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당신은 아마 모를 거예요.
웃으며 걸어 나오는 사라가 얼마나 예쁜지 모르실 거예요. 그 하얗고 통통한 볼 살이 얼마나 귀여운지, 손은 또 얼마나 작고 사랑스러운지 당신은 보셔야만 할 거예요. 하루는 눈부신 터널에 사라가 서 있었어요. 뾰로통한 표정으로 두 손을 뒤로 한 채 말이 예요.

“사라 너 왜 거기 서 있니? 엄마한테 오기 싫은 거야? 우리 착한 사라 이리 와야지.” 라고 하자, 그제서야 사라는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제게 오더라 구요. 눈부신 터널을 건너 제 품에 와락 안겨 얼굴을 몇 번 비비더니,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는지 울음을 터트리더라 구요. 상상이 가신다 구요? 그 어린 것이 얼마나 서러웠으면 글쎄 제 하얀 와이셔츠를 몽땅 적셔놓았지 뭐예요.

“이제 뚝, 사라 착하지? 울보 공주님은 멋진 왕자님을 만날 수 없어요. 뭐가 그리 서러웠어요?”

‘다른 아이들이 오늘 선생님께 배운 노래를 들어 보려고 하지 않아요.”

“그건 친구들이 사라를 미워해서가 아니야. 아이들은 단지 자기만의 시간을 방해 받기 싫었을 뿐이야. 뭘 망설이니? 엄마에게 불러 주면 되잖아?”

그제서야 사라는 울음을 그치고 콧물과 눈물로 범벅이 된 손으로 뺨을 닦아 내더니 제게 미소를 보여주더라 구요. “엄마, 울어서 미안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미소를 말이 예요. 그게 천사의 미소가 아니라면 뭐 라고 불러야 할까요? 사라는 제가 새로 사준 하얀 원피스를 입고서 선생님께 배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거 아시죠? 아이들은 엄마에게 노래 부를 때 꼭 두 손을 모으고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부른다는 거 말 예요.


“나는야 예쁜 천사 노래 하는 귀염둥이
엄마 아빠 앞에서 즐겁게 노래하는 하얀 빛 속의 예쁜 천사
슬퍼하지 마세요 슬퍼하지 마세요
고개 들고 나를 보아요 이렇게 춤추고 있잖아요…….”


웃으면서 눈물을 흘려 보신 적 있으세요?
너무 귀엽고 예뻐서 사라를 꼭 껴안아 줬어요. 어느새 일곱 살이 된 제 딸 사라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눈물이 났어요. 내가 옆에 있어주지도 못 하는데, 아프지는 않을까? 선생님들은 사라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져줄까? 눈을 깜박이는 모습만으로도 마음을 알 수 있는 나만큼이나 사라를 잘 이해해주고 있을까? 사라 주위의 친구들은 사라에게 잘 대해줄까? 그런 생각들, 새벽이 올 때까지 머리맡에서 머물다가 안개처럼 사라지던 그런 생각들이 다시 제게 떠오르더군요. 제발, 저를 그냥 내버려 두세요. 있는 그대로 볼 순 없으세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 하시잖아요? 우리 사라가 얼마나 예쁜지, 그 작은 입으로 노래를 얼마나 잘 하는지 아시잖아요? 그래서 저를 그냥 내버려 달라는 거에요. 제발 그 얼음장 같은 손으로 건드리지 말라는 거예요.

어느 때처럼 사라를 다시 보내야 했어요. 빛의 터널로 다시 보내야 했어요. 근데 그 날은 사라가 터널을 걷다가 저를 문득 뒤돌아 보더라 구요. 그 눈빛이 너무 애처로워서, 아니, 그 애를 그냥 그렇게 보내면 안 될 것 같아서 물어 보았어요.

“왜 그래 아가야, 어디가 아파? 어서 가야지. 그래야 예쁜 공주님 되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울음을 참으며 그렇게 물었답니다. 글쎄, 그 어린 것이 엄마를 걱정하고 있었던 가봐요. 제가 물어보지 않았다면, 잠시 저를 바라보다가 가던 길을 갔을 거예요. 사라는 미안함과 아쉬움이 섞여 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나…… 있잖아…… 안 가면 안 돼?”

울먹이는 것 같기도 하고 꾸중들을 까봐 걱정이 되기도 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그렇게 묻더라 구요. 제 심정이 어땠을지 이해하실 수 있어요?
아니, 아니 예요. 당신은 아마 모르실 거예요. 손에 잡힐 듯 가까우면서도 안아 줄 수 없는 먼 곳에 뒤돌아 서 있는 사라를 바라 보다가 참던 울음을 터트렸어요. 저 어린 것도 참고 있는데, 엄마에게 미안해서 그 쉬운 말조차 하지 못 했는데, 그런 사라 앞에서 울고 있는 제 자신이 너무 미웠어요. 저 어린 것을 혼자 보내고, 오늘 밤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온통 희미한 회색으로 물든 방 안에서, 소름돋도록 차갑게만 느껴지는 침대 위에서 또 얼마나 크고 무서운 감정의 폭풍우가 나를 엄습할까? …….
그래요, 저는 이런 사람이 예요. 저 자신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여자예요. 하지만, 뒤돌아 선 사라가 얼마나 작고 예뻤는지 당신은 아마 모를 거예요.

저는 들을 수 있답니다. 사라가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를, 친구들과 인형놀이를 하는 소리를, 꽃들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들리지 않으세요? 어떻게 당신은 그렇게 무심할 수 있나요? 살과 피를 가진 사람이 맞긴 맞나요? 다른 사람 얘기 들으면서 울어 본적이 없으세요?
말로는 “아, 네. 그랬겠군요.”, “네,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라고 말 하면서 머리 속으로는 다른 생각하고 계신 건 가요? 혹시 그런 거예요? 앵무새처럼 그렇게 떠들어 댓 던 거예요? 아니면, 설마 사라가 예뻐 보이지 않는 건 가요? 예뻐 보이지 않으면서 지금까지 제 얘기를 들으며 이해한다고, 공감한다고 말했던 거예요? 아무래도, 당신은 인간이 아닌 것 같아요. 아니, 인간일 리가 없어요. 절대로요! 빛의 나라에 사는 우리 사라도 서러움과 아쉬움을 알고 있는데…….
인간도 천사도 아니라면,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요? 말해 봐요 어서! 어서!




“이른바 천사중독 신드롬(angelholic syndrom)으로 인한 우울증 3기입니다.”

제이미 부인과의 힘든 상담을 마치고 들어와 앉은 박사는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앞에 앉은 남자에게 말한다. 남편 동섭은 이미 병명을 알고 있다는 듯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군다.

“제이미 부인의 담당의사로서 알려 드립니다만, 천사중독 신드롬 우울증 환자들의 자살률은 100 퍼센트에 가깝습니다. '천사들의 광장'에서 따님을 만나기 위해 부인의 뇌에 중독증상을 일으킬 만큼 지나친 전자기적 자극이 가해졌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 충격은 뇌 안의 생화학적 변화를 초래해 환자의 전두엽과 측두엽에 치명적인 손상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설령 자살을 피했다고 하더라도 환자들 대부분은 심각한 정신착란과 언어장애 등으로 고통 받으며 남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겁니다.”

“제가 들은 얘기에 의하면, ‘천사의 나라(the world of angel)’ 회사 측에 부탁을 해서 천사들의 성격과 성향을 어느 정도 까지 바꿀 수 있다 던데, 제 아내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미 같은 상황에 처한 많은 환자의 가족들과 상담을 해 온 박사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동섭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마 회사 측에 직접 문의 해봐야 할 문제이겠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변형이 가능한 것으로 알 고 있습니다. 따님 사라는 아직 어립니다. 그것은 곧 제이미 부인을 위해 그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아직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동섭의 가슴은 미어질 듯 아팠다. 세 살이란 나이에 앞 뜰 야외 수영장에서 싸늘한 시체가 된 딸을 사이버 세계에서 마저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 하고,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살도록 해야 하는 이런 상황이 너무 싫었다. 그런 마음도 헤아리고 있는 듯 박사는 동섭에게 말한다.

“죄책감 가지지 마세요. 이 세상에 남겨진 부인만을 생각하세요. 죽음이 입을 벌리고 있는 벼랑 끝에 선 부인을 구하고 싶다면 그래서는 안 됩니다. 어차피 따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요. 비록 회사에서 따님의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천사의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해줬지만, 그건 대부분이 프로그램일 뿐이란 걸 잘 아실 겁니다. 그냥 기술적인 문제만 생각하세요. 회사가 보유한 현재 기술로 애초의 유전자 정보에 없는 그런 성격을 사라에게 부여할 수 있을지 하는 문제 말입니다. 관건은 회사 측에서 슬픔이나 아쉬움과 같은 어둔 모습을 사라의 인격에서 얼마나 제거해 낼 수 있느냐는 겁니다. 늘 웃고 즐겁게 노래 부르는 사라만이 제이미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일 테니까요.”

동섭은 박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뒤 상담실을 나선다. 그의 자동차는 서울 근방에 위치한 ‘천사의 나라’ 한국 지점을 향해 달린다. 구름이 낀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동섭은 심란한 마음에 라디오를 켠다.


- 법원은 결국, ‘천사의 나라’에 손을 들어 줬습니다. 1년 전, 엔젤홀릭 신드롬의 가장 심각한 부작용 중 하나인 우울증으로 목숨을 끊은 사망자들의 유가족 서른 명이 ‘천사의 나라’를 기소했었습니다. ‘천사의 나라’가 엔젤홀릭 신드롬의 원인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데다가, 피해자들의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불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법원은 엔젤홀릭 신드롬의 원인은 ‘천사의 나라’에서 제작한 시스템에서 기인한다는 그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천사의 나라’ 측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한국 법원의 입장은 ‘천사의 나라’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 일본, 영국과 같은 대부분의 나라에서의 판결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엔젤홀릭에 대해 수수방관하고 있는 이유를 ‘천사의 나라’가 암암리에 사회적 질서 유지에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과 한국의 연구팀은  죽은 사람을 가상의 세계에서나마 유족의 품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사회에서가 그런 기술을 보유하지 못 한 사회에서 보다 자살률이 더 낮고, 술과 마약 복용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 손실이 훨씬 적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극심한 빈부 격차로 인한 범죄, 기아, 소규모 테러 등이 도처에서 빈번히 목격되고 있는 음울한 현 시대에 '천사의 나라'가 과연 희망이 될 수 있을지 더 지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법원의 판결 이후, 창설 10년 만에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천사의 나라’에 점점 더 많은 고객들이…….
  

kris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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