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드래곤이 사라지던 날

2009.04.25 21:3704.25

  “인간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낮잠 중이니 대충 정리하고 쉬도록.”

  “예. 마스터.”


  인간들의 말에 따르면 탐욕과 힘의 정점에 서 있으며, 신의 대리자이자 애완동물로도 불리는 사상 최강의 생명체.

  나는 드래곤이다.


  “산 아래 드워프 무리들이 도적들의 습격을 받고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식사 중이니 대충 정리하고 오도록.”

  “예. 마스터.”


  내가 이곳에 둥지를 틀 때만 하더라도 인간이란 종은 불과 도구를 이용할 줄 아는. 그러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동물이었다. 분명히 그랬다.

  “크롬 왕국에서 공물을 보내왔습니다. 계산 결과 보석 일 톤. 황금 삼 톤. 예술품 열네 점. 그리고 처녀 다섯 보내왔습니다.”

  “보물들은 창고에 처녀들은 아래 마을로 보내도록. 앞으론 이런 일에 일일이 보고 하지 않아도 좋다.”

  “예. 마스터.”


  칠백년.

  지금 머무르는 산맥에 자리 잡고 머문 기간.

  드래곤인 내가 산맥 일부의 조그마한 둥지에 만족하고 있을 때, 인간은 이미 대륙 전체에 걸쳐 지배자라는 칭호를 듣고 있었다.


  “로드께서 연락을 취하셨습니다. 최근 인간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드래곤 사냥에 대한 안건이라면서…….”

  “귀찮다. 정 마음에 안 들면 몇몇 이끌고 인간의 도시를 쓸어버리면 될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은 할 줄 모르면서 동족의 죽음에는 안쓰러워하는 모습이라니. 다음에도 연락이 온다면, 그땐 수면기 중이라 하여라.”

  “예. 마스터.”


  드래곤의 사회는 철저한 개인주의 아래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로 점철되어있다. 그리고 인간은 그 반대의 사회를 지니고 있다. 어쩌면, 이런 차이가 드래곤과 인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리라.


  “둥지 근처에 수백에 달하는 인간의 무리가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아직 공격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경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봐야 인간이다. 알아서 처리하도록.”

  “예. 마스터.”


  사실 드래곤은 인간들에 대해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미 용생 자체가 최강으로 만들어진 종족. 때문에 타종족처럼 싸워야할 적이 있거나 영역 다툼으로 인해 혈투를 벌일 일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이해관계에 따른 다툼은 일어나지만, 이건 예외로 쳐도 될 만한 상황.

  우리 드래곤에게 있어 최상의 목표는 안락한 삶. 그리고 종족에 대한 번식. 이 두 가지에 치중이 되어있을 뿐. 타종족에 대한 별다른 시각이나 적의를 지니고 있지도 않다.

  확실히. 모든 것을 배타적으로 바라보는 인간과는 차이가 다르다.


  “수천의 인간들이 둥지 밖에서 시위 중입니다. 대략 내용은 매년 일정량의 보물을 내어 놓을 것. 자신의 왕국에 힘을 실어 줄 것. 향후 마스터의 자식들은 왕국의 시종으로서 생활을 영위할 것 등 총 열 다섯 가지의 항목입니다.”

  “귀찮군. 대충 밟아주고, 지도상에서 지워버리도록.”

  “예. 마스터.”


  흔히 인간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드래곤은 포악과 탐욕의 생명체. 그러나 이건 잘못된 생각이다.

  우선 포악이라는 단어를 따져보면, 인간이 개미를 밟는 것과 같다. 평소에는 하나의 생명체로 대우를 해주지만, 신경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거나 가끔 화가 나면 밟아주는 대상물. 아마 개미의 입장에서 본다면 최악의 포악성을 지닌 생명체로 인간을 꼽겠지. 드래곤의 입장에서 인간이란 바로 그런 것과 같다.

  그리고 탐욕이라는 단어. 사실 드래곤은 보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몇몇 드래곤의 취미에 의해 각종 예술품이나 보석과 같은 품목을 수집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드래곤이 보물을 가져봐야 어디에 써먹겠는가? 딸린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문화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하등 도움이 될 수 없는 존재이다.

  다만, 여타 종족들에 비해 오래 살기에 이렇게 된 것일 뿐. 고작 일백 년도 못사는 인간 역시 자신이 감당도 못할 보물을 쌓아 놓고 살지 않는가? 그런 상황 속에 영원이라 불릴 정도의 삶을 사는 드래곤이 쌓아 놓은 보물은 얼마나 되겠는가? 굳이 약탈을 하지 않고 일 년에 하나만 모아도 창고 하나는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우리들에게 탐욕의 생명체라니. 오히려 그 말은 인간들이 들어야 할 말이 아닌가?

  그 어떠한 종족도 드래곤을 본다면 이런 말을 하지 못할 텐데, 그 어느 종족보다 관찰과 현실을 중시하는 인간의 결과물이란 당사자로서 어이가 없을 뿐이다.


  “머메이드들의 수장이 둥지에 찾아왔습니다. 사냥꾼에 대한 도움을 바라는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가? 이번만큼은 도와주겠지만, 다음부터 이런 일이 발생할 시 거주지에 대한 이동을 생각하라고 전해라. 이 기회에 넓은 바다로 나가는 방법도 괜찮겠지. 인간들의 눈에 뜨일 염려도 없으니 말이다.”

  “예. 마스터.”


  인간들에 대한 여러 종족들의 불만은 끊임이 없다.

  가장 약하기 때문에 가장 많은 고통을 받았던 인간. 지금에 이르러선 과거 조상에 대한 고통을 되갚아주듯 칼날을 세우는 인간. 대화보다 폭력을, 사랑보다 집착을, 조화보단 흡수를 내세우는 인간.


  “방금 전. 로드께서 인간의 무리에 의해 사망하셨습니다. 더불어 마지막 말씀으로 마스터께 로드의 지위를 넘겨드리겠다고 하셨습니다.”

  “드래곤도 끝이로군. 영원의 삶을 받은 드래곤이 고작 수천 년을 버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단 말인가? 그것도 하찮은 인간들에게?”

  “…마스터.”

  “훗! 혼자 남은 존재에게 로드의 지위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그렇지 아니한가? 나의 가디언이어.”

  “마스터.”



  더 없이 포악하며, 더 없이 탐욕적인 인간. 그 하찮은 삶을 위해서라면 가까운 동족까지도 죽일 수 있는 약렬한 심성을 지닌 인간.

  누가 언제 이런 인간을 약한 존재라 불렀는가? 누가 언제 이런 인간에게 선악을 대표하는 존재라 불렀는가? 누가 언제 이런 인간을 조화를 대표하는 존재라 불렀는가? 누가 언제…….



  “좋아. 마지막 남은 드래곤이자 마지막 로드로서 마지막 명령을 내린다. 오늘부터 더 이상 이 세계에 드래곤이란 종족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 명령은 영원할 것임을 나 아우크레 R. 네기아 밀로르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예. 마스터.”


  인간의 손에 하나의 종족이 사라지던 어느 날이었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1480 단편 haeya 2009.04.02 0
1479 단편 투명거북이 가리새 2009.04.04 0
1478 단편 건방진 와트슨과 흰 벚꽃 잎 해파리 2009.04.06 0
1477 단편 모네그(Moneg) - 1부(형제:Brother) 나길글길 2009.04.06 0
1476 단편 네이버 공화국 김몽 2009.04.07 0
1475 단편 상견례 세이지 2009.04.08 0
1474 단편 유령들 몽상가 2009.04.10 0
1473 단편 귀신이 사는 정원 가리새 2009.04.11 0
1472 단편 공상과학판타지 히로웽 2009.04.14 0
1471 단편 그들의 유토피아 유진 2009.04.14 0
1470 단편 그 여름의 흉가1 몽상가 2009.04.15 0
1469 단편 트라이앵글 러브 Mothman 2009.04.15 0
1468 단편 모네그(Moneg) - 2부(질투:Jealousy) 나길글길 2009.04.16 0
1467 단편 그들만의 인연 이론 上 루사 2009.04.20 0
1466 단편 그들만의 인연 이론 下 루사 2009.04.20 0
1465 단편 우주개척시대의 기원 파디스-ㅅ- 2009.04.22 0
1464 단편 나귀 한 마리 제서 2009.04.23 0
단편 드래곤이 사라지던 날 슈트룬테트 2009.04.25 0
1462 단편 새가 날아가는 시간 말랑 2009.04.25 0
1461 단편 따끈따끈 러브 앤 피스7 몽상가 2009.04.26 0
Prev 1 ...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 110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