻게 되었나 살펴보려고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소녀의 손목에 새겨진 룬은 제대로 작용해서 잘려나갔던 손을 만들어냈지만, 이 현상은 종교재판소로 보고되었다. 이단 심문관들과 성당기사단이 파견되었다. 이단 심문관들은 안드레아를 끌어내기 위해 양치기 소녀를 미끼로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곧 마을에 소녀가 악마와 결탁했으며 재생한 손목이 그 증거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마을 한복판에 화형대가 설치되었고 소녀는 화형 말뚝에 묶였다. 이단 심문관이 막 기도문을 외우고 고개숙여 장작에 불을 붙히려 할 때, 뱀으로 된 채찍이 휙 허공을 갈라 이단 심문관의 머리를 몸에서 떼어놓았다. 안드레아는 한 손에 뱀 채찍을 쥐고 한 손에 은빛 장검을 쥐고 돌격했다. 안드레아는 분전하여 세 명의 이단 심문관을 죽이고 화형대 위로 올라섰다. 막 안드레아가 소녀를 묶은 밧줄을 풀려 했을 때, 안드레아는 이미 오래전에 소녀가 죽어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양치기 소녀가 아니라 죽은 마리나 왕녀였다. 안드레아는 다시 돌아섰다. 마지막 남은 이단 심문관은 매복했던 성당기사단을 지휘하여 안드레아에게 일제히 석궁을 퍼붓게 했다. 첫번째 일제사격이 끝나고 안드레아는 무너졌다. 가까스로 장검을 땅에 꽂아 넣고 버티려했으나, 계속 서있을 수 없었다. 뒤로 물러서서 화형 말뚝에 기댔을 때, 비로소 안드레아는 거꾸로 박힌 장검이 십자가의 형상인 것을 깨달았다. 악마가 양치기 소녀의 시체를 빌려서 안드레아를 잔혹하게 조롱했다. 다시한번 일제사격의 신호가 울리고, 안드레아는 화살이 온 몸에 박혀 바닥에 쓰러져 죽었다. 그러고서도 안드레아의 눈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신의 정의를, 그의 칼을, 그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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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오래 전에 썼던 글입니다. 글투나 주제의식도 그 때의 것 대로지요. 제일 처음에 거울웹진을 찾았을 때 올리려고 했었지만 보안프로그램에 걸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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