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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법령 오멜라스(수정판)

2009.06.09 11:2406.09

좀 더 독자와의 소통을 생각하면서, 또한 좀 더 논리를 다듬어 수정했습니다. 감평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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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 오멜라스


연희의 5살 난 아들은 보육원에서 체포되어 감옥으로 끌려갔다.

죄목은 다른 아이들을 윽박지르고, 때리고, 파벌을 만들고, 약한 아이를 따돌리고, 심한 장난을 쳤다는 것이었다. 증거로는 모든 사람의 주요 감각기관에 설치되어 있는 감시 장치가 제시되었다. 인간의 기억을 해석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지만, 기억을 스스로 조작할 가능성 때문에 증거로서 채택되지는 않았다. 감시 장치의 저장 파일은 수정될 우려 때문에 로그로 나노 초 단위로 구별되었다. 맞거나 억눌림 당한 아이들의 눈과 귀가 증거였다. 보육원의 감시 장치들이 그 증거였다. 길거리마다 깔리고, 인공위성들도 포함된 감시 장비들로도 구현된 ‘모두의 모두에 대한 감시’가 증거였다. 모두의 모두에 대한 감시는 모든 이들의 의무이자 권리였고, 범죄에 대항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

연희는 아들이 체포되어 감옥으로 갔을 때 도시 한복판에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쭉쭉 빵빵한 몸을 마음껏 뒤틀고 있었다. 젊음을 발산하고 있었다. 연희는 아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당혹감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다. 아마도 자신이 놀러 다니느라 아들에게 신경을 제대로 안 써서 그런 것만 같아 묵직한 책임감을 느꼈다.

소식을 듣고 서둘러 집에 돌아 온 연희에게 아들이 동료들을 괴롭힌 증거 자료들이 통보 형식으로 보내졌다. 형사 고소장이 이어져 있었다. 현재의 고도로 발달한 정신분석학과 심리학과 신경학에 바탕을 둔 법집행이라고 했다. 연희는 납득할 수 없었다. 말썽 좀 많이 부리지만 연희에게는 그저 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아들이었을 뿐이었다. 기특해한 적도 많았는데 바로 그 성품이 감옥에 보내질 이유였다니. 연희는 수용할 수 없었다.

연희는 남편들과 친구들에게 우선 상의했다. 한 명의 인간을 지지할 인간관계는 크고 튼튼할수록 좋았기 때문에 난혼제가 실시되고 있었다. 연희에게도 넓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난혼제라도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엄마에겐 더할 나위 없이 각별한 법이었다. 연희는 제왕절개가 아닌 자연 분만을 했는데, 자연 분만을 해야 모성애를 관장하는 호르몬이 많이 나와서 자식에게 더 애착이 간다는 말을 듣고 한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연희의 난혼 가정을 이루는 이들은, 흔히 그랬듯이 소꿉친구들과 학교 친구였던 이들이었다.

연희의 남편들과 친구들은 법이 그렇긴 하지만, 무언가 솟아날 구멍이 있을 것이라면서 연희를 토닥였다. 자식이 7살 때까지는 엄마와의 유대관계가 중요하다고 해서, 아무도 엄마한테 일하라고 요구할 수 없도록 지원하라는 법률이 있었다. 그런 마당인데 5살짜리가 잡혀 갔으니 분명 아이를 빼낼 합법적인 방도가 있을 것이라는 거였다. 고민을 나누기 위해 연희는 아는 사람 가운데 16세 이상 성인만 모아서 수다를 떨고 합법적으로 술, 담배와 마리화나를 즐겼다. 더 해악이 있는 마약은 끼지 않는, 건전한 대화의 장이었다. 파티가 아닐 수밖에 없던 건 주최자인 연희가 끊임없이 울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크게 잘 못 됐어. 5살짜리가 뭘 안다고 잡아가두는 거야!”

연희의 눈에 눈물이 맺혀 볼을 타고 턱까지 흘러내렸다.

남편들 중 한 사람인 시현이 연희에게 다가왔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시현은 포도주잔을 연희에게 주면서 말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시민이 복종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돈이 많거나 우주 정거장에 있는 부자들은 ‘법령 오멜라스’를 따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엄청나게 돈이 많은 것들이니까 반항이 가능한 거야.”

“그들은 무기도 갖고 있어. 경찰이나 군대가 법령 오멜라스 집행에 끼어들기도 하는 건 그 때문이야. 어떻게든 그들과 연락할 방법을 찾아볼게.”

“말은 고맙지만, 우리는 모두 감시당하는 중이야. 모두의 모두에 대한 감시. 무선으로 끝없이 어딘가의 서버로 정보가 보내지고 있지. 너처럼 부주의한 녀석도 있다니 놀랐어.”

“단지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걸려 들어가는 법은 없어. 지금은 2092년이라고.”

“네 덕분에 우리에 대한 감시만 더 심해지겠네. 농담으로라도 그들과 연락하려고 하지는 말아줄래? 남을 해치면서까지 내 아들을 구할 생각은 없어. 합법적으로 구할 거야.”

“쉽지 않은 일이야. 지구 연합의 표어를 아니? ‘강자와 약자 사이엔 자유가 억압이고, 법이 해방이다.’ 장 자크 루소의 말이야. 또한 지구 연합은 이렇게도 주장하지. ‘지금껏 인류를 악덕으로부터 지켜 온 것은, 양심과 신앙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작동인 법치와 경제권력의 작동인 평판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강철 권력이다.’ 권력이 자신의 정당성을 민주적인 법치국가의 방식으로 주장하고 있는 이상 설득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꺼야.”

“뭐? 그래서 나더러 그냥 앉아서 당하라는 거야?!”

“하하.”

법령 오멜라스는 연희의 아들을 잡아간 근거 법률이었다. 21세기 초에 영국의 한 경찰은 5살 때부터는 범죄자의 자질을 찾아낼 수 있기에 그때부터 유전자로 특별 관리에 들어가자고 한 바가 있다. 이를 확대 해석하고, 어슐러 르귄의 SF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 착안해서 법령 오멜라스가 만들어졌다. 5살이 되면, 범죄 실행 유무는 따지지 않고 범죄자의 자질을 가진 아이를 찾아내서 격리하는 법률이었다. 이는 그나마 소시오패스로 인간이 규정 당했을 때 받을 수 있는 것이었고,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으면 생후 11개월 이전에 판정한 전문가들이 즉시 총살했다.

연희는 아들이 갇힌 감옥에 가기 전에, 다양한 단체들을 찾았다. 법령 오멜라스에 반발하는, UN인권 계승 모임 등등의 인권 NGO들에 닥치는 대로 가입해서 인터넷 기자 신분을 획득했다. 언론의 자유는 모든 시민의 입의 자유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권 NGO들은 지구 연합이 인권을 잘 못 해석해서 법령 오멜라스를 실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연희는 스포츠카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이 스포츠카는 연희에게 얼마 없는 호화 사치품 가운데 하나였다. 이른바 명품은 값이 비쌌지만, 생활비는 임금에 비해 부담스럽지 않았는데 연희는 가난한 편임에도 그러했다. 만약 지구 연합에서 보장하지 않는다면, 빈민에겐 빚이 될 수밖에 없는 최저 생활비는 보장되고 있었고 연희는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경제적 지지를 받고 살고 있었다. 연희는 결코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법률상 아들을 양육해야 한다는 이유로 놀고 있던 중이었다. 아들 양육에 소홀한 점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자책이 연희의 마음을 때렸다. 스포츠카는 자동 항법장치로 다른 자동차들과 조율되면서 감옥으로 갔다. 연희의 마음은 편했다. 핸들을 놓고 바람과 속도만 즐겨도 자동차는 목적지로 이동했고 안전하게 주차했다. ‘모두의 모두에 대한 감시’는 컴퓨터의 발전 속도를 빠르게 하고 있었다. 감시하는 영역이 늘면서 자동으로 이를 판별하는 컴퓨터의 성능이 발전하게 되었고 그 결과 자동차를 살 돈만 있으면 대륙 어디를 가도 손을 놀릴 이유가 없었다.

감옥은 도심 한복판에 있는 60층짜리 건물이었다. 감옥은 어느 사이엔가 다시 감옥으로 불렸다. 더 이상 감옥은 교도 행정을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감옥은 종신형을 언도 받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감옥에 갇힌 수형자들은 서로 연락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다들 잘 꾸며진 독방에 갇혀 인트라넷 형태인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살았다. 5살 난 아들도 나이에 걸 맞는 게임을 하면서 지내고 있을 터였다.

감옥의 앞마당에 마련되어 있는 법률 상담소에 연희는 성난 기색으로 앉았다.
교도소장이 연희를 맡았다. 연희는 23세였고, 교도소장은 56세였지만, 교도소장은 잘못이 있다면 연희에게 사과를 하고 사안에 따라선 물러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야 올바른 권위가 있는 민주주의라 할 것이다. 교도소장은 너그럽고 따뜻한 눈빛으로, 눈앞의 처자와 마주 앉아 있었다. 연희가 분노에 찬 음색으로 말했다.

“이런 법이 어디 있나요? 5살 난 아이를 잡아 가두다니요. 제 말에 잘 대답하셔야 할 거예요. 감시 장치에 녹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여러 방송들에 생중계되고 있어요.”

“하하, 전 그런 감시가 없어도 떳떳합니다. 선생님께선, 증거 자료를 받지 않았습니까? 법령 오멜라스죠.”

“어슐러 르긘의 소설을 읽었어요. 10살도 안 된 아이를 발가벗겨 놓고 똥통 속에 방치하더군요. 내 아들도 그러고 있나요?”

“우리는 그렇게 안 합니다.”

“하지만 그 소설의 아이와 똑같이 비참한 정신을 갖게 되겠죠.”

“감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들 죄를 지은 자들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죄를 지어도 종신형이라니 너무 하는 것 아닌가요? 도둑질도 종신형, 살인도 종신형. 게다가 감형조차 금지되어 있죠.”

“감형 없는 종신형을 채택하고 있는 어느 나라도 그렇게 안 합니다. 잘 하려다 한 실수에 대해선 관대하죠. 사회봉사 명령이 고작입니다. 감형 없는 종신형이 집행되는 건 악의에서 행해진 범죄에 한하고, 이는 법률에 따라 정하고 증거에 입각합니다. 연희님의 아들은 명백히 남을 괴롭혀서 쾌감을 얻었고, 이는 악의에 의한 것으로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하는 중죄입니다.”

“제 아들에겐 인권도 없나요?”

“인권은 발명된 권리입니다.”

“지금 녹화되고 있고 생중계되고 있습니다. 위험한 발언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인권은 천부적이거나 자연적인 게 아닙니다. 인간은 굶으면 죽고, 맞으면 죽죠. 그런 인간들이 사회생활을 보다 잘 하기 위해 발명해낸 게 인권입니다. 서로가 해를 안 끼치고 협력함으로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또한 서로 존중해야 서로가 덜 해를 입는다는 진실을 깨닫는 것에서 인권은 출발합니다.”

“어떻든 인권을 헌법이 보장하지 않습니까. 제 아들에겐 인권도 없나요? 피지도 못 한 어린애가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연희님의 아들은 벌써부터 남을 괴롭히는 데서 쾌감을 느꼈습니다. 그런 태도를 가진 채로 성장하면 어떻게 될까요? 자신의 밥줄을 위해서라면, 남의 죽음도 이용하는 그런 인간이 될 겁니다. 그런 인간들을 내버려둔 결과로 법령 오멜라스를 시행하기 전의 사회가 얼마나 추악했는지 아실 수 없을 겁니다. 얼마나 일반 시민에게 위험한 사회였는지 짐작도 가지 않으실 겁니다. 살인, 미신, 부정부패, 고물가, 악덕기업, 탈세, 인신매매가 난무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자본가들은 100%의 세금을 일부 품목에선 걷어도, 그것이 지속 가능한 사회 체제를 위한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설득하기만 하면 기꺼이 냅니다. 높은 세금을 감수해도, 사회 복지를 실천해도, 다른 자본가들 또한 그걸 납득하고 있기 때문에 공평한 경쟁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노동자들도 자신이 놀면 그만치 사회가 가난해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양심상 열심히 일합니다. 이전의 자본주의처럼 경쟁도 있고 해고도 있지만, 이전과는 달리 사람을 굶겨서 죽이지 않습니다. 치료 가능한 병이나 불의로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동정심이 하찮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자신의 뜻을 말할 수 있고, 또한 이를 적어도 들어주고 잘 받아주는 사람들로 오늘날의 사회는 이루어져 있습니다. 뒤통수 치고 배신하며 살인을 하는 악인들이 모두 감옥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인권의 원칙들은 서로 존중한다면 상당수가 성립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악인들은 남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남의 인권에 관심 없는 악인들의 인권에 관심이 없어야 한다고, 지구 연합은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과거엔 악인들이 지배했기 때문에, 늙으면 죽어 없어지는 주제에, 인류는 군사비용을 의료비용 보다 훨씬 더 많이 사용하고 있었지요. 이제 군사비용과 의료비용은 역전되었습니다.”

“이게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아니고, 제 아이가 미래에 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이 일반인 보다 높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감옥에 갇혀 지내야 한다니 이 무슨 모순인가요?”

“모순이 아닙니다. 오늘날 시민의 안전을 위해 빅 브라더가 행해집니다. 하지만 빅 브라더가 악의에 찬 권력자에게 지배된다면, 시민은 생명조차도 얼마든지 빼앗길 수 있습니다. 악당이 감옥에 있지 않는 한, 모두의 모두에 대한 감시가 행해지는 한, 우리 사회는 살인을 손쉽게 하는 추장이 통치하는 부족사회로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주로 널리 나가기 일보 직전인데, 우주에 악인을 내보낸다면 지구는 질량병기의 위협 앞에 놓이게 됩니다. 법령 오멜라스는 이에 대한 효율적인 해결책입니다.”

연희는 울음을 터뜨렸다.

“이건 너무 가혹해요.”

“죄송합니다. 법령 오멜라스는 착한 자본주의를 위해 필수적인 제도입니다. 적어도 악의를 갖지는 않은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불관용에 대한 불관용이야말로 관용이라는 프랑스 격언도 있습니다. 아들 건에 대해서는 거듭 유감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럼 전 이제 동현이를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는 건가요?”

“아닙니다. 감시와 견제가 없는 권력은 언제든 타락할 수 있기 때문에 감옥을 드나들 수 있는 것입니다. 바라신다면 매일 아드님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제 정성이 있다면, 착한 아이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건강하게 거리를 걷는 시민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성격은 생후 11개월 이전에 80%가 결정된다는 영국의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성격은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평생 감옥에서 지내라고 법관들이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 보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살인자도 죽이지는 않는 건, 인간이기에 법관들이 잘 못 판단할 수도 있고, 국가에 평화 시에도 사람 죽일 권력을 주는 건 시민에게 너무 위험한 일이기도 하기에 그렇습니다.”

연희는 발을 동동 굴렀다.

“전 그 아이의 엄마예요. 소장님께도 엄마가 있을 거 아닌가요.”

“가혹한 말씀이지만, 모성 보다는 과학적 이성에 입각한 인류의 안전이 우선합니다.”

연희는 납득할 수 없었다. 머리는 몰라도 가슴이 허락하지 않았다. 연희는 감옥 근처에 작은 방을 얻었다. 방세는 지구 연합에서 부담했다. 어찌 되었건 연희는 7살이 안 된 아이의 엄마였다.

연희가 아들의 독방에 이르렀을 때 아들은 가상현실 게임기 안에 묶인 채 들어가 있는 중이었다. 허락이 떨어졌고, 로봇 족쇄가 풀렸다. 아들은 연희를 알아보고 품안으로 뛰어들어 무섭다면서 엉엉 울었다. 연희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면서 말했다.

“동현아, 다 잘 될 거야. 잘 들으렴. 엄마는 절대 널 버리지 않아. 떠나지 않아.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

연희는 아들의 독방에 오가다가 급기야 아들과 좁은 독방에서 먹고 자겠다고 했다. 아들이 아직 형법에서 벌 받는 나이인 10살이 되지 않았기에 허용되었다.
연희는 아들과 자주 놀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희는 오직 아들에게 집중했다. 가상현실로 이루어진 인터넷을 밤새 뒤적이면서 동현의 책임감과 애정과 협동심을 기르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6개월 뒤 연희는 심의관과 만났다.

“연희님이 살아온 기간동안 가상현실용 데이터는 충분히 쌓였습니다. 연희님의 아들인 동현이는 이제 연희님과 함께 사회에 나가서 다시 아이들과 어울리는 가상현실을 하게 될 것이고, 그게 가상현실인지 모를 것입니다. 동현이의 뇌에서 가학성과 공격성이 발동되는지 측정하면서 가상현실 상황을 구현할 겁니다. 연희님의 데이터를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동현은 잠자던 중에 가상현실 장치에 연결되어 며칠에 걸쳐 혼자만의 가상현실을 진짜로 믿고 체험했다. 동현은 여전히 가상현실 속에서 실제와 다름없이 구현된 아이들을 적개심을 갖고 대했고, 동물들은 마구 괴롭혔다.

결과는 곧바로 나왔다.

“아쉽네요, 연희님. 여전히 소시오패스 판정입니다. 어떤 이유로 소시오패스로 되었든 그런 사람을 사회로 내보낼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평온한 일상을 보장받을 자유를 위해, 악인은 격리되어야 합니다.”

“평생 동현이 곁에서 감옥 근처에서 살겠어요. 내가 동현이에게 죽어도 상관없어요.”

“그건 연희님의 자유입니다. 연희님, 참으로 고운 마음씨를 가지셨네요. 참, 동현이는 사이코패스는 아니니까, 연희님이 동현이한테 죽을 우려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소시오패스는 나름의 도덕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게 사회적으로 위해할 뿐이죠. 악인에게 교화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기에 과거의 사회는 추악해졌던 것입니다. 악인이 자라나서 강해지기 전에 싹을 잘라버려야 선인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열 수 있습니다.”

“왜 악인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나요? 엄혹한 19세기에도 좌파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하는데요.”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악인은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를 보고, 소녀가 불쌍하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소녀를 어떻게 하면 더 비참하게 만들까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우리 문명은 모두의 모두에 대한 감시를 통해 증거를 수집한 뒤 악인들을 모조리 쏴 죽임으로서 건설된 것입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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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8에 초벌 완성. 2009.06.09에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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