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망각의 폐교, 그 위를 기는 광기
by. Psykodeleekoh(씩꼬델리이꼬)




1.

하늘은 검다.

공간을 짓누르는 틈으로 은빛 눈동자가 떠 있다.

새어나오는 눈물이 운동장으로 떨어진다. 운동장 위를 덮은 잡초 위로 산산이 부서진다. 빛난다. 빛은 날카롭게 뻗어 아래로 휘어 내린 잎을 따라 흐른다. 풀벌레들이 조각난 빛을 마신다.

빛은 울음소리로 변한다.

불협화음으로 얽혀 굵은 줄기로 변한 소리가 풀을 헤치며 기어간다. 모래를 버석거리며 기어가던 소리가 정글짐을 따라 얽혀 올라간다. 붉은 페인트와 파란 페인트는 벗겨지고 썩은 살처럼 녹이 드러나 있다. 정글짐의 구멍 틈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소리가 커진다. 바람 소리가 얽힌다. 더 많은 풀벌레 소리가 얽힌다.

흔적으로 남은 운동장 위의 발걸음 소리, 공차는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울음소리, 비명소리, 때리는 소리, 맞는 소리, 학교 종소리들의 주검이 깨어나, 모래 속에서 신기루처럼 피어오른다. 그 위를 기는 소리에 휘감긴다.

소리는 더욱 더 커진다.

투명한 몸집은 더욱 불어나 낡은 교사를 휘감는다. 똬리를 튼다. 쉿, 쉿, 숨을 토한다. 바람이 모래 위를 긁는다. 벌어진 상처를 긁는다. 썩고 녹슨 살 위를 스친다.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는 늙은 교문이 삐걱댄다.

나는 그 위에 서 있다.

걷는다. 천천히 발을 뗀다. 무겁다. 수 십 년분의 묻혀버린 소리가 땅 위로 손을 뻗어 내 발을 붙잡는다. 가지 말라 한다.

무섭게 노려보는 소리들의 그림자가 내 앞을 막는다. 어둠. 공간을 베어내려 뻗은 손전등의 노란 불빛도 금세 어둠에 녹아버린다.

어둠을 채운 것은 열기와 습기다. 더운 열탕에 들어가 있을 때처럼 속이 답답하다. 숨을 쉴 때 마다 코를 느낀다. 가슴을 느낀다. 나를 느낀다. 그리고 내가 '이곳'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이유는 모른다.

아무 것도 기억나는 것이 없다. 나는 그저 ‘이곳’에 손전등을 들고 서 있다.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내 눈앞에 선 건물은 폐교라는 것 뿐 이다.

걸음을 뗀다.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안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명확해 질 것이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도, '이곳'이 나에게 온 이유도 설명해 줄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도 설명해 줄 것이다.

2층으로 된 건물이다.

건물 정면에 있는 정문 위에는 한자로 된 표어가 쓰여 있다 것이다. 지금은 벗겨진 페인트로 그 흔적만 알 수 있다. 가까이 다가가자 점박이 돌로 된 현관 위에는 낙서가 가득하다.

유리 창 문으로 내 얼굴이 반투명하게 비친다. 그 뒤로 건물 안이 녹아있다. 내 안에 건물이 녹아들어가 있는 것 같다. 스테인리스 문을 잡고 밀어보았다. 잠겨 있었다.

건물 좌우에도 문이 있을 것이다. 나는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잡초가 바지를 스쳤다. 풀벌레들이 놀라 도망간다. 시소를 지나 외부 화장실의 역한 냄새를 피해 문으로 향했다. 그곳은 한층 어두웠다. 손전등의 노란 불빛에 반투명한 내가 유령처럼 보였다. 그 안으로 복도가 끝없이 퍼져있었다. 불빛이 끝까지 파고들지 못해 복도는 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풀벌레 소리. 바람 소리. 나무 가지가 부딪히는 소리. 문이 열리는 소리.

비명을 지르는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은 나무였다. 왁스칠을 한지 오래되어 삐걱댄다.

폐교는 자궁처럼 검었다. 무엇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더듬어 길을 찾는 장님 같은 신세다. 내가 의지할 것은 손전등뿐이다.

어둠은 털투성이 괴물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속을 알 수 없는 시커멓고 깊은 우물은 들여다보는 사람의 얼굴만 보여줄 뿐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 건물에는 도대체 뭐가 있을까? 나는 왜 여기 있을까? 이 사실을 모르면서도 왜 나는 여기로 와야 한다고 느낄까?

손전등을 흔들어 보았다. 천장은 의외로 높았다. 앞으로 돌려 보았다. 손전등이 채 나아가지 못한 곳 너머까지 복도는 뻗어 있었다. 얼마나 뻗어있는 것일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벽에 붙어있는 형광등 스위치를 올려 보았다.

폭발음.

어둠이 흔들린다. 공간이 흔들린다.

스파크를 내며 형광등이 깜빡였다. 형광등은 이내 조용해졌다. 공간도 잠잠해졌다. 어둠은 다시 웅크린 채 조용히 숨을 쉬었다.

나는 내 눈과 기억을 의심했다.

찰나와 찰나의 틈으로 보인 복도는 사진처럼 각인되었다. 믿을 수 없는 사진이었다. 복도는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문자 그대로 끝없이, 무한히 뻗어 있었다.




2.

착각일 것이다. 낯설고 어두운 공간에 있어 눈과 신경이 피로한 탓일 것이다. 정말인지 확인하려 손전등을 들어 올려도 빛은 어둠에 녹아버린다.

소름이 돋았다. 급히 맨 처음 있는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 안에는 키가 작은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나에게 '이곳'은 낯설지 않았다. 마치 언젠가 '이곳'에서 수업을 받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장난을 치며 싸움을 했던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기시감, 데 자 부일 것이다. 어느 곳이나 이 나라의 학교는 다 똑같은 모습이다. 강원도나 서울이나 충청도나 전라도나 경상도나 제주도나, 다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단지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잠시 혼돈이 온 것일 뿐이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들려주며 교실을 돌아보았다.

천장 아래에 태극기가 먼지를 입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아래로 칠판이 있었다. 칠판에는 낙서들이 가득했다. 노란 색과 파란 색, 그리고 흰 색 분필로 여러 낙서가 있었다. 그 아래로 칠판지우개가 나란히 서 있었다.

교탁을 지나 창문 쪽을 보았다. 아까 본 운동장이 있었다. 손전등을 돌리다 사람의 모습이 갑자기 나타났다.

나다.

손전등 빛에 반사된 내 모습이었다. 바보 같으니, 스스로를 책망하며 교실 뒤에 놓인 책꽂이로 향했다. 아동 도서들이 여러 권 꽂혀 있었다. 동화책이 대부분이었다. 어릴 때 읽었던 적이 있는 책들이다. 이상하게 내가 읽어보았던 판본들이었다. 삽화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책을 다시 꽂고 일어섰다. 책상과 의자에 누가 앉아 있다. 놀란 내가 소리를 지르자 그 ‘아이’는 고개를 돌려 쉬잇, 하며 손가락을 입에 가져갔다.

놀란 나는 창문으로 달려간다. 그 창문에 비친 내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다.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은 지금의 내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의 나였다. 반투명한 내가 쉬잇, 하며 손가락을 입에 가져갔다. 아까 그 아이처럼.

손전등을 아까 아이가 있던 쪽으로 돌렸다. 그 곳에 놓인 40여개의 책상과 의자에 모두 어린 시절의 ‘내’가 앉아 있었다. 모두 반투명했다. 쉬잇. 칠판을 가리킨다. 낙서가 모두 모인다.

‘안녕. 오랜만이야.’

비명.

손을 뻗어 형광등 스위치를 켰다. 형광등이 번쩍였다.

교실이 밝아졌다. 모든 형상은 사라졌다. 그 곳에 있는 것은 그저 낡은 의자와 칠판 뿐 이었다.

불은 2초도 버티지 못하고 꺼졌다. 어둠이 돌아온다.

지금 나는 내 정신과 신경이 의심스럽다. 내가 미친 것은 아닐까? 내가 지금 제정신일까? 내가 본 것은 도대체 뭘까? 지금 나는 깨어있는 것일까?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꿈이라기엔 너무 현실적이고, 현실이라기엔 너무 공상적이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다는 것과,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노란 불빛으로 드러난 틈 사이로 아무도 없는 의자와 책상을 보고 있다는 것 뿐 이다.

칠판은 깨끗하다. 원래부터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은 것처럼 먼지투성이다. 나는 서둘러 미닫이문을 열고 교실을 나간다. 교실은 여전히 텅 비어 있고 복도 창문에는 내 모습이 보인다. 겁에 질려 땀을 흘리고 있는 어리석은 모습이.

“안녕.” 소리가 들렸다. 등 뒤였다.

놀란 내가 휘두른 불빛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여자아이다. 단발머리에 고집 있어 보이는 눈매. 무표정한 얼굴. 교복을 입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소녀가 말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창백했다. 노란 불빛이 소녀의 주위로 부서지고 있었다. 마치 후광처럼, 특별한 기운이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아하게 손을 들어올린다. 나를 향하고 있다. 반가워하는 것 같다.

넌 누구지?, 내가 말했다. 소녀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소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서 있어야 했다.

도대체 이 소녀는 누굴까? 예쁘다. 이런 예쁜 애와 아는 사이였다니.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

“뭐 좀 물어볼게. 괜찮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 이름이 뭐야?”

잠깐. 내 이름이 뭐였지?

기억이 나지 않아.

놀란 내가 입을 여는 순간, 소녀의 놀란 얼굴이 보인다. 교실이 반으로 갈라졌다. 소녀가 서 있던 교실의 반은 순식간에 하늘로 사라졌다.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사라졌다.

굉음과 함께 형광등에서 불빛이 튄다. 공간은 순식간에 새하얗게 변했다. 눈을 감아도 눈꺼풀을 통해 붉은 기가 도는 흰 공간이 들어왔다. 머릿속까지 하얗게 변하는 것 같다.

아까 그 소녀는 누구일까? 나를 알고 있을까? 이름은 뭘까? 잠깐, 내 이름을 물었는데, 내 이름이 뭐였지?

의식이 흐려진다.




3.

“정신이 드니?” 소리가 들린다. 눈을 떴다. 하얀 공간. 눈이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수업 중에 갑자기 쓰러졌다고 하는구나. 기분은 좀 어떠니.” 양호 선생님이다. 틀어 올린 머리가 어른스럽다. 가늘고 긴 손가락. 끝에는 계란형으로 다듬은 손톱 위에 투명한 매니큐어가 칠해져있다. 내 이마를 쓰다듬는다.

나는 왜 여기 있지?

선생님이 손수건을 내밀었다.

“울었구나. 안 좋은 꿈이라도 꾼 모양이야.” 선생님이 안경을 쓸어 올렸다. 중지와 엄지로 안경 양 쪽을 밀어 올렸다.

손가락 사이로 선생님의 눈이 보인다. 크고 날카로워 보이는 눈.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며 나는 이마와 얼굴을 닦았다. 향수 냄새. 어떤 향수인지는 모르지만, 익숙한 냄새다. 어디서 맡았던 냄새였을까? 선생님께 손수건을 돌려드리다 손이 살짝 닿았다. 얼굴이 뜨거웠다.

“일어설 수 있겠니? 만약에 머리가 아프면 좀 더 쉬어도 돼. 교실까지 갈 수 있겠어?”

괜찮다고 말하며, 나는 몸을 돌려 침대 밖으로 나왔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바닥이 나를 향해 올라오는 것 같다. 어지러워 천장을 보았다. 형광등이 너무 밝다.

쓰러진다. 선생님이 나를 잡아주었다. 선생님의 살이 닿는다. 풍만함. 얼른 몸을 뺀다. 괜찮아요, 입으로는 그렇게 이야기 했지만, 솔직히 괜찮은지는 확신이 가지 않는다.

“조금 더 쉬어야 할 것 같구나. 일단 여기 좀 앉을래?”

침대 위에 앉았다. 몸에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 몸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다. 선생님이 내 옆에 앉았다. 육감적인 몸매. 가운 사이로 보이는 가슴은 금방이라도 옷을 찢을 것 같다. 부끄러운 내 시선을 들킬까 싶어, 서둘러 고개를 돌려 깍지 낀 내 손을 바라봤다.

“요새 무슨 힘든 일이라도 있니?” 아니오, 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부드럽고 나긋한 목소리.

“몇 학년 몇 반이지? 이름은?”

내 이름이 뭐였지?

나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양호실 문에 난 조그만 창문으로 내 모습이 보인다. ‘어린’ 내 모습.

비명을 참으려 해도 목 안에 쌓인 비명은 자꾸만 커진다. 더 이상 참아낼 수 가 없다. 비명을 토한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비명을 토한다.

‘쉿’

창문 속의 반투명한 내가 윙크를 한다.

비명은 스스로 의지를 가진 것처럼 쏟아진다. 머리가 아프다. 깨질 것 같다.

선생님이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선생님이 휴대전화에 대고 소리친다. “큰일이에요! 실패했어요!” 실패? 실패라니? 지금 누구에게 전화를 하고 있는 거지?

비명으로 공간이 흔들리는 것 같다. 눈앞이 꿈틀거린다. 반투명한 어린 나의 모습만이 중심처럼 가만히 서서 나에게 손짓하고 있다.

달려들었다.

문이 부서지는 소리. 유리가 깨지는 소리. 비명소리. 스파크가 튀는 소리. 소리가 조각나며 튄다. 튄다. 튄다.

멈춘다. 모든 소리.

정적.

눈을 떴다.

어둡다. 바닥을 짚었다. 아프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질문에 대답이 없다. 대답해 줄 사람도 없다.

다시 조용해졌다.

아까는 뭐였지? 그 선생님은 누구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을까? 나는 왜 그 사람이 익숙했을까? 그 사람은 내가 누군지 알고 있을까?

손이 아프다. 손전등은 다른 손으로 들고 아픈 손을 보았다. 유리 조각들이다. 손바닥에 찍혀 있었다. 피.

울음이 터진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거지? 왜 난 여기 있는 거지? 손전등을 바닥에 놓고 유리조각을 빼보려 한다. 아프다. 손톱으로는 잘 빠지지 않는다. 더 깊숙이 들어가는 것 같다.

나는 포기하고 일어섰다. 아픔이 맥을 뛰는 것처럼 팔을 타고 흘러 뒤통수까지 저릿하다.

손전등을 주어 올려 내가 나왔던 문 쪽으로 손전등을 돌렸다. 문이 없었다. 벽이었다.

들어왔던 문 쪽으로 손전등을 돌렸다. 나가고 싶었다. 여긴 이제 질렸다. 그런데 그 곳도 역시 벽이었다. 아무 것도 없었다.

터져 나오는 비명을 씹어 삼키며 반대쪽 복도로 손전등을 돌렸다. 아까까지 있던 창문도, 교실 문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벽으로 쌓인 복도였다.

신경이 끊어지는 것 같다.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뭐가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여긴 혹시 내 몽상이 아닐까? 현실이 아니라 꿈이 아닐까?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어쩌면 내가 이미 미쳐 버린 것은 아닐까?

일어났다. 걸어본다. 다리에 힘이 없다. 벽을 짚다 손바닥에 박힌 유리가 더 깊숙하게 박혔다.

비명.

벽에 피가 묻었다. 반대쪽 벽에 기대어 섰다. 노란 손전등불이 시멘트 벽 위의 붉은 자국 위로 번들거린다. 움직인다. 자국이 움직인다. 놀라 고개를 돌렸다. 복도였던 곳에 벽으로 변해있다.

갇혀버렸다.

핏자국이 늘어났다. 벽지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다. 핏자국들이 같은 모습으로 변한다. 글자다.

‘안녕? 네 이름이 뭐니?’

‘안녕? 네 이름이 뭐니?’

‘안녕? 네 이름이 뭐니?’

‘안녕? 네 이름이 뭐니?’

비명소리가 들린다. 내가 지르고 있는 것인지, 다른 누군가가 지르고 있는지도 모를 비명이었다. 눈을 감아버렸다.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사라져 있기를 빌면서. 사라져. 사라져. 사라져. 사라져. 제발.

눈을 떴다. 그곳은 완전한 암흑이었다. 벽도, 창문도 없는 텅 빈 공간이었다. 발밑에 아무 것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어둠뿐이다. 무섭다. 떨어질 것 같다. 비명조차 들리지 않는다. 숨도 안 쉬어진다. 여긴 우주일까?

떨어진다. 자유낙하. 무한을 향해 무한히.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끊어질 것 같이 꽉 감았다.

소리를 질렀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를 질렀다. 소리가 들린다. 소리 위에 또 다른 소리가 겹쳐 메아리친다. 놀란 나는 입을 닫고 귀를 막았다.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막은 손 사이로 소리가 스며들어왔다. 피가 스며들어왔다. 붉은 소리였다.

“안녕. 네 이름은 뭐니?”

“안녕. 네 이름은 뭐니?”

내 비명도 들린다. 욕도 들린다. 입은 의지를 가진 생명체처럼 방언 터지듯 욕설을 하고 있었다. 내 입이 아닌 것 같았다.

입이 멈췄다. 소리도 멈췄다.

눈을 떴다.

눈앞은 다시 원래의 복도로 변해있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손전등을 주웠다. 손전등은 꺼져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스위치를 넣어 보았다. 다행이, 켜졌다.




4.

복도는 맨 처음 봤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내 발 쪽으로 손전등을 옮겼다. 그곳에는 종이뭉치가 한 권 있었다. 그 위에 휴대전화가 놓여있었다. 나는 그 종이뭉치를 들어 올렸다. 피가 묻은 손에 종이가 붙는다.

그 곳에는 내 사진과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이게 진짜 너일까?’ 라고 써 있었다.

다음 장으로 넘겼다. 그 곳에는 내 사진이 붙어있었다. 다른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곳에도 역시 질문이 쓰여 있었다. 장수를 넘겨보아도 모두 똑같았다. 이름은 다르고, 사진과 질문은 같았다.

이상하다. 처음 사진과 마지막 사진이 좀 다른 것 같다. 차이가 눈에 띠는 편은 아니지만 분명 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종이뭉치를 차례로 넘겨보았다.

애니메이션처럼 사진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미묘하게 변해가는 얼굴들. 맨 마지막 장이 나왔다.

썩어 문드러진 얼굴이었다. 사진이 비명을 질렀다.

놀라 종이뭉치를 집어던졌다. 맨 처음 장에 글이 쓰여 있었다. ‘제발 전화해줘.’ 그 아래에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그 번호로 버튼을 눌렀다. 수화 음이 들린다.

“여보세요.” 다급한 목소리.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목소리다. 누구냐고 물었다.

“난 주희. 아까 봤었지, 우리?” 아, 아까 그 예쁜 여자아이. “지금 어디에 있어?” 난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전화기를 들고 움직이진 않았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럼 그 앞으로 좀 더 걸어오면 중앙계단이 있을 거야. 계단으로 올라와서 2학년 1반으로 와. 빨리 와야 해.”

전화가 끊어졌다.

다시 공간은 침묵한다. 무섭다. 더 이상 이런 것은 싫다.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고개를 들자, 나는 어느새 교실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교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놀라 밖으로 나가려 했다. 문을 열었다. 누군가가 보인다. 한걸음 다가섰다.

이상하다. 나랑 똑같은 옷. 나랑 똑같은 머리. 똑같은 손전등. 놀란 내가 발을 빼자 사라졌다. 문 밖은 다시 어두워졌다.

손전등을 열린 문 밖으로 비추어 보았다. 벽이 있는 것처럼 빛이 나아가지 않았다.

이상하게 뒤가 밝다. 고개를 돌려보니, 노란 원이 또 다른 문에 떠 있었다. 동그랗게 베인 어둠 안에 당황한 내 얼굴이 보인다. 놀란 내가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순간이었다.

낸 눈앞으로 수 천 명의 ‘내’가 뛰고 있었다. 마치 거울을 서로 마주보게 한 것 같았다.

계속 달려보았다. 그러나 쳇바퀴 돌 듯 나는 계속 같은 공간을 달리고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진 공간 속에 나는 방향감각을 상실해갔다.

멈추어 섰다. 내 앞에 무수히 많은 나도 멈추어 섰다.

나는 주머니 속의 휴대전화를 꺼내 아까 건 주희의 전화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수화 음이 울린다.

“여보세요?” 주희의 목소리였다.

난 내 상황을 설명했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더듬거리면서도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핸드폰을 그대로 들고 있어. 내가 곧 갈게.” 주희는 그 말을 끝으로 핸드폰을 끊었다.

이제 내 좌우로 또 다른 ‘나’들이 앉아있었다. 나는 좌우를 둘러보며 공포를 느껴야 했다. 그들은 나와 얼굴이 마주치지 않았다. 내가 졸리는 방향으로 똑같이 돌리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그들의 뒤통수만을 봤다.

왼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명이 들렸다. 왼쪽 끝에서부터 점점 비명소리가 커졌다. 여러 비명소리가 겹쳐 들렸다. 내 옆으로 6명 정도가 남아 있을 때,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종이뭉치 같은 것이었다. 사람의 형상으로 모인 종이뭉치였다. A4용지를 붙여 만든 거대한 인형이었다.

난폭한 인형이었다. 또 다른 ‘나’들은 차례로 해체되어갔다. 팔과 다리가 몸과 떨어져나가고 머리가 하늘을 향해 날았다. 또 다른 ‘나’들은 그렇게 죽어갔다. 나는 놀라 다음 칸으로 달렸다. 내가 일어서는 동작 하나 하나가 슬로우 모션으로 본 필름처럼 남았다.

종이뭉치 괴물은 필름을 뛰어넘듯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악을 쓰며 달렸고 내가 남기는 흔적, 또 다른 ‘나’들은 종이뭉치 괴물이 휘두르는 팔에 사라져갔다.

내 바로 뒤에 있는 ‘나’까지 죽었다. 그 피가 내 등으로 튀겼다. 축축하다.

난 이제 죽는구나, 하고 객관적인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죽는 것처럼.

“엎드려!”

명령대로 나는 엎드렸다.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굉음. 고개를 돌렸다. 종이뭉치 괴물의 몸이 분리되어 있었다.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주희가 서 있었다.

“괜찮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일어설 수 있겠어?” 나는 몸을 일으켰다. 다친 손이 아팠다.

“다쳤네. 손 이리 내봐.” 주희가 말했다. 내가 손을 내밀자, 주희는 손전등을 뺏어 내 손을 보았다.

“소독을 해야겠네. 아프진 않아?” 물론 아프지, 대답을 들은 주희가 웃었다. 온 몸의 긴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저건 뭐지? 내가 묻자 주희는 손전등을 비추었다. 종이뭉치는 시험지였다.

“일단 여기서 나가자. 안전한 곳으로 가면 설명해줄게.”

주희는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바로 옆에 있는 교실로 들어간 주희는 문을 닫고 이상한 손동작을 하면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이제 당분간은 안전해.”

넌 여기가 어딘지 알아?

“여긴 네 또 다른 마음속이야.”


그럼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말이야?

“그렇지 않아. 여긴 네 기억을 재구성해서 만든 가능성 세계야. 이 곳에 모든 것은 다 네 인격과 기억을 반영하는 것들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가 네 마음이나 뇌 속의 세계는 아니야. 네 기억으로 만든 세계지만 너랑은 분리되어 있어서 네가 원하는 대로 조종하거나 할 수 는 없어.”

그런데 왜 난 여기에 있는 거지?

“이 세계가 형성된 것은 네 무의식적인 소망일 거야. 네 무의식이 만든 세게기 때문에 나나 내 동료는 이 곳에 대해 완전히 알 수 는 없어. 다만 이런 저런 것을 보고 추측할 뿐이야.

“네가 여기 있는 이유 또한 우린 완전히 알 수 없어. 다만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는 설명할 수 있지. 우린 이 세계를 만든 자, 혹은 그 의지를 찾고 이를 제거하는 일을 하고 있어.”

잠깐, 동료? 그건 누구지?

“아까 잠깐이지만 겨우 연락이 되었었어. 네 기억 속의 한 사건을 찾았고 네가 그 곳에 접속해 있다고 말이야. 양호 선생님으로 기억할거야. 맞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은 내 동료야. 이름은 예림. 예림 씨랑 나는, ‘잠수부’야.”

잠수부?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가 있는 이 곳은 가능성 세계야. 가능성 세계는 물리적인 우주와는 다른 차원에 있는 세계지. 이 곳에 오는 방법은 단 하나, 물리세계에서 느끼는 현실감을 제거하는 거야. 이를 위해서는 감각을 차단해야하고, 가능성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신체성을 가지고 있어야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간단히 말하면 나와 예림 씨는 지금 빛이 차단되고 소리도 차단된 탱크 안에 들어가 있어. 그 안에는 황산마그네슘 용액이 들어있어서 중력도 느끼지 못하지. 감각차단탱크(Flotation tank)라는 거야. 들어본 적 있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엄청나게 깊은 변성의식상태가 되지. 그 상태로 의식체만 따로 분리해서 네가 있는 가능성 세계를 찾는 거지. 그걸 우리는 심해(心海)라고 부르는데 이 안을 ‘잠수’해서 이 가능성 세계를 찾고, 만든 장본인을 찾는 거야.”

왜 찾는 거야?

“가능성 세계는 무수히 많이 형성되어 있어. 대부분 그 세계는 ‘자아’가 형성하지. 자아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야. 단지 정보의 특정한 상태나 패턴이지. 간단히 말하면 자아는 ‘나와 관계된 것’이라는 이름의 형체가 없는 틀이야. 이 틀에 우주를 집어넣었을 때 걸러진 것이 바로 자아를 형성하는 재료가 되지.

“하지만 이 틀은 언제나 변화하게 되어있어. 그리고 변화는 자기 자신의 의지로 변화해야하지. 하지만 간혹 다른 이에게 이 변화를 조종당하는 경우가 있어. 그걸 다른 사람에 의해 뇌가 씻겨져 나간 거라 부르지. 세뇌(洗腦)말이야.

“이런 일이 발생하면 세뇌를 건 사람의 자아, 가능성 세계가 급속도로 팽창하게 돼. 그럼 가능성 세계에서 일종의 블랙홀을 만들게 되지. 그렇게 되면 다른 이들의 가능성 세계가 붕괴되어 버려. 바꿔 말하면 인격과 자아가 붕괴되어버리지. 이건 심각한 범죄야. 이 세뇌 행위를 중단시키고 네 자아를 다시 복구하는 게 우리 일이야.”

왜 하필 나야?

“이런 자들이 좋아하는 건 특히 트라우마가 심한 사람들이야.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얼마든지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지. 넌 지금 세뇌 당해 칼로리 메이트처럼 에너지를 빨아 먹히고 있는 거야.”

그럴 리가. 난 지금 이렇게 날 느끼고 있는데?

“지금 넌 여기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육체를 가진 너는 지금 병원에 누워있어. 천장만 바라보고 있지.”

말도 안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우선 이 세계에 대한 제어를 되찾아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너의 ‘이름’을 기억해야 해. 이름은 아무 내용도 없는 텅 빈 것이지만, 이 세계를 조종하는 일종의 인식번호(id)야.

“이걸 모르면 이 가능성 세계에 개입은 할 수 있어도 통제는 할 수 없지. 상대도 지금 그걸 노리고 있어. 우리도 마찬가지고.

“만일 네가 기억을 해 낸다면, 이 악몽을 끝낼 수 도 있어. 기억의 재구성을 돕는 것은 예림 씨가 전문이야. 난 기억에서 방화벽을 구축 하는 것이 특기지. 여긴 내가 방화벽을 구축한 공간이야. 일단은 안전해. 하지만 이 이상 일을 진행하려면, 일단 예림 씨하고 연락이 되어야 해. 우린 지금 서로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

하지만 난 내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너무 조급해 하지 마. 마음을 편히 가져. 이 세계는 더 많이 자각하고 더 많이 기억한 사람이 강해져. 그리고 기억은 마음이 편안해야만 되돌아와. 그러니 기분을 안정시켜야 돼.”

말은 쉽지.




5.

나는 주희가 만든 방화벽 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주희는 휴대전화를 잃어버리지 말라고 당부하고 밖으로 나갔다.

손은 주희가 치료해 주었다. 손에 감긴 깨끗한 붕대 위로 피가 조금 배어나왔다.

조용하다.

이곳은 과학실이었던 것 같다. 다른 곳과는 달리 크고 단단한 실험용 책상들이 있고 그 위에 실험도구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 있다. 알코올램프도 올라와 있다. 그 옆에는 8각형으로 된 성냥 통이 놓여 있었다.

문 쪽에 있는 책상에는 인형이 가득하다. 기억이 난다. 어릴 때 학예회를 할 때였다. 집에 있는 인형이나 장난감을 학교로 가지고 와 늘어놓고 장난감 전시회를 한 적 이 있었다. 그 때 사용한 장난감을 이 곳에 모아두었으리라.

역시 내 기억을 바탕으로 만든 세계인 것일까?

3단 변신 로봇이나 스스로 걸으며 말을 하는 건전지가 든 로봇이 있다. 여자아이들이 가져왔던 인형이 더 많다. 곰, 기린, 고양이, 토끼, 지금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뺨에 검댕을 묻히고 있다.

손전등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성냥 통에서 성냥을 집어 들고 옆구리에 그었다.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작은 소리를 내며 불이 붙어 알코올램프에 옮겼다. 불꽃이 머리를 흔들며 탔다.

알코올램프를 하나 더 꺼내 불을 옮겨 붙였다. 손전등을 끄고 알코올램프로 어둠을 녹였다. 흔들리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조금 안정된 것 같았다.

기억은 알코올램프 위로 피어나는 검은 연기처럼 나타났다 사라져갔다. 명확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몽롱한 쾌감이 느긋하게 꿈틀거리며 뇌를 감싼다. 땀처럼 배어나오는 의문이 냄새를 피우며 증발한다.

나는 성냥 통의 성냥개비로 탑을 쌓았다. 바닥에 11자 모양으로 성냥개비를 올려놓고, 다시 2개를 꺼내 우물 정(井)자 모양이 되도록 포개어 놓았다. 포개어 놓기를 반복할 때 마다 의문의 수증기는 제 몸집을 불려갔다.

이 곳이 모두 내 마음이 반영되어 생긴 세계라니, 그런데도 난 내 이름조차 기억하고 있지 못하다. 이 세계의 재료는 나인데도 지배하는 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니.

과연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주희라고 한 그 여자아이 - 애초에 그 이름이 진짜인지 알 게 뭔가? 어쩌면 이름이 알려져 조종당하지 않으려고 가명을 댄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 그리고 그 여자 - 주희가 예림이라 부르던 여자가 정말 내 편일까? 어쩌면 그들이 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날 세뇌한 장본인은 아닐까?

아니, 애초에 이 세계가 가능성 세계라니, 그것부터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세상에는 사람 숫자만큼 가능성 세계가 있다? 알 수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았던 그 여자아이를 내가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이 곳이 적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방화벽이 아니라, 나를 고립시켜서 동료와 같이 살해하려고 만든, 일종의 독방이라면?

어쩌면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두 나를 해치려고만 한다면? 다이버 같은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들이 날 도와줄 거라고 100% 확신할 수 있지?

뭘 믿어야 하지?

바스락, 소리에 놀라 손전등을 향해 뛰었다. 손전등을 소리가 났던 곳을 향해 돌렸다.

인형이다. 토끼 인형, 그 옆에 고양이 인형, 강아지 인형, 어린 아기 인형도 있다. 쌓아둔 인형들이 무너져 내린 것 같다. 안도의 한숨이란 이런 것이구나,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간다.

바스락, 소리가 났다.

다시 손전등을 돌렸다. 변한 것은 없었다. 여전히 인형들이 있다. 고양이 인형, 강아지 인형, 어린 아기 인형. 잠깐.

토끼인형은?

작은 소리가 났다. 손전등 불빛이 어둠을 가른다. 노란 불빛 아래 성냥개비 탑은 무너져있었다.

누구야! 누가 있는 거야?! 주희?! 예림!?

또 다시, 소리가 났다.

토끼인형이었다. 빨간 나비넥타이를 메고 바보같이 잘난 척 하고 있는 얼굴을 한 인형이었다. 토끼의 입은 X자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에도 이런 토끼가 있었다.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인형에게 다가갔다. 확인하고 싶었다. 이 인형이 ‘죽어’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손을 뻗었다. 토끼의 귀를 향했다. 검댕 묻은 털은 흰색 보다 회색에 가까웠다. 토끼의 표정은 고요했다. 손은 귀를 향해 다가갔다. 붕대 감은 손이 회색 귀를 만졌다.

아무 일이 없었다. 한 걸음 물러나려 했다.

울음소리.

형광등이 켜졌다. 눈이 부시다. 너무 밝아 색이 잘 구분이 안 될 정도다.

가늘게 뜬 눈으로 토끼 인형을 보았다. 토끼 인형의 입이 X자 모양으로 갈라지며 커진다. 그 안으로 무수히 많은 이빨들이 나타났다. 커졌다. 토끼 인형이 부풀어 올라 나 보다 더 커졌다. 수 백 개의 질서정연한 이빨들이 나를 향한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토끼 인형은 거대한 몸집을 이기지 못해 바닥을 기며 나에게 다가온다. 침을 흘린다. 바닥으로 떨어진다.

바닥에 있는 알코올램프까지 달려가 토끼 인형의 아가리를 향해 던졌다. 괴성을 지르며 입에 옮아 붙은 불을 끄려는 듯,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토끼를 뒤로 하고 문을 열려 했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

휴대전화를 꺼냈다. 급히 주희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 사이에도 토끼 인형은 다가온다.

온 사방에 피로 쓴 것 같은 글자가 떠오른다. 실험실 책상 위에도, 알코올램프에도, 바닥에도, 천장에도, 벽에도, 모두 같은 글자가 써 있다.

‘네 이름이 뭐야?’

그만! 그만하라고!

휴대전화에서 주희의 목소리가 들린다. 살려줘, 내가 말했다. 살려줘. 살려줘.

거대한 토끼 인형의 입이 탄내를 풍기며 다가온다. 내 코앞에 있다. 신경이 끊어질 것 같다. 난 이제 죽는구나. 난 누구지? 왜 난 여기 있는 거야?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넌 도대체 누구냔 말이야. 왜, 왜, 왜?

강한 풍압에 넘어졌다. 눈을 떠 보았다. 토끼 인형 괴물이 나가 떨어져 신음을 내며 일어서려 하고 있었다.

“괜찮니?” 편안한 목소리. “주희에게 내 소개는 들었지? 난 예림이라고 해. 지금은 느긋하게 인사할 상황은 아니네?” 예림의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다. 휴대전화 위로 안테나나 솟아나 있는 것처럼 푸른빛이 둥글고 긴 모양으로 솟아나 있었다. 파이프 모양 같았다.

토끼 인형 괴물이 달려든다. 예림은 나를 밀어내고 토끼 인형을 향해 푸른빛을 휘둘렀다. 둔기에 부딪힌 것처럼 괴물이 나가떨어졌다. 예림의 뒤로 곰 인형이 거대해진다. 조심하라고 소리를 쳤지만 너무 늦었다. 예림은 공중을 날아 벽에 부딪혔다.

나는 알코올램프와 성냥 통을 찾았다. 피가 묻은 것처럼 내 이름을 묻고 있었다. 나는 성냥에 불을 붙이려 했다. 손이 떨려 잘 붙지 않았다. 곰 인형 괴물이 나를 잡았다. 나는 공중에 떴다.

“이름이 뭐야?” 아이 같은 목소리. 기분 나쁘다. 젠장, 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곰 인형 괴물의 목이 날아간다.

잘려나간 목 뒤로 주희의 얼굴이 보인다.

“예림 씨! 괜찮아요?” 주희가 소리쳤다. 곰의 손은 아직도 날 잡고 있었다. 주희의 손에도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다. 주희의 것은 붉은 기가 도는 분홍색이었다. 예림과는 달리 날카로워 보이는 납작한 모습이었다. 주희가 칼처럼 분홍빛을 휘둘러 곰의 팔을 잘랐다.

나도 좀 물어봐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목을 부비며 일어섰다.

“괜찮긴 한데, 좀 힘드네? 주희 씨. 좀 도와줄 수 있어?” 예림이 토끼 괴물의 앞발을 푸른빛으로 막으며 말했다.

주희가 뛰어 올랐다. 토끼 괴물은 귀를 늘려 주희의 배를 때렸다. 주희가 나가떨어졌다. 예림이 푸른빛으로 괴물의 뒷다리를 후렸다.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예림이 푸른빛의 끝으로 토끼 괴물의 목을 눌렀다. 틀어 올린 머리가 풀려 어깨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주희 씨, 빨리! 이 쪽이 본체인 것 같아!”

주희는 꿈틀거리며 일어서는 곰 괴물을 무시하고 달려와 토끼 괴물의 머리를 찼다. 강렬한 충격음. 분홍빛으로 목을 잘랐다. 솜이 내장처럼 튀어나왔다.

“주희 씨! 괜찮아?”

“예! 클라이언트는 어때요?”

아마 나를 말하는 것이리라.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인형이 본체였을까? 한방 먹었네.” 예림이 말했다.

“아니요. 제 생각은 달라요.” 주희가 말했다. “이것도 분명 원격조종일 지도 몰라요. 어쩌면 적은 아바타를 이용해 인격 분할을 해서 병렬조작하고 있을 수 도 있어요.”

“잠깐, 그렇다면?”

“맞아요. 이 녀석들 모두가 적의 본체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죠.”

그럼, 이 녀석들은 아직 ‘죽지’ 않았단 말이잖아!

말은 씨가 된다고 했던가.

어느새 잘려나간 인형들은 한 덩어리로 모이고 있었다. 인형뿐이 아니었다. 알코올램프나 실험도구까지 모두 한 덩어리로 뭉치고 있었다. 거대한 토끼 인형 괴물의 형상을 띠어가고 있었다.

배를 자기 손으로 가르자, 내장이 튀어나오듯 여러 가닥으로 촉수가 튀어나왔다. 그 끝에는 모두 X자로 갈라지는 입이 달려 있었다.

“여긴 저에게 맞기고 모두 밖으로 나가요!” 주희가 말했다.

“예림 씨는 클라이언트의 기억을 재구성해주세요. 데이터는 충분히 모였죠?”

“조금 부족하기는 하지만, 가능성 세계 구조분석 어느 정도 했어. 비는 건 보간 해서 어떻게 해 볼 수밖에, 괜찮겠어? 주희 씨?”

“괜찮아요. 방화벽은 이미 해지한 상태에요. 복도 끝 2학년 5반 교실에 방화벽을 새로 설치해두었어요. 그 곳으로 가요, 어서요!”




6.

나의 의견은 묵살된 체 예림은 나를 데리고 문 밖으로 나갔다. 문 밖은 어두웠다. 복도를 달리며 예림이 말했다.

“이제 남은 건 당신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해서 당신의 진짜 ‘이름’을 아는 수 밖에 없어요. 그렇게 하면 이 가능성 세계의 파동방정식 같은 것을 알 수 있죠.”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건 당신의 게슈탈트가, 인격이 붕괴되어서 그래요. 자아는 기억과 그 기억을 유기적으로 조합하는 게슈탈트로 구성되어있죠. 게슈탈트는 실체가 아니에요. 일종의 상태죠.

“이건 마치 단어와 의미의 관계와도 같아요. 단어는 특별한 순서로 배열해야만 의미가 발생하죠. 하지만 단어 그 자체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과 같아요.”

단어는 의미가 있잖아요! 사전도 있는데!

“의미는 그 상황 안에 존재해요. 그렇기 때문에 같은 단어도 다른 상황에서는 다른 의미를 띠게 되죠. 단어와 의미는 일 대 일로 짝지어져 있지 않아요.

“기억도 마찬가지에요. 지금 당신의 기억은 제대로 된 조합을 이루지 못해 그냥 배열해 놓은 것일 뿐이에요. 당신은 사실 진짜 ‘당신’이 아니에요. 진짜 당신을 구성하는 조각들로 만든 ‘그림자’일 뿐이지요. 이 세계처럼 말이에요.”

그럼 내가, ‘내’가 아니란 말이에요?

“말하자면 거울이나 사진 속의 자신의 모습 같은 것이죠. 다 왔어요. 잠시만 기다려요.”

예림은 휴대전화를 꺼내 무언가 버튼을 누르더니, 미닫이문을 열었다.

안에는 카펫이 깔려 있었다. 하얗고 텅 빈 공간이었다.

“여긴 주희가 구조분석을 해서 비워놓은 정보공간이에요. 여기에서 당신의 기억을 재조합하겠어요. 부분에는 전체가 들어있고 전체에는 부분이 들어있다, 이게 게슈탈트의 특징이죠.

무슨 소리에요?

“홀로그램이란 거 알아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예림은 말을 이었다. “홀로그램의 말은 전체를 담았다는 뜻이에요. 홀로그램 필름에서 100분의 1에 해당하는 크기의 한 조각 꺼내서, 레이저를 쏴 홀로그램을 투영하면 어떻게 될 거 같아요?”

잘린 조각만 나오겠죠.

“아니에요. 100분의 1 만큼 선명한 전체 그림이 나오죠. 이래서 홀로그램이에요. 게슈탈트는 전체와 부분이 모두 상보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당신은 분명 그림자 같은 존재지만, 당신 또한 원래의 ‘이름’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그걸 찾아내야 해요.”

어떻게요?

“나만 믿어요.” 예림이 손을 뻗었다. 내 두 눈을 찌르려는 듯. 나는 놀라 눈을 감았다.

“그대로 눈이 붙어 떠지지 않을 거예요. 숨이 들어왔다 나가는 걸 느껴 봐요. 피부에 느껴지는 감촉을 느껴 봐요. 내 목소리가 들리죠? 내 목소리만 들리게 될 거에요. 눈이 떠지지 않아요. 떠봐요, 안 떠져요!”

정말이었다. 눈이 떠지지 않았다. 지금 이럴 때 가 아니잖아요. 주희가 위험할 수 도 있어요! 도우러 가야 되잖아요, 내가 말했다.

“당신이 기억을 되찾고 ‘이름’을 되찾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고 가장 빠른 길이에요.”

숨이 들어온다. 나온다. 들어온다. 나온다. 바닥의 감촉이 허벅지에서 느껴진다. 몸의 무게가 느껴진다. 상처가 아프다. 이마가 시원해진다. 가려워진다.

“이제 숨은 점점 느리게 쉬게 될 거고, 온 몸의 힘이 빠질 거예요. 온 몸의 힘을 빼면 가능성 세계에 접근할 능력이 생겨요. 이제 당신은 이 곳과 차단될 거예요. 당신을 감싸고 있는 힘을 느껴 봐요. 나를 믿어요. 점점 더 깊고 안락한 곳으로 갈 거예요.”

나는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다. 무섭지 않다. 안락하다.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돌아간 것 같다. 나는 안전하다. 나는 편안하다. 탯줄처럼 연결된 예림의 목소리만 들린다.

“양 손을 비벼 봐요. 따뜻하게. 내가 도와줄게요.”

부드러운 예림의 손이 내 손을 감싼다. 비빈다. 따뜻하다. 예림의 손도, 내 손도. 온 몸의 힘이 완전히 빠진다. 편안하다.

“이제 빛이 보일 거예요. 그 곳을 따라가요. 그곳은 당신의 인생이 처음으로 잘못된 지점이에요. 그 곳에 가면 모든 것이 명확해 질 거에요.”

난 빛을 따라 갔다. 그 곳은 어린 내가 있었다. 난 어린 내 안으로 들어갔다.

학예회 날이었다. 연극을 하게 되었을 때,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잘 보이고 싶었지만, 내가 맡은 것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나무 역이었다. 이름은 송아였다.

송아가 바라 본 것은 내가 아니라 왕자님 역할을 맡아 장난감 칼을 휘두르며 의기양양해하는 친구의 모습이었다. 난 분했다. 하지만 나 또한 내가 나무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 날은 인형들의 파티가 있는 날이었다. 교실에 모인 우리들은 각자가 가져온 인형이나 장난감을 서로에게 소개시켜주고 있었다. 나는 송아에게 줄 선물로 토끼 인형을 가져왔다. 귀엽게 생긴 인형으로 골라서 주려 했다.

친구들이 내 인형을 보고, 여자애 인형을 들고 있다고 놀렸다. 송아는 나에게서 눈을 돌렸다. 분했다. 아직도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놀림이 들리는 것 같다.

“…바보래요, 바보래요, 바보래요. 여자애들, 토끼인형을, 갖고 논데요, 갖고 논데요.”

그만해.

“…는, 바보래요, 바로래요, 바보래요.

그만.

“…영이는, 바보래요.”

그만하란 말이야!

“호연이는, 바보래요. 바보래요. 바로래요.”

호연이. 그래, 맞아. 내 이름은 최호연이야. 난 최호연이야!

“잘했어요, 호연 씨! 내 말 들려요? 내 말이 들리면 그 방향으로 의식을 집중해요. 셋을 셀 거예요. 완전히 깨어날 거예요. 하나, 둘, 셋!”




7.

온 몸에 힘이 없다. 근육은 더운 여름 날 내 놓은 고무처럼 늘어져있었다. 나른하다.

벽이 날아갔다. 방화벽이 뚫린 것이리라. 방 안은 이제 원래의 교실 모습으로 변했다. 어둠이 차올랐다. 주희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거대해진 토끼 괴물의 입과 항문과 찢어진 배로 엄청나게 많은 촉수가 튀어나와 꿈틀거리고 있었다. 촉수 끝에는 모두 내 얼굴이 달려 있었다. 얼굴들은 일제히 외치고 있었다.

“안녕, 네 이름은 뭐니?”

괴물이 팔을 휘둘렀다. 조각들이 떨어져 나와 나를 향해 날아왔다. 모두 내 얼굴이 달려 있었다. 기분 나빴다. 토할 것 같았다. 예림이 푸른빛을 넓게 퍼트려 방패 모양으로 만들더니 나를 막았다. 푸른빛 밖으로 살덩어리들이 터지듯 내 얼굴이 터졌다.

“주희 씨, 괜찮아?”

“괜찮아요. 그것보다, 클라이언트의 기억은 어떻게 되었죠?”

“성공이야. 지금 내가 문자로 보낼게. 주희 씨, 클라이언트를 부탁해.”

이름을 들키지 않기 위해선가 보다. 나는 예림이 손짓한 대로 주희에게 달려갔다. 주희는 분홍빛을 칼처럼 휘두르며 촉수를 잘라내고 있었다. 바닥을 기는 촉수는 축축한 진액을 토하며 꿈틀거렸다. 나는 의자며 책상을 던지며 저항했다. 예림이 촉수에 맞아 나가 떨어졌다.

그러는 중에도 얼굴들은 네 이름을 묻고 있었다.

“예림 씨! 도착했어요! 이 공간을 탈구축할 거예요! 잠시만 시간을 끌어주세요.”

괴물을 예림이 막았다. 휴대전화를 몇 번 누르고 휘두르자, 주희가 종이 뭉치 괴물에게 한 것처럼 거대한 충격파가 토끼 괴물을 덮쳤다. 주희는 휴대전화의 번호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나는 책상과 의자를 던지며 계속 저항했다.

예림의 공격을 피하고 토끼의 커다란 두 귀가 예림을 때려 벽으로 날려버렸다. 나는 부서진 책상 다리를 들고 다가오는 촉수의 머리를 때렸다. 내가 내 얼굴을 때리는 기분은 최악이었다. 나는 공포에 사로잡혀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여러 갈래가 꼬아 만든 거대한 촉수 더미가 내 배를 쳤다. 나는 벽으로 날아가 버렸다. 숨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갈비뼈가 아프다.

네 개의 벽과 바닥이 변했다. 썩어 문드러진 태아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모습이었다. 이것도 내 모습일까? 팔을 버둥거리며 울며 나에게 매달린다.

나는 부러진 나무 조각을 박아 넣으며 비명을 질렀다. 예림이 빛의 막대로 때렸다. 야구공처럼 태아들의 머리가 날아다녔다.

“다 됐어요! 모두 눈을 감아요!” 주희였다. 명령대로 했다.

굉음과 괴성이 터졌다. 새하얀 빛이 눈꺼풀 위로도 느껴졌다. 의식이 점점 흐려진다.

흐려진다.

고요해진다.

눈을 뜨자 천장이었다. 형광등이 밝아 눈이 부셨다.

아까는 꿈이었을까?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손을 들었는데 손등에 식염수 관이 꽂혀 있었다. 약품 냄새, 소독약 냄새가 하얗게 풍겼다. 침대는 불편했다.

병원이다.

내가 왜 병원에 있지? 몸을 일으키려 했다. 옆구리가 아팠다.

“가만히 계십시오.” 누군가가 말했다. 가운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의사인 것 같다.

“치료는 성공인 것 같군요. 이름이 뭐죠? 나이는? 여긴 어디죠?”

나는 대답했다. 최호연, 나이는 18살, 고등학교 2학년, 여긴 병원인 것 같습니다, 라고.

“기분은 어때요?”

괜찮았다. 꿈만 아니었다면.

그런데 만일 그게 꿈이 아니라면?  나는 혹시 주희나 예림이라는 사람에게 치료를 부탁했나를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8.

나는 우울증 때문에 자살기도를 했었다고 한다.

기억은 완전히 돌아왔다. 나는 2일 동안 병원에서 안정을 취했고, 특별한 문제가 없는지 정신과 의사와 면담과 심리검사를 받았다. 특별한 이상은 없는 것 같다는 소견을 들었다.

면담이 끝나고 나는 병실로 돌아왔다. 돌아갈 준비를 해야 했다.

내가 꾼 꿈은 뭐였을까? 그렇게 리얼한 꿈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덕분에 마음 속에 있었던 무거움이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다시 태어난 것처럼 개운했다.

병원 침대 옆, 조그만 냉장고 위에 과일 바구니가 있었다. ‘주희 & 예림으로부터’ 라고 써 있는 카드가 들어있었다.

카드 뒤에는 약도와 초대 문구가 쓰여 있었다.

<終劇>

시드노벨에 투고한 것입니다. 라노베 형식을 의식해서 쓴 것입니다.
씩꼬델리이꼬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1440 단편 영엉방해 죄 손지상 2009.06.10 0
1439 단편 지그소 퍼즐 손지상 2009.06.10 0
1438 단편 어떤 만남에 대한 우연한 도청에서 발췌 g.codec 2009.06.11 0
1437 단편 생명의 나무7 라티 2009.06.16 0
1436 단편 모모지세 니그라토 2009.06.16 0
1435 단편 사흘, 한 달, 더 많은 시간 - 더글라스 라이트 안지형 2009.06.19 0
1434 단편 ㄱ 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 湛燐 2009.06.22 0
1433 단편 쭈꾸노미야키 湛燐 2009.06.22 0
1432 단편 시간. 강성훈 2009.06.22 0
1431 단편 사반트 후작국 니그라토 2009.06.23 0
단편 망각의 폐교, 그 위를 기는 광기 씩꼬델리이꼬 2009.06.24 0
1429 단편 옆 칸 남자1 몽상가 2009.06.25 0
1428 단편 망령5 하엘 2009.06.27 0
1427 단편 하나를 위하여 세이지 2009.06.28 0
1426 단편 차기 정권 수립 후 좀비化 바이러스 살포 및 경영 합리화에 대한 보고서 dcdc 2009.06.30 0
1425 단편 먼귓의 여인 룽게 2009.07.01 0
1424 단편 죽음의 무도2 메이 2009.07.03 0
1423 단편 정신이 홀리다.2 피러휀 2009.07.04 0
1422 단편 루시의 이기적인 몸매9 김몽 2009.07.08 0
1421 단편 카르마 쥔님 2009.07.09 0
Prev 1 ...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 110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