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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신천지의 빛

2009.11.26 23:3611.26

신천지의 빛


폴이 그를 만난 것은 악취가 진동하는 바로 그 배 안이다.
더럽고 오래된 그것은 비대한 몸을 움직이며 붉은 행성 여기 저기를 옮겨 다니는 금속 물체로 오염된 실내에는 시궁창 같은 악취로 가득했고 군데군데 핏물처럼 흘러 내린 녹 자국은 정비상태에 의문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차라리 실내 상태에 비해서는 나은 편이다.
누구나 이 배의 실내를 본 사람이라면 청소라는 것은 애초에 해 본적이 없다고 느꼈을 것이니까 말이다. 검은 색 때가 꼬질꼬질하게 들어찬 것은 벽면이나 천정, 바닥 할 것 없이 실내 전체라고 보면 된다. 행여나 누군가가 벽에 기대거나 바닥에 앉는다면 옷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 혹시 병에 걸리지 않을까 정도까지 생각해 봐야 할 지경이다.

이 배가 고약한 것은 이처럼 실내가 낡고 오염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선체에서 눈을 떼고 내부를 둘러보다 보면 승객들 또한 유난히 이런 풍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싸구려 뱃삯을 지불하고 자리를 튼 그들은 마치 시궁창의 쥐를 연상시킨다.
남루한 옷차림의 승객들은 꼬질꼬질한 상태의 짐을 들고 흐릿한 눈으로 무엇인가 궁리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는 행색만큼이나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각자의 자리에서 커다란 굼벵이처럼 잔뜩 구부리고 앉아 있다.
어디 그 뿐 인가. 구석에는 조그만 파이프로 음흉한 연기를 내 뿜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가 하면 아예 보란 듯이 주사기를 들고 설치는 이들도 여럿 보였다.

선내의 풍경이라는 것은 이렇게도 산뜻하지 못한 것들뿐인지라 승객들은 그런 서로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자신들이 앉은 자리에 동심원을 그린 듯 또아리를 틀고 있다.  
‘희망’이나 ‘미래’ 같은 말은 처음부터 이 공간에 존재하지도 않는 듯했다. 스스로를 ‘행성인’이라고 부르는 그들은 그림자 가득한 얼굴로 벌레 같은 삶을 억지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폴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도 더러운 그곳에 편입된 대중의 일부다.
자신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그들은 물론 아니라 그의 삶의 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부식된 공간에서 폴은 ‘그’와 ‘그들’을 만났다.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
그는 깨끗하고 잘 정돈된 머리칼과 수염으로 치장돼 있는데다 우중충한 실내의 색과 어울리지 않는 흰 옷을 입고 있어 그의 얼굴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질감을 한층 더하고 있다.
그는 폴의 앞자리에 앉아서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아이들 서넛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이들 역시 남자 만큼이나 눈에 띄었다. 깔끔하게 차려 입은 모양새는 물론 밝게 웃는 얼굴만으로도 승객들과 그들을 구분 지어 놓았으니 말이다.
이들의 존재를 알아차린 사람들은 하나 둘 힐끗 거리며 곁눈질을 했고 일부는 민망할 정도로 빤히 쳐다보기까지 했다.
한번씩 뚱뚱한 선체가 기우뚱 하며 내장을 뒤틀어 놓았지만 그들의 눈빛은 그런 진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내와 아이들에게 꽂혀 있다.
그들은 누군가의 실수로 오래된 하수구에 떨어진 새로 산 야구공을 연상시켰다.
그만큼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던 것이다.
폴은 부러우면서도 의아스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오랜만에 보는 가족의 모습에서 그는 알 수 없는 향수를 느꼈다.
주체 못하는 호기심을 품고 그들을 바라보던 폴은 그만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당황해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저는 제이콥이라고 합니다.” 정중하면서도 낮은 목소리였다.
“아…… 네…… 전 폴입니다.” 폴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데다 누군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는 것이 폴에게는 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샹그릴라로 가고 있습니다.” 남자는 묻지도 않는 말을 이었다.
폴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선생님과 같은 곳으로 가고 있어요.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그곳으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조금은 경직된 폴의 자세에 아이들은 재미있다는 듯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 가운데 열 네다섯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천연덕스러운 행동에 적응하기 힘들었는지 폴은 잔뜩 어깨를 움츠리고 남자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는 폴에게 오랜 친구 같은 어조로 물었다.
“오랜만에 가신다니……혹시 고향으로 돌아가시는 길인지요?”
폴은 그의 말에 흠칫 놀라며 이내 고개를 숙였다.
이상하리 만치 그의 말에는 대답을 강요하는 듯한 힘이 실려 있었다.  
“네, 샹그릴라는 제 고향입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죠. 오래 전에 떠났다가 다시 찾게 됐습니다.” 폴은 대답을 하면서 목덜미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남자의 눈을 보면서 스스로 ‘갈피를 못 잡고 있구나’라고 자책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군가와 정상적인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얼마만인가 말이다.
“가족들은 다 그곳에 있겠군요?”
“아닙니다. 얼마 전 까지 누이가 살아 있었지만 이제는 그 누이마저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남자는 조금 놀란 듯 큰 눈을 하고 폴을 쳐다봤다.
“혹시 장례식에라도 참석하시는 길인가요?”
그 말에 폴은 조금 맥 빠진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이라면 마음이나 편했겠죠. 죽은 지 한참 지났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주검이라도 확인하기 위해 샹그릴라로 가는 길입니다.”
폴은 남자의 말에 꼬박꼬박 대답하는 자신이 순간 우스웠다. 하지만 그 동안 누구와도 대화다운 대화를 해 보지 못한지라 지금의 행동에 시원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누이는 아팠습니다. 그런 누이를 홀로 두고 고향을 떠나왔죠.”
긴장이 풀린 듯 폴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오래 전에 고향을 떠나셨나 보군요. 누이를 마지막으로 보신 것이 언제쯤인가요?”
“아마 선생님 따님과 같은 나이또래였을 겁니다. 올해로 15년 정도 된 것 같군요.”
“그럼 그 오랫동안 누이는 혼자 고향을 지키고 있었나요?”
폴은 고개를 숙이고 더욱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립병원에 있었습니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저는 모릅니다. 우연히 만난 고향사람이 누이의 죽음을 알려주더군요. 그게 벌써 3달 전의 이야기 입니다.”
“……”
폴은 말을 멈추고 남자 옆에 앉아 있는 여자아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소녀는 살짝 미소를 띠었다. 예쁜 얼굴이었다. 어디선가 본 듯 한 얼굴의 소녀는 유난히 맑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동공 속에는 어딘지 모를 어둠이 깃들어 있었다.

폴은 소녀의 미소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애써 그것을 뿌리치고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행성의 붉은 모래 바람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무엇인가 있는 것처럼 지평선 저 멀리를 응시했다.
“저……”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선생님께서 가진 상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또 제가 관여할 일도 아니고요. 허나 혹시 가슴 깊은 곳에 멍으로 남아 있는 기억이 있다면 조금 나눠도 되겠습니까?” 남자의 말은 정중했다.
남자의 말이 끝나자 폴은 생면부지의 이 남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놔도 좋은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잠시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품 속에 숨겨두었던 조그만 수통을 꺼냈다. 반짝이는 그것을 바싹 마른 입으로 가져가 한 모금 머금었다. 알코올의 강한 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면서 뜨거운 느낌을 몸 속으로 퍼뜨렸다. 꿀꺽 소리를 내며 마시고는 마음을 다잡은 듯 그를 쳐다봤다.

“아버지는 광부였습니다. 술주정꾼이었죠. 집에 들어오면 하는 일이라고는 우리 둘을 죽어라 때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는 매질은 더욱 심해졌죠. 누이는 유독 나약한 몸으로 모진 매질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저 보다 한살이 많았지만 먼저 돌아가신 어머니처럼 중금속 중독으로 고생했습니다. 아버지가 손 지검을 하는 날이면 늘 바짝 마른 몸으로 제 등에 기대어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말고 폴은 입술을 깨물었다. 누이의 마르고 긴 손가락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동안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렇게 시간 속 깊숙이 넣어두었던 것들을 조금 전까지 얼굴도 몰랐던 낯선 남자에게 이야기하고 있다니 이상한 일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매질은 누이에게서 저에게로 전의됐습니다. 아버지는 늘 금속 가루가 뭍은 점퍼를 입고 있었습니다. 탄광과 제련소에서 나오는 금속가루는 그 옷감 안쪽까지 고루 배어서 반짝였습니다. 그리고 술과 매춘부들의 싸구려 향수 냄새가 안감 깊숙한 곳에서 풍겨 나왔습니다. 그 옷을 벗어 던지고는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는 듯 매질을 시작했습니다.”
폴은 고백하듯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자는 폴의 말을 숨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듣고 있었다.
“그렇다면 누이 되시는 분이 병원을 간 것은 그맘때인가요?”
남자의 한 마디 질문은 폴에게 오래된 기억들을 둘러싼 먼지를 싹 가시게 했다.
순간적으로 주먹을 쥔 탓에 손과 팔의 근육이 움찔거렸다.
폴은 남자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누이가 병원에 간 것이 제가 14살 때 일입니다.”
“아버지의 구타 때문이군요. 아니면 더 큰 사고가 있었던지……”
“아버지 때문이라…… 그래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병원에 간 것은 사실이지만 맞아서 간 것은 아닙니다. 누이는 심하게 다쳤습니다. 바로 자기가 지른 불 때문이죠.”

폴은 고개를 떨구고 힘든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언제 빤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더러운 겉옷을 뒤져 다시 수통을 꺼냈다. 폴은 수통에 입을 대고 크게 한 모금을 더 마셨다. 막상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전에 없던 부담감이 엄습했다. 어두운 기억은 뒷덜미를 스산하게 만들었고 그의 얼굴을 검은빛으로 물들였다. 지나간 일이었지만 그에게는 과거의 사건이 아닌 현재 고통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겨울이었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샹그릴라의 겨울은 정말 혹독합니다. 건조한 대기에 수분 하나 없는데다 금속가루와 모래는 차가운 바람과 섞여 사람을 괴롭히죠. 그 일은 행성력 77년, 그 해 겨울에 일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그날도 술을 진탕 먹고 들어와 행패를 부렸습니다. 그가 날린 주먹에 저는 큰 충격을 받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쿵 하고 나가 떨어져 한참을 뒹굴다 다시 일어났더니 주위에는 불안한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신음소리를 내며 실눈을 뜨고 둘러본 저는 겨우 몸을 일으켜서 아픈 뼈마디를 움직여가며 일어났습니다. 집안의 불이 모두 꺼져 있었고 멀리서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 사이사이로 누이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죠. 전 누이의 방문 다가갔습니다.”
남자는 왼손으로 여자아이의 손을 꼭 잡고 폴을 쳐다봤다. 마치 이미 결론을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폴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아버지가……”
“네……그렇습니다. 아마 제가 몰랐을 뿐 그런 일이 종종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이는 깡 마른 몸으로 옷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습니다. 희미하게 비친 하얀 등판에는 손톱자국과 매질로 인한 피멍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죠. 그리고 그 파렴치한은 퉁퉁 부은 돼지처럼 누이의 곁에 누워서 코를 골고 있었습니다. 저는 절망했습니다.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일이었으니까요. 가슴을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때 누이가 저를 보았습니다. 저는 누이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습니다. 누이는 소리 없이 눈물을 떨구었습니다. 그 얼굴에는 경련이 일었습니다. 저를 바라보는 눈빛은 이미 산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소리치지는 않았지만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누이를 보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폴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또박또박 내 뱉었다.
입 주위에는 경련이 일었고 눈을 감은 채 몸을 떨었다.
남자와 함께 있던 아이들은 그런 폴을 쳐다보며 심한 충격을 받은 모양으로 듣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폴은 순간 ‘아이들이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을 해 버렸구나’라고 생각에 바닥으로 눈을 내리 깔았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 폴의 마음을 읽은 듯,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계속해도 된다는 몸짓을 했다. 폴은 조금 주저하다가 다시 입을 떼기 시작했다.
“저는 계속 달렸습니다. 추운 날씨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말입니다. 그렇게 달리다 정신을 차려보니까 공원이더군요. 종종 누이와 숨어있던 그 공원 말입니다. 샹그릴라의 겨울 대기는 폐부 깊숙이 흘러 들어와 숨 쉬는 것 조차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 추위 속에서 오들오들 떨다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차가워진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고 온 몸에는 힘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엇인가 명확한 것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제가 지켜주지 않으면 누이는 이 세상에 혼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눈물로 시야는 가려졌고 입술은 이빨로 깨물고 있었습니다. 다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왔던 길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저는 낯선 풍경에 고개를 들었습니다. 저 멀리 지평선을 적시는 붉은 빛이 보였습니다. 불길한 기운이 가득한 그것을 바라보며 다시 뛰었습니다. 그리고 언덕의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 겨울바람의 모래먼지와 뒤섞여 핏빛으로 둘러 쌓인 우리 집을 보았습니다.”

여기까지가 폴이 평정심을 가지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폴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남자는 폴의 거친 손을 잡고 어루만졌다. 남자의 아이들은 모두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남자의 딸은 눈물 고인 얼굴로 폴을 쳐다보고 있다.
폴은 잠깐 동안 멈췄던 말을 이내 이어나갔다.
“미친 듯이 타 들어가는 불길 속에서 소방관들이 누이를 안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불 속에서 죽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불은 누이가 지른 것입니다. 그녀는 죽을 생각으로 그랬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온 몸에 심한 화상을 입은 그녀는 곧장 시립병원으로 이송됐고 몇 번인가 수술을 받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고온의 연기는 그녀의 성대와 폐를 불태웠고 피부는 심한 화상으로 제 기능을 잃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성인이 될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돼 버린 것입니다.”
폴은 훌쩍거리며 말 끝을 흐렸다.
일그러진 얼굴로 허공을 쳐다보는가 싶더니 긴 한숨을 내 쉬었다.
“경찰의 심문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 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의 동정과 연민이 이어졌지만 그것이 다였습니다. 샹그릴라에서는 흔한 일이니까요. 이름만 번지르르한 그 도시와 같이 모두가 거짓과 위선 속에 살고 있으니까요. 저는 고향을 떠났습니다. 누이에게는 치료비를 구하러 간다고 했지만……누이도 알았을 것입니다. 제가 달아났다는 것을요.”

폴은 말을 마치자 그 동안 쌓였던 설움이 한꺼번에 덮치는 것을 느꼈다.
누이를 버린 죄, 그리고 자신에게 저지른 죄. 그는 그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가망 없는 싸움일 뿐이었다. 오랜만의 울음이었다.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산산이 깨어진 유리조각 같아서 어떤 노력을 해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다.
그 파편은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폴의 가슴 구석구석에 날아와 박혀 있다.
일어나 버린 일은 그에게 손을 쓸 수 도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긴 것이다.
한참을 그러고 있을 때 주먹을 쥐고 있는 손에서 따스함이 느껴졌다.
남자와 그녀의 딸이 폴의 손을 마주잡은 것이다.
그들의 체온이 그에게 전달되자 마음은 다소나마 누그러뜨려졌다.
그렇게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사이로 불청객 같은 선체의 진동이 몇 번이나 찾아왔지만 곧 침묵이라는 절벽으로 몸을 던졌다. 남자는 폴의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입을 열었다.

“지금의 제 행동은 동정도 연민도 아닙니다. 당신이 말한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침묵을 깨고 나온 그의 말에는 단호함이 베어 있었다.
“저와 저의 아이들이 겪은 일, 혹은 이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인생 역시 그런 사건들의 연속이죠. 잘 아실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의 초상이며 우리 또한 당신의 반사물입니다. 혼자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는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한참을 운 그는 남자의 말을 듣고 일종의 해소감을 맛봤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을 찬찬히 뜯어 봤다. 그 시선에서는 어떤 위선도 거짓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누군가의 배려와 따뜻함이 그의 가슴에도 전해졌기 때문이다.
의자에 기대 선체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실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봤다.
격해진 감정이 풀어지자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리고 술기운이 피를 타고 돌았다.

병실에는 소녀가 홀로 누워있었다.
목에서는 ‘끄윽 끄윽’하는 쇠 소리가 들끓었고 허공을 바라보는 눈 가운데 하나는 심한 화상으로 엉겨 붙어 있었다. 온갖 기계장치가 소녀의 갈색 피부 곳곳에 연결돼 있었고 인공호흡기 마스크의 투명한 플라스틱에 서리는 김만이 그녀가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런 소녀 옆에는 소년이 앉아있었다. 화상으로 만신창이가 된 손을 잡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소년은 울다가 그치다가를 반복하다가 굳은 결심을 한 듯 소녀의 손을 놓고 병실 문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런 소년에게 소녀는 쇠 소리를 내며 마치 그를 잡으려는 듯 손을 뻗었다. 병실문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닫혔고 소년은 금속으로 된 문을 뒤로 하고 길고 긴 복도를 뛰고 또 뛰었다.
하지만 그 복도의 끝에 닿을 수 없었다. 숨이 차고 다리에 힘이 빠져갔다.
순간 소년은 뒷덜미에서 뜨거운 기운을 느꼈다. 뒤를 돌아봤을 때 불길에 휩싸인 남자의 형상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돼지고기를 익히는 것 같은 누린 냄새가 복도에 가득 찼고 소년은 그것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더욱 떠 뛰었다.
그러나 소용 없는 일이었다. 그 ‘불타는 남자’는 타 들어가는 손으로 소년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지옥에서나 들려올 듯한 커다란 비명을 질렀다.

“아악!”
꿈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일어난 폴은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나쁜 꿈을 꾸셨군요. 제가 그만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한 탓입니다.”
남자는 안쓰럽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폴에게 말을 걸었다.
말끝에는 정말 미안한 마음이 실려 있었다.
“아닙니다. 감정에 격해서…… 오랫동안 꾼 꿈입니다. 하루도 빼지 않고요. 이제는 그 꿈을 꾸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배에 올랐습니다.”
배가 덜컹거렸다. 모래폭풍이 더욱 심해진 것이다. 폴은 창 밖을 내다봤다. 멀리 수평선을 가르는 가로줄이 희뿌옇게 보였고 붉은 모래는 감정이라도 있는 듯 선체를 마구 때렸다. 그 소리는 샹그릴라가 가까워 졌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조금 복잡한 감정으로 선내로 눈을 돌렸다. 깜빡 거리는 실내 등 아래에 남자와 아이들이 마치 오래 전부터 거기 있었다는 듯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자 폴은 감정이 안정되는 듯 크게 한 숨을 쉬고 남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웃음짓던 아이들은 서로에게 기대면서 순한 양처럼 잠들어 있었다.
그 흔한 잠꼬대 한번 없이 천사처럼 잠들어 있는 아이들의 얼굴은 평온했다.
그러나 이내 폴은 아이들의 얼굴과 몸의 부분마다 숨겨져 있던 상처를 발견했다.
어떤 것은 깊이 베인 것이었고 어떤 것은 화상으로 인한 떡살 같이 보였다. 그저 기쁜 일로만 충만한 줄 알았던 이 아이들의 과거가 그리 순탄치 않았던 것이다.
조금 의외였지만 마음 속으로는 ‘역시나’를 되풀이했다.
행성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이상적인 어떤 것을 바란다는 것은 일종의 망상일 뿐이다.

한참을 그런 생각에 빠져들어 있을 때 폴의 눈은 자신의 손을 잡아준 여자 아이에게로 이어졌다.
그녀는 남자의 가슴팍에 안겨 잠이 들어 있었고 남자는 다정한 눈빛으로 그 아이를 바라보며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폴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남자는 고개를 들고 폴을 쳐다봤다.
“아마…… 이 아이들이 살아왔던 흔적을 눈치 채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행성인인 이 아이들이 순탄하게 살지 못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죠.”
폴은 남자의 말에 무언으로 동조했다.
“저는 사실 이 아이들의 친 아버지가 아닙니다. 대부(大父)라고 하는 편이 맞겠군요.”
폴은 조금 의외라는 듯 남자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렇다면 고아원 같은 곳은 운영하시는군요.”
“쉽게 얘기하자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정말 고아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행성의 여기저기서 만난 아이들입니다. 부모에게 버려져 구걸로 연명하던 아이들이니까요. 불법적인 일에 동원되면서 생을 이어갔던 애들입니다. 낡은 우주복을 입고 행성 괴도의 폐품을 모으거나 혹은 변태 성욕자들에게 몸을 팔면서 살았습니다. 부모의 따뜻한 정 같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 누구의 관심도 받아 본 적이 없는 그런 아이들입니다.”

남자는 고개를 숙여 여자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사소한 행동이었지만 폴에게는 남자가 진정 이 아이들을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거리의 아이들을 거둬들여 친자식처럼 키우는 일은 종종 보아왔으나 상처 많은 아이들이 누군가를 ‘아버지’라 부르며 따르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는 일이다. 폴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여자아이의 이름은 제니퍼 입니다. 흔하지만 예쁜 이름이죠. 대충 아셨겠지만 말을 하지 못해요. 어떤 술집에서 일을 하다가 손님에게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몸을 지키려다 목소리를 잃은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저주하던 것을 제가 거뒀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삶의 목표를 심어주었고 그것을 개척할 힘을 보탰습니다. 그리자 저와 함께 샹그릴라로 가겠다고 했지요.”
“왜 하필 샹그릴라입니까? 그 지옥 같은 곳을……선생님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초창기 행성이주민들이 머물던 그 곳은 아이들에게 절대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할 텐데요. 차라리 환경이 좋은 다른 지역으로 가시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폴은 단호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곳으로 가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민들이 첫 발을 내 디딘 곳이면서 행성인이라는 단어가 처음 생긴 곳이기도 하죠.  행성에서 자행되는 모든 악의 근원 일 뿐 아니라 행성인들의 애환이 시작된 곳이기에 우리는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남자의 말은 폴에게 어려웠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겠다고 하면서 타락과 고통으로 얼룩진 곳으로 갈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그는 알지 못했다.
남자에게 자세하게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이내 단념했다.
남자는 그의 눈빛을 읽은 듯 말을 이어 나갔다.
“제 고향 또한 그곳입니다.”
폴은 놀란 듯 남자를 쳐다봤다.
“그렇습니다. 저도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죠. 하지만 저는 꿈이 있었습니다. 지구에 있는 대학에 가서 지구인이 되겠다고 말입니다. 행성인들의 비참한 삶을 위해 일하겠다는 꿈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시절의 유치한 꿈이지만 분명 선한 의지로 가질 수 있는 기대와 희망이었습니다.”
남자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줬다.
그 때문인지 그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폴은 긴장한 채 뻣뻣한 목으로 남자의 눈을 쳐다봤다.
“하지만 아무도 제게 행성인은 지구의 대학으로 가지 못한다는 말을 해 주지 않았죠. 아니 몰랐을 것입니다. 당시만하더라도 나름 왕래가 자유로웠으니까요. 공부도 곧잘 했던 저입니다. 입시철이 되자 담임은 제게 행성의 기술대학에 가라고 하더군요. 그때야 알았습니다. 행성인으로 태어난 제게 허락된 곳은 그곳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누군가의 노예가 되기 위해 자신을 팔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떠났습니다. 당신과 다른 이유로 떠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당신과 같습니다. 그곳에는 희망도 미래에 대한 꿈도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남자는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즐거움이나 안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의미가 담겨 있었다.  
“저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있습니다. 우선 절대 오해하지 말고 듣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누이는, 그러니까 그분이 행한 행동에 대해 저는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옳았습니다. 비록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아버지의 폭행에 저항함으로써 당신이 그곳을 떠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것입니다. 비약이나 괴변이 아닙니다. 그 행동의 순수성에 대한 결말은 이미 당신이 알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폴은 한번도 그녀의 행동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머리 속에는 일상적인 폭력과 방화 그리고 탈출 같은 현상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누이의 행동이 정당했다거나 하는 등의 평가를 내려본 일도 내려보려 한 적도 없었다.  
“누이를 혼자 두었다는 자책감이나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의식이 당신의 영혼을 파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당신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원인은 다른 곳에 있죠. 그것은 순수성을 파괴하는 차별과 폭력입니다. 차별 받고 사는 이들에게 희망은 없습니다. 희망이나 미래가 없는 삶은 자괴감을 만들어 내지요. 자괴감은 결국 현실이 되고 자신 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고통을 만들어 냅니다.”
폴은 멍한 눈으로 남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어려웠지만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수많은 거짓과 위선 속에서 우리는 속고 무시당하고 울었습니다. 당신과 나 그리고 이 썩어가는 배 안의 승객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 혹은 이들의 후손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다를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이들과 함께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의 말을 들으며 폴은 남자에게 이전 보다 더 강하게 빠져들고 있었다. 그의 손은 뜨거웠다. 손으로 전해져 오는 맥박과 그의 말은 폴에게 전의되고 있었다.
그런 전율을 느끼고 있던 무렵, 안전벨트 등에 불이 들어왔다.
곧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신호였다.
이내 오래된 배는 기우뚱 거리며 비만한 선체를 땅에 내려 놓았다.
커다란 진동이 낡은 금속을 타고 괴성을 지어냈다.
선내 여기저기에서는 아직 열리지도 않은 문을 통해 나가겠다고 벌써부터 짐을 챙기거나 아이들을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폴에게는 남자의 말이 여전히 귓가에 남아 징징거렸다.
그 징징거림은 주위의 소음과 구분돼 그의 머리 속에서 울렸다.
잠시 후 폴과 남자 그리고 아이들도 승객들의 행렬에 동참했다.
짐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들을 한번 더 찬찬히 훑어 봤다.
폴은 짧은 시간 동안 자신과 모든 것을 함께 나누었던 남자 그리고 아이들을 하나씩 바라보며 말했다.
못내 아쉬워하는 그의 표정은 누가 봐도 헤어지기 싫어하는 얼굴이었다.
아이들도 말 없이 그의 손을 잡고 작별 인사를 했다.
남자는 폴에게 웃으며 다가섰지만 섭섭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폴은 잠시 동안 그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낀 후라서 그런지 남자의 그런 얼굴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
“언제 시간이 있으며 제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세요. 당신이라면 항상 대 환영입니다.”
남자는 종이쪽지를 건넸다.
깨알 같은 글씨로 꼼꼼히 적은 그것에는 주소와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샹그릴라라고 하지만 먼 외곽지의 주소였다.
폴은 그가 건네준 종이를 받아 들고서 그들과 작별했다. 그리고 인파에 섞여 배에서 내렸다.
모래가 가득 담긴 부대자루에 구멍이 난 형상으로 사람들이 배에서 쏟아졌다.
폴은 선착장에 발을 디디면서부터 무엇인가를 쏟아버린 공허한 기분을 떨쳐 버리려 부단히 노력했다.
한참을 걸어 배에서 내린 후 뒤돌아보았다. 저 멀리서 남자와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남자는 웃음을 머금고 큰 손을 흔들었고 아이들은 힘차게 작은 손을 흔들며 보조를 맞췄다.
그리고 말 못하는 소녀는 밝은 웃음으로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그림 같았다. 폴도 그들을 향해 크게 손을 내 저으며 인사하고는 뒤돌아 가야 할 길을 서둘러 재촉했다.
뒤로 돌아서자 마자 끝없는 인파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사람들의 머리 위로 희뿌연 안개가 피어 올랐고 저 멀리에는 언제나 그랬다는 듯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 올랐다.
빌딩 같은 굴뚝은 불똥이 섞인 연기를 끊임 없이 토해냈다.
그는 찹찹한 기분을 안고 먼 발치에서나마 보고 싶지도 않았던 풍경을 다시 보고 있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던 이 도시, 하지만 15년의 시간이 지난 오늘 다시 이 곳의 땅을 밟고 말았다.

샹그릴라.
낙원을 약속한 그곳은 행성이민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도시다.
낙원이라는 이름처럼 처음에는 희망을 가득 안은 이민자들이 신천지를 만들겠다고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한 희망의 낙원은 곧바로 지옥 같은 빈민굴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구로 들여가는 광물자원의 보고였기에 일확천금을 노린 지구인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고 연방정부는 이민자들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값나가는 지하자원을 어떻게 하면 싸게 더 많이 가지고 갈 수 있을까 만이 고려의 대상이었다.
당연히 생산성을 빌미로 일어나는 모든 불법 행위는 묵인됐다.
술, 매춘, 마약 그리고 각종 범죄.
지구에서 날아오는 것이라고는 인스턴트 음식을 가득 싫은 컨테이너 박스가 전부다. 연방이 독과점을 인정한 두 개 회사 마크가 찍힌 배들은 몇 주마다 한 번씩 이 곳 부두에서 싸구려 먹을 거리를 토해내고는 값비싼 광물의 원석을 가득 실어 갔다.
하지만 가지고 오는 식량이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비싼 값으로 팔렸다.
늘어가는 인구, 식량부족 그리고 광산에서 나오는 중금속으로 행성과 도시는 병들어 갔다.
행성이민자들과 빈곤 그리고 병자들의 고향.
그는 이 생지옥에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그 다짐은 모래바람처럼 저 멀리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배에서 내리자 마자 폴이 발길을 돌린 곳은 시립납골당이다.
행성인들의 무덤은 스산하고 건조한 대기로 에워 쌓여 있었고 차갑고 무거운 그것은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지하 깊이 만들어진 그곳은 죽은 사람을 기리는 장소라기 보다 커다란 폐기물 처리장 같았다.
멋 없이 넓기만 한 원형광장을 중심으로 네 모서리에 둥근 모양으로 서랍으로 가득한 기둥이 자리하고 있다.
그 모양새라는 것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무적인 구석이 있어서 추모를 한다는 표현이 조금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폴은 그 곳에서 여기저기를 서성였다.
빈 지하공간에 울려 퍼지는 그의 발자국소리는 죽은 이들의 부서진 몸이 들어있는 서랍에 부딪혀 다시 그의 귀에서 울려 퍼졌다.
한참 만에 그는 구석진 자리에서 누이의 이름을 발견했다.
떨리는 손으로 누이의 명패를 쓰다듬으며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15년만의 만남, 하지만 남은 것은 누이가 아니라 그녀의 영혼이 산산이 부서져 있는 이 작은 서랍이다.
폴은 멍한 기분으로 한참 서랍을 쓰다듬다가 용기를 내 그것을 당겨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서랍은 신경질적인 마찰음을 내며 골분이 들어 있는 조그만 상자를 내밀었다.
골분 상자를 눈으로 확인한 그는 마치 깨지는 물건이라도 옮기는 듯 그는 조심스레 상자를 옮겼다.
뚜껑을 열고 그 안을 확인하고 싶었다.
별 소용없는 행동인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홀로 외롭게 죽어간 누이를 직접 대면하고픈 마음으로 일련의 행동을 이어갔다.
“누나……” 상자 안을 보자 폴은 감정에 북받쳐 얼굴이 일그러졌다.
떨리는 손으로 회색 가루를 조용히 쓰다듬던 그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오랫동안 혼자서 고통 받았을 누이를 생각하니 그 미안한 마음에 더욱 감정 조절이 힘들었다.
흐릿한 눈으로 손에 묻은 뼛가루를 한참 쳐다 보던 그는 그 고운 가루를 볼에 묻혀 쓰다듬었다.
반쯤 감은 눈에는 가녀리다 못해 바짝 마른 소녀의 어깨가 어른거렸다.
뒷목에서 시작해 내려오는 가는 선은 어깨를 지나서 툭 불거진 척추로 이어졌고 그 위로 얇게 살이 덥힌 등으로 이어졌다. 그녀의 등에는 오랫동안의 손 지검으로 인해 커다란 멍자국이 여기 저기 남아있다.

폴은 다리의 힘이 풀리고 머리가 어찔했다.
숨이 가빠오는가 싶더니 아뜩해진 정신으로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렸을 누이에 대한 죄의식은 혈관을 타고 심장 박동과 함께 온 몸으로 퍼졌다.
그의 울음소리는 납골당 구석구석으로 전파돼갔다.
그것은 일종의 신음이 돼 죽은 이들 가운데서 울리고 또 울렸다.
폴은 양손으로 머리칼을 쥐어뜯듯이 잡았다. 머리가 부풀어 오르는 느낌, 아니 가슴이 타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얼마나 슬플지, 또 아플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만큼 그는 오랫동안 고립돼 있었다.
슬픔도 아픔도 느낄 겨를이 없었던 그였다.
차가운 바닥에 머리를 내리 누르면서도 골분상자를 꼭 끌어 안았다.
재가 된 누이의 육신과 조우한 그의 가슴은 타 들어가는 것 했다.
누이의 죽음은 느리고 무겁게 그의 몸을 내려 눌렀다.
그런 그의 흐느낌에 동조라도 하는 듯 행성의 겨울 바람은 매섭게 몰아쳤다.
바람소리는 한번도 봄이 없었던 듯 납골당 구석구석을 냉랭하게 적셨다.
그는 누이의 부서진 회색 주검을 원래 자리에 남겨두고 거리로 나섰다.
차가운 밤 공기는 붉은 모래가 섞여 뿌연 상태를 유지했고 샹그릴라의 밤 거리는 그 대기 속에 더러운 냄새를 더했다.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밤거리의 풍경은 폴에게 익숙함으로 다가왔다.
애초에 향수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타락과 죄악으로 얼룩진 그 모습이 추억으로 다가올 만큼 비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폴은 허기진 속으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부스럭거리는 종이조각이 손 끝에 닿았다.
무엇인가 적혀 있는 그 종이조각을 꺼내서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주머니 사이로 집어 넣었다.

“이봐 친구, 선적이 겨우 하루 앞이야.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밥도 없을 줄 알아.”
뚱뚱한 관리자는 크레인을 운전하는 폴에게 으름장을 놨다. 개기름이 번질번질한 얼굴을 들이밀고 악취 나는 입으로 함부로 지껄이는 인물이다.
폴이 샹그릴라에 발을 들인지 벌써 3개월째, 누이를 대면한 후 부두에서 일 자리를 얻었다.
이 도시에서 생산되는 금속 덩어리를 지구로 가는 배에 싣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이다.
그것은 배설하듯 인스턴트 음식으로 가득 찬 컨테이너를 쏟아내고 행성의 광물을 게걸스럽게 삼키고 있었다.
연방의 일을 돕는다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일단 이 곳을 떠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기에 급하게 구한 일자리였다.
돈이 모이는 데로 이 도시를 떠날 생각이었다.
이 일도 오늘이 끝이어서 팔에는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점심 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집단 합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다들 배식을 받으러 긴 줄을 섰지만 그에게는 배를 채우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 남아있었다.
이 도시를 떠나기 전에 남자와 아이들이 있다는 그곳을 들러 그들을 한번 더 보고 싶었다.
그리고 말하지 못하는 소녀 역시 자꾸 눈에 밟혔다.
기억 속의 누이와 같은 나이였던 것도 그렇지만 누군가에 의해 상처 입어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에서 더욱 누이와 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유 따위는 그에게 별 의미가 없었다. 누군가를 보고 싶다는 감정이 생긴 것이 폴에게는 더욱 중요했다.

서둘러 배낭을 꾸린 그는 시궁창 같은 집단합숙소를 나와 그 동안의 임금을 정산한 지폐다발을 주머니에 뭉쳐 넣었다.
그것은 제법 두툼해서 한동안은 큰 걱정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금액이다. 폴은 급한 마음에 그것을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는 지상철에 몸을 실었다.
남자가 남겨준 주소는 제법 먼 거리인데다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일단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서 지나가는 차라도 얻어 탈 생각이다.
지상철의 종착역에서 내려 한참을 걸었다.
겨울 바람에 실려 오는 금속가루가 섞인 모래는 그의 볼을 심하게 때렸다.
걸음걸이가 느려지려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가까운 곳에 있는 화물차 운전자를 위한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추위도 피할 겸 또 간단히 요기도 할 겸 그곳에 들른 그는 쉽사리 남자가 남겨준 주소로 가는 화물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린 것은 거의 한 밤중이 다 돼서였다.
큰 길을 따라 다시 한참을 걷자 한적하다 못해 황량한 언덕에 자리잡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겨울의 차가운 대기로 몸이 얼어붙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였지만 목적지가 바로 눈 앞에 들어서자 생기가 돌았다.
남자가 남겨준 주소가 적힌 명패가 걸려 있는 그 건물은 오래된 학교 건물이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흔적이 여기 저기 남아 있어 황량한 감을 더했다.
하지만 폴은 건물의 외관이나 그 주변환경 따위에 더 이상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바깥기온은 급격하게 하락해 갔고 그는 허기져 있었다. 대문 앞에 들어서자 그저 빨리 안으로 들어가고픈 심정뿐이었다.
급한 마음에 문을 두드렸다.
쿵쿵. 문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울리며 사방으로 퍼졌다.
메아리 쳐 울리는 소리가 끊어지기도 전에 오래 된 문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 지르며 빼곡히 열렸다.
그리고 그 문틈 사이로 조그만 얼굴을 내밀고 그를 맞은 것은 다름아닌 말 못하는 소녀였다.
소녀는 폴을 보자 금새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를 확인하고 문 안으로 들어 선 폴은 아이의 손을 잡았다.
웃음을 가득 머금은 아이는 폴에게 와락 안겨왔다.
그는 당황한 얼굴로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아이의 등에 손을 언고 잠시 그대로 있었다. 차가웠던 그의 몸은 이내 따뜻한 소녀의 체온이 전해져 조금 누그러졌다. 그렇게 한참을 안고 있다가 포옹을 풀고 얼굴을 확인할 무렵 복도 끝에서 키 큰 형상이 다가왔다. 그 형상은 복도의 어둠을 뚫고 두 느린 속도로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입구에 달려 있는 조그만 불빛에 그 모습이 드러나자 폴은 안도했다.
제이콥이었다. 헤어질 때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다가온 그는 폴을 발견하자 크게 팔을 벌리고 그를 맞았다.
“잘 오셨습니다. 안 그래도 언제 오실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남자는 기쁨에 넘치면서도 여전히 정중한 어조로 그를 맞았다. 누군가에게 환대를 받아본 기억이 없는 폴은 그런 남자의 인사에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 폴의 태도에 아랑곳 안고 남자는 그의 손을 잡고 안으로 이끌었다.
소녀는 싱글벙글 거리며 폴의 다른 소매를 잡고 끌다시피 그를 안내했다.

“욕실이 달린 방이 있습니다. 따뜻한 물도 나오고요. 피곤 할 테니 일단 씻고 이 옷으로 갈아 입으세요. 제니퍼, 어서 음식을 준비하거라.”
폴은 생각지 못한 환대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일단 몸부터 씻기로 했다. 먼 거리를 온 탓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들의 환대에 힘이 났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그들이 내 준비한 옷을 입었다.
깨끗한 옷에서 나는 냄새, 얼마 만에 맡아 보는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옷감을 코에 가져다 내고는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다가 혼자 멋 적어 져서는 거실로 발을 옮겼다.
거실에는 이미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조금 빛이 바랜 접시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은 허기진 그를 마구 끌어 당겼다.
음식냄새는 요란하지도 않았고 거짓되지도 않았다.
순수한 재료에서 오는 냄새는 그의 후각과 미각을 동시에 자극했다.
“마음껏 드세요. 비록 고급요리는 아니지만 다 여기서 직접 제배 한 것들입니다.”
폴은 고개를 끄덕이자 마자 접시에 코를 박고 먹기에만 집중했다.
따뜻한 음식이 뱃속에 들어가자 조금 전 까지 그를 엄습하던 피곤기가 싹 가시는 듯 했다.
그렇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남자와 마주 않은 그는 그 환대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한편 남자에게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했다.
누이의 주검이 안치된 납골당을 들렸던 일에서부터 부두의 하역 일을 했던 일 그리고 이 곳에 오기까지의 과정 등을 하나도 빼지 않고 털어 놨다.
남자는 한참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몇 마디 긍정의 대답을 했을 뿐이지만 폴에게는 그의 존재가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그에게 잃어버린 아버지의 공백뿐 아니라 가족의 자리까지도 채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눈을 떴을 때 폴은 한참을 잤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따뜻한 잠자리 그리고 식사, 이 모든 것이 마치 지난밤의 꿈 같았다.  
혹시 꿈이 아닌가 하고 주위를 둘러보기까지 했다. 지난밤 들어 온 방에서 그가 잠을 잤으며 지금 입고 있는 옷이 깨끗하다는 것을 보고서야 꿈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됐다.
안도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희뿌옇게 먼지가 붙어 있는 창 밖으로는 멀리 부두와 그 주변 도심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는 갑자기 그 경치를 더 높은 곳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을 나와 복도를 둘러 봤다. 그러다 방 입구 옆으로 나 있는 계단을 발견하고는 한달음에 올라갔다.
옥상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폴이 있던 방에서 겨우 한 층 높이에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시계는 좋았다. 연일 불던 모래바람이 잠잠해 져서인지 저 멀리 항구가 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이 하역작업을 했던 커다란 배가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항구에 결려 있었다.
그것은 태양빛을 받아 모래바람으로 얼룩진 선체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드러내고 있었다.
“간밤에 잠은 잘 잤는지 모르겠군요.”
폴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다 보았다. 몇 발치 사이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예, 정말 잘 잤습니다. 이런 환대에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환대라뇨. 저희를 찾아준 분께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요. 혹시 특별한 계획이 없다면 더 머무셔도 됩니다. 당신과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폴은 남자의 말이 기뻤다. 그리고 여전히 얼굴에 남아 있는 그의 미소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커피를 타 왔습니다. 안 그래도 오늘은 중요한 날이라 여기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자에게 잔을 받아 들고 그 향기로운 검은색 액체를 한 모금 들이켰다.
첫 모금을 목구멍으로 넘기고 있을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떼지어 몰려드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 몇몇은 이미 안면이 있었지만 대부분 낯설었다.
모두 같은 옷을 입고 환하게 밝은 얼굴로 폴과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 이내 항구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아이들의 행동에 동화 돼 역시 항구 쪽으로 눈을 돌렸다.
남자는 그런 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조용하게 말했다.
“잘 보세요. 이제 곧 제니퍼가 우리의 희망에 불을 당길 테니까요.”
‘이 남자,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그 아이는 보이지 않는군.’
조금 얼떨떨해진 폴은 남자에게 눈을 떼고 다시 항구를 바라봤다.

순간 어디선가 엔진에 불이 붙는 굉음이 들렸다.
그 소리는 지축을 찢을 듯 울리면서 폴의 머리 위로 지나갔다. 귀가 멍멍했다. 그러나 곧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조그만 우주선이었다.
불을 뿜으며 날아가는 그것은 1인용 구명정의 모습이었다.
폴은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일어나는 일에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그 작은 우주선은 곧바로 항구로 방향을 잡았다.
그것은 마치 원래부터 그래야 했다는 듯 항구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리고는 목표가 어디인지 알아 챌 틈도 없이 거대한 섬광 속으로 사라졌다.
그 섬광은 한낮의 태양빛을 누그러뜨릴 만큼 강렬했으며 곧 항구와 그 주변 도심으로 번져나갔다.
폴은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뜨렸다.
찻잔은 돌이킬 수 없도록 산산이 깨어져서 바닥에 작은 조각으로 흩어졌다.  
강렬한 섬광은 밝게 퍼져나가다 서서히 잦아 들었고 그 자리에는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 올랐다.
그것은 이내 핏빛을 뿌렸고 도심은 그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산화하고 있었다.
당황한 폴은 할말을 잊은 채 입을 멀리고 서 있다가 옆에 서 있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역시 폴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는 당황하는 빛 하나 없이 폴을 바라보았다.
아니 오히려 기쁨에 가득 차 웃고 있었다.















댓글 1
  • No Profile
    rabbits 10.01.28 16:11 댓글 수정 삭제
    소름이 끼치는 글이네요. 근데 뭐랄까 반전의 포인트가 약한 느낌이 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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