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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고물 고물 거물 ( 4 )

2015.06.12 17:0306.12





4. 잠시, 다른 이야기로 : , 황영민

 

이덕형이 한의 공업소에 방문했던 그날, 좀더 이른 시각, N()의 한 외곽 지구에서.

 

트럭이 보인다. 희귀한, 괴물같이 큰 진녹색 바디였다. 76-A 시리즈 ARM을 장착한 트럭이었다. 트럭은 한자리에 멎어 있고, 운전석에서는 누가 졸고 있다. 피곤한 그 사람, 황영민 또는 민이라고 불리는 여자였다.

꾸뻑꾸뻑 조는 동안에 무슨 꿈을 꾼 듯했으나 깨자마자 잊히고 단 하나의 장면만이 꿈의 흔적 가장자리에 남아 겨우 그 내용을 기억할 수 있게 했다 꿈은, 이 여자에게 아주 뿌듯한 장면이었다 2~3개월 전의 일이다. 먼 타지에 가서는 기왕의 거친 면모를 다시금 드러내, 괴수만치 뚱뚱한 트럭 적재함을 다 채워올 만큼, 크게 한 건을 올렸다. 현실 속의 그 대단한 장면이 꿈에도 등장한 것이다. 잠결에 여자는, 지난번 일을 아주 잘했다면서 자신을 추어올렸다.

하지만 그녀는, 피로가 쌓인 터였다. 또다시 잠이 밀려오고 의식이 밀려 나간다. 장사는, 그리고 총질은 사람을 피곤하게 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곤 의식 아래 깊은 곳으로 쓰러진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나도 뭐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잠이 깨었을 때, 민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을 되뇌었는데, 그건 자신이 벌인 어떤 사건에 관한 것이었고 일종의 변명이었다. 살다 보면 사람이 누구를 강탈할 일도 생길 수 있지. 피해자의 재물을 잠시 자기 것으로 빌려 왔을 뿐이야, 라고 민은 생각하고 있었다 이상한 사회가 도래하였다. 황폐지에 둘러싸인 나라에서는 힘을 써서는 남의 물건을 갈취해 살아가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지방이건 도시이건 간에 상거래의 풍토는 그러했다. 비록 도시의 삶은 청량하고 안정된 것이었지만, 가끔 물질적인 고비가 올 때는 이렇게라도 해야 했다. 먼 지방에 가서는 타인에게 힘을 내보일 줄도 알아야 한다,

고 민이 자신에게 변명한다.

아무렴, 프렌즈답게 말이지.

다음 순간, 그녀는 어딘가로 연락을 넣었다. 게이트 출입 기록과 차량의 이동 경로 추적 데이터를 지웠으면 했다. 그건 돈이면 되는 일이었고 그녀가 매달 신경 써 온 일이었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게 프로다 라는 얼핏 옳아 보이는 신념이었다. 이 방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끄나풀에게 이번에는 신경 좀 써달라고 전했다. 회사에서도 도움을 주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더 확실하게 하고 싶다면서.

 

**

 

그녀의 하루는 바쁘게 돌아간다.

풍경이 바뀌고 있었고, 우람한 트럭이 길을 달린다. 그녀가 또 다른 일터로 향할 때, 차창 밖으로 늘어선 빌딩들의 껍질이 눈부시다. 유리창은 그 자체로 거울 같다. 한동안 그것들을 들여다본다 그것들에 자신의 과거를 투영한다. 투영한다는 것은 민이 민에게 고백하는 순간이다. 거짓과 악행을 심은 숲이 그녀의 과거라면 고백은 숲을 정화하려는 노력이다. 그녀는 알고 있다. 가까운 과거, 과거의 일에 사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음을. 자칫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어, 하고 거푸 중얼거린다. 이어 민의 머릿속에서는 다큐멘터리 같은 일련의 기록이 상영된다. 우리 모두 데몬을 씁시다. 살인과 관계없고 위협에만 쓰입니다. 총포탄으로 위협하고, 원하는 만큼만 앗아갑시다. 데몬을 사랑합시다. 모두 한때는 그렇게 설파당하지 않았던가. 결국에는 약탈의 연쇄와 약탈의 확산과 그것들이 일으키는 반향을 눈감고 모른 체하였다. 그런 것들은 여러 사람의 눈을 희번덕이게 하는 속도로 번졌다. 한껏 부풀린 근육의 탐욕처럼 닥치는 대로 압도하려 들었다. 감시의 세력 범위를 벗어날수록, 핵무기만 쏘지 않는다면야 하는 우스운 개념 보급이 빨랐다. 우리는 이상한 사회에 살았다. 데몬을 설파하고 그것에 무뎌지고 한 기록을 자아 그 안에 두었다 는 무의식의 발로였다.

민은 머리가 아찔했다. 자신의 과거, 기억을 넘어서는 그 무엇 때문이었다. 영화였는지 다큐멘터리였는지 모를 웬 영상이 난데없이 떠오른 데다 그것은 학식을 요구하는 말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런 심오한 것들 말야. 그런 걸 기억할 뇌가 나한테 있었나?” 민은 중얼거렸다. 논리성을 갖춰 말로 풀어내라고 하면 입도 뻥긋 못 할 내용이었다. 그런즉, 하품이 새어나올 만큼 졸리는 내용이었다.

아무튼, 사회는 그런 식으로 나이를 먹었지.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민은 문득, 잊고 있던 자신의 나이가 생각났다. 32, 적당히 많은 나이, 많지 않은 나이. 지금껏 핸 것처럼 산다면 앞으로 쓸 총포탄이 32의 열 배는 될, 그런 나이. 그녀는 앞으로 감각될 화약 냄새의 총량이 느껴져 욕지기가 솟았다.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지. 이번을 끝으로 무법의 지방 도시로 가는 일은 아예 삼갈 것이다. 그런 데를 가게 되어도 전처럼 일은 벌이지 말아야지, 하고 진심을 내보이는 그녀였다. 그러곤 폭력적인 기억들을 점차 지워갔다. 거칠어진 악건성 피부 같은 마음을 스스로 구제한 지 오래인데, 이미. 도시의 얌전한 삶에 젖어서는 돈 버는 다툼만을 할 뿐인데, 이젠.

외부 차단.”

음성 명령으로 차창에 검은색 차폐막을 씌운다. 그러자 지금까지의 기분이 완전히 가려지는 느낌이다…….

본래의 빈틈없는 성정을 되찾곤, 켜져 있는 스크린 속을 다시 주시하는 민이었다. 벌써 30분 가까이 본사 중역진의 영업 전략 회의를 엿보고 있었다. 회사 배려로 원거리 참관 자격을 얻어 작고 초라한 영상이나마 전송받고 있었다.

그러나 딴생각에 빠질 만큼 지루한 회의였던 것이다. 벌써 10분 가까이. 화면 속에서 한 여성 간부가 남의 양심을 흔들고자 하는 진심을 내세워 일장 도덕적 발언을 일삼고 있었다. ‘스크린 밖으로 안으로 전염된 것일까? 이런 분위기.’

어쨌거나 장소에 따라 완전 범죄도 가능한 세상이었다. 잘 도망만 간다면야 뒤를 잡힐 염려도 없는 그런 세상이었다. 민은 누군가 자기 뒤를 쫓고 있지 않을까 불안했다. 지난번에 내 먹잇감이 된 그 치가, 나를 혹시? 어쨌거나 도심의 바람은 기분 좋을 만큼 청량했다.

 

**

 

다시 날들이 지나고,

괴물같이 큰 트럭이 또 어딘가로 달려간다. 그것은 민의 트럭이다. 트럭 후미에 달린 76시리즈 ARM이 왠지 더 육중해 보였고,

아침이었다. 사내 네트워크를 통하여 전송받은 본부의 모습은 아침처럼 선명했다. 볼에 만져질 듯 실감이 느껴지는 입체 화면이었다. 이번 달 실적 순위가 씌어 있는 대형 스크린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음을, 그녀는 마치 투명인간이라도 된 양 무리에 껴들어 감상했다. 누군가가 황영민이란 이름에서 풍기는 위세가 예전만은 못하다고 지껄일 때까지.

운전석의 사방에 뿌려진 영상, 본부의 모습을 미소 단위의 정확성으로 재현한 입체 영상은, 딸각 소리가 자못 맑은 어느 노란 버튼을 누르자 콘솔의 스크린 속으로 빨려들어 사라졌다. 그러는 새 차 안은 본래대로 돌아갔다. 영상의 찌끼처럼 남아 있던 약간의 파란 잔광마저 없어질 때, 시야는 더욱 밝아졌다. 날씨도, 한층 마음도 맑다. 그 노란 버튼에 들붙은 아주 작은 티끌을 손가락으로 튕겨 멀리 보냈다.

시외에 볼일이 있는 터였다. 그런데 도심의 마지막 게이트를 통과할 무렵 길이 막힌다. 꽉 막혔다. 진회색 도로 위에 갇혀버린 황영민이란 사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때 스피커를 넘어온 목소리는 인간끼리의 사귐보다 인간끼리의 사업에 더 관심이 있다.

들었습니까? 어디 고철들의 무덤이라도 있나 본데 말이오?”

그렇고 그런 유의 유치한, 남자 동료였다.

, 함경 쪽 거 말하는 건지?”

민이 되묻자 어 그래, 바로 그거, 하고 남자의 대꾸가 돌아왔다. ? 이것 봐라? 민의 마음 밑에서 경계경보가 켜졌고 본심이 드러나지 않도록 혀를 엉뚱한 쪽으로 놀리는 민이었다.

근데 자기, 그거 한갓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정보잖아요. , 조금 당황했는지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다. “우리가……, 라디오 해적 방송 따위 믿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다른 건도 많은데. 우리 정도 되면.”

흐응, 여유 부리는 것으로 보아도 될는지?”

.”

자기도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 봐. 민도……, 관심은 있지?”

물론이었다. 치안이 좋지 않은 지방으로 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선뜻 선택의 이유가 없는 것처럼 느껴져도 근질근질한 손을 주무르며 언짢은 결핍의 감정을 벌써 5일째 참아온 터였다. ‘되든 안 되든 이젠 대어를 낚으러 가야 한다. 잇속을 크게 챙길 만한 호기인데 고작 우범 지역 함경 에 간다는 이유 땜에 망설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설령 나한테 칼을 갈고 있는 사람이 거기 있다 해도 가야지, 아니야, 그래도 위험하기는 한데…….’ 민의 마음은, 이 일을 할까 말까 최종 결정까지 일보나 이보 정도만 남긴 듯했다. 관심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다만 경쟁자와의 대화는 최대한 줄이고만 싶고 본심은 철저히 숨기는 것이 옳다. 부지런한 일 욕심은 벌써 거기로 달음질치더라도, 입은 신중하게 행동할 것. 이런 통화의 목적은 상대방 염탐이 아닌가.

아니, 별로

하고 마음을 숨긴 다음에는 예민하게 상대의 반응을 기다렸다.

좋아. 그럼, 그건 내꺼다. 나랑 마주쳐도 쏘기 없기다. 약속!”

동료의 말을 듣자마자 깨달았다. 굳이 예민하게 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동년배의 말치고는 너무도 유치하여 말투를 당장이라도 고쳐주고만 싶은 그녀였다. ‘자기, 그런 말투로는 뭘 해도 안…….’ 한마디라도 해줄까 싶다가 가만있기로 했다. 민은 여간해서는 도움 조의 말을 삼가는 편이었다. 민에게는 그런 취미가 있다.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한 사람이 서서히 나락으로 가라앉는 꼴을, 특히나 아는 사람의 최후를, 감상하는 취미가.

황영민씨, 나중에 봐.”

단조한 종료음이 들려오며 연결은 끊어졌는데, 어쩐지 황영민이란 이름만은 단조한 느낌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촌스러움이 목적인 이름 같아. 말의 가락이 우수한 언어인데 왜, 이 따위 이름이었을까, 여태 나는.’ 부질없는 생각을 지운다. 민은 오른손 검지를 들어 올렸고 손가락 하나로 볼록한 무엇을 돌리고 누르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그녀가 어제 녹음해 둔 내용이 다시 재생된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그렇듯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요. 뭔가가 있긴 있다는 모양입니다. 요약하여 말합니다, 전합니다. 상당량의 고철 및 비철 확보 중. 며칠 후에 분류 작업 예정. 작업자/구매자 동시 모집. 동업하실 분도 환영. 관련 문의 및 협의는 JN. seo 앞으로. , 아니군요. 정정합니다. Mr. JM seo입니다. 연락채널은 지역 설정을 함경으로 맞추신 다음…….”

한낱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정보였다. 하지만 실적 욕심에 투쟁심이 차올랐다. 엔지니어 P의 작업장에 가는 것 역시 이번 일을 위한 준비 때문이었다.

 

**

 

건망증을 치료하면 네 욕정이 줄어들지도 몰라! 욕정을 채워도 금방 잊어먹으니까 또 채우고 싶어지는 거지!”

연구개를 파르르 떨게 하는 외침이고 농담이다. 트럭 네다섯 대를 들일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날아가, 변태의 등에 꽂혔다. 그리고 변태는 바로 P였다. 민은, 지하에서 음란한 짓을 하던 P를 꾸짖고, 그런 다음은 잠시 동안 어색해 있다가 지상으로 올라왔다. 어색함을 날려버리려고 P는 민보다 빨리 걸었다. 그는 이미 작업장 입구에 서 있었다. 육중한 몸을 달리느라 지쳐 잠시 숨을 골랐다.

그가 말했다.

내 걱정은 됐고. 네 뚱보, 그간 잘 있었나 볼까?”

두툼한 집게손가락으로 셔터 귀퉁이에 달린, 네모난 녹색 단추를 꾹 눌렀다.

, , , ,

잔잔한 모터의 진동으로 셔터가 위로 말려 올라가면서, 민의 뚱보가 지면에 닿은 다섯 개의 대형 바퀴를 먼저 보여주면서 아랫부분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트럭이 저쯤에 멈추어 있었다. 셔터가 걷힐수록 차체의 몸집이 눈에 띄었다. 트럭은, 자라다 만 괴수같이 컸고 진녹색으로 두껍게 칠갑된 바디였다. 적재량이 상당할뿐더러 견고함의 수준이 좋았다. 과연 민의 욕심에 계합하는 모델이었다. 달라붙은 오물 때문에 일견 낡아 보이는 구석이 있긴 해도 연식이 오래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개조 또한 충실히 되어 있었다. 특히나 ARM의 경우, 종전 것을 떼고 대단한 신품을 붙여 놓았다. “이야 저런 걸 언제, 누구한테 달았어?” 민은 기가 차서 할 말을 잊었다.

이곳에서 두 달 전에 탑재한 집게 팔을 둘은 잠시 바라보았다. 간간이 부는 바람에 빈 깡통 따위가 어딘가에 부딪는 소리가 났다. 한 번 더 들려왔다. 당최 알 수 없다는 듯, P가 입을 열었다.

“76A-3식 암을 개조하겠다는 말이지? 아까 감춘 이유가 퍽 궁금해지는데. 9000kg도 거뜬히 드는 것을, 어째서?”

아무래도 이번에 실을 물건은……민은 여기까지만 말한 뒤 물건이 아주 크고 무거울 것 같아라는 뜻으로 두 손으로 자기 가슴을 떠받치듯이 움켜쥐었다. 이해하겠어? 얼마나 큰 것인지?

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연, 물건이 그 정도로 큰 것이라면, 개조가 필요하지 필요해요.” 그러고는 민에게, 내 가랑이 사이에 있는 그것만치 크냐고 쏙닥쏙닥 귀엣말을 했다. 한번 비교해보겠어?

……펀치가 복부로 날아들었다.

그러기 2초 전에는, 76A-3식 암보다도 강할 듯한, 전설 속 거인의 것같이 육중해 보이는 민의 팔이 위로 또 위로 들어 올려졌었다.

얼마 후, P가 말했다.

커다란 잔해? 혹은 커다란 공장만 한 물건 고철, 고물이라고 해도 인부 몇을 동원해서, 훼철해서 옮기면 그만일 텐데. 굳이 협업을 피하고 ARM을 개조까지 하여 혼자서 하겠다고? 나 원 이해할 수가 없군. 불필요해.”

그건 맞는 말이었다.

왜냐면하고 운을 띄우는 민이다. “이번에는 나 혼자서만 일을 하고 싶어서. 아무래도 그편이 빨라. 눈에 띄지 않는, 기민한 단독 행동파. 최대한 냄새 안 피우고 빨리 해치울 셈이에요. P도 알잖아. 함경, 그쪽 지방의, 하이에나 같은 상인들. 규모 있게 떼로 갔다가는 들킬 것이고, 웬 잡놈들까지 덩달아서 몰려오고 말 테니깐. 혼자서만 빠르게. 만일 힘에 부치면 그쪽 지사에서 몇 명 정도 부르면 되니까 인부는 됐고.”

이것도 맞는 말이었다. 다만, 민의 계획이란 혼자서 그 몫을 다 차지해야 된다는 욕심이 우선이었다.

그러는 이유가 또 있다. P는 바로 그 점을 눈치채고 있었다.

민의 방침은, 항상, 속전속결이지? 자기한테 보복을 가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다가오기 전에 일을 끝내고 사라진다, 이거 아닌가?” 그는 민을 훤히 꿰고 있다는 듯 눈알을 이쪽저쪽 굴리곤, “이젠 일을 살살 좀 하면 안 될까? 특히 지난번엔…….”라고 했다.

민이 말했다.

그 일은……, 그날 내가 술이 좀 과했었나 봐

하더니 자초지종을 읊는다. 각색한 구석이 있는.

그날은, 원래 내가 가져가기로 한 물건을 어느 잡놈이 채 가길래, 쭉 미행해 봤어. 가볍게 혼쭐내 줄까 하는 마음이었어. 사위가 한적해졌을 때, 그놈이 호구처럼 보이는 시점에서 따당, 하고 몇 발 쏴줄 계획이었지. 한데 구식 화기가 무슨 힘이 있겠어? 오렌지색 화염이나 예쁘게 보여 주며 위협이나 해 볼까 하고 쏜 건데…….”

하필 명중이었단 얘기군?”

,.”

민의 기세가 수그러진다. P의 기세는 올라갔다.

그가 이렇게 정리한다.

마침 그 트럭은 땅에 처박히고 운전자는 기절해버렸다. 기절하다니, 매우 땡큐. 손쉽게 짐칸에 든 고물 십수 톤을 회수했다, 그렇게 훔쳤다는 얘기군, 맞지?”

민은 대답을 회피하는 눈치였다.

 

레이디한테 내가 실례를. 오케이, 지난 얘긴 이만 됐고 아무튼 ARM 개조라. 작업 시간이……, 이틀 정도는 걸리겠군.”

안 돼.” 그녀는 말을 바로 이었다. “내일 아침까지. 아까도 말했지만 오늘, 철야작업 좀 해줘.”

그렇게 급한가?”

이건 일이잖아.”

P에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마침 인근 공장에서 통신이 들어와 둘의 대화가 끊기고, 그래서 한쪽에만 침묵이 고였다.

침묵은 그녀를 더욱 급하게 몰아갔다.

민이 자꾸 재촉하는 탓에 P는 이쪽저쪽을 번갈아 보아야 했다.

통신을 끝내고 나서 이 변태의 혀가, 괜한 말이, 그녀를 찔렀다.

무조건 빨리 해치우시겠다는 투지가 멋져. , 역시 당신은 돈 독 오른 여자야.”

또다시, 복부로 날아드는 펀치는 그를 최대한 빨리 해치우려는 기세였다.

알았어, 알았다구.”

두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그녀를 만류하던 P. 오 역시 당신은 폭력적인 여자야 하고 말하려다가. 말하고 말았고. 결국에는 한 대 더 맞고 말았다.

 

**

 

트럭을 맡긴 뒤 회사에 연락해 세단 한 대를 렌트해 타고 다녔다. “내일까지, 아니 모레까지 써도 돼요.” 그녀를 전담하는 오퍼레이터, 김이경이 보내 준 세단은 성능이 최고 수준이었지만 그 호화로움의 크기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일을 하루치나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시대의 미취학아동들도 알 만한 극심한 손실임이 자명했기에, 그날 저녁 무렵부터 민은 향정신성 약물을 복용하지 못해 금단증상이 온 폐인처럼 목마름을 느꼈다. 돈을 아예 못 번 날이라니. 차를 맡기고 제 손을 쉬게 한 적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는데 유독 과민증을 느끼는 것이었다. 다음 날에도 그런 증세는 가시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쪽으로 가지 말라는 거야?”

더욱 예민해져 있었다. 공격적으로 말하려고 할 것은 아니었는데, 반말투가, 불쑥.

물론이지만, 상대와 반말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뚱보를 되찾으러 P에게 가는 길, 세단의 콘솔에 수신된 영상 속의 여자는 이경이었다.

이어지는 설명을 듣다 말고 민이,

영세한 인간 모기떼를 쫓아내기 위해, 독한 모기향을 피웠다는 얘기네? 약한, 그러나 신경 가스!?”

어쩐지 불안정한 기분이 민을 이경의 반대편에만 서게 했다. 말마다 어깃장을 놓고 미간을 찌푸려서는 보기 싫은 표정만 연출하는 민이었다.

이경의 태도에는 거의 바뀜이 없고 다만 조금은 목소리가 커졌다. 민에게 이 점만큼은 확실히 해두고 싶은 모양이었다.

맞아요. 하지만 이건 회사의 아주 중요한 일이거든요.” 하고는

이 말의 다음에서도 회사, 회사, 회사, 강조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해야 되냐구 어떻게 수십의 사람을 곤란에

이경에게 하려던 말을, 민은 꾹꾹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언짢은 감을 터뜨리려 한 순간, 자기의 어떤 허물이 생각난 까닭이다.(신경을 발기발기 찢어놓던 알력 다툼의 소리가, 과민한 기운이 이즈음부터 조금은 잦아들었다.)

이경이 말했다.

“No mercy, 잊으셨어요? 우리 회사의 경영 이념요.”

물론 알고 있습니다아 다만

이경이 민의 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말끝을 삼박 자르고 들어왔다.

“100년 전에도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한 시민단체의 말을 빌리자면 그렇지만요. 하지만 어서 어서 몰아내려면 연기라도, 가스라도, 뭐라도 날려보는 수밖에요. 카르텔이다 뭐다 골치가 아프죠 요즘. 저희 카르텔에 비가입한 저 치들 때문에 잃는 수입이 얼만지. 그건 일선에 있는 민이 더 잘 알거고요. 무엇보다 지난번 영민씨가 한 일을 생각해보세요. 타인한테 어떤 식으로 대했는지를. 우리 자기가 아주 한바탕해버렸죠. , 그런 방식 아니었어요? 민의 과거 얘기 한번 해볼까요? 할 말이 그래도 있으신지?”

, , , , .

민은 한 음절씩 곱씹었다.

강탈의 연속, 의지, 노력 따위는 민에게는 경쟁의 기술이었다. 현재가 아닌 과거에 곧잘 그랬다는 것뿐. 개인의 스케일에 맞춰 때마다 사람 몇 명쯤을 괴롭혀왔다는 점이 기업 차원의 몰인정과는 다른 것일 뿐. 자기 눈에 걸린 방해물은 꼭 해치우는 성미였다. 그랬다. 최근에는 한창때보다야 얌전해진 편이지만 사나운 기질이 아예 없어질 수 있겠는가. 같은 밥그릇을 두고 영세상인과 맞붙을 때는 여느 남자 이상으로 독한 모습이었다. 이경이 말했듯, 어제 P 또한 그랬듯, 얼마 전에는 크게 사고를 쳤다. 그것도 모래에 싸인 더럽고 먼 지방까지 가서. 민이 이따금 돈 앞에서 표독스러워질 때, 비정한 눈가리개가 등장하여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허물이 생겨나곤 했던 것이다. 그녀는 차를 달렸다. 앞의 도로가, 아마득한 과거처럼 뻗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간선도로를 벗어날 때에는,

지금쯤이면 개조가 다 끝났을까, 더 강력해진 그것으로 함경에서 과연 얼마를 더 챙겨 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이번엔 꼭, 가서 대어를 낚아 와야 해. 제발 나를 귀찮게 하는 일 따위는 없었으면. 설마 거기서 원수를 만난다든가 하는, 그런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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