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scar

2009.12.18 15:1312.18

눈을 떴을 때 나는 무척이나 음습한 곳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땀에 쩐 셔츠가 온몸을 처덕처덕 감는 것이 불쾌하게만 느껴졌다. 사위는 적막하였고 신선하지 못한 습한 바람이 이따금 불어와 내 살갗을 어르듯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습하고 차가운 곳, 그곳에서 나는 우습게도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곳은 굉장히 이상한 곳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오른 나무들이 녹음을 짙게 드리웠다. 대기층조차 푸른색을 띠고 있는 그곳 한 가운데 서 있던 나는, 그곳에 서있는 사람, 그러나 그곳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무어라 설명 할 수는 없지만 분명 나는 이승과 저승사이에 있는 사람처럼 괴리에 빠져 있었다.

[후아! 오빠 시원해! 이리 들어와. 어서!]

강물 중간쯤에서 잠수를 즐기던 소녀가 몸을 일으키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소녀의 덜 자란 가슴 언저리에서 강물이 찰박거렸다. 누굴까, 저 소녀는.

그러나 나는 왠지 소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거절하듯 웃어주었다.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

거절의 내 몸짓에 소녀는 입을 비쭉 내밀고는 조금 고시랑대다가 나에게까지 닿지도 않을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작은 손으로 물을 튕겼다.

[에이, 오빠 겁쟁이. 작년에 여기서 여자가 죽었다는 소문 때문에 그러지?]

깔깔 웃는 소녀의 얼굴이 무척이나 화사하다. 뜨끔, 가슴언저리에 짧은 통증이 스쳤다. 마치 바늘로 심장을 찌르는 것처럼. 그리고 상처 난 심장에서 독의 기운이 내 온몸 구석구석에까지 이르러 있는 신경으로 퍼지는 것이 생생히 느껴졌다.

저 아이가 싫다. 여름의 햇살처럼 웃는 저 아이가 밉다. 그 햇살 같은 웃음에 가뭄의 땅처럼 파삭하게 갈라지는 심장을 느끼게 하는 저 아이가 밉다. ……죽었으면 좋겠다.

[어푸!]

소란스러운 물소리가 들리며 강물에 있던 소녀가 머리를 치켜들었다. 소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소녀의 얼굴이 다시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간신히 뻗은 손만이 고통의 편린처럼 물 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 파동으로 생긴 물의 궤적이 추저분한 상흔처럼 강물위에 그려졌다.

[하악!]

숨을 들이키는 이상한 숨소리와 함께 소녀의 머리가 한 번 더 물위로 떠올랐다가 가라 앉을 때쯤 멍하니 있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심장이 솟구치고 신경 줄이 끊어질듯 위태롭다. 다급히 달려가는 내 다리에서 신발이 차례로 벗겨져 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차가운 강물이 내 발가락 끝에서 느껴졌을 때, 마치 정신을 차리듯 나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홀린 듯 주변을 돌아본다. 위압적으로 솟구쳐 오른 초목으로 성처럼 견권하게 둘러쌓인 곳. 무서우리 만치 고요한 공간. 아무도 없다.

그 사이 소녀의 머리가 한 번 더 떠올랐다. 그때 나는 보았다. 소녀의 얼굴이 무섭도록 일그러져 있던 것을.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가 소녀를 감싸고 있었다. 그 눈에는 원망이 담겨 있다. 그녀의 원망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나는 알고 있다. 아니,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해야 한다.

아름답던 소녀의 얼굴이 흉물스럽다. 나는 눈이 씀벅거렸다. 손등으로 눈을 훔치며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듯 내 다리는 땅에 박혀 있었다.

나는 그곳에 있으나 속하지는 않은 사람. 나는 이승과 저승 사이에 서 있는 사람. 그러나 나는 그녀를 죽이지도 살리지도 않은 사람.

방관자.

소녀의 머리는 다시 물위로 떠오르지 못하였다.




“헉.”

날카로운 숨을 들이쉬며 눈을 떴을 때, 내 몸은 그 음습한 곳에 있지 않았다. 뭔가에 붙어 버린 것 마냥 몸을 일으키지 못한 채 눈알만을 굴려 천장과 너무나 익숙한 벽, 그리고 허공의 어느 지점을 확인하며 침대 위에 누운 내 몸을 느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안도가 가슴 안의 불안을 쓸어냈다. 위안, 안도. 그리고 내 자리에 나는 여전히 혹은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안주의 심정.

“이제 일어났어?”

별안간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설핏 어깨를 떨며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침대 바로 옆 보조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후미야가 검은 테 안경을 살짝 내리며 그 너머로 나를 보고 있었다. 조금 당황한 나는 몸을 일으켜 앉으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이번엔 좀 길었나봐.”

“흠, 난 평소와 다름없었는데?”

이제 완전히 안경을 벗어 테이블에 올려 두며 후미야는 책을 덮었다. 잠이 덜 깬 탓일까. 가슴은 이루 말할 수 두방망이질 쳐 달아오르고 입에서는 연신 눅진한 숨이 흘러 나왔다. 후미야는 어느새 침대 위로 올라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가 힘주어 꾹 누르는 어깨가, 후미야가 올라올 때 쑤욱 내려앉는 침대마냥 힘없이 주저앉았다.

“걱정했잖아.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야.”

“난 괜찮아.”

애써 그의 눈을 피하며 대답하였다. 순간, 어깨에 올려진 그의 손에 힘이 가해졌다. 나도 모르게 그의 시선을 응시했다.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알 수 없는 공포. 그는 나의 친구인데도 말이다.

나의 눈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차다. 그것은 뱀을 연상시키기도 하였다. 후미야는 입 끝을 끌어올리며 씨익 웃었다. 나도 그를 따라 어색하게 웃는다.

“누가 널 걱정했데? 괜한 일로 어른들에게 알려야 할까봐 그랬던 거야.”

어느새 그의 입가에 웃음이 걷혀 있다. 나는 그의 찬 얼굴에서 시선을 도망시키지 못하였다. 족쇄 걸린 노예처럼.

“쥰이치로, 후미야! 내려와서 푸딩을 먹지 않겠니?”

별안간 벌컥 문이 열렸다. 나는 당황하여 고개를 퍼뜩 들었다. 엄마다.

“엄마, 제발 노크 좀.”

알 수 없는 짜증이 밀려온다. 흰색 레이스가 달린 앞치마를 두른 엄마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쥰이치로, 어린 애처럼 무슨 투정이야. 아주머니 곧 내려갈게요."
또래보다 덩치가 큰 후미야는 예의가 바르고 두뇌가 명석하다. 학교의 시험성적은 늘 상위권을 차지하였으며, 그렇다고 거들먹거릴 줄도 몰랐다. 머리는 늘 단정하였으며 손톱은 마치 자라지 않는 사람처럼 일정 크기를 유지 하였다. 그런 후미야를 엄마는 맹신하고 있다. 그가 나와 무엇을 공유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엄마에게 대외적인 얼굴로 안심시켰던 후미야는 대외적인 얼굴을 내보여야 하는 ‘상대’가 없어지자 어느새 가면을 벗어 치웠다.

“좋아, 우리는 지금부터 내려가서 푸딩을 먹고 다시 올라오는 거야. 그리고 아까보다 조금 더 강하게 해보자.”

그의 눈에 푸른 안광이 스쳤다.

“후미야, 난 오늘은 그만 하고 싶어.”

“그 말은 영영 그만두고 싶다는 거지?”

“아냐, 오늘만이야. 오늘만. 오늘은 몸이 너무 안 좋아서 그래. 기분도 불길하고.”

큭큭, 하고 그가 소리 내어 웃었다. 나를 비웃고 있는 것이었다.

그와의 ‘놀이’가 하기 싫은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좋다. 그 순간은 마치 마약이라도 한 듯 기분이 좋으며, 영혼이 내 육체를 벗어나 공중에 부유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처음 이 ‘놀이’를 시작했을 때, 우리는 이것을 오르가즘이라 불렀다.

“내가 너 강요하는 거야?”

야멜야멜 웃으며 후미야가 물어왔다. 나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젓는다. 가끔은 싫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니다. 우리의 ‘놀이’가 어른들에게 알려질까 나는 두렵기도 하지만 우리의 비밀은 너무도 견고한 궤 안에 갇힌 듯 안전할거라고 후미야가 안심시켜주었던 적도 있다. 이것은 자행이다. 나는 가끔 내 발로 그를 찾아가기도 하니까.

내 고갯짓에 후미야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벙긋 웃었다.

“좋았어. 이제 그만 내려가자. 너희 어머니가 사오는 사이스케 과자점 푸딩은 최고라구.”

어느새 그의 얼굴은 모범생의 그것으로 돌아와 있다.

후미야가 먼저 방문을 나서고 그 뒤를 따르며 등 뒤로 문을 닫는 순간, 나는 스치듯 내 시야에 들어온 것에 고개를 휙 돌렸다.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안도 하지 않는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이 분명 거기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꿈속에서 가끔 보이는 그 소녀. 그리고 후미야와 오르가즘을 경험한 때 가끔 찾아온 그 소녀의 환영.

내 동생…….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푸딩을 떠먹던 스푼을 식탁에 내려두자 곧 후미야의 눈짓이 시작되었다. 흘끗 흘끗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눈짓으로 가리키던 그는, 내가 모르는 척 테이블에 떨어진 푸딩 조각을 손톱으로 갉작대고 있자, 반듯한 미간을 종이 짝처럼 구겼다.

“쥰이치로, 다 먹었으면 2층으로 올라갈까? 아까 얘기하던 독후감에 관해 매듭을 지어야 할 것 같은데?”

조금은 건조한 듯한 목소리로 약간 어조를 높여 후미야가 말하자, 등 뒤로 어머니의 시선이 느껴졌다. 왜일까. 그와 올라가는 것이 꺼려진다. 아니, 두려운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와 2층으로 올라가는 일보다 어머니가 나의 두려움을 눈치 채는 것이 더 무서웠다.

“어? 으응.”

“그래, 그러렴. 그러나 2층에 올라가서도 집에 걸려오는 전화는 잘 받아주지 않겠니? 옆집 요미네 씨와 시장을 가기로 약속했거든.”

주방 싱크대 서랍에서 손지갑을 꺼내며 어머니가 말했다. 정신이 아찔해지고 온 몸을 잇고 있는 신경줄 중 하나가 툭 끊어지는 듯한 짧은 충격을 나는 느꼈다.

나가신다고……. 그렇다면 후미야와 단 둘인데.

“다녀오세요. 저희가 전화는 잘 받을게요.”

내가 멍히 있는 동안 후미야는 어머니를 향해 생긋 웃으며 가히 친절한 태도로 말하였다. 어머니는 앞치마를 벗어 식탁 위에 올리며 후미야를 향해 만족스럽게 웃었다.

“우리 쥰이치로도 후미야 같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시끄러.

“우리 쥰이치로는 영 아이 같아서 말이야.”

제발 조용히 해.

“뭘 시켜도 어수룩하기만 해서 불안하다니까.”

시끄럽다구!

쨍그랑!

유리컵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었다. 허억허억.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입으로 거친 숨을 뿜어내고 있었다. 눅진한 호흡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나는 눈을 치켜뜨고 어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곧 그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보지 못하고 나는 눈을 피해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깨진 유리잔의 편린들이 바닥에 분연하게 늘어져있다. 슬슬 시선을 돌릴 때쯤, 기어이 어머니는 뭔가를 말하기 위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었다. 그 말은 분명 ‘넌 어쩜 그러니.’로 시작하여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구나.’를 거쳐 ‘너에게 유리잔을 준 내가 잘못이지.’하는 푸념으로 끝날 것이 분명하였다. 머리가 아파왔다.

“어머니, 제가 치울게요. 얼른 다녀오세요.”

후미야가 벌떡 일어나 어머니의 팔을 잡았다. 양 팔을 허리춤에 올리고 씨근덕거리고 있던 어머니의 얼음장 같던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물론 그것은 후미야를 향한 것이었다. 나는 낡은 청바지를 입은 허벅지 위에 얹힌 손을 꼬옥 주먹을 쥐었다.

“아무튼, 다녀오마.”

어머니는 나가실 때까지도 내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탁, 거칠게 문을 닫는 소리와 함께 어머니는 모습을 감추었다. 귀를 쟁쟁 울리는 소리도 함께 없어졌다. 그러나 내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흥, 요란스러우신 건 여전하시구먼.”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후미야는 평소의 그로 돌아와 있었다. 아니, 이것의 그의 ‘평소’인지 아니면 아까 것이 그의 ‘평소’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나에게 있어서 그의 ‘평소’는 지금의 모습이고, 어머니에게 있어서 그의 ‘평소’는 정말 예의바르고 두뇌가 명석한(어머니는 특별기를 잃어가는 내 얼굴을 후미야는 멀뚱히 바라보며 픽, 웃었다. 한쪽 입가만 비쭉 올라가는 웃음이었다.

“기분 나빠.”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퍼뜩 치켜들었다. 어느새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사라졌으며 한기 같은 것이 그의 눈가에 서려있었다.

“뭐, 뭐가.”

“너 그 눈, 그 표정. 다 기분 나쁘다고. 마치 두려운걸 보는 것 같은 눈빛. 내가 두려워?”

그렇게 말하며 그는 또 피식 웃었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떨린다. 그러나 간신히 고개를 저었다.

“좋아, 자 이제 올라갈까?”

“후, 후미야.”

상쾌해 보이는 기지개를 켜며 후미야가 먼저 주방을 빠져 나가려 할 때 나는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그를 불렀다. 옮기던 걸음을 멈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마치 영화의 슬로우 모션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 긴장감에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조금 전 먹었던 푸딩의 잔향이 침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갔는데, 그것은 달짝지근한 푸딩의 향이 아니라 씁쓸한 느낌만을 남겼다.

“오, 오늘은 좀 쉬고 싶은데.”

떠듬떠듬 말하자 후미야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러나 나는 조금 전에 했던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정말로 쉬고 싶었다.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여기까지 와버린 지금 내 상황을 천천히 되짚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후미야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잠깐 동안 굳은 얼굴로 있던 그는 후, 하는 한숨소리를 내쉬고는 이내 부드럽게 웃었다. 그것은 나에 대한 배려도, 다른 이들에게 하는 ‘평소’의 모습도 아니었다. ‘좋아, 이번 한번만은 봐주지.’ 하는 유예였다. 문득 후미야는 태어날 때부터 뼛속까지 남의 위에서 군림하는 자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좋아. 한숨 자둬. 그리고 이거…….”

후미야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투명한 비닐에 쌓인 것을 내밀었다. 내 시선이 군림하는 자의 명령을 따르듯 후미야의 손바닥 위를 훑는다. 비닐 안에는 미색의 알약이 들어있다. 뭐냐고 묻는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피곤할 때 좋아. 기분이 좋아 질 거야.”

그의 말에는 힘이 실려 있다. 나로 하여금 절대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하는 힘이다.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약을 집어 든 나는 봉지를 가르고 약을 입에 털어 넣는다. 후미야가 내미는 물 잔을 받아 약을 넘기면서 나는 씩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본다.

어느새 푸딩의 달콤함은 입안에 남아 있지 않다. 씁쓸함만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잠에서 깨어나 의식을 되찾을 때쯤, 나는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다. 온몸이 묶인 것처럼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으며 의식을 찾는 것과 동시에 시작된 심장의 파동이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방안은 습하고 열기로 가득 찼고, 몇 시인지 짐작도 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방은 어둠으로 가득차 있었다. 어디선가 생선이 썩은 것 같은 비린내가 코를 찔러왔다.

간신히 눈을 떠올렸을 때 나는 보았다.

그녀는 대체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을까. 꿈속의 소녀, 나의 동생은 내 발치에 서서 나를 내려다본다. 꿈속의 그때마냥 그녀의 얼굴은 나에 대한 원망스러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순식간에 소름이 돋고 뒷목까지 이어지는 신경 줄이 빳빳하게 곤두섰다.

도망을 가고 싶다. 그러나 도망을 갈수도 없다. 몸은 아무리 애를 써도 움직이지 않는다.

눈을 감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이 생에 풀지 못한 한이 있어 눈조차 감지 못한 시신처럼 내 눈은 부릅떠 있다.

이윽고 발치에 서 있던 동생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잔뜩 헝클어진 채 가슴 아래까지 내려온 머리카락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비스듬히 옆으로 꺾인 머리는 걸을 때마다 어딘가 고장 난 로봇처럼 덜컹거렸으며, 한 발짝씩 옮길 때마다 낡은 누마루를 밟는 소리가 동생의 몸 어딘가에서 울렸다. 장작처럼 말라 건조해진 뼈를 숟가락으로 벅벅 긁는 것 같기도 하고 부러진 뼈끼리 부딪히는 것 같은 그 소리는 내 가슴을 옥죄고 목을 조여 왔다.

동생의 느릿하면서도 기괴함을 풍기는 움직임에 내가 서서히 겁에 질려 있을 즈음,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동생의 얼굴이 내 눈앞까지 빠르게 밀려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극도의 공포. 나는 미처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였다.

그녀의 눈은 휑뎅그렁하였다. 처음부터 눈동자는 없었던 듯 빈공간은 어둠으로 가득해 있었다. 그 검은 공간에서 물이 떨어졌다. 처음에는 한두 방울이 떨어지더니 이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물은 내가 어찌해보지도 못하는 사이 내 손을 적셨다. 무척이나 끈적이고 미끈거리는 그것에서 썩은 냄새가 훅, 치받혀 올라왔다. 나는 처음으로 그것이 생선 썩은 비린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으으윽!”

신음을 하며 간신히 몸을 뒤틀었을 때, 방은 환해져 있었다. 어쩌면 내가 동생의 환영을 보고 있던 사이 나는 어딘가의 다른 공간에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식은땀으로 온몸이 젖은 채 간신히 눈을 돌렸다. 침대 옆 내 책상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후미야가 내가 깬 것을 눈치 챘는지 책을 덮으며 안경을 고쳐 썼다.

“이거 읽을 동안은 깨우지 않으려고 했는데, 열 페이지를 남겨 놓고 깼구나.”

후미야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책을 덮어 책상에 아무렇게 밀어놓고는 내 옆으로 다가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는 상체를 조금 일으켰다.

“이 땀 좀봐. 악몽이라도 꿨니?”

“…….”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시선을 떨어뜨렸다. 후미야는 다시 조금 소리 내어 웃는다.

“왜? 죽은 동생 영혼이라도 본거야?”

심장이 저만치 심저 속으로 풀쑥 떨어지는 충격에 나는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하였다. 퉁겨지듯 들어 올려진 내 목고개가 후미야를 향했다.

“왜, 죽은 동생이 널 찾아와 목이라도 졸랐어?”

후미야가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정확히 내 정면을 보고 앉았다. 나는 지금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후미야의 하얀색 손이 나에게로 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손의 엄지손가락으로 내 목울대 옆을 각각 눌렀다. 처음에는 지그시 누르기 시작한 그의 힘은 점차 더 강해졌다. 혼미해져 가는 정신 속에서 그의 ‘오르가즘 놀이’가 평소와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목울대 옆을 한참동안 지그시 누르고 있으면 숨을 쉴 수가 없게 되어 순간적으로 목이 뒤로 훅, 넘어간다. 그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몽환적이다. 그 기분은 마치 마약을 먹었을 때처럼 내 몸이 부유하는 느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의 오르가슴을 겪는 듯 발가락이 부채처럼 펴진다.

자, 이제 후미야가 내 목을 놔주어야 하는 타이밍이다. 그의 손가락이 점점 내 목에서 떨어져 나가면 나는 고개를 똑바로 세우고 숨을 고르게 쉬면되었다.

그러나 후미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엄지손가락만 닿아 있던 것은 이내 열손가락 전부가 되었다. 그의 유난히 긴 손가락이 내 목 전체를 감싼다. 그리고는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던 힘이 가해졌다.

나는 공중에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버둥거렸다. 그러나 후미야는 놔주지 않았다.

“구해주지 그랬어, 오빠.”

버둥거리던 손이 공중에서 우뚝 멈춘다. 허옇게 떠진 그의 흰자에 실핏줄이 불툭불툭 섰다. 보인다. 후미야의 어깨너머로 여전히 물을 떨어뜨리고 있는 그녀가.

“꺄악! 그만두지 못해!”

곧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누군가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쥰이치로! 정신이 드니?”

눈이 부시다. 살짝 떠올린 눈꺼풀을 다시 감아 버린 나는 익숙한 음성에 다시 눈을 떠올렸다. 흰 천장이 보이고, 먼지가 가득 쌓인 형광등이 보였다. 뒤늦게 어머니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온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울먹이는 어머니에게서 시선을 돌려 흰 천장을 바라본다.

“……후미야는.”

어머니의 눈이 순식간에 쌍글하게 떠진다.

“그 아이 걱정이라도 하는 거니? 어찌나 놀랐는 지 원……. 당연히 경찰이 데려갔어. 그 뒤는 나도 모르겠다. 이제 네가 깨었으니 경찰서로 가야겠지. 곧 경찰차가 도착하기로 했단다.”

자신이 목격한 것이 떠오르는지 어머니는 발작이라도 하듯 어깨를 떨었다. 상체를 일으켰다. 뭔가 이물감이 들어 오른팔을 내려다보니 손목께에 링거바늘이 꽂혀있다. 심드렁하게 그것을 빼자 어머니의 비명이 이어졌다.

“쥰이치로! 더 안정을 취해야해. 갑자기 왜 일어나는 거니!”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서슬이 퍼렇게 고함을 치는 어머니를 제치고 병원 밖으로 빠르게 나왔다. 마침 병원 정문에 있는 택시 승강장에서 택시를 바로 잡아 탈수 있었다. 문을 닫고 창을 조금 열어 백미러를 보니 뒤따라 나온 어머니가 발을 동동 구르며 고함을 치고 있었다. 어머니의 뒤로 경찰 제복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다가서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는 잠시 곤혹스러운 듯 내가 탄 택시와 경찰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그들을 따랐다.




한차례의 파도가 지나고 어둠에 쌓인 집은 적막하기만 하였다. 나는 온 집의 불을 있는 데로 켰다. 그리고 주방으로 바로 들어가 냉장고를 열었다. 어제 먹다 남은 오징어 덮밥이 있었다. 그것을 꺼내 데우지 않은 채로 모두 먹어치웠다. 한 숟가락, 한 숟가락, 아주 천천히 그러나 정확히 씹어내고는 목으로 삼켰다.

그러고 나서 그릇들을 치우는데 사이스케 과자점 푸딩 봉지가 눈에 띄었다. 그것을 열어보니 푸딩이 조금 남아 있다. 아마 어머니 몫으로 사온 것을 먹지 않으신 모양이라 생각하며 그것 마자도 싹싹 긁어 먹었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책상 위에 있는 푸른색 표지의 책을 집어 들었다. 후미야가 읽던 곳까지 표시가 되어 있다. 열 페이지쯤 남았다더니 역시나 그 정도쯤 남아 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남은 열 페이지를 읽어 내려갔다. 나는 아직 읽지 않은 책이라 내용은 전혀 분간이 안 되었으나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남은 것들을 처리하는 일뿐.

나는 알고 있다. 내가 하는 일들을 그 아이가 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 눈이 있던 부근만 검음으로 채우고 있는 것으로는 어디를 보는지 정확히 시선을 찾아내기란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확신하고 있다. 그 아이는 정확히 나를 보고 있다.

신중한 태도로 열 페이지를 모두 읽어 내려간 나는 책을 덮고 책장에 가지런히 끼워 넣었다. 그리고 서랍을 열어 흰 종이 하나를 꺼내었다. 그리고 커다랗게 [유서]라고 적어 넣었다. 내용을 쓰려다 몇 번 고개를 갸웃한 나는 짤막한 문장하나를 채워 넣었다. 많은 것을 남기고 싶진 않다.

[죽습니다.]

지금 내가 행하는 일들이, 내가 당하고 있는 일들이, 내가 보고 있는 이 실체들이. 이것이 동생을 구해 내지 못한, 아니 구해내지 않은 죄책감 때문이라면 인간의 증오라는 추저분한 감정은 얼마나 나약하며, 얼마나 약지 못한 것인가.

서서히 일어나 비뚤어진 책상 의자를 책상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옷장으로 다가가 넥타이를 꺼내었다. 고등학교 입학식에 어머니가 사주었던 넥타이다. 나는 그것을 아주 신중한 태도로 붙박이장의 봉에 묶었다.

넥타이로 만든 원형의 구멍에 목을 집어넣었다. 뒤의 일은 더 생각할 것이 없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엉덩이는 미처 바닥까지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흔들거렸다. 원형의 넥타이가 후미야와 오르가슴 놀이를 할 때처럼 목을 조여 왔다.

후미야…….

그는 왜 그랬을까.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았으며, 무엇을 생각하였을까. 나는 그가 준 약이 나로 하여금 어떤 정신을 갖게 하였는지 모른다. 내가 보고 있는 동생의 영혼이 그가 준 약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것은 모호하다. 어쩌면 후미야가 동생을 사랑했을지도, 아니면 동생의 영혼에 조종을 받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이내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할 상태에 이르렀다.

아아, 후미야. 진짜 오르가즘은 여기 있었어. 내 발가락이 부챗살처럼 펴진다. 그리고 혼미해져 가는 정신 속에서 나는 아직 그곳에 있는 동생의 영혼을 보았다.

그녀는 이제 인상을 찡그리고 있지 않는다. 원망스러운 듯한 표정도 없다. 숨을 쉬지 못해 내 입이 점점 벌어지자 웃고 있다. 나는 무슨 말인가 그녀에게 해주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하였다.
지옥같은 암흑이 나에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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