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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엽편) 첫 술

2016.07.28 22:4207.28


 개천으로 가자. 형이 목끈을 잡아당겼다. 질긴 노끈이 팽팽히 당겨졌다. 강돌이는 주춤거렸다. 겨우 몇걸음을 따라오는가 싶더니, 멈춰서 버텼다. 가자. 형이 팔에 힘을 주었다. 굵은 끈이 강돌이의 목심을 파고들었다. 눈치를 챘나 봐. 형이 내게 속삭였다. 귓속으로 형의 뜨거운 숨이 느껴졌다.

 맞는 말이다. 어쩔 줄 몰라하는걸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

 개천에는 형들이 모여있었다. 막걸리를 받아놓은 말통도 있었다. 모르는 형 하나가 주먹만한 돌에 칼을 가는 것이 보였다. 왜 이제 온 거야? 삽자루를 거꾸로 쥔 형이 물었다.

 형이 형의 말을 잘랐다. 때리는 것은 좋지 않아. 살이 경직되어버려.

 형의 말에는 위력이 있었다. 읍에 더러는 있던 전문학교출신 따위가 아닌, 도시의 대학에서 수의학을 전공한 형이었다. 네가 해. 형이 칼을 갈던 형을 지목했다. 나도 아는 형이었다. 돼지 키우는 사람의 아들인 형이었다. 피부터 빼야 해. 칼 쥔 형이 끙끙거리는 강돌이의 목으로 칼날을 꾹 찔러 넣었다. 다른 형들은 밧줄로 강돌이의 다리를 묶었다. 

 강돌이는 거꾸로 매달렸다. 형들은 아직 움찔거리는 배를 가르고 속의 것들을 꺼내 개천으로 던졌다. 뻘건 내장과 오줌보가 하늘을 날아 첨벙이며 떨어졌다. 칼 쥔 형이 능숙하게 껍데기를 벗겨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 던졌다. 하얀 가죽이 찰팍 소리를 내며 뜨겁게 달아오른 자갈에 달라붙었다. 

 반들거리던 강돌이의 몸체는 불에 그을려 꺼멓게 보였다. 기름이 불 속으로 떨어지며 칙칙대는 불똥이 춤추듯 튀어 올랐다. 너무 오래 걸렸어. 된장 독을 가지고 온 형이 꽁초를 집어 던지고 살점을 베어냈다. 나는 말통 뚜껑에 막걸리를 따라 한 모금 마셨다. 답답했다. 솔 이파리가 엉덩이를 찔러와 따끔거렸다. 강돌이의 비린내가 공기를 떠돌고 있었다. 자지를 차지한 형이 갈빗대를 내게 건네주었다. 

 갈비를 뜯다가 나는 개천으로 뛰었다. 금방 마신 막걸리가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몸을 숙이자 신 위액과 흐물거리는 조각들이 벌려진 입을 통해 떨어져 내렸다. 형들의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에 잠긴 나뭇가지 끝에 내장들이 걸려 흔들리는게 보였다. 나부끼는 것 같았다. 생명을 지닌 뱀처럼.

 가라앉은 내장들 틈으로 이내 손가락 만한 물고기 떼가 몰려들었다. 나는 그것들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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