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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피터팬 설명서

2009.11.29 23:1911.29

피터팬 설명서

  

진원은 오늘도 찍소리 않고 야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오늘은 자신과 편집장을 제외하고는 사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론 불안감이 마구 쏟아나고 있었다.

편집장이 오늘은 어떤 행패를 부릴지 생각을 해보니, 그 자체로도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였다. 잘못하다간 내년 동안 찍혀 편집장의 호출에 모두 응해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만은 죽어도 싫었다. 그는 어떻게 해야만 심술궂은 편집장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긴 그에게서 벗어난 선배, 동료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나는 달라! 선배와 동료가 실패한다 해도 난 성공해.’ 라 생각하고 포부를 다졌다. 그리고 때마침 승리의 전화가 울렸다. 편집장이 수화기를 들고 말했다.

  

“네, 진성일보 편집장입니다. 여보세요?”

  

편집장은 전화를 받자마자 제보전화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전화를 받다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말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잠... 잠시만요... 그러니까 서부산 톨게이트에 붉은 머리를 한 18세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칼과 총을 휘둘렀다는 말이에요? 설마, 대한민국에 총을 소지할 수 있는 것은 경찰과 검사들 그리고 국정원 요원들이 전부인데 그런 여자애가 그런 무시무시한 것을 휘두를 리가 없죠. 어쨌든 거기에 취재는 나가보겠습니다만, 거짓이라면 당신 경찰에 허위제보로 신고할 거예요.”

  

진원은 그가 주고받는 내용을 엿듣고 있다 그가 전화를 끊자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잡았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편집장을 향해 외쳤다.

  

“존경하는 편집장님! 이번 취재는 제가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시는 편집장님께서는 일찌감치 퇴근하셔서 가족들과 편안한 밤을 보내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밖에는 비가 오지 않습니까? 그러니 존경하는 선배님이신 편집장님을 대신하여 제가 취재를 나가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를 설득하기 위해 말에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나열했다. 그러나 편집장은 잠시 망설이는 것 같았다. 진원은 편집장을 보며. 아니, 이런 좋은 아부를 듣고도, 자기의 일을 대신하겠다는 후배이자 부하의 말을 듣지 않는 회사에서 짬밥 좀 먹어봤다는 사람이라면 냉큼 물어야 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 라고 투덜거렸다.

  

“음... 자네가 날 그렇게 생각하는 줄은 몰랐네. 하지만 내 일을 남에게 떠 넘길 순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원래 편집장님께서는 취재는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편집장이란 자리는 부하 후배들이 제대로 된 기사를 쓸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이 아닙니까? 그런 편집장의 자리에 앉은 사람이 그것을 본보기로 보여주기 위해서 스스로 기사거리를 찾아다니시는 모습이 정말로 존경스럽습니다. 그렇지만 가족과 보내야하는 시간에 일을 하시다뇨. 사모님께서 아신다면 정말 화를 내실 것 아닙니까?”

  

편집장은 그 말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렇지만 이내 마음을 다시 잡았는지 입을 열었다.

  

“지금도 집 사람은 화를 낸다네. 그러니 별 상관은 없어.”

“그래서 오늘 같은 날은 일찍 들어가시는 게 좋습니다. 퇴근길에 와인 하나 사들고 두 분께서 오붓한 시간을 가지시는 것이 어떠세요? 마침 내일은 토요일! 그리고 내일 실릴 기사들은 모두 인쇄소에 보냈으니 걱정은 없고요. 그런 오늘 야근을 하신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음... 자네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군. 그렇다면 자네가 대신 가주겠나?”

  

그 말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진원은 그 말이 바로 나오자마자 자신의 자리에서 짐을 쌌다. 그리고는 편집장에게

“그럼 전 취재를 마치고 바로 퇴근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사무실을 빠져나가려는 찰나, 편집장이 그를 불러 세웠다. 진원은 자신의 의도가 들켰는가 싶어 간이 조마조마 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뜻밖의 소리가 나왔다.

  

“차 기자. 자네 차 없잖나? 그러니까. 내 차타고 가게나. 듣기로는 운전면허증은 있다고 하던데?”

  

짠순이로 소문난 편집장이 차키를 내준다니! 그것도 자신이 가장 아끼는 차의 차키를 말이다. 진원은 그 말을 들으니 편집장의 총애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인 것이 분명했다. 분명히 꼬장꼬장한 차가 아니라, 꼬질꼬질한 차가 분명할 것이다. 회사전체에 퍼져있는 소문으론 편집장이 재산을 꽤 모은 갑부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차 한 두 대 정도는 껌 값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편집장은 그걸 극구 부인했다. 자식새끼들 학비 모아둔 돈이 전부라며 손사래를 치며 사무실 내의 모든 부하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는 편집장에게서 차 키를 받아들고는 곧바로 사무실을 나가 회사 복도를 통해 비상계단으로 내려갔다. 지하 주차장에는 차는 두 대 뿐이었다. 진원은 이제야 그 소문이 거짓임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그건 누가 퍼뜨린 소문일까?

그건 그렇고 차를 찾아야했다. 그는 차 키를 자세히 보았다. 키는 원격 키였다. 그렇다면 키를 눌러보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진원은 차 키를 눌렀다. 그러자 두 대의 차 중 ‘기야SJ’의 신차인 'Fu23(For you23)' 이었다. 진원은 편집장의 말이 모두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차에 올라타며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를 모두 조절했다. 그리고는 키를 끼우고 시동을 걸었다. 그런 다음 그는 차를 빼고는 지하 주차장에서 지상으로 올라갔다.

자동차는 론대 백화점 앞을 지나서 서부산 톨게이트로 향했다.

서 부산 톨게이트로 향하는 길은 퇴근길이라 교통체증을 앓고 있었다. 게다가 비가 온 뒤라서 차들은 서행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톨게이트에 도착할 때까지 걸릴 소요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 걸릴 듯싶었다. 진원은 짜증을 냈다.

그는 편집장의 차 조수석 앞 서랍에서 카세트테이프를 꺼냈다. 카세트테이프는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의 남기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테이프였다. 그는 라디오에 넣고 빠르게 뒤로 돌렸다. 그리고는 저녁에 인사하는 법 코너를 들었다. 그는 핸들을 잡은 채 초조함과 지루함을 감추지 않으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여자의 지시에 따랐다.

  

“저녁 퇴근길 힘드시죠? 그럴 땐 이렇게 인사를 해보세요. 웃는 얼굴로 손을 들며 상대방에게, 바이~.”

“바이~”

“다시 한 번 더 손을 들며 바이~.”

“바이~. 제발 좀 움직이자. 나도 퇴근 좀 하게.”

  

투정을 부리며 인내의 시간을 견뎠다. 그러자 교통체증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는 밝은 미소를 뛰며 올레! 라 외쳤다. 그리고는 엑셀을 밟아 조금씩 속도를 높혔다. 그러나 그 속도는 한계에 부딪혔다. 아직 교통체증이 다 풀리지 않았기에 톨게이트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마침내 길고 긴 교통체증에서 풀려나 서부산 삼거리에서 서부산 톨게이트로 가는 고속도로를 탔다. 역시 고속도로라 그런지 교통체증 없이 시원하게 뻥 뚫린 도로를 신나게 달릴 수 있었다. 그는 차를 몰아 서부산 톨게이트에 도착했다. 그는 차를 근처에 대고는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얼마 안 되는 차들과 톨게이트, 산뿐이었다. 그래서 전화로 제보자의 주소라도 알아보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내 편집장의 휴대전화 번호를 누르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연결음이 들리면서 이내 편집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편집장은 집인지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기분이 좋은 듯 했다.

  

“어, 차 기자 무슨 일인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에게 용건을 말했다.

  

“저, 음... 그게 말이죠. 제보자의 소재지 좀 알려고요. 아무것도 없어요. 주위는 전형적인 톨게이트의 모습이에요.”

“그래? 하지만 나 그 사람 번호 몰라.”

  

그 말이 진원에게는 천청병력 같은 말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그걸 취재해야 한단 말인가. 마음을 가다듬고는 진원은 편집장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죠?”

“그냥 퇴근 하게나. 내일 토요일이니까 푹 쉬고 말이지. 뭐, 자네들 같은 후배 기자들은 푹 쉬지도 못하겠지만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는 편집장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진원은 이제 어떻게 하나 고민을 하다가 편집장의 말대로 퇴근하기로 결정 했다. 그래서 다시 차에 타려고 차문을 열었다. 그런 그때 그의 눈에 한 초라한 오두막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오두막은 서부산 톨게이트에서 오른쪽 산 앞에 있는 나무로 된 아주 초라한 집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오두막이 있는 그곳에는 아무런 집도 없었다. 있다면 딱 두 채, 한국도로공사 사람들이 쉬는 건물뿐이었다. 그리고 식당.

그런데 지금 여기 이상한 건물이 하나 떡하니, 마치 원래부터 있었다는 듯한 자세를 하고는 진원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수상하다는 생각이 떠오르며, 이거 왠지 모르게 특종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차에서 키를 뽑아 문을 잠그고는 그 건물로 다가갔다. 외견상으론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흉가 같았다. 어찌나 낡았는지 벌레들이 나무를 갉아먹은 흔적이 여기저기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오두막의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 문은 삐그덕 소리를 내며 오두막 내부를 공개했다.

오두막 내부는 생각과는 달리 굉장히 고풍스런 느낌의 디자인과 깔끔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진원은 입을 딱 벌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오두막의 천장의 높이가 3층 정도의 건물의 높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게다가 내부 공간도 컸다. 벽면은 서재인 것 같이 책들이 하나 둘씩 꽂혀 있었고, 그 책들은 하나 같이 고서적들이었다. 그는 이곳을 둘러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말도 안 돼.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정말, 정말 이건 대박이야. 이런 곳이 있다니! 이건 특종이야 사회면에 실으면 정말 대박이겠어.”

“그렇게 신기한가? 하지만 우린 여기서 계속 장사를 하고 있었다네. 단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어디선가 목소리가 2층에서 들려왔다. 그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목소리의 주인은 깔끔한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듯한 집사복 차림을 연상시키는 영국 신사복풍의 옷을 입고, 은색 테두리의 안경을 낀 노인이었다. 노인은 책을 읽다가 소리가 들리자 아래를 내려다 본 것 같았다.

  

“그게 무슨 말이죠? 이곳이 처음부터 있었다니...”

“허허, 뭐 보통 사람이라면 놀랄 만한 일이겠지만 평범하지 않은 이들에게선 이곳은 항상 이곳에 있었던 곳이라네.”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놀랄 일이 아니라고? 대체 이곳은 어디고 당신은 누구죠?”

  

진원은 노인에게 총알이 날아가듯이 빠르게 질문했다. 노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다음 그에게서 조금 떨어진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오며 말했다.

  

“세상엔 평범한 일만 있을 것 같나? 자네 말을 들어보니 기자인 것 같은데 아닌가?”

  

노인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취재하면서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지 않은가? 미쳐버린 사람이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일도, 공인들이 저들마다의 사정으로 텔레비전에 나와서 자신들의 연기로 돈을 버는 일도, 사랑하던 사람들이 결혼하고 이혼을 하는 일도. 세상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지. 이곳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도 그런 일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걸세.”

“이곳이 발견되지 않는 것과 그런 일들과는 차원이 달라요. 평범한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는다면서요. 그런데 제겐 왜 보였던 거죠?”

  

그가 노인의 말을 받아치며 따졌다. 그러자 노인이 잠시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 점은 나도 정말 유감이라네. 원래 이곳은 아주 신비한 힘에 의해서 모습을 감추고 있다네. 세상은 과학이 지배하고 있지만, 실은 과학보다 더 큰 힘이 존재한다네. 신이 바로 그 힘이지. 신은 에덴동산을 만들고 인류를 만드셨지. 그리고 그는 그 에덴동산에 자연계의 힘을 담은 생물들을 만드셨지. 선악과도 그 중에 하나였어.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바람에 인류를 내쫓고는 에덴을 기의 형태로 전 우주로 퍼지게 하셨지. 그리고 지구가 탄생하게 된 거야. 신이 만든 에덴에 기초하여서 말이지.”

“그래서 그렇게 긴 설명을 제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죠?”

  

그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래서 우주는 기가 흐르면서 존재하고 유지된다네, 하지만 이곳이 자네 눈에 보였다는 것은 필시 그 기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겠지. 그래서 자넨 이곳을 볼 수 있게 된 걸게야. 믿어지지가 않는다고 생각된다면 사람들한테 물어보게나. 그들은 이곳을 볼 수 없을 테니까. 아니, 그런 게 존재 하냐고 자네에게 반문할지도 모르지.”

  

노인이 웃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노인에게 그 말을 듣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에게 화를 내봤자 씨도 먹히지 않으리라, 그렇다면 조용히 그의 말에 수긍하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뭐 좀 들겠나? 시간이 8시인데 저녁은 먹었는가? 젊은이.”

  

노인이 물었다.

  

“에? 아, 저녁 말인가요? 먹었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과자하고 차라도 하겠나?”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진원에게 권했다. 진원은 거절하고 싶었다. 과자를 딱히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인의 미소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의 미소를 계속보고 있자니 과자를 좋아하지 않는 진원 역시 과자를 좋아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진원은 노인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노인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는 어디론가 향했다. 진원은 그런 그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고서적들이 많았다. 게다가 알 수 없는 문자로 된 책과 불어로 된 책, 일어로 된 책들이 책장에 꽂혀있었다. 이곳에는 세계의 여러 언어로 된 책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노인이 읽던 책으로 향했다. 책은 양장본으로 되어 있었는데, 제목이 ‘피터팬 설명서’ 라고 적혀 있었다. 진원은 저 책이 동화 피터팬에 대한 어느 평론가의 평론을 묶어 만든 책일 거라 생각하고는 책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책은 그의 생각과 달리 평론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책의 서문을 펼쳤다.

  



[ 이 책은 어린이들의 영웅인 피터팬에 대한 환상을 깨버리는 책이라는 것을 밝혀둔다. 작가 j.m.배리는 유년기에 피터팬을 만났다. 그는 피터팬과 함께 네버랜드에 갔다 왔다. 그리고 그 경험을 살려서 동화 피터팬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동화는 완벽한 그의 경험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동화에서 네버랜드는 어린아이들만이 있는 세상이지만 사실은 네버랜드는 어린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사는 세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어린이들을 위해 이 부분을 수정하여 아이들만이 존재하는 세상으로 바꿔 동화에 섰다.

그리고 동화에서 나오는 후크역시 악당으로 나오지만 사실은 그들은 후크라고 불리는 피터팬의 감시역할을 하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서문에서 다루기는 너무 많은 양이기 때문에 본문에서 다루려고 한다. 이 필자는 피터팬 연구에 있어서 초보지만 많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구해서 이 글을 적는다는 것을 밝힙니다.

                                                                                                                                             -메케인 주삭-]

  



그는 서문을 읽고서는 책을 덮었다. 무슨 이런 책이 있을 수 있을까? 그가 본 책들 중에서 가장 이상한 책이었다.

  

“허허, 그 책이 정말 이상한가 보구먼. 하지만 그 책에 나온 것은 모든 게 사실이라네. 동화 피터팬에 나오는 많은 것들은 거짓인 것이 많지. 작가의 상상력이란 말이네.”

  

어디선가 고급스러운 찻잔세트와 과자를 들고 온 노인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원은 그런 그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노인은 그런 그를 놓아두고는 쟁반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의자에 앉으며 그에게서 ‘피터팬 설명서’ 라는 책을 건네받고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피터팬들은 사실 많은 진실들을 숨긴 이들이었지. 그들은 스스로들을 자유로운 영혼이라 부르며 선과 악을 넘나들었다네. 마치 어린 아이들처럼 말이야. 그래서 그들은 피터팬이라고 불렸다네. 하지만 그들이 피터팬이라고 전 세계적으로 불리게 된 것은 j.m.배리가 동화를 내놓고 나서였다네. 그 이전에는 그들은 자유로운 혼돈 이라는 이름으로 프리스라고 불렸지. 하지만 작가는 피터팬을 만나고 나서 그 피터팬이 어린아이 같은 것을 보고는 그에게 피터팬이란 이름을 붙여줬지.”

  

노인은 마치 과거를 회상하듯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진원은 그런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원래 피터팬들은 악하다고들 하지. 이유를 아나?”

  

뜬금없이 피터팬이 악하다가 하자, 진원은 고개를 저었다. 노인은 이번에도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천장과 가까운 높이에 있는 작은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창문 밖에는 비가 올 것 같았다.

  

“그 이유는 그들이 네버랜드에서 탈출한 범죄자들이기 때문이지. 방금 말했다시피 그들은 자유로운 혼돈 이라고 했지. 그들은 선이기도 하고 악이기도 하지. 하지만 그들에겐 아주 작은 결핍이 있었지. 그것은 바로 선이 조금 결핍되어 있다는 거였다네. 그래서 그들은 네버랜드에서 선한 일과 악한 행동을 반복했지. 결국은 네버랜드의 지도자는 스스로를 자유로운 혼돈이라 부르는 이들을 처단하기로 결정했다네, 그리고 그들 중 일부가 이쪽으로 넘어왔는데, 이쪽에 제일 먼저 넘어온 이를 1대 프리스라 부르며 현재에 이르러서는 동화 피터팬에서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피터팬이라 부르지.”

  

노인의 말을 끝으로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아마도 비가 내리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피터팬은 어떻게 되었죠?”

  

진원이 물었다. 노인은 잠시 말을 끊고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네버랜드는 이쪽으로 추적자들을 파견했지. 그리고 그 추적자들을 해적 같은 전술을 사용한다고 해서 후크라고 불렀지. 이것이 내가 읽고 있는 책의 기본 내용이자 3~10페이지까지의 내용을 요약해서 말한 거라네. 나머지 페이지는 모두 이쪽으로 온 피터팬들과 후크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네.”

  

말이 끝나자 진원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듣고도 그런 표정을 짓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으니까. 그는 그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노인이 말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신문에 실을 기사거리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진원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노인에게 타이르듯이 말했다.

  

“그건 말도 안돼요. 피터팬은 작가의 상상 속에 존재한 인물이라고요. 세상 사람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을 당신은 왜 부정하는 거죠?”

“젊은이, 진실은 언제나 변하는 거라네. 자네도 알잖나? 기자라는 일을 하면서 자네가 취재한 기사들 중에 틀린 사실은 언제든지 새로운 기사로 밝혀지지 않던가? 정치가들이 말하던 결백이 언제나 거짓으로 들어나듯이 말일세.”

  

그 말을 끝내고 노인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에는 유리로 된 창문이 하나 나 있었다. 창문에는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과 이건 다른 이야기예요. 사실이지 않은 걸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거짓을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을 사실은 이거라고 말하는 것과 말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떤 증거로 저 책에 적혀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진원은 노인의 반박을 다시 받아쳤다. 노인은 표정 하나 일그러지지 않은 채 그의 말에 답했다.

  

“내가 만났으니까. 내가 만났으니까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거라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어찌 그런 말들을 진짜처럼 말하겠는가? 안 그런가? 인간이란 정말 돼지와 같은 존재지. 돼지들은 먹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계속 먹어대지 않나? 하지만 돼지들은 그 욕망을 채우지 못하지. 인간도 마찬가지지 않은가? 인간들도 욕망은 많으면서 정작 그걸 채울 수 있는 방법도 못 찾고 넓은 하늘도 못 올려다보지. 아니, 그게 아니지. 아예 쳐다볼 생각조차 안하지.”

  

목소리는 점점 격하게 변해갔다. 마치 신선이 지상에 사는 생물들을 바라보며 푸념을 하는 것처럼.

  

“그게 무슨 말이죠? 당신이 직접 만났다니... 말이 되는 소릴 하세요.”

“난 언제나 사실을 말한다네, 설령 그게 가슴 아픈 소식일지라도 말이지.”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진원은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잠시 머릿속을 스 쳐지나간 그 생각을 접기로 했다. 어찌 이렇게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지. 조금만 더 있다가는 자신도 미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젠 그만 합시다. 당신이 얼마나 정신 나간 소릴 하는지 아시기나 하세요? 피터팬이 존재한다니. 누가 들으면 얼라들이 하는 소린 줄 알겠군요.”

“뭐, 그렇겠지. 하지만 사실은 변하지 않는 법이지. 그래서 갈려고 그러는가? 비가 장대처럼 쏟아 부으려고 하는데?”

  

그 말에 그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창문으로 빗방울들이 세차가 유리창을 때리고 있었다. 이상했다. 가을인데 저 정도의 굵기의 비가 내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구온난화가 이렇게 심하게 진행되었다니 진원은 씁쓸하다고 생각했다.

  

“뭐, 지구온난화의 영향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이 세상을 유지하는 힘에 문제가 생겼다는 거지. 그래서 이 가을에 저 정도의 비가 내린다는 건, 그 만큼 유지시키는 힘이 많이 약화 되었다는 걸 의미하겠지.”

  

진원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노인이 말했다. 하지만 뒤에 붙은 말은 역시 그가 듣기에는 정신 나간 소리였다. 진원은 한숨을 내쉰 다음 커피탁자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손목에 찬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9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한숨을 쉬며 진원이 노인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피터팬을 어디서 봤어요?”

  

그러자 노인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그의 물음이 의외였다는 표정이었다. 진원은 그런 그의 표정을 무시하며 다시 물었다.

  

“음.... 그게 어디였더라? 내가 젊었을 때였지. 한 창 난 여행을 했지. 유럽 곳곳을 말이네. 거기서 영국 런던에서 만났다네. 엄밀히 피터팬을 쫓는 후크를 만났고 그와 같이 있다가보니, 피터팬을 보게 되었지.”

“정말 그럴듯하게 말하시네요.”

  

노인은 그 말을 무시하고 계속 이야길 이어갔다.

  

“예전에 피터팬을 감명 깊게 본지라 그 후크라고 불리는 자의 말에 귀가 솔깃하더군. 그래서 그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네. 그런데 내가 알던 피터팬과는 정말 다르더군. 피터팬이 후크가 사는 네버랜드에서는 범죄자라니 말이야. 이 이야길 아이들에게 하면 아이들이 큰 충격에 빠질 거라는 생각이 바로 들더군.

난 그와 함께 한 동안 런던에 머물면서 그가 피터팬을 쫓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네. 후크는 그들에겐 재생이라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숨통을 한 번에 끊어야 한다고 하더군. 그는 정말로 피터팬을 죽일 때 한 번에 죽였다네.”

“그건 좀 심한 거 아닌가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심하지. 나 역시 그렇게 말했다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하더군. ‘범죄자는 죄의 무게를 따지지 않고 모두 죽음으로 처벌한다.’ 라고 말이지. 하지만 그 피터팬은 네버랜드에서 탈출 했을 뿐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지. 그 후로 난 후크와 헤어졌다네. 그리고 피터팬을 한 명 만나게 되었지.”

  

그리움에 말을 멈추고 노인은 회상에 잠겼다. 진원은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추억을 소중히 생각했다. 그것이 좋은 일이면 가만히 지켜보고, 좋지 못한 일이라면 조금의 위로라도 건네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자기에게도 소중한 추억이 있는데, 그걸 누군가가 방해한다면 기분이 나쁠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너무 기다리는 것도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진원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노인에게 말을 붙였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죠?”

  

깊은 회상에 잠겨있던 노인은 진원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끝내지 않은 이야길 이어나갔다.

  

“내가 만난 피터팬은 말이네. 내가 전에 만나 그 후크의 말보다 나쁘지 않았다네. 그는 방랑자였다네. 방랑자 말이네. 그리고 그에게서 충격적인 말을 하나 듣게 되었지. 맨 처음 이쪽으로 넘어온 피터팬에 관한 이야기였지. 그는 이쪽으로 맨 처음 온 피터팬을 1대 피터팬이라고 부르며 그 이후에 들어온 이들에겐 차례로 1,2,3대라는 호칭을 붙였지. 하지만 많은 피터팬들이 이쪽으로 넘어오면서 8대 피터팬부터는 그 호칭을 버리고 피터팬이라고만 지칭하게 되었다고 말했다네. 그리고 그 중 맨 처음 넘어온 피터팬인 1대 피터팬을 개척자라고 불렸다고 말했다네 후크들과 네버랜드의 모든 프리스들이 말일세.

그의 말에 따르면 1대 피터팬은 아주 선한 인물이었다고 한다네. 대부분의 피터팬들 그러니까 프리스라고 불렸던 그들은 네버랜드에서 아주 골칫거리였다고 말했지. 그런데 어느 날 스스로를 ‘혼돈의 제어자’ 라고 부르는 붉은 머리의 여성이 나타났다고 했지. 그녀는 모든 프리스들을 자신의 발아래에 굴복시키고는 네버랜드에 일시적인 평화를 가져다주었다고하네.”

“일시적인 평화요?”

“그래, 일시적인 평화를 가져다주었다고 한다네. 하지만 그녀가 몇 명의 부하와 함께 이쪽으로 넘어온 뒤부터는 그 평화도 깨어져 버렸지. 그래서 그녀를 찾으려고 후크들을 이쪽으로 파견했다네.

하지만 그들은 네버랜드의 후크들을 피하기 위해서 그들과 맞서 싸웠다고 한다네. 하는 수 없이 그들을 미행하기로 결정한 후크들은 자신들의 인기척을 숨기며 그들의 행적을 쫓았다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네. 그들이 인간의 아이들을 무참히 살해했지. 1대 피터팬이 스스로 부하들을 지휘하면서 말일세.

결국 후크들은 네버랜드로 돌아와 모두 보고 했지. 그리고는 대규모의 후크들이 그들을 처벌하기 위해서 이쪽으로 넘어와 그녀의 부하들과 그녀를 쫓고 벼랑 끝에 몰아 붙였지. 하지만 그들은 1대 피터팬을 놓치고 말았다고 한다네, 그들은 그녀의 부하들을 죽이고는 그녀를 죽이려고 했다네. 하지만 1대 피터팬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는 그들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네.”

“그럼 어디로 갔는데요?”

  

노인은 그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1대 피터팬은 환생을 했다고 하네. 그때 스스로 죽었다고 한다네. 프리스들은 후크들의 평균 수명인 300년을 훨씬 뛰어넘는 550년을 산다고 한다네. 거기다가 그들은 죽었을 때의 기억을 가슴에 품고 환생을 한다고 말했지. 난 보았다네. 내 눈으로 직접 말일세.”

  

점점 목소리가 올라가더니 노인은 말하면서 희열을 느꼈다. 진원은 노인이 봤다는 것에 대해서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 기회는 나중으로 밀어져버렸다. 그가 노인에게 물으려는 찰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문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노인의 얼굴표정이 바뀌었다. 그가 반가워할 무엇인가가, 누구인가가 도착한 듯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진원의 뒤의 문으로 다가가서 그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빗소리가 들려왔다. 반가운 빗소리. 하지만 자신을 신비로 가득한 곳을 떠나지 못하게 한 저주받을 빗소리가 들렸다.

  

“앨리스! 왜 그러는 거냐! 어디 다쳤니?”

  

노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 같았다. 노인은 진원을 바라보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탁이네. 3층에 가면 욕실이 있는데, 거기서 수건 좀 가져다주겠는가?”

  

진원은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3층으로 올라가 욕실로 향했다.

  

  

욕실에서 나온 그는 두리번거리다가 2층에서 3층으로 올라오는 계단 중간에서 붉은 머리의 소녀와 노인을 발견했다. 진원은 그들을 부르며 팔을 들어 수건을 흔들었다. 그걸 본 노인은 손녀로 보이는 소녀를 부축하며 한 발 한발 계단을 밟으며 3층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그때였다.

  

“으하하하!! 여기 숨었군. 아주 신비로운 곳이야!!”

  

창문으로 된 천장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천장 창문 유리가 깨지면서 회색머리칼을 등 뒤로 하나로 땋은 한 남자가 떨어졌다. 그 남자는 진원이 노인과 대화를 나눴던 커피탁자 위에 착지하며 그것을 둘로 쪼개버렸다. 그리고는 3층으로 통하는 계단에 서 있는 노인과 소녀를 노려보았다. 소녀는 남자를 보더니 외쳤다.

  

“뭐가 문제인지 아나? 너희는 언제나 우릴 피해 도망 다니기만 하지. 정의를 무서워하는 너희들이 바로 악이란 증거지. 내려와 심판의 시간이다.”

“윽... 뭐가 심판이라는 거지? 미치광이 싸움꾼 주제에.”

  

소녀가 남자를 쏘아보며 말했다. 남자는 그런 소녀의 말에 콧웃음을 쳤고 이내 소녀를 향해 도약했다. 소녀도 그가 도약하자 노인을 자신에게서 때어내고는 깨진 창문을 통해 사라졌다.

노인은 소녀가 자신의 곁을 떠나자 진원을 불렸다. 진원은 급하게 그의 곁으로 갔다. 노인이 말했다.

  

“차 운전할 수 있지? 그렇다면 얼른 방금 둘을 따라가 주게나.”

  

진원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노인의 말에서 절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 이유도 묻지 않고 노인을 부축하며 편집장에게서 빌린 자신의 차로 갔다. 그러고는 노인을 뒤에 태우고 노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둘은 노인의 집 근처의 동산 너머로 향하고 있었다. 어두운 밤인 지금이라도 둘은 잘 보였다. 둘이 어찌나 치열하게 싸우는지 간간히 불꽃이 보였다. 진원은 그 불꽃이 소녀와 남자가 부딪혀서 발생한 불꽃이라는 것을 노인에게 들어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불꽃을 따라 가면서 노인의 설명을 들었다.

소녀는 자신의 손녀이고, 그녀는 1대 피터팬의 환생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노인도 그녀가 1대 피터팬이었다는 사실을 그녀가 12살이 되던 해에 알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엔 전생에 대한 기억을 알 수 없었다네. 맨 처음 태어났을 때에는 머리의 색이 다르다는 것이 특이했었지. 보통은 아시아인들은 검은 계통의 갈색 혹은 완전한 검정색이지 않은가? 하지만 내 손녀는 태어날 때 붉은 색이었다네. 그래서 난 그 애의 부모와 함께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그 이유를 알려고 노력했지. 하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네. 그런데 저 애가 12살이 되던 해. 한 후크가 저 아이의 앞에 나타났다네. 그 후크는 그 아이를 죽이려 들었지. 내 아들내외는 그를 저지하려고 필사적이었지만,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네. 그때였지. 저 아이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을 때가 말이네. 그 아이는 엄청난 운동신경을 발휘하며 그 후크를 물리쳐버렸지. 그래, 그때부터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만들었지. 내가 젊었을 때 만난 피터팬을 찾아서 그의 도움으로 말일세.”

  

차를 운전하며 진원은 노인을 설명을 들었다. 노인은 양손으로 깍지를 끼며 초조함을 나타냈다.

불꽃을 따라가 보니 공터가 나타났다. 그리고 근처에 김해국제공항의 야경이 보였다. 차는 공터 안으로 진입해서 소녀와 남자의 싸우는 곳에서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멈추고는 둘은 차에서 내렸다. 소녀와 남자는 뛰어 올랐다가 다시 공터로 착지하는 것을 반복하며 부딪쳤다.

  

“정말 끈질긴 생명이군. 그래, 네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지. 쓰레기 같은 후크들을 차례차례 쓰러트렸다더군. 역시 그녀의 환생이라고 할 만해.”

  

멀리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녀는 공터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노인은 그 모습을 멀리 지켜보며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그는 조금 더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진원은 그의 손목을 잡고는 고개를 저었다.

  

“닥쳐!”

  

소녀가 일어나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남자에겐 역부족이었다. 남자는 소녀를 높이 띄웠다. 그리고는 자신 역시 뛰어올라 그녀의 복부를 가격했다. 소녀는 그 충격으로 노인의 바로 앞으로 날려 왔다. 소녀의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소녀는 신음소리를 내며 일어셨다. 그리고는 서서히 다가오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나 원 포기를 모르는군. 왜 포기하지 않지? 정의의 심판을 받지 그러나? 왜 그러지?”

“아까도 말했을 텐데? 너 같은 녀석은 정의 따위가 아냐. 그저 미치광이 일뿐이지.”

“흐흐흐, 그래 미치광이야. 난 후크인 내 동료들도 없앴으니까. 그래서 다들 날 월광의 사냥꾼 루시나엘이라 부르더군.”

  

남자는 얼굴을 붙잡으며 웃어댔다. 그 소리는 흡사 악마를 연상시켰다. 소녀는 힘을 내어 자신이 들고 있던 장검을 꼭쥐고 다른 한 손에 있던 권총은 땅에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힘주어 그에게 경고했다.

  

“만일 내 할아버지를 다치게 한다면 네가 소중히 아끼는 그 단검을 부러뜨려주지.”

  

그러자 남자는 웃으며 그녀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둘은 곧바로 부딪혔다. 그리고는 둘의 무기 사이에서 불꽃이 발생했다. 남자는 계속해서 소녀의 심장을 노리며 그녀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소녀도 그에 못지않게 잘 피하면서 그의 빈틈을 찾았다. 하지만 남자는 빈틈을 보여주지 않았다.

소녀는 남자와 거리를 떨어뜨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검을 자신 앞에 두 손으로 쥐며 기압을 불어넣었다. 남자는 그런 그녀의 행동에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외쳤다. 그는 광기에 어려 있었다.

  

“자, 어디 날 날려보지? 널 그렇게 괴롭힌 날 말이야! 아하하하!”

  

진원은 그런 둘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것을 두 눈으로 보다니!

남자는 조커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어쩌면 남자가 조커일지 몰랐다. 노인은 차마 그들의 싸움을 볼 수 없었는지 눈을 감아버렸다.

마침내 최후의 일격이 가해졌다. 소녀가 남자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남자는 그녀의 검을 자신의 두 개의 단검으로 막아냈다. 그리고는 그녀의 복부를 무릎으로 올려쳤다. 하지만 그의 공격도 먹혀들지 않았다. 둘은 희비를 나누는 미소를 지었다. 둘은 다시 한 번 더 거리를 두고 기회를 엿보았다. 이번만큼은 실수 할 수 없었다.

소녀와 남자는 눈에 힘을 주고 자신들의 무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간다. 미치광이 싸움꾼!!”

“어디 덤벼보시지.”

  

남자는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해져 있는 법이었다. 어느 한 쪽이 쓰러져야 했다. 둘은 자신들의 무기를 상대방의 복부에 찔러 넣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공격의 위력은 장검을 든 소녀가 더 효과적이었다. 소녀는 남자의 급소를 찌르는데 성공했지만 남자는 그렇지 못했다. 남자가 쓰러지며 말했다.

  

“이런 간발의 차이였어. 정의를 짓밟다니... 역시 1대 피터팬의 환생이라 다른가?”

“다시 말하지만 넌 정의 따위가 아니야. 넌 절대 정의가 될 수 없어.”

“정의는 혼돈이야. 너희들처럼. 애초에 나 역시 너희 피터팬들에 속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지. 잘 있으라고... 으으윽.”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빛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소녀는 그가 사라지자 정신을 잃고 스러져 버렸다. 노인은 스러진 그녀를 보고 급히 달려가 그녀의 머리를 안았다.

  

“다행이야... 다행이야...”

  

노인이 울며 말했다. 진원은 그들을 차에 태워 데려다 주었다. 노인은 그에게 고맙다고 말하고는 다음에 들려라고 했다. 그때는 피터팬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하지만 진원은 노인에게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다. 그는 차에 올라타고는 눈을 감았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엄청난 것에 몸을 떨면서.

진원은 한 동안 꿈을 꿀 것 같았다. 소녀와 남자가 싸우는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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