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制)는 고개를 들었다. 잿빛 하늘에서 유리파편이 떨어지고 있었다. 창백한 파편이 살갗에 닿자 그는 몸을 떨었다.
"눈 뜬 이들도 이리 추운데, 땅 아래 누우신 당신은 얼마나 추우십니까?"
갈라진 목소리로 제가 말했다.
발아래 축축하게 젖은 땅에는 검게 칠 된 나무상자가 있고, 그 속에는 작고 깡마른 노인이 깨지 않을 꿈을 꾸고 있었다. 이 땅의 아버지께서 오래된 껍데기만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잠든 이를 깨울까, 눈도 말없이 내리는데, 계집들의 상스러운 울음소리가 고요함을 깨트렸다. 예(禮)의 칼로 눈물을 베던 중신들도 결국 속에서 올라오는 뜨거움을 막지 못했다.
울음이 넘쳐, 하나의 서글픈 곡이 되었고, 바람이 불어 멀리, 널리 퍼져나갔다.
늙은 왕은 추했다. 수저 하나 들지 못해 어린 시녀의 시중을 받으면서도, 앙칼진 성격은 그대로였다. 독단, 독선, 아집이 왕의 눈과 귀를 빼앗아갔다. 제 입으로 한 명을 번복하기 일수였고, 그 때마다 궁 곳곳에서 혈화(血花)가 피어올랐다. 달콤한 혀를 가진 도둑들이 왕의 주위에 기립했고, 우직하고 말없는 충복들은 제 몸을 도화지 삼아 붉은 그림을 그리거나, 청산녹수가 좋아 머리는 산에 몸은 강에 뿌렸다.
제는 눈앞이 흐려지자 몹쓸 바람이 궂은 짓을 했다고 여겼다. 결코, 왕의 삶이 서글퍼서, 죽음이 안타까워서 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감히 왕을 동정하다니!
제는 눈을 감았다. 젊은 왕의 모습이 보였다. 마르고 왜소한 왕이었지만, 그 정열과 패기는 만인을 압도했다. 날름거리는 지옥의 불길을 향해 가장 먼저 달렸던 이도, 뒤에 선 제 자식들이 다칠까, 가슴으로 창칼을 받아내던 이도, 유리 같은 마음을 가졌지만 남 앞에서는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던 이도, 제 가슴으로 모든 자들의 눈물을 대신 흘렸던 이도 모두 왕이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비천한 자의 발에 입맞추던, 하늘 앞에서도 당당한 남자가 왕이었다.
전장에 달이 뜬 날.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던 왕이 말했다.
"제, 짐의 바람은 죽어서도 넋만은 남아 가엾은 자식들을 돌보는 것이라네. 그대의 소원은 무엇인가?"
갑작스런 질문이라 제는 엉뚱한 말만 늘여놓았다. 시간은 놓은 화실이라, 왕은 제의 답을 듣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바람이 불어 제의 서리 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삶으로 깊게 패인 그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왕의 붕어 이 후 사라졌던 미소였다.
제는 왕을 향해 깊게 절한 후 자리를 떴다. 오래전, 당신 질문의 답을 가슴에 품고서.
'폐하, 소인의 소원을 물으셨습니까? 제 소원은 당신께서 늘 당당할 수 있도록 당신 뒤를 받치는 것입니다.'
겨울이 조용하게 울던 날이었다.
"눈 뜬 이들도 이리 추운데, 땅 아래 누우신 당신은 얼마나 추우십니까?"
갈라진 목소리로 제가 말했다.
발아래 축축하게 젖은 땅에는 검게 칠 된 나무상자가 있고, 그 속에는 작고 깡마른 노인이 깨지 않을 꿈을 꾸고 있었다. 이 땅의 아버지께서 오래된 껍데기만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잠든 이를 깨울까, 눈도 말없이 내리는데, 계집들의 상스러운 울음소리가 고요함을 깨트렸다. 예(禮)의 칼로 눈물을 베던 중신들도 결국 속에서 올라오는 뜨거움을 막지 못했다.
울음이 넘쳐, 하나의 서글픈 곡이 되었고, 바람이 불어 멀리, 널리 퍼져나갔다.
늙은 왕은 추했다. 수저 하나 들지 못해 어린 시녀의 시중을 받으면서도, 앙칼진 성격은 그대로였다. 독단, 독선, 아집이 왕의 눈과 귀를 빼앗아갔다. 제 입으로 한 명을 번복하기 일수였고, 그 때마다 궁 곳곳에서 혈화(血花)가 피어올랐다. 달콤한 혀를 가진 도둑들이 왕의 주위에 기립했고, 우직하고 말없는 충복들은 제 몸을 도화지 삼아 붉은 그림을 그리거나, 청산녹수가 좋아 머리는 산에 몸은 강에 뿌렸다.
제는 눈앞이 흐려지자 몹쓸 바람이 궂은 짓을 했다고 여겼다. 결코, 왕의 삶이 서글퍼서, 죽음이 안타까워서 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감히 왕을 동정하다니!
제는 눈을 감았다. 젊은 왕의 모습이 보였다. 마르고 왜소한 왕이었지만, 그 정열과 패기는 만인을 압도했다. 날름거리는 지옥의 불길을 향해 가장 먼저 달렸던 이도, 뒤에 선 제 자식들이 다칠까, 가슴으로 창칼을 받아내던 이도, 유리 같은 마음을 가졌지만 남 앞에서는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던 이도, 제 가슴으로 모든 자들의 눈물을 대신 흘렸던 이도 모두 왕이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비천한 자의 발에 입맞추던, 하늘 앞에서도 당당한 남자가 왕이었다.
전장에 달이 뜬 날.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던 왕이 말했다.
"제, 짐의 바람은 죽어서도 넋만은 남아 가엾은 자식들을 돌보는 것이라네. 그대의 소원은 무엇인가?"
갑작스런 질문이라 제는 엉뚱한 말만 늘여놓았다. 시간은 놓은 화실이라, 왕은 제의 답을 듣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바람이 불어 제의 서리 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삶으로 깊게 패인 그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왕의 붕어 이 후 사라졌던 미소였다.
제는 왕을 향해 깊게 절한 후 자리를 떴다. 오래전, 당신 질문의 답을 가슴에 품고서.
'폐하, 소인의 소원을 물으셨습니까? 제 소원은 당신께서 늘 당당할 수 있도록 당신 뒤를 받치는 것입니다.'
겨울이 조용하게 울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