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불후의 명곡

2007.10.20 16:5510.20

1.
 그건 불후의 명곡이었어, 하고 잠에서 깬 그가 생각했다. 오전 8시 25분이었다. 그는 비몽사몽 간에 몸을 뒤흔들며 어떻게든 자신이 꿈에서 들은 그 음조를 기록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꿈에서 본 장면을 되새기며 기록할 곳을 찾아 몸을 움직이자 곧 밤새 쌓인 피로가 그의 몸을 짓눌러버렸다. 다시 잠이 드는 그 짧은 순간, 그는 머릿 속으로 끊임없이 음조를 흥얼거리며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피곤한 몸을 잠자리에서 일으키며 그는 살짝 한기를 느끼고는 몇시간의 잠 동안 찾아온 불분명한 꿈을 생각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물을 마시고 화장실로 향하는 동안 그는 자신이 중간에 한번 깼으며 깨기 직전 꾼 꿈 속에서 불후의 명곡을 연주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서둘러 세수를 마치고 탁자로 걸어나와 그 상투적인 말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려 애썼다.
 어느 작은 공연장인 듯 했다. 그는 피아노를 연주했다. 아니, 키보드였던 것 같다. 그의 곁에는 처음 보는 여자가 기타를 연주했다. 전자기타였을까?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는 키보드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그 멜로디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이었으며, 키보드와 기타가 만들어내는 리프도 완벽했다. 두사람의 목소리와 키보드와 기타가 만들어내는 화음은 그 누가 들어도 놀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거기까지 떠올리고 그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가 기억할 수 있는 건 그 불분명한 서술들이 전부였다. 그는 자신이 연주한 그 노래에 대해 아련한 느낌만을 기억할 뿐, 정작 그 노래의 한 구절도, 한 음도 생각나지 않았다. 한동안 머리를 감싸쥐며 어렴풋한 꿈에 집중해보았지만 그럴 수록 노래는 희미해지고 꿈 속의 몇 장면들만 깊숙히 그의 머리에 박힐 뿐이었다. 그는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다 곧 터져나온 기침에 시달렸다. 일주일 째 계속된 감기는 더 심해져만 가고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방 한구석에 놓인 키보드를 향해 다가갔다. 켜켜이 쌓인 먼지가 그의 손에 묻어났다. 다시 연주할 수 있을까? 키보드 앞 의자에 앉아 그는 조용히 되뇌었다. 오랜 일상의 피로와 이웃의 항의 속에서 그의 손은 악기를 연주하기엔 너무 굳어있었다. 그는 충동적으로 키보드의 전원을 켜고 건반을 눌렀다. 방안으로 나직히 도- 음이 울렸다.
 그 소리에 그는 알 수 없는 용기를 느꼈다. 그는 책장 위에 있는 기타 케이스도 끌어내렸다. 희뿌연 먼지가 방으로 들어선 햇살 속에서 요동쳤다. 기타를 앰프에 연결한 그는 곧 헤드폰을 찾아 키보드와 기타 앰프 양쪽에 꽂고 한동안 연주에 골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좌절한 채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몇년만에 만난 악기 위에서 손가락은 어찌할 줄 모르고 굳어 있었다. 간신히 몇개의 멜로디를 만들며 그럴듯한 연주를 해내었지만 꿈 속에서 본 불후의 명곡과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있었다. 그는 다시 한번 연주를 시도해보려했지만 곧 귀찮아져서 앰프의 전원을 내려버렸다. 꿈 속의 아련한 느낌조차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대신 티비의 전원을 올렸다. 알 수 없는 축제를 위해 몇몇 뮤지션들이 나와 노래를 하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나른한 휴일 오후였다.

2.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사람들을 만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날 이후로 그에게는 저녁에 몇시간씩 악기를 연주하는 일정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꿈 속에서 본 불후의 명곡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그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고, 그것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날들이 더해갈 수록 그것에 대한 그의 집착은 심해져갔다. 밑도 끝도 없는 상실감이 그의 균열된 일상을 가득 메웠다.
 그는 그것에대해 잊어버리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불후의 명곡이 남긴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을 찾아 무엇이든 시도해보았다. 한동안 멀리했던 영화나 음악회를 자주 관람했지만 그것이 진행되는 잠시 동안만 효과가 있었을 뿐이고, 그나마도 점점 소용이 없어졌다. 물건들을 수집하고 그것에 애착을 가져보기로하고 그는 돈을 버는 족족 장난감과 책과 음반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그것도 반복될 수록 물건들을 결제하는 순간의 쾌락만이 있을 뿐 물건 자체에 대한 집착은 약해져만갔다. 방 한가득 쌓인 수집품들을 바라보며 불후의 명곡에 대한 단서를 찾아보는 것이 그의 또다른 일과가 되었을 뿐이다.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도 어긋나기만 했다. 수없이 술자리를 가져보고 연애도 어느 때보다 자주 했지만, 어느 누구와의 대화도 그에게 불후의 명곡이 남긴 것과 같은 짜릿함이나 깊이를 주지 못했다. 사람들 또한 멍하니 무언가를 생각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그에게 무심해져만 갔다.
 그러는 동안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악기를 연주했고, 어느 정도 실력이 늘어갔으며 작곡에 대한 감각도 다시 살아난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불후의 명곡을 들은 이후엔 그 어느 연주도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것은 젊은 시절 소위 거장이라는 사람들의 노래를 들었을 때와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들은 분명한 실체가 있는 존재들이었으며, 누구에게든 인정을 받는 존재였다. 언젠가는 그들을 뛰어넘는 또 다른 거장들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불후의 명곡은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불후의 명곡이 그 어느 것도 미칠 수 없는 절대적이고 완벽한 것이란 예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블로그에 만든 곡들을 올리고, 사람들이 어느 정도 찬사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에겐 더 이상 명예욕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자신이 어떤 대단한 것을 이루든 불후의 명곡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그것을 경험한 이상 그는 사람들의 어떤 평가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블로그를 삭제하며 그가 중얼거렸다.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도 없어. 사람들은 몰라, 사람들은 몰라…….
 곧 그는 자신이 자주 다니던 인터넷 게시판들에 익명으로 자신의 경험을 올렸다. 가벼운 농담들과 끄덕거리며 신기해하는 답글들이 있었고, 현재 그의 상태에 대한 진지한 조언도 있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간혹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답글도 있었지만 그는 그 가벼운 태도들에 쉽사리 동의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런 경험을 '종종'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는 불후의 명곡이란 게 정말 그런 거였으면 좋겠다고 내뱉으며 '종종'을 몇번이고 드래그했다.
 게시판들을 돌아다니면서 그는 최면치료의 효과에 대한 글 하나를 유심히 읽었다. 다음날 그는 검색해본 결과 제일 믿을만하다고 생각한 최면술사를 찾아갔다. 살면서 그런 경험을 하리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그 효과에 대해 믿음을 가져본 적도 없는 그는 최면에 쉽사리 빠지지 못했다. 간신히 그에 대한 최면 시술이 끝난 뒤에 최면술사는 그에게 그가 가진 컴플렉스와 트라우마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단 한번 경험한, 완벽한 음악의 순간'을 물었지만 최면술사는 잠자코 그를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다. 그는 기억못하는 어린 시절들과 꿈들, 심지어 전생들까지도 얘기했지만 흐릿하게 사라져버린 어느날 꿈의 한순간은 다시 되살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 작고 편안한 방에서 그는 과거의 모든 기억과 현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그 순간의 재경험 뿐이리라는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최면술을 받은 이후로 그는 한동안 월차를 내며 집안에 틀어박혔다. 그는 자신이 쓸데없는 것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억지로 지우려하면 할수록 그 순간에 대한 갈망은 강하게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불후의 명곡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도록 놔두었고, 그 순간이 다시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잠이 들었다.
 며칠이 지나자 그는 그 꿈에 대한 기억이 명확하게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도리어 그 꿈이 더 현란하게 포장돼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어쩌면 그 꿈에 대한 기억 자체가 환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그의 기침은 더 심해져갔다. 병원에선 그에게 폐에 심각한 이상이 생겼다는 통보를 내렸다. 그는 일을 그만두었다.

3.
 몇통의 메일이 왔다. 그가 게시판들에 글을 남기고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있었기에 답글이 아닌 메일로 그와 같은 경험을 했음을 얘기하는 메일들이었다. 그는 용기를 얻고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더 끌어모았고, 작은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그들과 모임을 가지면서 그는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작은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분명 기억하지 못하는 꿈들은 무수하고, 그 꿈에서 만족스러웠던 어느 요소가 기억나지 않을 때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스스로를 충족시킬 수 있는 꿈은, 일생에 단 한번 있을 뿐이다.
 어떤 이에게 그것은 워드창에 쓰인 글이었으며, 어떤 이에게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던 정원의 배치였고, 어떤 이에게는 피겨 스케이팅의 동작이었다. 그들은 그 꿈 속의 상황을 다시 경험해보기 위해 무수한 시도를 했다. 자각몽을 연습하기도 하고, 꿈에서 본 것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보려고도 했다. 그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그 또한 꿈에서 본 것 같은 공연장을 찾아다녔고, 함께 연주했던 여인을 만나려고 노력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별 소용없었다. 무엇보다 문제였던 것은 자신에게 남아있는 이미지 자체가 명확한 것이 아니며 기억해낼 때마다 디테일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공연장과 뮤지션들의 모임을 전전하던 그의 행보는 그에게 '그 바닥'에서의 인지도를 높여주긴 했지만 불후의 명곡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그에게 분명한 것은 그 충만했던 '느낌' 뿐이었다. 어떤 경험을 했건 그 느낌에 대해선 모든 사람들이 동의했다. 그 느낌은 이전과 이후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기에, 다시 같은 상황이 온다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모임이 어느 정도 커지자,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꿈이 아닌 현실에서 그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었다. 단 한번 완벽한 시를 쓴 사람, 단 한번 완벽한 교감을 경험한 사람, 단 한번 완벽한 음식을 맛본 사람, 단 한번…….
 경험자들과의 만남이 더해가면서 그의 가설은 분명해졌다. 불완전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우주에선 단 한순간 인간을 완벽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순간이 있다. 그 매개체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녹슨 못이건, 낡은 꿈이건, 잊혀진 사람이건. 문제는 그 순간을 인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 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유일한 순간을 채 인지하지 못한 채 생을 마친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희미하게나마 인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잠시나마 그 인간의 완벽한 우주를 경험한 사람들은, 마치 신의 신성한 이름을 함부로 내뱉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끝없는 저주에 빠져든다. 생의 나머지 부분이 그 불후의 순간의 찬란한 광휘에 빛바래버리는 것이다. 그들에게 남은 생이란, 카인이 만난 놋의 사막처럼 황량하고 적막한 곳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그는 폐의 병이 심해졌고, 결국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다. 병원의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의 이론이 완성될 순간이 곧 찾아오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불가해한 죽음의 벽 앞에 다다른 순간, 인간은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동원해 다시 한번 그 유일한 순간을 불러올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병실 가득 울려퍼지는 불후의 명곡을 들으며 그는 자신의 이론에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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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랑은 별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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