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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멋지십니다, 경감님!”

부하의 입에 바른 칭찬에 기르는 데에 상당한 공을 들였을 반 다인 수염을 계속 만지작거리던 드레븐 경감은 기분 좋게 웃었다.

“음, 요전번의 콜롬보 스타일로 멋들어지게 꾸몄지. 레플리카라고는 해도 거의 완벽하게 똑같지 않나? 하하하!”

한동안 그저 그런 잡담으로 시간을 한가하게 때우고 있는 경찰들이었지만 그 헐렁한 모습 뒷면에는 범죄자를 노리는 초조한 심정과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 가득이었다.
특히 드레븐 경감은 눈과 입은 분명 웃고 있었지만 주먹은 분노로 꽉 쥐어져 있었고 가끔 이까지 갈고 있었다.
늦은 새벽 2시에 고전적 향취를 물씬 풍기는 화려한 건물 앞에서 경찰들이 이렇게 분노에 떨며 몇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헬레나! 이 빌어먹을 녀...여자 같으니!”

북코레이나 연방 경찰 중에서 최고의 명탐정을 꿈꾸는 드레븐 경감은 자꾸만 자신을 물 먹이는 이 빌어먹을 자칭 ‘괴도 헬레나’ 를 오늘에야 말로 반드시 붙잡으리라 다짐했다.
안 그래도 여성의 인구 비율이 남성보다 높아서 북코레이나의 남자들은 예외 없이 여성에 대한 묘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방금 전만 해도 기세 좋게 년을 외치려다가 매섭게 노려보는 여성들의 시선에 급히 단어를 수정한 것이다.
족히 70은 넘는 이 많은 경찰들 중에서 남자라고는 드레븐 경감 자신을 포함해 20명이 간신히 될까 말까 하는 수준이었다.
자칫 모가지가 날아갈 수도 있었고 최악의 경우 여성 모독죄로 은팔찌 하나 선물 받고 국가가 제공해주는 무료 호텔에서 몇 년 썩을 수도 있었다.
드레븐 경감은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곁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남자 경관에게 물었다.

“크흠, 아직도 무언가 수상한 기척은 감지되지 않는 건가?”

묘하게 중성적이면서도 보면 볼수록 흐릿한 느낌을 주는 외모를 가진 그 경관은 재빠른 동작으로 각 구역을 담당한 경찰들의 보고를 수신 및 확인 후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아직은 아무런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곧 헬레나가 예고한 시각이 불과 1분 정도 남았습니다. 아마 포기한 것은 아닐까요?”

“으음...헬레나! 이번에야 말로 내 손으로 붙잡아서...”

상상도 못할 굴욕을 안겨다 주리라 드레븐 경감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맹세했다.
괴도 신사 아르센 뤼팽이라는 20세기의 실존 인물을 적당히 흉내 내 자신을 희대의 미녀 괴도 헬레나라 자칭하는 정체불명의 여성 범죄자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대담하게 범죄를 예고했다.
연이은 실패로 가뜩이나 불안하던 드레븐 경감의 지위가 어떻게 되느냐는 이번 일의 향방에 달려있었다.

“경감님! 방금 제 2 전자 거래 은행 처리소 동쪽에서 붉은 움직임을 포착했다고 합니다!”

“붉은...그녀로군! 그 곳이라면 여기서 불과 수십 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지 않은가?”

드레븐 경감은 재빨리 전자 단말기로 현재 부근에 배치된 지상 경찰 팀과 공중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5대의 무인 항공기의 위치를 재확인했다.

“후후후, 오늘이야 끝이다!”

드레븐 경감은 득의만만한 미소로 웃어댔다.
지금 동원된 모든 경찰력은 이 건물을 포함한 구역 전체를 중심으로 완벽한 원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찮은 벌레 한 마리도 빠져나기지 못할 포위망이었다. 그 누구도 뺘쟈나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제 슬슬 그녀가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에 불안해오기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저 괴도 헬레나는 결단코 ‘시에라의 눈물’을 훔쳐갈 수 없었다.

“경관, 시에라의 눈물을....”

열심히 다채널 통신 확인에 여념이 없던 그 남자 경관은 드레븐 경감의 명령에 거수경계를 붙인 후 급히 자리를 떴다.

“후후후....”

대도시 몇 개를 책임지는 에너지 동력로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에너지 결청체.
일명 에너존 크리스탈로 불리는 그 아름다운 푸른 결정들은 보석으로의 아름다움이 충분했지만 그 누구도 가질 수가 없었다.
결정 안에는 실로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불안정하게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안정화 처리를 한다고는 해도 쉽사리 그 안정화된 에너지 흐름이 깨져버릴 정도였고 자칫하다가는 도시 절반이 흔적도 없이 소멸해버릴 위력까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에라의 눈물은 달랐다.
처음에 여타의 다른 결정체들처럼 같이 나왔지만 에너지 파장 검사를 해본 결과 매우 경이로운 기적으로 탄생된 물건임이 밝혀진 것이다.
성인 남성의 주먹과 엇비슷한 크기의 시에라의 눈물 안에 내재된 에너지는 매우 완벽하게 안정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상적인 눈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볼 수 있었다.
결정 안에서 요동치는, 감미로운 음율의 형상화와 같은 푸른 에너지 흐름이 깊은 우주 저 편의 은하와 별빛 마냥 아름답게 빛나고 있음을.
아무런 위험 없이 보석으로의 가치를 지닌 유일한 에너지 결정체, 그것도 그 안에 푸르게 빛나는 우주적 풍광까지 품고 있다는 사실은 시에라의 눈물의 존재 가치를 천문학적으로 뛰어오르게 만드는 데에 충분했다.

“경감님, 여기 모자를 가지고 왔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오! 수고했네.”

드레븐 경감은 중절모를 건네고 각자의 일로 바쁜 경찰의 틈바구니로 사라지는 그 젊은 경관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고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또 한 번 자신의 뛰어난 두뇌에 탄복했다.
과거의 여러 범죄 기록들, 그것을 바탕으로 한 영화와 TV 시리즈에 나온 그 어떤 명탐정들도 생각해내지 못한, 어찌 보면 이 진부하면서도 범인의 손발을 단박에 묶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탁월한 트릭!
드레븐 경감은 헬레나가 훔쳐가야 할 시에라의 눈물을 천으로 감싸 중절모의 윗부분에 고정해 그녀가 나타나는 순간 모자를 쓰고 위풍당당하게 마주해야 된다는 실로 놀랍고도 대담한 계획을 세운 것이다.
드레븐 경감은 모자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만족하며 중절모 안을 살펴보자 어둠 속에 회색빛 천으로 몸을 감춘 시에라의 눈물이 살짝 드러나 있었다.
그가 보석의 푸른 광채 본연의 모습을 아주 잠깐 확인해보려던 순간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경고음과 함께 사람들이 당황해하며 외쳐대는 고함 소리가 깊은 밤의 적막을 산산이 깨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드레븐 경감은 급히 중절모를 머리에 쓰면서 황금빛 눈동자로 빛나는 어느 여성 경찰에게 보고를 요구했다.

“어디야? 지금 어디있는 거야?”

“건물 꼭대기의...깃대를 붙잡고 서있습니다. 조명을 집중시키도록 명령하겠습니다.”

저 멀리서 무장 경찰의 지휘관임에 틀림없는 누군가가 걸걸한 목소리로 외쳐댔다.

“모두 조명이 집중되는 곳에 총구를 겨누어라! 마취탄을 사용하는 일이 가급적 없었으면 하지만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는 것이니 훈련한 대로 확실하게 해라!”

조명이 암흑 속에 그 몸을 감추고 있던 누군가를 선명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드레븐 경감은 미소와 함께 승리의 환호성을 내지르며 주먹을 허공에 흔들었다.

“드디어 잡았다! 이번이야 말로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몸에 착 달라붙는 선명한 보랏빛 옷을 입은 채 강렬한 붉은 색 망토를 휘날리고 있는 누군가가 여유만만한 자세로 깃대 바로 옆에 서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 역시 망토와 함께 바람에 생명으로 충만한 생물마냥 요동치고 있었다.

“또 다시 만나서 반갑네요, 드레븐 경감. 그리고 다른 경찰 분들...”

“크윽...”

귀가 웅웅거릴 정도로 선명하게 들려오는 음색의 목소리에 드레븐 경감은 얼굴을 찡그리며 주머니에서 마이크를 꺼내들었다.
코와 입을 알 수 없는 재질의 검은 마스크로 가린 채 초록빛 결정으로 빛나는 고글로 두 눈을 가린 그녀, 헬레나가 자신들을 오만하게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불쾌했다.
물론 곧 자신의 눈앞에서 비참하게 용서를 구하게 될 것이 확신하며 드레븐 경감은 최대한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괴도 헬레나, 넌 지금 우리 경찰 최고의 컴퓨터가 짜낸 포위망에 갇혀 있다. 험하게 체포당하고 싶지 않으면 순순히 내려와 두 손을 내밀어라! 그리고 우리들의 손에서 지금 이 시간, 그리고 이 장소에서 훔칠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예고한 시에라의 눈물은 절대 훔칠 수 없는 곳에 숨겨져 있다! 항복해라!”

드레븐 경감의 확신에 찬, 그리고 왜인지 모르게 훈계의 느낌이 드는 외침에 헬레나는 배를 부여잡고 폭소를 하는 것과 같은 과장된 자세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 누가 보더라도 명백히 경감을 조롱하고 있었다.

“가...감히 이 나를 조롱하다니!”

경감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도 그녀는 여전히 깔깔 웃어댈 뿐이었다. 간신히 웃음을 그치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는 것과 같은 동작을 취한 헬레나는 여전히 여유 넘치는 자세로 말했다.

“아하하, 거기에 정말로 시에라의 눈물이 있단 말이지요? 돌이 아니라?”

“뭐, 돌?”

드레븐 경감은 잠시 당황해하다가 곧 그녀가 일종의 심리 전술을 쓴다고 판단했다.
아마 자신이 급히 모자 안의 보석을 꺼내 확인하려는 순간 알 수 없는 기괴한 수법으로 훔쳐낼 것이다.
드레븐 경감은 자신의 뛰어난 머리에 또 한 번 감탄하며 코웃음을 쳤다.

“그 무슨 헛소리냐! 이 상황에서 그런 웃기지도 않은 농담이라니?”

조명 속에서 창백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헬레나는 입 부분에 해당하는 곳을 살짝 가리며 쿡쿡 웃어댔다.

“전 웃기네요. 아, 미안합니다. 그리고 농담이 아니라 사실을 말해주는 데 왜 그렇게 화만 내시나요?”

정중한 존댓말이지만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속을 박박 긁어 대는 효과를 멋들어지게 발휘하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모욕시키고 화를 높이는 데에는 반말보다는 저런 특유의 예의를 차리는 존댓말이 더 탁월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드레븐 경감은 당장이라도 마취탄을 발포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싶어서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경찰 체포 규정법과 묘하게 대중의 인기와 지지를 얻고 있다는 사실 두 가지가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강경 진압을 했다가 자칫 파직이 될 수도 있을 판국이었다. 더군다나 시청률에만 관심 있는 저 탐욕스러운 방송국 녀석들!
드레븐 경감이 온갖 생각을 하는 동안 헬레나는 마치 관객들에게 갈채를 받고 그 답례 인사를 하는 연극 배우의 자세를 취하는 가 싶더니 품 안에서 거의 주먹만 한 크기의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아무리 먼 거리에 있다고는 해도 두 눈이 제대로 박힌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푸른 광채를 번쩍이며 아름다운 결정으로 이루어진 보석.

“시...시에라의 눈물!”

드레븐 경감은 사람이 어떻게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일그러지더니 곧 모자를 벗고는 미친 듯이 뒤졌다.

“아니야, 아니야...헉!”

천 아래 나타난 물건은 기대하던 시에라의 보물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흔하게 굴러다니는 단단한 돌 덩어리였다.

“으아아악! 이건 말도 안 돼!”

정말 말도 안 돼는 일을 바로 눈앞에서 목도한 드레븐 경감은 패닉을 일으키며 미치광이처럼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헬레나는 그런 모습을 아주 재밌다는 듯이 내려다보며 키스를 보내주는 것과 같은 동작을 취하더니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몸을 돌렸다.

“아하하, 그럼 다음에 다시 만나요! 모두들, 즐거운 하루가 되기를!”

경이로운 점프력으로 바로 옆의 건물로 몸을 날린 그녀는 별 다른 충격 없이 가볍게 착지하더니 순식간에 건물과 건물 사이를 날렵하게 뛰어다니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마...막아라!”

누군가가 급히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신호로 요란한 총성이 무수한 마취탄을 쏘아내며 그녀를 노렸지만 그 누구도 맞추지 못했다.
바닥에 주저앉은 드레븐 경감은 침을 질질 흘리며 연신 중얼거리고 있었다.

“말도 안 돼...이건 말도 안 돼...”

그 불운한 경감이 제 정신을 차리는 데에는 꼬박 13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달빛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 자신이 조금 전 벌인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있었다. 기분 좋은 만족감이 온 몸으로 스며들었다.

“휴, 오늘도 손쉽게 끝냈네. 그런 간단한 수법에 속을 줄은....호호!”

경찰의 포위망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범행 현장에서 최대한 멀리 달려온 그녀는 잠시간의 휴식 시간을 가지면서 숨과 육체를 달랬다.

“자, 그럼....”

이제 슬슬 집에 가서 따뜻한 우유나 한 잔하고 잠이나 푹 자고 싶은 심정이었다.
스릴이 넘치는 한밤의 모험은 언제나 유쾌했지만 그만큼 피곤을 안겨다주기도 했다.

“어쨌거나 완벽한 계획이었어, 호호!”

“흠, 별로 완벽한 것 같지는 않은 데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의 등 뒤로 쾌활한 어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등 뒤에서 의문의 목소리, 그것도 남성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오자 그녀의 표정은 대번에 딱딱하게 굳어지며 잔뜩 경계의 자세를 취했다.
여차하면 바로 그 의문의 사내를 습격하거나, 또는 연막탄을 던지고 도주하려던 찰나 그 남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낭랑하게 계속되고 있었다.

“아, 뭐 그렇게 경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전 경찰은 절대 아니고 그저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싶을 뿐이지요.”

헬레나가 몸을 돌렸을 때 그녀의 눈앞에는 실크햇(탑 퍼)에 외눈 안경을 왼쪽 눈에 끼고 검은 신사복을 입은 채 등에는 검은 망토까지 휘날리는 한 남자가 미소를 머금은 채 서있었다.
여유롭게 단장을 짚은 채 서있는 그의 얼굴은 뛰어난 미남자의 면모를 가지면서도 불분명한 날카로움을 그 부드러움 안에 감추고 있었다.
잠시 놀란 표정으로 그 정체불명의 남자의 아래위를 훝어 보던 헬레나는 노골적으로 그런 그를 비웃었다.

“역사적 위인 아르센 뤼팽님을 아주 뻔뻔하게 베꼈군. 별로 놀랍지도 않아.”

그 말에 그 남자는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위인? 위인이란 말이지요? 아하, 이거 참....”

그 영문을 알 수 없는 중얼거림에 헬레나는 짜증이 치밀어 오름을 느끼며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이봐요, 대체 무슨 용건인지는 몰라도 속 시원히 밝히는 게 어때요?”

말해놓고 그녀는 깜짝 놀랐다. 왜 자신이 저 남자에게 존댓말을 쓴 것일까?

“아, 실례했습니다. 우선적으로 당신의 계획은 실패했습니다. 지금 그대로 제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지는 않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후회하실 겁니다.”

헬레나는 눈에 띄게 당황해하다가 매섭게 그를 노려보며 딱딱한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무...무슨! 대체 당신 누구죠? 아니, 그것보다 내 계획이 실패했다니!”

“오, 으음...일단 아르센 뤼팽이라고 해두죠. 하여간 실패했습니다. 당신의 계획은...위험한 면이 좀 있기는 했지만 성공은 했습니다.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리고 그 경찰들에게 자신만만하게 보여주었던 시에라의 눈물은 미리 준비한 가짜라는 것을 확신합니다만...”

“그..그걸 어떻게?”

헬레나는 입을 살짝 벌리더니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녀의 육체는 어느새 재빠르게 도망칠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자칭 뤼팽이라는 남자는 잠시 그런 그녀의 모습을 미소와 함께 쳐다보더니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이건 가설이지만 당신은 경찰들 안에 부하 몇 명을, 아니면 그저 하나만을 투입했을 겁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드레븐 경감이 보석을 모자 안에 감추고 당신이 훔치러 나타날 때에 모자를 쓴다는 약간은 이상한 계책을 미리 알아낸 당신은 부하를 시켜 보석과 돌을 바꿔치기했군요. 아마 당신이 나타나기 불과 수십 분 전에 수작을 부렸으리라 생각됩니다만...”

그녀는 입만을 굳게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헬레나는 약간은 멍한 얼굴로 대체 어떻게 그 모든 것을 알았지 라는 생각만을 할 뿐이었다.
뤼팽은 그런 그녀의 모든 것을 살짝 살피다가 만족한 미소로 다시 말했다.

“상당히 위험한 면모가 강한...좀 아슬아슬한 계획이었습니다. 사실 이건 사람의 심리적 면모를 노린 것이 강하군요. 모자를 건네받은 순간 경감이 보석을 존재 유무를 확인할 가능성을 대비해 그가 모자를 건네받는 타이밍을 노려 건물 꼭대기에 떡하니 나타난 것이지요. 누군가 신호를 보냈나요? 아니면 정교한 기계 장치를 썼나요? 뭐, 상관은 없습니다. 아마 그 경감은 모자를 건네받은 순간 모자 안을 좀더 자세히 확인할 마음이 분명 있었음에 틀림이 없었겠지만....당신의 계획대로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오직 당신을 잡아야겠다는 증오심에 불타는 그 경감은 확인 같은 건 뒷전으로 미루고 모자를 머리에 쓴 다음 당신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지요. 뭐,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방법입니다.”

그녀는 그저 자리에 드러눕고 온갖 욕을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체 저 망할 자식이 어떻게 그 모든 것을 알아낸 것이지?

“이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어떻게 드레븐 경감이 준비한 그...정말 이상한 계책을 미리 알 수 있었는지가 마음에 걸리더군요. 물론 그 해답은 금방 떠올랐습니다.”

오, 신이시여. 설마하니 그것까지!

“당신의 표면적인 직업은 경찰이었군요. 흠, 그러고 보면 그 부하 가설도 수정해야겠습니다. 보석을 바꿔치기한 것은 당신이 직접 했을 수 있으니까요. 아, 그리고 보석은...물론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가짜가 아닌 진짜는 당신만이 아는 장소에 숨겨놓고 나중에 몰래 빼돌릴 계획이 아니었나 싶은데...그렇지 않나요?”

완벽하게 맞춘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대부분 일치한 것이나 다름없는 그 놀라운 폭로 앞에 그녀는 이제는 공포의 범주를 넘어서 절대적 존재에서나 느낄 것 같은 체념의 감정으로 서있을 뿐이었다.
놀랍도록 정신이 맑아진 헬레나였지만 그와는 별개로 몸은 심하게 떨고 있었다.

“다...당신은 대체 누구죠?”

그 남자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이미 말했지 않았소? 아르센 뤼팽이라고....”

“아, 네네. 당연히 그러시겠지요. 정체를 밝히고 싶지 않으신 분, 그러면 이제 어떡하실 작정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절 체포하러 온 것 같지는 않고....”

뤼팽은 능글맞게 웃으며 턱을 한 손으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 누가 보더라도 깊은 고민에 빠진 동작을 취했지만 역시나 진심은 느껴지지 않는 거짓된 모습이었다.

“저도 그걸 궁금해 하던 차였습니다.”

그녀는 허리에 두 손을 짚고는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살짝 인상을 쓰며 그를 노려보았다.
조롱당하는 것도 한 두 번이었다.

“정말요?”

냉기가 뚝뚝 흐르는 것 같은 그 목소리에 아르센 뤼팽은 장난을 하려다가 들킨 아이 마냥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오, 실례! 역시 당신은 뛰어난 숙녀 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죠! 먼저 당신이 숨겨둔 이 시에라의 눈물은 이미 제가 챙긴 바입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가짜는 그냥 아무 곳에나 던져버리세요!”

“그럴 거라 생각했어요. 쳇!”

“오, 너무 그렇게 토라지시다니! 그리고 제가 당신의 눈앞에 나타나 이 모든 이야기를 해준 이유는....”

그 순간 헬레나는 뤼팽이라고 사기를 치는 남자의 눈동자가 그 어떤 이보다 진지하게 빛을 발하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질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 터져 나오는 감정의 발산은 그 누구보다 순수했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이 남자가 자신을 진심으로 아르센 뤼팽이라는 존재로 믿고 있음을.

“앞으로도 멋진 활약을 선보여주기를 바라는 일종의 격려라고나 할까요? 충고이자 조언이기도 합니다. 너무 과도한 퍼포먼스적 행위에 집착하는 것도 그렇게 좋지는 않아요.”

헬레나는 혀를 차며 근본 자체가 완전히 맛이 가버린 이 불쌍한 남자를 동정하며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이제 슬슬 가봐야겠군요! 아름다운 미녀 분과의 저녁 식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네, 네. 충고 고맙습니다, 대선배님.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헬레나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자 아르센 뤼팽은 윙크를 날렸고 그 순간 공기가 파열되는 거친 소음과 함께 그는 검은 망톨르 펄럭이며 공중으로 순식간에 도약하고 있었다.

“마...맙소사!”

그녀는 입만 딱 벌린 채 자신의 상식을 뒤엎는 그 광경에 경악의 고함을 토해냈다.
자신도 일반인보다 우월한 육체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자부심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었지만 저 능력은 실로 차원이 달랐다.
저건 아무리 육체를 극한까지 단련을 하더라도 불가능한 솜씨였다.
한 손으로는 모자를 붙잡은 채, 그리고 한 손으로는 여전히 지팡이를 붙은 채로 왠만한 10층 빌딩 하나를 단번에 뛰어넘을 기세의 도약을 펼친 그는 가볍게 저 멀리 존재하는 건물의 옥상에 착지하다니!

“서...설마 정말로 아르센 뤼팽?”

아주 잠시나마 그런 허황된 생각을 해본 그녀는 곧 바보 같은 자신을 자책하며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금 자신이 본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미 아르센 뤼팽이라는 역사적 존재는 그의 영원한 적수 셜록 홈즈와 함께 상상도 할 수 없는 광대한 시공간의 흐름 속에 파묻혀 머나 먼 과거의 어느 때에 사라졌다.
스스로 납득할만한 해답을 몇 번이고 생각하던 괴도 헬레나는 구름 속에 가려지면서 서서히 옅어져가는 달빛에 잠시 바라보다가 빠르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달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그녀 또한 붉은 흔적 하나만을 남기며 완전히 도시의 그림자 너머로 그 자취를 감춰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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