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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이것은 진화가 아니다

2009.05.14 18:2405.14

남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짙은 남색 커튼을 열고 창 밖을 또 살펴 본다. 화창한 초여름의 햇살에 정원의 꽃들은 형형색색으로 빛나고 있다. 수영장의 물 위로 몇몇 사람들이 떠 있다. 고무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한 남자의 와이셔츠 위로 파리떼가 검은 마침표들처럼 다닥다닥 들러 붙어 있다. 털이 쭈뼛쭈뼛하게 난 검은 개 한 마리는 흥분한 듯 으르렁 거리며 시체가 자기 쪽으로 가까이 와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군용 헬기 네 대가 태양을 가리며 어디론가 황급히 날아 간다. 남자는 무거운 표정으로 커튼을 조용히 닫는다. 어린 아들과 딸은 소파에 앉아 고통스러운 듯 일그러진 표정으로 귀를 막고 있다.

“괜찮아. 곧 조용해 질 거야. 아빠 말 믿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소파에 앉아 아들과 딸을 감싸 앉아 준다. 아들과 딸은 남자의 팔에 안기어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는다. 남자는 침착 하려고 노력한다. 지금까지 아들과 딸이 그런 자신의 모습에 의지하며 견디어 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아빠 우리 TV 틀어요. 혹시 엄마가 나올지도 모르잖아요”

창백한 얼굴의 어린 아들이 꺼져가는 촛불 같은 목소리로 말하자, 남자는 말 없이 리모콘으로 TV를 켠다. 그는 자신의 아내가 돌아오지 않을 거란 걸 이미 알고 있다.                                                  

생방송 긴급 뉴스-
진행자: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저는 지난 10년 간 지구 전역에서 급속도로 발생하고 있는 인간 유전자 변형 사태와 관련해 국제 긴급회의가 열리고 있는 베를린의 라인픽치오날(Reinfiktional) 빌딩에 와 있습니다. 지금 이곳 베를린에는 다양한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대규모 집회를 벌이면서 오늘 오전부터 경찰과 대치상황에 있습니다. 방금 들어온 속보에 의하면, 진압 경찰 한 명이 물체를 녹여 버리는 능력을 가진 한 돌연변이 시위자에 의해 한 쪽 팔을 잃는 중상을 입으면서 부분적으로 무력충돌이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혼동과 무질서가 베를린을 뒤 덥고 있는 가운데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중국, 한국 등의 대표단이 참가한 국제회의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국제회의가 진행되기 10시간 전 한국정부 역시 대통령 대국민 발표가 있었는데요, 서울에 있는 김경식 기자 연결해서 자세한 내용 알아 보겠습니다. 김경식 기자!

김 기자: 네, 여기는 서울 시청 앞 입니다. 이곳 역시 어제 오후부터 모여든 600여명의 인진사, 즉 인류의 대진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들이 경찰들과 대규모 대치상황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무력시위는 없었지만 이들 중 200여명 가량은 실제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로 추측되어 경찰 측은 혹시 모를 인명피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진행자: 인진사 회원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김 기자: 이들은 10년 전부터 전지구적으로 급속도로 발생하고 있는 인간유전자 변형을 인류진화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커다란 축복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미 이러한 유전자 변형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인권신장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정부는 이러한 대규모 반발사태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대국민 발표를 통해 이것은 인류진화사의 축복이 아니라 혼란과 무질서를 야기시키는 저주이며, 그 원인이 밝혀지는 대로 치료 되야 할 질병이라고 규정하여 미국정부의 입장에 동의를 표했습니다. 아울러 미국의「뮤턴트 유전자 제거 프로젝트」에 한국정부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확실히 했습니다.

진행자: 김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인천 국제공항 앞에 있는 최상도 기자를 연결해 보겠습니다. 최 기자!

최 기자: 네, 이곳은 인천 국제공항 앞 입니다. 서울 시청 앞에 시위대가 모이던 같은 시각에 이곳 인천 국제공항 앞에도 200여명의 대규모 시위대가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진행자: 그들은 누구이며 요구사항은 무엇입니까?

최 기자: 이들은 소위 플라잉 맨으로 불리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로, 대통령 대국민 발표 내용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을 인명구조와 같은 공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하게 한다는 정부의 대책 때문인데요 이들은 그런 정부의 대책은 소수자에 대한 인권침해이며 시대의 흐름에 어긋나는 현대판 마녀사냥이라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무력시위는 아직 없었습니까?

최 기자: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일부 과격 시위자들이 오늘 오전 11시쯤 비행장 상공 140미터 위로 날아 올라 플랜카드를 흔들며 관제탑의 레이더들을 교란시켜 인천공항은 지금까지 마비상태에 빠져있습니다. 일부 국내선 비행기 탑승객들은 환불과 호텔 숙식 제공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갑작스런 사태에 당황한 공항 측의 회의진행이 늦어지면서 불만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 편 정부는 공항을 마비시키는 이런 과격한 시위가 장기화 될 경우 전투헬기를 동원해 플라잉 맨들의 시위를 진압할 것이라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진행자: 얼마 전 제주도 공항에서 발생한 여객기와 만취한 플라잉 맨의 충돌사건에 대해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최 기자: 네, 이들은 국내의 모든 플라잉 맨들을 대표하여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사건은 단지 술 취한 한 플라잉 맨의 실수였을 뿐, 이 사건을 가지고 모든 플라잉 맨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언론플레이에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왜 그 만취한 플라잉 맨이 마하의 속도로 날을 경우 심장마비로 죽게 될 수 있음을 잘 알면서 그런 행동을 감행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최 기자 감사합니다. 지구전역에서 급속도로 발생하고 있는 인간 유전자 변형사태로 인해 지금 세계 전역은 21세기 지구대온난화 선포 이후 가장 큰 위기를 맞이 하고 있습니다. 이런 유전자 변형을 질병으로 규정하고 신속한 과학적 연구성과를 통해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도와 달리 이것이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는 일부 학자들은 긴급히 인류의 법 조항에 수정을 가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민수 기자 연결해 법조계의 반응에 대해 들어 보겠습니다.

이 기자: 네 이곳은 경기도 수원입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빅이어 유전자 변형자들이 발견된 이 곳 수원에서는 지난 8개월 동안 지난해 평균 4배가 넘는 민사소송이 제기되었습니다. 1킬로 미터 밖에 떨어진 곳의 시계 바늘 돌아가는 소리도 듣는 다는 이 빅이어들이 도청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몇몇 빅이어들은 호기심에서, 애인을 감시하기 위해서 등과 같은 이유를 들며 본인의 잘못을 인정했지만, 상당수의 빅이어들은 고의가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정부가 자신들의 인권을 침해 하는 입장을 표명 할 경우, 모든 정치인들의 통화 내역과 대화내용을 엿들은 후 문서화하여 배포하겠다며 강력히 나서고 있습니다.

진행자: 그들이 그렇게 강력히 나오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이 기자: 대통령 대국민 담화에서 빅이어들에 대한 특별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한 과학벤처기업이 발명한 초저주파 안테나를 국내에 도입하려 한다는 소문이 이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초저주파 안테나란 정상적인 인간은 들을 수 없는 극초저주파를 반경 50킬로미터 내외로 발사하는 장치로서 빅이어들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려 할 때 두개골을 뒤흔들어 부숴버릴 정도의 고통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편, 세계는 지금 독일의 한 신경과학제단에서 주최하고 있는 '빅이어들의 경우 의도된 행위와 비의도된 행위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란 주제로 벌어지는 연구프로젝트의 결과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신경과학자, 물리학자, 법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이 연구프로젝트의 결과는 결국 빅이어들이 자신들의 초능력을 발휘할 때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와 편도핵이 얼마나 활발해 지느냐, 라는 문제로 귀결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아 그러니까 결국 빅이어들이 초능력을 사용함을 '선택'할 때 감정이 더 개입되는지 이성이 더 개입되는지를 밝혀내겠다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현재 국내 법조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이 기자: 국내의 법조계는 헌법의 암묵적인 전제가 되고 있는 임마누엘 칸트의 '자유의지'를 신경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자유의지'는 뉴런과 호르몬의 작용으로 환원될 수 없는, 비물질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입장에 특별한 반대의사를 보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어, 재판을 기다리는 빅이어들은 여전히 초조해 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감사합니다 이 기자. 지난 10년간 전세계적으로 30만 명의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번 사건은 세계 정치, 사회, 경제계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종교계에도 크나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서울 명동에 나가 있는 강동혁 기자 연결해 보겠습니다. 강 기자!

강 기자: 이곳은 서울 명동입니다. 이 곳 명동은 오늘 오후부터 몰려든 외계성령교 신도들로 교통이 정체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기총 및 일부 과격 기독교 단체와 외계성령교 단체들 간의 충돌이 과격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세기말적인 암울함과 긴장감이 이 곳 명동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는 2010년 한반도에 충돌하여 지구의 파멸 논란을 일으켰던 XX-MB 소행성 사건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명동현장:  무저갱의 짐승들은 불지옥으로! ET의 숭배자들은 외계로! 아멘아멘!

진행자: 외계성령교란 어떤 종교입니까?

강 기자: 네 외계성령교란 20세기 헐리웃 스타 톰 크루즈가 신도로 있어 주목 받았던 사이언톨로지 교의 한 분파입니다. Clear Jung 이란 한인 청년이 미국 LA에서 실수로 몇몇 외계인들과의 '性스런 접촉' 후에 창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종교는 창세기의 하나님은 지구로부터 11억 광년 떨어진 사이먼X-1 은하에서 온 한 외계생명체라고 주장합니다. 이 외계 생명체가 인간을 만들었고 문명을 전파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 이들은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 갔지만 정기적으로 세계 유명 인사들과 접촉하며 인류의 역사를 변화시켜 왔고 미래를 설계한다고 믿습니다.

진행자: 그럼 그들은 이 유전자 변형 현상도 그 외계의 신들이 계획한 것이라고 주장하겠군요.

강 기자: 네 그렇습니다. 그들은 현재의 유전자 변형을 이 신적 존재들의 '섭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어제 2080년에 한국인 최초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tyche Kim 교수는 그 동안 지구상에서 벌어진 외계인에 의해 납치된 사람들의 몸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마이크로 금속 칩이 이 인간의 유전자변형을 일으킨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명동현장: 어이, 기자 양반! 뭐요? 섭리라니요! 이건 하나님의 진노요 불 심판의 전조요! 아멘아멘! Clear Jung은 당장 거짓 메시아 짓을 그만두라! 밀지 마요 어어......

진행자: 강 기자? 강 기자?

강 기자: 이이...... 인류는 이제 제 2의 생물학적 진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관련해 외계성령교 측에서 제시하는 흥미로운 증거 중 하나는 바로 21세기 초반 미국에서 만들어져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았던 ‘히어로즈’라고 하는 TV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소위 영웅들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돌연변이 유전자 현상과 놀랄 만큼 맞아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몇몇 외계셩령 신도들은 인터넷 자료를 뒤져 ‘히어로즈’의 대본작가와 감독 및 몇 몇 배우들이 사이먼X-1 은하의 외계인들과 몇 차례의 성스런 접촉이 있었다는 증거들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즉, 드라마 '히어로즈'는 일종의 계시록인 셈입니다. 오늘 외계성령교 회원들이 단체로 ‘히어로즈’라는 당시의 드라마를 상영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벌써 몇몇 과격한 신도들은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모세나 이사야 등과 같은 선지자의 반열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혹시 모를 집단 엑스터시 사태에 100여명의 경찰들이 우선 대기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 아하 그렇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증거들이 있다는 것입니까?

강 기자: 가령 이들은 2006년 7월 드라마의 모 배우가 이틀 동안 외박을 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당시 부인이었던 산드라 라이어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남편은 이틀 동안 집에 들어 오지 않았으며 자신에게 드라마 스텝들과 함께 라스베가스에서 술잔치를 벌였다고 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자신의 남편은 결혼 생활 10년 동안 술을 입에 대본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후 부인은 유산의 아픔을 겪었고 원인은 방사선으로 밝혀졌으나 가장 가까운 원자력 발전소로부터도 1650 Km 떨어져 지냈던 산모가 어떻게 방사선에 노출됐는지는 의문으로 남겨졌었다고 합니다.

진행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외계성령교 단체가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앞에서 한기총 단체들의 시위가 예상된다고 하는데 들어온 소식 있습니까?

강 기자: 현재 전국에서 올라 온 400여명 가량의 한기총 소속 회원들이 가로 5미터 세로 10미터짜리 대형 십자가를 매고 남산을 넘고 있다고 합니다. 가시면류관 대신 빨간 두건을 머리에 동여맨 이들은 예수의 골고다 언덕의 고통을 체험하면서 현재의 전지구적 환난을 믿음으로 이겨내려 하는 것 같습니다. 약 20분 후에 이 곳 명동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외계성령교 단체와의 무력충돌이 예상되어 이 곳 명동은 폭풍전야의 긴장감으로 가득합니다. 5시간 전부터 그와 별개로 모여든 기독교 단체들은 '사탄은 불지옥으로!'와 같은 플랜카드를 들고 외계성령교도들과의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명동현장: 거기 좀 비키세요! 뭐? 어라, 사탄이 말을 하네! 똑바로 좀 아세요 당신네들이 사탄이지 우린 신의 메신저고! 오 주여 하늘 문을 이제 여소서!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승리를 하겠네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진행자: 강 기자? 이번 돌연변이 사건에 대한 한기총의 공식 입장은 무엇입니까?

강 기자: 한기총은 이 모든 전지구적 사건을 인류타락에 의한 결과로 보고 있습니다. 일부 목회자들은 요한계시록의 한 구절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을 인용하며 돌연변이 인간들이 바로 이 '무저갱의 짐승들'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이야 말로 온 인류가 회개해야 할 위기의 시점이라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명동현장: 카메라 치지 마세요! 어어...... 마이크 마이크...... 성도 여러분 히어로즈 곧 상영하니 입장 해 주십시오 살람살람…  ET의 추종자들은 회개할지라! 아멘아멘!...

진행자: 아 방금 속보가 들어 왔습니다. 승객들의 등살에 못 이겨 막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륙한 대한항공 K-777기 조종석 창문에 한 플라잉 맨이 날아와 들러 붙었다는 소식입니다. 조종사에 따르면 이 남자는 유리창을 두드리고 괴이한 표정을 지으며 조종을 방해하고 있다고 합니다. 앗,또 속보가 들어 왔습니다! 한 빅이어가 서울 63 빌딩에 올라가 한국 대통령이 미국의 한 대기업으로부터 거액의 검은 돈을 받았고, 이를 통해 저주파 안테나를 살 것을 부탁 받았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며 빈센트 반 고호처럼 면도칼로 자신의 한 귀를 자르는 퍼포먼스를 한 후 구급차에 실려갔다고 합니다. 앗, 또 다른 속보입니다! 성수대교 한 복판에서 무엇이든 액체로 녹여버리는 돌연변이를 가진 한 남성이 액체로 변한 자신의 부인을 흩뿌리며 대로에 정체된 자동차들을 닥치는 대로 액체화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광경입니다! 앗, 또 속보가…  -

남자는 걱정스러운 듯 아들과 딸을 번갈아 가며 살펴 본다. 겁에 질린 토끼처럼 아빠의 품에 안겨 뉴스를 보고 있던 아들과 딸은 갑자기 두 귀를 막으며 신음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울부짖는다.

"그들이 와요. 그들이 와요. 우리 쪽으로요!"

남자는 재빨리 아들과 딸을 안고 일어서 창문으로 간다. 창문을 열자 마자 남자는 마치 용수철처럼 하늘을 향해 튕겨지듯 솟구쳐 날아 간다. 눈깜짝할 사이 군용 헬기 한 대가 남자의 집을 향해 의식을 잃은 황소처럼 돌진해 온다.
남자는 500미터 상공에서 아들과 딸을 꼭 껴 안은 채 모든 것을 지켜 본다. 충돌 직전 한 플라잉 맨이 도망치듯 상공으로 날아 오르는 것을, 자신의 집이 굉음과 함께 지옥의 화염에 휩싸이는 것을.

시선을 돌려 저 먼 곳을 바라 본다. 진압용 가스와 화염으로 얼룩진 저 도시를, 호화스런 일상의 안락함을 잃어 버린 저 도시를......  
kris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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