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고양이] 고양이 소리

2008.03.31 23:0803.31

고양이 소리


1

소리가 처음 들려온 때는 화요일 저녁 무렵이었다. 한 달여 남은 1학기 기말고사를 슬슬 준비하느라 TV도 컴퓨터도 꺼 놓은 조용한 밤이었다. 사실 중간고사 이후로 책이라고는 처음 집어드는 것이라 집중이 되지는 않았다. 이럴 때에는 지켜보는 이가 없더라도 뭔가 핑곗거리를 만들어 변명하는 법이다. 갑자기 배가 고프다든가 누군가가 자꾸 문자를 보낸다든가 하는 일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구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물론 지켜보는 이도 없지만) 명분이 생겼다. 소리, 바로 그 소리였다.

아기 울음처럼 신경질적이고 가느다란 소리는 까만 창을 뚫고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아마 발정기의 고양이가 돌아다니는 것이리라. 최근 들어 동네에서 고양이를 좀처럼 볼 수 없었다. 보건소에서 고양이 청소라도 했는지 단체로 이사라고 갔는지, 두어 골목마다 한 번씩은 마주치던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신경 쓰인다기보다는 못 보던 고양이를 보려는 마음에 소리가 나는 방향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소리는 들릴 듯 말듯 작아지더니 곧 끊기고 말았다. 잠시 후, 내 방 쪽에서 뚜렷한 소리가 들려왔다. 재빨리 달려가 창문을 열었으나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창문 소리를 듣고 도망친 것일까. 소리는 곧 끊겼다.

다음 날,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우리 동네는 2층짜리 다가구 주택이 즐비한 전형적인 주택가이다. 주변에 변변한 번화가 하나 없는 낙후 됐다면 낙후되었고 평화롭다면 평화로운 동네이다. 이렇다 할 명소도 없으며 신문에 동 이름 한 번 난 적 없고 그렇다 할 인물이 난 것도 아닌, 밤이면 모두 어둠처럼 귀가하여 침묵처럼 잠기는 그런 평범한 동네. 가로등이 깜박이는 골목길에는 적막감만이 감돌 뿐이다. 이따금 밤의 골목을 배회하던 취객이나 불량 청소년도 보이지 않았다.

내 집 골목길 어귀에 들어섰을 때였다.

집 앞 골목은 가로등이 아예 나가있어 새까맣게 어둡다. 그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어둠이 우는 것 같은 기괴한 소리였다. 방 안에서 듣던 것과는 또 다른 소리였다. 나는 문득 멈춰 섰다. 소리는 신경 하나하나를 건드리듯 조곤조곤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러나 새까맣게 파묻힌 골목 어디에서 들려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고양이는 이 근처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집 앞을 둘러보다가 블록 전체를 한 바퀴 돌고야 말았다. 다시 집 앞에 왔을 때 소리는 멎었다. 나는 두리번거리다가 집으로 올라갔다.

또다시 소리가 들린 것은 이틀 뒤였다.

역시나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였다. 일부러 TV도 틀어놓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 틈으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소리는 안방 창밖에서 들려왔다. 나는 문을 열지 않고 소리가 뚜렷하게 들리기를 기다렸다. 확실히, 소리는 그 창밖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재빨리 문을 열었다.

소리는 사라졌고 골목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울었다면 도망가는 뒷모습이라도 눈에 띄었을 텐데 그조차도 볼 수 없었다. 나는 고개 내밀고 골목길을 둘러보다가 말 뿐이었다.

그날 밤에 나는 안방에서 잠을 자려 했다. 아마 반쯤 잠이 들 무렵이었을 것이다. 귓속을 살살 간질이듯이 소리가 들려왔다. 한 여름 모기가 귓가에서 앵앵거리는 기분, 나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나는 참을 수 없어 소리라도 질러 쫓아낼 심상으로 창문을 열었다.

“어어!”
“으앗!”

건넛집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한 남자와 나는 서로 짤막한 소리를 질렀다. 나의 집은 안방 창 쪽으로 3층짜리 작은 빌라와 마주 보고 있다. 또 나의 집은 2층이라 빌라의 2층 창과는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다.

늦은 밤이라서 그런지 빌라에서 불이 켜진 집은 그 집밖에 없었다.

“깜짝 놀랐잖아. 갑자기 창문을 열고 들이대니.”

나의 집과 빌라 사이는 창문에서 보고 있으면 서로 뺨을 때릴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놀란 것은 서로 마찬가지였다. 나는 맞불평하는 대신 남자에게 물어보았다.

“고양이 새끼 때문에 시끄러워서요. 하도 울어대는 통에. 혹시 고양이 보셨어요?”
“아니. 고양이 소리라니?”

남자는 담배를 벽에 비벼 끄며 말했다.

“뭘 잘못 들은 거 아냐?”
“네? 못 들었어요? 아무 소리도?”

남자는 날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그는 30대 정도 되어 보였다. 동그란 안경이 묘하게 회사원 같은 인상을 풍겼다.

“요 며칠 계속 울어댔는데요. 저녁마다 진짜 신경 쓰이게요.”
“난…… 밤에 들어와서 그런지 하나도 못 들었다. 이렇게 가끔 잠이 안와서 담배나 피곤 하는데도.”

이상한 일이었다. 잠을 못 잘 정도로 신경 쓰이는 소리였는데 그것을 못 들었다니. 내가 헛것을 들을 리는 없었다. 나는 남자에게 재차 물어보았으나 그는 짜증을 내며 들어가 버렸다.

다음 날, 인로에게 그 이야기를 해줬더니 역시나 관심을 보였다.

“고양이가……. 그러니까 한 번도 고양이를 본 적 없는데 소리만 들린다 이거지?”
“그래. 시끄러운 건 그렇다 치더라도 이젠 오기가 생긴다니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을 해야 맘 놓고 시험 공부할 수 있겠다.”
“그런 건 동물 보호협회에 전화하면 해결해 주긴 할 텐데.”

그런 대답은 무슨 일만 생겼다 하면 덮어놓고 의심부터 하고 보는 인로의 성격을 생각하면 의외였다.

“그 아저씨가 의심스럽지 않아? 그 정도면 누가 장난했다고 밖엔 볼 수 없는데.”
“근데 그건 증거도 없고 근거도 희박한 단순 추측일 뿐이야. 고양이는 생각보다 날렵하다고.”
“그런가? 그래도 내 집에 와서 알아볼 만하지 않아? 집도 가까우니 잠깐 와서 확인만 해주면 되잖아.”

인로는 조금 꺼림칙한 표정을 짓더니 알았다고 했다.

우리는 야자가 끝나고 10시 조금 안 되어 집에 도착했다

내 집은 반 지하 한 층, 지상으로 2층인 다가구 주택이다. 대문 안에서 1층과 내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갈라진다. 나는 인로에게 열쇠를 주어 먼저 올려 보냈다.

나는 우편함을 확인하고 집으로 올라갔다. 인로는 불을 켜지 않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불 안 켜고.”

스위치를 올리려 하자 인로가 말렸다.

“기다려 봐. 고양이 소리가 들려.”

어제의 그 소리였다. 소리는 안방 쪽에서 났다.

“이러다가 창밖을 내다보면 없단 말야. 소리도 그치고.”
“한번 내다볼게. 불 켜봐.”

내가 안방 불을 켜고 인로가 창문을 열었다. 나는 곧바로 창가로 달려갔다. 인로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둘러보더니 나에게 자리를 양보하듯이 비켜주었다. 건넛집 창에는 어제의 그 남자가 있었다.

“또 들었냐?”

오늘도 역시 담배였다.

“고양이가 있긴 있나보다.”

나는 네? 하며 골목길을 훑어보았다. 남자는 말했다.

“이번엔 나도 들었어. 냐옹냐옹 하는 소릴 말야.”
“정말요? 놈을 보진 못하고요?”
“그래. 어디서 우는 건지 여기선 안 보이더라. 고양이 소리가 어제 게 맞아?”
“네…… 고양이 우는 게 다를 게 있겠냐만…… 이게 어디서 우는 건지.”
“…….”
“이번 말고도 또 울진 않았나요?”
“몰라. 나도 방금 들어와서.”

역시 건진 건 없었다. 담배 연기를 계속 맡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나는 어영부영 인사를 하고 창을 닫았다. 인로는 옆에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뭐지, 대체? 이번엔 아저씨까지 들었다는데. 이걸…….”

인로는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우리는 마루로 나와 TV를 켜고 소파에 파묻혔다. 나는 아래층 세사는 사람이 선물해 준 매실차를 대접했다. 누가 방문하지 않으면 좀처럼 소비되지 않는 차였다. 인로는 그것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말했다.

“역시, 그 아저씨 장난인 것 같아.”
“뭐라고? 아깐 근거가 없다 했잖아.”
“음, 그러니까…….”

녀석은 생각이 기발한 면이 있긴 하지만 템포가 조금 느린 편이다.

“한번 가볼까?”
“뭐? 어딜?”

또한 난데없는 면이 없잖아 있다. 녀석은 씩 웃으며 말했다.

“고양이 잡으러.”


2

우리는 건너 빌라에 직접 가 사람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왜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느냐고 물어봤지만 인로는 확실한 것이 아니므로 좀 더 알아보고 나서 알려주겠다고 했다.

“좋아. 대신 난 보고만 있을 거다.”

이 빌라는 각 층마다 두 호씩 있으니까 총 여섯 세대가 사는 셈이다. 이 중에서 안방에서 볼 때 불이 켜져 있던 집은 1층에 한 집, 2층에도 한 집, 3층에 두 집 이렇게 네 집이었다. 인로는 먼저 3층으로 갔다. 녀석은 현관문 이곳저곳을 살피더니 한 집의 벨을 눌렀다. 한 할아버지께서 문을 열어주셨다.

“안녕하세요.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하나 여쭤볼 게 있는데요.”

인로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요 근래에 이상한 일이 있거나 수상한 사람 보신 적 있으신가요?”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런 걸 왜 묻는 거여. 이런 밤중에까지 와서.”
“조사할 게 있는데 지금 시간이 아니면 안 돼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나헌티는 죄송할 거 없는디, 이렇게 늦게 남의 집 방문하는 거 아니여. 부모님도 걱정하시고. 그래서 그러는 거여.”

집 안쪽에서는 드라마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TV보시던 중 이었나보다.

“네 알겠습니다. 다음엔 좀 일찍 다니도록 할게요. 그럼 별 일은 없으신 거죠?”
“고양이 새끼가 밖에서 울어대는 것 말고는 괜찮혀.”
“아, 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 일찍 들어가거라.”

문이 닫히려는 찰나 인로는 할아버지를 불러 세웠다.

“아 잠시만요. 혹시 이 동에서 최근 이사 나가거나 들어온 사람이 있나요?”
“아래층이 계속 비어 있다가 최근 누가 들어온 것 같은데 얼굴은 못 봤어. 언제 들온 지도 몰랐어. 근데 며칠 안 됐을 거여.”

다음은 그 옆집이었다.

옆집에서는 젊은 여자가 나왔다. 역시나 문을 여니 드라마 소리가 들려왔다.

“밤늦게 죄송합니다. 주무시고 있던 거 아니었죠?”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하나 여쭤볼 게 있는데요.”

여자는 인로와 나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조금 경계의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혹시 202호에 사는 사람을 보신 적이 있나요?”

“2층 말하는 거야?”

“네, 머리가 가운데 가르마를 탔고 조금 작은 듯한 안경을 쓰고 약간 불만스런 눈초리에 담배를 피우는 남자인데요.”

외모는 그렇다 치고 담배는 왜 집어넣었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여자는 그 말에 반응을 했다. 무언가를 들키기라도 한 듯 그의 눈은 동그래졌고 혀는 할 말을 찾지 못해 입천장을 더듬거렸다. 그러더니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 사람, 혹시…… 아니 어떻게…….”

인로는 잠시 입을 닫고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안절부절 못하더니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여 버렸다. 인로는 다시 입을 열었다.

“개인적 사정에는 더 이상 관여 안 할게요. 다만 우리는 이웃집 사람으로서 쾌적한 생활을 할 권리는 있다는 생각에 여길 찾은 겁니다.”

여자는 심경이 복잡한 듯 말이 없었다.

“모쪼록 잘 되시기를 바랄게요.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다만.”
“자, 잠간만.”

통보하듯 말을 하고 고개를 꾸벅 숙인 후 그대로 뒤돌아서는 인로를 여자는 불러 세웠다. 인로는 돌아보았다.

“저기, 그 사람, 만났니?”
“……네. 보긴 봤지요.”
“역시……. 근처에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그럼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여자는 안쓰러울 정도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혀요. 전 방금 말한 것까지밖에 몰라요. 그 남자도 얼굴만 알 뿐이에요.”
“그러니…….”

대화는 거기에서 끝났다.

도저히 알 수 없는 대화였다. 고양이 소리에 시달린 것도 나고 그 남자와 더 많이 만난 것도 대화를 한 것도 나인데 내막을 아는 것은 오히려 인로였다. 둘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인간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가능한 한의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서 어안이 벙벙한’표정을 인로에게 지어 보였다. 중요한 사실을 독식하고 있는 인로는 그에 걸맞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번 일은 가정에서 시작했지? 그 남자가 거짓말을 할지도 모른다는.”
“그렇지. 하지만 너는 처음에 근거가 부족하다고 했다가 번복했잖아.”
“그건 도중에 그 가설에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야. 남자가 거짓말을 한 게 분명해졌거든. 그래서 우리는 그걸 검증하러 다녀온 거고.”
“알았어. 내가 졌으니까 답 좀 말해줘. 대체 뭔 일인거야?”

우리는 대문에 도착했다. 인로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시간이 늦었다. 내일까지 한번 생각해봐. 내일까지도 모르겠으면 알려줄게.”
“아, 뭐야. 혼자서만 알고. 너 명박이 시켜줄 테니 좀 갈켜주라.”
“그렇게 좀 부르지 말라니까. 암튼 난 간다. 안녕.”
“야, 야!”

그러고는 녀석은 그대로 달려가 버렸다. 수수께끼는 스스로 풀라는 뜻이었다. 나는 달려가는 뒤통수를 쳐다보며 집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으로 다음날 녀석에게 직접 해설을 듣는 수모는 겪지 않았다. 주의력이 조금 필요하긴 했지만 간단한 수수께끼였으니 말이다. 내 추리를 들은 인로는 잘했다며 칭찬까지 해 주었다. 은근히 배알이 꼴리는 일이지만 녀석은 홈즈가 되기로 작정한 놈이니 관대한 이 몸이 참을 수밖에는 없다.

고양이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일은 그럭저럭 해결된 모양이다. 본래 남녀문제는 제 삼자가 끼어들면 더욱 시끄러워지는 법이다. 이런 점에서 인로는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 뒤 그 여자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인로와 함께 듣지는 못했지만 여자는 도와줘서 고맙다며 이번 일의 뒷사정을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물론 그 이야기는 내가 인로에게도 전해주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여자와 남자는 1년 정도 결혼을 전제로 사귀던 사이였다. 여자에게는 애지중지하며 기르던 고양이가 있었는데 남자는 동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다. 흔하다면 흔히 있는 문제일 텐데 그것 때문에 둘은 이따금 손발이 서로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남자는 여자가 자신보다 고양이를 더 아낀다고 생각했고 여자는 남자가 고양이를 미워한다고 여겼다고 했다. 하지만 그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서로의 취향이야 살면서 조금씩 맞춰주면 되는 거니까.

문제가 된 사건은 한 달쯤 전에 일어났다. 남자는 여자의 집, 그러니까 여자의 빌라에 연락도 없이 찾아왔다. 마침 여자는 잠간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본 남자는 안에 들어가 있기로 했다. 집 안에는 남자와 고양이 둘 뿐이었다. 그 때 여자는 주차 문제로 잠시 밖에 나갔다가 갈등이 불거져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기다리던 남자는 전화를 해보려고 휴대폰을 넣어둔 벗어놓은 겉옷 쪽으로 갔다. 그런데 그 고양이가 옷 위를 뒹굴며 털투성이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남자는 당황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무심결에 고양이를 걷어차 버렸다. 그 조그만 고양이가 사람에게 차였으니 멀쩡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양이는 다리를 쭉 뻗고 기절해 버렸다. 남자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여자와의 만남으로부터 여자가 고양이를 안고 있는 모습, 자신이 고양이를 귀찮다고 떼어내던 모습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고 한다. 이것저것 판단할 상황이 아니었다. 남자가 해야 할 일은 고양이 살해의 혐의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여자와는 끝이었다. 당장 생각나는 것은 사고를 위장하는 것이었다. 남자는 고양이를 골목 밖에 갖다놓기로 했다. 고양이는 아직 살아있었지만 다급해진 남자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문을 여니 고양이가 뛰쳐나갔다 정도의 증언이면 적당할 터였다.

그러나 그의 완전범죄 계획은 고양의의 처절한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무너져 버렸다. 돌아서서 채 몇 걸음도 떼지 않은 그가 골목길을 돌아봤을 때엔 여자가 고양이의 이름을 부르며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남자가 내려놓고 돌아선 직후, 고양이는 비틀비틀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골목길을 꺾어 들어오는 여자의 차에 치여 버린 것이다.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와 고양이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글썽이던 여자가 눈을 마주쳤을 때에는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한 생명도 그들의 사랑도.


3

“그래서, 그렇게 헤어진 거예요?”
“그래.”
“그래서 이런 치사한 짓까지 하며 괴롭힌 거고요?”
“……그래.”
“참……. 치졸하네요.”
“…….”

남자는 담배연기 사이로 말했다.

“그래”

그는 고개를 숙이고 구름 빛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아니, 내 친구 것까지 두 개네요.”

그는 말 해보라는 듯 턱을 까닥 세웠다.

“왜 그런 복수를 할 생각을 했어요? 아, 이건 친구 질문이에요. 고양이를 사랑하던 사람이 고양이를 죽게 했으면 죄책감 등으로 고양이 소리에 스트레스 받으리라는 건 제삼자가 보기엔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데요. 사건 관계자인 주변 사람이 그걸 이용해 괴롭힌다는 건 좀 이해가 안 간다네요. 혹시 다른 사정이 있나요?”

남자는 담배를 벽에 비벼 껐다. 그 부분은 담뱃재로 얼룩덜룩해져 있었다.

“어릴 때 말이야. 동네 애들 사이에 떠도는 말이 있었어. 뭐 있잖아 그거. 애들 사이에 괴담처럼 떠도는 말 말이야. 고양이를 죽이면 귀신이 되어 복수하러 온다는 얘기였거든. 그것 때문이 아니라도 고양이를 죽일 놈은 없었겠지만. 어쨌든 소현이랑 난 같은 동네에 있었어. 어릴 땐 몰랐고 지금 와서 사귀면서 알게 된 거지. 뭐, 별 뜻은 없었어.”
“흠, 그래요?”
“근데 너 말야. 그걸 어떻게 알아낸 거냐? 난 고양이 소린 누구보다 잘 낸다고 자부하는데. 이제까지 여럿 속여 봤다고.”
“아 그거요.”

이번 일을 누구 공으로 돌릴까 잠시 고민해 보았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아저씨를 두 번째 봤을 때, 그러니까 아저씨도 소리를 들었다고 거짓말했을 때요. 인로가 먼저 내다봤잖아요.”
“그렇지. 전에 고개 내민 녀석 말이지?”
“그 때 인로 얼굴 보셨죠?”
“그래.”
“인로는 그 때의 아저씨 심리를 알아챈 거죠. 아저씨가 처음에 거짓말을 한 것은 소리를 들은 것이 나 혼자라서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그랬던 것이고요, 두 번째 봤을 때에는 인로라는 증인이 있으니 못 들었다고 할 수 없던 거죠. 만일 첫 번째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들은 고양이 소리는 환청이라는 얘기잖아요. 그렇다면 아저씨와 두 번째로 만났을 때에만 들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는 것이 되지요. 환청과 실제 소리가 비슷한 시기에 나타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점에서 아저씨의 장난인 것을 확신한 거예요.”

남자는 잠시 생각했다.

“그렇군. 순간적이지만, 또 다른 놈이 소리를 들었을 텐데 내가 또 못 들었다고 하면 속 보일 거라 생각했어.”
“결과적으로는 뭘 말했어도 속마음을 들켰을 거란 거죠.”
“그러고 나서 남의 뒷사정까지 다 캐낸 거구만.”
“캐낸 건 아니죠. 추론과 검증이라고 할까요? 또 인로는 생각한 거예요. 고양이 소리를 내서 누군가를 괴롭히려면 상대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아저씨 집은 2층이고, 고양이는 보통 2층보다 위에서 울지 않으니까 남은 것은 3층이라 본 거죠. 그리고 3층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보며 아저씨랑 관계있을법한 사람을 찾아냈고요.”
“그래. 거참, 대단한 놈이네.”
“녀석은 늘상 그래요.”
“어휴, 난 이제 들어가야겠다.”
“네, 들어가세요.”
“네가 묻고 싶은 건 뭐냐?”
“네?”
“질문 두 개랬잖아.아까건 니 친구가 물어본 거고.”
“아 그거요.”

이런 걸 물어도 되는지 살짝 고민했다.

“아저씨는 왜 안 가세요?”
“내가? 내가 어딜?”
“아니, 애인이랑 헤어졌고 못된 짓까지 했는데 같은 빌라에서 사는 게 좀 그렇지 않아요?”
“아, 그게…….”

그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며칠 이 근처를 얼씬거리다가 보니 셋방이라도 있어야겠는 거야. 그런데 부동산엘 알아보니 방 빈 곳이 여기밖에 없던 거야. 매물로. 그래서 덜컥, 사버렸지. 물론 다시 내놨는데 아직 안 팔리더라고.”



<끗>

노유
댓글 1
  • No Profile
    명탐정 박인로의 사소한 모험 - in fangal.org. 설마 이게 여기 올라올 줄이야...! (누가 퍼왔다는 의미로 쓴 글은 아닙니다.)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1740 단편 귀하의 의무 임신 등급은,11 볼티 2008.02.05 0
1739 단편 고양이와 마녀3 늑대늑대 2008.02.26 0
1738 단편 대한민국 또는 나이키 운동화를 위하여1 전경남 2008.03.02 0
1737 단편 단...단... 너무나도 단 커피..3 유나고양이 2008.03.06 0
1736 단편 발걸음2 Sky導 2008.03.15 0
1735 단편 번역의 오류3 유리나무 2008.03.15 0
1734 단편 무기여 잘 있거라(본문 삭제)7 Inkholic 2008.03.17 0
1733 단편 [고양이] 고양이의 노래2 anmi- 2008.03.19 0
1732 단편 송쿠그. (아침선문답)1 라퓨탄 2008.03.19 0
1731 단편 [고양이]우리는 울지 않는다. Lm 2008.03.21 0
1730 단편 그대에게 고합니다 티아마트 2008.03.22 0
1729 단편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마지막 목소리 티아마트 2008.03.22 0
1728 단편 [고양이] 용은 우리 마음속에 정희자 2008.03.23 0
1727 단편 [고양이] 슈뢰딩거의 고양이2 김몽 2008.03.25 0
1726 단편 [고양이] 고양이 JU 2008.03.29 0
1725 단편 [고양이] 내일 꿈꿨던 세계 야키 2008.03.31 0
단편 [고양이] 고양이 소리1 노유 2008.03.31 0
1723 단편 [고양이] 콘월의 고양이 crazyjam 2008.04.01 0
1722 단편 <b>고양이 앤솔러지 작품 공모 마감합니다. </b> mirror 2008.04.02 0
1721 단편 그림, 솔직 유쾌한 이야기.1 2008.04.03 0
Prev 1 ...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110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