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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Homo Satanicus를 찾아서

2009.05.18 18:4705.18

1.  특별 2부작 「진짜 흡별귀을 찾아서」 생방송 녹화 현장

담당 PD의 시작 싸인과 함께 프로그램 진행자 키다리 잭은 유쾌한 말투로 방송을 진행한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한 주 동안 제 프로그램을 기다리셨다 구요? 감사합니다.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첫 방송이 나간 이후, 전세계의 시청자들로부터 무려 2백만여 통이 넘는 편지와 메일을 받았습니다. 2 뒤에 0이 몇 개나 붙는지 공책에 써 보신다면 아마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텐데요.  전세계 시청자 여러분, 대단히! 정말!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조금만 기다리세요. 여러분 앞으로 저희 제작진이 키다리 잭이 그려진 멎진 카드로 답장해 드릴 테니까요. 콩고의 오콩가 부족장 님께 보낸 카드는 2주 정도가 소요될 수 있으니 담당 PD가 양해를 구한다는 멘트를 꼭 좀 전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자, 오늘도 하버드 대학의 인류학 교수인 존 케이(J. Key) 박사님께서 와 계십니다. 뜨거운 반응 놀랍지 않나요 존?”

두 손을 모은 채로 앉아 책상 끝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케이 박사는 빨간 불이 들어 온 카메라를 보며 말을 한다.

“너무나 뜨거웠습니다. 너무나 뜨거워서 오늘 아침 제 손주가 책상에 막 올려 놓은 커피잔을 제 다리 위에 엎질렀을 때도 차갑게 느껴지더군요.”

키다리 잭이 박사의 농담에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트린다.

“루마니아 촬영에서 돌아 온 날, 혹시 사모님께서 짓궂게도 박사님의 목을 확인해 보시지 않던가요? 혹시나 하고 말이죠.”

“다행히 이빨 자국도 없었고, 립스틱 자국도 없었지요.”

이 번엔 스텝들도 웃음을 터트린다. 고리타분하기만 할 줄 알았던 교수의 재치에 시청률은 더 올라가게 될 거라고 담당 PD는 옆에 서 있는 조연출에게 귀속말로 전한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하버드 대학의 유머학 교수님이 아닌 인류학과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존, 첫 방송을 놓치신 분들을 위해서 저 번에 다룬 내용을 한 번 정리해 볼까요? 사실 이 내용은 당신이 1년 전에 출판해서 전세계적으로 20만부 이상 팔린 책 「호모 사타니쿠스를 찾아서」에 기반한 내용인데요. 이미 학계에선 정설이 된 것 맞나요?”

“네 물론입니다. 아시다시피, 인류학에서 하나의 학설이 정설이 되기까지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가 주장하는 호모 사타니쿠스의 존재에 관한 이론이 검증되기 까지는 6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봅니다.”

“운이 좋았다는 겸손한 표현을 쓰셨는데요. 어떤 의미에서 그런 건가요?”

“아주 간단합니다. 첫 째는, 스스로 호모 사타니쿠스라고 주장하는 제보자들이 제게 연락을 해 왔습니다. 둘 째는, 유럽의 몇몇 숲과 계곡을 중심으로 그들의 진술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고고학적 유물들이 마치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손 쉽게 발견되었습니다. 셋 째는, 신경과학 제단과의 공동연구에서 호모 사타니쿠스의 생리적 특성이 인간의 그 것과 다르다는 점을 밝혀 냈습니다.”

“그에 관해서는 차차 알아 보기로 하구요. 존, 우리가 곧 화면을 통해서 루마니아로 떠나기 전에 호모 사타니쿠스에 대한 정의를 간략히 내려주겠어요?”

“인류학의 정설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아종(亞種)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로 분류됩니다. 호모 사피엔스란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Carl von Linne)가 붙인 명칭으로 ‘지혜가 있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제 이론은 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유일한 호모 사피엔스의 아종(亞種)이라는 사실을 뒤 엎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종은…….”

“그게 바로 호.모.사.타.니.쿠.스라는 것이군요”

키다리 잭은 또박또박 발음을 하며 우쭐거리듯 과장된 몸짓을 취한다.

“네 맞습니다. 정확한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사타니쿠스(Homo sapiens sapiens satanicus)입니다. 그 동안 인간의 역사에 수 없이 등장해 온 흡별귀 전설의 실제 주인공이죠.”

“박사님, 오늘 제가 세계의 시청자들로부터 받은 편지 몇 통을 들고 나왔는데요. 한국에서 온 편지가 눈길을 끄는데요. 현재 중학생이신 아람 킴 님께서 ‘인간의 학명에 비해 한 단어가 더 많다는 건 그 종이 더 우월하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닌가요?’ 라는 질문을 해주셨어요. 날카로운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데, 사실 저도 그런 느낌이 들었거든요. 사피엔스 사피엔스 뒤에 사타니쿠스가 더 붙으면 뭔가 진화상으로 더 발전된 종이 아닌가 하는 그런 느낌 말이죠. 단지 느낌에 불과한가요?”

“생물학적으로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생물과 자립적인 생명체에 의존해서 존재하는 생물로 말이죠. 기생충이나 바이러스 같은 것들이 후자에 속합니다. 호모 사타니쿠스 역시 후자에 속한 다는 것이죠.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생명력에 의존해서만 살아 갈 수 있도록 진화해 왔으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사타니쿠스가 바이러스나 기생충처럼 생물학적인 차원에서의 기생이 아닌,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기생을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회적 기생생물’로 사타니쿠스를 분류하고 있습니다. 진화학적으로 두 종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농경 사회를 이루기 시작한 때를 기점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밝혀 졌습니다.”

“제가 박사님의 책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 다음 스토리는 이렇게 될 겁니다. 농경 사회가 형성되자 마을이 생겨나고 사회 계급이 생겨 났다. 이 때, 힘든 노동이나 피 비린내 나는 전쟁에 직접 참여 하지 않고도 DNA를 효과적으로 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인간의 일부는 진화하기 시작했다. 그 효과적인 방법이란 한 공동체의 지도자급 인물들의 정신을 사로잡아 조종하는 방법인데, 강력한 뇌파를 이용하는 최면의 방법과 도파민의 변형 호르몬인 도파민 A-101과 102를 주입하는 방법이 있다. 밤새 외운 보람이 있나요 존?”

잭은 더위에 지친 개처럼 혀를 내밀고 헉헉거리는 흉내를 내며 미소를 보낸다.
잭은 예일 대학 방송학 석사 출신으로 냉전시대 때 라디오 진행자를 맡으면서 명성을 얻은 엘리트 방송인이다. 보수 진영의 정치인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그는 ‘독한 혀’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그러나 너무 독한 혀가 자신에게 독이 된 걸까? 그는 냉정 시절 때 미국인들을 상대로 한 CIA의 생화학 무기 실험을 비난하는 발언으로 방송 일을 더 이상 못 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 지방 신문사의 편집장으로 조용한 삶을 살 던 그는, 쉰 초반의 나이에 빈민가를 돌며 무료로 새 집을 지어주는 ‘집을 선물합니다’란 휴먼 프로그램으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나이가 들어 서글서글해진 얼굴과 재치 있으면서도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이 녹아 있는 말솜씨로 이후 수 많은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여 미국을 대표하는 방송인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더 타임지(The Time)에 세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여섯 번 이나 이름을 올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큰 키 때문에 키다리 잭이란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PD는 손가락을 빙빙 돌려 잭에게 다음 내용으로 빨리 진행하라고 신호한다. 잭은 능숙한 솜씨로 진행을 이어간다.

“오늘 저희가 또 한 분의 유명한 박사님을 모셨습니다. 신경과학 연구소 소장인 빌헬름 쿤츠(W. Kuntz)인데요, 열 살 때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분입니다. 구텐 탁 독토어 쿤츠(안녕하세요 쿤츠 박사님). 이게 제가 아는 독일어의 전부네요. 쿤츠 박사님 혹시 어렸을 때 사셨던 독일의 작센 지방에 호모 사타니쿠스와 연관되는 그런 속담이나 전래 동화 같은 게 있었나요?”

잘 손질된 짧은 머리에 밝고 강렬한 눈빛이 인상적인 쿤츠 교수는 당황하지 않고 느리지만 또박또박한 말투로 답변을 한다.

“저와 제 부모님이 태어난 튀링엔에서 예로부터 전해 오는 속담이 있어요. 그건 바로 ‘마쿠스 성(城)의 귀족들은 낮에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지요. 선생님들에게나 부모님들에게 흔히 듣곤 했던 이 속담은 사람들이 우선 마쿠스 성에 살던 귀족들의 무능함을 비꼬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배웠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속담은 부지런한 사람은 낮에 열심히 일 하고 밤에 쉰다는 교훈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지요. 그러나, 옆에 계신 케이 박사님의 연구를 통해 사타니쿠스가 귀족이나 혹은 성주의 조언자로 있었던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비슷한 속담들이 전해져 온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굉장히 획기적인 발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박사님께서는 사타니쿠스의 두뇌 연구를 성공적으로 이끄셨습니다.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신경과학에서 본 사타니쿠스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인간과 사타니쿠스의 유전자는 거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 졌습니다. 이는 인간과 그들이 외형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능력 역시 그들은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사타니쿠스와 인간의 몇몇 차이는 두뇌를 비롯한 신체기관의 해부학적인 차이가 아닌, 기능상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이라 보면 됩니다. 케이 박사님의 연구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사타니쿠스가 인간의 정신을 장악하는 가장 주요한 방식의 비밀은 바로 뇌파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에 있습니다. 우리는 사타니쿠스들이 외부적인 위험요소가 적고, 무엇보다 사람의 감정 상태가 상대적으로 많이 부드러워 지는 저녁과 밤에 활동을 하면서 야행성의 행동습관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무튼 뇌파를 조절하는 이런 능력은 오랜 명상 수련으로 정신을 단련한 티벳이나 인도의 수도자들 역시 가지고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죠. 그러나 인간과 사타니쿠스를 구별해 주는 독특한 능력은 자기자신의 뇌파를 이용해 인간의 뇌파 역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 핸드폰이나 디지털 카메라와 같은 일부 전자기기에 구현된 ‘블루투스’의 방식과 유사하다고 보면 됩니다. 가령 이런 식이지요. 먼저 사타니쿠스는 성의 군주나 왕에게 접근합니다. 창백하고 가녀린 아름다운 사타니쿠스는 달콤한 말로 이웃의 영토를 침략할 것을 권유합니다. 이 때 주로 상대의 알파파를 극대화시켜 마치 꿈꾸는 듯한 느낌에 빠져들도록 합니다. 막대한 부와 권력이 보상으로 주어질 거란 환상에 상대를 빠지게 합니다. 침략 전쟁의 작전을 계획할 때는 주로 고도의 인지활동에 필요한 베타파를 극대화시켜 놓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타니쿠스들은 권력자의 절대적인 조언자로 그리고 절세미인의 첩으로 그들의 세력을 확고히 만드는 것입니다.”

“사타니쿠스들 중에는 미남미녀가 많다고 하셨는데 그것 역시 인간과의 어떤 차이 때문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사타니쿠스들은 진화의 과정에서 뇌파를 조절하는 능력을 얻는 대신 선천적인 포피리아 (porphyrias)에 시달리는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야행성의 행동습관이 포피리아 병의 원인인가, 결과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 중에 있다는 걸 알려드립니다. 아무튼, 이 포피리아란 병은 헤모글로빈을 이루는 헴과 글로빈 중에서 헴의 생성에 문제가 발생해서 생긴 병입니다. 햇볕에 노출되면 치명적인 물집과 흉터가 생기므로 포피리아 환자들은 주로 두꺼운 커튼이 쳐진 방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사타니쿠스들은 하얗고 창백한 피부, 즉 대리석 같이 하얗고 매끈한 피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에게도 발생하는 포피리아가 사타니쿠스들과 어떤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의학자들은 인간에게 발생하는 포피리아의 원인을 주로 유전적인 곳에 있을 것이라 추측해 왔습니다. 최근에 한국과 일본의 과학자들이 포피리아가 사타니쿠스와의 성적 접촉에 의해 인간에게도 퍼지게 되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청자 여러분께 이 연구결과는 아직 가설이라는 점을 알려 드립니다.”  

“글쎄요. 보험회사 상담원들의 말만 들어도 귀가 솔깃해져 보험에 가입하곤 하는 저로서는 절세미인의 사타니쿠스가 저의 뇌파를 요염하게 안마하며 접근해 오면 어떻게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쨌든 여러분, 케네디와 염문에 휩싸였던 마릴린 먼로가 사타니쿠스 아니냐는 질문은 오늘 방송 이후 하실 필요 없겠군요. 왜냐 구요? 만약 먼로가 사타니쿠스였다면, 촬영 시에 사용된 지속조명과 단기조명이 치사량의 방사능처럼 그녀의 몸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버렸을 테니까요! 자, 이제 우리는 드디어 루마니아로 떠납니다. 루마니아 하면 뭐가 떠오시나요? 로마인들이 사는 나라? 아닙니다. 바로 드.라.큘.라이죠.”

PD의 손짓에 따라 잭과 케이, 쿤츠 박사는 뒤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향해 의자를 돌려 앉는다.




2. 루마니아의 산간 도시 시나이아

“시청자 여러분들도 오늘 아침 뉴스를 보고 충격에 빠지셨나요? 저는 그랬습니다. 멕시코 출신의 미국 SF영화의 대부 죠지 또까스(J. Tokas)가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인간과 흡별귀의 전쟁을 다룬 자신의 영화 「흡별전사 발퀴레」에 200억을 투자했는데, 1년 전 케이 박사의 책 「호모 사타니쿠스를 찾아서」가 전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면서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왜냐면, 사타니쿠스가 진짜 흡별귀의 원형으로 알려지면서 자신의 영화에 그려진 인간의 피를 게걸스레 들이키는 흡별귀의 이미지가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가 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프로그램의 첫 방송이 방영된 날 밤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방송을 보시는 전세계의 흡별귀 매니아 여러분과 얼마 전까지도 흡별귀에 관한 소설과 영화에 몰두하고 계셨을 예술가분들께 분명히 말씀 드려야겠군요. 이 방송에서 공개하는 사타니쿠스는 흡별귀가 아닙니다. 사타니쿠스가 공개되더라도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그 흡별귀에 대한 이미지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사타니쿠스의 발견 이후에 그런 대중들의 흡별귀에 대한 사랑이 오래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요. 또까스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거예요!
자, 우리는 지금 루마니아의 작은 산간도시 시나이아에 와 있습니다. 지금 제 뒤로 보이는 산이 카르파티아의 진주라 불리는 부체지 산입니다. 오늘 우리는 펠레슈 성을 급습할 것입니다. 제 오른 편 저 멀리 숲 속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그림 같은 성이, 바로 펠레슈 성입니다. 저 아름다운 성을 왜 급습하냐 구요? 거기에 바로 사타니쿠스들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 따라오시죠.”

카메라의 불빛이 꺼진 것을 보자마자 잭은 스텝이 건네준 비옷을 얼른 걸친다. 10월의 루마니아 날씨가 꽤 을씨년스럽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잭과 스무 명 가량의 인원으로 구성된 제작진은 펠레슈 성으로 이동한다.
케이 박사, 쿤츠 박사와 그들을 따라온 몇 명의 대학원생들은 펠레슈 성에 이미 도착해 있다고 한다. 시나이아 시의 협조로 경찰들에 의해 적절한 통제가 이루어 져서 일반 시민들의 접근은 허락되지 않았다. 물론 항의하는 시민들은 아무도 없었다. 제작진은 성 앞 작은 뜰에 촬영장비를 빠르게 설치했다. 그리고 성 주위에 전등을 켜 놓아 사타니쿠스들이 성 밖으로 도망치지 못 하게 만들어 놓았다. 잭은 다소 긴장되어 있다. 혹시 나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녹화 20분 전에서야 독일의 의료진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성 안으로 들어 가게 될 제작진들에게 특수제작 된 전자 머리띠를 나누어 주면서 착용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사타니쿠스들이 제작진들의 뇌파를 조종하여 무기력하게 만들거나 환각에 빠지지 못 하게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쿤츠 박사의 제안에 따라 아직 성경험이 없는 어린 두 명의 팀원은 성 안으로 들어 가지 못 하게 되었다. 사타니쿠스가 충추신경계를 자극하는 뇌파를 강하게 발사할 경우 그들의 머리띠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윽고 PD와 스텝들은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잭에게 알린다.
펠레슈 성의 입구 앞에 잭이 서자 PD는 녹화 신호를 보낸다.

“여러분 우리는 드디어, 드디어 펠레슈 성 앞에 도착했습니다. 지금 시각이 저녁 7시인데요, 이제 막 사타니쿠스들이 활동을 하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제가 목소리를 작게 내야 하기 때문에 잘 안 들리신다면 화면 아래의 자막을 활용해 주시면 됩니다. 자, 왜 펠레슈 성에 왔느냐, 도대체 펠레슈 성의 역사는 무엇이냐, 한 번 들어볼 까요? 시나이아 민속박물관의 페트릭 관장님!”

“펠레슈 성은 독일 호헨쫄레른 왕가 출신의 루마니아 국왕인 카롤 1세가 만든 19세기 후반의 독일 르네상스 건축의 진수를 보여주는 성입니다. 유럽의 성 중에서 최초로 전기장치, 중앙난방식, 보일러, 엘리베이터, 중앙집중식 진공청소기 등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관장님의 표정에서 펠레슈 성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자긍심이 엿보이는 데요. 제가 독한 질문을 하나 해야겠어요. 이렇게 멋진 성이 사실 사타니쿠스의 조종을 받고 있던 권력자에 의해 만들어진 성이라니 실망스럽진 않으신가요?”

“글쎄요……. 처음엔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누가 만들었냐를 떠나서 이 성은 그 자체로 늘 아름다운 시나이아 도시의 자랑거리일 테니까요.”

“시청자 여러분,  아무래도 많은 분들이 제 독한 질문에 면연력이 생긴 것 같네요. CIA 빼구 말이죠. 마지막으로 혹시 사타니쿠스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는 이 지역의 속담이나 전설 같은 게 있나요?”

“네, 하나 있습니다. 예전부터 부체지 산에는 곰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자주 곰을 목격하니까 예전엔 더 많았겠지요. 실제로 18세기경에만 하더라도 이 지역의 사망률 1위가 익사(溺死)였고, 2위가 곰이나 늑대의 공격 때문이었습니다. 이 지역에 전해 오는 속담 중에는 ‘펠레슈 성의 왕족들은 부체지 산의 곰들도 겁을 낸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속담은 펠레슈 성의 왕족들의 용맹함을 담고 있는 거라고 믿어져 왔었지요.”

잭이 능숙하게 말을 가로채어 케이 박사에게 발언권을 넘겨 준다. 대본에 없던 잭의 멘트에도 카메라 감독은 당황하지 않고 조명 아래 대학원생들과 서 있는 케이 박사를 화면에 담는다.

“그건 사타니쿠스의 독특한 능력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속담이라고 보여집니다. 뇌파를 조종하는 사타니쿠스의 능력이 인간에게뿐 아니라 야생동물들에게 까지도 발휘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우리는 왕족들과 사타니쿠스들이 어느 가을 날 사냥을 즐기러 숲으로 들어 갔다가 2미터가 넘는 곰과 맞닥뜨리는 상황을 쉽게 상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그 때 두터운 도포자락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던 사타니쿠스가 일행의 전면으로 나왔을 겁니다. 그리고 강한 뇌파를 발사해 곰의 호르몬 계에 변화를 일으켜 놓았겠지요. 그러면,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살기가 넘치던 야수는 뒷걸음질을 치며 숲으로 도망을 쳤을 겁니다. 그런 예수의 기적과도 같은 능력들은 왕족의 신임을 공고히 해주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겁니다.”

“비가 오는데도 좋은 정보 전해준 페트릭 관장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린 이 거대한 성문을 열고 이제 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키다리 잭을 난쟁이로 만들어 버릴만한 높이의 성문인데요. 조금 겁이 나지만, 케이 박사님과 쿤츠 박사님이 제 뒤를 멋지게 호위해주리라 믿습니다. 자 문을 열고 들어 가겠습니다.”

제작진들은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성 안으로 들어 간다. 촬영 조명은 사타니쿠스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으므로 반입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잭과 제작진들은 작은 손전등 하나씩을 들고 들어 간다. 경찰관 네 명도 제작진 뒤를 따라 들어간다.

“여러분 이 대리석 바닥이 보이시나요? 아마 당대 최고로 값비싼 대리석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좀 춥군요.”

휴대용 적외선 감지기를 들고 있는 스텝 한 명이 1층에는 아무런 생명체도 감지되지 않는다고 알려준다. 제작진은 곧장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어, 저 소리 들으셨나요? 뭔가가 우당탕 하고 넘어지는 소리 같았는데요. 나무를 긁는듯한 소리도 들리는 것 같은데……. 아직은 소리가 너무 희미합니다. 이 벽에 걸려 있는 초상화들 좀 보십시오. 이 성에 머물던 왕족들의 초상화겠지요. 저들 중 사타니쿠스도 있을까요? 몰라도 괜찮습니다. 우린 곧 진짜 사타니쿠스들을 보게 될 테니까요.”

순간, 제작진 한 명이 “저기! 복도 끝!”이라고 소리질렀다. 희멀건 생명체가 바닥 위에서 꾸물거리고 있는 게 모두에게 보였다.

“지금 케이 박사님이 첫 사타니쿠스가 나타났음이 확실하다고 알려줬습니다. 저기 복도 끝에……, 지금 저게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요?”

“사타니쿠스예요. 사람과 외형상의 차이가 전혀 없습니다.”

“자, 제 머리띠가 제대로 착용되어 있는지 확인을 하겠습니다. 좀 떨리는 데요.”

제작진은 일제히 복도 중앙에 멈추어 섰다. 하얀 잠옷용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복도 끝 방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휑한 눈동자로 제작진을 훔쳐 보고 있었다.

“왜 저렇게 마른 건가요. 젊은 여자 사타니쿠스이긴 한데 너무 말라서 애처로워 보이는 군요. 무릎을 감고 있는 팔뚝이 오늘 레스토랑에서 후식으로 먹은 루마니아 소시지 보다 가는 것 같아요.”

“잭, 동정심을 갖지 말아요. 그냥 있는 그대로 보세요. 절대 휘말리면 안 됩니다.”

쿤츠 박사가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잭에게 알려준다. 사실 그건 자기 자신을 비롯한 모든 제작진들을 향해 던진 말이기도 했다. 가녀린 몸매이긴 했지만, 균형 잡힌 이목구비와 어깨까지 오는 반짝이는 금발의 머리카락 그리고 잠옷 사이로 비치는 대리석처럼 하얗고 매끄러운 다리의 피부는 그 자체만으로 남자들의 성적 흥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였다. 어떻게 보면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굶주리고 지친 소녀의 모습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내게 고통을 주세요’라고 애원하는 피학증의 성향을 가진 요부 같아 보이기도 했다.

“정말 위험한 상황입니다. 만일 쿤츠 박사의 말을 듣지 않고 성경험이 없는 두 남자 스텝이 따라왔었다면 분명 돌발상황이 벌어지고도 남았을 겁니다. 자, 제가 가까이 다가가 보겠습니다”

제작진들은 긴장하기 시작한다. 잭은 손전등을 들고 잔뜩 겁을 먹고 움츠린 여자에게로 천천히 다가간다. 순간, 케이 박사가 작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잭, 물러서요!”

케이 박사는 잭을 더 이상 접근하지 못 하게 한 후 말을 잇는다.

“잭, 엄지와 검지 사이에 나 있는 가늘고 뾰족한 돌기를 보세요. 꿈틀거리는 게 보이시죠? 저게 바로 흡별귀의 무서운 송곳니에 대한 환상의 원형입니다. 인간과 악수하거나 인간의 몸을 더듬을 때 바로 손가락 사이에 숨어 있던 저 돌기가 발기하듯 솟아나 인간의 몸을 찌르게 됩니다. 그리고 도파민의 변형 호르몬인 도파민 A-101이나 102를 주입합니다. 이 호르몬은 마약과 화학구조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즉 일반 도파민과 달리 강한 중독증상을 일으킵니다. 도파민의 일반적인 효과가 그렇듯 적절한 도파민 주입은 인간의 정신능력을 최고조로 끌어 올려 놓습니다. 반면, 지나칠 경우에 정신착란증세나 분열증세를 유발시킵니다. 인류 역사상 존재해 온 왕들 중에 알렉산더 같은 천재가 있는 반면, 네로 같은 미치광이가 있는 이유도 바로 거기 있지요. 아무튼, 호르몬이 한 번 주입된 인간은 그 순간에 자신이 본 사타니쿠스의 정신적인 노예가 되게 됩니다. 그 원리는 말보로 담배의 광고용 포스터에 있던 카우보이 사진을 볼 때면 흡연에 대한 욕구를 느끼게 되는 일종의 조건반사의 원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경우엔 저 사타니쿠스가 큰 공포에 휩싸여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져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예정대로 뒤에서 대기 하고 있던 경찰관 네 명이 사타니쿠스를 생포하려고 앞으로 나선다. 그러자 적외선 탐지기를 들고 있던 스텝이 돌연 머리띠를 획 벗어 던지더니 “안 돼요. 저 애를 가만 두세요.”라고 소리치며 경찰들의 앞 길을 가로막고 나섰다. 돌발상황이었다.

“마법에 걸려 들었습니다. 빨리 그를 데리고 나가세요. 빨리요!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쿤츠 박사는 단호한 목소리로 스텝들에게 명령했다. 편집되지 않은 영상이 그대로 방송되자 방청객뿐 아니라, TV 앞의 시청자들 역시 소름이 돋을 만큼 경악한다.
사실, 이 방송의 촬영 허가는 전세계의 사타니쿠스를 잡아 들이라는 국제회의의 결과 때문에 가능했다. 펠레슈 성 안의 모든 사타니쿠스를 생포하라는 조건으로 루마니아 당국은 촬영허가를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제작진들의 그 누구도 그 여린 사타니쿠스를 끌고 가는 경찰에게 항의할 수 없게 되어있었다. 물론, 항의를 했다가는 사타니쿠스의 마법에 걸려 들었다고 오해 받고 성 밖으로 쫓겨 나게 될 것이다. 바로, 그 때였다. 위층 어디선가 하프시코드의 선율이 흘러오기 시작했다.

“여러분, 누군가 하프시코드를 연주하고 있는가 봅니다. 이건 바하(S. Bach)의 평균율인데요, 피아니스트인 제 아내가 부부싸움 한 다음 날 아침이면 버릇처럼 연주하던 곡이니 제 말을 믿으셔도 될 겁니다. 자, 위로 한 번 올라가 볼까요?”

제작진이 위층으로 올라간 사이, 경찰들은 복도 끝에 웅크리고 있던 사타니쿠스를 잡아 아래 층에 대기하고 있던 호송차량으로 보내고 상관의 지시사항을 다시 한 번 듣는다. 상관은 가급적이면 상처 없이 사타니쿠스들을 잡아 올 것을 부탁한다. 만약의 사태를 위해 한 명이 더 추가된 다섯 명의 경찰들이 성 안으로 다시 들어 온다.

“세 번째 방입니다.” 라고 누군가 알려준다.

“정말 우아한 연주입니다. 글렌 굴드(G. Gould)의 연주에서나 음미할 수 있는……. 뭐 랄까……. 마치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르던 마녀가 공중으로 뿌린 마법의 은빛 별가루처럼 반짝거리는 음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케이 박사님이 저를 다소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고 계신데요. 아마,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있으신 분이라면 제 말이 사타니쿠스의 마력과 무관한 진실임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자, 문을 열겠습니다.”

19세기 풍 접대용 응접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둡지만 굉장히 화려한 곳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벽난로 맞은 편에 하프시코드가 놓여 있고 19세기 식 검은 연미복을 입은 한 남자가 연주를 하고 있다. 그리고 로코코식의 우아한 곡선의 테두리가 인상적인 쇼파에 하얀 파티용 드레스를 입은 세 명의 젊은 여자들이 다소곳하게 앉아 있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들은 그리스의 조각상처럼 그 존재자체에서 은은하게 발휘되는 농염한 아름다움으로 감싸여 있었다.

“마치 우리 인간들을 영접하기라도 하겠다는 건가요? 제 전자 머리띠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기를 기도하면서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제작진들의 긴장감이 느껴지시나요? 제 손은 어느새 식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습니다. 문 밖에 계신 저의 보디가드 케이 박사님이 더 들어가지 말라는 손짓을 보내는 데요. 시청자 여러분의 알 권리를 존중해야 할지 저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할지 어…….”




3.  다시 생방송 녹화 현장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자 방청객들의 뜨거운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터진다. 키다리 잭은 미리 준비된 웃음을 터트리며 진행을 한다.

“사실 우리가 준비했던 방송 분량은 30분짜리였습니다. 지금 20분 정도 분량의 영상을 여러분께서 보셨습니다. 아쉽게도 녹화는 여기까지였습니다. 이유는 우리 제작진들이 일순간 하프시코드의 선율에 취해서 본분을 잊고 사타니쿠스와 19세기 식 왈츠 파티를 벌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케이? 제일 즐겁게 노시던데요! 저는 사실 1849년 산 와인에 취해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요.”

경직되어 있던 케이 박사는 그제서야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연다.

“연주가 아름다웠던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아름다움 속에는 독가시가 숨어 있는 법이지요. 카메라를 비롯한 제작진의 방송용 장비가 일순간 정지해 버렸기 때문에 촬영이 더 이상 불가능 했습니다. 네 명의 사타니쿠스가 얼마나 강력한 뇌파를 뿜어낼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작은 사고였다고 생각합니다.”

쿤츠 박사도 머리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한다.

“자, 그럼 이제 방청객 여러분들의 질문을 받아 보겠습니다. 아마 큰 충격을 받지 않았나 싶은데요. 아, 저기 제 키 보다 1센티미터 작아 보이시는 남자분!”

“저는 코넬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있는 존슨이라고 합니다. 이 방송을 보기 전에 저는 케이 박사님의 책을 읽고 이미 충격을 받을 대로 받았습니다. 지금 저는 휴학을 한 상태인데요, 정말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다윈의 진화설을 입 밖에도 내지 못 하게 했던 고등학교에서 창조설을 믿고 성장해온 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습니다. 케이 박사님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얼마 전 한 종교학자가 성서에 나오는 사탄이 바로 사타니쿠스를 그 원형으로 한다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하나님이 사타니쿠스를 창조 하셨 다는 구절은 나오지 않지만, 이미 에덴 동산에서부터 악의 존재는 뱀의 형상을 하고 등장하지요. 케이 박사님께 여쭙고 싶은데요, 사탄의 실제 모델이 사타니쿠스라고 보시나요?”

“아까 방송에서도 확인하셨겠지만,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속담이나 전설에는 분명 그에 상응하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결부되어 있습니다. 가장 좋은 예는 바로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이지요. 그가 쓴 서사시에 등장하는 도시들 중 일부는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 되었지요. 성서를 그런 옛 이야기로 본다는 데에 동의하신다면, 사탄의 존재를 사타니쿠스로 해석하는 것은 권장 할만 하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자, 질문 하나를 더 받아 보겠습니다. 저기 맨 뒷줄에 계신 머리카락이 없으신, 눈부신 젊은 남성분께 마이크 넘겨 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프랑스 리옹에서 온 파티앙이라고 합니다. 사타니쿠스의 실제 존재를 확인해 보니 정말 신기했습니다. 저는 사타니쿠스를 잡아 들일 것에 동의한 국제 회의의 결과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타니쿠스도 엄연한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입니다. 그들이 인간의 정신을 조종하면서 살아 온 역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들도 인간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들도 손과 발을 가지고 있고 인간과 같은 크기와 모양의 두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인권이 적용 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보호용 수용소에 갇힌 사타니쿠스들에게 자유가 허락 되야 하고 남은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우리는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방청객들은 박수를 보내며 “맞아! 맞아!”라고 외쳤다.

“이미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굉장히 난해한 질문인 것 같습니다. 사타니쿠스들에게 인권이 적용될 수 있는가? 쿤츠 박사님께서 답해주시겠습니까?”

“초점은 인권문제의 적용이 아닌 인간에게 기생하도록 진화한사타니쿠스들의 존재방식에 맞춰져야 한다고 봅니다. 사타니쿠스는 많은 면에서 인간과 같지만 결코 모든 면에서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인간을 이간질시키는 데에 알맞게 진화해 왔습니다. 야생동물과 같은 예민한 감각으로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는 능력은 표범이 하이에나를 피해 자신의 몸무게에 맞먹는 무거운 먹이를 나무 위로 재빨리 끌고 올라가야 하는 것만큼이나 생존에 직결되어 있지요. 그들이 인간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몇몇 국가들에서는 사타니쿠스의 도파민 변형 호르몬을 축출해 만든 신종 마약이 나돌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합니다. 어쨌든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300명 가량의 사타니쿠스 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남아 있는 사타니쿠스들도 많은 근친상간의 결과로 선천적인 병을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들이 아직 19세기 때 까지나 영화를 누렸던 오래된 성 안에 살고 있는 이유도 그들이 현대 사회에 적응하지 못 했음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들은 멸종해 가나요?” 라고 방청객 한 사람이 마이크도 없이 물었다. 케이 박사가 답을 넘겨 받는다.

“아직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한 상태입니다. 빙하기 때 인간과 공존했던 네안데르탈인들의 멸종 원인도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듯이 사타니쿠스들의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무분별한 근친상간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생물학자도 있고, 디지털화된 도시에서는 강한 전자파 때문에 사타니쿠스들의 뇌파가 힘을 잃기 때문이라고 보는 쿤츠 박사와 같은 신경과학자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 사회가 점점 민주화되면서 사타니쿠스들의 꼭두각시 역할을 해주던 군주나 왕과 같은 절대권력자의 입지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제 이론도 있습니다. 이처럼 아직 여러 가설들만 있는 상황입니다.”

“오늘 이 방송을 보신 분들은 늦은 커피를 삼가 하실 것을 권장해 드립니다. 이미 여러분은 지적으로 많이 흥분된 상태이니 쉽게 잠들지 못 할 수도 있으니까요. 아, 그리고 혹시 밤 중에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들리더라도 놀라지 마세요. 사타니쿠스들은 이제 더 이상 여러분들의 주위에 없으니까요. 젊은 남성 분들은 멋진 사피엔스 사피엔스 여성을 만날 날을 꿈꾸며 스스로 위안하기를 바랍니다. 「진짜 흡별귀를 찾아서」를 시청해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전세계의 시청자 여러분들께 마지막으로 알려 드려야겠네요. 지금 제작진 앞으로 보낼 편지를 쓰고 계시다면 서두르셔야겠습니다. 선착순 600명에 한해 케이 박사님의 싸인이 새겨진 「호모 사타니쿠스를 찾아서」를 보내드립니다. 다윈(C. Dawin)의 「종의 기원」을 능가하는 세기적 명저를 받을 기회 놓치지 마세요!”




4. 10분 짜리 미방영 영상

“……시청자 여러분의 알 권리를 존중해야 할지 저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할지 어…….”

탕! 탕 !탕!, 하고 세 발의 총성이 펠레슈 성을 뒤흔든다. 성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의 고막을 때릴 정도로 울림이 크다. 화약 연기와 냄새가 진동을 한다. 마지막으로 합류했던 젊은 경찰관 한 명이 잭 옆에 총을 들고 시간을 잃어 버린 사람처럼 가만히 서 있다. 권총의 총구에서 아직 연기가 피어 오른다.
소파에 있던 여자 세 명이 바닥에 꼬꾸라져있다. 대리석 바닥으로 피가 번지고 있다.

“어서 저 사람을 잡아요!”

복도에 있던 경찰관 네 명이 쇼윈도의 마네킹처럼 굳어버린 경찰관을 끌고 나간다.

"마지막 경찰관에게 머리띠를 주지 않았던 거야?"              

“젠장…….”

일단 인간 측에서는 아무런 인명피해가 없음이 확인 되자 제작진의 시선은 하프시코드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로 쏠린다. 개인용 캠코더처럼 다급하게 흔들리던 카메라가 간신히 제 자리를 잡는다. 남자가 연주용 의자에서 일어서 제작진을 향해 서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며 자신들의 머리띠가 제대로 붙어 있는지 일제히 확인했다. 육체적인 힘은 인간의 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약하다는 케이 박사의 조언 때문에 경찰들도 일단 권총을 빼어든 채 긴장감 가득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 본다.

“친애하는 인간들이여, 죄책감 가질 필요 없습니다. 제가 제 딸들을 죽인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요.”

남자는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프랑소와즈(S. Francoic)의 외모를 연상시킨다. 잘 손질된 콧수염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나지막하면서도 기품있는 남자의 목소리에 약간 몽롱해진 잭은 정신을 가다듬으며 경험이 많은 방송인답게 말을 건다.

“스스로 종말을 기다리는 이유가 대체 뭐요? 카이사르가 없어도, 징기스칸이 없어도, 히틀러가 없어도 당신들은 빵을 먹을 수 있잖소. 포도주에 기분 좋게 취해볼 수도 있잖소.”

남자는 이미 오래 전에 모든 걸 체념한 듯한 레몬 빛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인간의 권력욕은 우리에게 생명수와 같습니다. 수 만년의 세월 동안 그 물로 우리는 번성해 왔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권력자와의 오랜 동거의 결과로 인간 세계의 권력자들의 유전자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보다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우리의 뇌파는 바위에 던져진 달걀처럼 그 마력을 잃어 버렸습니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에서 우리의 정신세계는 정점을 맛본 후 점점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종을 보존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근친상간이 성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18세기 초에 기형아 출산율이 급격히 높아져 멸종 직전에 놓여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완벽히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특성을 가지는 유아들이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50년을 주기로 그 비율은 점점 높아져 갔지요. 여러분 앞에 잠든 제 딸들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들이 승리했습니다. 진화라는 도도한 강물엔 단 한 방울의 도덕적 가치판단도 섞여 있지 않는 법입니다. 축하합니다, 그리고 건투를 빕니다. 기생하는 존재가 사라졌다고 해도 기생이란 존재방식은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권력은 이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는 남자는 조용히 창문을 향해 걸어 간다.

“보고 있지 말고 어서 저 남자를 잡아요. 창문으로 못 가게 막아야 돼요!”

잭이 다급하게 외치자 젊은 스텝들이 남자를 향해 달려 간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남자는 예정된 프로그램처럼 조금의 실수도 없이 창문을 열고 머리를 땅으로 향하게 하여 떨어진다. 카메라 감독은 창 밖으로 몸을 내어 자갈이 깔린 뒷마당에 피를 흘리며 누워 있는 남자를 끝까지 찍는다.
독일 의료진들이 달려와 맥박을 짚고 동공을 확인 한 후 남자가 사망했음을 알려 온다.




5. 에필로그

이 미방영 영상에 해당하는 필름의 부분은 제작팀이 루마니아에서 돌아 와 미국 땅을 밟자 마자 정부의 비밀 기관 소속의 세 남자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잭은 자신을 세계적인 유명인사로 만들어 준 프로그램 「진짜 흡별귀를 찾아서」 방영 한 달 뒤 정부를 상대로 5년 동안 네 번의 소송을 냈으나 번번히 패소하고 말았다. 잭은 재판에서 미국 내에서 생포된 사타니쿠스들의 생사여부를 공개해줄 것과 미국 정부가 압수해간 필름을 해당 방송사 측에게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달걀로 바위를 치는 느낌이었다.

잭은 자신에게 허락된 모든 부와 명성을 뒤로 하고 또 다시, 아니 영원히 방송계를 떠나게 되었다.

잭은 현재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농장을 가꾸며 노년의 삶을 보내고 있다.
뉴욕에 살고 있는 아들에게 「사타니쿠스는 살아 있다」라는 자서전을 유언으로 준지도 이미 몇 년이 지났다.

지금도 가끔 펠레슈 성 안에서 보았던 사타니쿠스들을 떠올리곤 한다.
그 창백한 소녀는 지금 어디 있을까? 프랑소와즈의 멋진 콧수염을 한 남자를 떠올린다. 당시 그 현장에서 잭은 그들의 모습에서 깊은 동정심을 느꼈었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 놓지 못 했지만, 잭은 그들의 눈에서 슬픔을 읽었었다. 사타니쿠스의 마법 때문이 아니라고 잭은 자신에게 수 백 번, 수 천 번 고백했다. 그럴 때면 또 다른 잭은 ‘나도 알아. 자네가 진실하다는 걸. 그걸 의심하지 않는다네’ 라고 잭을 위로 하며 말해 준다.

잭은 남자가 창문으로 뛰어내리기 전 유언처럼 남긴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본다.

“축하합니다, 그리고 건투를 빕니다. 기생하는 존재가 사라졌다고 해도 기생이란 존재방식은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권력은 이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한 것입니다.”

‘사타니쿠스는 멸종한 게 아니다. 다만, 진화는 같은 역할을 다른 배우에게 넘겨준 것일 뿐이다.’

잭의 자서전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Kris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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