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가 한 마리 있었다. 나귀는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다. 다행이도 나귀는 일하기 좋아하는 나귀였다.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모른다. 모든 나귀들이 그러하듯이.
엉덩이를 긴 막대기로 두 번 툭툭 치면 앞으로 가라는 뜻이었지만, '휘이이-' 길게 휘파람을 불 때는 엉덩이를 치더라도 앞으로 나가서는 안된다.약속은 새 주인을 만날 때마다 달라지곤 했다. 새로운 주인은 처음부터 새로운 방식으로 나귀를 길들였다. 나귀는 기억했다. 첫 번째 주인과의 약속,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그 후로는 세지 않았다.
모두 기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첫 번째 주인이 그의 귀에 낙인을 찍을 때의 뜨거움은 잊지 않았다. 어둑해지는 밤이면 어린 둘째 주인을 등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붉게 타던 저녁놀이 생각났다. 큰 주인 몰래 입에 대주던 달콤한 각설탕맛도 함께.
나귀는 짐을 싣는 용도였다. 더 멀리, 멀리, 그의 옛주인들도 가보지 못한 먼 길을 나귀는 걸었다. 나귀는 구부러지는 길을 따라 따각따각 걸었다. 밀수를 하던 주인이 경비대와 마주친 날 나귀는 짐과 함께 경계를 넘어갔다. 나귀는 짓이겨진 풀냄새가 나는 좁은 숲길을 걷는 대신 소금기 섞인 바람이 부는 모래길을 걸었다. 다른 피부색을 가진 다른 말을 하는 주인을 만났지만 새로운 약속을 짓는 것은 같았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등에는 늘 무거운 짐이 실려 있었다. 빳빳한 천 뭉치나 곡물 같은 것. 종류는 달랐지만 처음 싣을 때의 묵직한 떨림만은 같았다. 그것들은 늘 걸으면 걸을수록 무거워지곤 했다. 걷다보면 그것은 나귀의 일부 같았다. 나귀는 상상했다. 나는 아주 커다란 짐승이야. 등에 아주 큰 혹이 있는 커다란 짐승. 누구도 나만큼 커다란 혹을 가지지는 못하겠지.
늘 길을 따라 걸었다.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나귀의 길임은 알았다. 나귀는 주인에 따라 작게, 혹은 크게 걷는 법을 익혔다. 걸음이 조금이라도 느려지면 코에서 피가 흐르도록 고삐를 쥐어채거나, 엉덩이를 후려치는 주인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오래 살기 위해서는 몸이 상하지 않도록 요령을 피울 줄 알아야 했다. 주인이 기분이 좋을 때는 주인과 함께 그늘에서 쉬며 풀을 뜯어 먹었다. 나귀는 그렇게 나이를 먹어갔다.
걷다가 정신이 아득해져 오는 때가 있었다. 언제나와 같이 짐을 잔뜩 싣고 한 발 두 발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비바람이 불었던가, 비오는 듯 땀을 흘렸던가, 꽉 잡힌 고삐사이로 피가 흘렀던가, 어느 것도 확실치는 않았다. 아니, 분명히 그것들은 그와 함께 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등짐은 늘 그와 같이 무거웠고 나귀와 주인은 서로를 끌었다. 나귀의 눈을 가렸던 까만 나무판이 기어코 바람에 날아갔다.
나귀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고요한 물 속에 잠긴 듯 네 다리가 자유로웠다. 이건 무슨 감각일까, 등짐도 고삐도 주인도 없이 그는 혼자였다. 옅은 분홍빛의 물이 완전하게 그의 주위에 가득차있었다. 나귀는 생각했다.
ㅡ 모두 어디로 갔나요?
물이 진동하며 답을 울렸다.
ㅡ 있어야 할 곳으로 갔지, 아가.
아가, 나귀는 가만히 그 울림을 느꼈다. 기분좋은 울림이었다.
ㅡ 모두들 나귀는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누구도 믿지 않겠지만, 나는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귀였어요. 그건 내 자랑 중에 하나죠. 다른 하나는 내가 가끔, 아니 자주 커다란 짐승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정말 컸어요.
나귀는 네 다리를 흔들어댔다. 그러자 그의 다리에서 시작한 물결이 반향하여 그의 몸을 부드럽게 간지럽혔다.
ㅡ 나는 끊임없이 길을 걸었죠. 부지런히 걸었어요. 하나의 마을에 닿으면 그 다음 마을로 길을 떠났어요. 누구도 나만큼 멀리까지 가보지는 못했을 거에요. 걷고, 또 걷고......
ㅡ 너는 길을 걸었지, 누구도 너만큼 걷지는 못했을 거야.
흔들던 그의 다리가 천천히 멈췄다. 물결치던 주변이 고요히 멈추어갔다. 그것은 미미하게 떨렸다. 그의 심장 떨림과 같이 흔들리는 듯했다. 콩,콩,콩,콩.
ㅡ 저기... 어떻게 불러야할 지 모르곘지만, 나는 충분히 늙었나요.
콩콩콩콩.
ㅡ 당신에게 물어도 되는 일인지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물어볼게요.
ㅡ 저는 앞으로도 더 걸어야 하나요.
적막했다. 스스로의 심장뛰는 소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작게, 아주 작게 시작해서 그의 몸 전체를 끌어안는듯한 부드럽고 격정적인 그 떨림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가만히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저녁 노을이 있었다. 풀벌레가 찌르르르 울었다. 코를 들이마쉬자 고삐 빠진 구멍 사이로 흙냄새 섞인 공기가 가득히 그의 안으로 들어왔다. 짐은 없었다. 주인도 없었다. 그저 황혼빛에서 어둑한 밤하늘로 모든 색깔이 저물어가는 가운데 그가 있는 하나의 길 저 너머로 갈래길이 보였다.
ㅡ 그건, 네 자유란다.
엉덩이를 긴 막대기로 두 번 툭툭 치면 앞으로 가라는 뜻이었지만, '휘이이-' 길게 휘파람을 불 때는 엉덩이를 치더라도 앞으로 나가서는 안된다.약속은 새 주인을 만날 때마다 달라지곤 했다. 새로운 주인은 처음부터 새로운 방식으로 나귀를 길들였다. 나귀는 기억했다. 첫 번째 주인과의 약속,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그 후로는 세지 않았다.
모두 기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첫 번째 주인이 그의 귀에 낙인을 찍을 때의 뜨거움은 잊지 않았다. 어둑해지는 밤이면 어린 둘째 주인을 등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붉게 타던 저녁놀이 생각났다. 큰 주인 몰래 입에 대주던 달콤한 각설탕맛도 함께.
나귀는 짐을 싣는 용도였다. 더 멀리, 멀리, 그의 옛주인들도 가보지 못한 먼 길을 나귀는 걸었다. 나귀는 구부러지는 길을 따라 따각따각 걸었다. 밀수를 하던 주인이 경비대와 마주친 날 나귀는 짐과 함께 경계를 넘어갔다. 나귀는 짓이겨진 풀냄새가 나는 좁은 숲길을 걷는 대신 소금기 섞인 바람이 부는 모래길을 걸었다. 다른 피부색을 가진 다른 말을 하는 주인을 만났지만 새로운 약속을 짓는 것은 같았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등에는 늘 무거운 짐이 실려 있었다. 빳빳한 천 뭉치나 곡물 같은 것. 종류는 달랐지만 처음 싣을 때의 묵직한 떨림만은 같았다. 그것들은 늘 걸으면 걸을수록 무거워지곤 했다. 걷다보면 그것은 나귀의 일부 같았다. 나귀는 상상했다. 나는 아주 커다란 짐승이야. 등에 아주 큰 혹이 있는 커다란 짐승. 누구도 나만큼 커다란 혹을 가지지는 못하겠지.
늘 길을 따라 걸었다.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나귀의 길임은 알았다. 나귀는 주인에 따라 작게, 혹은 크게 걷는 법을 익혔다. 걸음이 조금이라도 느려지면 코에서 피가 흐르도록 고삐를 쥐어채거나, 엉덩이를 후려치는 주인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오래 살기 위해서는 몸이 상하지 않도록 요령을 피울 줄 알아야 했다. 주인이 기분이 좋을 때는 주인과 함께 그늘에서 쉬며 풀을 뜯어 먹었다. 나귀는 그렇게 나이를 먹어갔다.
걷다가 정신이 아득해져 오는 때가 있었다. 언제나와 같이 짐을 잔뜩 싣고 한 발 두 발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비바람이 불었던가, 비오는 듯 땀을 흘렸던가, 꽉 잡힌 고삐사이로 피가 흘렀던가, 어느 것도 확실치는 않았다. 아니, 분명히 그것들은 그와 함께 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등짐은 늘 그와 같이 무거웠고 나귀와 주인은 서로를 끌었다. 나귀의 눈을 가렸던 까만 나무판이 기어코 바람에 날아갔다.
나귀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고요한 물 속에 잠긴 듯 네 다리가 자유로웠다. 이건 무슨 감각일까, 등짐도 고삐도 주인도 없이 그는 혼자였다. 옅은 분홍빛의 물이 완전하게 그의 주위에 가득차있었다. 나귀는 생각했다.
ㅡ 모두 어디로 갔나요?
물이 진동하며 답을 울렸다.
ㅡ 있어야 할 곳으로 갔지, 아가.
아가, 나귀는 가만히 그 울림을 느꼈다. 기분좋은 울림이었다.
ㅡ 모두들 나귀는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누구도 믿지 않겠지만, 나는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귀였어요. 그건 내 자랑 중에 하나죠. 다른 하나는 내가 가끔, 아니 자주 커다란 짐승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정말 컸어요.
나귀는 네 다리를 흔들어댔다. 그러자 그의 다리에서 시작한 물결이 반향하여 그의 몸을 부드럽게 간지럽혔다.
ㅡ 나는 끊임없이 길을 걸었죠. 부지런히 걸었어요. 하나의 마을에 닿으면 그 다음 마을로 길을 떠났어요. 누구도 나만큼 멀리까지 가보지는 못했을 거에요. 걷고, 또 걷고......
ㅡ 너는 길을 걸었지, 누구도 너만큼 걷지는 못했을 거야.
흔들던 그의 다리가 천천히 멈췄다. 물결치던 주변이 고요히 멈추어갔다. 그것은 미미하게 떨렸다. 그의 심장 떨림과 같이 흔들리는 듯했다. 콩,콩,콩,콩.
ㅡ 저기... 어떻게 불러야할 지 모르곘지만, 나는 충분히 늙었나요.
콩콩콩콩.
ㅡ 당신에게 물어도 되는 일인지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물어볼게요.
ㅡ 저는 앞으로도 더 걸어야 하나요.
적막했다. 스스로의 심장뛰는 소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작게, 아주 작게 시작해서 그의 몸 전체를 끌어안는듯한 부드럽고 격정적인 그 떨림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가만히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저녁 노을이 있었다. 풀벌레가 찌르르르 울었다. 코를 들이마쉬자 고삐 빠진 구멍 사이로 흙냄새 섞인 공기가 가득히 그의 안으로 들어왔다. 짐은 없었다. 주인도 없었다. 그저 황혼빛에서 어둑한 밤하늘로 모든 색깔이 저물어가는 가운데 그가 있는 하나의 길 저 너머로 갈래길이 보였다.
ㅡ 그건, 네 자유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