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불청객

2023.09.23 14:4809.23

“오늘도 거기서? 오케이?”

“알면서 뭘 또 물어 봐!”

경철이와 훈찬이는 고3이다. 수능과는 무관하다. 그날 여름도 둘은 공터 택지에 빈 건물을 찾아 갔다.

“얼핏 들었는데 여기가 재개발인지 뭔지 하고 있대. 근데 뭔가 잘못돼서 잠시 중단되는 바람에 몇몇 건물만 남아 있는 거래.” 경철이 입구를 쳐다보며 말했다.

건물을 철거하다 중단됐는지 바닥 시멘트가 군데군데 깨져 있었다

경철이는 왼손으로 담배를 꺼내며 훈찬이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훈찬이는 자연스럽게 라이터를 꺼내 경철이의 오른손에 얹어 주었다. 둘은 담배를 피면서 폰으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 안 들켰으면 기록 깰 수 있었는데!” 경철이는 담배를 입에 물고 양손 엄지에 모든 인생을 걸은 양 열심히 터치하기 시작했다.

“난 안 들키고 계속 했지롱!” 훈찬이도 이에 질세라 입술 모양을 오물오물 해가며 숱한 엄지 지문을 폰 화면에 묻혔다.

훈찬이는 15% 밖에 남지 않은 배터리 잔량을 보더니 얼굴이 일그러졌다.

“교실에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 많이 만들어 달라고 교육부에 건의 해볼까? 히히.”

“여기는 전기가 안 들어오니 충전할 때도 없고 나도 19% 밖에 안 남았어.” 경철이도 짜증이 났다.

하지만 둘다 꼭 다문 입술과 생기 넘치는 눈빛은 기록을 경신할 듯했다.

몇 십분 하다보니 배터리는 급속도로 줄었다.

“야, 벌써 5%밖에 안 남았네!” 경철이가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이며 투덜댔다.

“나도!, 안 되겠다.”

둘은 게임을 멈추고 건물을 둘러보기로 했다. 일주일 전에 왔을땐 바빠서 1층만 보고 갔다. 카페를 했던 곳이라 주차장도 있는 넓은 공간이었다. 경철이가 오른쪽 구석진 곳을 보더니 시선이 멈췄다.

“일주일전엔 저쪽 구석 바닥은 멀쩡했던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누가 또 바닥을 무식하게 깨놨나보네.”

구석에 시멘트 바닥이 여러 조각으로 깨져 있었고 전체 깨진 모양은 둥글었다. 깨진 틈으로 흙바닥이 조금 보였지만 무시했다. 둘은 2층 계단을 향했다. 경철이는 올라가면서 담배 꽁초를 발로 대충 밟았고, 훈찬이는 여전히 담배를 피면서 올라갔다.

이 건물은 전체가 3층으로 1, 2층은 카페, 3층은 옥상 겸 창고였다. 2층 난간에 몸을 기대면 1층 사람들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구조였다. 2층 안 역시 넓은 공간이었다. 각종 자질구레한 자재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드드드드드!!

미닫이 문 여는 소리 같았다. 둘은 멈칫했다.

고양이가 자재더미에서 튀어나왔다.

“앗! 깜짝이야! 너도 술한잔, 담배 한모금 하러 왔냐?” 경철이는 덜컹한 심장을 애써 농담으로 받아냈다.

그리고 곧 둘은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담배 꽁초와 새우깡 봉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누군가 다녀간 모양이었다.

“역시 새우깡은 히트 상품이야! 우웩!”

훈찬이가 구석에 고양이 배설물을 보고 말았다. 그리고 바로 담배를 퉤! 바닥에 뱉고는 발로 밟았다. 창문쪽에는 두꺼운 이불 2개가 부푼 상태로 있었다. 그 옆에는 사람이 거뜬히 들어갈 낡은 캐비닛 두 개도 있었다.

“노숙자한테 아지트 빼앗긴 것 같은데!” 경철이가 이불을 발로 밟으며 못마땅해 했다.

캐비닛 바로 위로 천장에는 흰색 석면 합판이 반쯤 부서져 있었다. 그 틈 사이로 쇠로 된 긴 지지대와 공간이 보였다.

“옥상 가보자!” 훈찬이가 3층으로 고개를 들었다.

훈찬이가 먼저 올라갔다. 옥상 창고에 둥근 손잡이를 살짝 잡고 이리저리 돌렸지만 잠겨 있었다. 뒤에 올라 온 경철이가 옥상에서 탁 트인 앞쪽을 바라보았다. 밖은 저녁 해가 산허리와 교집합이다. 어둠과 임무 교대하기 직전이었다.

“경치 좋은데!” 경철인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경철이가 창고 뒤를 돌아가니 작은 창문이 있었다. 한쪽이 깨져 있었는데 닫혀 있었다. 경철이는 숏다리라 발끝을 들었다. 깨진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 보니 텅 비어 있었다. 고개를 더 넣어 창문 밑에도 보려했지만 짧은 신체구조상 무리였다. 조상이 원망스웠다. 롱다리 훈찬이를 부를까하다 훈찬이가 먼저 자기를 부르는 바람에 포기했다.

“경철아! 누가 오고 있는 것 같은데!” 훈찬이가 난간에서 쪼그리고 저 멀리 쳐다보고 있었다. 밴 차량이 아직 어둡진 않았지만 헤드라이트를 켠채 오고 있었다. 불빛 두 개가 옅은 어둠을 갈라놓으며 점점 다가왔다. 개발 중인 택지라 차가 지나가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의외였다.

“그냥 지나가겠지?” 경철이도 몸을 낮춰 미어캣마냥 빼꼼히 쳐다봤다.

“근데 계속 오면 나가는 길이 없단 말이야.”

“재개발 관계자들이 아닐까?”

점점 차는 모습이 커졌고 엔진소리도 들렸다. 50미터쯤 다가오자 속도를 서서히 늦췄다. 제발 다른 옆건물로 가길 바랐다.

“그냥 여기서 빨리 나가자.” 훈찬이가 경철이 옆구리를 치며 옥상문으로 갔다.

2층으로 왔을땐 이미 차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차 앞대가리가 1층 큰 창문으로 반쯤 보였다.

“어쩌지?” 경철이가 마치 커닝할 때 답 좀 보여달라는 말투였다.

“뭐라하면 잠시 놀러왔다고 하면 돼.”

차문이 쾅! 닫히며 여러 발자국 소리가 촘촘하게 들렸다. 헤드라이트는 그대로 켠 채였다.

둘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두 번째 계단을 디디려는 찰나였다.

“아이! 씨*!!, 진짜!! 일 처리 똑바로 안 할 거야!!”

숏다리 아저씨의 조폭같은 묵직한 목소리!

둘은 계단을 디디려다 고개를 숙였다. 그대로 1층 큰 창문을 통해 주차장을 빼꼼히 내다 보았다. 각도상 한 사람의 상체와 왼쪽 팔만 보였다. 팔에 문신이 있었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왼쪽팔이 약간 흔들리자 헤드라이트에 잠깐 비췄다. 잠깐이지만 위압감을 주기엔 충분했다.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어느 멋진 화백(?)의 그림이었다. 승천하는 용을 보니 둘도 곧 하늘로 승천할 것 같았다.

 

“중걸아! 빨리 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면 돼, 다들 빨리 파서 확인 해.” 성철이가 주위를 둘러보며 지시했다.

중걸이는 한숨을 쉬며 감정을 누그러뜨렸다. 성철이가 앞장서서 1층 출입문으로 향했다. 뒤에 세 사람이 삽을 질질 끌고 뒤따랐다. 모두 다섯명이었다.

“삽 끌지마! 헤드라이트 꺼 인마!” 성철이가 뒤를 보며 찡그렸다.

둘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파악했다. 발걸음을 뒤로 옮기고 자세를 낮췄다. 출입문으로 아저씨들의 덩치가 보였다. 경철이는 웅크린채로 훈찬이의 손을 잡아당기며 다시 계단 위로 물러섰다. 그리고 바로 2층 난간 밑으로 바짝 엎드렸다. 난간이 벽처럼 막혀 있어 노출은 되지 않았다.

“지금 나가면 더 이상할 거야.” 경철이가 훈찬이에게 속삭였다.

“2층으로 올라오면 어쩌지?”

“저기만 파고 밥 먹으러 갈 거야.” 경철이 눈동자는 계속 1층을 감시했다.

“그전에 다들 먼저 위층 확인해.” 중걸이는 위로 한번 쓰윽 올려다 보았다.

위층이라는 단어에 둘은 고개를 숙였다.

성철이가 나머지에게 눈치를 주자 목한, 철주, 석환이 양철삽을 내려놓았다. 따당! 목한이가 약하게 내려놓았지만 빈 건물 공간에 제법 울렸다.

둘은 삽소리에 움찔하며 3층 계단으로 갔다. 도둑 고양이마냥 발소리를 죽이고 옥상으로 갔다. 다행히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2층 안쪽에 있어서 1층에서 보이지 않았다. 금방 나갈거라는 예상이 빗나가자 둘의 심장박동은 펌프질이었다. 뭔가 잘못되기 시작한 것이다.

옥상에 왔지만 달리 숨을 곳이 없었다.

“경철아 여기 위에.” 훈찬이가 창고 위를 손짓으로 가리켰다. 폴짝 뛰어보았다. “위에는 평평해.”

창고는 키보다 조금 높았지만 담벼락 기어오르듯 하면 충분하다.

쩌벅 쩌벅, 밑에서 계단 오르는 소리에 둘의 얼굴은 늙은 고3이 되었다.

“내가 3층 가볼게요.” 목한이가 3층 계단을 올랐다.

키 큰 훈찬이가 먼저 폴짝 뛰어 쉽게 올라갔다. 경철이도 힘껏 올랐지만 숏다리라 위에서 훈찬이가 당겨서 겨우 올라왔다. 바로 낮은 포복 자세을 취했다. 엎드린채 저 멀리 야경을 보니 저 곳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이젠 그리운 장소였다.

삐익! 옥상 철문이 활짝 열리는 소리에 둘은 더 바짝 엎드렸다.

목한이는 옥상을 둘러보고는 창고문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돌려보곤 포기했다. 뒤를 돌아가니 창문이 있었다. 깨진 창문안으로 얼굴을 최대한 집어 넣어 눈알을 좌우로 굴려 안을 보았다. 더 고개를 들이밀어 창문 밑에도 보려고 거북목처럼 뻗었다. 바로 다시 나와서는 돌아서 창고문 앞에 섰다.

길게 엎드린 경철이와 훈찬이 뒤로 목한이는 창고를 보며 서 있었다. 키 큰 사람이라면 폴짝 뛰기만 해도 창고 위가 보인다. 그렇게 되면 둘은 끝장이다. 목한이는 창고 위로 고개를 치켜 들었다.

으음! 힘주는 소리를 내며 폴짝 뛰었다. 타닥! 곧 바닥에 신발이 닿는 소리.

둘은 그 소리가 마치 세상이 끝나는 마지막 울림이었다. 고개를 돌리거나 들지도 못하고 앞 야경만 감상아닌 감상을 하고 있었다. 창고 위 바닥과 교집합을 넘어 안으로 스며들고 싶었다. 생애 가장 스릴있는 야경이었다.

“거긴 이상 없어?” 2층에서 들렸다.

“어, 여긴 이상 없어.”

바로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고 철문은 닫혔다.

“휴, 십년감수했네. 나처럼 숏다리인가봐. 천만다행이야.”

“2층 가서 뒤 창문으로 뛰어내리자. 그 수밖에 없어.” 훈찬이가 먼저 가볍게 내려왔다.

주택이 아닌 넓은 카페라 2층도 높았다. 밑을 살피며 살금살금 계단을 향했다.

“뭔 지랄한다고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 마약만 하면 되지 또 뭔 은행털이야?” 중걸이는 다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작은 시골 새마을금고라서 괜찮아. 마약 거래로는 돈이 모자라.” 성철이는 달래기 바빴다.

‘마약?, 은행털이?’

경철이는 계단 중간에서 멈춰서 훈찬이를 보았다. 훈찬인 경철이 팔을 붙잡으며 입을 쩍 벌렸다.

“빨리 나가서 경찰에 신고하자. 포상금 줄 거야.” 경철이는 돈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렀다.

“일단 파 봐.” 중걸이는 꺼림칙했지만 이왕 벌어진 일이었다. 모두들 구석에 깨진 바닥으로 둥글게 모였다.

이제야 둘은 짐작했다. 분명 저 밑에 어마어마한 게 있는 게 틀림없다고.

따당! 따당! 삽으로 깨진 조각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둘은 2층 난간 너머 멋진 경치(?)가 궁금했지만 몰래 쳐다 볼 배짱이 없었다. 2층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경철이가 힘을 주었지만 약간만 열렸을 뿐 더 열었다간 삑 소리가 날 것 같았다.

“철주는 뒤로 돌아가서 망을 봐.” 성철이가 철주 삽을 대신 잡았다.

“그냥 한 번에 세게 열고 뛰어 내릴까?” 경철이는 창문을 양손 손가락으로 꽉 잡았다.

“잠깐! 저 밑에 누가 오고 있어.” 훈찬이가 밑으로 눈을 내리깔며 속삭였다.

원형탈모의 윗머리가 건들거리며 오고 있었다. 초저녁 보름달에 훤히 보였다. 진퇴양난이다.

“그냥 지금 폰으로 신고하고 경찰 올 때까지 기다리자.” 경철이는 주머니속에 휴대폰을 꺼냈다.

“으.. 그래. 그게 낫겠다.”

경철이는 휴대폰을 열었다. 배터리는 3%.

“마약은 지금 가져가지만 돈가방은 어쩔건데? 경찰이 너희 세명을 쫓고 있다고! 복면했다지만 동선 추적을 하고 있을거라고!” 중걸이는 또다시 호통을 쳤다.

“그래서 당분간 돈가방은 여기 묻어 두고 잠잠할 때 다시 올 거야.” 성철이도 소리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돈가방? 경철이는 휴대폰을 다시 덮었다. 그리고 몸을 낮춰 2층 복도 난간에 갔다.

“경철이 너 설마?” 어느새 훈찬이도 옆에 엎드렸다.

“마약만 가지고 밥먹으러 갈 거잖아. 그럼 저거 우리 돈이야.”

경철이는 속삭이듯 말했지만 얼굴엔 음흉한 표정으로 가득했다.

“너 미쳤어?” 훈찬이는 돈이고 뭐고 여길 빠져나가고 싶었다. “그냥 마약만 신고해도 큰 포상이 있을 거야. 정신 차려 인마!”

훈찬이는 큰소리로 욕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경철이의 얼굴은 돈가방이라는 단어에 매료되어 있었다.

“폰 빨리 무음으로 바꿔.” 경철이는 보란듯이 먼저 바꿨다.

일단 훈찬이도 바꾸고 그냥 가자고 입모양만 크게 벌렸다. 하지만 경철이는 눈길도 주지 않고 난간에 귀를 가까이 댄 채 듣고만 있었다.

삽질하는 셋은 헉헉거리며 땅을 파고 있었다.

“마약도 멍청하게 여길 숨겨 두면 안 되는 거였어. 여긴 누가 올 지도 모른다고!”

“내가 경찰한테 의심을 받고 있어서 어쩔수 없었다고! 오늘까지만 잠시 보관하는 거였어. 들킨다 싶으면 동남아로 튀면 돼. 지금까지 아무일 없잖아!” 성철이도 슬슬 얼굴빛이 바뀌기 시작했다. 애꿎은 삽질 소리만 따당! 따당! 크게 냈다.

훈찬이는 혼자 결심했다. 화장실 가는 척 하며 신고하기로 한 것이다.

“야, 긴장했더니 화장실 가고 싶어.” 훈찬이가 몸을 배배 비꼬았다.

“조심히 빨리 갔다 와, 물은 절대 내리지 말고.”

훈찬이는 엎드린 채로 뒷걸음 쳤다. 매장안 화장실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 순간 부스럭! 왼발이 아까 새우깡 봉지를 밟고 말았다.

“잠깐! 방금 뭔 소리 못 들었어?”

 

중걸이는 삽질 소리와 헷갈렸다. 하지만 계속 예민한 탓에 위층을 올려다보았다.

둘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망했다! 하는 모습으로 숨을 멈췄다.

“2층에서 뭔가 들린 것 같기도 하고.. 아까 이상 없었잖아?” 성철이가 석환이를 쳐다보았다.

“2층은 확실히 아무것도 없었어요.” 석환이는 오직 삽질에만 열중했다.

“제가 다시 갔다 와 볼게요.” 목한이가 삽을 놓았다.

“3층은 내가 직접 다시 보고 오지.” 중걸이도 나섰다.

둘은 몸을 낮춘 채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온 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뒤 창문 밑엔 여전히 원형탈모가 보이고 아래에서는 두 사람이 계단 밟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저승사자의 발자국 소리였다.

“저 이불! 캐비닛!”

경철이가 대충 말했만 훈찬이는 알아들었다. 둘은 이불을 들고서는 각각 캐비닛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조용히 닫고 이불로 온몸을 덮었다. 최대한 몸은 납작하게 그냥 큰 이불로 착각하게 해야 한다. 충분히 들킬 일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다. 캐비닛까지 보름달이 비추지 못했다. 제발 놈들이 밤눈이 어둡길 빌 뿐이다.

목한이가 2층 매장안으로 들어오고 중걸이는 바로 옥상으로 올라갔다. 목한이는 조용히 매장을 한발자국씩 움직였다.

삐이익! 화장실 문여는 소리. 둘은 캐비닛 문여는 소리로 착각할 정도였다.

쾅! 목한이 바로 닫았다.

‘다음은 우리다.’

경철인 이제 걸리면 무슨 핑계를 댈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냥 귀신인척 뛰쳐 나갈까? 근데 그 다음은?’

부스럭! 목한이는 새우깡 봉지를 일부러 발로 밟았다. 조금전 소리와 똑같았다. 이 봉지를 건드렸다면 분명 누군가 있단 얘기다. 캐비닛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둘은 냄새나는 이불만 꼭 덮어 쓰고 꼼짝 하지 않았다. 캐비닛 앞에 발걸음이 멈췄다.

삐이익!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소리였다. 경철이쪽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이제 경철이 심장박동 소리가 난리 부르스다. 그 소리가 양철 캐비닛을 울리는 것 같았다. 숨을 참았지만 심장박동 소리는 계속 울렸다. 옆 훈찬이도 마찬가지. 제발 자기 문은 열지 말기를 기도했다.

부스럭! 다다다다다다!!

“앗, 깜짝이야!, 고양이잖아! 새우깡이 생선인줄 알았나보네.” 목한이는 반쯤 열린 캐비닛 문을 쾅! 닫았다.

2층 난간으로 나와 3층으로 고개를 돌렸다.

“2층 이상 없어요. 3층은요?”

3층은 대답대신 쿵쿵 소리만 났다. 목한이는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1층으로 내려왔다

경철이는 겨우 참았던 숨을 잠시 내쉬었다. 훈찬이도 이불속에서 뜨거운 입김을 내보냈다.

‘저놈의 고양이가 우릴 죽였다 살렸다 하네.’

그제야 훈찬이는 다리가 쥐가 난 걸 알았다. 경철이는 안에서 살며시 이불을 걷어냈다. 이미 온 몸은 땀에 쩔어 더러운 이불과 함께 역한 냄새가 났다. 그래도 생명의 은인이었다.

옥상에 중걸이는 씩씩거리며 창고문 여는데만 집중했다. 혼자 열 받아서 에잇! 하며 포기했다. 숏다리지만 1층으로 뛰듯이 계단을 내려왔다.

“아까 옥상 창고가 잠겨 있고 창문이 깨져 있다고 왜 말 안 했어?” 밑을 보며 역시 호통이다.

“아, 저번에도 원래 잠겨 있어서..” 목한이의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깨진 창문으로 누군가 들어갈 수도 있잖아?” 중걸인 일처리를 왜 그렇게하냐는 듯 목한이를 쳐다보았다.

“거긴 일반 사람 몸집은 들어가기 힘든 곳이라서...” 목한이는 속으로 중걸이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아니고 몸집 작은 아이들이라면?” 중걸이는 계속 토를 달았다.

“애들이 거길 들어갈 리가..” 목한이는 헛소리 그만 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이러니까 내가 너희들을 못 믿는 거야! 창고문이나 열어!. 아, 그냥 됐고, 석환이 니가 삽 갖고 따라와!”

경철이와 훈찬이는 캐비닛 문만 살짝 열었다.

“이제 진짜 어쩔 거야? 저놈들 그냥 가면 되는데 옥상엔 왜 가냐고!!” 훈찬이는 미칠 지경이었다.

“좀만 있어봐. 옥상만 확인하고 갈 거야. 그럼 돈은 우리 거야.”

“지금이라도 신고하자고!”

“제발 좀 조금 기다려봐. 5분 뒤에 돈이 우리거라니깐!”

‘저 돈에 정신 나간 놈!’

중걸이와 석환이는 옥상 창고문 앞에 섰다.

“너희들 거기 있는 거 알고 왔다. 문 부수기 전에 나와라!”

일단 찔러 보는 것이었다. 중걸이는 석환이 삽을 뺏으며 내려칠 준비를 했다.

“잠깐만요. 그냥 치면 소리가 크니까 저 거적대기 감아서 하지요.”

석환이가 옥상 구석에 양탄자 같은 거적대기 조각을 가리켰다. 바로 질질 끌고 와서는 대충 양철삽을 둘둘 감았다.

“됐어. 오케이!” 석환이는 내리쳤다.

퍽! 퍽! 둔탁한 소리가 1층까지 들렸다.

“저 사람들 괜히 힘빼고 지랄이야.” 훈찬이 얼굴은 점점 일그러지다 못해 찌그러져졌다.

퍽! 퍽!

“아저씨, 잠깐만요!”

손잡이가 돌아갔다. 창고문이 열린 것이다. 그것도 안에서.

 

석환이는 한발자국 물러섰다. 아이들 두 명이었다. 중걸이는 아이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내 이럴줄 알았어. 경찰에 신고했지?”

“아, 아니에요. 정말 아, 안 했어요!” 키 작은 아이가 버벅거렸다.

중걸이는 안 했다는걸 확신했다. 했으면 벌써 경찰이 왔을 것이다.

“너희 중딩이지? 따라와!”

계단 내려오는 소리가 여러 명으로 들리자 성철이와 목한이는 위로 쳐다보았다.

“뭐야? 진짜 있었네!” 성철이는 눈을 돌려 목한이를 쳐다보았다.

성철이 머릿속엔 영탁의 ‘네가 왜 거기서 나와?’가 스쳐 지나갔다.

“뭐야! 진짜 있었던 거야?” 경철이는 입을 쩍 벌리며 소리칠 뻔 했다.

훈찬인 경철이 입을 보고는 자기가 대신 손으로 자기 입을 틀어 막았다.

“다행히 신고는 안 했어. 목한이 너 여기 언제 합류했지?” 중걸이는 내려오면서 역시 목한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6개월 정도 됐지.” 성철이가 대신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제 성격이 꼼꼼하지 못해서.” 목한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런 일은 아무나 못해! 그 정도로 꼼꼼함을 요하는 전문직업이야. 인마!”

중걸이의 웃기는 자부심이었다.

둘은 기가 막혀 고개를 내밀고 서로를 또 쳐다보고만 있었다.

“철주! 밖에 이상 없어?” 성철이가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네! 개미새끼는 한 마리밖에 안 보여요.” 상황에 맞지 않는 농담을 던져 봤다.

“휴대폰 줘봐! 비번 풀어서.” 중걸이가 애들한테 거친 손을 내밀었다.

애들은 바로 건네주었다. 자신이 있어서 준 건지 무서워서 준 건지 구분이 안 갔다. 애들은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깨진 바닥과 삽, 그 옆에 밀가루 같은 비닐 봉지와 두툼한 검은 스포츠 가방이 있었다. 흐트러진 모습이 콘크리트와 흙속에서 막 탈출한 것처럼 숨을 가쁘게 쉬고 싶은 듯했다.

훈찬이가 다시 얼굴만 내밀었다.

“빨리 신고해 인마! 난 배터리 다 됐어!” 훈찬이는 입모양은 크게 목소리는 작게 발산했다.

“나도 다 됐단 말이야!”

“뭐? 이젠 우리 엿됐다. 쟤들이 말하면 우리도 끝장이야. 그때 바로 신고했어야지. 인마!”

훈찬이 관자놀이가 씰룩거렸다. 경철이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이젠 더 이상 뾰족한 수가 없었다. 쟤들이 입다물고 놈들이 가는 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중걸이와 성철이는 휴대폰 통화목록을 검색했다. 별 내용은 없었다.

“창고 있은 지 좀 됐는데 신고 안 했다고?” 성철이는 애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흘겨보았다.

“아, 저희가 가출 해가지고요..” 키 작은 아이는 고개를 숙이며 겨우 대답했다.

성철이는 중걸이 표정을 살폈다.

“우리가 나쁜놈이란 걸 아는 이상 그냥 보내줄 수 없지.” 중걸이는 휴대폰을 이리저리 살폈다.

“저흰 정말 몰라요. 갈데가 없어 온 것 뿐이예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할테니 보내주세요.” 이번엔 키 큰 아이가 울음을 터뜨릴 직전이었다.

“진짜 모르는 것 같으니 여기에 묶어두면 될 것 같아요.” 목한이는 뜬금없는 용기를 냈다.

“우린 나쁜놈이라고, 착한 놈 아니라고! 벌써 정체성이 헷갈려?” 중걸이는 목한이가 오늘따라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걸 다 봤는데 애들을 여기 두고 가자고?” 성철이도 거들었다.

경철이와 훈찬이는 어떻게 결론이 나든 저놈들이 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우린 아무것도 본 것도 들은 것도 없어요. 다른 형들이 봤을 거예요!” 키 큰 아이가 큰 일을 내고 말았다.

윽! 2층에 둘 심장은 난리 부르스 백배다. 심장을 꺼내서 밖으로 던져 버리고 싶었다. 모르는 놈한테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뭐? 형들? 형들 누구?” 성철이 빨리 말해보라고 얼굴을 갖다 댔다.

“우린 그냥 새우깡 먹고 있었어요. 고딩 형들 둘이 오길래 급히 창문 깨고 들어간 것 뿐이예요. 아저씨들 뭐하는지 정말 모른다구요!”

“이제 우린 죽었다. 지금이라도 그냥 나가서 솔직히 말하자.” 훈찬인 더 이상 여기 있다간 심장마비 걸릴 것 같았다.

“조금전 중딩한테 무섭게 말하는 거 못 들었어? 우릴 죽일지도 몰라!” 경철인 제발 조용히 하라는 얼굴로 오른손 집게 손가락을 펴서 쉿! 했다.

“형들 어딨어?” 중걸이가 키 큰 애한테 얼굴을 갖다 댔다.

“몰라요. 아저씨들 왔을 때 옥상 창고 위에 있다가 다시 내려갔어요.”

“옥상 창고 위? 아까 확인 안 했어?” 시선은 목한이를 향했다.

“아, 그게....”

“오늘 진짜 환장하겠네!” 중걸이 얼굴에 점점 핏기가 올랐다. “내려갔으면 2층밖에 없는데 아까 아무도 없다 했잖아?” 중걸이가 석환이를 째려봤다.

“네. 처음에 봤을 땐 분명히 없었어요.” 석환이는 목한이를 째려봤다.

“처음 말고 두 번째 때 2층으로 왔겠네.” 성철이도 목한이를 째려봤다.

모두가 목한이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목한이는 태어나서 이 못생긴 얼굴로 주목받긴 처음이었다.

“네. 아무도 없었어요. 옥상에서 내려와 2층 창문으로 바로 도망쳤을 거예요. 아니면 3층 옥상에서 바로 뛰어내렸을수도..”

“철주가 갔는데 뭔 2층으로 도망쳐? 3층은 너무 높아서 안돼!” 중걸이는 2층을 올려다 보며 말을 이었다. “다시 내가 직접 찾아 봐야겠어. 석환이 따라와!”

목한이는 또 누가 있으면 어쩌나 역시 심장이 난리 부르스였다.

쩌벅! 쩌벅! 저승사자가 재방문 하는 발소리였다. 둘은 아슬아슬하게 서로 얼굴을 보며 숨죽이고 있었다. 힘을 최대한 분산한 채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중걸이는 올라오면서 막 밟아 껀 담배꽁초를 스캔하고는 올라오자 마자 창문을 봤다. 닫혀 있었다. 석환이는 화장실을 확인했다.

“뛰어내리진 않았어.” 중걸이는 손으로 창문을 밀어보고는 더 확신했다.

힘껏 창문을 열자 삑! 소리에 밑에 있던 철주가 쳐다보았다.

“철주! 2층으로 빨리 와!”

철주가 소리내며 돌아서 오자 목한이는 침을 꼴딱 삼켰다. 목젖이 엄청 힘이 들어갔다.

“누가 있어?” 성철이가 2층을 향해 소리쳤다.

중걸이는 대답대신 철주가 올라오자 캐비닛을 투시했다. 석환, 철주 둘다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리고 조용히 다가갔다. 둘은 날카로운 칼을 꺼냈다. 중걸인 폰 후레시를 켰다. 각자 캐비닛 문을 조용히 잡고 확 잡아 당겼다. 부푼 초라한 이불이 있었다. 중걸이는 후레시를 번갈아 비췄다.

“들켰으니 나와라! 고딩들아!”

그러나 둘은 어둠속에서 ‘침묵은 금이다.’를 실천했다. 고개를 약간 들자 땀방울이 이마에서 턱, 목으로 흘러내렸다. 그 땀방울도 떨어지면 들킬까봐 조마조마 했다.

 

중걸이는 구둣발로 이불을 툭툭 건드렸다. 이불이 두꺼워서 느낌이 헷갈렸다. 이번엔 구둣발을 길게 푹 집어 넣었다. 쑤욱 들어갔다. 옆칸도 똑같았다.

“젠장! 없잖아?”

중걸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바닥에 긴 막대기가 눈에 띄었다. 바로 집어들었다. 캐비닛을 보고는 바로 위 부서진 합판을 툭! 찔렀다. 폰 후레시로 비췄다.

1층에서는 성철과 목한, 중딩들은 영문도 모른채 소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중걸인 막대기를 바닥에 던져 놓고는 옆 철주한테 오른손을 내밀었다.

“저 담배 안 피는 거 형님도 알면서 참!” 철주는 씨익 웃었다.

“칼! 담배 말고 칼! 인마!”

철주는 찢어진 웃음을 바로 멈추고 칼을 건넸다. 달빛에 비친 칼은 을씨년스러웠다. 받아든 칼을 세워 부서진 합판을 향했다.

“살려 주세요!”

칼끝이 보이자 둘은 항복했다. 내려오려고 몸을 웅크리자 쇠로 된 지지대가 무게에 못 이겨 빠지직! 하며 천장이 주저 앉았다. 다행히 둘은 바로 밑 캐비닛 위로 떨어졌다.

1층까지 무너지는 소리와 캐비닛 소리가 크게 들렸다.

“너희도 가출했냐?” 중걸이가 칼을 들이밀었다.

석환, 철주도 칼을 내리고는 헛웃음만 나왔다.

“저희도 그냥 여기 놀러 왔어요.” 경철이 덤덤한 척 말했다.

“잘못 놀러 온 거지. 학교 마치면 컴백홈 하라고 서태지 형님이 말했잖아!” 쫄아있는 애들을 보며 철주가 또 상황에 안 맞는 농담을 던졌다.

“얘들은 서태지를 모른다고 등신아! 빨리 데리고 내려가!” 중걸이가 핀잔을 주었다.

“목한이 이 자식! 오늘 왜이리 꼼꼼함이 부족해?” 의심이 점점 짙어가는 목소리 톤이었다.

“아, 천장까진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실수 연발이었다.

“네 명인데 어쩌지?” 의외의 상황에 성철이는 골칫덩이 애들만 쳐다봤다.

중걸이는 칼을 왼손으로 옮기고 오른손으로 총을 꺼냈다.

“소염기가 있어서 다행이야.”

애들은 실체 총을 눈앞에서 보니 온 몸이 부들부들 죽음의 춤이라도 출판이었다.

“애들인데 정말 죽일 건가요?” 목한이가 또 나섰다.

“이 새* 오늘 참 이상하네. 수색도 어설프고.. 너 짭새야 뭐야?”

“아, 아니요. 제가 전에 거래도 한 건 성사시켜 줬잖아요.”

짭새는 결코 아니라는 말이었다.

“원래 형사들이 거래 성사시켜 주는 척 하며 잠입하잖아!” 중걸이는 목한이를 아래 위로 훑어보더니, “아무래도 이놈 오늘 뭔가 이상한데. 뒤져 봐!” 눈짓을 했다.

철주와 석환이는 목한이를 양쪽에서 잡았다. 성철이가 몸수색을 했다. 휴대폰뿐이었다. 중걸이의 총은 목한이를 겨누고 있었다.

“저 저, 진짜 짭새 아닙니다!” 목한이 얼굴엔 억울함, 두려움, 증오가 한꺼번에 요동쳤다.

“근데 왜 짭새처럼 행동해. 폰 잠금장치 열어!”

목한인 자신있게 열었다. 애들은 잔뜩 긴장한 채 보고만 있었다.

성철이가 대신 통화기록을 쭉 보았다

“박성춘 씨*놈?, 이 사람 누구야? 많이도 통화했네.”

“그냥 아는 사람입니다.”

성철이는 쉿! 하며 통화를 눌렀다. 10초 정도 지났다.

“이 씨*놈 안 받는데.”

“그 씨*놈 바쁜가보군. 또 찾아 봐.” 중걸이가 지시했다.

“김철민 또라이?”

통화를 눌렀다. 역시 받지 않았다.

“최영욱 등신?. 니 지인들은 정상이 없네.”

통화를 눌렀지만 답이 없었다.

“일부러 안 받는 거 아냐?” 중걸이는 목한이를 힐끗 보았다.

성철이가 주소록을 마저 검색했다. 몇 명 없었다.

“제가 이 일 하면서 지인들 다 정리했어요.” 목한이는 묻기전에 미리 말했다.

“형사들이 잠입할 때 폰을 다른 걸 쓰면 몇 없을 수 있지. 지금 이 상황을 알고 일부러 안 받는 거 아냐?” 중걸이는 또 확신했다.

“중걸이 형님 오늘 너무 예민하십니다. 저 경찰 아니라구요!”

“이놈 도청장치 있는지 수색해. 빨리!”

철주와 석환이 손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성철이 니가 이 애들 바로 처리해!” 총을 건네주었다.

“아저씨 살려주세요!” 훈찬이가 빌기 시작했다.

“저희도 제발 살려주세요!” 중딩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철주와 석환이는 신발과 허리띠를 벗기다시피 하고 살폈다. 중걸이는 목한이의 귓구멍을 자세히 보았다. 이어폰은 없었다.

“신발, 허리띠 없습니다.”

성철이가 장전을 하고는 총구는 애들을 향했다.

“다들 뒤로 돌아.”

뒤를 돌았다. 그다음은 상상이 가는지라 애들의 온 몸은 떨면서 살려달라고 합창을 하고 있었다. 뒤통수로 점점 다가오는 총구만 머릿속에 아련거렸다.

중걸이는 목한이 남방에 단추가 눈에 띄었다. 옷에 비해 새것이었다. 확인하려고 왼손에 든 칼을 단추에 찔렀다.

 

그 순간! 2층 난간에서 잔걸음 소리가 들렸다.

“다들 꼼짝마! 경찰이다!”

몰래 2층 창문으로 사다리 타고 이미 들어왔던 것이다.

다들 뒤를 보니 형사들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중걸인 경철이 목에 칼을 대고 돌아섰다. 경철인 비명대신 다리가 후덜덜 떨렸다. 성철이도 중딩 한 명을 총으로 대고 돌아섰다. 덩달아서 성철이 옆에 목한이와 나머지들도 같이 손을 들고 돌아섰다.

곧 이어 밖에서는 차소리와 함께 강한 불빛이 창문을 뚫고 모두를 비췄다. 이미 형사기동대 수십 명이 출입문을 향하고 있었다. 중걸이 일당들은 고개를 앞뒤로 눈알을 돌리기 바빴다. 곧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너희들은 포위됐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라!”

“들어오면 다 죽여버린다!”

중걸이와 성철이는 인질을 잡고 결사항전할 태세였다.

원래 쳐맞기전에는 무서움이 없는 법이다.

목한이는 옆의 성철이가 앞뒤 고개를 바쁘게 돌리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날렵하게 호신술로 총을 낚아채며 성철이 손목을 꺾었다.

“아!”

뜻밖의 공격에 뒤로 나자빠졌다. 뺏은 총구는 바로 칼을 든 중걸이를 겨눴다.

“그래, 나 짭새야.” 조금전 취조 받던 상황을 떠올리니 방아쇠에 집게손가락을 당길 뻔 했다.

“너. 이 새*”

분했다. 억울했다. 중걸인 자신이 바보 같았다.

“아마 총이 칼보다 빠를 걸, 칼 버려!” 총을 한 번 더 뻗었다.

“....”

이미 형사 수십 명이 총을 겨누며 1층 매장안으로 들어섰다. 대장인듯한 사람이 중걸이를 노려보았다.

“이제 그만하지!. 괜한 허튼 짓 하면 감옥에서 영원히 사회적 거리두기 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

“....”

중걸이는 엿됐다 하는 얼굴로 목한이를 쳐다보았다.

“여기 올때부터 찝찝하더니 에이 씨*”

칼을 떨어뜨리려다 그냥 옆으로 내팽겨쳐버렸다.

상황은 이렇게 종료됐다.

 

애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경철이와 훈찬이는 목한이라는 형사를 보았다. 롱다리였다.

“너희들 땜에 다 망칠뻔 했잖아! 좀더 잠입해서 윗대가리 알아내야 되는데 젠장!” 목한이는 총을 집어넣으며 아이들을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도망갈 타이밍을 놓쳤어요.” 경철이 다리는 아직도 떨고 있었다.

“근데 중딩 너희들, 창문 밑에 딱 붙어 있던데. 매민줄 알았어. 정수리 잘 봤어. 허허.”

“??”

“고딩 너희들은 군대 가면 낮은 포복 훈련 개쩔겠던데!”

“보셨어요. 우리?”

“당연하지.”

“그럼 캐비닛 이불도?”

“그래, 일이 꼬여서 진짜 큰일 날뻔 했어. 그냥 학교 마치면 컴백홈 해. 그리고 중딩 너희들은 집까지 데려다 줄 테니 같이 가. 집 나오면 개고생이야.”

둘은 그제서야 몸에 힘이 쭉 빠지고 한숨을 내쉬었다.

배 나오고 나이든 형사가 터벅터벅 다가왔다.

“어이!, 아무리 잠입수사 맡겼다 해도 날 씨*놈으로 해놓았어?” 박 팀장은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아, 박 팀장님, 들킬 걸 대비해서 일부러 그런거지요. 그래서 안 들켰잖아요.” 목한이는 씨*놈 팀장 팔을 잡으며 아부의 웃음을 지었다.

“아이, 선배! 난 또라이가 뭐예요? 쟨 등신은 또 뭐구요?” 김철민 형사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항의했다.

“내가 너흴 대표해서 총대 메고 잠입했잖아!”

목한이는 남방에 단추를 떼어내며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반장님, 단추 도청장치는 너무 흔해요. 다음엔 다른 방법을 해야할 것 같네요.” 보란 듯이 단추를 들어올렸다.

“아무래도 그렇지? 그럼 다음에 어떤 거 써 줄까? 원하는 걸로 해줄게.”

좀전에 화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전 절대 안 합니다. 김 형사, 최 형사가 결정해.”

하지만 이미 둘은 저쪽으로 못 들은 척 차 타러 가고 있었다.

 

경철이와 훈찬이는 형사들한테 훈계를 몇 분간 듣고는 꾸벅 절하고 건물을 나왔다.

“아이! 씨*, 돈 벌수 있었는데.. 그냥 처음부터 신고할 걸.” 경철은 아직 미련이 남았다.

“야! 정신 차려! 우리 둘다 저세상 가서 하느님하고 소개팅 할 뻔 했어.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새우깡 1억원어치 사 줄게 인마!”

“헛! 그러나저러나 오늘 이 카페에 불청객이 몇 명이나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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