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그들만의 인연 이론 下

2009.04.20 23:3804.20

*

다시 울음이 나기라도 하는 걸까. 고개를 숙이는 중에도 그녀와 나는 묵묵히 걸었다. 그 걸음 사이사이로 겨울바람과 씁쓸한 마음과 걱정과 불안이 점점이 오간다.

기억하지 못하는 기다림의 순간 뒤로, 그녀는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봄 햇살처럼 따스한 목소리였다. 이렇게 따뜻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해 버렸다.

그녀의 몸도 목소리처럼 체온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져서 그녀를 꼭 껴안고 싶어졌지만 간신히 참는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녀의 말을 재촉한다.

"어째서?"

"으응...그러니까, 사람은 비교하자면- 실이라고 할 수 있다고 봐."

그녀는 살짝 어설픈 울림으로 자신만의 이론을 펼쳐나갔다.

"두께도, 재질도, 색도 다른 세상의 사람 수 만큼의 실이 있는 거야. 그것들은 다른 어느 실에도 연결될 수 있고, 때에 따라 끊어질 수 있어."

그래. 그것은 하나의 이론이었다. 그녀가 만들어낸, 그녀의, 그녀를 위한, 그녀만의.

"이어졌던 실들이 끊어진다면 그만큼 다른 실과 연관됐었던 자국이 남을 거야. 매듭이 남거나, 아니면 잘려나가거나. 인연이 사라지면 그만큼의 상처가 남는다는 거지. 별 것 아닌 관계라면 그 자국은 미미하겠지만, 서로에게 큰 존재일수록 깊디 깊은 흉터로. 끊어버리면 그 어느 것으로도 매워질 수 없을 정도로..."

동시에 우리가 만들어낸, 우리만의, 우리에 대한, 인연에 관한 이론.
우리들의 조금 특별한 인연 이론.

그녀는 그것을 따뜻하게 설명하고 있다. 나보다 앞서 걷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은 별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반짝여서 푸른 바람뿐이던 하늘에 눈을 그려 넣은 듯 한 착각이 들었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가볍게 몸을 돌려 나를 향한다. 아직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빛났다.

"진수와 정현이는 서로의 반쪽을 잘라 버리는 셈이야. 난 그 둘이 나중에 후회하면서 울게 되는 일이 없었으면 해.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그래?

-하지만.

"하지만.... 우리에겐 녀석들에게 뭐라고 할 권리가 없잖아?"

"으음, 그건 - 친구니까! 그걸로 충분하지 뭐."

"하..."

약 1초간의 고민 끝에 나온 그녀의 대답은 어린아이의 치기 같은 발상이다. 유치하기 그지없는 그 대답에 난 말을 잃었다.

-그래도.

"그거면 충분해."

"뭐라고 했어?"

"네 말이 맞다고."

그래. 그걸로 충분하다. 이유 없는 무덤은 없지만, 이유라는 놈이 꼭 무덤에 맞게 클 필요는 없잖아?

"그럼 앞으로 구체적인 계획은 있어?"

"응- 글쎄."

현서는 밝게 대답했다.

"서로가 싫어서 헤어진 커플이라면, 상대방에 나에게 있어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인연이라는 걸 알아채는 게 우선이겠죠. 안 그래요 오재혁 씨?"

"하하..."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글-쎄.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에엣, 너무해~!"

나의 삐뚤어진 대답에 현서는 섭섭하다는 식으로 외쳤다. 난 그저 웃을 뿐이다.

갑자기 유쾌해졌다.

그래.

꼬인 매듭을 풀어보자.

Pib.







*

-한통의 전화를 받는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정현이라 했다. 벨 소리에 바라보는 핸드폰 액정에는 무척이나 익숙한 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그도 무척이나 잘 알고 있는, 한 명의 여성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세요.』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노이즈가 심했다. 하지만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알고 있나 보다. 그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받는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

"뭐? 뭐라고?"

"--------!"

"....."

하고 싶은 얘기도 많고, 듣고 싶은 얘기도 많았던 상대겠지. 하지만 대화는커녕 수많음 잡음 덕분에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는 당황했을 것이다. 언제 그녀로부터 다시 연락이 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까.

"미안한데 잘 들리지 않는다. 내 말 들려?"

"------!"

"그럼 나 먼저 말해야겠네. 나 말이야. 그 때 이후로 생각 많이 했어."

".....------!-----!!"

"미안해. 내가 잘못 했어. 앞으로 내 멋대로 하는 거, 고칠 테니까."

그리고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수화기의 맞은편에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 다시 만나자 진수야. 네가 보고 싶어."

-....

몇 초, 몇 분, 몇 시간인가의 불감적인 정적.

"네 생각만 하면 숨이 막힐 정도로 널 좋아해. 네가 아무리 날 싫어한다고 해도. 그래서 함께 있고 싶어. 많은 말은 필요 없다고 생각해. 좋아해."

그의 말은 과거 현서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두 가지를 확실하게 반영한 그의 선택문이다.

잠시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숨결만으로 그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천천히 그의 가장 소중한 한 마디가 나왔다.

"사랑해..."

치지지직

달콤한 그 단어와 대조적으로 잡소리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녀의 침묵이 강해져가는 소리였다. 정현은 그것을 자신만의 뜻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의 손이 핸드폰의 폴더를 닫기 위해 움직인다.

가위로 실을 자르는 것 같은 모습의 움직임.

그때였다.

『좋아해!!』

"응?"

『좋아해! 좋아한다고!!』

격렬한 외침이 귓구멍을 때린다. 하지만 멍한 것은 귀 뿐만이 아닐 것이다. 손가락이 떨려오고,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하겠지. 그들의 통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인연 역시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Pib.





*

그녀는 망설이고 있다. 목소리에서 티가 난다.

『난 아직 화가 나 있다"』

『하지만 너와 헤어지진 않을 거라고 생각할까 말까 모르겠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나도 아직 너 좋아하긴 하지만 마음이 오락가락하다.』

그녀가 직접 그 말을 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말하는 내용을 추려내자면 위의 세 문장 그대로다.

".....듣고 있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해 졌다. 그녀는 망설이는 게 아니라, 민망해 하고 있었다.

"설마 내가 벌써 화가 풀렸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자신이 화가 풀렸다는 걸 자각한 것에 대해서.

목소리에는 이미 독기가 없다. 그 유명한 변덕이란 녀석 때문인지 그냥 시간이 흘러서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진작에 풀려버린 거다. 그녀도 내심 전화가 걸려오길 기대하고 있었을 게다. 따져보면 그렇게까지 화낼 일도 아니었고, 화가 풀리긴 했다만 그렇다고 먼저 사과하자니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고. 마음이 오락가락 한다는 건 결국 아쉬운 입장의 거짓말.

이렇듯 때때로 남자의 마음 따윈 아랑곳 않고 자신을 챙기는 사악한 생명체가 되는 것이 바로 여자일지니. 이해하기 참으로 어렵다. 그런 그녀에게 이 한 통의 전화는 가뭄의 단비 같은 타이밍이다.

"그, 래, 서!"

목이 마른 대지는 그만큼의 강우량을 원하는 법이다. 그에 걸맞게 그녀는 수화기를 질질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곧 클라이막스겠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그녀는 최후까지 자신의 우위를 선점하려나 보다. 대놓고 떠보는 식으로-이상한 말이로군- 묻는 그녀의 말에 참으로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대답한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목소리의 주인조차 알아보지 못할 테지만, 그와 사이가 깊은 그녀에겐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음성이다.

『-앞으로 내가 멋대로 하는 거, 고칠 테니까-』

"좋아, 그거면 됐어! 앞으로 까불지 말라고! 알았어?!"

『..사랑해.』

"바, 바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갑자기!"

『사랑해.』

"됐어! 그만 끊어! 그리고 한동안은 아직 화 안 풀렸으니까 내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말 걸지 마! 알았어?"

『--진수야.』

"응?"

『보고 싶어.』

"됐다고 했지! 그만 끊을 거야! 잠이나 자!"

찰칵

그녀는 거칠게 통화를 끊었다. 거침 심장 박동에 호흡조차 곤란하고, 그것을 진정시키느라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리라. 나의 흥분된 심장도 격하게 운동하고 있다.

뜨겁다.


Pib.





*

음.

결과부터 보고하자면, 녀석들은 결국 화해를 했다-고 한다.
화해를 결심하게 된 계기도 간단했다-고 한다.
서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고 하는데-
내용을 전부 아는 건 아니지만, 결국 정현은 잘못한다며 빌었고, 진수는 좋아하니까 봐준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금은 종-전-상-태.

말투가 이상하다고 뭐라고 하지 말라고. 나도 녀석들에게서 주워들은 얘기니까 확실치는 않은 속사정이 있다. 그래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낼 거면 그렇게 무섭게 싸워대지 말라고 녀석들에게 충고해주고픈 소망이 꽃피는구나.

아아, 어쨌든, 날은 어느새 또 지나서,

현재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그리고 드물게도, 지금 눈꽃이 저녁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중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참 좋은 날이다. 크리스마스와 눈이 맞물리는 경우가 박물관의 도도새 골격 모형만큼이나 보기 힘든 시대인데도 오늘은 펑펑, 시원스럽고 포근하게 눈이 내린다. 바람도 적당히 잔잔해서 이지러지는 눈의 춤사위가 따스함마저 느끼게 한다. 아름다웠다.

눈은 소복하게 떨어져 그녀의 머릿결을 장식한다. 그녀는 눈을 살며시 감는다.

그리고 재채기를 한다.

"후엣취!"

"괜찮아?"

"우응..."

괜찮은 건지 어떤 건지, 현서는 신음 소리를 내며 코를 휴지로 닦는다. 날이 좀 쌀쌀하긴 하다.

이곳은 동네의 한 공원이다. 우린 무릎 정도의 높이인 덤불 뒤에 숨어 있었다. 여기에선 공원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 상태로 시선을 유지하며 쭈그려 앉아있는 시간이 대략 한 시간 정도. 누가 이 광경을 본다면 스토커라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그딴 건 아니다. 그럼 왜 숨어 있냐고?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이제 곧 그 이유가 -

"우...후엣취!"

후두둑

"..."

"미.... 미안해!"

"아니야..."

....차갑다.

"에...에에치! 에푸! 훌쩍, 엣, 츄!"

파편이 좀 튀었지만 여전히 그녀의 재채기는 계속되었다. 계속해서 듣다 보니 미지의 언어를 듣는 기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한 기분도 든다. 한 시간이나 이 상태로 있어서 멀쩡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더군다나 크리스마스 날인데.

...일단 닦고.

"흐, 흑. 아으으."

"자, 이거."

"응... 고마워."

내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걸쳐준다.

"이그, 콧물 좀 닦아."

"헤헤."

이상하게 더워진 얼굴을 다시 광장 쪽으로 돌리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결코 의도하지 않았는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느끼해진다. 제길, 대체 언제 오는 거야? 난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탓하며 멋쩍게 인상을 썼다. 쿨쩍, 춥긴 춥구나.

그때였다.

"재혁아 저기!"

한창 추운 날씨에 어정쩡하게 있으려니까 현서가 신호를 보낸다. 이제서야! 몇 시간이나 기다렸는지 모르겠네. 그래도  예상했던 대로 광장 한 가운데가 목표 지점인 것 같았다. 난 자세를 고쳐 앉고 그 광경을 관찰한다.

회색의, 그러나 칙칙하지 않은, 오히려 흰 눈이 곁들여져 날아갈 듯이 가벼워 보이는 색의 타일이 바닥에 원형으로 깔려 있다. 수백 명의 사람이 들어가도 채워질 것 같지 않은 그 큰 공간을 가운데로 두고, 양 옆 공원 입구에서 그들이 천천히 걸어온다.

난 눈을 하늘에 두고 그들을 뜯어본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어둡고 차가웠던 그들이 지금은 빛나고 있었다. 머리에서 턱, 어깨선을 따라 내려와 몸을 둘러보는 내 시선 속의 그들은 평소와 똑같았지만, 왕자와 공주처럼 멋있었다.

마치 다이아몬드를 몸에 뿌린 것 같다. 그 보석은 곧 나에게도 날아와 반짝였고, 난 곧 그것이 눈송이란 걸 알아챘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렇게 달라 보일까.

로맨스라는 건 여자애들의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고작 눈 정도가 이런 의미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 로맨스라면, 뭔 지 알 것도 같다.

이제 그들은 천천히 서로를 바라보며 다가왔다.

저벅 저벅 눈을 밟는 소리가 청량감을 준다.

그들이 다가오는 길에 남는 눈 위의 발자국들이, 빛난다.

화사하게 빛나는 그 자국을 뒤로, 그들은 광장의 가운데에 서서 서로를 천천히 안았다.

정현과 진수.

서로를 향한 포옹. 그것이 그들의 화해였다.

"~~~~~!"

"~~~~~~~~!!"

"~~~~~~~~!!!"

저거면 끝난 거야!! 우린 목소리를 최대한 죽인 상태에서 맘껏 비명을 질렀다. 두 손을 붕붕! 하이파이브 퍽퍽! 만약 저 녀석들에게 들키면 안 되는 제한이 없다면 핵폭탄 투하되는 소리보다 더 큰 소음공해가 한국의 전설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방방 뛰던 우리는 서로를 껴안아 버리는 모양에 살짝 어색한 분위기가 되긴 했지만 그럴 틈 따위는 없었다. 녀석들이 또 움직이기 시작했던 덕이다.

화해의 의식을 마친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슬며시 웃는다. 정현은 진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진수는 조금 뾰로통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시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둘의 고개가 가까워지고

입술이 맞닿았다.

"꺄~!!!"

'쉬잇!'

'아, 미안..!'

소리를 급히 죽이면서도 현서는 좋아 죽는다. 그들의 입맞춤이 뭐가 그렇게 난리라고. 한 두 번 본 것도 아닌데 슬슬 익숙해 져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본다. 빌어먹을, 왜 또 얼굴이 빨개지는 거야!

"하여간 저것들은..."

투덜거리는 말이 자동으로 입에서 재생된다. 진수는 아직 홍조가 남아있는 얼굴로 웃으면서 그래도 잘 되어서 좋지 않냐고 말했다. 물론 좋기는 하지만 표현하기 껄끄러운 문제이니 만큼, 더 귀찮게 되었다고 대답한다. 크리스마스에다 눈이 오는데다 키스라니. 닭살생산기들 같으니.

그래도 저 정도면 각서 쓰고 서명 하고 도장 찍고 지장 찍고 혈장 찍고 복사기 돌리고 변호사가 증언 해주는 급의 증명서였다. 이 이상 우리가 개입할 일은 없을 거라 믿는다.

녀석들은, 화해했다.

둘의 입술이 떼어지고 다시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갈까?"

"응."

우리는 조용히 공원을 빠져나왔다.

그들도 그렇지만, 우리도 입술에서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

길을 걷는다.

공원을 빠져나와, 녀석들의 시야에서 최대한 벗어나는 루트를 걸어, 차가 지나다니는 큰 길가로 나왔다. 이미 저녁에 가까워지는 시간이라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나무들이 시끄럽게 번쩍거리고, 캐럴송은 이미 공기와 다름없었다.

그렇게 걸은 지 얼마나 됐을까. 우린 핸드폰 가게를 스쳐지나갔다. 동시에 현서가 말했다.

"요즘 핸드폰은 음질 참 좋다. 그지?"

난 현서에게 대답했다.

"그러게."

그리고 우리는 또 하염없이 걸었다. 입가의 미소는 아직 걸려있는 채였다.

갑자기 현서가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버튼을 누른다.

Pib.

『난... 진수가 좋아.』

『어떻게 좋아해?』

『잘 모르겠다. 하지만 걔를 생각할 때마다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아파. 심장이, 이 심장이 자꾸 뛰어.』

한 번 더 버튼을 누른다.

Pib.

『그럼 좋아하는 거구나?』

『엥?』

『...흐아앙...!』

『어, 어어 그래! 맞아! 좋아해! 좋아한다고!』

Pib.

효과음과 함께 재생되던 소리가 사라진다.

"......쿡."

"...크큭."

"....쿠, 쿠쿠쿡, 쿡..."

"큭, 큭큭큭......크크크크."

"아, 하, 하하하하! 아하하하!"

"크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핫!"

우리는 마구 웃었다.

아까 공원에서 내지 못했던 소리들을 지금 내려는 듯이 웃어댔다. 너무도 유쾌한 분위기에 휩싸여, 기분 좋은 감각을 계속 만끽하려고 웃어댔다. 길가의 사람들이 간혹 고개를 돌려 우리를 봤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취한 사람들로 착각하는지 곧 고개를 돌려 가 버렸다.

성공이다!! 성공이야! 배가 아프도록 웃은 우리들은 잠시 숨을 돌렸다. 현서는 눈물까지 흘렸는지 손가락으로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하악, 헉. 난 이게 정말 가능할 줄은 몰랐거든? 근데 먹히네? 야, 이거 참."

"헉, 헉. 나도 정말 될 줄 몰랐다니까.... 꺄하하하!"

"푸하하!"

"하, 하아, 하아.... 내 아이디어 어때?"

나에게 묻는 현서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준다. 그걸 보고 현서는 다시 꺄르르 웃는다.

누구든지 먼저 사과를 해야만 끝이 보이는 사건. 그게 나와 현서의 의견이었다. 그래서 정현과 진수를 각각 만나 어떻게든 서로에게 사과를 하도록 요청하려 했지만 잘 되진 않았지. 이대로 포기할 것인가 생각까지 해 봤다. 하지만 그에 대한 문제는 아주 쉽게 해결 될 수 있었다.

현서는 핸드폰 녹음기에 그들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뭐 어쨌냐고? 간~ 단해. 그 누군가의 언행이 낱낱이 녹음되어 있던 내용을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해 줬다는 이야기이다. 조금 조잡하긴 했지만.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먼저 전화를 건 것처럼.

내용은 간단하다. 목소리가 녹음한 것이라는 걸 알아채지는 못할 정도, 대신 누구인지는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잡소리를 통화 내내 집어넣는다. 그리고 적당히 예상한 대본에 맞춰서 음성을 편집한 후 재생시킨다.

그럼 이렇게 되는거지.

『진수-지직- 사랑해.』

푸하하하, 이런 게 정말 먹히다니!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잘못한 건 정현이었고 피해자는 진수였다. 그것에 대해 이견은 없었다. 뺨을 맞았네 뭐네 하는 처우 사항은 둘째 치더라도, 원인 제공자는 일단 정현이 확실하니까. 선악 배역이 확연한 덕분에 좀 더 수월하게 대본을 짤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드는 데 대략 하루 정도 걸렸지. 이정도면 방송국에서 편집 담당으로 스카웃해도 되겠네.

이 참신한 의외의 수단...이라고 하기엔 민망하고, 그냥 꼼수지. 암튼 우리들이 쇼를 했다는 걸 당사자들이 알게 된다면 난리가 날 거다. 그러니 '누가 먼저 전화를 걸었냐'같은 허접한 질문를 가지고 서로 따지지 않도록 조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그건 피곤하니까 우선 뒷전으로.

"그래도 해피엔딩이네."

"그래, 해피엔딩이지. 한 가지 이론에 입각한-."

"헤헤헤."

그들이 아직까지 가냘프게 이어왔던 두 줄기의 인연. 굵고 두껍고 견고하던 그들은 얇고 얇아졌지만 아직도 흉하고 매섭게 매어있어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있었다. 언제 끊길지 예상조차 할 수 없는데 갈수록 말라 삭아 들어가던 그 실들.

그 두 줄기의 실을 보듬고 다듬는다. 천천히 위로 거슬러 올라가 이상하게 엮인 부분을 찾아 조심스레 푼다. 실을 또 엮기 전에 단단히 풀을 먹이고 서로에게 불편한 매듭이 되지 않도록 단정한 모습으로 만든다.

실의 이름은 인간. 매듭의 이름은 인연.

우리도 그들과 얽혀있는 하나의 실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실은 서로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묶여 있고, 또 설령 떼어낸다 할지라도 큰 상처가 남는 매듭이다.

우리는 본인이 괴로워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 이것은 곧 서로와 연결되어있는 실이 괴로워하는 걸 바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결국, 그들의 나의 일이고, 모두의 일이다.

난 그들이 행복해졌으면 한다. 그 역시 나와 모두의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움직인다.

이게 나의, 그녀의, 우리들의 인연이론이었다.

가슴이 벅차다. 현서가 이 생각을 말 해주지 않았다면, 난 그들을 조용히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이것 역시 우리의 인연.

"정말.... 잘 돼서 다행이야."

현서의 말과 함께 나의 심장이 두근댔다. 그녀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난 현서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나쁜 짓 하나 걸린 어린아이처럼 얼굴이 뜨거워졌다. 요즘 녀석을 올곧게 보고 있으면 심장뿐만 아니라 온 몸이 진동이 와서 힘들었다.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걸으려 했을 때, 문득 손이 차가워짐을 느꼈다. 누군가의 손이 나의 손에 닿아 있었다.

현서의 손이었다.

"...추워?"

"응."

속삭이며 그녀가 점점 나에게 기대온다. 품 안에 들어오는 그녀의 모습에 난 계속 흔들린다. 결국 난 그녀의 눈에 마주하고 만다.

그대로 몇 분이 지났다.

차분히 그녀를 바라본다.

"우리는...."

"응?"

그녀가 말한다.

"우리의 인연은.... 어떻게 될까?"

"...."

왼손으로는 아까 뻗어온 그녀의 손을 잡는다.

싸늘하지만, 따뜻하다.

오른손으로는 홍조가 띈 그녀의 얼굴을 감싼다.

차갑지만, 포근하다.

자연스럽게, 난 그녀를 내려다본다.

"끊어지지 않을 거야."

이 두근대는 심장과 함께. 난 속으로 말했다.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아니, 다시 생각한다.

우리의 인연은, 이제부터 시작된다고.







*

다시 시간은 흘러, 12월 29일이 되었다. 이제 내일이면 방학이고, 본격적으로 고 3 수험생활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푸하하하하!! 진짜? 진짜로?"

"캬하하하, 거봐, 내가 뭐랬어!"

"저기, 얘들아.. 조금 조용히..."

"에이, 뭘 그래~ 아무도 없구만~"

그래도 지금은 아직 여유롭다.

이곳은 학교 운동장 근처의 벤치였다. 점심식사 후 일광욕이나 할 겸 내려온 것이다. 겨울이라 조금 쌀쌀하지만, 그래도 햇볕이 따뜻하니까 괜찮았다.

내 앞에는 두 명의 남녀가 있다. 한 명은 김정현, 한 명은 윤진수. 모두 내 친구들이다. 둘 다 체력이 넘쳐서일까, 웃음소리도 너무 크다. 이러다 다른 사람이 듣기라도 하면- 걱정하는 날 두고 그들은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괜찮아, 괜찮아. 다른 사람이 들어도 모르는 내용이잖아?"

"그, 그래도.."

"걱정 하지 말라니까! 만약 발각되면 이번에도 오스카 남우주연상 급 연기력으로 막아줄게!"

"무슨 헛소리야! 내가 여우주연상을 받으면 몰라, 넌 안 돼!"

"그런 게 어딨냐! 내가 나쁜 역할은 죄다 도맡아 했는데!"

"아우, 그렇게 비현실적인 대사를 어떻게 해~! 느끼해가지고는!"

"가, 각본 쓴 건 너잖아!"

"뭐든 간에!"

"야임마...!"

"아무튼 현서야, 걱정하지 마. 알았지? 다 잘 됐잖아! 언니 못 믿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 이것은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었다.

...내 이름은 기현서.

재혁이를 좋아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그때부터 하, 한 눈에.. 바, 바바, 반했다..고 해야하나? 아, 아무튼 그래서....고, 고백을 하려고 했는데...

....4년이란 세월 동안에도 차마 그건 할 수가 없었다.

진수가 시키는 대로 다른 아이들과 차이가 많이 날 정도로 이것 저것 많이 챙겨주고, 도시락도 만들어 주고, 치마도 일부러 짧게 입고, 많이 했는데..... 재혁이가 눈치를 못 채는 거다!

"근데 솔직히 이 부분은 좀 에러였어. 내가 말하면서도 느끼했다니까?"

"하긴 내가 극본 만들면서도 닭살이 돋더라. 정말 할 줄은 몰랐어~!"

".........너 진짜 너무한다."

"뭘 그래? 놀이공원에서 애인 두고 놀러 간 녀석이?"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게....!"

그래서 진수에게 내 심정을 얘기했더니, 싱긋 웃으면서 이런 얘기를 했던 것이다.

『그래? 그럼 한 번 물고기를 낚아볼까?』

그래서 시작 된 게 바로 노라월드 사건이다.

결국 진수가 화를 냈던 것도, 정현이 재혁과 함께 놀이기구를 타러 올라간 것도, 술을 먹던 것도, 진수와 노래방에 갔던 것도, 내가 그 모든 내용을 핸드폰에 담아서 그들에게 전화를 하고, 그들이 화해를 한 것들 모두가..

...연기였던 것이다.

지금 내가 생각해도 어떻게 그 많은 대사들을 외울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한 번도 더듬지 않고 대사를 건넨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물론 내 어설픈 연기에 정말 재혁이 속았다는 것은 믿지 못하겠지만- 진짜 인 것 같으니 이게 또 문제.

아, 인연에 대한 이론이라는 건 옛날부터 내가 생각해왔던 것이다. 좀 엉성한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어이~ 여보세요?"

으, 으앗!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부끄러워?"

"그..그거야 당연히.... 아니, 부끄러운 것 보다!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

이건 사기라는 생각이 이제야 들다니.... 그때의 난 어지간히 정신이 없었나 보다.

"뭘 이런 걸 가지고 그래?"

"이런 거라니! 이런 거라니!"

"얘가 큰일 날 소리 하네. 그럼 네가 재혁이 좋아하는 건? 그것도 연기야?"

으윽!

"무, 물론, 그건 연기가 아니지만..."

"그럼 지금 사귀고 있는 것도 연기야? 아니지?"

우, 우우우...

"재혁이가 차갑게 대해? 너 싫대?"

"아, 아니 오히려 그 반대라....합!"

난 황급히 입을 막는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하..하긴 너무 잘해줘서 탈이긴 하지. 물건을 들어준다거나, 껴안는다거나, 쓰다듬어준다거나.. 뽀...뽀뽀를...

꺄아!

"거봐, 잘 지내고 있잖아. 과정이 조금 이상하긴 해도 서로 좋아하는 마음만 진실하면 되는 거야. 그렇지?"

'그..그런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옆에서 정현이 실눈을 뜨고 진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내 욕할 때 그렇게 마음을 쏟아부었냐?"

"내가 언제!"

"노래방에서 녹음한 거. 아주 심정이 절절 묻어나던걸? 대본에 없는 애드립까지 하시고 말이야~"

"으, 그런 거 신경 쓰지 말라고!"

"예이, 예이~"

"그래, 그런 거였다 이거지?"

....응?

나를 보고 있던 진수와 정현의 어깨에 손이 올라가 있었다. 그 손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가위 바위 보에서 져 매점 심부름을 하게 된 재혁이었다.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나도, 얼어버렸다.

"너... 왜 벌써...."

"지갑을 두고 가서."

확실히, 우리가 앉아 있던 곳 주위에 그의 지갑이 떨어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가지러 돌아온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나눈 대화를 모두 들었겠지. 그가 지갑을 주워 흙먼지를 터는 동안 진수와 정현이 입을 연다.

"아- 재혁아,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야, 야야. 우리 말 좀 들어봐라. 이건 진짜 널 위해서-"

"닥쳐."

오싹함이 온 몸을 감싼다. 눈물이 고였다. 몸이 무너질 듯이 떨려온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계속 말을 잇는다.

"1분 준다. 나랑 현서는 천 오백 이상. 니네는 아무거나. 5분."

"엥?"

"시간 잰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그 말에 난 더 큰 혼란을 느꼈다. 무슨 말이지- 남자들끼리의 암호라도 되는 걸까? 하지만 진수와 정현은 곧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뭔가 조금 무서운 미소였다. 그렇게 그들은 바람과 같이 사라지고, 벤치에는 나와 재혁만이 남았다. 그가 천천히 내 곁으로 다가온다. 결국 아까 그 말은, 자신과 나만을 남겨두고 떠나라는 뜻이었나 보다.

무슨 말을 듣게 될까 걱정됐지만 그 전에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있었다.

"미안해."

내 목소리는 울음으로 잠겨있었고 눈에서는 이미 물이 흐르려 하고 있었다. 참을 수 없었다. 인연이 어떻고, 친구니까 어떻고... 좋아하는 사람 한 명 잡지 못하고 비겁한 수나 써가며 그의 호감을 얻는 내가 싫었다.

인연 이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실? 매듭? 억지로 만들어진 매듭 따위, 재혁이가 좋아할 리 없어. 이런 거짓으로 이루어진 인연을 잘라낸들 흉터 따위가 남을까?

그런 이론 따위-

눈물이 흐르려고 할 때, 나의 얼굴이 들려진다.

"좋아해."

-뭐?

"읍.."

"...."

"....."

입술에 닿는, 겨울바람과는 다른 감촉.

그것이 멀어지는 감각과 함께 순식간에 감아졌던 나의 눈이 다시 떠졌다. 그 앞에는 재혁이 있었다.

"연기든 사기든... 그런 건 이제 상관없다고.. 바보야."

붉어진 얼굴. 그는 나를 보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말했다.

"난 널 좋아하고..."

눈물이, 흐른다.

"넌 내 인연이고, 반쪽이니까."

"...응."

눈물을 닦아낼 생각도 않은 채 계속해서 그를 바라본다. 그는 나를 힐끗 보더니, 소매로 눈물을 닦아준다. 그리고 다시 입을 맞춘다. 그의 온기가 느껴진다.

-따뜻했다.

눈을 감고 그 감각을 영혼에 담아둔다. 한없이 맛보는 행복감 속에서 난 생각한다.

'그 이론이, 옳은 걸지도 몰라.'

그리고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다.

그래. 그것은-

나의, 그의, 우리들의

조금 특별한 인연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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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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