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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구렁이

2006.01.10 22:4101.10



나의 용모는 쥐가 고양이를 피해다니 듯, 개구리가 뱀을 피해다니 듯, 모든 아이들의 나를 피할 정도로 추악한 목불인견 이였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 까지 혼자였다. 모든 아이들은 근처에 조차 오려하지 않았다. 간혹 심술 굳은 아이들은 돌을 던지고 도망갔다. 얼굴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다. 집에 와서 어머니께 고하면 무조건 내가 나쁜 짓을 해서 맞았다고 밀어 붙였다. 가만히 있을 때 누가 돌이라도 던지면, 그날은 두 번 혼나는 날 이였다.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말하셨다. 애새끼가 저래가지고 결혼이나 하겠냐고, 해봐야 추악한 목불인견 간신히 얻어서 하겠지. 물론 어머니께만 들은 말이 아니다. 대다수가 그랬고, 그러지 않은 자들도 눈초리를 보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나의 운명이 바뀌는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고등학교 때는 혼자는 아니었지만, 친구는 많지 않았다. 어느 날 이였다.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새하얗고 갸름한 턱선, 맑고 깨끗한 눈동자, 오똑 솟은 콧날, 작고 도톰한 입술 검은 긴 생머리가 찰랑거렸고, 잘 빠진 몸매와 다리의 각선미의 여학생 이였다. 그 여학생은 나와 모든 남학생들을 설레이게 만들었다. 심지어 젊은 선생님이시건 나이 드신 선생님이시건 그 여학생의 매력에 빠저 들 정도였다. 어떤 우연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나에게 의도적으로 접근 했고, 결국 결혼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아기 둘과 그녀, 그리고 나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미던 어느 날 이였다. 나는 딸과 아들에게 선물이라도 사줄 요량으로 지나다 장난감 가게로 들어갔다. 장난감 가게에서 귀엽게 디자인된 뱀 인형이 눈을 끌었다. 어떤 동물이든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뱀 인형을 샀다. 가게 주인에게 선물할거라고 하니까, 친절하게도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줬다.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드르륵 열렸다. 아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은 선물 상자를 본 듯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나는 살짝 웃었다.
「아빠가 그거 누구 꺼야?」
「우리 귀여운 아들 꺼지~!」
아들은 방으로 달려가며 크게 소리쳤다. 어린데도 불구하고 목소리는 귀를 찌렁 찌렁 하게 울렸다.
「엄마! 아빠가 선물 사왔어~!」
그러자 그녀와 딸이 방안에서 나왔다. 그녀는 약간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나를 나무랐다.
「음, 굳이 사올 필요 없는데,」
하지만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아들에게 선물상자를 넘겨주고는 신문을 펴들었다. 아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려는 생각에 신문을 접고 아들을 보았다. 아들은 포장지의 틈을 긁으며 마구 마구 뜯어냈다. 포장지는 걸레처럼 누더기가 되었다. 아들은 구렁이 인형을 꺼내들었다. 갑자기 창백한 표정을 지었다. 「왜 맘에 안드니?」내가 묻자 뱀 인형을 거실 탁자에 놓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딸도 같은 행동을 하였다. 아내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관광지에서 구입하는 징그럽게 생긴 천 원짜리 또아리 튼 뱀은 잘 가지고 노는데 여자아이들도 잘 가지고 놀만큼 디자인된 뱀 인형을 무서워하다니 이상했다. 그렇다고 환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내 방 침대 언저리에 올려놓고 잠이 들었다.

뭔가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구렁이였다. 으악! 나는 순간적인 반사 신경으로 구렁이를 쳐내었다. 발이 단 곳은 다름 아닌 그녀의 볼이다. 그녀가 말했다.
「아 왜 때려!」
「미안, 악몽을 꾸다 일어나, 잘못 봤어」
그녀는 싱긋 웃었다.
「괜찮아?」
「어.」
「지금 4시야 얼른 자! 그래야 일 잘하지」
뭔가가 나를 노리고 있었다. 날카로운 세모꼴의 눈이다. 나는 몸을 움추렸다. 세모꼴의 눈은 나에게 튀어나왔다. 거대한 뱀! 구렁이다.
「으아악!」
구렁이는 온데간데없고, 인형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어디 아픈 거 아니냐 물었다. 졸려서 헛것을 본 거겠지, 헛것 이라 기에는 너무나 선명했다. 아침밥을 주섬주섬 먹은 채, 회사로 갔다. 회사에서는 컴퓨터 작업에서는 계속 오타가 나고, 사람과 대면에서는 말을 더듬었다. 점심시간과 회식시간에는 계속 밥풀을 흘렸고, 입안에서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

피곤함과 나른함 속에서 퇴근했다. 아들은 뱀 인형 일은 잊은 채 나를 반갑게 맞았다. 아들은 계속 놀아달라고 했다.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이기지 못하고 아들에게 말했다.
「비켜! 아빠 어지러우니까!」
아들은 시무룩해진 얼굴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다가왔다.
「잘못을 한건도 아닌데 심했어」
「몰라, 너무 피곤해서 나도 모르게.」
「그럼 샤워하고 일찍 자는게 좋겠다.」
샤워기에서 뜨끈 뜨끈한 물이 콸콸 쏟아졌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와 거울을 뿌옇게 만들었다. 뜨끈 뜨근한 물이 몸에 달 때면 송글송글 맺혔던 땀이 흘러내려 피로가 절로 풀렸다. 떼를 밀고 비누질을 하고 나는 몸을 물에 헹구기 위해 잠가 뒀던 수도꼭지를 풀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은 어느새 붉은 피가 되어 있었다. 붉은 피는 내 몸을 감싸않았다.
「앗!」
비명을 지르며 눈을 두어 번 깜박였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단, 샤워기는 깨진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아내가 그걸 보고는 자기가 치울테니 얼른 들어가 자라고 했다. 아내의 호의에 미안하면서도 친절한 배려에 고마움을 느꼈다. 침대 언저리에는 뱀 인형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뭔가가 나를 조이고 있었다. 굵고 긴 존재였다. 숨이 턱턱 막혀 온다. 웨웨웩! 구토가 나오며 온몸에서는 땀이 뻘뻘 나온다. 나는 점자 죽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으아악!」
「여보!」
아내는 나의 비명소리에 깨어났다. 온몸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악몽을 꾸었어!」
역겨움과 메스거움 때문에 아침밥도 먹지 못한 채 검은 서류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로 다가갔다 나는 아래를 가리킨 삼각형 표시를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누가 잡고 있는지 2~3분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15층 높이의 아파트에서 걸어 내려왔다. 몸은 녹초가 되어있었다. 악몽에 엘리베이터에 회사에서 일이 잘될지 의문이다.

너무 피로해 운전은 못할 것 같아, 버스를 타기로 했다. 회사로 가는 37번 버스가 다가왔다. 교복을 입은 중고생들이 버스 안으로 몰려들었다. 매우 시끌벅적하게 떠들었다. 뒤따라 버스에 올랐다. 교통카드가 없는 지라 동전을 넣으려고 지갑을 들추었다. 지갑은 주머니 어디에도 없었다. 두고 온 것이다. 간신히 모범적인(?) 학생에게 돈을 받아 버스 요금을 낼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일을 겪은 후에야 회사로 도착했다. 시간이 얼마나 되었나 보려고 왼쪽 손목에 눈을 들이됬다. 시계를 두고 왔다. 핸드폰 시계라도 보려고 양복 뒷주머니를 뒤졌다. 텅 빈 느낌이 손으로 밀려들어왔다. 회사에 가니 여유롭게 커피 한잔 하는 직원하나 없이 모두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몸의 힘이 쏘옥 빠지고 기분이 허탈해졌다.

집에 오니 피로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말 거는 아들과 아내의 말에 너무 피곤하다고만 대답했다. 그리고 제대로 씻지도 않은 양복 차림으로 침대에 누웠다. 뭔가가 나를 발부터, 서서히 허리까지 조이고 있다. 조이고 있는 것은 구렁이이다. 황금비늘에 검은 무늬가 있는 피부 부드러운 구렁이. 구렁이는 점차 내 가슴부터 목까지 조이고 있다. 속이 아프고 매쓰겁다. 구토가 사르르르 나온다. 끝도 없다. 방안으로 구토가 점점 올라온다. 아내는? 아내는 없다.
「으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언제까지 이 악몽에 시달려야 하는가. 아내의 나를 위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는 구렁이다.
「으으아악!」
「왜 그래?」
아내는 어느새 검은 긴 생머리를 풀어헤친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잠결에 헛것을 본 모양이다. 눈을 깜박이며 베개 뒤쪽을 응시한다. 아이들이 싫다고한, 구렁이 인형이 있다.
「저거 때문에 그런가? 아니야, 내가 나이가 몇인데」
「뭐가?」
「아니야.」

매일 밤 비슷한 악몽을 꾸었다. 그것도 구렁이가 똑같이 나오는 악몽을 매일 조금씩은 틀렸다. 하지만 같은 꿈이 일정한 주기로 반복되는 것 같았다. 어린시절에도 그런 악몽을 꾼 적이 있었다. 그럴 때면 어머니께 매번 맞았다. 정신 안 차리니 악몽 꾼다고, 지금의 악몽은 어쩜, 그 때 강압에 의한 여파 일지도 모른다.

스트레스를 받아,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다. 기업에서 장기 휴가를 얻고 쉬기로 했다. 부장은 영 못마땅해 하는 것 같았다. 회사로 영영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전히 구렁이의 공포는 계속 되자, 아내와 신경과에 찾아가기로 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주 꾸던 악몽부터 구렁이 장난감 산 이야기 까지 조목조목 자세하게 이야기 했다. 그러나 대답은 너무나 단순명료 했다. 꿈에 시달리는 것은 요즘은 힘든 일이 있으니, 쉬어 보는 게 좋습니다. 지금 회사도 쉬고 있는데, 뭘 더 쉬란 말인가?
아내는 일단 스스로 이겨보자고 했다. 오직 구렁이의 공포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잠도 도저히 오지 않는다. 아예 자려고도 하지 않는다. 시계가 2시 3시를 가리키면 나도 모르게 잔다. 그리고 6, 7시 쯤 구렁이 꿈에 깨어난다. 나는 스스로 이길 자신이 너무 없었으므로 아내에게 제안 한 가지 했다.
「혹시, 무당 집에 가볼까」
아내는 기독교인이라서 그런지 정색을 했다.
「그런데를 왜가!, 당신 하나님 믿는 것 맞어!」
목소리는 매우 독했다. 평소에 일 저질러도 용서해주는 아내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며칠 더 참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아내 몰래 무당집에 가게 되었다.
무당은 입술에 유난히 짙은 화장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보통 사람과 별다른 얼굴은 아니었지만 모를 공포감을 자아냈다. 나는 떨며 내 사정을 이야기 했다. 무당은 달랑 달랑 거리는 걸 흔들며 말했다.
「자네, 와이프 있지?」
「예.」
무당은 달랑 달랑 흔들던 것을 멈추고, 내 얼굴로 매섭게 들이더니 말했다.
「와이프를 조심해.」
「우리 와이프는 당신이 말하는 것 처럼 나쁜 사람 아니에요! 이 눈도 없는 무당아!」
나는 나에 대한 애정을 아끼지 앉는 와이프에 대한 모욕을 참을 수 없어 돈도 안 건네 준채 소리치고 나왔다.
결국 나는 독자적으로 판단했다. 인형을 사온 후로부터 일이 일어났으니, 그에 원인이 있을 것 같아, 인형을 내다 버렸다.

아무리 인형을 버렸어도, 악몽을 자주 꾸어서 일까, 아침상에 앉아서도, 입으로 밥이 영 들어가지지 않았다. 그런 아내는 나를 위해 무언가 말 한마디를 꺼낸다.
「만약 내가 구렁이로 변한다면 어찌 할 꺼야?」
난데없는 질문이였다.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숟가락을 바닥에 놓치고 말았다. 나를 위해 꺼낸 한마디가 아니라, 밤의 꿈을 부추겨 밥이 넘어가지 말라고 꺼낸 한마디 같았다. 나는 숟가락을 주으며 말했다. 어제 무당집에 몰래 간 것이 찔린 나머지 좀 더 다정하게 말했다.
「으음. 당연히 살리고 키워야지, 어쩌면 한 침대에서 같이 잘지도 몰라」
「정말? 왜? 잡아먹혀지 않을 것 같아, 안무서워!」
숟가락을 씻으러 싱크대에 가면서 대답했다.
「난 당신을 믿으니까」
그녀는 내가 내뱉은 말에 정말 감동하는 듯했다. 저절로 악몽으로 야릇해진 기분이 풀어진다.

오늘은 아내와 즐길 수 있는 하루였다. 아이 둘이 2박 3일 수련회에 가기 때문이다. 아내와 보드게임을 하고 영화를 보며 지냈다.
나는 아내와 무릉도원에 왔다. 그곳엔 아내와 나 밖에 없었다. 형형색색의 꽃과 주위를 맴도는 벌과 나비, 비춰오는 따스한 햇살은 아내와 대조를 이루었다. 아내의 새하얀 피부와 긴 머리카락은 더욱 탐스럽게 보였다. 나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인형을 정말 버리니 악몽이 끝난 것이다. 진작에 버릴껄? 이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잖아. 나는 이 기분 때문에 아내의 볼에 뽀뽀를 하려 뒤를 돌았다. 그런데 구렁이가 나를 노리고 있었다. 사방에는 이건 꿈이 아니었다. 분명한 현실이였다.

사방으로 아내의 긴 머리칼이 흩어져있었다. 군대 군대에는 살점과 핏덩이가 흩어져 있다. 아내의 옷은 갈기 갈기 찢어진 채 십분의 일도 남아있지 않다. 아내는! 아내는! 어떻게 들어왔는지 몰라도 저 구렁이가 통째로 집어 삼켰으리라. 아니다. 머리칼을 끊긴 채 도망갔을 수도 있다. 아닐거다. 죽은 걸가다. 사방에는 피가 흩어져있고, 새하얀 살덩이까지 있다. 아내는 죽었다. 저 구렁이가 죽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울컥했다. 눈에는 축축한 것이 고 눈앞은 흐려졌다. 나는 책상을 더듬어 손수건을 잡고는 눈을 닦았다. 구렁이가 내 앞으로 들이닥쳤다. 나는 침대에서 굴러 바닥으로 내려갔다. 자고 일어 난지 얼마 안되서 몸이 매우 뻐근했다. 떠오르는 것은 경찰 밖에 없었다. 경찰에 신고하기로 했다. 전화기! 핸드폰. 구렁이 몸 뒤에 있다. 거실로 가야한다. 거실로 도망가 1,1,2를 눌렀다. 손가락 근육으로 무거움이 밀려왔다. 뚜우우~ 뚜우우~ 뚜우우~ 전화기에서 신호 가는 소리가 울렸다. 평소 보다 유난히 느렸다. 신호가 가자 졸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A경찰서 입니다. 용건을 말씀해 주세요”
나는 성급하게 말했다.
“지금, 여기 A면 A동 A번지인데요. 집에 구렁이가. 급해요 발리 와주세요”
“예?”
구렁이가 내 뒤에서 덮쳐오는 걸 보고 전화를 제자리에 놓지도 못한 채 바닥에서 굴렀다.. 어쨋든 경찰은 올 것이다. 경찰서는 이곳에서 가깝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 나는 싱크대 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부엌칼을 빼들고 구렁이를 견제했다.
「아내의 원수!」
나는 구렁이에게 부엌칼을 던졌다. 운동신경이 둔했던 탓인지 맞지도 안았다. 나는 결국 도망가 식탁에서 의자를 들어 구렁이 머리에 내던졌다. 이번에는 머리에 제대로 맞았다. 구렁이 머리에서는 피가 새어 나왔다. 구렁이는 그래도 쓰러지는 듯싶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구렁이가 몸을 일으키더니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전화를 제대로 못 놔서인지 띠띠띠 소리가 울린다. 나는 반사 신경으로 엎드려서 바닥을 구르며 피했다. 구렁이는 나를 집어 삼키려는 듯 살금 살금 세모꼴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다리가 삐었을까?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띵동! 띵동!」
구원자 경찰이다. 문은 잠겨있다. 나는 문 쪽으로 몸을 구르며 움직였다. 구렁이도 경찰이 왔다는 사실을 아는지 내 앞을 막아섰다. 바닥에 넓브러진 부엌칼이 눈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부엌칼을 꼭 쥐고는 다가오는 구렁이를 향해 겨누었다. 구렁이가 근접하자 허리를 치켜 올리며 구렁이의 목에 칼을 꼿았다. 구렁이가 뭔가 말을 했다. 아이들이 보는 만화에서 마녀가 말하듯 울리는 목소리였다.
「넌! 나를 속였어!」
구렁이의 몸은 급속도로 작아지더니 한 여자로 남아있었다. 여자는 아름다운 나의 아내였다. 목에는 식칼이 꼿여 있었다. 어제 아침에 아내가 했던 말이 뇌리에서 사무쳤다. 베란다 문이 열리는 소리다. 경찰일 것이다. 신고한 경찰. 나는 이제 살인자 취급을 받을 것이다. 경찰은 내가 쓰러져있는 거실을 향해 저벅 저벅 걸어왔다.

경찰의 심문을 받았다. 본 그대로를 말했다. 경찰은 콧웃음을 치며 나의 말을 믿지 않았다. 믿지 않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일어났을 때 보았던, 아내의 살덩이와 머리카락은 침대에 없었다 한다. 구렁이가 아내로 돌아왔을 땐, 아내의 흰 목에 식칼이 꼿혀 피가 줄줄 흐르는 것을 뺴면, 살은 온전했고, 긴머리 털도 탐스러운 향기를 남긴 채 온전했다. 또한 일어나자마자 구렁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논리적으로 따져 볼때, 일어나자마자 피비린내를 맡고, 아내의 머리카락과 떨어진 살덩이를 보고, 구렁이를 보았어야 하는데, 나는 편안하게 일어났는데 구렁이를 보고 아내의 머리카락과 흩어진 살덩이를 본 것이 말이 안되었다.

이 많은 국민들은 복수와 악의 눈으로 가득 차 나를 노려보았다. 나의 진술은 살인자가 오리발 내민다하며 박대했다. 많은 사람들이 <무기징역 하라!>를 외처댔다. 이상했다. 한 번의 살인가지고, 무기징역이 나온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일도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았다. 그보다 자신에게 친절한, 유일하게 관심을 가져준 아내를 나의 더러운 손으로 죽였다는 것에서 슬픔을 느끼고, 때늦은 후회를 한다.
댓글 2
  • No Profile
    ...뱀이 뭐 어쨌다구요! 궁시렁궁시렁궁시렁궁시렁궁시렁(<-파충류 애호가)
  • No Profile
    ^^ 06.01.22 03:28 댓글 수정 삭제
    구렁이가 정말 술을 부리는 구렁이였는지, 아니면 '나'의 어떤 강박관념이었는지... 묘하네요, 이 글. 「넌! 나를 속였어!」-> 혼동을 일으키는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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