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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Bon Voyage, Monsieur Lupin!

2009.10.15 22:5710.15


-최우선 긴급 보고! 여기는 발크만 소위입니다. 제기랄, 결국 그들이 의회를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시간 보호군의 이름으로 맙소사! 지금 여기에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됩니...젠장, 이러면 안 된단 말입니다! 빌어먹을, 덤벼라! 이 더러운 손을...안 돼! 너무 수가 많아! 너무 수가....-

필사적으로 외쳐대던 발크만 소위는 사람들의 손아귀에 붙잡혀 곧 거칠게 화면 밖으로 끌려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영상은 전혀 새로운 인물을 비추고 있었다.
마치 초록빛을 의인화한 것처럼 그 아름다움을, 중성적이면서도 여성적 매력으로 충만함에 분명한 빛나는 외모를 뽐내는 여성은 약간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음, 이게 바로 그거군요. 발크만 소위, 정말 미안해요. 나중에 근사한 곳에서 저녁 멋지게 사줄게요. 물론 그것으로 용서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하여간 시간 보호군의 여러분들...음, 계속해서 저희의 요구를 외면하시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말하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 유감입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분을 만나야 됩니다. 네, 우린 그분과 함께 대화를 나눌 것이고 전 국민이 그분과 함께 지낼 것입니다. 저희가 계속적으로 말해온 그 부탁을, 저희 모두가 염원해온 그 간절한 소망을 최대한으로 빨리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저희와 시간 보호군의 협력은 지금까지처럼 좋게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저희들은 빠른 답변을 당신들에게 원합니다. 그럼 이만....아, 발크만 소위!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당신은 저희들의 마음을 이해하실 거라 믿어요. 불쌍한 사람, 제가 사과의 키스를 해드리...어, 아직 안 꺼졌네?-

그것으로 영상은 꺼져버렸다.
마치 대영제국 시절의 영국군 장교처럼 보이는 대령은 몸을 돌려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 있는 충실한 부하이자 폴 로스타드 중위라는 이름으로 시간 보호군 육군에서 활약 중인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자, 어떻게 생각하나?”

프랑스 억양임에 분명한 독특하면서도 매혹적인 악센트로 로스타드 중위는 부드럽게 대답했다.

“흥미롭군요. 특히, 저 강단 있는 레이디가 말입니다. 정말 멋진 숙녀군요.”

대령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초리로 마치 귀공자와 같은 준수한 외모의 그 중위를 잠시 노려보았다.

“흥! 그 멋진 숙녀가, 아니 북코레이나 녀석들이 결국 우리를 곤란에 빠뜨렸어. 지금 연방 의회를 장악한 세력의 지도자는 한에데라는 여성이라네. 바로 저 영상의 주인공이자 자네가 말하는 소위 멋진 숙녀이지!”

“흠....”

로스타드 중위는 대령이 특별히 1923년의 프랑스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자화자찬한 와인의 향과 맛을 잠시 음미하며 그 이름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았다.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하여간 그녀들은 우리 시간 보호군에게 색다른 요구를 해왔다네. 그건 바로 아르센 뤼팽이라는 위인을 직접 데리고 와야 된다는 것!”

“호오, 그것 참...흥미롭군요.”

그 말대로 폴 로스타드 중위는 흠칫 놀라다가 다시 진중한 표정으로 돌아간 채 아주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상관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로스타드 중위가 방금 전 아주 놀랐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도 그에 따른 흥분의 여파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있다는 것을 일부나마 알아차릴 수 있었겠지만 대령은 그런 면에서는 우둔한 인물이었다.

“흥미롭다구? 하! 그 멍청한 놈들은 우리가 제공해주는 온갖 소설, 영화, 만화 같은 공상의 산물들을 진짜 역사로 믿고 거의 전 국가적으로 열광하고 있지! 이번 경우에는 괴도 신사 아르센 뤼팽이고...”

“그는 존재하지 않지만 말이지요. 그게 중요한 문제군요.”

“그래서 상부에서는...음, 아주 약간 속임수를 쓰기로 결정했네.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만드는 것이지.”

로스타드 중위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 같은 표정으로 그 말을 묵묵히 경청하고 있었다.
입가에는 즐거운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묘하게 어두컴컴한 기색이 엿보이는 뒤틀린 웃음이었다.

“자네가 그 프로젝트의 감독 및 총책임자로 좀 활동해주었으면 하네.”

“흠, 하지만 전 기술적으로 잘 모릅니다만...”

“자네는 19세기 프랑스 출신이 아닌가? 그 당시의 실생활, 그리고 의식 구조 같은 면모에는 그 누구보다 더 전문가이겠지. 뭐, 더 확실한 전문가를 수배하기에는 시간도 없고. 지금 이 기지의 연구 시설 전체는 그 프로젝트로 한창 바쁘다네. 그리고...”

대령은 꽤나 경박한 웃음을 터뜨리며 남이 듣기에는 불쾌할 수도 있는 무례한 농담을 건넸다.

“똑똑하기 짝이 없는 기술자나 과학자 녀석들은 멋대로 놔두었다가는 어디까지 폭주할지 모르는 천재이자 바보들이 아닌가? 안 그래? 하하하하!”

“하하, 그렇지요.”

로스타드 대위 역시 그 농담에 웃어주기는 했지만 그저 상관에 대한 예의 차원이었다.
그의 눈동자와 미소는 남극에서 수천년 동안 얼어붙은 빙설의 조각 마냥 차갑게 빛날 뿐이었다.


“아, 잘 오셨습니다! 제 이름은 팅케르입니다.”

젊었을 적에는 호방한 사나이였음에 분명했으리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중년이 넘은 나이임에도 과학자라기보다는 야만적 전사의 이미지가 풍기는 특이한 남자가 씩 웃으며 인사했다.

“타이밍을 아주 잘 맞춰오셨군요. 어제 육체와 관련한 기본 설계가 끝나고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세포 배양과 주유 신체 부위 제작에 들어가려던 찰나였습니다. 하하하!”

폴 로스타드 중위 역시 웃으면서 결코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은 그 곳으로 걸어갔다.
인간에 대한 실존적 가치를 마구잡이로 훼손하고 있는, 그리고 실험실이라는 이름의 그 지옥의 틈바구니로.

“처음 계획은 그저 간단한 기계 인형이었습니다. 정교한 인공 지능 유닛은커녕 적당한 회화 능력만 갖춘 로봇 말이죠. 하지만 그런 간단한 눈속임으로 때우기에는 이 멋진 귀공자가 시간 보호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임무를 떠안고 있는데다가 보통의 능력 있는 사람도 해치우기 힘든 빡빡한 스케줄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연락받고는 모든 것을 뒤엎고 새로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그 다음은 굳이 듣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정상적인 눈과 코가, 그 모든 참상을 느낄 수 있는 오감만 있다면 그 누구라도 이 빌어먹을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예, 우린 정말로 하나의 생명을, 비록 가짜 인생이라고는 해도 한 사람을 만들고 있습니다.”

은빛과 청빛이 뒤섞인 듯한 색을 빛내는 골격이 로스타드 중위의 눈앞에서 복잡한 선과 기계들에 연결된 채 그 존재를 보여주고 있었다.

“멋지십니까? 잘 빠졌죠? 이건 뤼팽의 골격, 그러니까 뼈가 될 물건입니다. 단순한 뼈대 가지고는 부족한 면이 있을 것 같아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으로 준비해두었죠.”

로스타드 중위는 그가 갈 수 있을 만큼의 거리까지 접근하고는 아주 자세히 그 모든 것을 관찰했다.
만지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들었지만 곧 그는 놀라운 자제력으로 하지 않는 데에 성공했다.

“흠, 나노금속의 일종입니까? 아니면 특수한 초합금 종류?”

“오, 그런 질문을 하시리라 예상했습니다. 모습만 보자면 금속제처럼 생각되시겠지만 그건 아닙니다. 분명 생물적 형질이 그 기본이지만 특수한 금속가 정교한 나노기술의 결합으로 분명 생물의 뼈임에도 절대 부러지지 않으며 강인한 최고의 금속적 면모까지 가지고 있는 생물과 기계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물건입니다. 대단하죠?”

로스타드 중위는 쓴웃음을 지었다. 신이 나서 자랑하는 모습이 너무나 어린아이와 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이미 순환계가 생성 작업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유전적으로 매우 월등하며 또 완벽하죠. 근육은 생체 인공 근육의 한 종류 중 하나를 배양 중에 있습니다.”

로스타드 중위는 붉은 렌즈로 두 눈을 가린 한 과학자가 바퀴가 달린 금속제 바구니에 불투명한 액체로 가득 찬 병들을 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병 안에는 심장이라던가 폐, 대장과 같은 사람의 장기로 가득 차 있었다.
아직은 그 크기가 작은 것이 미완성임에 틀림없으리라 확신하며 로스타드 중위는 역시나 역겨운 광경이라고 생각했다.

“아, 저건 시제품입니다. 최초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배양 중인 것들인데 역시나 최고의 육체적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극상품을 만들기 위한 실험물이지요.”

로스타드 중위는 하마터면 극상품 운운하는 이 과학자를 한 번 강하게 때려주고 싶은 강한 충동에 사로잡힐 뻔했다.
그는 이를 악물며 이제는 거의 의식적으로 짓는 미소와 함께 물었다.

“이 모든 것들을...아주 완벽하게 조합하여 하나의 인간으로 탄생시킬 자신이 있나 보군요. 이 어마어마한 광경과 당신들이 보여준 그...구성 요소들을 보자니 전 어떻게 할 엄두도 안 날 지경인데 말입니다.”

팅게르는 이 무식한 군인 앞에서 과학자 특유의 지적 오만감과 우월감을 한껏 자랑할 기회에 기뻐했다.

“아, 물론이지요! 사실 이건 시계를 조립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비슷하면서도 그 수준 자체는 하늘과 땅 차이인 매우 정교한 작업입니다. 오직 저..음, 아니 저희들만이 이 최고의 걸작 완성을 해낼 수 있는 것이지요! 하하하!”

폴 로스타드 중위는 그 과학자와 함께 웃어주었다.
전혀 웃어주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고 이 끔찍한 인체 실험의 난장판 한가운데에서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는 참고 또 참았다.
비릿한 냄새가 그의 코끝을 자극하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인간을 만들고 있지 않았다. 인간과 비슷한 초인이자 원래부터 가상의 인물인 아르센 뤼팽이라는 무언가를 제작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북코레이나 사람들은 인간을 초월한 영웅, 그러니까 슈퍼 히어로 범주의 완벽한 초인에 열광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들이 초인을 원한다면 우리가 만들어주어야 된다고 저 위의 군인 양반들이 생각한 모양입니다. 하하하!”

팅게르는 웃었다.
폴 로스타드 중위 역시 웃었다.
평균의 인간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 상해에 대한 높은 치유력.
일반인보다 느린 노화 능력에다가 최대 120년까지 살 수 있는 수명까지.
그 중에서도 압권은 바로 외모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초월적 능력이었다.
팅게르는 흡사 눈에서 레이저를 뿜어내는 것처럼 자신을 노려보는 로스타드 중위에게 왜 이런 능력을 부여해주었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북코레이나에 전해진 아르센 뤼팽에 관한 기록들이...음, 저희가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몇몇 부분이 편의에 의해 각색이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마음대로 변장을 할 수 있는 이 천의 외모 부분이...초능력을 가진 것으로 변경이 되었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피부 세포에 나노물질을 삽입, 나중에 뤼팽의 두뇌 시스템과 연결해 그 의지대로 얼굴을 바꿀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아예 눈에서 열선을 뿜어내거나 비행 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어떠냐고 이죽거리고 싶었다.
하지만 로스타드 중위는 참았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품고 있던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다.


육체가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고 있을 때 로스타드 중위는 어느 날 형형색색의 책들을 한 가득 짊어지고 연구실로 찾아왔다.
쾅하는 실로 존재감 있는 소음과 함께 책상에 내려다놓자 모두의 시선이 자동으로 그 곳으로 향했다.

“아르세 뤼팽 시리즈 완역본 전집입니다.”

모두가 왜 그걸 가져왔냐는 시선으로 폴 로스타드 중위와 책을 쳐다보았다.
그는 씩 웃으며 말했다.

“명색이 아르센 뤼팽이라는 가공의 문학 인물을 만드시는 분들이 책은 전부 읽어주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팅게르가 무언가를 직감하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니까 중위님의 말은...저 책들을 모두 읽으라는 말이...”

로스타드 중위는 두 손바닥을 강하게 맞부딪치며 매우 희극적인 몸동작으로 환호의 자세를 그 과학자에게 취해주었다.

“정답입니다! 자, 모두 이 책들을 아주 주의 깊게, 그리고 재밌게 즐겨주세요!”

누군가가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농담이지요?”

로스타드 중위는 그 말을 꺼낸 연구원을 흡사 파충류의 눈동자처럼 차갑게 노려보며, 하지만 입가에는 여전히 유쾌한 미소를 띤 채 말했다.

“농담은 무슨.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들, 제가 이 프로젝트에서 무슨 역할을 맡고 있는지 잊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뤼팽의 두뇌를 만드는 팀이 어디에 있다고 했죠?”

아르센 뤼팽 제작 위원회의 모든 과학자들은 폴 로스타드 중위의 생각이 실로 허무맹랑하고 19세기적 낭만과 고지식함 특유의 고집에서 나온 우둔한 발상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모두는 로스타드 중위의 제안 아닌 명령을 무시하기로 했고 곧 그 중위도 자신들에게 굴복하리라 수군댔다.
하지만 놀랍게도 며칠도 지나지 않아 로스타드 중위는 자신이 목적한 바를 모두 관철시키는 데 성공했다.
한 가지 이상했던 점은 과학자들이 모리스 르블랑의 뤼팽 소설을 모두 읽은 것을 확인한 로스타드 중위는 그렇게 기뻐하지 않고 그저 씁쓸하게 웃으며 밤하늘을 장식하는 초록빛의 장막만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입체 화면으로 얼굴 도안이 나타났다.
오늘은 아르센 뤼팽의 외모를 결정하는 날이었다.

“하하하하!”

과학자들은 그 전부터 뤼팽의 외모를 손수 결정하겠다고 우겨온 로스타드 중위가 지금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아무 말하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하고 있었다.

“오, 멋져! 정말 멋지군! 하지만 너무 느끼한데? 하하하!”

로스타드 중위는 너무나 쾌활하게 웃어대며 마치 품평회라도 하듯이 각 시대의 뛰어난 외모의 얼굴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푹신한 의자까지 가져다놓고는 와인까지 마시면서 그는 이 아르센 뤼팽의 기본 외모 결정을 신나게 즐기고 있었다.

“크하하! 모리스 슈발리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느끼하다니까!”

그는 이제 배까지 붙잡으며 낄낄 대기 시작했다.
술에 취했다고 생각한 몇몇 이들이 그 추태에 눈살을 찌푸렸다.

“로저 무어? 영국인들은 언제나 마음에 안 들지만 이 친구만은 예외로 해야겠어! 고전적이면서도 좋은 느낌이야! 좋아, 다음다음! 아니, 이 신사는 누구인가? 이 젊은 친구의 이름이 크리스찬 베일이라고? 마치 잘 다듬어진 하나의 칼과 같군! 아하하하!”

그렇게 거의 하루 내내 술에 절어 그 모든 잘생겼다는 남자의 외모를 일일이 살펴본 로스타드 중위는 거의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리면서 자신의 숙소로 향하는 로스타드 중위에게 역시나 피곤에 지친 연구원이 약간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누구로 할 것인지 정했습니까? 못 정하셨으면 저희가 적당히 조합해서 결정할까요?”

“아...얼굴...뤼팽님의 멋진, 모든 여인의 심금을 울릴 외모 말이지? 하하...그냥 명랑하기 짝이 없는 모리스 슈발리에를 기본 바탕으로 크리스찬 베일처럼 어두운 면모라던가 카리스마적 분위기를 대충 섞어봐. 마치 시간 보호군처럼 회색의 느낌으로 만들어보라고...제기랄, 난 잔다.”

발걸음이 꼬여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게 걸어 나가던 로스타드 중위는 연구실을 나가기 전에 문가에 몸을 기대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것들 같으니...모두 저주나 받아라.”

그리고 그 말은 아무도 듣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로스타드 중위의 술주정에 가까운 말을 충실하게 받들어 작업을 했고 순식간에 뤼팽의 외모를 완성해냈다.
다음 날, 폴 로스타드 중위는 어제처럼 경박하게 날뛰던 그 남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침착하고 냉정한 면모로 완성된 외모의 견본을 꼼꼼히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아르센 뤼팽의 얼굴은 결정이 났다.


육체를 만들고 있는 팀과는 다르게 뤼팽의 두뇌를 담당하는, 그러니까 컴퓨터 관련의 과학자들은 탈색된 패션모델 마냥 중성적이면서도 깔끔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생체 두뇌로는 아르센 뤼팽이라는 하나의 인격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컴퓨터로 대신하는 것이 더 낫지요. 그래서 저희 팀은 양자 컴퓨터를 토대로 아르센 뤼팽이라는 인격 정보의 모든 것을 입력해 하나의 완벽한 인격 프로그램으로 작용할 수 있는 두뇌 칩을 만들어냈습니다.”

자신을 리아웨스라 불러주길 부탁한 그 과학자는 로스타드 중위와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일종의 프로그래밍 수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인공두뇌라...학습하는 컴퓨터의 일종인가?”

“오, 그건 아닙니다. 이 작업에는 이미 완성된 아르센 뤼팽이라는 인물의 두뇌가 필요로 하기 때문이죠. 물론 이 두뇌 칩은 학습이 가능하지만 작동이 시작하면 마치 아기처럼 학습하면서 스스로의 지능을 완성해나가는 그런 종류가 아닙니다. 이미 이 인공지능 안에 아르센 뤼팽이라는 사람의 정신이 완성된 상태로 잠든 채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요.”

리아웨스는 모니터를 몇 번 만지면서 주황으로 빛나는 글자를 소환했다.

“두뇌 구축에 사용한 정보들은 모두...”

“자료는 각 시대의 기지를 통해 전달받았습니다. 아무리 인터넷이 좋아도 역시 괜찮은 것은 고전적인 책들이지요. 물론 모두 스캐닝 작업으로 디지털 데이터베이스화했지만 말입니다.”

리아웨스는 그 글자들을 한 번에 지워버리고는 입체적인 구조와 선, 그리고 점으로 이루어진 두뇌의 모형을 보여주었다.
바로 옆에서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빠르게 글자와 기호가 소나기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 그 모든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놀랐습니다. 그 국적도 다양했거든요? 영국, 미국, 독일, 일본...이건 한국의 성귀수라는 연구자가 쓴 책에서 발췌한 정보군요. 아르센 뤼팽이라는 그 옛날의 가공의 존재가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을 줄은 이 일을 맡기 전까지는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폴 로스타드 중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이 장소에서 나가려고 했다.
육체 팀과는 다르게 두뇌를 만드는 곳에서는 너무 간섭을 해서는 안 되었다.
이미 뤼팽의 육체 제작 과정에 있어서도 너무 과하게 관여한 것이 아닌가 불안해하던 참이었다.
그저 제대로 하고 있는 지 확인만 하고는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다.

“뭐, 그렇다고는 해도 한낱 머나먼 과거의 망령에 불과하지만 말입니다. 아, 벌써 가십니까?”

리아웨스가 무심하게 내뱉은 그 말은 로스타드 중위의 마음을 마치 비수처럼 후벼 파고 있었다.
빌어먹을 과학자들, 모두 지옥에나 떨어져라!


과학자들은 사람이 사람을 만든다는 일에 아무런 죄책감도, 또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능수능란하게 그 모든 것들을 해나가고 있었다.
물론 폴 로스타드 중위는 알고 있었다.
이 시간 보호군에는 전혀 다른 의식과 관념으로 넘쳐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과학자들에게는 이 모든 일이 그저 자신들의 지적인 목마름을 해결하는 일시적 탐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들은 그저 시간 보호군에 고용되어 자신들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초월적 기술들, 그 모든 미래의 기술력을 엿보는 대신 시간 보호군이 원하는 일을 해주고 있었다.
아르센 뤼팽의 육체를 만드는 팀은 인조인간에 대한 작업을 무수히 해왔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과학적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르센 뤼팽의 정신을 만드는 팀 역시 컴퓨터의 인공 지능 작업을 해온 베테랑들이었다.
과학자들은 이 각각의 결과물이 결합되어 하나의 지성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에도 아무런 불쾌감을 가지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그것’을 자신들과 동일한 지적 인간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곧 완성되어 북코레이나의 시간 보호군 제 236-F 통합 기지로 수송될 아르센 뤼팽은 그저 자신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정교한 첨단 제품의 하나일 뿐이니까.
폴 로스타드 중위는 분노하고 싶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날뛰고 싶었다.
웃음과 친절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그 모든 것을 박살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 어떤 타인보다도.


“제라드 중령의 무술 능력을 데이터화해 입력했습니다. 물론 완벽하게 카피해내지는 못했지요. 뇌에서 추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하지 못하고 또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초인적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험 삼아 로봇한테 백업 데이터를 입력해 제라드 중령과 대련시켜보았더니 그조차도 약간 애를 먹고서야 이길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리아웨스가 육체 팀의 실험실로 건너와 로스타드 중위에게 한창 설명을 하고 있을 때 뤼팽의 중요 부위를 마무리 작업하고 있던 연구원은 문득 우스운 농담 하나가 떠올랐고 곧 그대로 입 밖으로 꺼냈다.
동료들이 신나게 웃음을 터뜨리는 것을 보면 간만에 괜찮은 농담을 해낸 모양이다.
만족하던 연구원은 순간 등 뒤에서 알 수 없는 강한 적의를 느낄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로스타드 중위가 방금의 농담에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그 유쾌한 웃음과 농담 뒤에는 연구원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예리한 빈정거림이 숨어 있는 것 같다.
그 중위는 분명 자신의 농담에 껄껄 웃고는 있었지만 그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는 분노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그 감이 남들보다 민감한 그 연구원은 자신의 그 생각을 스스로 지워버렸다.
왜 저 군인이 자신에게 은근히 화를 내고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작업에 너무 힘을 쓴 모양이라고 자기 스스로 납득한 연구원은 곧 그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나중에, 구체적으로는 뤼팽의 육체와 두뇌의 연결 수술이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술에 거나하게 취한 채 혼자 산책을 하다가 호되게 넘어지는 사고를 당해 한동안 의무실 신세를 지게 될 연구원은 그저 작업에만 몰두했다.


단순히 유리로 치부하기에는 기묘한 질감과 빛을 발하는 반투명한 은색 금속으로 이루어진 원추형 통이 옅은 빛깔의 푸른 액체로 가득 채워진 채 서있었다.
원통 주변에는 정돈되지 않은 튜브와 온갖 색의 케이블이 기계 장치와 맞물려 연결된 채 은은한 특유의 작동음을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탄탄한 체격에 상당히 준수한 외모의 한 사나이가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굵은 선의 눈썹과 꽉 다물어진 입매가 보였다.
다만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엿보였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그는 분명 모두에게 사랑받을 준수한 남자였다.
단순히 미가 아닌 남성다움의 잘생긴 면모를 풍기고 있는 그 모습.
로스타드 중위는 차가운 잠에 빠져 있는 그를 어둠 속에 빛나는 얼음 조각의 섬광처럼 가라앉아있는 눈동자로 쳐다보았다.
20대 후반 정도로 보였지만 뤼팽이 막 깨어났을 때 그 자신이 인식할 자신의 나이는 39세이다.
그리고 깨어나기 직전의 마지막 기억은 바다에 몸을 던졌을 때의 시점.
리아웨스와 그들의 팀은 아르센 뤼팽의 기억을 813 사건 이후로 설정했다.
그래야만 했다.
시간 보호군은 북코레이나 사람들에게 1913년에 자살하려는 아르센 뤼팽을 구출해 데리고 왔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아르센 뤼팽은 완성이 되었다.
자축 파티를 한창 밤늦게까지 열고 모든 과학자들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 연구실에는 폴 로스타드 중위 그 혼자뿐이었다.
그는 허구의 존재에서 하나의 실재로 다시 태어난 아르센 뤼팽과 일 대 일로 대면하고 있었다.
그는 뤼팽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완성은 되었지만 이제 수송이라는 문제가 남자 대령은 무언가 불길함을 느꼈다.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군. 왜 타임 홀을 한 번에 통과해 그 시공간대로 수송할 수 없는 거지?”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목적지의 대기 중 타임 슬립 입자가 워낙 특이한 형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적으로 설명하면 복잡하지만 하여간 먼저 서기 1601년의 제3펠호프 공군 기지에 갔다가 거기서 다시 한 번 타임 홀로 목적지로 이동해야 됩니다.”

대령은 무어라 투덜대며 지도와 서류를 거의 반쯤 구겨대며 몇 번이나 읽어보고는 끝내 수긍할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한 번의 타임 홀 통과에도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거늘....두 번이라니! 거 참!”

여전히 속이 안 풀린 대령은 짜증으로 가득 한 얼굴로 모두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로스타드 중위가 부드러운 미소로 상관을 위로했다.

“걱정 마십시오, 대령님. 공군 녀석들이 제대로 할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망할 놈들!”

대령은 탁자를 거칠게 내리쳤다.
제3펠호프 공군 기지가 모종의 사고로 2 펠호프 기지가 절반 이상 파괴되면서 급히 남극에 조성된 임시 기지라는 불안한 사실 하나가 대령의 마음을 계속 흔들고 있었다.


대령의 특명으로 급거 수배된 최신 대형 수송기는 아르센 뤼팽을 실은 멋들어진 ‘냉동 관’을 싣고는 시공을 넘어 1601년의 제3펠호프 공군 기지의 활주로에 도착했다.
그 수송기의 조종사는 화물과 임무에 별 관심이 없었다. 사실 그는 중대 규모의 기갑 병력 수송을 마치고 밀린 수면을 취하려던 찰나에 꽉 막힌 육군 대령의 명령에 강제 동원되어 기분이 아주 안 좋았다.
대령이 무어라 일장 연설을 한 것은 기억이 났지만 졸려 죽을 지경인데다가 화까지 잔뜩 나있던 그는 그저 한 귀로 흘려들으며 기계적인 대답을 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그 공군 파일럿은 조종 자체는 잘해냈다.
빼어난 자동 기계와 로봇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기지는 정비가 덜 된, 꽤나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기지의 사령관은 화물과 명령서를 확인하고는 멍청한 육군 녀석들의 너절한 실험물의 수송이라는 것에 한숨을 토해냈다. 명령서에 적혀진 그 모든 미사여구와 최대한 빠르게, 또 최대한 조심하게 다루라는 말 역시 그 사령관으로 하여금 코웃음을 치게 만들었다.
육군 놈들의 호들갑은 하여간 알아주어야 된다니까.
그런 생각과 함께 그 사령관은 그 대형 수송기를 더 중요한 임무에 투입했다.
겨우 2미터 정도 크기의 별로 크지도 않은 이상한 원통형 구조물이야 조그만 2인승 항공기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령에게는 불행하게도 제3펠호프 기지는 상당히 중요한 임무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기지의 모든 활주로와 타임 홀은 전혀 여유가 없이 꽉 막혀 있었다.
사령관은 상황이 어느 정도 여유가 보이면 이 “관”을 수송하라는 명령과 함께 보다 중요한 일에 집중했다.
얼마나 중요했는지 시공간 통신으로 육군 측에 조금 늦어진다는 간단한 말을 하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더럽게 무겁군!”

공군 사병 두 명은 족히 2미터는 되는 은빛 재질의 원통 비슷한 무언가를 사이좋게 나눠 잡고는 제5활주로의 낡아빠진 예비 격납고로 옮겼다.

“젠장, 이왕 태워줄 거 그냥 끝까지 태워주지!”

“할 수 없잖아. 상황이 상황이니.”

동료가 투덜대자 땀에 젖은 그 사병은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응수했다.
차량 지원도 제대로 해주지 못해 그들에게는 너무나 고된 육체적 고통을 안겨다줄 정도로 기지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끄응! 드디어 다 왔군!”

격납고 입구 근처까지 도착하자 사병이 신음성을 토해냈다.
한쪽 부분을 잡은 채 반쯤 열린 문의 내부를 살짝 엿본 다른 사병은 깊은 고민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음, 이거 그냥 입구 근처에만 갖다 놓으면 되는 거 아닌가? 굳이 안에 깊숙이 갖다 놓을 필요는 없잖아.”

“음, 나 역시 동일한 의견이야. 나중에 이걸 비행기에 실을 다른 녀석들도 도와줄 겸해서 그냥 입구 근처에 내려다 놓는 것이 좋겠어.”

두 사병은 거의 동시에 씩 웃으며 두 손을 놨다.
금속제 물체가 바닥에 거의 충돌하듯이 부딪치면서 굉장히 큰 소음이 강렬하게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한 사병이 걱정된다는 얼굴로 그것을 한 번 살펴보았다.

“흠, 괜찮을까? 너무 세게 떨어진 것 같은데?”

단단하게 뭉친 어깨를 풀며 두 팔을 돌리던 사병이 말했다.

“걱정도 팔자야. 설마하니 육군 녀석들이 이 정도 충격에도 손상될 정도의 물건을 만들었겠어? 더군다나 시간 보호군의 기술력으로? 웃기지도 않은 농담이로군.”

동료의 말에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괜히 소심한 걱정을 한 자신이 바보 같다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듣고 보니 그렇군. 그럼 어서 가지. 지금 우리들에게는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렇게 두 사병은 약간은, 아니 약간 수준은 아닐 정도로 소홀하면서도 거칠게 운반한 그 육군의 수송물을, 은빛으로 번쩍이면서 그 모양으로 하여금 관 느낌을 주는 그것을 놔둔 채 바삐 가야 될 곳으로 가버렸다.
그들이 떠난 후 몇 분 정도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을 마실 시간 정도가 지나면서 관은 천천히, 그리고 점차 격렬하게 스스로 그 몸을 뒤흔들고 있었다.


활주로와 녹색 빛 풀밭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공간 위에서 남자는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는 점차 그 움직임이 나아지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려다가 다시 땅에 주저앉았다.
아직까지 제정신을 차리고 이 온 몸을 완벽하게 회복하려면 조금 더 숨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저 멀리 태양빛에 반사되면서 차가운 금속광으로 빛나는 인간을 닮은 무언가가 서있었다.
처음에는 중세 시대의 갑옷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형태가 전혀 달랐다.
투박한 면모가 전혀 없이 매끈하면서도 날렵하게 다듬어진 완벽한 디자인의 유사 인간.
그리고 컸다. 그 크기가 너무나 컸다.
날카로운 두 눈은 붉게 빛나고 있었고 얼굴 부분은 수직의 검은 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흉부와 허리 부분의 장갑 비슷 것이 들어난 채 내부가 훤하게 노출되어 있고 한쪽 팔 부분이 정교하게 뜯어져 나가 있는 것이 아무래도 정비 중인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여기는 어디지?
그는 의문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자신의 이름은 아르센 뤼팽.
그 누구의 얼굴이라도, 그 어떤 이의 외모로 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
영국의 명탐정과도 맞섰으며 프랑스는 물론, 유렵 대륙까지 좌지우지하던 아르센 뤼팽.
결국 모든 것에 대한 상실감과 자괴감에 깊고 깊은 바다로 몸을 던진 것까지 기억이 난다.
그 액체에서 빠져나올 때에는 어느 해변에 표류한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르센 뤼팽은 명석한 두뇌로 다시 상황 파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뛰쳐나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흠....”

텅 비어있는, 관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그 구조물은 아주 소량의 푸른 액체가 역시나 은은하게 빛이 나는 금속 특유의 질감과 함께 그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은을 통째로 사용한 것 같은 그 금속을 만져보면서 뤼팽은 이걸 훔치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곧 그는 웃었다. 지금 상황에서의 농담치고는 약간은 부족한 감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지.
그의 눈은 어느새 저 하늘에서 먹이를 주의 깊게 노리는 독수리처럼 예리하게 변해 내부 이모저모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하!”

아르센 뤼팽은 탄성과 함께 은밀한 지점에 숨겨진 종이 조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방수 처리가 된 채 아주 꼼꼼히 접혀진 채로 수납되어 있는 문서.
뤼팽은 그 안에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유용한, 그리고 농축된 정보가 적혀 있기를 기대하며 종이를 힘차게 펼쳐들었다.


그렇게 정확하면서 구체적 정보는 없었지만 그래도 현재 자신이 어디에 있으며 또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알려줄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 지는 뤼팽 그 자신에게 달려있었다.
아르센 뤼팽은 현재 가까운 건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 겉모습이 굉장히 쓸쓸한 것이 사람 사는 것 같지 않았지만 현재 몸을 전혀 가리지 않은 완벽한 나체의 상황에서 재빠르게 움직여만했다.
뤼팽은 건물의 그늘에 몸을 숨긴 채 조심스럽게 차가운 회색 벽을 끼고 문 쩍으로 다가갔다.

“이런....”

그는 곤란해 하는 표정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입구를 쳐다보았다.
멀리서 보기에 분명 문은 문이었건만 가까이서보니 손잡이가 전혀 없는 것이 대체 어떻게 열어야 할 지 감이 안 잡혔다.

“흠, 이걸 어쩐...어?”

문에 가까이 다가가 한 손으로 쓸어내리는 순간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붉은 빛이 아르센 뤼팽의 전신에 비춰진 것이다.
그 붉은 빛은 몇 초도 되지 않아 사라졌고 곧이어 문은 순식간에 좌우로 자동으로 열리면서 그 입구를 개방했다.

“흐음....”

아르센 뤼팽은 풀 길 없는 의문에 잠시 생각해보다가 이내 그 고민을 떨쳐내고는 서둘러 그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은 상류층의 사교실 비슷한 풍경이었고 향기로운 냄새도 공기 중에 떠돌고 있었다.
방은 좌우로 여러 개의 것들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문이 반쯤 열려있거나 아예 활짝 열려있는 방이 족히 절반은 되었다.
뤼팽은 그 중 가장 앞쪽의 방을 선택했다. 그렇게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비좁다기보다는 아늑하다는 느낌이 더 강한 방이었다.
벽에는 고풍스러운 장식물과 그림, 시계가 걸려있었고 흑갈색 가구와 책상, 침대가 놓여져 있었다.
아르센 뤼팽은 방을 털려면 항상 재빠르게 움직여야 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남자였다.
가장 먼저 그는 알몸을 가려줄 무언가를 반드시 구해야만 했다. 옷장을 열자 회색빛의 옷이 두 벌이 걸려있었다. 그 형태가 일상복 같지는 않았고 굳이 가장 비슷한 것을 꼽자면 군복과 그나마 그 모습이 유사해보였다.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옷을 입은 뤼팽은 옷장 안의 거울로 그 새로운 옷을 걸친 자신의 모습을 감상해보았다.

“뭐, 그럭저럭 괜찮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뤼팽은 책상으로 다가갔다.
책상 위에는 상당히 큰 거울처럼 보였지만 무슨 까닭인지 색이 검게 칠해진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놓여져 있었다.
뤼팽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입고 멋들어지게 폼을 잡고 있는 개인 사진도 있었는데 그는 그 얼굴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 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뤼팽 자신의 얼굴에 대한 기억을 한쪽 구석으로 소중하게 보관하면서 방금 본 그 얼굴의 형상에 대해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르센 뤼팽은 그렇게 자신의 외모를 다른 이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누구로도 변장할 수 있는 이 능력.
아르센 뤼팽은 항상 잠을 잘 때면 이 능력이 신의 저주인지 아니면 신의 축복인지에 대해 고민해보곤 했다.

“그러면...”

서랍을 한꺼번에 열어보자 서류 몇 장이 들어있었고 그 외의 곳에도 유용한 정보가 담긴 서류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을 급히 읽어나가다가 뤼팽은 소리 없이 웃기 시작했다.
시간 보호군이란 말이지? 대체 무엇을 하는 곳일지 정말 상상도 가지 않았다.
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이 건물의 다른 방들 모두 뒤져야 될 것만 같았다.

“오!”

아르센 뤼팽은 자신이 얼굴을 빌린 이 방의 주인의 이름이 한스 슈트리펠 소위라는 것을 알아내고는 탄성을 질렀다.

“한스 슈트리펠 소위라...독일식 이름이군. 흠, 미안하지만 잠깐 이 이름과 얼굴, 그리고 계급을 빌려가야겠어, 친구!”


이제 막 후방 정보 수집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칼 가르시아 하사는 피로에 찌든 얼굴로 3인승 정도의 여유 공간이 있는 소형 수직 이착륙 정찰기의 동력 시스템을 점검했다.
본래는 정비병이 할 일이었지만 제3펠호프 공군 기지가 아직도 제대로 된 비행장이라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있었고 또 기지 전체가 바쁜 일에 휘말린 터라 인력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가르시아 하사 자신도 겨우 30분 정도의 기체 정비 및 휴식 시간 이후 곧바로 다른 임무를 위해 시공을 건너야 했다.
하사는 최대한 많은 휴식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컴퓨터와 함께 재빨리 정찰기의 핵심 동력계의 정비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하사의 투박한 손은 복잡하게 얽힌 채 반짝이는 섬세한 광섬유를 살펴보고 수많은 극미 회로로 가득 차있는 결정체 모양의 영구식 연료전지의 상태를 재점검하고는 그 직렬 상태를 다시 재배열했다.

“좋아, 마지막으로 냉각 유닛 교체....만세! 드디어 끝났군. 이제야 좀 쉴 수 있겠어.”

가르시아 하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뻐근한 허리를 좌우로 돌렸다.

“음?”

굳은 뼈가 풀어지는 특유의 소음과 함께 군화와 바닥이 서로 맞부딪치면서 나는 소리 역시 거의 동시에 들려왔다.
가르시아 하사가 누가 왔나 싶어 몸을 돌려보니 익숙한 느낌을 주지만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를 공군 소위 한 명이 희미한 미소를 흘리며 정찰기 근처에 서있었다.
하사는 급히 거수경례를 그 알 수 없는 소위에게 붙였다.

“아, 반갑군. 멋진 비행기야. 조금 작긴 하지만...음, 멋지군.”

그 소위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정찰기의 여기저기를 관찰하며 탄성과 함께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하사는 약간 이상했지만 별의 별 시대에서 온 군인들로 이루어진 시간 보호군이었으니 저렇게 괴상한 성격의 장교도 충분히 있으리라 생각하며 물었다.

“그런데 소위님, 저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음, 이걸로 정말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마음대로 갈 수 있다 이 말이지? 하하하! 정말 멋져.”

여자라면 그 호탕하고 경쾌한 웃음소리에 호감을 품었겠지만 가르시아 하사는 남자였던 탓에 그냥 짜증만 났다.
그래도 이 괴상한 장교 녀석의 마음을 괜히 상하게 만들었다가는 앞으로의 군 생활이 힘들어질 터이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 네. 최근에 개인용 항공기에도 자체적으로 타임 홀을 생성시킬 수 있는 장치와 시스템이 개발되어 공통적으로 설치되어 있으니까요. 소위님은 좀 더 이전의 부대에서 오신 모양이군요. 비록 이 정찰기가 신형이긴 해도 그렇게 특출 날 것 없는 대량 양산형의 하나일 뿐입니다.”

“오! 그렇군. 흠, 좋은 정보 고맙네. 자, 그러면 내가 앉을 곳을 알려주게.”

가르시아 하사는 대경실색한 얼굴로 아주 태연한 표정을 한 채 정찰기 안으로 성큼 걸어 나가려는 그 소위의 앞을 급히 가로막았다.
옷에 부착된 여러 글자들을 읽을 정도로 둘 간의 거리가 가까워졌고 하사는 그 망할 소위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한스 슈트리펠 소위님, 죄송하지만 이 정찰기는 25분 후에  예정된 임무가 있습니다. 다른 항공기를 사용하셔야....”

“아하! 25분 후이란 말이지? 그거 잘 됐군. 그저 날 과거의 어느 곳으로 데려다주기만 하면 되네. 길어야 한 10분이면 되겠지? 20분이 소요된다고 해도 5분의 여유 시간이 있지 않나? 하하하! 그리고 한 가지 더 첨언하면 이건 아주 아주 중요한 일이라네. 시간 보호군에게 있어서....”

웃음기가 섞인, 가벼운 어조로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말이었지만 마지막 말은 아주 진지하고 냉정했다.
가르시아 하사는 무의식적으로 25분이라고 너무나 정직하게 밝힌 멍청한 자신을 욕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난데없는 추가 임무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엔진 정비를 대충하며 시간을 끌고 있을 것을 정말이지 자신은 운도 없었다.

“소위님, 그러면 정식 명령서를 제출해주어야 됩니다. 일단 확인은 해봐야 되니까요.”

그 말에 슈트리펠 소위는 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갑자기 하사를 꾸짖었다.

“밝힐 수 없는 군사 기밀이다! 자네의 관등성명을 대라! 상부에 보고하겠다!“

이 난데없는 상황에 당연하게도 가르시아 하사는 당황한 얼굴로 마치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마냥 그 어조와 표정, 그리고 몸에서 풍기는 기세를 순식간에 바꾸고 압박해 들어오는 소위를 쳐다보며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킨 하사는 무어라 항변을 하려 시도해보았다.

“하..하지만!”

물론 쓸데없는 짓이었다.
슈트리펠 소위의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냉정한 눈동자, 그리고 장교 특유의 위험과 함께 여러모로 심리적 위압감을 주는 기이한 미소와 함께 완벽한 시계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시간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자네의 처벌 수위가 높아진다는 것만 알아두게.”

“그...”

“하하하하! 우습군! 참으로 우스워!”

하사가 처음 봤을 때의 헐렁해 보이는 가면을 순식간에 다시 쓴 슈트리펠 소위는 요란스럽게 손목시계를 살피는 척하며 인상을 썼다.
과장된 그 인상은 보통 때라면 실소가 나올 법한 유머가 있었지만 결코 그 의미가 가볍지 않음을 가르시아 하사는 잘 알았다.

“흠, 어느새 우리 군의 최우선 임무를 고의적으로 방해한지 정확히 25초가 지났군. 대단한 용기야! 그것 하나만은 칭찬해주지.”

결국 하사는 그 속을 종잡을 수 없는 한스 슈트리펠 소위에게 백기를 들며 항복했다.

“제기랄, 어서 타십시오. 어디로 가십니까?”

슈트리펠 소위는 거만스럽게 바로 옆 좌석에 몸을 실으며 말했다.

“신병 훈련소가 있는 기지로 가야 되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 군의 운명이 달린 시급한 문제야.”


아르센 뤼팽의 실종 사실에 대령은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욕설로 공군을 저주하며 길길이 날뛰었다.
또한 후속으로 전해지는 소식들은 대령을 절망시키고 있었다.
버려진 원통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그 뿐, 나머지 흔적은 알 수가 없었고 남극 주변을 동원할 수 있는 인력과 최고의 장비로 수색해봤지만 역시 아무 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DNA로 추적하려고 해도 아르센 뤼팽의 DNA 정보를 그들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최상의 유전자를 조합해 만든 탓에 유전자 정보를 기록해놓지 않으면 기존의 재료들로는 유추할 수가 없었다.
최후의 희망이었던 DNA 추적을 할 수가 없다는 그 끔찍한 사실에 대령은 폴 로스타드 중위에게 어떻게 그 과학자 놈들이 유전자 정보를 미리 기록하는 것을 까먹을 수 있냐고 성난 목소리로 윽박질러댔다.
로스타드 중위는 그저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며 뜻 모를 미소로 대답했다.
사실 기지 밖으로 나갔다면 남극의 추위에 동사했을 가능성이 컸다.
또 타임 홀 이동 과정에서 타임 슬립 입자가 미지의 작용을 해 뤼팽이 소멸해버렸을 수도 있다.
이제 아르센 뤼팽을 다시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었다.


“그 모든 인력! 투입된 그 모든 물품과 자금! 그 모든 작업! 다시는 안 해! 아니, 이제는 못 해!”

대령의 절규에 찬 울부짖음에 로스타드 중위는 흥미에 찬 시선으로 턱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흠, 그렇지만 무엇이든 간에 대체해야할 결과물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그는 버럭 역정을 내며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몰라! 젠장, 북코레이나에 정치 공작을 벌이든지 아니면 부대 내에서 연기 좀 하는 놈들 뽑아다가 적당한 영화나 한 편 찍어서 보내든지! 제기랄, 나도 모르겠어! 모르겠다구!”

검게 반짝이는 안경을 쓴 늘씬한 미녀가 성큼 다가오더니 거수경계와 함께 보고했다.

“정확히 5분 전 시공간 통신을 통해 로저 무어 어데이 대장님이 슬슬 이번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보고 싶다고 연락해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제는 불쌍할 정도인 그 대령은 손톱을 마치 갓난아이처럼 물어뜯으며 어떻게든 시간을 벌기 위한 방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었다.
로스타드 중위는 여전히 뜻을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거수경례를 한 후 예의와 기품이 철철 넘치는 동작으로 뒷걸음질했다.

“그러면 나중에 연락해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이만!”

상당히 과장된 인사를 마지막으로 그는 나가버렸다.
문을 닫는 그 순간까지 폴 로스타드 중위는 그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는 미소를 입가에 띠고 있었다.
문을 조용히 닫은 그는 손가락의 황금빛 반지를 쓰다듬으며 박장대소했다.
경박한 웃음소리가 없는 조용한 웃음이었지만 누가 봐도 그는 너무나 즐거워하고 있었다.
곧 웃음을 진정시킨 로스타드 중위는 미소와 함께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시공 연속체를 장식하는 미녀들과 보물, 그리고 빛나는 모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네!”

그는 휘파람과 함께 쾌활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입대를 담당하는 상사는 차가운 눈동자로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19세기 프랑스 군복을 걸치고 있는, 건장한 체격에 우아한 기품이 풍기는 미청년이었다.
그는 씩 웃고 있었다.
공군 장교의 추천에 의한 갑작스러운 입대였지만 군대란 것이 종종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분명 있었다.
상사는 다시 한 번 서류를 읽어보았다. 지극히 정상이었다.

“좋아, 여기에 이름을 다시 한 번 서명하게.”

그 말에 청년은 주저 없이 펜을 건네받고는 힘차게 이름을 적어나갔다.
Paul Rostad
상사는 아무리 봐도 역시 프랑스인의 이름치고는 이상하군 이라고 잠시 생각했다.

“흠, 일단 우리 군에 들어온 것을 축하하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우리 군이 조금 특별하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훈련 중에 탈락하면 곧바로 자네의 원래 고향으로 돌려보낼 테니 각오 단단히....자네, 왜 웃나?”

상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청년을 쳐다보았다.
원래 고향이란 대목에서 그 프랑스인은 정말 숨 넘어 갈 것처럼 웃어댄 것이다.
하지만 곧 상사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입은 분명 웃고 있었고 몸도 과장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의 눈동자는 그 누구보다도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음을.
상사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특이한 친구가 온 것 같군. 조금 있다가 올 것이니 잠깐만 앉아서 기다리게. 여기 담배라도 피우고 있던지 하고.”

어느새 웃음을 그친 그 청년은 상사가 건네준 담배를 정중히 받으면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윽고 상사가 나가고 그 차가운 무기질적 방 안에서 홀로 있게 된 청년은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아무래도 신이란 작자가 날 절실히 원하는 모양이야! 하하하, 생각만 해도 즐겁군.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면서 신명 나게 싸울 수 있다니! 더군다나 기나긴 시간 동안에 내가 사랑을 알려줄 수줍은 여인들과 내가 얼른 가져가 주길 기다리고 있는 보물들이 있을지 도무지 상상이 안 가는군! 하긴, 그게 더 멋지지 않겠어? 시간과 공간을 제 마음대로 넘나들면서 도둑질하는 이 나!
그 정도는 되어야 괴도 신사 아르센 뤼팽이라는 이 멋진 이름에 어울리는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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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9 단편 책도둑 냠냠 2009.09.06 0
1378 단편 기던 용4 호워프 2009.09.08 0
1377 단편 소녀시대에게10 우상희 2009.09.09 0
1376 단편 손은 낚아챈다 메이 2009.09.09 0
1375 단편 그림자 숲. 고담 2009.09.10 0
1374 단편 그녀의 이름은 라돈1 Mothman 2009.09.15 0
1373 단편 붉은 눈, 검은 혀4 박하 2009.09.17 0
1372 단편 새와 태양, 거인, 그리고 용 Mr.Jones 2009.09.26 0
1371 단편 Concept Black, Prologue LeftHander 2009.09.27 0
1370 단편 경계 (Border) 하로리 2009.09.28 0
1369 단편 우아한 생활인2 세이지 2009.10.02 0
1368 단편 소원 cena 2009.10.04 0
1367 단편 무림괴수 Mothman 2009.10.14 0
1366 단편 Gryphonman # 1 Mothman 2009.10.14 0
1365 단편 내가너를무심히바라본다 yzombie 2009.10.15 0
단편 Bon Voyage, Monsieur Lupin! Mothman 2009.10.15 0
1363 단편 나방과 유화등4 안단테 2009.10.16 0
1362 단편 엽편) 긴 밤 DOSKHARAAS 2009.10.21 0
1361 단편 승진과학 혁명14 김몽 2009.10.22 0
1360 단편 해와 달의 생사여탈권4 안단테 2009.10.2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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