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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구멍

2009.11.12 20:5111.12

세상에 하나의 질병이 생겼습니다. 아니 나타났습니다.
몸에 구멍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피도 흐르지 않고 뼈마저 뚫리게 된답니다.
원인은 불명
어떤 사람은 운 좋게도 손이나 발에만 구멍이 나곤 살아남았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죽음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저는 언젠가 인터넷 기사를 통해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사람의 사진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사람은 손바닥에 생긴 두 개의 구멍을 통해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진 속 매끈한 구멍을 보며 저는 제가 누워있는 침대를 떠올렸습니다. 제 침대는 아버지께서 홍수에 쓰러진 은행나무로 만들어주신 것이었는데 그 나무에 벌레들이 만든 구멍이 수십 개 있었습니다.  남자의 구멍과 그 구멍과 비슷하다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제가 그것을 너무나도 징그러워했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세상은 이 질병으로 시끄러워 졌지만 저는 그것을 실감할 수 없었습니다. 반드시 죽는다고 알려진 에이즈라는 난치병이 있다고 해도 막상 주변에서는 볼 수 없기에 실감하기 어려운 것처럼 그 질병 역시 딴 세상의 일로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건 어리석은 인식이었습니다.

그날 아침 전 평상시처럼 이불을 휘감고 선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부르다 부르다 결국 화를 내시며 제 방에 들어와 어깨를 흔드시거나 엉덩이를 때리시곤 했는데 그때까지 조금 더 침대에 누워있고 싶었습니다. 신경이 예민한 저는 가끔 귀에 들려오는 이명이나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에 잠을 못 이루곤 했는데 전날 밤에도 그런 소리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그랬던 것이지요. 그런데 발이 이상했습니다. 그건 평상시에는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습니다.
서늘했습니다.
발을 내놓고 자서 그런가 싶어 이불 안으로 발을 끌어들여도 그 서늘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침대에서 내려서 두발로 서고서야 그 서늘함이 무언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발등에는 직경이 1cm도 안 되는 작은 구멍으로 찬바람이 드나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구멍은 살갗과 발등에 있는 뼈를 꿰뚫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소리를 지르는 저 때문에 방에 들어오셨고 마침 일을 나가시던 아버지도 들어오셨습니다. 동생은 잠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며 제 방에 들어왔고 발등을 감싸며 울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며 뭔지도 모르고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그날 병원으로 가는 아버지의 차에서 떨리는 작은 손으로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흐느낌처럼 되뇌던 어머니의 말씀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괜찮아. 낫는 사람도 있다고 했어."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두 번째 구멍은 무릎에 생겼습니다. 그 구멍은 슬개골부터 연골까지 수직으로 나 있었고 그 다음부터 저는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다시 눈물을 보이셨고 아버지는 우는 대신 일을 하러 가셨습니다. 각종 검사에 드는 비용은 제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비싼 것이었습니다. 어쩌다 한번 들리신 아버지의 얼굴은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슬픈 일이었습니다.
병이 더 퍼져나가는데도 발병의 원인은커녕 전염인지 아닌지 여부조차 규명하지 못해 정부에서 개입하기 전까지 아버지의 체중은 40kg까지 착실하게 빠져갔습니다.
그 사이에 제 몸에는 구멍이 다섯 개나 더 생겼습니다. 가슴에 세 개 어깨에 하나, 나머지 하나는 뺨이었습니다. 차근차근 구멍이 위로 올라오는 것이 병이 더 심해지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어떤 심정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저는 차라리 예전보다는 다행이라고 부모님께 말했다고 합니다. 정부에서는 몸에 구멍이 일곱 개나 있는 환자는 극히 드물다며 저를 연구기관으로 옮겨줬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적어도 병원비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걱정을 덜었으니까요.

세상 사람들이 이런 불행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 정도는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돈이 된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 저는 제 이야기를 글로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손에는 구멍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글쓰는 행동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말도 안 되는 글재주에 과격하거나 달관하거나 일관성 없는 이런 글은 최악이었건만 오히려 그런 점이 팔리기에는 좋았는지 모릅니다.
돈은 병자인 제게는 의미가 없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누군가 돈으로 행복을 사지는 못한다고 했지만 적어도 피폐한 부모님과 동생에게 기댈 자리를 줄 수 있는 것은 주변 사람의 위로보다 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것으로 얻던 안도도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얼굴에 구멍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는 기억할 수 없습니다. 구멍은 뇌의 일부를 갉아먹었고 저는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비명이나 영문 모를 소리를 지껄이곤 했답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정신을 차린 것은 두 번째 구멍 때문이었습니다.
의사선생이 간단히 말하기를 망가진 부분을 인식하는 부분까지 망가졌다고 그러셨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대충 알았지만 저는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몸을 가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억을 관장하는 부분도 같이 망가졌다고 하였는데 그래서인지 제 기억에는 생소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안정이 됐다고 병실에 돌아왔을 때 거울을 보며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새로 생긴 구멍을 포함한 여섯 개의 상처 자국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며 세어보다 한쪽 눈으로는 반대편 얼굴을 제대로 만지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는 거울을 집어던져버렸습니다. 못생겼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그때 제 얼굴은 그 어떤 것보다 구토를 자아내는 얼굴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슬퍼서 눈물이 났고 아파서 신음이 새어나왔습니다. 뇌에는 통각이 없다고 했는데 왜 그렇게 아팠는지 모르겠습니다.

살아남았지만 저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또 하나의 구멍이 생겨 그것이 이 미묘한 균형을 깨트린다면 저는 다른 환자들이 그런 것처럼 죽어버릴 것입니다. 불 위에서 외줄타기를 하는듯한 심정으로 살아가는 지금의 제 옆에는 항상 한명의 의사가 새치름히 앉아있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울면서 치료를 거부하다 진정제를 맞고 잠에 든 저는 일어나기 전에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에도 그 소리는 들려왔고 그 다음날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흐느적거리는 글씨로 묻자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간호사에게 MRI를 준비 시켰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더 손상된 부분은 없지만 인지장애가 발생하는 것 같다며 내일 검사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막연히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검사가 끝난 다음 날에도 약기운에 취해 몽롱한 정신으로 누워있는데 또 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건 환청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도 아니었습니다.
벌레가 나무를 갉는 듯한 사각거리는 그 소리는

제 귀 속에서 울리고 있었습니다.

이게 마지막 구멍이 되겠다는 생각에 저는 웃었습니다.


사망진단서
(시체검안서)

1. 성명 : 김XX                2. 성별 : 남                 3. 주민등록번호 : 87XXXX-XXXXXXX

(이하 중략)

10. 사망 원인 : (가) 측두엽 손상
                       (나) 불명

여기까지 쓴 의사는 펜을 내려놓았다.
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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