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장수생의 전업

2009.07.15 23:3707.15

<< 장수생의 전업 >>

크리스마스 이브가 왔다. 원룸 생활을 하는 고시생 영철은 늦게까지 TV를 보며 빈둥대다가 잠들기 직전에 장난삼아 양말을 걸어 두었다. 아니, 양말을 걸어 두었다기 보다는 벗어서 대충 던져둔다는 것이 의자에 걸려 마치 일부러 걸어 둔 형태가 되었다. 영철은 그 모습을 보고 치우지 않고 그냥 잠에 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다시 양말을 신기 위해 의자 위를 바라본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양말이 뭔가가 들어 있는 것처럼 불룩했기 때문이었다.
‘무얼까?’
잠깐 생각했다. 혹시 옆 원룸 친구가 장난을 친 건가? 아니 그럴 리는 없다. 그 친구는 어젯밤에 여자 친구와 여행을 간다고 했고 그 기간은 2박 3일이었다. 그 외에는 주변에 영철에게 장난을 칠 만한 친한 사람은 없다. 학원에는 여럿 있지만 이 원룸 건물에는 확실히 없다. 옮긴지 한 두 달 밖에는 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뭐 어떻든……’
그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면서 양말을 집어 들었다. 어제 저녁때 잠깐 신은 양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계속 외출할 때 신을 계획으로 있는 양말이었다. 보통 이런 고시촌 사람들은 양말을 며칠씩 신는 것이 기본인 것을 감안하면 거의 새로 빤 것과 다름없는 매우 깨끗한 A급의 양말이 아닌가 싶었다.


이제 크리스마스이다. 시계를 보니 오전 9시, 고시생의 신분에 나름대로 충실해야 하는 것이라면 크리스마스이브이건 당일이건‘여자친구’를 만나는 일 따위는 없는 것이 정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현재 그는 그렇지 않았다. 사실상 매일 만나고 있는 애인이 있었다. 물론 며칠에 한 번씩 잠자리를 함께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이다. 중소기업 사장의 둘째 딸이라고 한다.
영철 주변의 친구들도 대부분 그와 비슷한 부류였다. 11수째…… 새해면 32세가 되는 그는 22세때부터 고시를 치기 시작했으나 올해로 11수가 되는 셈이었고 공익근무를 다녀온 기간을 제외한 고시촌 생활은 6년째였다.
무엇이 들어 있을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는 양말을 거꾸로 들고 탈탈 털어서 속의 내용물을 꺼내었다.
“앗!”
순간 영철은 제법 큰 목소리로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그 속에서 나온 것은 원통형의 나무 막대기였는데 앞부분에 부러진 쇠꼬챙이 같은 것이 끼워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마치 작은 호미 자루 같았다.
‘이게 뭐야?’
그는 코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주저 없이 방구석에 박아둔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그것을 휙 던져 넣었다. 골인이었다.
이제 밖으로 나가서 단골 식당에서 아침밥을 사 먹고 PC방으로 향하는 일과를 시작해야 할 참이었다. 그러면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바로 그것…… 그의 눈이 책상 옆 책꽂이 난간에 가서 멈추었다. 항상 지갑을 얹어 두는 곳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그것은 없었다.
“어라?”
그는 고개를 한 번 갸우뚱 하고는 어제 입었던 파카와 바지 등의 주머니를 깡그리 뒤졌다. 그리고 책상 서랍과 방구석 구석을 싹 훑어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는 것은 먼지 이외엔 없었다.
‘일단 집에 전화를 해야지.’
그는 생각했다. 지갑이 없어졌다는 것은 그 안의 현금 카드와 신용카드가 함께 사라졌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휴대폰도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지갑을 찾느라 방금 옷과 방구석을 한참 뒤졌을 때 휴대폰도 역시 보이지 않았다.
“제기랄……”
그는 욕설을 내뱉었다. 때마침 돈을 당장 빌릴 만한 곳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곳에 차를 가지고 오는 건데…… 아니, 원래 지내던 원룸이 주차 문제 때문에 차를 가지고 올 수 없었기 때문에 이곳으로 옮긴 것이었는데, 그가 평소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습관이 되다 보니 어영부영 차를 갖다 두지 않은 것이 이 일의 화근 같았다. 하긴, 뭐 택시비 정도라면 주인에게 이야기 하면 될 것이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옷을 챙겨 입고 1층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때마침 카운터의 주인은 부재중이었다.
‘되는 일이 없군.’
그는 생각하며 건물 앞에 있는 공중전화를 향해 걸어 나갔다. 요즘은 콜렉트콜이 있기 때문에 돈이 없더라도 전화가 가능하다. 전화를 하면 일단 지갑 잃어버린 사실을 이야기 하고 지금 집에 간다고 말을 해두어야 한다. 자칫 집에 아무도 없으면 집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자신으로선 난감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워낙에 집에 잘 들어가지 않다 보니까 집 열쇠도 따로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의사, 어머니는 편의점 사장이다. 제법 잘 사는 집에는 틀림없지만 월 수백만원은 쓰는 자신의 용돈과 미국에서 몇 년간 유학하고 돌아와서 빈둥거리고 있는 큰 여동생의 용돈, 그리고 현재 바이올린 한답시고 유학 가 있는 작은 여동생이 가져가는 천문학적인 돈까지 감당하려면 그 정도 벌이로도 빠듯한 실정이었다.
그런데…… 막 전화를 하려던 그는 이상하게 집 전화번호 뒷자리가 생각나지 않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이래?’
그는 손을 들어 스스로 머리를 탁탁 쳤다. 하지만 여전히 기억나지 않았다.
“아 젠장.”
그는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원룸 빌딩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카운터는 비어 있었다. 카운터에 있는 장부에는 집 전화번호가 정확하게 적혀 있을 텐데 말이었다.
‘뭐 일단 방으로 돌아가야지.’
그리고 그는 열쇠를 찾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다. 비록 집 열쇠는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자신의 원룸 열쇠는 가장 깊숙한 주머니에 VIP처럼 모셔져 있…… 지 않았다.
‘어?’
정말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정도면 정말이지 일진이 안좋은 범위를 벗어나서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슬슬 배가 고팠다. 여기서 무턱대고 서 있을게 아니라 식당으로 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는 외상으로 몇 끼 정도는 아무런 이의 없이 무상으로 제공받을만한 단골이었으니까 그냥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몇 걸음도 안가서 그는 다시 다른 문제가 발생했음을 깨달았다. 식당이 오른쪽에 있었나 왼쪽에 있었나 생각나지 않았다. 순간 그의 뇌리를 번쩍 하고 스쳐지나가는 단어하나가 있었다.
‘기억상실증?’
그럴 리가 없다. 혹시나 해서 자신의 이름부터 떠올려 보았다. 그러니까 김영…… 수? 석? 구? 휘? 마? 천? 뷁?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완전한 자신의 이름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럼 살던 동네는? 역시 떠오르지 않았다. 부모님은? 여동생들은? 애인 이름은?
“아악!”
그는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단 말인가…… 그동안 너무 공부를, 아니 게임을 많이 해서 뇌에 탈이 난 건가? 아니면 설마…… 설마 말도 안되지만 여자 친구와의 과도한 섹스 때문에 부작용이?
그때였다.
“안녕.”
문득 등 뒤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한 여인이 서 있었는데 보통 키에 긴 머리카락을 가졌으며 나이를 종잡기 힘든 외모였다. 얼핏 보면 10대 후반으로 보이게도 했지만 풍기는 기운이나 복장, 그리고 얼굴을 어떤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서는 30대 중반 이상의 미시족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적어도 영철 자신보다는 네댓살은 많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누구시죠?”
“날 따라 오겠니?”
그녀는 초면임에도 반말투로 말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런 말투에도 불구하고 영철의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아주 당연하게 느껴졌다.
“어디로 가는데요?”
“네 집을 찾으러.”
“집을 찾는다니요?”
“네 집은 어디지?”
“글세 그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저히 기억나지 않아요.”
“안타깝지만 너희 집에 ‘그’가 왔다 갔어.”
“‘그’라뇨?”
“네 식구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잊혀졌지. 물론 외국에 나가 있던 동생도 사라졌다. 너 또한 잊혀진 존재야. 다만 그가 실수로 너를 깜빡 남겨두었을 뿐이지.”
“무, 무슨 뜻이죠?”
“지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이유를 잘 생각해 봐.”
“으음……”
영철은 낮게 신음했다. 생각나지 않는 이유를 자신이 어떻게 알겠는가?
“물론 당연히 넌 그 이유를 모르겠지. 이유는 없어. 한데 너희 집이 목조로 된 건물이었다는 사실은 생각나겠지?”
“아…… 예, 그래요. 어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버지 독특한 취향 때문에 목조로 된 별장 같은 곳이었어요. 큰 집들이 모인 굉장히 부자들만 살던 동네였던 것 같은데…… 도심은 아니었지만요.”
“그래, 그 이유야. 이유는 그것뿐이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 잘…… 뭐 일단 지금은 골치아프니까 그렇다고 치죠. 아무튼 그럼 이제 어떡하나요?”
“날 따라 가겠니?”
“어디로요? 혹시 집을 찾으러?”
“그래.”
“집을 어떻게 찾죠?”
그러자 그녀는 손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멀리 동네의 뒷산을 가리켰다.
“여기서 걸어가기엔 좀 멀어 보이겠지만 이제부터 저 산으로 간다. 걸어서. 물론 네 집을 찾으려면 아주 운이 좋아야 하겠지만 말이야.”
“저 산으로?”
영철은 잠시 생각했다. 어차피 이곳에 우두커니 서 있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주인이 온다면? 원룸 주인이 온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그때였다.
“어떤 일로 오셨나요?”
문득 원룸 주인이 카운터 뒤 쪽문을 열고 등장하며 영철을 향해 물었다. 그는 영철과 옆의 여인을 한 번씩 쳐다보았다.
“아저씨 저 모르겠어요?”
영철이 반색하며 말하자 주인은 빛나는 대머리를 긁적였다.
“글쎄요.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그, 그건……”
“워낙에 오가는 손님들이 많아서 제가 일일이 다 기억하지 못한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건물에 지내고 있는데요 모르세요?”
“몇호실에요?”
“그, 그게……”
“몇층에요?”
“그, 그것도……”
“저는 여러분이 무슨 일로 여기 왔냐고 물었는데 왜 대답이 없으십니까?”
주인의 말투는 정중했지만 조금 귀찮은듯한 짜증이 섞여 있었다.
정말로 난감했다. 영철은 도움을 구하듯 옆의 여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여인은 무표정인 채로 가벼운 고개짓을 하며 앞장서서 원룸 건물을 나갔다. 영철은 주인에게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고는 여인을 따라 건물을 나왔다.
“제 이름이 뭔가요? 당신은 알고 있죠?”
그가 화풀이하듯 여인을 향해 물었다.
“철이.”
여인이 짧게 대꾸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 이름을 대어 봐야 아무도 널 모를거야.”
“당신 이름은요?”
“수영.”
“이제 어떻게 하나요?”
“여러 차례 말했다시피 집을 찾으러 가야지. 난 널 도우러 온 거니까.”
“당신을 어떻게 믿죠? 이 모든 사건들이 당신이 꾸민 음모라면?”
“그럼 답은 한가지뿐이군.”
“뭐죠?”
“난 여기서 사라지고 넌 노숙자 수용소로 가거나 정신병자 수용소로 가는 거다. 또는 밀입국자 수용소로 갈 수도 있겠지. 한국말조차 잊어버릴지 모르니 말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언제 널 찾아 돌아올지 모르니 네 운명은 여기서 끝이라고 보는 편이 가장 쉬운 답이 될 수 있겠군.”
“으  으음.”
순간 영철은 별안간 울컥하는 감정과 함께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이런 심한 고통을 당하면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잣집 독자로 태어난 그는 갓난아이때부터 지금까지 마치 왕자와도 같은 삶을 살아왔다. 공익 근무로 군생활을 대체할 때에도 ‘빽’의 힘으로 전혀 나름같은 어려움은 커녕 매우 편하게 제대했다. 항상 무엇이든 그가 원하는 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 자리에 없었다. 수영이라는 여인이 말했다.
“선택은 네가 한다.”
“가요.”
영철은 눈물을 작게 훔치면서 말했다. 마치 그 모습과 말투는 철없는 초등학생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요. 가.”
“그래.”
수영은 돌아서더니 앞장서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영철 또한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얼마를 가지 않았을 때였다. 문득 저 멀리 누군가 남녀 둘이 나란히 걸어서 자신이 지내던 원룸 빌딩을 향해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2박 3일간 놀러 간다고 했던 옆방 친구와 그 애인이었다. 무슨 일에서인지 일찍 돌아 온 모양이었다.
“어, 민……”
영철이 머뭇거렸다. 왜냐하면 친구의 이름은 민수였지만 그로서는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냥 외쳤다.
“야!”
그때 수영이 재빠르게 말했다.
“가자. 쟤들은 널 몰라.”
“아니요. 확인은 해 봐야죠.”
둘이 실랑이를 잠깐 벌리는 찰나 영철의 친구였던 민수는 잠깐 영철을 돌아보는 듯 했으나 이내 옆에 선 여자 친구와 희희낙락거리며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야! 니들 이쪽 좀 봐! 나 몰라?”
영철이 외쳤다. 수영이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냥 가자. 여기서 지체해서는 안돼.”
하지만 영철은 돌아서서 걸어가고 있는 민수의 어깨를 붙잡았다.
“날 모르냐고?”
“누구야?”
민수는 굉장히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아침부터 시비야?”
“아저씨는 누구세요? 왜그래요?”
민수의 여자친구 또한 민수와 함께 영철을 쏘아 붙였다.
“나야, 나라고!”
영철이 외쳤다.
“그러니까 네가 누구냐고?”
“아 진짜 짜증나네.”
민수와 여자친구는 한마디씩 던지고는 홱 돌아서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포기해.”
영철의 등 뒤에서 수영이 말했다.
“그럴 수 없어요.”
영철은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날 모를 리가 없어.”
“그만둬. 얼른 날 따라 가지 않으면 큰 봉변을 당할 거다.”
“난 저 녀석이 날 알아볼 수 있나 없나 제대로 확인을 해야 겠어요.”
“휴……”
수영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넌 정말 한심하구나. 아직도 지금 네 입장이 어떤지 파악이 되지 않니?”
“난 그런 거 몰라요.”
그리고 영철은 씩씩대며 한참 멀어진 민수를 향해 맹렬히 뛰어갔다. 수영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잠시 서 있다가 고개를 한 번 저은 후 어디론가 발길을 돌려 사라져 버렸다.
“야 날 좀 보라고!”
영철은 다시금 민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때였다.
퍽!
순간 불꽃이 번쩍 일며 영철은 그 자리에 고꾸라지며 쓰러졌다. 민수가 천천히 주먹을 내렸다.
“이 정신병자 새끼 또 따라 오면 죽여 버리겠어.”
그리고 다시금 여자 친구와 함께 걸어갔다. 영철은 잠시 동안 맞은 볼을 붙잡고 앉아 있다가 다시 벌떡 일어냐며 민수를 향해 뛰어 갔다.
“날 모르겠어 정말? 네 원룸 옆방에 있쟎아 왜?”
그가 달리며 외쳤다. 그러자 걸어가던 민수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내가 원룸에 사는 걸 어떻게 알았지?”
민수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넌 고시생이잖아. 3년인가 준비했고. 맞지?”
“이 새끼가 진짜…… 이제 보니까 스토커네.”
민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듯 인정사정없이 주먹을 날리며 영철을 구타했다.
“그만해, 민수씨 그만해!”
민수의 여자 친구가 비명을 지르고 주변에서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하나 둘 몰려들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돌연 느닷없는 강풍이 한 번 이는가 싶더니 일시적으로 영철을 구타하던 민수, 모여들던 사람들, 그리고 비명을 질러대던 민수의 여자친구가 얼어붙은 것처럼 멈추었다. 동시에 공중에서 뭔가 하얀 빛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뭔가가 맹렬한 속도로 날아와서 영철의 머리에 휙 꽂혔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모여 들던 사람들은 제갈길로 돌아서고 민수 또한 언제 화를 내었냐는 듯 여자 친구와 팔짱을 낀 채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철은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영철은 죽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일이 주어졌다. 그것은 돌을 깎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돌을 깎는다. 모난 돌을 둥그스레한 형태의 일정한 크기로 깎는 것이었다. 그 일이 전부였다. 다른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잡념도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오로지 일을 할 뿐이었다. 일 이외에 먹는것 배설하는 것, 잠자는 것 등, 어떠한 욕구 현상도 그의 몸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곳은 어두웠다. 암흑천지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깎을 돌은 붉그스레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모두 어둠이었다. 그가 한 개의 돌을 깎으면 새로운 돌이 등장했다. 그것이 등장하는 위치도 항상 일정했다. 그에게 현재 남아 있는 감각은 오로지 돌을 깎는데 필요한 양팔과 손, 그리고 한쪽 눈뿐이었다. 나머지 신체에서는 아무런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잘려 버린 것인지 마비된 것인지 어찌된 것인지를 알아볼 생각도, 시간도 나지 않았다. 오로지 일을 할 뿐이었다. 돌을 깎는데 쓰는 도구는 작은 호미 하나뿐이었으며 그 깎은 돌을 누가 가져가며 그것으로 무엇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물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끝>>

蘇昊

Giganoto Shin

2006. 2.16 초고

2009. 7. 15 수정
蘇昊
댓글 1
  • No Profile
    요한 09.07.21 11:08 댓글 수정 삭제
    너무 애매한데요? 발상이 좋은데 제대로 이끌어지지 못한것 같아요. 느닷없이 끝난것 같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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