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옆 칸 남자

2009.06.25 15:3406.25



똑똑똑.

한밤중의 공원 화장실은 제법 아늑했다. 적어도 그 기분 나쁜 노크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고즈넉한 숲속에라도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깨끗한 변기, 어디선가 들리는 귀뚜라미 울음,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 그리고 차에서 기다리는 그녀.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로 달려왔기에 조금 늦어졌을 뿐, 볼일을 보고 다시 시작하면 될 일이었다. 그녀도 오늘만은 적극적이었다. 시간은 많다. 길고 긴 키스부터 천천히 다시 시작하자.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바로 그 노크소리가 들렸다. 문이 아닌 옆 칸에서였다.

똑똑똑.

두 번째 노크소리가 들릴 때까지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황스러웠다. 화장실 옆 칸에 앉은 사람이 벽을 두드리는 일은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노크소리는 기분 나쁠 정도로 선명하고 날카로웠다. 중지 손가락을 잔뜩 구부려 일정한 리듬과 세기로 벽을 두드리는 그 누군가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질 정도였다. 못을 박아 넣듯, 혹은 판사가 형량을 선고하듯 가차 없는 노크였다.

똑똑똑.

기분 나쁜 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려 퍼졌다. 바람 소리와 귀뚜라미 울음마저 잠잠해졌다는 걸 느끼며 나는 헛기침을 했다. 그러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시죠?”

“실례지만….”

기괴한 목소리였다. 좁은 통에다 밀어 넣고 쥐어짜내는 듯 거칠지만 한편으로는 가늘고 떨리는 목소리. 몇 해 전, 사촌동생이 잡았다며 보여 준 매미박제처럼 살짝만 건드려도 바스라질 것만 같은 위태로운 목소리였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집요하게까지 느껴졌던 노크소리와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덕분에 나는 어느 정도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조금만 생각을 해 봐도 옆 칸에서 누군가 신호를 보낸다면 십중팔구 화장지 때문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설핏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아무리 인적 드문 공원 화장실이라곤 해도 고작 노크소리에 긴장을 했던 게 멋쩍었다. 나는 옆 칸 남자를 향해 말했다.

“네. 말씀하세요. 혹시 화장지가 필요하세요? 마침 제가 넉넉하게….”

“번호….”

“네?”

내가 잘못들은 게 아니라면 분명 남자는 ‘번호’라고 말했다. 화장지 때문이 아니었단 말인가. 남자의 목소리가 워낙 작았기에 나는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여 벽에다 귀를 바싹 대야 했다. 그때 남자의 숨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긴 들숨과 날숨이었다. 문득 비슷한 숨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골 외할아버지 집에서였다. 여름이었고, 모두 밭일을 나간 뒤라 집에는 나 혼자였다. 하릴없이 빈둥거리다가 바람이 잘 드는 마루에 누워서는 멍하니 마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외할아버지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마당 구석을 노려보며 예의 그 긴 들숨과 날숨을 쉬고 있었다. 마치 예열이라도 하듯 옆구리를 부풀렸다 오므리며 숨을 쉬는 녀석의 시선 끝에는 조그만 쥐 한 마리가 있었다.
바로 그때의 숨소리, 먹잇감을 앞에 둔 포식자의 긴장이 묻어나는 숨소리가 옆 칸 남자에게서 흘러나왔다.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변기에 닿은 엉덩이에 오슬오슬 소름이 돋았다.

“번호가 있어요? 거기에도 그 번호가 있어요?”

남자가 갑자기 말했다. 쥐를 향해 번개처럼 몸을 날렸던 그 날의 고양이처럼. 나는 흠칫 놀라 벽에서 귀를 뗐다. 벨트의 금속 부분이 변기 어딘가에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애써 가슴을 눌렀다. 이상하게도 불안했다. 무언가가 잘못 되고 있다는 느낌, 맨 마지막 단추에 이르러서야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느끼는 낭패감 같은 것이 발끝부터 서서히 나를 적셔왔다. 단지 옆 칸에 앉은 남자, 목소리로 미루어 약해 빠졌을 게 분명한 남자가 말을 걸어온 것뿐이고, 여차하면 화장실을 나가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까닭모를 불안이 밀물처럼, 꾸역꾸역 스며들었다. 그 불안감 사이로 남자의 목소리가 재차 들렸다. 이전보다 조금 커지고 다급해진, 하지만 여전히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목소리였다.

“어때요? 번호가 있어요?”

“무슨 번호를 말씀하시는지….”

“장기 사고팝니다, 라고 적힌 스티커, 거기에 번호가 있어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되돌아온 남자의 말에 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공공 화장실이라면 한 두 장쯤 붙어있기 마련인 장기밀매 광고 스티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도 전화번호를. 다급하게 번호를 묻는 게 의아하긴 했지만 번호를 가르쳐주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화장실 내부를 둘러봤다. 있었다. 그 스티커는. 화장실 문손잡이 조금 위에 ‘장기 사고팝니다. 010-1234-5678’이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흰 바탕에 프린트된 빨간 글씨는 백열등 불빛 아래서 묘하게 반짝였다. 낙인처럼 찍힌 그 숫자를 나는 더듬더듬 읽어갔다.

“공일공 하나둘삼사 오륙칠팔. 이거 말입니까?”

“아! 끝자리가 팔이었군요. 여기엔 누가 뜯어내려다 실패했는지 끝자리 번호가 찢겨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아, 네. 뭘요.”

“휴. 그 번호가 찢겨서 답답했어요. 이게 팔이었군요. 팔! 자세히 보니 곡선 두 개가 살짝 보이는 게 팔이 맞네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팔. 팔. 하하하.”

남자의 목소리는 기쁨에 겨운 듯 가볍게 떨렸다. 처음으로 생기가 느껴졌다. 메마른 웃음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나는 왠지 씁쓸했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는 자신의 장기를 팔려는 게 분명했다. 그것도 이 야심한 시각에 옆 칸에 앉은 사람에게 번호를 물을 정도로 다급하게. 나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벽 하나 사이를 둔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똥냄새를 맡으면서도 여자 친구 옷 벗길 궁리를 하는 나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장기를 팔려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현실이다.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복잡한 생각을 털어버릴 요량으로 배에 힘을 줬다. 그때 옆 칸에서 차가운 디지털 음성이 들렸다.

“공. 일. 공.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팔.”

휴대전화 버튼을 누를 때 들리는 그 소리. 남자는 바로 통화를 할 모양이었다. ‘띠리리리링.’ 곧 신호음이 들렸다.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남자의 목소리는 다시 작아졌고 이내 일몰처럼 잦아들었다. 간간히 “네.” “급합니다.” “당장” 같은 말들이 들리긴 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었다. 몇 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네. 알겠습니다. 급하니까 빨리 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뒤이어 들리는 통화 종료음. 남자는 거래에 성공한 듯싶었다. 신장일까? 아니면 안구? 대가는 얼마나 될까? 꼬리를 무는 호기심 뒤로 한 통의 전화로 남자의 장기가 팔렸다는 사실이 새삼 섬뜩하게 다가왔다. 노크소리와 남자의 기괴한 목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가슴을 옥죄는 섬뜩함은 아니었지만 등줄기를 타고 작은 벌레들이 기어가는 듯 진저리쳐지는 섬뜩함이었다. 장기 밀매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들, 마취도 하지 않은 채 배를 가르거나 펄떡펄떡 뛰는 장기를 아이스박스에 담는 그 모습들이 떠오르면서 속이 메스껍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빨리 화장실을 나가는 게 상책일 듯싶었다. 하지만 배는 쉽게 편해지지 않았다. 찔끔찔끔 계속해서 설사가 나오고 아랫배가 싸늘했다. 아무래도 그녀가 준 김밥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더 힘을 줬다. 바로 그때였다. 옆 칸 남자가 말을 걸어온 건.

“다 듣고 있었죠? 통화 내용.”

여전히 부자연스럽고 음침한 목소리. 게다가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기계음 같은 이상한 소리가 뒤따라왔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비슷한 소리를 들었다. 귀에 익은 소리였다. 기억을 더듬었다. 언제였지? 무슨 소리였지?

“안 그래요? 듣고 있었죠?”

나는 당황해서 더듬었다.

“네? 그…그게, 몇 마디 밖에는….”

“역시 엿듣긴 했군요.”

“죄송합니다. 그냥 소리가 들려서….”

잠시 망설인 뒤 나는 말을 이었다.

“저…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장기를 팔려고 하시는 거죠? 그,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아세요?”

말을 하면서도 주제넘은 짓이라는 생각을 했다. 주위 사람들 일에 별 관심 두지 않고 살아온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왠지 말하고 싶었다. 남자가 통화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남의 일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장기가 떨어져나갈 남자의 모습을 그려보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옆 칸 남자는 조용했다. 하지만 잠시 후 옆 칸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풍선 입구를 막고 바람을 빼는 것 같은 소리. 나는 다시 벽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쿡쿡쿡쿡.”

그 소리의 정체는 웃음이었다. 남자는 웃고 있었다. 그것도 소리를 죽여서. 웃음은 한참을 이어졌다. 그러더니 뚝, 실이 끊기듯 남자의 웃음소리가 사라졌고 곧 한층 낮고 음침해진 목소리가 들렸다.

“무서운 일이라…. 진짜 무서운 일이 뭔지 아세요?”

“네?”

통. 어디선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말이 이어졌다.

“진짜 무서운 일은 돈이 없다는 거죠. 돈. 그래서 어떤 일이든, 아무리 잔인한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하게 되는 것, 그게 바로 무서운 것이죠. 어때요? 당신은 그래본 적이 있나요? 돈 때문에 사람이 해선 안 될 짓을 해 본 적, 있나요?”

없었다. 나는. 돈이 궁하지는 않았다. 대학교 4학년, 동기들은 취업 때문에 아등바등 했지만 나는 아버지 회사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자그마한 회사이긴 해도 나쁘진 않았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돈 때문에 고생해본 적은 없다. 그래서 남자의 말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수긍하기는 힘들었다. 나는 솔직히 말했다.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돈이 필요해도 자신의 장기를 파는 건 돌이키기 힘든….”

“그럼, 돈 많은 애인과 사귀면서 자괴감을 느낀 적도 없겠네요. 너무나 쉽게 돈을 쓰는 애인을 보며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시기심을 느껴 본적도, 그러면서도 애인 앞에서는 거짓 웃음을 흘리며 한 푼이라도 더 타내려고 했던 적도 없겠네요.”

남자의 목소리에서 서서히 노기가 베어 나왔다. 불안감이 다시 엄습했다. 남자의 목소리는 무언가 이상했다. 방금 전까지는 그저 조금 부자연스럽다고 느꼈을 뿐이었지만, 남자의 감정이  들어간 목소리를 듣는 순간 확실히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번호를 외치던 휴대전화의 디지털 음성처럼 남자의 목소리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남자는 한층 더 격양된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가늘고 낮았던 목소리가 고음으로 바뀌며 갈라졌다.

“집에 쳐들어온 사채업자가 부모님을 인질로 잡아놓고 억지로 생똥을 퍼 먹게 했던 적도 없겠네요. 아빠가 보는 앞에서 아빠의 똥을 먹는 게 어떤 심정인지 모르죠? 속이 안 좋으셨던지 아빠의 똥 속에는 전날 드셨던 콩나물 대가리가 그대로였죠. 낄낄거리던 그 사채업자들 얼굴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세요? 무섭다! 무서워 죽겠다! 그 생각뿐이었죠. 그래서 놈들이 시키는 데로 다 하겠다고 말했어요. 인간의 존엄성? 그딴 건 당신처럼 배부른 작자들이나 찾는 거지. 안 그래요? 그래서 저는 지금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려는 거예요. 하하하.”

남자의 거친 웃음소리가 한밤중의 화장실에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느꼈던 그 위화감의 정체를. 그리고 귀에 거슬리는 기계음의 정체를!
며칠 전, 그녀가 내게 장난감처럼 생긴 마이크를 보여주었다. 분홍색에 리본까지 달린 마이크는 각종 재미있는 소리는 물론이고 음성 변조까지 되는 장난감 아닌 장난감이었다. 그녀의 도도한 모습 일면에 어린애 같은 부분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재미있어 했던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의 말 한 마디도.
“봐. 이 마이크에 대고 말하면 남자 목소리처럼도 들린다니까…….”

그때 화장실로 뛰어 들어오는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이었다. 내가 생각을 가다듬기도 전, 옆 칸 사람의 나지막한 목소리 하지만 이제는 부자연스러움을 털어낸 생짜 그대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시작되겠네요. 진짜 무서운 일이.”

쾅.

옆 칸 사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장실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나갔다. 내가 앉은 칸이었다. 안으로 떨어진 문이 무릎을 강하게 찍었다. 문짝이 떨어져나간 그 황량한 사각의 공간에 온통 검은 옷으로 차려 입은 남자 네 명이 서 있었다. 나는 겁에 질려 꼼짝도 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머릿속만은 깨끗해져 한 순간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함정에 빠진 것이다!

“하하하하하.”

옆 칸에서 들리는 날카로운 웃음이 온몸을 찔러왔다. 심장이 뛰었다. 손가락 끝이 뻣뻣해졌다. 남자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두 명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내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왼손에 꼭 쥐고 있던 화장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참을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아아악.”

나는 비명을 질렀다. 모든 신경이 팽팽해졌다. 옆 칸에서 들리는 웃음은 끊이질 않았다.

“으아아악.”

내가 두 번째 비명을 질렀을 때, 묵묵히 서 있던 남자 하나가 테이프로 입을 막아버렸다. 미칠 것 같은 공포감. 하지만 설사는 멈출 줄 몰랐다. 아니, 오히려 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쏟아지고 또 쏟아졌다. 덜 삭은 음식들이 내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벗어나기 위해 온몸을 비틀었지만 소용없었다. 덫에 걸린 짐승처럼 나는 울부짖었다. 눈앞이 흐려졌다. 그 사이로 마지막 남자가 가방에서 둘둘 말린 뭔가를 꺼내 조심스레 펼치는 게 보였다. 반짝. 날카롭게 빛나는 칼들. 영화에서나 봤던 수술용 메스. 내 입을 막았던 남자가 화장실 바닥에 비닐을 깔았다. 나도 모르게 다리가 떨렸다. 오줌이 새 나왔다. 수백 수천 마리의 개미떼가 온몸을 기어가는 것 같은 공포, 공포! 나는 토해낼 수도 없는 비명을, 절규를, 고통에 찬 신음을 내질렀다.

“으으으으.”

“네가 내 몸을 더듬을 때마다 얼마나 역겨웠는지 알아?”

옆 칸에서 들리는 목소리. 웃음을 머금은 음침한 목소리. 남자들이 나를 쓰러트렸다. 나는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넘어졌다. 칼을 든 사내가 다가왔다. “잘 잡아.” 아무런 감정도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남자가 말했다. 너무나 큰 공포에 내 의식은 점점 멀어졌다. 그때, 화장실 벽 아래로 옆 칸에 앉은 바로 그 사람의 발이 보였다. 빨간 색 마놀라불라닉 구두. 며칠 전 그녀에게 선물했던 그 구두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가슴을 만졌던가.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의식이 자꾸 흐려졌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옆 칸에서 들리는 여자의 새된 웃음과 그때마다 바닥을 구르는 하이힐의 뾰족한 떨림은 생생하게 들리고, 보였다.

“나…쁜…ㄴ….”

마지막 웅얼거림을 끝마치기도 전에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배가 열렸다. 뜨끈한 무언가가 자꾸만 흘러나왔다. 설사는 계속됐다. 그리고 그녀의 웃음도.

“하하하하.”
    

        
      
댓글 1
  • No Profile
    뫼비우스 09.07.11 14:01 댓글 수정 삭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그런데 구체적으로 무엇때문에 남자를 죽이게 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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