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이거 떨어뜨리셨는데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털실 손뜨개로 곱게 옷을 입힌 병을 주워 주자 사냥꾼은 입을 함박같이 벌리며 웃었다.
"이게 뭔지 알아요?"
사냥꾼은 옆구리에 멘 가방에 넣으려던 병을 도로 꺼내 얼굴 앞으로 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끈을 슬슬 풀고 병옷을 벗겨서 속을 보여 주었다. 콜라병보다 조금 작고 목이 짧은 대신 널찍한 주둥이를 코르크 마개로 막아 놓은 그 병 안에는 악어 한 마리가 몸을 웅크리고 엎드려 있었다.
"악어네요?"
"지금 동물원에 납품하러 가는 길이죠. 이놈 잡느라 고생했어요."
자루 속의 뼈, 는 스티븐 킹의 소설인데 유리병 속의 악어, 라는 이야기는 어디에 없을까. 사냥꾼은 그 유리병을 내게 건네주었다. 내가 유리병을 눈앞에 바싹 갖다대고 악어를 관찰하는 동안 사냥꾼은 악어를 잡은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놈이 무리 중에서 제일 큰 놈이지요. 하마하고도 싸우는 놈이오."
"어떻게 잡으셨어요?"
"다 방법이 있죠."
사냥꾼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유리병하고, 핀셋하고, 망원경하고,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한데, 굉장히 어려운 수학책이 필요해요. 이것들을 준비해서 악어가 사는 곳으로 가서는, 적당한 악어 한 마리를 골라서 그 녀석 눈앞에 수학책을 펼쳐 들이대는 거죠. 그러면 악어가 그걸 보고 너무 어려우니까 눈이 돌아가서 벌렁 자빠져요. 그 때 망원경을 거꾸로 들고 보면 악어가 쬐그맣게 보이는데, 그러면 핀셋으로 집어서 이렇게 유리병 안에 집어넣는 거죠."
"우와."
"요즘은 악어들이 똑똑해져서 사냥하기도 점점 어려워져요. 옛날에는 <1 더하기 5> 같은 것만 물어도 악어들이 자빠졌는데, 이놈들이 어디서 산수 공부를 하더니 어느 새 <23 더하기 52 빼기 33 나누기 괄호 열고 2 더하기 4 곱하기 3 괄호 닫고 전체 루트 2의 제곱근> 같은 문제를 내도 콧방귀만 뀌잖겠어요."
"그런 문제를 내면 사람도 쓰러지겠는데요."
"재작년까지는 대학교 수학책이 통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점점 안 먹혀요. 그 병 안에 있는 그놈은 덩치도 클 뿐더러 머리가 얼마나 좋은지, 카오스계 비선형방정식의 무한무리수 해법에 대한 노벨수학상 후보 논문을 가져가서 겨우 잡았지요."
"힘드시겠네요."
악어는 사냥꾼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유리병 안에 가만히 엎드려서 그저 눈만 감고 있었다. 문득 이 악어가 이렇게 잠잠한 것은 그 "카오스계 비선형방정식의 무한무리수 해법"을 암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병을 주워서 사냥꾼에게 돌려주지 말고 그냥 방생할 것을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악어를 사냥꾼이 어디서 잡아왔는지 모르니, 아무 곳에나 방생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동물원 따뜻한 우리에 들어가서 암산을 계속하는 것이 악어에게는 나을 것이고 생태계에도 그나마 덜 해로울 것이다. 적어도 비단구렁이 뱃속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 비단구렁이는 옆구리가 터져 죽었지만 악어도 그 전에 죽었다.
어쨌든 간에 병을 사냥꾼에게 넘겨주었다. 사냥꾼은 받은 병에 다시 손뜨개 병옷을 입히고는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그럼, 빨리 가서 납품해야지."
"안녕히 가세요."
악어가 펜으로든 컴퓨터로든 논문을 쓸 수 있다면 앞으로 노벨수학상 후보가 바뀔지도 모른다.
...혹시 개그였다면 죄송합니다;
ps. MSN 주소 좀 알려주세요. ; 제 MSN 주소 리셋되었더군요. (제 주소는 dhanfeirus@hanmail.net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