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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은 공정히 징수 되어야 한다>
죽은 자에게 세금을 걷으러 간다 편
DOSKHARAAS(도스까라아스) 씀.
** 제2회 판타지갤러리 공포/추리 단편대회 통합 우승작입니다.






1. 죽은 자에게 세금을 걷으러 간다.




온통 보라색으로 가득 찬 공간을 상상해보라.

바닥은 완전한 어둠이다. 눈을 위로 올린다. 두루마리가 펴지듯 보라색이 펼쳐진다. 점점 옅어지다 다시 짙어진다. 달이 둘 떠 있다. 어머니의 은색 눈동자. 어머니가 증오와 혐오를 담아 노려본다. 나를 노려본다. 사막을 노려본다. 하그무스. 외로운 우주에 뜬 버려진 행성. 내가 서 있는 곳이다.

달빛이 어둠을 베어낸다. 그 틈으로 건물이 보인다. 건물 틈 사이로 모래가 솟아나 있다. 길을 따라 지나간다. 어깨에 닿는 감촉이 차다. 내 그림자가 모래를 핥지 못하게 걸음을 재촉한다.

고양이의 하품, 창부의 거짓신음, 술주정뱅이의 주정, 아기 울음, 비명, 음악, 모래바람의 한숨, 잠꼬대, 단 하나의 소음으로 섞인다. 낮게 깔린다. 웅장한 떨림.

창녀와 남창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다. 살기 위해 몸을 판다. 구석진 곳 그림자 진 곳. 웅크린 신음소리. 기계적으로 살 부딪히는 소리. 짐승만도 못한 연놈들. 싸구려 매춘부는 추하게 늙었다. 그래서 싸다. 남자, 여자, 남자 동성애자, 여자 동성애자, 모두 급하다. 욕망 보다는 충동에. 사랑은 동전 몇 푼이다. 축축하게 젖은 아랫도리다.

끈적끈적한 긴장이 쏟아 내려갈 것이다. 아랫도리는 이제 개운하겠지. 거칠게 숨을 쉬며, 주머니를 뒤적이며. 조심하라고. 그림자에는 온갖 것이 녹아있어. 덩치 좋은 건달들이 숨어서 노린다고. 화대를 치루고 나오는 치들은 무방비다.

어둠 속에서 뒤통수를 노리고,

번쩍.

멍청이가 눈을 몇 번 깜박이고 쓰러질 것이고 달려든 건달들이 쓰러진 주머니를 뒤질 것이다. 이곳은 그런 곳이다.

오랜만에 일이 들어왔다. 세리청장의 뚱뚱한 손이 건넨 두루마리. 겨드랑이가 썩는 것 같다. 종교집단 <옴므>는 그 동안 세금포탈을 해 왔다. 정확히 말하면 세금포탈은 아니다. 종교집단은 신에게 속해 있다. 저 세상에 있는 셈이다. 죽은 자에게 세금을 걷을 수 는 없다. 그러나 세리청장은 걷고 싶어 한다. 옴므는 최근 돈을 벌고 있다. 막대한 양이다. 게다가 정치적인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세리청장은 옴므가 없어지길 바라는 셈이다.

세리청에 목줄이 묶인 내가 대신 해야 할 일이다. 썩은 고기라도 먹지 않으면 안 될 고모즈. 여섯 개의 다리로 기어 다니는 짐승.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짐승. 그것이 나다.

내가 알아야 할 것은 간단하다. 신도들의 실종을 조사하는 것. 신도들을 조종하는 법을 알아올 것. 그리고 옴므의 파괴다.

최근 옴므는 변했다. 그 전부터 기적을 이용해 장사를 해 왔다. 그런데 최근 신도들이 차례로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신도들은 마치 인형처럼 조종 당하는 것처럼 보였다. 교주 아흐하르 사쿰이 최종해탈을 위해 수행에 들어갔다고 선언한 뒤, 대제사장 조유움이 실권을 잡고 나서 일어난 변화다.

폐가에 준비해 놓은 아지트로 돌아왔다. 담요를 걷는다. 뚜껑을 연다. 안으로 들어간다. 담요를 걷으며 뚜껑을 닫는다.

어둡다. 부싯돌을 서로 때린다. 초에 불을 붙인다. 방은 작고 좁고 지저분하다. 문명을 위한 것은 어느 것도 없다. 모두 생존을 위한 것 뿐 이다. 바닥에 깔아놓은 고모즈 가죽위로 몸을 누인다. 잠을 청한다. 내일은 바쁠 것이다.

죽은 자에게 세금을 걷으러 가야 하니까.







2. 꿈도 없는 잠을 잔다. 죽은 것처럼.




일어났다. 몇 시간이나 잤을까? 알 수 없다. 완전한 어둠. 더듬어 부싯돌을 찾는다. 찰나의 불꽃을 의지해 초를 찾는다.

주황색이 어둠을 녹인다. 어둠이 주황색을 녹인다.

상자를 꺼내와 연다. 장비들이 있다. 바닥에 앉는다. 나이프를 꺼낸다. 일정한 리듬으로 바닥에 두들긴다. 날 끝부터 붉게 변한다. 열기가 얼굴로 전해진다. 아버지가 물려 준 무기다. 나의 조상들이 살던 이새람 군도. 그곳에만 나던 카툼석은 이새람 사람만 아는 리듬에 반응한다. 두들긴 진동이 안에서 맴돈다. 점점 강해진다. 붉게 타는 돌이다. 이 돌로 만든 것이 이 나이프다. 싸울 때는 나이프에 달린 방아쇠를 눌러 예열시킨다. 광부들의 섬이었던 이새람 군도에서 선조들이 괭이에 달고 돌을 캐던 것이었다.

카툼 나이프를 한쪽에 내려놓는다. 식기를 기다린다. 엉덩이가 차갑다. 담요를 끌어와 깔고 앉는다. 바닥에서 투척용 석단도를 들어 올린다. 단도 보다는 돌덩어리다. 가늘고 긴 돌덩어리다. 왼손에 투척용 석단도 다섯 개를 쥔다. 벽에 붙은 표적을 겨눈다.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수직으로 내려 준비 자세를 취한다.

손목을 뒤로 꺾으며, 팔꿈치만 이용해, 민다.

회전 없이 날아간다. 중력과 자신의 무게로 서서히 고개를 숙인다. 완전히 바닥과 수평이 되었을 때, 퍽, 꽂힌다.

오른손에 한 개를 더 옮긴다. 정수리 위쪽으로 손을 올려 겨눈다. 민다. 회전 없이 민다. 중심점을 민다. 난다. 고개를 숙인다. 수평이 된다.

꽂힌다. 두 번을 더 했다. 한 개가 왼손에 남았다. 다른 것과는 달리 큰 것이다. 투척용 외에도 공격용으로도 쓸 수 있을 만한 크기다. 왼손에 든다. 귀 옆으로 든다. 팔꿈치를 축으로, 손가락 뿌리로 중심점을 밀며, 뿌린다. 날아간다. 꽂힌다.

자리에서 일어나 게모즈 가죽으로 만든 가방을 연다. 방인복(防刃服) 상의와 하의를 꺼내 입는다. 방인복 상의에 달린 칼집에 커다란 투척용 석단도를 찬다. 그 위로 짬을 입는다. 짬은 남자들이 입는 헐렁한 상의다. 방인복 하의 양쪽 허벅지 부분에 달린 칼집에 투척용 석단도를 두 개씩 나누어 찬다. 머리에 터번모자를 쓴다. 검은 고수머리를 그 안으로 집어넣는다. 터번모자 안에 카툼 나이프를 넣는다. 그 위로 하층민이나 쓰는 싸구려 터번을 감는다. 허리끈에 ‘검은 손’을 찬다. 검은 색으로 염색한 가죽 주머니에 모래를 채운 무기다. 샌들 끈을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판초를 입는다.

완벽하다. 3류 용병의 모습이다. 누구도 나를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천장을 뜯어낸다. 담요를 걷어낸다. 예전에 도살장이었던 곳이다. 지금은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에 사람들이 가까이 하지 않는다. 내가 낸 소문이다.

창문으로 다가간다. 불투명한 막이 쳐져 있다.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햇빛이 강하다. 세상이 너무 선명하게 보인다. 공공 정류장으로 향한다. 싸구려 터번과 지저분한 판초를 본 나를 주목하는 사람은 없다.

고모즈가 짧은 팔다리를 뒤뚱거리며 다가왔다. 기사와 흥정을 한다. 수레에 탄다. 딱딱한 의자. 눈을 감는다. 꿈도 없는 잠을 잔다. 죽은 것처럼.

기사가 나를 깨운다. 도착했단다. 삯을 치루고 나온다.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미리 숙지한 정보대로 행동한다. 술집을 찾는다. 이름은 <바아냐>. ‘호법청’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다. 그 곳에서 정보를 교환한다. ‘호법청’은 종교 단체 <옴므>와 계약한 경호원 조합이다. 모두 신자들이다. 이들이 왜 종교 같은 것이 빠졌는지는 그들만이 알 것이다. 적을 죽이고 여자를 먹는 것이 일상인 녀석들이 조용히 기도나 한다? 믿을 수 없는 노릇이다.







3. 바야나




<바야나>는 조용한 곳이었다. 바닥에 놓인 테이블 위로 담배 연기가 깔린다. 방석 위에 비스듬히 앉은 자들 옆에 남창들이 교태를 부린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방석이 푹신하다. 상 위에 다리를 올렸다. 내 자세를 보고 눈길을 주는 자들이 있다. 신경 쓰지 않는 척 한다. 힘 좀 쓴다는 놈들일 것이다. 그래봤자 어깨너머로 배운 놈들일 뿐이다. 나는 이게 직업이고 이걸로 먹고 산다.

“주문은?” 종업원이 다가왔다.

“맥주 한 부대. 고모즈 새끼 통구이 하나. 그리고 여자 셋.” 내가 대답했다.

“손님. 저희 가게에서는 여자는 취급하지 않습니다.”

“뭐? 그럼 저기 뚱뚱한 놈들이 끼고 있는 항문 팔이들은 뭐야?”

공기가 식어간다. 서늘하니 좋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손님.”

“일단 먹을 것부터 가져와.” 상을 발로 찬다. 종업원이 급히 상을 돌려놓는다. 방석 위에 팔을 괴고 눕는다.

종업원이 음식을 가져왔다. 누운 채로 고모즈 새끼의 뒷다리를 씹는다. 꽤나 질이 좋다. 부드럽게 씹히고 걸림 없이 넘어간다. 만족스럽게 펴지는 얼굴을 억지로 굳힌다. 맥주 부대의 뾰죽한 주둥이를 문다. 단숨에 들이킨다. 맥주가 목을 간질인다. 시원하다. 상급품이다.

“야!” 종업원을 부른다. 나를 돌아본다. 비굴한 미소. 나는 맥주 부대를 던졌다. 음식 접시도 던졌다. 종업원의 얼굴이 맥주와 피로 젖었다.

“이런 것을 먹으라고 내놓아! 날 뭘로 보고! 사장 나오라고 해!” 말을 하면서 몰래 ‘검은 손’을 풀어 쥔다.

공간에 긴장이 느껴진다. 공간이 수축하듯 굳어간다. 무거워진다. 검어진다.

“손님, 잠깐 나오시죠.” 바운서(Bouncer)다. 호법청 소속일 것이다. 검은 옷을 입고 있다. 여자들이 입는 짬마다. 체격이 좀 큰 편이다. 헐렁한 짬마 밖으로도 근육을 갸늠할 수 있다. 키는 나보다는 작았다. 옆으로는 나보다 컸다. 이런 녀석들은 걱정 없이 팰 수 있다. 서로 합의 하에.

“잠깐이면 됩니다. 나오시죠.” 정중하고 낮은 말투. 말투로는 분노를 숨길 수 없다. 피부를 찌르는 것 같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누운 채로 있었다. 대신 사타구니를 걷어 올렸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진다. 녀석의 대갈통 위로 ‘검은 손’을 내리친다. 둔탁한 소리. 코에서 피가 흐른다.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자들이 일어서려 한다. 나는 달려들었다. 상을 밟고 뛰었다. 놈들은 비스듬히 누워있다 몸을 일으켰다. 머리를 찼다. 돌 접시를 세워 들어 내리 찍는다. 검은 손을 휘두른다. 남창의 입이 찢어진다. 피가 튄다.

“덤벼, 이 새끼들아! 덤벼! 내 손에 죽던가, 아니면 똥내 나는 항문 팔이 똥꼬나 빨다 뒤지는 거지, 간단하잖아? 덤벼!”

쓰러트린 놈들의 나이프를 뽑아 들었다. 대형 마제 석단도다. 주방 쪽에서 사람이 나온다.

“손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기분 나쁘게 정중한 놈들이다.

“이 동네는 뜨내기 대접을 이렇게 하나? 한 몫 잡아볼까 하고 왔더니 이거 더럽구만.” 나이프를 던졌다. 일부러 맞지 않게 겨냥했다.

“이제 그만 하고 손들어.” 뒤쪽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렸다. 쇠뇌였다. 활이 내 목을 바로 노리고 있었다. 손을 들었다.

“이제야 사나이가 나타났군. 이 새끼들은 죄다 똥고 파는 놈들 같아서 말이지. 사내다운 사내가 없어서 말이야.”

“정체가 뭔가.” 차가운 목소리.

“보시다시피 싸구려 용병이지. 여기 오면 일거리가 있을 거래서 말이야.”

“나이프랑 검은 손을 버려.” 들은 대로 했다. 그는 떨어진 나이프와 검은 손을 찼다. 미끄러진다. 내 품에 있는 대형 투척용 석단도를 찾아 버린다. 허벅지에 있는 것은 알지 못했다.

“안으로 들어가.” 그의 석궁이 가리키는 곳으로 들어갔다. 주방 안 쪽으로 들어간다. 천을 양쪽으로 가르며 들어간다.







4. 잠입




“일을 하고 싶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게 되지.”

“실력은 충분한 것 같군. 배짱도.”

“있는 건 그것 뿐 이니까.”

모르고 부리는 허세는 어려울 것이 없다. 하지만 허세인 줄 알면서 부리는 허세는 어렵다. 묶여 있다. 괴롭다. 등줄기가 차갑다. 식은땀이 흐른다. 이곳에 잡혀와 쏟아지는 발길질을 버텼다. 근육이 경련을 일으킨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의심하게 해선 안 된다. 연기해라. 틀에서 뽑아낸 것 같은 사람이 되라. 평균적인 사람이 되라.

“이름은?”

나는 가명을 댔다.

“수상해보이진 않는데 말이지. 뭔가 구리단 말이야. 정부 쪽 끄나풀인가 하고 말이야.”

“뭐라고? 이봐, 거기 너.” 내 옆에 서 있는 자에게 말했다. “내 팔 좀 걷어봐.” 당당한 말에 놀란 듯 저항 없이 팔을 걷었다. 커다란 흉터가 있었다. 도마뱀이 붙어있는 것 같은 흉터.

“정부군에 대항하다 생긴 상처다. 그런 오해만으로도 사람을 죽인 적도 있어. 조심해줬으면 좋겠군.”

“레지스탕스였나?”

“로둔 파였지.”

“어머니 하그무스여.”

“자비 보다 칼을 내리소서.”

사실이었다. 난 레지스탕스였다. 하지만 로둔 파는 아니었다. 나와 이야기를 하는 자는 호법청의 인사 담당자다. 자료를 통해 미리 알고 있었다. 이름은 고쏘툼이다. 이 자는 원래 레지스탕스 로둔 파의 계파 출신이다. 나와 고쏘툼이 나눈 암구호는 간부 급 만이 아는 것이다. 그보다 밑에 있는 자들은 ‘자비를 내리소서’라고 대답한다.

“간부였나?”

“계파의 계파 정도 되는 작은 파였지만.”

“…”

고쏘툼이 손짓을 해 부하를 불렀다. “풀어줘라.”

성공이다.

“미안하군, 의심을 해서. 요새 대제사장님을 암살하려는 자들이 많아서 말이야. 교주님께서 최종해탈을 위해 수련을 하고 계신 와중이라 교단이 많이 힘들거든. 인사가 늦었군. 난 고쏘툼이네. 이봐. 이 친구 무기를 돌려주고 교단본부로 보내.”

“잠깐. 예약한 여관에 짐이 좀 있어서 말이지. 다녀와도 될까? 내일 교단본부로 내가 바로 가지.”

“이봐. 교단의 위치를 알려줘. 내일 문지기에게 고쏘툼이 불렀다고 하면 알걸세.”

교단 위치를 안내 받은 뒤 밖으로 나왔다. 여관을 찾아 갔다. 세리청장에게 미리 들은 곳이다. 이곳에서 접선을 하라는 명령이었다.

얻어맞은 상처를 무시하며 담요 위에 몸을 뉘었다. 가수면(暇睡眠)을 취한다.

문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눈을 떴다. 얻어맞은 곳이 아직도 아프다. 들어오라고 한다.

“세리청장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어떻게 하셔야 하는 지는 이미 알고 계시겠죠?”

“예.”

“저를 미행하시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위대한 게른을 위해.”

“위대한 게른을 위해.” 나갔다. 속으로 그를 비웃으며 다시 잠을 청했다.

꿈을 꾼 것 같다. 괴로워했던 것 같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뛰는 가슴과 흥건한 땀으로 미루어 볼 뿐이다. 아침이다. 일을 시작할 때 가 되었다.

미리 들은 대로 찾아간다. 교단 본부 앞이다.

교단 본부는 웅장함이었다. 하늘을 강간이라도 하려는 듯 곧게 솟은 탑이었다. 겉은 검은 칠이 돼있다. 교단의 문은 내 키의 다섯 배는 될 정도로 컸다. 문에는 화려한 장식이 되어 있었다. 나는 문지기에게 다가갔다. 고쏘툼을 찾아 왔다고 말하자 그들은 매우 놀랐다. 알아보겠다면 문지기 중 하나가 들어갔다. 조금 기다리자 돌아온 문지기가 나를 안내했다.

안은 화려했다. 이국의 조각상, 아름다운 그림, 기기묘묘한 모자이크, 모래 그림, 기하학적인 도형, 사치는 모두 이곳에 있었다. 바닥은 매끄러운 돌로 장식돼있었다. 걸을 때 마다 전해지는 냉기가 경외감마저 들게 했다.

그가 안내한 곳은 고쏘툼의 개인 사무실이었다. 수행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서 오게. 갑자기 정신이 없겠지만 바로 임무를 맡아줘야겠어. 사실 얼마 전 있었던 이단들의 공격으로 꽤나 인원이 줄었거든.” 세리청의 공작 때문인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옷을 입어주게.” 교단에서 입는 여자 옷 짬마 같은 긴 것이었다.

“롭바라는 옷이지. 우리 교단은 모두 이 옷을 입네. 이 옷을 입고 나를 따라오게. 입문 의식이 있어. 호법청 소속에게는 형식적인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우리는 종교를 강요하지 않지.”

그러시겠지.

옷을 입고 그를 따라갔다. 그 와중에도 미리 숙지한 정보와 대조하며 지형을 머릿속에 넣어두었다.

“저기가 기도실이네. 대제사장님께서도 곧 오실거야.” 고쏘툼이 내 쪽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

폭발.

“대제사장님이 위험하시다!”

달린다. 고쏘툼도 달리고 있다. 고쏘툼이 품에서 대형 마제 석단도를 꺼냈다. 복면을 남자들이 보인다. 세명이다. 폭발로 생긴 연기를 뚫고 달린다. 품에서 대형 투척용 석단도를 꺼 손을 허벅지 옆에 두고 원을 그리듯 휘두른다. 석단도를 머리 위에서 뿌린다. 손목의 튕김 없이 밀듯이, 중심을 민다. 한 사내가 대제사장의 목을 노린다. 석단도가 난다. 회전 없이 공간을 미끌어지듯 난다.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대제사장을 노리는 자의 등을 향해. 완만하게 떨어진다. 쓰러진다. 멈추지 않고 달린다. 고쏘툼이 다른 자에게 몸을 던진다. 내 입에서 고함이 터진다. 나를 향해 석단도가 날아온다. 몸을 옆으로 굴려 피한다. 허벅지에 찬 네 개의 석단도를 연달아 던진다. 놈의 팔에 맞는다. 놈은 무기가 없다. 달려든다. 고개를 숙이며 허리를 감는다. 쓰러트린다. 올라탄다. 검은 손을 쥐고 머리를 노린다. 휘두른다. 모래를 채운 가죽 주머니가 춤을 춘다. 복면과 복면 아래의 단단한 것이 찌그러진다.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열 둘. 폐가 터질 것 같았다. 숨을 돌리기 위해 잠시 쉬는 동안 복면에서 가는 목소리가 새 나온다. “당신이…도대체…왜…?” 입을 친다. 눈을 친다. 눈에서 피가 난다. 안와가 깨진 것 같다. 푹 쉬시길. 위대한 게른을 위해 죽는 것쯤은 각오했잖아? 날 원망 하지마. 큰 먹이를 사냥하려면 미끼도 커야하는 법이지.







5. 비밀




화려한 의식이었다.

대제사장은 내가 마음에 든 듯하다. 자료에 의하면 동성애자라 했다. 어쩌면 나에게 욕정을 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난 그렇게 느끼하게 생긴 남자는 사양이다. 그리고 남자보다는 여자가 좋다.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쁜 자였다. 그는 분명 마즉크를 사용할 줄 안다. 나는 그것이 신화에나 나오는 것으로 알았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물체를 손도 대지 않고 움직인다. 다른 자 들을 조종할 줄 도 아는 것 같았다. 단순한 마술이 아닌가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알 수 없었다. 나는 예전에 서커스단에서 마술을 보여주며 먹고산 적 도 있었다. 그런 내 눈에도 속임수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내 속을 읽는 것이 아닌가 걱정할 정도였다.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나는 지금 아무 빛도 없는 독방에 갇혀 있다. 무기는 아까 다 반납해야 했다. 있는 것은 카툼 나이프 뿐 이다. 함부로 쓸 수 는 없다. 분명 어디선가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냥 방치할 리가 없다. 그 증거로 매번 물과 음식이 떨어질 때 마다 물과 음식이 들어온다. 이 때 만 붉은 등불 빛이 들어온다. 그럴 때 마다 눈이 찢어질 것처럼 부시다.

나머지 시간은 앉아서 어둠과 마주하고 있어야 한다. 어둠은 나를 두렵게 한다. 텅 빈 것은 끌어들인다. 나의 과거도. 나의 힘도. 나의 의지도. 내가 보내온 과거들이 살아난다. 내가 죽인 자들이 나타나 나를 원망한다.

독방수행이라 했다. 아무 소리도 없는 어두운 공간에 가두는 것. 분명 이건 고문을 위해 정부군이 개발했던 기술이다. 이런 공간에서 오래 있으면 발광하게 된다. 그런데 왜 이곳에서?

아까부터 이상한 냄새가 난다. 기분이 이상하다. 사고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이, 생각이 연결되지 않는다. 냄새가 더 강해진다.

(아버지. 어머니는 어떤 분이었나요. 검은 뱀이 싫어요. 전 검은 뱀이 싫어요 아버지. 고모즈를 죽여주세요. 아들아 네 이름은 위대한 왕의 이름이었단다. 털투성이 놈들아! 싸울 준비를 해라! 피. 죽음. 전쟁. 폭발. 죽여라. 죽여라.)

뺨을 때렸다. 정신을 놓으면 안 된다.

냄새가 점점 더 강해진다. 롭바를 벗는다. 끝을 조금 찢는다. 천을 남겨 놓은 물을 적신다. 코와 입을 막는다. 이 냄새가 수상하다.

소리가 들린다? 환청인가? 진짜 소리인가? 모르겠다. 내가 누구인지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는 자눈. 세리청 소속 파괴공작원. 작전 목적은 실종 사건과 세뇌 기술 조사, 그리고 옴므의 파괴. 나는 자눈. 이새람 계. 나는 자눈. 정부의 더러운 고모즈. 썩은 고기를 먹는 사막의 비루먹은 고모즈. 나는 자눈. 자눈.

발자국 소리다. 분명하다.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야. 가까워진다. 문 앞까지 왔다. 숨을 크게 들이쉰다. 입을 가린 천을 떼 숨긴다. 눕는다.

문이 열린다.

눈꺼풀 밖으로 붉은 기운이 보인다.

“잠들었군.” 고쏘툼이다.

“그런 것 같습니다.”

“세례실로 데려갈 준비를 해. ‘은총’을 받아야 하니까.”

내 어깨에 느껴지는 감촉. 덮듯 잡는다. 비튼다. 손목관절이 빠지는 소리. 비명. 불빛을 향해. 달려든다. 눈이 부시다. 비명소리가 나는 쪽으로 손을 뻗는다. 입이 잡혔다. 손 위로 주먹을 꽂는다. 살이 많은 두툼한 곳으로 내리친다. 내리친다. 코의 연골이 뭉개지는 소리가 난다. 눈이 부시지 않을 때 까지 내리친다. 뒤에서 목을 잡혔다. 벽에 부딪힐 때 가지 밀어붙인다. 숨이 빠져나가는 충격. 빛에 익숙해졌다. 덜렁거리는 손이 보인다. 잡아챘다. 비명. 팔꿈치가 어깨 위로 오게 잡는다. 두 손으로 몸 쪽으로 당긴다. 팔꿈치가 부러진다. 미칫- 하고 인대가 끊어지는 소리가 난다. 비명을 향해 팔꿈치를 휘두른다. 팔꿈치 뒤 삼두근에서 둔탁한 반응이 왔다.

비명을 지르는 놈의 입에 롭바를 찢어 물렸다. 관자놀이를 찼다. 당분간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다.

쓰러진 고쏘툼의 피 범벅이 된 얼굴 위로 검붉은 등이 그림자처럼 깔린다. 눈과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본다.

“어찌 된 사정인지 말해주실까.”

“너, 넌 도대체 누구냐?”

“그건 알 것 없고. 내가 질문한 것에 대한 대답만 해 줬으면 좋겠군. 먼저 이 냄새는 뭐지? 환약(幻藥)인가?”

“그렇다.”

“이걸 이용해서 사람들을 조종한 건가?”

“다 알면서 왜 묻는 거지?”

나는 고쏘툼의 입을 천으로 막고 손가락을 부러트렸다.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대답만 하라고 했을 텐데?”

나는 재갈을 물리고 터번을 풀었다. 카툼 나이프를 꺼냈다. 카툼 나이프에 달린 방아쇠를 눌렀다. 탁, 타탁, 탁, 타탁, 탁, 탁, 돌이 붉게 타기 시작했다.

나는 고쏘툼의 찢어진 코에 나이프를 가져다 댔다. 살타는 냄새가 났다.

“이제 재갈을 풀어 주겠어. 이제 내가 묻는 것에 대한 것을 설명해줘. 알았나?”

그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간부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교주 아흐하르 사쿰은 환약 중독이었다. 대제사장 조유움도 마찬가지였다. 교주가 보여준 기적은 환약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런데 교주가 지하 독방 수행을 시작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대제사장 조유움이 실권을 잡았다. 교주의 의지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는 마즉크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신도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신도들을 더 강하게 조종하기 시작했다.

그 비밀은 오직 대제사장만이 알고 있다고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고쏘툼에게서 대제사장이 있는 곳과 내 무기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 나는 그 대가로 목숨을 살려주기로 했다. 안심한 것처럼 보였다.

그가 일어섰을 때 뒤에서 목을 졸랐다. 경련을 일으키며 죽을 때 까지 졸랐다. 확인하기 위해 목을 부러뜨렸다. 완전히 죽었다.

고쏘툼과 조무래기의 몸을 뒤졌다. 투척용 석단도와 대형 마제 석단도를 찾았다. 카툼 나이프는 완전히 식었다. 다시 터번모자 위에 올려놓고 터번을 감았다. 투척용 석단도를 품속에 찼다. 대형 마제 석단도로 조무래기의 심장을 찔렀다. 롭바로 막고 칼을 뽑았다. 피가 튀지 않았다. 피를 닦았다.

고쏘툼의 롭바를 입고 후드를 뒤집어 썼다. 붉은 등을 쥐고 밖으로 나온다. 무기는 지하 독방을 지키는 호법청 놈들이 쉬는 방에 있다고 했다.

독방 입구에 도착했다. 문을 두들긴다. 작은 창이 열린다. 문 밖에서 웅크린다. 롭바 입은 모습 말고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대장이세요?”

“문 좀 열어줘! 그 놈이 난동을 부린다! 다리를 당했어. 어서 들어와!” 나는 고쏘툼의 목소리를 흉내 내 말했다. 예전에 곡마단에서 마술을 할 때 연습한 기술이다. 놈이 작은 창으로 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본다.

문이 열린다.

맹한 얼굴이 보인다. 나는 튀어 올랐다. 공중에서 두 다리를 모았다. 온 몸을 움츠렸다. 팔과 다리를 동시에 뻗었다. 놈의 머리가 튕겨나가 벽에 부딪혔다. 소리 나지 않게 팔로 완충작용을 하며 착지했다. 몸을 뒤져 석단도를 챙겼다.

달렸다. 양 손에 석단도를 거꾸로 들었다. 휴식실을 찾았다. 가죽 문을 반으로 가르며 들어갔다. 고쏘툼의 롭반을 입은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내가 후드를 벗자 그들이 내 정체를 알았다. 칼을 꺼낸다.

놀란 놈들을 향해 양 손을 휘둘렀다. 석단도가 죽음의 노래를 부른다. 붉은 원을 그린다. 모두 바닥에 쓰러졌다. 비명은 없었다.

방을 뒤져 무기를 찾았다. 검은 손을 챙겼다. 투척용 석단도들을 한 손 가득 쥐었다.

대제사장의 수행실로 가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비밀 승강기를 이용하는 것이라 했다. 비밀 승강기는 ‘세례실’에 있다고 했다.

세례실로 가는 동안 다섯 명을 죽여야 했다. 남은 투척용 석단도는 몸에 달고 있는 네 개와 손에 쥔 두 개 뿐이다. 세례실 안에는 거대한 아흐하르 사쿰의 부조상이 있었다. 추한 남자다. 발이 있는 곳으로 간다. 비밀 장치를 더듬어 찾았다.

문이 열린다. 안에 들어갔다.

승강기는 소리 없이 움직였다. 나는 석단도를 쥐고 준비했다. 문이 열렸다. 밖으로 뛰쳐나왔다. 투척용 석단도를 겨누고 주위를 본다. 온 몸이 긴장으로 굳는다.

아무도 없다. 정보를 찾아야 한다. 방을 뒤진다. 서류, 증거, 어느 것이든 좋다.

“거기까지다.”

대제사장이다. 투척용 나이프를 던질 준비를 했다.

“멈춰라. 나도 예전엔 군인이었던 몸. 네 놈의 어깨 움직임만 봐도 무슨 짓을 하려는 지 알 수 있다. 무기를 버려라. 정부의 끄나풀인가? 안 그래도 제물이 필요했는데, 아무리 봐도 아직 은총을 받지 않은 것 같군.”

“은총? 그걸 받지 않으면 마즉크도 통하지 않는가 보군.” 난 허세를 부려 보았다.

“눈치가 꽤 빠르군. 사실 제물이 필요해서 말이네. 이대로 죽어줘야겠어. 천국으로 그대의 영혼을 인도해주지.”

“난 아직 죽기 싫은데. 그리고 영혼이 없는 자에게 영혼을 인도받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야.”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빈틈이다. 투척용 나이프를 연속해서 던졌다. 빗나갔다. 달려들었다. 검은 손을 휘둘렀다.

허공을 갈랐다. 나는 허공에 떠 있었다.

“심리는 조작할 수 없지. 하지만 물리적인 조종은 가능해. 어리석은 놈.”

젠장.

바닥이 열린다. 떨어진다.




6. 지하 감옥




끝없이 떨어질 것이라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금방 푹신한 곳에 떨어졌다. 기분 나쁠 정도로 축축하다.

“순순히 먹이가 되어라. <외계의 위대한 옛 것>의 제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마즉크를 위한 양분이 되는 거다.” 내가 올라탄 곳은 괴물이었다. 여덟 개의 다리, 두 개의 머리를 웅크리고 있는 괴물이었다.

“이 놈의 힘으로 마즉크를 사용한 건가!” 내가 말했다. “환약만으로는 잘 되지 않았나 보지? 사람들을 조종하기에는. 기적이 필요했겠지. 그래서 이 괴물에게 계속 사람을 먹인 건가? 이 괴물의 능력을 빌려 행한 것이었군.”

“알아봤자 소용없다. 넌 곧 먹힐 테니까.”

바닥이, 아니 천장이, 닫혔다.

터번을 풀어 던지고 카툼 나이프를 꺼냈다. 괴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아쇠를 누른다. 카툼이 탄다. 품에 넣어둔 대형 마제 석단도를 꺼낸다.

괴상한 울음소리다. 공간이 떨린다. 정신이 파열될 것 같다. 직접적으로 뇌에 영향을 주는 것인가?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카툼을 박아 넣는다. 괴물이 발버둥 친다. 떨어질 것 같다. 살을 가른다. 석단도를 박아 넣는다. 매달린다. 뽑힐 때 마다 새로 박아 넣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벽에 부딪쳤다. 폐에서 공기가 빠져나간다. 거대한 괴물과 맞대면해야한다. 일어서야한다.

또 다시 괴물이 운다. 달려든다.

피했다. 간발의 차다.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다. 벽에 구멍이 뚫렸다. 굴이 뚫려있다. 원래 통로가 있었던 곳인지도 모른다. 정신이 붕괴되기 전에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눈을 노린다. 마제 석단도를 던질 준비를 한다. 맞지 않아도 좋다. 저 울음소리만 잠시 멈추게 할 수 있다면.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운 좋게 맞았다. 틈이 생겼다. 달린다. 동굴 안으로 달린다. 머리 위로 앞발이 날아온다. 굴러서 피했다. 바로 일어나 다시 달린다. 뛰어들었다. 괴물이 달려들었다. 동굴 입구가 무너진다. 달린다. 언제 갱도가 무너질지 모른다. 막다른 길. 아니 방이다. 어둡다. 카툼 나이프의 빛에 의지해 안을 조사했다.

썩은 내가 진동한다. 해골로 변한 시체가 한 구. 그리고 삭아가는 두루마리가 하나.

‘나는 곧 죽는다. 죽기 전 모든 것을 기록하고 복수를 부탁하며 죽는다. 영혼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영원히 복수가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나의 이름은 아흐하르 사쿰이다.

‘나는 원래 군에서 연금술과 정신조작을 연구하는 연구원이었다. 나는 정신조작에 탁월한 환약과 막대한 위력을 자랑하는 폭약을 개발했다. 군을 빠져나온 조유움를 만났다. 그는 나를 부추겨 종교를 만들게 했다.

‘내가 한 것은 간단했다. 사람들에게 환각을 보여주고 기적이라 믿게 했다. 그 뿐이었다.

‘조유움은 고문헌을 연구하다 마즉크를 사용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는 고대 유적 지하에 잠들어 있는 외계 생물체, <외계의 위대한 옛 것>의 존재와 그 존재를 조종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인간을 먹이는 것과 그 외계 생물체와 정신감응하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람을 먹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나는 그에게 반대했다. 그 사이에 그는 내 약물을 이용해 생물체를 조련했다. 그는 마즉크를 사용하게 되었다. 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미 너무 늦은 때였다. 많은 간부들이 그의 편으로 돌아섰다. 그는 나를 이곳에 가두었다. 내가 설령 빠져나간다 하더라도 <외계의 위대한 옛 것>의 먹이가 될 것이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무 것도 몰랐던 것은 아니다. 나도 바보는 아니다. 나는 이곳에 내가 개발한 폭약을 모아두었다. 도화선에 불을 붙여 사용하면 될 것이다.

‘이곳을 부숴 달라. 모든 자를 죽여 달라. 나의 복수를 해 달라.’







7. 복수 아닌 복수




화약은 원통형 모양의 석단도 정도 크기였다. 나는 이것들을 복대처럼 배에 감았다. 나머지는 터번과 롭반을 갱도가 막힌 곳 까지 갔다. 카툼 나이프로 도화선에 불을 붙여 던졌다. 다섯 개다. 그 중 하나를 막힌 곳에 던졌다. 엎드리고 입을 벌렸다.

굉음.

빛이 보인다. 어지럽다. 눈이 부시다. 빛을 향해 연속해서 화약을 던졌다. 엎드렸다.

굉음.

괴물의 미칠 것 같은 울음소리가 들린다. 밖으로 나갔다. 두 개를 더 던졌다. 놈의 입에 던졌다. 굉음과 함께 피가 터진다. 배를 보이고 쓰러진다. 배 위에 올라탔다. 카툼 나이프로 배를 가르고 안에 화약을 집어넣었다. 뛰었다.

굉음.

피비가 내린다. 끈끈한 녹색 비가 내린다. 천장이 열린다. 빛을 향해 폭약을 던졌다. 굉음. 무너진다. 떨어진다.

대제사장이었다. 기절한 상태였다. 오른팔을 부러뜨렸다. 고통에 눈을 떴다. 카툼 나이프를 들이댔다.

“이제 좀 생각이 바뀌었나? 살고 싶으면 그 마즉크의 힘으로 우리 둘 다 위로 올라가야 할 것 같은데?”

“웃기지…마라!”

왼팔을 부러뜨렸다. 기분 나쁜 비명을 질러 턱을 걷어찼다.

“어서 시작해!” 그는 떨고 있었다. 겁에 질린 동물들은 모두 이런 눈을 한다.

조유움과 내 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점점 더 가까이. 점점 더 가까이.

괴물의 울음소리. 그것은 단말마였다.

나를 떠받들던 힘이 사라졌다. 나는 조유움을 발로 차 뛰어올랐다. 천장의 끝을 붙잡았다. 등 뒤로 또 다른 단말마가 들린다. 둔한 소리. 지하 감옥이 조용해졌다.

방을 뒤져 돈이 될 만한 것을 챙겼다.

빠져나오는 동안 가지고 있던 서른 개의 폭약을 터트렸다. 거대한 옴므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닥치는 대로 죽이고 죽였다.

빛. 거대한 옴므의 문을 열고 나와 처음으로 본 것은 빛이었다.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나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빠져나왔다.

죽은 자에겐 역시 세금을 걷을 수 가 없었다.







8. 끝




거대한 폭발과 함께 <옴므>는 사라졌다.

<終劇>

09.05.05. 00:00 완성. 약 3700여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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