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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당신도 아는 이야기

2006.01.28 21:0901.28

과학실의 유령

유우의 말에 따르면 유령이 나왔다고 한다. 나는 옆을 흘낏 본 후 설마, 하고 대답했다.
그 때 에이는 언제나 그렇듯 속내를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다가 유령이 나왔다는데, 하며 유우의 말을 다시 전했다. 그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시선은 좀처럼 나를 향하지 않는다.
‘내가 아니야.’
에이의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지 않는지 살핀다. 점심시간. 유우가 교실을 나간 후 우리, 즉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 학교에 이렇게 유령이 많은 줄은 몰랐어.” 그러자 에이는 비로소 고개를 돌렸다. 지금 책상 위에 앉아서 배탈이라도 난 것처럼 인상을 쓰고 있는 에이야말로 그 유령 동지이다. 이렇게 말해야 하는 나도 석연치 않다.
에이는 2주 전에 죽었다.
학교 옥상에서 떨어졌다.
미리 말해두지만 내가 죽인 것이 아니다.
확실히 나는 에이 덕분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래 만년 2등에 머물러 있었다. 자각하지 못한 채 미워했는지도 모른다. 에이가 내 방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무의식중에 그렇게 생각했다. 설마, 내가 죽였던가? 그러나 곧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에이가 떨어지는 장면을 창문으로 보았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당사자인 에이도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이 상황을 적당히 얼버무리고 있다.
영문을 모르겠다고 재삼 확인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어느새 나를 외면하고 있는 에이에게 “진짜일까, 유령,” 하고 물었다. 그는 모르는 척 했다.

모오는 그게 진짜라고 말했다. 에이가 먼저 무슨 소리야, 하고 넌더리를 냈기 때문에 나는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모오는 어정쩡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를 보고 싱글싱글 웃었다.
“정말이에요. 제가 봤거든요.”
나는 에이를 힐끗 쳐다보고 유령 이야기라는 것이 우선 뭐냐고 물었다. 유우가 내키는 대로 늘어놓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평범한 사건도 괴담이 되기 때문이다. 모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말을 만들 때, 그는 자주 하늘을 바라본다.
그의 이야기는 이렇다.
일주일 전부터 과학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밤에. 찬장을 여는 소리. 유리병이 부딪히는 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 물이 흐르는 소리. 상식적, 통상적으로 추론해보았을 때, 누군가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야간자율학습 후 뒤늦게 집으로 돌아가던 김○○(ㅎ고교 2)은 과학실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이상하게 생각해,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서는 하얀 가운을 입은 희끄무레한 물체가, 무언가 실험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그때 과학실 문은 밖에서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고 한다.
“불가능범죄로군.”
“아니에요.”
당시 김 군은 시험을 앞두고 이틀 째 밤을 새웠기 때문에 눈앞에서 일어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밤에 과학실에서 실험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다음 날 아침의 일이었다. 오싹했다. 그 날, 그러니까 사건 다음날, 그는 일부러 학교 건물을 반 바퀴 돌아 과학실 반대편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왔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동안, 누가 보고 있는 듯 뒤통수가 간질거려서 견딜 수 없었다. 김 군은 결국 그 자리에 멈춰서 과학실을 돌아보았다. 캄캄하게 어두워진 다른 교실과 달리 과학실에서만은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김 군은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걸어갔다. 한 발, 두 발. 창문에, 달라붙은 하얀 젤리 같은 것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수 초 동안 그 정체불명의 물체와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교문을 향해 뛰었다.
말을 마치고 모오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나는 좀 질려서 물었다.
“그 김 군이 너야?”
“전 김 씨 아닌데요.”
모오는 눈을 꿈벅이다가 제가 본 건 개구리에요, 하고 대답했다. 개구리, 하고 이번에도 에이가 먼저 반응한다. 관심없는 얼굴을 하고서 모조리 듣고 있는 것이다. 그를 대신하여 나도 개구리, 하고 내뱉었다.
“네. 개구리요. 우리 반이 과학실 청소 담당이거든요. 저번 주가 제 차례였는데, 본 거예요. 이렇게, 배가 갈라진 채로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었어요.”
모오는 사지를 뻗어 개구리 흉내를 냈다.
“자, 밤에 누가 해부라도 했다?”
“하지만 지금 중학생들은 해부 안 한대요.”
어때요, 하고 물어보듯 모오는 나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 보조개가 들어가는구나, 하고 나는 그 자리와 아무 상관없는 생각을 했다.

내가 소설을 읽는 동안 에이는 서랍장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럴 때면 정말로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나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에이의 하얀 얼굴을 보고 놀라기를 반복한다. 이 애가 정말 유령이라고 실감한다.
역시 책은 그만 읽기로 한다.
의자를 회전시키자, 에이도 나에게 시선을 옮긴다.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생각이 먼저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오는 원래 그래,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좋아해.”
에이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무 빨리 대답한 탓인지 아니면 그 내용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화제를 돌려 개구리를 해부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놀라면서도 계속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한다.
모오는 지금 개구리 해부가 금지된 이유를 환경 문제에서 찾았지만, 우리가 중학생일 때도 환경을 위해, 산천에 넘치는 황소개구리를 해부했다. 실제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그런 소문이 있었다.
“했지. 난 기록이었어.”
‘아아.’
같은 질문을 눈짓으로 되묻자 그는 못 본 척했다. 그래도 끈질기게 쳐다보니 기억 안 나, 하고 내뺀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추궁하지 않기로 했다. 주방에서 물을 마신 누군가가 내 방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동생이 누군가와 이야기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본다. 나는 노래를 하고 있다고 둘러댔다. 유령이 된 후 늘 불쾌한 표정만 짓고 있던 에이가 웬일인지 웃었다.

그리고 며칠 후의 일이다. 야간자율학습 시간, 나는 소설을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꿈은 소설의 클라이맥스를 반복해서 보여주었고, 문 뒤에 서 있던 나는 꿈속임에도 불구하고 하품을 했다.
귓등으로 바람이 분다.
숨을 죽이면 바람 소리가 에이의 목소리로 변해 일어나, 하고 속삭인다.
“잠은 집에 가서 자.”
눈을 뜨니 앞자리의 ...가 벌써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나는 그에게 먼저 가라고 말하고 기지개를 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교실에는 우리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눌려서 흐려진 눈으로 에이와 에이 뒤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검은 유리 위에는 나의 모습만이 떠올라 있었다.
“......”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 나에게 에이가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나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가방을 싸고 교실에 자물쇠를 걸었을 때는 앞서 나간 아이들의 발소리도 사라져 있었다. 우리는 천천히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콘크리트 바닥을 스치는 자신의 발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렸다.
두 번째 교실을 지났을 때, 에이가 문득 입을 연다.
알고 있어? 과학실에서 사람이 죽은 적이 있어.
나는 그를 바라본다. 에이는 앞을 본 채 이야기를 계속했다.
‘언제인지는 몰라. 내세울 건 유서 밖에 없는 학교니까 수십 년 전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우리가 입학하기 바로 전에 일어난 일일지도 몰라. 실험을 아주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어. 교실을 옮길 때마다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는 너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 애는 과학실 가는 것을 학교 오는 낙으로 삼고 있었어.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방학식을 하는 날이야. 아이들이 모두 학교를 빠져나간 시각, 그 애는 과학실에 있었어. 한 달 동안은 못 올 거라고 생각하니 집에 가기가 아쉬웠던 거야. 그 애는 실험대 사이를 오가며 플라스크를 꺼내고 비커를 늘어세워 보며 시간을 보냈어. 창살 사이로 들어오던 햇살은 사라지고 어느새 캄캄한 밤이 되어버리기까지. 뒤늦게 정신이 들어 얼른 실험도구를 챙겨넣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당겼을 때, 문은 이미 바깥쪽에서 잠겨버린 후였어.
나갈 수 없다.
그 애는 문을 흔들며 비명을 질렀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어.
처음으로 과학실이 무섭다고 생각했어.
40일 후.
시체는 방학이 끝난 후에 과학실에서 발견되었어. 다른 외상은 없었지만, 손이, 그래, 손톱이 엉망으로 망가져 있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창살을 뜯으려고 한 걸까, 아니면 문을 부숴보려고 한 걸까. 그 아이의 노트에는 홀로 남겨져 죽어가는 공포가 메모처럼 적혀 있었어. 굶주림, 어둠, 추위. 지금이라도 걸어올 것 같은 인체 모형.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문틈으로 보이는......’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플래시 빛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저도 모르게 숨으려다가 그것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다시 노란 빛이 비춰지고, 경비가 싫은 소리를 하며 운동장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어느새 1층에 도착해 있었다. 에이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들었지?”
에이는 내 물음에 곧장 대답하지 않고 불이 꺼진 복도 끝을 응시하다가, 이윽고 너는 시험공부도 하지 않았고 잠도 충분히 잤으니까 잘못 들을 리는 없겠지, 하고 말했다. 다시 그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여는 것 같기도 하고 바닥을 밟는 것 같기도 하고 칠판에 글씨를 쓰는 것 같기도 한,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소리였다.
정문으로 걸어가던 우리는 이 소리를 듣고 걸음을 돌렸다. 지금은 과학실이 있는 복도 앞에 서 있다.
이곳은 다른 복도와 다르다. 우선, 바닥이 나무로 되어 있고 높이도 한 계단 정도 낮다. 게다가 전등도 달려 있지 않다. 평소 나는 이것을 예산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복도를 50m 정도 걸어간 후 오른쪽으로 돌아, 다시 30m 정도 가면 중학교 건물이 나온다. 그 사이에 실습실과 과학실이 있고, 모형인지 실물인지 액취 표본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이것은 악취미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복도를 내려가자 마루가 길게 울었다. 정갈하게 배가 열린 토끼의 눈이, 어떤 생선의 부레 너머로 보였다. 나는 벽을 그만보기로 하고 과학실을 향해 걸었다. 에이는 아마 뒤를 따라오고 있을 테지만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과학실 문에는 번호형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번호를 알고 있느냐고 에이가 묻는다. 대답하는 대신 자물쇠의 열림버튼을 누르고 번호판을 움직여보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저리기 시작할 무렵 용수철이 튀어올랐다.

문을 민다.

개구리 울음 소리가 들렸다.

“난 아무래도 빈혈인 것 같아.”
이 때 에이가 나를 차거나 때리지 않은 것은 단지 몸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반쯤 열린 문을 끝까지 밀었다. 과학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두웠고, 기묘한 기척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느냐고 에이는 힐문한다. 그런 식으로 말해도 안 보이는 것은 안 보인다고 대꾸하니, 그렇게 말하면 저 애가 불쌍하다고 말한다. 나는 그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숨을 들이마셨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곳에 남자아이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는 열서너 살. 얼룩진 실험용 가운을 입고 한 손에는 플라스크를, 한 손에는 메스를 들고 서 있다.
아무래도 겁에 질린 것 같다.
“어, 저―”
나는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 아이는 어깨를 부르르 떨며 다, 다, 다, 당신들은 누구세요,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런 말을 들게 될 줄이야. 이때만큼은 에이도 깜짝 놀란 것 같았다.

나는 과학실의 작은 의자에 무릎을 모으고 앉았다. 땀이 식은 목줄기로 차가운 공기가 달라붙는다. 겁먹은 유령을 달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입을 열 때마다 뇌세포가 백 개씩 죽는 기분을 느끼며 나는 말을 이었다.
“이제 우리가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겠지?”
남자애 유령은 쭈뼛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고 나는 메스를 건네받는다. 이곳에서 누군가 죽는다면 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에이는 메스를 건네받는 내 손을 뚫어지게 응시하였다.
그리고 입을 연다.
‘이제 네 이야기를 해 봐.’
남자애 유령이 딸꾹질을 하듯 어깨를 들썩이며 에이를 바라본다. 저, 저, 저, 저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기 위해 우리는 얼마간 인내해야 했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몹시 편안하고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만두기는커녕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면 무섭고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말하자면, 플라스크나 실험관과 같은 존재였다. 과학실과 떨어져서는 의미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꾸벅꾸벅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하지만 며칠 전부터 시작한 개구리 실험은 잘 되지 않았어.”
내 말을 들은 그는 더욱 몸을 움츠렸다.
‘혼자니까. 갑자기 튀어올라서 찔러버렸어요.’
“처음부터 안 하면 될 텐데.”
‘하고 싶은 걸요.’
남자애 유령과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어쩐지 초조해져 자기도 모르는 새 손가락으로 실험대를 두들기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 챈 남자애 유령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서 나중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입을 다물어버린 것 같다.
그래도 어쩐지 사방이 소란스럽다.
그때 가만히 듣고만 있던 에이가, 내 입장에서 보자면 몹시도 수상쩍게,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아이 말이 맞아. 하고 싶은 건 하는 게 좋아. 정신 건강에도 그게 좋지. 특히 유령은 정신이 불량해지면 악질이 되어 버린다고.’
죽은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은 그런 사려 때문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나는 점점 수상한 기분이 들었다. 에이는 나의 시선을 무시한 채 남자애 유령을 향해 말했다.
‘하자, 도와줄게.’

개구리 해부에 관한 실험 보고서는 창문 아래에 있는 붙박이식 수납장에 들어 있었다. 참고로 그 안에는 몇 년 동안 방치된 보고서가 잔뜩 쌓여 있었는데, 고등학교와 중학교가 공동으로 쓰는 과학실인 만큼 그 양은 무궁무진이라 할만 했다. 내가 해부기와 해부접시와 광구병 그리고 해부침을 꺼내오는 사이 남자애 유령은 어딘가에서 약병을 들고왔다.
실험 계획서에 따르면, 클로로포름이다.
에이가 수조 안을 들여다보는 동안, 개구리는 한 번 울었다.
그 개구리의 출처를, 나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우리, 나와 에이 그리고 남자애 유령은 실험대 앞에 섰다. 불은 켜지 않았다. 대신 실험용 스탠드가 검은 실험대를 비추고 있다. 나는 만일을 위해 커튼을 다시 점검했다.
“이제 된 거야?”
준비물을 살피던 에이는 마지막으로 나를 보았다.
‘그러다가 개구리가 튀어오르기라도 하면 교복이 더러워질 텐데.’
“난 10m 뒤에 있을 거니까 상관없어.”
에이가 예의 불길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도와주기로 해놓고서는 무슨 소리냐며 남자애 유령에게 동의를 구한다. 나는 뒤로 물러섰다.
“싫어.”
‘이제 와서?’
“도와준다고 한 건 너잖아.”
‘실수할 거야. 아직 물건을 잡아본 적이 없거든.’
“실수는 나도 할 거야. 그때 기록을 맡은 이유가 뭐라고......”
분개해서 쏘아붙이던 나는 유령의 마음을 읽었다. 원한이 깊은 것이 유령인가. 중학교 해부 시간 때 에이가 무엇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역시 싫어. 집에 가야겠어.”
내가 에이의 말을 끊고 뒤로 돌아섰을 때였다. 돌연 아무런 예조 없이 의자가 넘어지며 걸음을 막았다. 실험대 위에 놓여 있던 메스가 빙그르르 회전한다.
‘가지......않으실 거죠?’

나는 의자를 세우며 가운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남자애 유령을 실험 도구처럼 생각한 것은 아무래도 실수였던 모양이다. 그는 차라리 과학실 자체인 것 같다. 냄새나는 가운을 입고 클로로포름에 취한 개구리를 꺼내는 나에게, 에이는 싱글거리며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말했다.
나는 입을 다문 채 해부핀으로 개구리를 고정하기 시작했다. 옆에서는 남자애 유령이 실험 보고서를 소리내어 읽는다.
‘실험 목표, 하나, 개구리의 구조를 이해한다. 둘, 개구리의 생활양식을 이해한다. 셋, 양서류의 특징을 이해한다.
실험 방법, 첫째, 마취 및 고정. 광구병 바닥에 탈지면을 깔고 클로로포름 20ML를 넣은 후 개구리를 집어넣고 뚜껑을 닫는다. 해부 도중 깨어나지 않도록 충분히 마취한다. 하지만 해부 중에 깨어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헤에, 그대로 뛰어다닌다고요? 내장을 끌면서? 그거 흥미가 생기는데.
왜 그러세요? 침이 잘 안 들어가나요?
오오, 되었다.
둘째, 절개. 살갗을 핀셋으로 잡고 메스 및 가위로 자른다. 내장 기관이 상하지 않도록 배근육을 절단한다. 이건 제가 하겠습니다. 피부를 자르면......핀으로 고정해주세요. 우선 항문 가까이서 정중앙으로 턱 아래까지, 그리고 네 다리 쪽으로 절단하여 펼친다. 아. 정말이다. 또 껍질이 있다. 이것도 똑같이 자르면 되는 거예요.’
이윽고 복벽이 갈라지며 번들거리는 내장이 드러난다.
‘이것 보세요. 아직 심장이 뛰고 있어요. 아아, 이렇게 배를 갈랐는데 살아있구나. 이렇게, 움직이네요.
......
셋째, 심장을 관찰하고, 호흡 기관을 확인한다. 여기 양 옆으로 쭈그러든 것이 폐에요. 잡아당겨 볼까. 개구리는 폐로도 숨을 쉬고 피부로도 숨을 쉬어서 양서류라고 하는 거래요.’
에이가 양서란 양쪽에서 살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아아, 부럽다. 보자보자, 다음은 소화 기관. 핀셋으로 입을 벌려주세요. 혀를 빼겠습니다. 길군요. 이걸로 파리를 잡아먹는다고요. 맞죠? 이제 위를 절단합니다. 슬쩍 들어올려주세요. 음, 음음. 뭐가 있긴 한데 뭔지는 모르겠네요. 뭘까, 이 까만 덩어리는.’
위를 간 밑으로 집어넣고 남자애 유령은 개구리의 구조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실험 보고서를 보고 다시 실험대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안절부절 못하며 뒤쪽 실험대에 앉아 있는 에이를 돌아보았다.
‘이게 뭐람. 위장 아래에 있는데, 보고서에는 없어요. 노란 게 오밀조밀한 게-’
그의 성화에 못 이겨 에이가 이쪽으로 다가와 개구리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억양이 부족한 말투로 대답했다.
‘알인 것 같아.’
하아, 하고 맥없는 대답을 하며 남자애 유령이 메스로 노란 알갱이들을 건들었다. 꾸물거리는 지방질을 보며 나는 틀림없이 구토를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구역질은 목에 걸린 채 넘어오지 않았다.

아직 심장이 뛰고 있는 개구리를 우리는 화단에 묻었다. 정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기 때문에, 복도에 있는 철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나는 갱지에 싸인 개구리를 내려놓고 돌을 집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몇 시일까. 강렬한 달빛이 교정에 내리쪼인다. 경비실에는 불이 켜 있는 것 같지만 이런 시간에 누군가 화단을 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몸이 부드러우니까 곧 썩을 거라고 에이는 말했다. 잘 생각해보면 문제의 발단은 그임으로 별로 위안을 받을 것도 없다.
남자애 유령은 운동장을 향해 서 있다.
과학실에 있을 때보다 투명해진 느낌이 든다.
나는 개구리를 안치하고 일어섰다. 적어도 올해 겨울이 지나기까지는 아무도 화단을 파지 않을 것이다. 설령 발견된다고 하여도 나에게는 아무런 위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다. 남자애 유령은 뒤를 돌아서서 내게 인사를 했다. 나는 사양한다. 애교있는 웃음을 지으며 그가 말했다.
‘혈액형 실험을 할 때도 꼭 도와주세요.’
에이가 유쾌하게 웃는다.

우리는 담을 넘어 학교와 맞닿아 있는 빌라로 나왔다. 집에 도착한 것은 세 시가 다 되었을 무렵이었다. 독서실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독서실에 갔다는 것부터 의심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홉 시까지 잤다. 그리고 학교에는 병원을 갔다온다고 거짓말을 하고 한숨 더 자서, 2교시가 끝났을 때야 등교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내가 정말 아파보였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고 나조차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유우는 늦잠을 잤으면 지각을 해야지, 자식이, 너는 너무 비겁해, 하고 말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에 거의 신경쓰지 않는다. 점심시간, 복도에서 마주친 모오는 드물게 불쾌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단체 기합을 받았기 때문이다.
“과학실 자물쇠가 없어졌다고요, 청소하는 애들을 다 불러내서 혼내잖아요. 네? 물론 그 안에 범인은 없죠.”
이런 가난한 학교에, 그것도 과학실에 물건을 훔치러 오는 사람이 있다는 발상 자체가 비정상이라며 모오는 불만을 터뜨렸다. 그럼 자물쇠는 어떻게 된 것 같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우유를 사준 후 얼마 동안 푸념을 받아주고 헤어졌다. 그 조악한 자물쇠는 나의 교복 상의 안에 있다. 열림버튼을 매만지며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 생각했지만,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은 명백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운동장을 둘러싸고 있는 보도를 걷다가 하수구 위에 멈춰 서서 허리를 숙였다.
중학생들이 과학실에서 5교시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창살 너머로 그 장면을 지켜보며 그때까지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에이. 그 애는 손가락이 깨끗했어.”
그는 모르는 체 한다. 커튼을 치던 여자애와 눈이 마주쳐서 고개를 돌리지도, 그대로 보고 있지도 못하고 있을 때 마침 예비종이 울렸기 때문에 나는 어색하게 그 자리를 떴다. 5층을 올라가는 것은 여전히 힘이 들었다. 그 후 두 시간 동안 언뜻언뜻 꿈을 꾸며 나는 이곳과 저곳을 헤매었다.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나는 지금이 국어 시간이라는 것을 알 것 같다. 짝이 다리를 치기에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눈을 떴다. 어라, 선생님. 오늘은 화요일의 넥타이를 매고 계시네.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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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단편 지구가 진다.3 외계인- 2006.02.23 0
1946 단편 내가 본건 고양이었을까, 고양이의 꿈이었을까?6 rubyan 2006.02.24 0
1945 단편 의혹1 나길글길 2006.02.27 0
1944 단편 탄피물고기 미루 2006.03.05 0
1943 단편 죽음이란 소재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1 mihabun 2006.03.09 0
1942 단편 티티카카의 눈물2 제이 2006.03.16 0
1941 단편 [뱀파이어] Becoming2 sky5070@hanmail.n박 2006.03.2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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