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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Sink hole

2009.07.13 01:1107.13

Sink hole




  서울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은 아무런 징조도 없이 건물을 삼켜버렸다. 그 건물에 입주한 사업자들의 행방은 묘연하다. 구멍의 깊이는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 구멍의 깊이가 최소한 1km 정도 될 것이라 단언했다. 구멍은 깊이만 깊은 것이 아니라 너비 또한 넓다. 처음 구멍이 생겼을 때의 너비는 지름 306.3m로 측정되었다. 하지만 두 번째의 측정에서 구멍의 너비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두 번째의 측정에서 314.25m로 측정되었고, 가장 최근의 측정인 46번째 측정에서 367m로 측정되었다. 전문가들은 너비가 증가함에 따라 구멍의 깊이도 계속 늘어날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하지만 직접 구멍의 깊이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곧 정부는 산악인들과 지리학자들로 구성된 측정대를 구성, 가장 원시적이라 생각되는 방법을 동원했다. 하지만 이 방법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들의 안전을 책임질 안전기기가 없었고, 그들을 지하로 내려 보낼 로프도 없었다. 하지만 정부는 계획을 강행했다. 측정계획은 실패했고, 총 10명의 측정대원중 3명이 사망. 정부는 구멍 주위에 차단막을 설치, 구멍 반경 1km 이내에는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전문가들은 싱크홀(sink hole)이라는 현상으로 이 구멍이 생긴 이유를 설명했다.

  관리실은 조용했다. CCTV의 화면에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녹음하지 않는 편이 하드디스크의 용량을 적게 먹기 때문이다. 나는 CCTV 모니터를 본다. CCTV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잡히지 않고 있었다. 당연했다. 지금 이 빌딩의 1층에는 나 혼자 관리실의 의자에 쭈그려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아침과 낮의 빌딩과 비교해서 한 밤중의 빌딩은 조용하다. 이 고요함과 비견할 만한 것은 상어의 입가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상태일 것이다. 아니, 그 구멍 제일 아래에 있으면 더 고요하겠지. 갑작스럽게 나타난 서울의 거대한 구멍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집이 하룻밤 사이에 가라앉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물론 집보다 더 큰 몸집을 가진 빌딩의 주인들도 마찬가지다. 바로 어제 저녁에 빌딩주인 강 사장은 병원에 실려 갔다. 그 것은 강 사장의 본가가 폭삭 가라앉고 나서 처음이었다. 강 사장의 비서인 송 비서에 따르면 그 전화는 은행에서 걸려온 전화였는데, 그가 예금한 돈을 보상받지 못한다는 전화라고 했다. 그의 예금이 있던 은행도 강 사장의 본가와 마찬가지로 구멍 아래로 가라 앉아버렸었다. 아무튼 중요한 건 강 사장의 본가가 주저앉았다거나, 강 사장이 지나치게 흥분해 고혈압으로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 편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걱정될 뿐이다. 만약 이 빌딩이 하룻밤 새에, 아니 한 시간도 안 돼 폭삭하고 지하로 꺼져버리면 나는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이 자리를 어떻게 해서 구했는데. 이 일처럼 쉽고 페이가 좋은 일자리를 잃고 싶지는 않다. 다른 사람들, 특히 내 친구들은 빌딩 관리인이라는 직업을 무시하는 족속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 월급이 평균 350만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내가 일부러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처음 빌딩 관리인 자리를 구했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말했을 때, 페이가 얼마인지 말할 시간을 주지 않았을 뿐이다. 친구들은 아무리 취업대란이라지만 빌딩 관리인이 뭐냐 라든지, 늙은이처럼 관리실에서 처박혀 있으면 지겹지 않냐? 라고 퍼붓는 질문세례에 내가 대답할 시간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이 직업을 잃고 싶지 않았다. 페이가 센 것뿐만 아니라, 재미도 있기 때문이다. 비록 좁은 관리실에서 CCTV를 노려봐야하고, 두 시간마다 순찰을 돌고, CCTV에 잡상인들이 찍히면 내쫓는 일이지만, CCTV에 찍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재밌어서 참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청순가련한 미인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코를 파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해봐라. 그리고 그 미인이 평소에 마음에 두고 있던 사람이면 금상첨화다. 그 것으로 협박 아닌 협박으로 약속도 잡을 수도 있다. 물론 그 코딱지를 엘리베이터 거울에 묻히기는 하지만 그 걸 청소하는 건 내가 아니다. 청소부 아줌마들이지. 그리고 생각 외로 이 직업은 쉬는 시간이 많다. 주·야로 근무를 하는데 내가 근무하는 시간은 야간이다. 야간이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그 것처럼 좋은 것도 없다. 솔직히 친구들이랑 술 먹을 시간이 없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일하는 시간은 저녁 6시부터, 새벽 5시까지다. 관리실 의자에 기대서 라디오를 듣거나, 책을 읽거나, 몰래 가지고 온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다보면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그러나 내가 이 직업을 그만 둘 수 없는 이유는 강 사장의 딸인 지현 때문이다. 난 지현을 좋아한다. 우선 지현은 아름다웠다. 순전히 내 취향이지만,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과 머리카락 사이로 살짝 비쳐 보이는 쇄골은 정말 아름답다. 지현의 머리카락은 항상 빛이 났다. 그 것은 불빛에 비쳐 생긴 인공적인 빛이 아니라 머리카락 자체에서 발광하는 것 같았다. 물론 지현의 아름다운 머리카락과 쇄골 때문인 이유도 있지만, 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싸가지고 오는 도시락도 내 짝사랑의 이유다. 물론 나를 위해 도시락을 싸오는 것은 아니었다. 강 사장의 저녁식사로 도시락을 싸오고, 남은 자투리로 만든 반찬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했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빌딩 관리인이라는 일을 그만둘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존재도 있다. 아마, 처음 만난 것이 5년 전 첫 근무 때였다. 나는 지금 주간에 일하고 있는 김 아저씨에게 해야 할 일을 듣고 관리실에 앉아있었다. 아마 김 아저씨가 만든 빌딩 순찰 매뉴얼을 정독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매뉴얼이란 게 스프링 공책에 김 아저씨가 볼펜으로 직접 쓴 것이었는데, 악필로 된 글씨를 읽느라 아주 고생했었다. 매뉴얼의 내용은 간단했다. 순찰할 때의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었는데, 첫 번째가 주거층을 순찰할 때 발을 들고 순찰하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첫 번째 근무 날 그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빌어먹을. 그 때 나는 그 주의사항을 잊어버리고 평범하게 순찰을 돌고 있었다. 주거층인 12층에 올라온 순간 나는 누군가에게 뺨을 맞고 말았다. 그 때는 화가 나기보다는 황당했다. 얼굴을 알지 못하는 사람한테 뺨을 맞은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 뺨을 때린 건 여자아이였다. 크게 봐줘도 여고생이었다. 시끄러워요. 시끄럽다니. 도대체 뭐가 시끄럽다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여자아이는 내 얼굴을 노려보더니 손가락으로 발을 가리켰다. 시끄럽다고요. 좀 조용히 좀 다녀요. 귀가 떨어질 것 같아. 나는 그때 멍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욕을 다발로 먹고, 뺨을 맞다니. 나도 똑같이 뺨을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첫날부터 해고당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허리를 굽히며 사과를 했다. 빌어먹을 년. 그 생각을 하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관리실 데스크위에 놓여 있던 종이컵을 바닥에 내리쳤다. 유리컵도 아닌 종이컵이 깨질 리는 없었다. 나는 종이컵을 발로 밟아 찌그러뜨렸다.
  종이컵을 휴지통에 집어넣고 CCTV모니터 위에 올려둔 라디오를 켰다. 그러자 주파수가 맞춰져 있지 않았던지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음악이 나오는 주파수를 맞췄다. 음악은 요즘 유행하는 댄스곡이었다. 몸을 흔들고 싶다. 물론 관리실을 비롯한 일층은 나 혼자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어서서 춤을 출수도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내려올지도 몰랐기에 그런 행동을 하기는 힘들었다.
  빌딩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매일 다르다. 아니, 매일 다를 것이다. 내가 하루 종일 빌딩에서 처박혀 있지 않는 이상, 그들의 얼굴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매일 드나드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거의 매일 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빌딩주인 강 사장과, 퇴근하는 뒷모습의 김 아저씨, 매일 저녁마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오는 지현, 그리고 막 되먹은 그녀. 4명은 항상 내가 마주치는 사람들이다. 지현과 그녀는 동갑이다. 그리고 친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의 성격은 정말 다르다. 지현은 강 사장과 함께 집으로 가기 전에 나와 대화를 나눈다. 대화라기보다는 지현의 일방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반면에 그녀는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요만큼도 없다. 아마 그녀의 머릿속에는 나를 곤란에 빠트릴 생각밖에 없는 듯하다. 매일 저녁마다 나를 노려보는 그 눈빛은, 너무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꼭 나를 잡아먹을 것만 같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가끔 그녀는 지현과 함께 관리실에 들려, 나와 지현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지현과 나를 멀뚱히 바라보기만 한다. 그럴 때면 정말 부담스럽다.  

  강 사장은 출근하는 나를 붙잡고 말했다. 고혈압으로 쓰러진지 4일 만에 빌딩으로 나온 강 사장의 얼굴은 초췌했다. 4일 만에 퇴원해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 사장의 옆에는 지현이 그를 부축하며 서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지현이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알겠나? 그러니까 만약에 지하실이나, 빌딩 콘크리트에 조금이라도 틈새가 생기면 나한테 연락하란 말이야. 만약에 내가 없으면 송 비서한테 보고하면 되고.
  강 사장은 본가가 땅으로 푹하고 꺼진 이후 틈새에 대해 극심한 노이로제에 걸린 것 같았다. 노이로제라기보다는 트라우마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뭐, 상관없었다. 하지만 강 사장은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했던지 목을 손가락으로 긁으면서 말했다.
  잘못하다간 모가지야.  
  강 사장은 화가 나는 것을 극도로 참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강 사장은 그렇게 자신이 할 말만 하고 빌딩을 나갔다. 지현과 나는 다시 인사를 했다. 나는 미처 벗지 못한 모자를 벗고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했다. 관리실의 옷걸이에 모자를 걸어두고 재킷을 벗어 의자 뒤에 걸쳤다. 그리곤 캐비닛에 넣어둔 제복으로 갈아입었다. 제복이라고는 하지만 경찰 제복같이 멋진 것은 아니었다. 푸른 색 제복이었다. 이 제복을 볼 때마다 미묘한 감정이 생긴다. 기름때가 묻은 바지와 구겨진 셔츠가 신경 쓰였다. 아무래도 퇴근하면서 집에 가지고 가 세탁해야 되겠다. 나는 셔츠를 탁탁 털어서 조금이나마 구겨진 부분을 폈다. 의자에 앉아 가지고 온 가방에서 대여점에서 빌려온 만화책들과, 노트북을 꺼냈다. 뭐, 강 사장도 일찍 집으로 가는 것 같으니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미안하지만 라디오야, 오늘은 별로 쓸모가 없을 것 같구나.
  내가 노트북을 가지고 하는 일이란, 노트북에 다운로드해놓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일은 상당히 모험을 해야만 한다. 만약 입주민이 이런 나의 모습을 강 사장에게 항의한다면 그 때야말로 해고당할 수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입주민들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인간이다. 지금 시간이 여섯시가 조금 지났으니 조금 있다가 돌아올지 모르겠군. 나는 꺼냈던 노트북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오는걸 보고나서 영화나 봐야지. 나는 의자에 기대서 CCTV모니터를 응시했다. 엘리베이터에는 남자 한명이 타고 있었는데 그다지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꼭 자신이 잘생겼다고 착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게 CCTV를 보는 묘미라니까.
  잠깐, 그럼 저녁은 어떻게 해야 하나. 지현이 강 사장과 함께 나갔으니 오늘 빌딩으로 다시 오지는 않을 것이다. 거의 항상 지현이 싸다주는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웠는데 오늘은 그렇지 못할 것 같았다. 컵라면을 먹어야 하나? 아니면 짱개? 도시락을 생각하니 배가 고팠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7시 반까지는 기다려보기로 했다.
  CCTV는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을 비추고 있었다. 남학생 4명이 모여 있었다. 아마 담배를 나눠 피우고 있을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대로 놔두었다가는 강 사장에게 또 쪼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김 아저씨는 분명 내가 오기 전에 졸았을 것이 틀림없다. 졸지만 않고 있었다면 들어오지는 못했겠지. 귀찮아. 나는 비상계단 문을 열었다. 신기하다. 어떻게 이렇게 깊은 곳을 찾아내서 담배를 피우는 걸까. 빌딩 근처에는 남자 고등학교가 있어서 담배를 몰래 피우려는 남학생들이 많았다. 그 덕분에 강 사장 앞으로 공문이 날아왔고 그래서 나와 김 아저씨가 함께 쪼였었다. 문을 잠가버릴 수도 없고 말이야. 입주민들 중에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계단을 잠글 수도 없었다.
  이 새끼들아!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녀석들이 담배를 떨어뜨렸다. 다행스럽게도 얼굴이 그다지 험악한 자식들이 아니었다. 쉽게 내보낼 수 있겠지.
  너희들이냐.
  담뱃내가 계단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상당히 오랫동안 담배를 피운 모양이었는지 담배꽁초가 잔뜩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당황한 얼굴들이 아니었다. 내가 당황스러워졌다. 그 자식들 중 한명이 침을 이빨사이로 찍 뱉으며 말했다.
  아 진짜. 돛대였는데. 씹할.
  으, 의외로 말이 더럽네. 잘 못 걸린건가?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보이지 않으려고 그 자식들을 억지로 노려보았다. 갑자기 그 자식들의 표정이 날카로워 진 것 같았다.
  가자!
  그 자식이 말하자 나머지 패거리들이 한 마디씩 욕을 중얼거리며 일어나 나를 지나쳐갔다. 그 자식이 내 어깨를 치며 지나갔다. 어깨가 아팠다. 계단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나서 나는 겨우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허탈했다. 몸을 축 늘어뜨리고 그 자식들이 버린 담배꽁초들을 주웠다. 도대체 몇 갑을 피운 건지 알 수 없었다. 한 2갑 정도 피운 것 같았다. 이름이라도 봐 두고 학교에 알릴걸 그랬나. 담뱃재가 떨어져 계단이 더러웠다. 조금 있다 빗자루로 대충 쓸어야겠다. 담배꽁초들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닦았다. 손에 담배냄새가 뱄다.
  지루했다. 아직 그녀는 오지 않은 듯 했다. 나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순찰이나 돈 뒤에 라면이나 먹어야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에 휴대용 손전등과 열쇠꾸러미를 차고 관리실을 나섰다. 내가 순찰해야하는 곳은 빌딩 14층과 빌딩 주변까지였다. 빌딩은 모두 두 개의 출입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뒤쪽의 있는 출입구는 상당히 으슥한 곳이었던 지라, 손전등으로 비춰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순찰하면서 상업층인 10층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확인해야 했다. 만약 도둑이라도 들면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다. 결국 쪼이는 건 나였다. 아직 이르다면 이른 시간이라 빌딩에는 아직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도 나다. 순찰은 정말 지겹다. 그리고 가장 짜증나는 일이기도 하다. 관리인의 말을 씹고(!) 계속해서 빌딩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신경써야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11층부터 시작되는 주거층도 순찰해야한다. 이곳은 정말로 조심스레 순찰을 돌아야 한다. 만약 시끄럽게 소리를 내면서 순찰을 하다간 또 뺨을 맞을지도 몰랐다. 처음 뺨을 맞고  3~4번 더 뺨을 얻어맞았다. 문손잡이를 돌리는 미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다간 정말 해고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이 주거층에 사는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은 우습게도 그녀뿐이다. 순찰을 돌 때 주거층의 사람들을 본적은 지난 5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
  순찰의 마지막 코스는 지하실이다. 빌딩은 지하 3층까지 있는데 지하 이층까지는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3층은 따로 떨어진 지하실이다. 비상계단은 지하 삼층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에는 담뱃재들이 널려있었다. 나는 그제야 빗자루를 가지고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르겠다, 그냥 내일 해야지. 지하실은 잠겨 있었다. 나는 허리춤에 찬 열쇠꾸러미에서지하실 열쇠를 찾아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풍기는 먼지 냄새는 정말 끔찍했다. 지하실은 청소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지하실로 통하는 열쇠를 강 사장과 나, 김 아저씨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하실은 먼지가 모래처럼 쌓여있었다. 발을 한발작만 움직여도 족적이 찍히고 먼지가 날렸다. 나는 옷깃으로 코와 입을 막고 손전등으로 여기저기 비춰보았다. 당연히 아무 것도 없었, 아니 있었다. 틈새였다. 망할. 틈새로 가까이 다가가 바닥의 틈새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틈새가 벌어진지 상당히 오래된 듯했다. 왜 내가 이렇게 큰 틈새를 그동안 보지 못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틈새는 꽤 벌어져서 손가락이 들어갈 것만 같았다. 손가락을 집어넣어봤다. 차가운 바람이 새어나왔다. 이런 걸 말하라는 걸까. 그냥 시멘트로 발라버리고 그냥 넘어갈까. 강 사장한테 쪼이는 건 싫은데 말이야. 나는 틈새를 잠시 보고선 지하실을 나갔다.    
  걱정이랄까. 매일 나를 노려보고 지나갔던 게 오늘은 그러지 않으니까 불안해진다. 이건 걱정이 아니다. 단지 신경이 쓰일 뿐이다. 순찰을 돌고난 이후라서 그런지 피곤했다. 만약에 지금 잠이라도 잔다면 새벽에는 더 버티기 힘들어질 것이다. 우선 저녁이나 챙겨먹어야겠다. 데스크 서랍에서 라면 하나와 나무젓가락을 꺼냈다. 라면으로 저녁을 때우는 건 오랜만이었다. 만약 강 사장이 고혈압으로 쓰러지지만 않았다면 난 오늘도 지현이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맛있게 먹었겠지.
  전기 주전자에서 뜨거운 물을 라면에 붓고 기다리는데 관리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지현을 빼고는 관리실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여닫는 유리창으로 곧바로 자기의 얼굴을 들이밀 따름이었다. 지현이 도시락이라도 싸온 걸까.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문을 열었다. 의외였다. 나는 뒷걸음질 쳤다.
  왜 그렇게 무서워해요? 아저씨.
  그녀였다. 곁에는 지현이 보이지 않았다. 관리실에 올 때는 항상 지현과 함께였는데, 지금은 혼자였다. 그녀는 거리낌도 없이 무엇인가를 들고 들어왔다.
  왜 그런 눈으로 봐요?
  그녀는 묘한 미소를 지으면 나를 바라보았다. 이거 원. 당장 밖으로 내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혹시 취하기라도 했나? 얼굴에 홍조가 나있었다. 취한게 틀림없군. 술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한데. 가지고 온 것은 정말 어울리지 않는 도시락이었다.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설마 나보고 먹으라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저 성격에 내가 먹을 도시락을 싸는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지현이가 오늘 안와서 도시락도 못 먹잖아? 내가 직접 싼 김밥이니까 먹어줘.
  그다지 먹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초리를 참을 수 없어서 김밥하나를 들어 입에 넣었다. 별다른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면서 맛있다고 말해줬다.
  그래요? 그럼 다 먹어요. 아, 배고파. 이 라면 내가 먹어도 되죠? 김밥 싸느라 점심때부터 아무 것도 못 먹었거든요.
  그녀는 캐비닛 옆에 있던 의자를 들고 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라면과 젓가락을 자기 앞에 놓았다. 나는 계속해서 이 김밥을 먹어야 할지 고민해야했다. 웬만하면 먹겠는데, 이 김밥은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밥은 맨밥이었고 계란지단에는 설탕을 들이 부었는지 단 알갱이가 씹혔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먹는 것을 그만두려 할 때마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나를 노려보았다.
  맛없는 거죠?
  나를 노려보는 그녀의 모습에 몸이 움찔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와 그녀 단 둘이 관리실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현이 없는 이상, 관리실에 들어온 것처럼 거리낌 없이 뺨을 때릴 수 있을 테니까.  
  아, 아닌데. 맛있어.
  나는 억지로 김밥을 씹어 넘기면서 말했다. 조심스럽게 대답해야했다. 그녀는 의심이 가시지 않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서울에 생긴 구멍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깊이를 측정할 측정대는 모두 깊이를 측정하는 것에 실패했다고 했다. 그와 비례해 지하실의 틈새도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다. 손가락이 들어갈 만하던 틈새는 계속 벌어져 신발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틈새일 것이라 생각해 시멘트로 대충 발라놓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틈이 벌어져 시멘트가 떨어져 나갔다. 강 사장이 틈새가 생기면 곧바로 보고하라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 이 상태인 것을 알린다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강 사장은 또 흥분해서 병원에 실려 갈지도 모르지. 어쩔 수 없이 테이프를 틈새 위에 붙이고 시멘트를 발랐다. 하지만 금방 떨어지겠지.
  상관없다. 지금 나는 집에서 쉬고 있는 중이고, 집에서까지 그 빌딩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소파에 누워 리모컨으로 채널을 바꿨다. 주말이 아니었던 지라 재미있는 프로는 하나도 하지 않고 있었다. 친구들은 모두 출근을 할 시간이니 만날 수도 없었다. 지금 전화를 해봐도 백수인 녀석들을 제외하고는 전화조차 받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이 관리인이라는 직업의 단점이다. 친구들이 퇴근할 시간에 나는 반대로 출근을 해야 하니. 평일에는 만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주말도 마찬가지다.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만약에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껴안아 줄 텐데. 하지만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은 잡상인들뿐이다. 지현이 이 집으로 놀러오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집을 아는 사람은 이씨 아저씨뿐이다. 만약에 백만분의 일의 확률로 지현이 내 집을 방문한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걱정이 된다. 지현이 이곳에 와서 할 일은 없다. 평소와 다름없이 대화를 나누기에는 심심할 것이다. 더구나 거의 함께 붙어 다니는 그녀와 함께 온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되겠지.
  나도 참, 한심하다. 왜 김칫국부터 먼저 마시는 건지. 머리를 흔들어 잡생각들을 정리하고 냉장고에서 캔 맥주 하나를 꺼내와 마셨다. 어느 정도 정신이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구멍이 생긴 이후로 뉴스의 첫 머리뉴스는 항상 구멍에 대한 뉴스였다. 구멍에 대한 뉴스는 지겨워진지 오래다. 곧 구멍은 그라운드 제로처럼 생활에 녹아들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구멍에 대한 뉴스는 점점 사라질 것이다. 구멍에 대한 뉴스는 항상 똑같았다. 매일 새롭게 측정되는 너비와, 구멍이 생긴 가설들을 소개하는 뉴스들이었다. 텔레비전을 껐다.
  지겹다. 차라리 집에 있는 것보다 밖에 나가는 편이 훨씬 재미있을 것이다. 이렇게 축 늘어져 있으면 뱃살만 늘어나겠지. 자리에서 일어나 청바지로 갈아입고 재킷을 걸쳤다. 아직 출근시간은 멀었다. 어딜 가는 것이 좋을까. 서울에 가볼까. 진짜 그 구멍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데. 내가 본 것은 텔레비전에서 중계된 모습뿐이었기에 직접 서울에 가서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구멍에 대한 소문은 많았다. 내지구內地球와 외지구外地球를 이어주는 통로라는 어이없는 것에서부터, 지하수가 모두 사라져서 생긴 거대한 공동이 지반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았다는 소문까지. 얼마나 크기에 그런 소문이 날까. 뉴스에서 떠드는 너비 367m의 구멍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면 확실할 것 같았다. 그리고 친구들 얼굴이나 보면 되겠지.
  서울역의 1번 출구로 나가자 차단막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차단막은 전혀 허술하지 않았다. 평범하게 철골에 비닐로 감싼 허술한 차단막으로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차단막은 금속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차단막과 차도사이의 임시 인도로 걸어가고 있었다. 인도가 상대적으로 좁았기 때문인지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나는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차단막을 따라 걸었다. 차단막을 따라 걸어가면서 한 아줌마가 나를 붙잡고 무엇인가를 말했다. 휴거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휴거라. 얼마 만에 듣는 말인지. 하지만 그 자리에서 웃을 수는 없어서 빨리 걸어야만 했다. 나를 포교하려는 사람은 그 외에도 많아서, 그 사람들이 내 옷깃을 붙잡을 때마다 뛰다시피해서 그들을 따돌려야 했다.
  결국 볼 수 없었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가 있기는 했지만 경찰들이 의외로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출근 시간이 가까워 져서 곧바로 출근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전철역에서 전력질주를 해서 겨우 출근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이씨 아저씨는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교대했다. 이씨 아저씨의 묘한 표정을 깨달은 것은 겨우 땀을 훔치고 제복으로 갈아입은 뒤 관리실의 의자에 앉았을 때였다.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 했다. 데스크 아래에서 사람이 튀어나온 것이다. 더구나 그 사람이 내가 전혀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더 놀랐다. 그녀였다. 도대체 어제하고 오늘 왜 이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 녀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도시락을 데스크에 올려두었다.
  아저씨가 김밥을 싫어하는지 몰랐어. 그래서 오늘은 새로운 걸 싸봤는데. 이건 어때요?
  웃으면서 도시락 뚜껑을 열어서 나에게 보여줬다. 김밥은 아니었다. 유부초밥이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나한테는 지현이 싸주는 도시락이 더 마음에 든단 말이다.
  뭐 그렇게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그래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먹기 싫으면 말고. 지현이 아버지한테 지하실 틈새에 대해 말하면 어떻게 될까요? 히히.
  그녀은 바지 주머니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지하실 열쇠와 같은 열쇠를 꺼내서 나에게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누구 열쇠를 복사한 거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유부초밥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촛물에 설탕을 들이부었는지 초밥을 씹으면서 녹지 않은 설탕덩어리가 같이 씹혔다. 그녀는 정말로 기쁜 웃음을 지었다. 나는 하나도 빠짐없이 씹어 먹어야만 했다.

  지현이 사라졌다. 가출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찰들은 납치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강 사장은 당연하게도 병원에 실려가 입원했다. 지현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사라지기 전 날 그녀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강 사장의 도시락과 내 도시락을 가지고 관리실을 들렸다.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했다. 만약 지현이 가출을 생각했었다면 그 것이 표면으로 드러났을 것이다. 더구나 지현이 가출을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나도 경찰들처럼 지현이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지현이 사라진 이후 나와 김 아저씨가 가장먼저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하지만 CCTV에 찍힌 나와 김 아저씨의 녹화물로 무죄임이 증명되었다. 그뿐, 경찰의 수사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경찰들과 사복을 입은 형사들이 빌딩을 드나들 뿐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정말 지현이가 납치된 걸까요?
  옷을 갈아입고 있는 김 아저씨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김 아저씨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저씨의 눈동자는 흐릿했다. 아저씨도 그다지 정상이 아니었다. 내가 알기로는 아저씨와 강 사장은 친구였고, 지현과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 지현이 사라지니 아저씨도 강 사장처럼 쓰러질지도 몰랐다. 나는 잘 못 말했다는 것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바라보았다. 새벽 다섯 시 오십분. 김 아저씨는 평소보다 늦게 출근을 했다. 악몽이라도 꾸었을지도 몰랐다. 아저씨의 얼굴이 새파랬다.
  납치, 납치되었을 수도 있겠지.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그는 정신을 놓은 듯 힘겹게 입을 벌려 말했다. 나는 데스크의 서랍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담배 한 개비를 빼서 나에게 건넸으나 내가 거절하자 자신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관리실은 금연구역이었다.
  지현이가 나한테 어떤 앤지 말고 있나? 나한텐 딸 같은 얘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연기를 뿜어냈다. 좁은 관리실이 담배연기로 가득 찼다. 나는 그에게 수고하라는 인사를 하고 관리실을 빠져 나왔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현은 정말로 납치당한 것일까. 지현을 납치할 만한 사람. 도대체 누굴까. 지현은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만한 여자가 아니었다. 물론 원한 관계에 의한 납치가 아닐 수도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우발적으로 납치당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전화도 오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그 것도 아닌 듯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캔을 발로 찼다. 캔이 전봇대 옆에 뉘여 진 쓰레기봉투에 부딪혔다.
  만약에, 만약에 그녀가 납치한 것이 아닐까. 지현이 사라진 이후 그녀의 얼굴은 몰라보게 밝아진 것 같았다. 설마. 그렇다고 범인으로 생각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다. 더구나 지현이 정말로 납치되었는지, 가출인지 확실하지도 않았으니까. 편의점에 들려 소주 두병과 맥반석 오징어를 샀다. 이런 정신으로는 도저히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왔네요. 아저씨.
  그녀였다. 나는 소주병이 들은 봉투를 놓쳐버렸다. 덕분에 소주병이 깨져 소주가 흘러나왔다.
  너, 너 뭐야. 왜 내 집 현관 앞에 서있는 거야?
  놀라움이전에, 짜증이 치밀었다. 얼굴을 보기만 해도 화가 치밀었다. 이 년은 자신의 친구가 사라졌다고 해도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뺨을 날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뭐, 아저씨 퇴근하는 걸 뒤쫓으면 쉽죠. 아저씬 너무 허술해서 말이야. 히히.
  더 이상 대꾸할 가치도 없어 나는 그녀를 밀치고 현관문을 열었다. 문을 닫으려는데 그녀의 신발이 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문을 잠글 수 없었다. 꼭 영화에서 피해자가 살인마의 공격을 피해 문을 잠글 때 나오는 상황 같았다. 영화와 지금이 다른 건 무서움보다 짜증이 났다는 것뿐이었다.
  뭐야.
  그렇게 문 앞에서 찬바람 쌩쌩 날리면 춥잖아요. 나도 들어가면 안 될까? 아저씨.
  닥치고 내 집에서 꺼져.
  그렇게 말하면 내가 지현이에 대한 이야기를 못해줘요. 아저씨도 알고 싶죠? 지현이가 가출했는지 안했는지?
  무, 무슨 소리지?
  나는 현관에서 나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곤 그녀의 몸을 흔들어댔다. 정말 알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어째서 강 사장한테 알리지 않는 거지. 아냐, 지현이가 강 사장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을지도 몰라. 그런데 왜. 속임수일 수도 있어. 침을 삼켰다. 그녀는 웃음만 지을 뿐 말하지 않았다. 묘한 웃음이었다. 꼭 내가 지현이 있는 곳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설마 지하실은 아니겠지.
  죽인…거야?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녀의 다리가 휘청거리더니 뒤로 넘어졌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지 않고 반대로 웃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나는 현관문을 잠그지도 않고 빌딩으로 달려갔다.
  빌딩은 조용했다. 아직 입주민들이 출근할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씨 아저씨는 순찰을 돌고 있는지 관리실에서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 비상계단으로 가 지하실로 내려갔다. 나는 집에 열쇠를 두고 온 것을 깨달았다. 지하실문에 귀를 갖다대보았다. 신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을 부술만할 것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계단을 올라오는데 그녀가 내려오고 있었다. 부어오른 볼을 쓰다듬으면서.
  아파. 피부가 찢어져서 피도 나왔다고요.
  어, 어서 열쇠를 던져.
  하지만 그녀는 열쇠에 달려있는 줄에 손가락을 넣고 돌릴 뿐, 나에게 열쇠를 건낼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날 때리고 그렇게 쉽게 건네 줄 것 같아요? 상식이 있으면 생각을 해봐요.  
  이년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나는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의 움켜쥔 손가락을 폈다. 열쇠를 빼앗아야 했다. 그녀와 장난을 칠 상황이 아니었다. 지하실 안에서는 지현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억지로 그녀의 손에서 열쇠를 빼내어, 서둘러 지하실문을 열었다. 하지만 지하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시멘트가 모두 가라 앉아버리고 틈새가 드러나 있을 뿐이었다. 조심스레 틈새에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틈새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손을 집어넣어 휘저었다. 흙이 만져지지 않았다. 거짓말이다. 나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xx시 xx동의 한 빌딩에서 다른 균열이 발견되었다. 발견자는 빌딩의 관리인인 김모씨(56세)로 균열을 발견 후 곧바로 소방서에 신고했다고 한다. 빌딩 반경 1km이내에 대피령이 발호되었다. 균열은 서울의 싱크홀보다는 훨씬 작은 규모로, 더 이상 확장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 균열에서 두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발견된 시신은 빌딩의 거주자인 이모씨(23세, 여)와 빌딩의 야간 관리인인 김모씨(33세, 남)로 밝혀졌다. 김모씨의 직접적인 사인은 추락사지만, 칼로 찔린 자상이 나있어 경찰은 이 사건을 살인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이모씨는 김모씨를 껴안고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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